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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문화의 위대함 한국 대중문화는 위대하다. 서구 사회에는 동양 문화에 대한 편견이 있다. 동양문화권에 대한 엄청난 발견이 있어도 대략 그 여파는 학계에서만 맴돌 뿐 일반 대중문화에 이르면 그 여파가 잘 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마왕퇴-. 필자가 보기엔 이 발견은 정말 엄청나다. 이 정도 볼륨을 가진 발견은 서구권에 갖다 놔도 세기의 발견이다. 물론 이 무덤에 대한 학계평가는 매우 높다. 하지만 한 발만 발을 바꿔 디디면 마왕퇴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미국과 유럽에는 널렸다. 설사 알게 된다 해도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다. 그 문화가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수준에 이르기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미라도 마찬가지인데-. 조선시대 미라에 대한 연구도 현재는 이 연구가 추구하는 성과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은 부정하는 사람.. 2024. 10. 9.
삼국지는 "서書"인가? "지志"인가? by 김영문 * 진수가 삼국지를 처음 편찬할 때는 아마 세 나라 역사에 위서魏書, 촉서蜀書, 오서吳書라는 이름을 붙이고 통일된 체제의 총서 형식으로 구성한 뒤 위서, 촉서, 오서를 각각 독립된 책으로 발간하여 따로 유통시킨 것으로 보인다. * 몇 가지 증거가 있다. 우선 구당서舊唐書 경적지를 살펴보면 삼국지 중에서 위국지魏國志 30권은 ‘정사正史’ 부문에 편입했지만, 촉국지蜀國志 15권과 오국지吳國志 21권은 ‘편년編年’ 부문에 편입했다. 만약 삼국지를 처음부터 한 부의 책으로 편집하여 유통했다면, 그것을 고의로 분리하여 서로 다른 부문 목록에 수록할 이유가 없다. * 또 삼국지를 처음 판각한 송宋나라 판본을 살펴보면 그것을 한 부의 책으로 합쳐서 편집했음에도 ‘판각 어명 첩문牒文’을 촉서 첫머리에도 편입했을 뿐 아.. 2024. 10. 9.
갈수록 절실해지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던 어른들 말씀 뭐 솔까 저런 말을 입에 달고 산 보모님 세대부터 실은 100명 중 99분이 기술이랑은 눈꼽만큼도 관계가 없기는 하다. 저런 말 입에 달고 산 분들이 실은 죽어라 농사만 짓는 사람들이다. 저런 구호가 더 난무하던 시대가 박정희 시대였다. 그때를 나는 금오공고 시대라 부르는데, 그것이 대표하는 선형 판형 가공하는 기술공고시대, 그리고 주판을 무기로 앞세운 상고시대 아니었겠는가? 저와 비슷한 시대를 살고는 출세한 사람 중에 목포상고를 나온 DJ가 있고, 부산상고 출신 노무현이 있다. 한데 말이다. 퇴직하고 보니, 그리고 퇴직하고서도 뭔가는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해야 하는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저 말이 갈수록 절실하다. 남들 볼 때는 너는 전문성이 있으니깐...하지만 막상 내실 따져보면 전문성은 하나도 없어 설.. 2024. 10. 9.
그리운 리숙동李叔同 선생님[懷李叔同先生] written by 풍자개豊子愷(1943), translated by 홍승직 (懷李叔同先生) 풍자개(豊子愷)(1943년작)지금으로부터 29년 전, 내가 17살 때, 항주杭州의 절강浙江 성립省立 제일사범학교에서 리숙동李叔同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바로 훗날의 홍일법사弘一法師다. 그때 나는 예과 학생이었고, 리선생님은 우리 음악 교사였다.우리는 리 선생님의 음악 수업을 들을 때,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엄숙함이었다. 예비종이 울려서, 음악 교실로 걸어가 문을 밀고 들어서던 우리는 우선 깜짝 놀랐다. 리 선생님이 벌써 교단에 단정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선생님들은 늘 우리보다 늦게 온다고 생각하면서, 되는 대로 노래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웃기도 하고, 욕도 하면서 문을 밀고 들어서던 학우들로서는 더욱이 놀라움이 작지 않았다. 학우들의 노래 소리, 외침 소리, 웃는 소리, 욕하.. 2024. 10. 9.
류큐 국왕 초상 오고에御後絵와 닮은 해인사 세조 초상 이렇게 동글납작하게 생긴 얼굴로 그런 대사를 한다면 확실히 어울리진 않겠지만, 이당이 그린 초본을 봐도 그렇고 그게 사실인 걸 어쩌랴.그나저나, 이 해인사 소장 세조 어진은 보면 볼수록 류큐 국왕 초상 '오고에御後絵'와 닮았는데 관련 연구가 있는지 모르겠다. *** Editor's Note ***  강민경 선생이 새삼 소개하는 이 세조 어진은 언제 알려졌는지는 모르겠다. 내 기억을 떠올리면, 내가 기자 초년병 시절에 이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는 발견? 이라는 식으로 보도한 기억이 또렷한데, 그 무렵 첫 보고였는지 아닌지는 기억의 착란으로 안심할 수는 없다. 중요한 지적인 듯한데, 제대로 검토가 이뤄졌는지는 모르겠다. 2024. 10. 9.
마침내 선뵈는 팔보 옮김 풍자개 연연당 수필 이 풍자개豊子愷라는 사람은 그의 연연당수필緣緣堂隨筆이라는 책을 통해 희미하게 내가 존재를 각인하게 되었거니와다름 아닌 이를 옮긴 저 홍승직 선생이 틈나는대로 그 번역을 소개한 까닭이다.내가 숙독은 하지 못했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사람이며 참말로 글을 맛깔나게 쓰는 사람이라는 인상으로 남아 있다.출간을 염두에 둔 초고 번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만간 역본이 나오는 모양이다.요새 책 홍보는 저자 혹은 역자가 발벗고 하는 시대.하지만 걸음걸이 때문에 스스로를 팔보라 하는 홍 선생은 못내 수줍음이 많아 아주 소극적으로 그런 사실을 조심스레 홍보하는데이르기를.. [대대적 홍보]혹시 누가 “얘 글 좀 쓰네”라고 평한다면, 이 사람한테서 배웠기 때문입니다.혹시 누가 “얘는 이따위로밖에 글을 못쓰.. 2024. 10. 9.
미노아 문명에서 유래하는 황금 양날 도끼 미국 보스턴미술관 Boston Museum of Fine Arts 소장 이 황금 양날도끼[gold double-bladed axe]는 기원전 1500년 무렵 미노아Minoa 문명 유물로, 그리스 크레타Crete 섬 아르칼로코리 동굴Arkalochori Cave에서 발견되었다. 이 도끼에는 선형 A Linear A라는 고유한 문자가 새겨 있다. 아직까지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부 전문가는 이러한 표시가 데메테르Demeter 여신에게 바치는 기도일 수 있다고 믿는다. 꽃이나 양초를 특별한 장소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이 도끼를 신에게 바치는 선물로 동굴에 두곤 했다. 이는 수천년 전에도 사람들이 복잡한 신앙생활을 했으며 물건을 만드는 데 매우 능숙했음을 보여준다고? 꿈보다 .. 2024. 10. 8.
삼국지 체제의 특징 by 김영문 삼국지는 기전체紀傳體 역사서다. 그러나 사기史記나 한서漢書 등 다른 기전체 정사에 있는 “표表”와 “지志”가 없으므로 기전체 중에서 별격에 속한다. 진서 진수전에 삼국지 권수가 현존 판본과 동일한 65권으로 기록되어 있고,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정사正史 항목에도 진수가 짓고 배송지裴松之가 주注를 단 삼국지 65권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본래 진수가 표와 지 없이 본기와 열전만으로 삼국지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다만 수서 경적지에는 삼국지 본문 65권 외에 서록敍錄 1권이 더 있었던 것으로 기록해 놓았으므로, 현재 이 서록 1권만 실전된 것이 아닌가 한다. 구당서 경적지에 오국지吳國志가 21권으로 기록된 사실도 오국지 맨 끝에 서록 1권이 붙어 있었음을 반증하는 증거다.진수는 촉한에서 동관비서랑東觀秘書郞, .. 2024. 10. 8.
국립나주박물관, 고대 거울 기획전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백설공주 동화책에 있는 이 대사는 마치 거울이 사람들의 소망을 이뤄주는 존재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는 고대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거울을 보며 용모를 단장하기도 하고, 하루를 잘 보내고자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특정한 사람만 거울을 가졌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거울에 선이나 원, 각종 상상의 동물로 장식하고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내용이 담았습니다.이번 전시 '빛, 고대 거울의 속삭임'에서는 이런 거울을 만든 사람과 사용한 사람의 모습을 상상해 보고자 합니다. 거울 속 한 줄기 빛을 통해 고대 거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전시기간: 2024.10.8.(화)~2025.2.9.(일).. 2024. 10. 8.
아동 노동, 그 현장 조카딸 아들놈이 어김없이 왕할매 고구마 밭 노동현장으로 출동해 지 할매 엄마랑 열심히 고구마를 캔다. 웃겨 죽겠다. 농사꾼 기질 다분한데 키워봐? 손주들 보는 재미야 재롱 아니겠는가? 오늘도 너 때문에 내가 배꼽잡는다. 2024. 10. 8.
대학에 남으면 안되는 이들 필자가 대학 밥을 먹다 보니 내린 나름의 결론은 대학은 머리 좋은 사람들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그건 다 아는 거고 원래 다 알던 거고 그게 왜 궁금하냐고 하는 사람들은 대개 얼마 안 되서 연구는 제쳐두고 바깥으로 나도는 꼴을 수도 없이 봤다. 하지만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궁금해 하는 사람들, 궁금하면 끝장을 봐야 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어쨌건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자기가 택한 주제를 끝까지 파들어가고, 나이 지긋해지면 그래도 일생 동안 판 주제로 책 몇 권이라도 남기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학은 머리 좋은 사람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 남아야 한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도통 궁금한 게 없다면 대학은 남아서는 안 된다. 2024. 10. 8.
조선시대 은비녀 조선시대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독물중독으로 죽었는지 판정하는 방법 중 현장에서 가장 많이 쓴 방법이 은비녀를 쓴 방식이다. 원래 무원록 등지에는 이 방법 말고도 사망자 입에 밥을 넣어놓았다가 그 밥을 빼내어 닭을 줘서 먹게 한 후 죽는가를 보는 방법도 있었는데 번거롭기도 하고 중독된 닭을 먹고 사람이 죽는 경우가 나와서 이 방법은 영조 대 이후 안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은비녀는 사용법이 간단하다. 입과 항문에 넣어서 색이 변하면 독물 중독으로 판정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현대과학으로 볼 때 모든 종류의 "독물"에 색이 다 변하는가 하는 게 문제겠다. 조선시대에 독약으로 많이 쓰던 비상의 경우 화합물에 함유된 황화수소가 은과 반응을 일으켜 실제로 색이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자살용으로 .. 2024. 10. 8.
불구대천不俱戴天한 혜석惠石 조동윤趙東潤(1871~1923) 미술사가 오주석(1956~2005) 선생의 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오주석 선생이 간송미술관에 근무할 때, 채색된 난초 그림을 보았단다. "무슨 난이 이렇게 기름지단 말인가?" 그러다 옆에 붙은 화제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단다. 그 주인의 친일 행적 때문에. 그 '기름진 난'을 그린 이가 바로 혜석惠石 조동윤趙東潤(1871~1923)이다. 조동윤은 풍양조씨로, 그 유명한 신정왕후 조대비(1809~1890)가 고모할머니뻘이 된다. 그의 부친 혜인惠人 조영하(趙寧夏, 1845~1884)는 조대비의 5촌 조카로, 흥선대원군(1820~1898)과 친해 고종 등극에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10년 만에 대원군과 척을 지고 그 세력을 몰아내는 데 힘을 보탠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출세가도를 달렸다. 하.. 2024. 10. 7.
봉건적 학문의 잔재, 그리고 노벨상 일본 학문의 원형은 분명히 한반도에서,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지만, 20세기 이전 동아시아-. 근대적 의미에서의 학자와 학문의 탄생은 에도시대 일본 외에는 없다. 동 시기 조선의 소위 "학자"들은 지금 한국의 근대적 학문 전통으로 이어져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 "봉건적 학문의 잔재"를 완전히 척결 못하고 온 결과가 바로 아직도 한국 대학을 유령처럼 배회하는 "현실참여에의 강박"이다. 왜 한국의 학자들이 "현실참여에의 강박"을 가지고 끊임없이 정계 진출을 노리다 그 욕망이 충족되면 다시 학교나 학문으로 돌아와 학자 코스프레를 하다가 죽음을 맞는가. 한국의 학자들은 조선 유학자들의 정신적 후예이기 때문이다. 이 잔재가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완전히 척결되었어야 했는데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이 잔.. 2024. 10. 7.
오늘 열 번도 더 들은 말 나이 들어 체중 감량은 여러 모로 불편하다. 그래 요즘 이 상황에서 조금만 속이 더부룩하거나 며칠을 먹어대서 배가 불룩하면 참을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럽기는 하다만 이왕 빠질 거라면 조금씩 빠졌으면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 둘 무렵 이미 체중은 평소 그에 견주어 5~6킬로그램이 감량한 상태였으니 그에다 근자에는 연이은 요절복통과 다리 부상 사태 여파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 해도 그만둘 무렵보다 더 빠졌음을 실감한다. 체중이 60킬로그람대로 내려가고선 저울에 올라가지 않는다. 오늘 어떤 자리 갔다가 열 명도 넘는 사람한테도 같은 말을 들었다. 왜 그리 살이 빠졌냐고. 종래 같으면야 그런 말들에 스스로 기뻐했겠지만 요새 저런 말이 미쁘지는 아니한다. 아테나이 가서 좀 찌우고 와야겠다... 2024. 10. 7.
노벨상 못 받는 이유, 조선시대에서 찾아야 이제는 노벨상 받을 만한 여력이 안 된다 포기해서 그런지 몰라도해마다 있던 수상자 설레발도 없다. 필자도 뭐 연구한다고 한 자락 깔아 놓은 사람으로서 필자가 공부한 분야가 노벨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그건 모르겠지만, 어쩄건 대학 밥을 먹는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연구가 이 모양 이 꼴인데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겠다. 한 가지 이제 필자의 대학교수 생활도 저 멀리 종착점이 보이는 마당에 한 마디 하자면,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대학의 연구 풍토 자체가 문제다. 뭐가 문제냐 하는 건 그동안 필자가 여기 가끔 써 두었기 때문에 그게 뭐냐 하는 건 다시 부연할 필요도 없겠고, 정말 문제는, 우리나라가 지금 학문의 발전, 대학의 발전이 지지부진한 이유는사실은 일제시대를 넘어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설명 가능.. 2024. 10. 7.
壯途 봉투 언제까지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내가 기자 초년병 시절엔 분명 이런 전통이 언론계에 있었다. 그때야 해외출장이 매우 드물 때라 언론사마다 사정이 다르기도 했겠지만 거개 비슷해서 아무리 초년병 기자라도 출장 가기 전엔 모름지기 편집국장한테 직접 보고를 하면서 다녀오겠습니다 하면 국장이 모름지기 잘 다녀오라며 빼다지를 열어 백 달러짜리 지폐가 된 봉투를 내밀었으니 그 겉봉엔 모름지기 저와 같은 장도壯途라는 글귀가 있었다. 이걸 보면 저 무렵까지 편집국장은 언제나 백달러짜리 지폐를 넣어둔 봉투를 항용 비치하고 있었다. 나한테 저런 봉투를 준 편집국장 대선배로는 이문호 오철호 국장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발음 같은 뜻임에도 굳이 道자를 쓰지 않고 상대로 드물게 쓰는 途를 쓰는 이유는 오로지 있어보이기 때문이 아니.. 2024. 10. 7.
파주를 파고든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장기 출타가 코앞이라 되도록이면 운신의 폭을 줄이고자 하지만 가을바람 쐬자는 유혹 떨치지 못하고 친구들과 서울 가까운 곳으로 행차했으니 마침 절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내가 자주 찾는 서울 인근 곳으로야 수종사와 더불어 매양 보광사를 들거니와, 개중 다들 파주 보광사는 본 적 없다기에 올커니 잘됐다 해서 보광사로 길을 몰았다. 근자 같이 움직이는 멤버는 대학 친구 다섯인데, 꼭 한둘은 빵꾸가 나기 마련이라, 어제도 하나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탈락하고 넷이서 내 차로 움직였다. 보광사만 덜렁 둘러볼 수는 없어 이럴 때마다 내가 매양 파주를 찾는 코스를 찾아들었으니 그 대미는 저 오두산전망대였다. 이 오두산전망대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라, 한국 두물머리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할 것이다.. 2024. 10. 7.
writing vs. writing systems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영문 명칭은 보다시피 NATIONAL MUSEUM OF WORLD WRITING SYSTEMS 이다. natiinal과 world가 겹치는 문제가 있었으니 이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국립이냐 아니냐가 세우는 정부 쪽에서도 중요했고 받아들이는 쪽도 나름 민감하게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정작 논란이 좀 심했던 부분이 문자를 어찌 표기할 것이냐였다. 이를 결국은 writing systems라 낙착했는데 나는 systems를 빼자는 의견이었다. 무엇보다 거추장스러워지는 문제도 있었다. 다만 뺄 경우 writing라는 말이 지닌 중의성이 문제였다. 저 말 알다시피 문자라는 뜻도 있으나 글쓰기 전반, 특히 작가 전문박물관으로 비칠 우려가 없지 않았다. 반면 시스템즈가 되면 문자 체계라는 의미가 .. 2024. 10. 7.
구룡산인 김용진의 메시지 구룡산인 김용진(1878-1968)이란 화가가 있었다. 고종대 정승을 지낸 김병국(1825-1905)의 손자로, 시문과 서화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작은 편지 한 장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냈다. '우석'이란 사람인데, 동시대에 활약했던 '우석'으로는 연극인 박진(1905-1974)과 농학자 이창구(1904-1993) 정조가 있다. 그 둘 중 하나일지, 아니면 다른 사람일지는 모를 일이다. 엎드려 여행이 편안하기를 송축합니다. 오늘 오후 5시에 몸소 찾아주셔서 저와 더불어 회포를 푸시니 조금 위로가 되었습니다. 가거나 머무르는 정을 또한 감히 청하지 못합니다. 예를 갖추어 올리지 못합니다. 제 김용진 머리를 조아립니다. 이 정도로 짤막하면 편지라고 해야 할지 메시지라고 해야 할지, 카톡이라고 해야 할.. 2024. 10. 7.
달맞이가 품은 가을 해돋이 가을이면 어김없는 저 풍경이 나는 좋다. 동산으로 뜬 해가 간밤 이슬 잔뜩 머금은 달맞이꽃 뒤로 스며드는 순간 말이다. 저 경이는 언제나 역광으로 마주해야 제맛이 난다. 이슬은 오래가진 않는다. 다만 하나 이슬 머금은 저 순간만큼은 한바탕 가슴 저 밑을 후벼판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상념일 수도 있겠고 한탄일 수도 후회일 수도 있으리라. 다만 이때쯤만큼은 그런대로 버틴 나를 위로하고 싶다. 이만큼 견딘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말이다. Bravo my life! 2024.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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