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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위구르박물관 미라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박물관新疆维吾尔自治区博物馆에서 "죽은 이가 천년을 넘는다逝者越千年"라는 특별 전시실이 있다.이곳에는 수십 구 시신이 전시되어 있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소하 공주小河公主"와 "누란 미녀 楼兰美女"다. "건조된 시체[干尸]"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가 약간 들어본 적이 있지만, 직접 전시장에 가서 유리 진열장에 누워 있는 이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면 그들의 피부 조직과 손톱 무늬가 뚜렷하게 보이고, 머리카락이 뿌리가 뚜렷하며, 심지어 속눈썹이 막 눈을 감은 것 같은 풍성함도 발견한다. 그들은 이런 모습으로 출현함으로써 수천 년을 우리와 소통하며 그 간극을 메웠다. 신강新疆은 기후가 건조하고 강수량이 적어 시신이 빠른 속도로 탈수한다. 이는 미라 생성 호조건이다.미라는 생성 조건에.. 2025. 2. 25.
[해혼후묘海昏侯墓] (1) 밤새 짖어댄 마을 개들 2000년대 들어 중국 강서성江西省 남창시南昌市에서 느닷없없이 출현한 이 서한시대 중기 무덤 발굴성과 역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바, 앞선 소개에 이어 이번엔 좀 시간을 들여 상세히 정리한다.이 무덤은 2015년 도굴을 계기로 알려지고 발굴조사가 착수되어 그 전모를 드러냈거니와무엇보다 무덤에 동전만 10톤에 달하는 막대한 양을 쏟아부었으며 뿐만 아니라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금은 6만그램 넘게 현재까지 수습되었다. 이 황금은 상자 안에서 발견되었고 크기는 하나씩 아이들 손바닥만했다. 어떤 상자에는 금병이라 일컫는 금덩이가 적어도 70~80점이 있었다. 다른 칠기 상자에서도 모두 황금만 나왔다. 어떤 것은 말발굽처럼 생겼고, 어떤 것은 사슴 발처럼 정교하게 주조했다. 직전 조사자들은 이 무덤에서 오수전五铢钱.. 2025. 2. 25.
토하라 미라 A Tocharian mummy, dating back 3,000 years, Unearthed in the Tarim Basin of present-day Xinjiang, China.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놀랍도록 잘 보존된 토하라 미라다.중국 신장위구르 타림 분지에서 발굴된 이 미라는 토하라인Tocharians에 속한다.이들은 이 지역 존재 그 자체가 오랫동안 흥미를 불러일으켰다.의복, 머리카락, 피부가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어 그네들 신체 특징과 문화 관습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미라는 고고학적 중요성 외에도 동양과 서양을 연결한 초기 무역 네트워크를 조명한다.토하라인들은 실크로드 선구자들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들의 유적은 유럽과 아시아의 영향이 매혹적으.. 2025. 2. 25.
서기 2년 기준 서한 군국별 인구 통계 서한西漢 평제平帝 시기에는 전국에 83개 군郡과 20개 제후국诸侯国이 있어 도합 총 103개 군국郡国과 1천317개 현縣이 있었다. 원시元始 2년(서기 2년), 중국은 이미 매우 규범적인 인구 통계 데이터를 보유했으며, 당시 전국에는 총 1천223만 3062가구와 5천959만4978명이 있었다. 이 데이터는 단지 민간 가구일 뿐이며, 군대의 서역 도호부西域都护府 인구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면 서한 103개 군국 중에서 각각의 인구 수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천군颍川郡과 여남군汝南郡에서 인재가 나온다고 하는데, 인구가 가장 많지 않을까?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서한 각 군국 인구를 알아보겠다. 서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군은 여남군汝南郡으로 259만6148명에 이르며 영천군과 패군沛郡 역시 200만 명이 넘.. 2025. 2. 25.
[마왕퇴와 그 이웃-12] 호남의학원 마왕퇴 이야기 또 다른 주연은 호남의학원이다. 마왕퇴 연구는 당시까지도 후진 경제를 못면하던 중국으로서는 전국의 의과학 역량을 딸딸 긁어 모았다고 해도 좋은데, 그 중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한 곳이 湖南医学院이다. 이 학교는 2차대전 이전에는 상아의과대학湘雅医科大学이라 일컬은 대학으로 1914년 미국 비영리재단인 Yale-China Association이 건립했다 한다.한때 "북중국은 협화의대, 남중국은 상아의대"라고 불릴 정도로 대륙의 의학계를 양분할 정도였다고 한다. 국공내전 후 1953년, 상아의대가 호남의학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마왕퇴 무덤이 발굴되던 당시에는 이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호남의학원이 마왕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마왕퇴에서 미라가 나왔는데 정부에서는 문화재가 아.. 2025. 2. 24.
대후가승軑候家丞이란 무엇인가? 승상이란 무엇인가? 중국이나 한국 가릴 것 없이 丞[승]이라는 말을 쓰는 관직이 아주 자주 보인다. 지금의 국무총리 혹은 재상에 해당하는 관직을 승상丞相이라 했으니, 도대체 이 승이란 무엇인가?이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저 본래하는 의미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 제아무리 시대와 공간이 바뀐다 해도 저 말이 지닌 그 본래하는 뜻에서 그 직무가 벗어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文이라는 말을 썼으면 그가 문관 혹은 야부리로 먹고 사는 사람을 말하지 무관까지 가르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범위로 삼는 한漢나라 시대 저 말이 함유하는 맥락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저 당시 저 말이 어떤 의미로 통용했는지를 봐야 한다.이를 위해 전가의 보물 설문해자说文解字를 보면, 저 말을 풀기를 翊也。从廾从卩从山。山高,奉承之義.. 2025. 2. 24.
어느 여름날 하남 동사지 쌍탑 언제인지는 기억에 없고 다만 탑재 시간이 2016년 2월 24일이라 그 이전 어느 여름날이었음에는 틀림없다. Stone Stupas at Dongsa Temple Site, Hanam 河南春宮洞東寺址及其石塔라 했거니와하남 춘궁동 동사東寺라는 절터에 남은 쌍탑이다. 쌍탑이라면 보통은 일란성 쌍둥이를 방불하지만 이곳은 특이하게도 양태가 달라 애초 지을 적에 저리 했을 가능성은 없는 듯하고 시대를 달리해서 나중에 하나를 추가했거나 혹은 인근 어디 다른 데서 하나 혹은 둘 다 옮겨 온 데서 빚어진 현상 아닌가 한다. 하남 일대는 저곳을 포함해 내가 비교적 자주, 아니 더욱 정확히는 종정 정신 사나울 때 같은 무렵에 들리는 곳이거니와 저런 데 가면 그냥 좋아서다. 그 입구 춘궁지인가 하는 연못가에 커피숍 하나가 .. 2025. 2. 24.
중국어 텍스트 소화하는 한 방법 중국어와 영어는 실상 문법 체계가 아주 비슷하니, 무엇보다 어순이 근간에서는 같다. 물론 세부로 들어가면 적지 않은 차이가 있지만 어순 하나 같다는 사실은 곧 자동번역 기능에 대한 신뢰를 담보한다. 중국어 텍스트는 구글 자동번역을 돌려보면 90% 이상 정확도를 자랑한다.구글이 중국어 번역에 신경을 특히 쓴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참고로 구글 중국어 한국어 번역 성능은 아직 멀었다.나는 중국어 읽기는 좀 하는 편이며 말은 모른다. 워낙 한문을 많이 했으니, 근간에서 백화문과 옛 한문은 같다. 현대 백화문과 고문은 같은 반열에서 취급해야 한다. 그러니 텍스트는 그런 대로 소화하는 법이라, 다만 고문에 익숙하다 보니 여전히 간자체는 영 설다. 그래서 요즘은 덮어놓고 중국어 텍스트 긁어다가 영어번역에 얹는다. .. 2025. 2. 24.
[문화재기자 17년] (24) 세비야에서 겪은 이건무(1) 세계유산위원회 얘기가 나온 김에 200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 일화로써 이건무 선생 얘기로 들어가 볼까 한다. 당시 그는 문화재청장이었다. 두계 이병도 손자인 그는 깐깐한 인상을 주며, 실제로도 과묵한 편이고 꼬장꼬장한 공무원으로 소문이 났다.결코 드러내는 성정이 아니라 일 처리 역시 조용한 편으로 평가된다.그런 까닭에 기자들과 사이가 나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좋다고도 할 수 없었다.더 툭 까놓고 말해 기자들에게 그는 재미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특별히 친한 기자도 없는 듯 했고, 그렇다고 척을 진 기자도 없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이렇다 할 맛이 없는 그런 사람 말이다.이건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역시 그랬다. 나서는 성격도 아니요, 그렇다고 무슨 .. 2025. 2. 24.
말로만 듣던 보로부두르 앞에 서서 borobudur, central java, indonesia march 1st, 2013 이 보도부두르는 내가 명색이 문화재업계에 투신한 지 이미 당시에도 오래였지만, 좀체 연이 없었으니 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일수록 외려 남들 다 가는 데 가기가 여간 어렵지 아니해서 주변 지인들을 봐도 다 그렇다. 외려 저런 명승을 다 싸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엉뚱해서 같은 기자라 해도 농땡이 치는 놈들일수록 더 좋은 데는 더 많이 싸돌아다니는 기현상이 벌어지거니와 꼭 이런 말 하니 내가 꼭 그렇다 하는 꼴이라 못내 조금 뒷골이 뻐근하기는 하다만 그래 솔까 나는 한때 일에 미쳐 살았고, 그 일이 좋아 열광하며 살았다. 암튼 저 보로부두르 자체는 물론이려니와 인도네시아 자체가 나하는테는 저때가 처음.. 2025. 2. 24.
하나 같이 지랄 맞은 너무나 유명한 고전과 고전들 소위 널리 알려진 관심 분야 고전이라 해서 다 걸신 걸린 듯 순식간에 읽어내릴 수는 없는 법이다.이 두 서양 고전,곧 카이사르 갈리아 원정기와 타키투스 게르마니아는돌이켜 보건대 매양 읽다가 집어치다를 반복했으며 더구나 일본어 영어판 중역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엔 그 번역 신뢰성에 의문이 일어 이럴 것 같으면 차라리 저명한 영어 번역본으로도 읽자 해서매양 영문판을 구해다가 독파를 시도했다간 번번이 좌절한 기억만 아련하다.걸신 걸린 독서는 열정 열광이 있어야 한다.지금 요이땅 외치면 쳐들어간다.(2016. 2. 24)*** 그래서 저 두 고전은 마파람 게눈 감추듯 해서 해치웠는가?그리 강렬한 기억이 없으니 둘 중 하나였으리라.읽기는 했지만 재미가 없었거나 가다가 중단했으리라.고전은 언제나 재미랑 거리가 멀다.고.. 2025. 2. 24.
[해혼후묘海昏侯墓] (1)은행을 발굴하는 사람들 2000년대 들어 중국 강서성江西省 남창시南昌市에서 느닷없없이 출현한 서한 시대 중기 폐제废帝 창읍왕昌邑王 해혼후海昏侯 유하刘贺 능묘陵墓 발굴성과 역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바, 앞서 여러 번 다루기는 했지만 이번엔 좀 시간을 들여 하나씩 단을 지어 정리를 꾀하고자 한다.이 무덤은 2015년 도굴을 계기로 알려지고 발굴조사가 착수되어 그 전모를 드러냈거니와무엇보다 무덤에 동전만 10톤에 달하는 막대한 양을 쏟아부었으며뿐만 아니라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금은 6만그램 넘게 현재까지 수습되었다. 이 황금은 상자 안에서 발견되었고 크기는 하나씩 아이들 손바닥만했다.어떤 상자에는 금병이라 일컫는 금덩이가 적어도 70~80점이 있었다.다른 칠기 상자에서도 모두 황금만 나왔다. 어떤 것은 말발굽처럼 생겼고, 어떤 것.. 2025. 2. 24.
[마왕퇴 스핀오프] 중국 남방 문화와 초 문화 앞에서도 계속 말했고, 뒤에서도 계속 강조하게 되겠지만, 저들 집안이 터잡은 장사長沙는 지금도 그렇지만 강고한 남방 초 문화 전통에 뿌리 박고 있으며, 이런 유구한 전통은 그들이 진秦 혹은 한漢과 같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구사한 통일 왕조가 들어선 뒤에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에서 초 문화 전통이란 무엇인가를 물을 수 있거니와, 이 남방 초문화는 간단히 정리하면 건조한 고원지대 잡곡 중심 황화 문명에 견주어 걸핏하면 범람하는 장강을 기반으로 삼는 저지대 평야 문화이며, 그런 까닭에 물[水]이 차지하는 위치가 막중막비하고, 종교 사상이라는 관점에서는 황화 문명 합리주의에 견주어 무巫 문화 전통이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지적해 둔다. 일본의 중국 도교 중심 종교사상사가 후쿠나가 미쓰지福永光司는 내 기억에 .. 2025. 2. 24.
[마왕퇴와 그 이웃-11] 문화대혁명 광풍 속 고고학자들 다음의 조연은 당연히 현장의 고고학자들이다. 마왕퇴가 발굴되던 당시의 중국상황은 험악했다. 1966년 시작한 문화혁명은 아직 불길이 다 잦아든 상태가 아니었다. 마왕퇴 발굴이 1971년에 시작하여 1974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중국 대륙에서는 문혁에 의한 공자 비판이 1973년에 시작되어  곽말약이 공자를 숭배한다고 비판받아 스스로 반성문을 써야 할 정도로 정세는 불안정했다.  이 당시 홍위병이 곡부의 공자묘를 습격해 크게 훼손한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정세에서 사실 마왕퇴 발굴과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 놓은 일이나 다름 없었다. 중국에서 나온 마왕퇴 발굴 관련 저서를 보면이 당시 고고학자들의 생고생을 낱낱이 적어 놓은 것이 많은데 물론 사람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게 완벽하지는 못한 것이.. 2025. 2. 24.
동전만 10톤을 쏟아낸 강서성 해혼후海昏侯 유하刘贺 무덤 무왕돈 초나라 대왕묘며 마왕퇴 한묘니 하는 이야기가 조금은 신물이 넘어오는 듯해서 이전에 상세히 다루기는 했지만 잠시 외도한다. 강서성 해혼후海昏侯 유하 묘刘贺墓라는 데다. 전한 중기 창읍왕昌邑王으로 있다가 소제少帝 황제가 후사 없이 죽자 당시 권신 곽광이 느닷없이 후계자로 지목하는 바람에 느닷없이 창읍에 있다가 업혀 와서 강제로 황제 자리에 앉았지만 황제 되고선 룰루랄라 황제된 맛이 이 맛이여 하면서 룰루랄라 탱자탱자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겁대가리 상실한 어린 황제가 창읍에 있던 조무래기들까지 바리바리 끌고와서는 벼슬자리 주고 하니 가만 두었다간 나라 거덜나겠다, 아니 내 권력 절단나겠다 위기감 느낀 그 곽광이 느닷없이 너 그 꼴로는 종묘 사직 보존 못하니 그만 해야겠다. 내리 와레이 해서는 ..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10] 의학자와 文士의 기로에서 앞에서 쓴 곽말약 이야기를 조금 더 써보겠다. 곽말약은 앞에 쓴 것처럼 큐슈제대 의학부 출신 의학사-의사인데 졸업한 해가 1923년. 당시로서는 최고수준 학벌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래도 환자를 직접 봤다는 기록이 전혀 없으니 졸업과 함께 의사는 사표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겠다. 곽말약 글을 보면 의학자 특유의 섬세함과 날카로움이 보이는데, 추리소설 작가로 명성을 날렸지만 셜록 홈즈 소설에서 의사 특유의 문진법을 추리에 그대로 적용한 코난 도일처럼 의대에서 보낸 본과 4년은 그의 평생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곽말약과 마왕퇴 미라 관련해서는 두 개 이야기가 전한다. 사람들 사이에 전해오는 이야기라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중국 쪽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이 이야기는 언제나 인용되는 부분..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9] 곽말약郭沫若(1892~1978) 다음으로 마왕퇴 발굴의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한 또 다른 저명인사는다름 아닌 궈모뤄, 곽말약이다. 마왕퇴 미라가 발견된 후 제대로 된 의학적 조사가 시행될 때까지 여러 고비가 있었는데이럴 때마다 급한 불을 끈 사람은 당시 총리 주은래이며 중국과학원 원장 곽말약이다. 마왕퇴 조사에서 대체적인 방향 제시를 주로 했던 주은래와 달리곽말약은 마왕퇴 미라 조사 때 매우 전문적인 사항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라에 대한 의학적 조사가 시작되기 전 곽말약이 연구진에게 남긴 메모가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상당히 구체적이며 의학적으로도 합리적이라 볼 만 하다. 곽말약이 이처럼 마왕퇴 미라에 대한 의학적조사에 관심을 가진 첫 번째 이유는그가 일본에서 의대를 졸업한 의사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곽말약 연표를 보면..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8] 주은래周恩来 마왕퇴 발굴의 주연은 당연히 마왕퇴 무덤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발굴은 당시 중국의 정치적 정세가 무척 불안정했기 때문에 당시 중국의 민도와도 겹쳐 수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마왕퇴의 스토리를 만드는데 거든 조연을 순서대로 소개해 보겠다. 가장 먼저 주은래-. 소위 중국 공산당의 영원한 2인자로 국공내전 이전부터 시작해서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실각한 적도 없고 항상 마오의 바로 아래 2인자 자리를 지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물이 항상 주은래의 비위를 맞추기만 했던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마오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그 혼란의 시기에 나침반처럼 항상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고 해도 되겠다. 주은래는 마왕퇴 발굴에서도 그런 역할을 했다.   마왕퇴가 전한 시대 무덤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그 안에서 무.. 2025. 2. 23.
2009년 여름 세비야와 세계유산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 보기에서 퍼온다. 이 사진과 아래 첨부사진을 전재하면서 내가 적기를 Royal Tombs of the Joseon Dynasty Being Inscribed on the World Heritage List at the 33rd World Heritage Committee Held at Seville, Spain on June 27th, 2009 라 했으니 2009년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3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던 그 순간을 촬영한 장면 중 하나다.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당시 이건무 문화재청장이고 그 왼쪽이 외교부 어느 담당 국장이셨는데 성함은 까먹었다. 저 조선왕릉 등재 때 한국 취재진으로서는 내가 유일하게 현장을 지켜 보며 관련 기사를 썼.. 2025. 2. 23.
[마왕퇴와 그 이웃-7] 핵 방공호를 파다 찾다 앞에서 이야기한 핵공포와 방공호-. 1969년 소련이 자국산 핵무기 상당수 탄두 방향을 중국 쪽으로 돌리면서중국의 공포는 격심해졌다. 이 때문에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핵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방공호 파기가 전국적으로 붐이 일었는데인민해방군 사령부의 방공호가 호북성 지역에 만들어진 것처럼 호북-호남성 일대도 핵 방어용 방공호가 여러 곳 지어졌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장사시 병원 부지에 들어설 계획이었다. 그런데 막상 파다 보니 범상치 않은 광경이 목격되었다. 열심히 파다 보니 고령토가 나오기 시작했고 파 들어간 구멍에서 기체가 솟아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옆에서 무심코 담배불을 붙이던 병원 원무처장이 불을 다 붙이기도 전에 구멍에서 솟아나온 기체에 불이 붙어 폭발해 버린 것이다. 이.. 2025. 2. 23.
화장실 문화가 꽃 필 날을 기다리며 요새 간헐로, 그리고 때로는 집중해서 화장실 이야기를 한다. 어린 시절 짚으로, 새끼줄로 뒤딱이를 해결하고, 통시가 대표하는 그런 열악한 화장실 문화를 겪어 지금 수세식 화장실 시대에 이른 내가 이런 점들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생충으로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거니와, 그 기생충 감염 통로는 누구나 예상하는 그런 것들이라, 그 대표하는 통로가 실은 인분이라는 비료에서 말미암았다. 내 고향 김천을 기준으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수세식 변도를 도입한 시대는 오래지 않아서 때마다 그 반동에 고생한 기억이 생생하다. 단순히 이런 시절 기억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곧 위생 문제요, 그것이 곧 사회문제인 까닭에 더욱 저 화장실 문화는 내가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둔다. 로마시대 공중 화장실 문화를.. 2025.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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