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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미라](1) 만성 위궤양으로 가신 오대부님 호북성 강릉 봉황산 한묘 남자 미라 湖北江陵凤凰山汉墓男尸는 1975년 중화인민공화국 후베이성 징저우시荆州市 펑황산 168호 凤凰山168号서한西漢 무덤에서 발굴된 서한 초기 남자 시신으로, 그 이름은 "수遂"이며, 한 문제文帝 13년(기원전 167년)에 매장되었다. 1975년 중국인민해방군 2460부대 7중대는 형주성荆州城 북쪽 기남성纪南城 봉황산에 레이더 기지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 기지 면적은 5000제곱미터, 그에는 36기 무덤이 있었다.그해 2월 10일, 강릉현 혁명위원회江陵县革命委员会가 상부에 지시를 요청한다.  국가문물사업관리국国家文物事业管理局은 3월 27일 호북성 혁명위원회湖北省革命委员会 승인을 거쳐 레이더 기지를 건설하기 전에 묘지를 발굴할 것을 요구했다.4월 하순, 호북성박물관, 형주박물.. 2025. 3. 2.
[페루 미라] TMI? 선인장으로 꿰맨 입 미라화는 현재 페루 지역 다양한 문화권에서 이미 7천년 전에 시작해 산 사람이 죽은 이를 기억하고 죽은 자와 연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어떤 때는 미라를 집에 보관하거나 축제에 모셔가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런 미라가 있는 사랑하는 사람 무덤에 음식이나 음료를 바쳤다. 현재의 남미 페루와 칠레 지역에 산 친초로 족Chinchorro people은 이집트인보다 수천 년 전에 세계 최초로 미라를 만든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준비한 미라를 검은 색이나 빨간색으로 칠하고 가발을 추가했다. 마스크를 만드는 일은 미라화 공정의 마지막 단계 중 하나였을 것이다.조각가는 죽은 사람 두개골을 점토로 덮고 코, 눈, 입을 만든 다음 말리도록 두었다.굽지 않은 점토는 깨지기 쉬우므로 마스크가 온전하게 보존되는 .. 2025. 3. 2.
[문화재 기자 17년] (19) 출장을 하루 연장하라, 방법은 알아서 해라(2)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과는 시차가 상당한 지구 반대편에서 개최될 때는 그에 따라 기자들이 치르는 곤욕이 적지 않다. 등재 심사는 예정된 순서를 대체로 따르기는 하지만, 현지 사정에 따라 뒤집어지는 일이 있는가 하면, 개별 건 심사마다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어 논의가 한없이 길어지기도 한다.통신이야 어차피 나오는 대로 쓰면 되니깐 문제가 덜하지만 신문이나 방송은 이런 때가 가장 곤혹스럽다. 등재에 대비해서 면을 비워놓거나, 미리 관련 뉴스를 제작해 놓았다가 여차하면 쏴 버려야 하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루를 꼬박 날리는 일도 더러 있다. 나에겐 현직 기자로는 마지막 공무 출장이요, 일선 기자로는 마지막 현장 취재였던 2015년 여름 독일 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그러.. 2025. 3. 2.
[문화재기자 17년] (19) 한국언론은 거지다 (1) 회사 출장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누워서 침 뱉기는 하지 말자 다짐하건만 이 얘긴 해야겠다. 문화재가 우리 사회 전반에서, 그리고 범위를 더욱 좁혀 언론계에 국한할 때도 덩치 혹은 중요성이 작은 탓도 있겠지만, 나는 저 17년간 문화재 기자 생활에서 회사가 지원하는 해외 취재는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고 기억한다. 예서 지원이란 그에 소요하는 재정 전반을 회사 자체 예산으로 부담한다는 뜻으로 사용하기로 한다.  문화재가 아무리 덜 떨어져도 그렇지 저 기간에 그 분야에서 어찌 세간의 관심을 받는 일이 더러 없으리오? 그럼에도 그런 일에도 도무지 회사는 취재 지원을 하지 않는다. 이런 행태는 연합이건 여타 언론이건 마찬가지로 알거니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예 자체 지원할 엄두도 내지 않는다. 설혹 관련 부서나 담당 기자가 회사에 취재 .. 2025. 3. 2.
[마왕퇴와 그 이웃-21] 팽륭상彭隆祥 (1) 필자가 지금까지 마왕퇴 발굴 과정 중 중국은 문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기 때문에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이야기들, 주로 난장판에 대해서만 적어보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당시 마왕퇴 연구 조사 과정이 엉터리였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이 당시 마왕퇴 연구와 조사 과정에 참여한 고고학자와 의학자들은당시의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지금보아도 대단한 수준의 연구를 남겼다. 고고학 쪽은 스토리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필자는 여기 자세히 적지 않는다. 아마 필요하다면 김단장께서 다루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에 한 인물을 따로 적어두고자 한다. 미라 연구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팽륭상彭隆祥이라는 인물이다. 마왕퇴 미라 조사 과정에서 Peng Long-Xiang이라는 인물이 항.. 2025. 3. 2.
[마왕퇴와 그 이웃-20] 방부처리 중인 미라에 몰려든 수십만 군중 마왕퇴 시신은 발견 후 이를 보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다.앞에서 본 바와 같이 사인방 등 당시 문혁을 주도한 이들은 마왕퇴 발굴과 연구 자체에 회의적이라특히 미라 상태로 발견된 시신에 대해서는 아무 가치도 없으니 태워 버리고 끝내라는 주장을 계속했다.하지만, 이런 의견을 누르고 주은래 등은 미라를 보존하고 연구하기로 결정했는데문제는 보존을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문제겠다.  결국 방부처리는 해부용 시신이나 좀 얻어볼까 하고 찾은 호남의학원 해부학교수들을 잡아 놓고이들에게 협박 반 사정 반으로 제발 도와달라 해서 이루어졌다. 사실 해부학교수들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의학교육용 시신에 대한 방부처리를 하는 방식대로만 처리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2025. 3. 2.
공개석상에서 임금한테 대들고, 궁궐에서 집단 시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물을 볼 때마다 작가나 감독님들이 신경을 조금은 더 써 줬으면 하는 대목이 이것이라 걸핏하면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는 국왕 주최 회의 장소로 저 영화처럼 근정전이나 인정전 같은 데를 설정하는 대목이 그것이라 저 광해 : 왕이 된 남자 라는 영화만 해도 걸핏하면 해당 궁궐 정전正殿이라는 데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거나 토론하는 장면을 연출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수는 없다. 경복궁에서 근정전勤政殿, 창덕궁의 인정전仁政庭, 창덕궁의 명정전明政殿, 덕수궁에서의 중화전中和殿, 경희궁의 숭정전崇政殿 같은 데가 정전이라는 곳이라, 그 궁궐 중심 중의 중심이니 사찰로 치면 이곳이 바로 대웅전이며 대학건물로 치면 본부가 있는 곳이다. 저들 정전 명칭을 보면 대체로 정사[政].. 2025. 3. 2.
페루 미라와 조선시대 미라 앞선 글에 김 단장께서 페루 미라를 다루셨기에 이전에 올린 글을 고쳐 조금 부연한다.페루 미라와 조선시대 미라는 그 조사기법에 공통점이 있다. 페루 미라도 발견 당시 직물에 두껍게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이를 Mummy bundle이라 부르며이 bundle 해체 작업을 여러 분야 학자가 모여 같이 진행한다. 페루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가면 많은 직물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거의 전부 그렇게 얻은 것들이다. 페루 미라 연구 기법은 상당히 수준이 높아 세계적으로 연구 최신 동향을 선도하는 측면이 있다. 필자가 조선시대 미라를 연구하던 당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실린 이 작업에 대한 기사를 보고, 우리 조선시대 미라도 어떻게 조사하면 될지 이에 대한 영감을 얻었었다. 이를 벤치마킹하여 우리도 당시 복식 .. 2025. 3. 2.
가장 연로하신 아기 미라 Detmold child, a mummy found in Peru, about 6,500 years old, owned by Lippisches Landesmuseum in Detmold, in North Rhine-Westphalia, Germany. 데트몰트 아이이 어린아이는 페루에서 발견된 미라 이름이다.이 분 이래뵈도 연세가 대략 6천500살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보존 미라 중 하나다.이 미라를 보유 중인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데트몰트 Lippisches Landesmuseum이 저런 이름을 붙였다.원래 이 미라는 Witzenhausen 시 Völkerkundliches 박물관(민족학박물관) 소유였다.미라에서 곰팡이가 확인된 후 1987년 Lippisches Landesmuse.. 2025. 3. 2.
[마왕퇴와 그 이웃-19] 우리 청동기시대의 비단 옷 마왕퇴 소사단의의 기술사적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중국 뿐 아니라 우리와 일본의 비단 옷 역사에 대해서도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들 알다시피 중국은 전통시대에 양잠과 비단 옷 짜는 기술을 비밀에 붙였다고 한다. 대륙에 통일왕조가 등장한 이후에는 줄곧 그런 경향이 있었던 모양으로 [대당서역기]에는 그 장면이 이리 적혀있다. "호탄 사람들은 뽕과 누에를 원했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호탄왕은 중국에 혼인을 청했고 신부에게 뽕과 누에를 가져와 옷을 스스로 만들어 입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신부는 남몰래 뽕과 누에 종자를 구하여 자신의 왕관에 숨겨 호탄에 가져왔다."비단이 가지고 있는 고급 직물로서의 선입견, 그리고 중국이 주변에 전파를 원하지 않았다는 위와 같은 기록 덕인지 한반도의 경우 양잠과 비단의 .. 2025. 3. 2.
[마왕퇴와 그 이웃-18] 소사단의素紗襌衣 마왕퇴에서 나온 유물 중에 소사단의라는 것이 있다. 이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마왕퇴를 다루는데 있어 필자는 의학과 과학 쪽 이야기를 주로 할 것이며 문화적 부분은 김단장께서 풀어갈 것인데, 이 소사단의를 필자가 다루는 이유는 이 옷이 자연과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마왕퇴 미라가 보관된 호남박물원 (전 호남성박물관) 홈페이지를 보면위 그림과 같이 소사단의가 메인 화면에 등극해 있을 정도의 대단한 유물임을 알 수 있다.  이 유물에 대한 설명을 보면, 한 점은 길이가 128센티, 소매 길이가 190센티인데 무게가 겨우 48이고 다른 한점은 49그램이었다. 옷 두 벌의 무게가 합쳐서 100그램이 안되었고 소매와 목둘레 동정을 떼버리면 겨우 25그램이었다. 라고 하여, 전한대에 이미 중.. 2025. 3. 2.
[마왕퇴와 그 이웃-17]: 회곽 구실을 한 백고니, 청고니 조선시대 미라는 다들 알다시피 일부러 만든 인공적 미라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은 시신이 모두 잘 썩기를 바랬지만, 또 한 가지 벌레와 식물 뿌리, 도굴꾼으로부터 시신이 완전히 썩을 때까지 지켜지기를 원헀다. 그래서 나온 것이 주자가례의 회곽이다. 이 회곽을 쓴 묘를 회곽묘라 부른다. 주자가례를 보고 만들었으므로 당연히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고, 주자가 그 만드는 법을 자세히 이야기했는데, 유심히 주자가례의 주소를 보면 주자 생전에 이미 강남 땅에는 회곽묘가 만들어지고 있던 것을주자가 이 무덤이 사대부들의 무덤으로 쓸 만하다 하여 현창한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북송대 무덤 중에는 회곽묘가 발견된 바 있어 주자가 이 무덤을 처음 창안한 것은 아니며 강남 지역에 꽤 오래전부터 전해 오던 무덤임.. 2025. 3. 2.
[楚문화 탐구] (2) 대사마 도활의 영원한 집 오소리 무덤 https://www.youtube.com/watch?v=UcVRWoxPsDg 약칭 엄창묘严仓墓라고 하며, 좀 더 길게는, 또 무덤이 한둘이 아닌 떼거리라 엄창 전국 고묘군严仓战国古墓群이라고도 하며, 엄창고묘严仓古墓 혹은 엄창고묘군严仓古墓群 따위로 다양하게 쓴다. 전국 시대 초나라 대형 공동묘지인 저곳에 자리잡은 무덤 중에서도 엄창 환자총严仓獾子冢이라는 데가 발굴조사를 거쳐 꽤 이름 있는 무덤으로 등극했거니와, 위선 저 獾子冢이라는 지명이 생소하기 짝이 없으니 저 환獾이라는 글자가 오소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럼 오소리 새끼 무덤?이 무덤은 대형 초묘楚墓, 곧 초나라 시대 무덤이라, 이 무덤은 엄창1호묘严仓 1 号墓라고도 한다. 이런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은 춘추시대인가 전국시대인가를 중대 분기점으로 삼거.. 2025. 3. 1.
형편없는 봉황대고분 한 무제 유철 무릉茂陵 高 46.5米,底边长:东边 243米,西边 238米,南边 239米,北边 234米。곽거병묘 底部 南北长 101.5米,南宽 56.70米,北宽 58.40米,高 18.38米,占地面积 5841.33平方米,봉황대고분 높이 22m, 지름 82m. 간단히 요약하면 명세표가 저렇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가 소개하는 경주봉황대고분[慶州鳳凰臺古墳] 기술은 아래와 같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에 있는 고분.내용 ‘경주노동리고분군’에 속하며, 경주평지에 산재하는 단독 원분(圓墳) 중 제일 거대한 무덤으로 분구의 높이는 22m, 지름은 82m이다. 보다 큰 고분으로 황남대총(皇南大塚, 98호분)이 있으나 이것의 경우 표형분(瓢形墳)으로 2개의 무덤이 합쳐진 것이다. 아직 발굴이 되지 않아 내부구조 및.. 2025. 3. 1.
[마왕퇴와 그 이웃-16] 마왕퇴를 증오한 강청 사인방은 마왕퇴와 상극에 있다. 처음 마왕퇴에서 어마어마한 전한 시대 무덤이 발견되었단 보고가 올라간 당시, 이 보고를 받고 그까짓 건 아무것도 아니니 그냥 태워버리라고 일갈한 것은강청을 위시한 사인방이었다. 전한 시대 무덤이라고 해도 결국 반동적 지주계급 유산일 뿐이니문화혁명의 와중에 있는 중국으로선 그딴 것 보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긴 공자묘도 작살내는 판에 마왕퇴를 왜 보존하겠는가. 이렇게 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뒤집어 버린 건 당시 총리 주은래였다. 주은래와 곽말약은 마왕퇴 발굴이 진행되는 동안 이 발굴이 공격받지 않도록 계속 보호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들 역시 사인방에 의해 호시탐탐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마왕퇴를 보호하는 일은 아무리 주은래와 곽말약이라고 해도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 2025. 3. 1.
[마왕퇴와 그 이웃-15] 조사단이 두려워한 홍위병 앞에서 홍위병과 마왕퇴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마왕퇴 발굴이 있던 1971-1974년 연간에는아직 홍위병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고, 여전히 중국 정계를 휘두르던 사인방은 심지어는 주은래와 곽말약까지도 수정주의자 내지는 주자파 딱지를 붙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발굴단은 주은래 재가를 받아 마왕퇴 발굴을 시작했지만 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 역시 홍위병이었다. 이 때문에 발굴 당시 채증한 카메라 필름은 모두 셋으로 나누어하나는 중국과학원, 다른 하나는 호남성박물관, 또 하나는 호남성 도편사 세 군데에 따로 보관하게 했다. 말하자면 우리 조선왕조실록처럼 여러 군데 나누어 보관하여 한 군데가 홍위병 습격으로 기록이 사라져도 다른 두 군데만 온전하면 복구가 가능하게 하였던 것이다. 마왕퇴 발굴단이 가장 .. 2025. 3. 1.
주댕이가 앙증맞은 초국 돼지 칠기 같은 칠기라 해도 남방 초나라 칠기는 동시대 다른 지역 칠기, 혹은 그 전후 다른 지역 칠기랑 구별되는 묘한 특징이 있다. 이를 감感이라 하고, 겐또라 한다. 저리 보이는 건 덮어놓고 초국楚國 칠기라 하면 10개 중 아홉 개는 맞다. 고고학? 미술사? 뭐 거창할 거 없다.많이 보는 놈이 장땡이다.저 분은 전국시대 초국 문화권 칠기임이 분명한데칠목채회저형주구합漆木彩绘猪形酒具盒이라 해서 아주 요상한 이름으로 일컫는 칠기다. 형주박물관荆州博物馆 소장품이라 상태가 아주 좋다. 칠을 했으니 漆이라 하고 나무에 채색을 했으니 목채회木彩绘라 하며,전체 모양은 돼지, 것도 집돼지라 저형猪形이라 했으며술을 마시기 위한 그릇 일종이라 해서인지 주구합酒具盒이라 한다. 한데 돼지 저금통 같다. 저것이 2천 년 이상 흘러서 그.. 2025. 3. 1.
주검과 함께 한 띨띨이 반려견 중국 양양시박물관襄阳市博物馆이 소장한 동한东汉시대 유도구釉陶狗라 해서 유약 바른 도기로 만든 띨띨한 멍멍이 반려견이시다. 양양襄阳 왕가항 유지 무덤 王家巷遗址墓에서 발굴됐다.개는 몸집이 큰 종류인가 싶은데 출토 당시에는 유약 색이 더 좋았다고 한다.보통 저런 무덤에서 나온 개가 회흑색 계열인 데 견주어 이건 볼 만하고 무엇보다 애들한테 인기가 좋으니박물관에서는 동물관 역할도 할 겸 해서 독립전시장에 내어 놓았다고 한다. 한데 저 멍멍이님 띨띨함의 첨단이시다. 왜 저리 머리가 비게 보일까? 남방 초가 금새 물려서 동한으로 내려온다. 2025. 3. 1.
중산국에서 초나라로 마실 간 옥인? 삼인답수옥식三人踏兽玉饰 혹은 삼인답저형옥패三人踏猪形玉佩 등으로 일컫는데 물론 저걸 만들어 쓴 시대에 어찌 불렀는지는 증언이 없어 편의상 저 양태를 보고선 중국 고고학도들이 지 맘대로 만들어낸 말이다. 세 사람이 짐승, 개중에서도 돼지로 생각되는 그런 짐승을 밟고 선 옥으로 만든 장식이라 해서 저리 부른다. 두 사람이 돼지로 생각되는 동물 등때기에 올라타고 섰으니 그 위에 다시 한 사람이 그 두 사람 대가리 정수리에를 밟고 선 모습을 형상화했다. 아래 두 사람은 위에 선 사람을 공구기 위해 어깨를 살짝 서로 댄 모습이고, 위에 선 사람은 가랭이를 아주 쭉 벌렸다. 세 사람 모두 얼굴은 편편넓적 솥뚜껑 모양이라 아주 둥글고 볼태기는 피둥피둥 살이 든 양태고, 문제는 그 아래 깔린 돼지. 저게 돼지인지 뭔지 .. 2025. 3. 1.
환빠보다 백배는 더 위험한 낙빠 한국역사학 독초 중 하나는 환빠 혹은 그네가 대표하는 유사역사학이니 사비이역사학이 아니다. 그 환빠보다 연원도 오래고 뿌리도 아주 깊어이제는 더는 제초제도 안 먹고황산 염산을 바케스로 갖다 부어도 죽일 수가 없는 거대한 만성 말기 암덩어리가 있는데낙빠다. 무엇을 낙빠라 하는가?낙랑빠들이다.이 놈들은 낙랑 아니면 이야기할 것도 없고 낙랑 아니면 할 수 있는 얘기도 암것도 없어 죽어나사나 낙랑에서 출발해 낙랑으로 수렴하며 그리하여 한국고대국가 성립도 낙랑 덕분이라 하며 물론 그 덕분은 그에 대한 도전에 대한 응전으로서의 성립이라 하나 피장파장 똥끼나밑끼나라 낙랑이 없으면 한반도는 고대국가 성립도 불가능하다 하며 뭔가 조금은 이질적인 것만 나왔다 하면 덮어놓고 낙랑 영향 운운이라 이 놈들이야말로 내셔널리즘에 .. 2025. 3. 1.
[초楚문화 탐구] (1) 호좌조가고 토해낸 구련돈九连墩 중국 남방 초문화를 대표하는 기물 호좌조가고虎座凤架鼓 이야기를 하는 김에 그에서 구련돈 2호 초묘九连墩2号楚墓 라는 말이 잠깐 나왔으므로 내친 김에 이 무덤을 포함해 이른바 구련돈 무덤을 저 악기를 중심으로 잠깐 살펴보자. 저 악기는 2호묘 이른바 매장주체 시설 중에서도 북쪽에 있는 방 북실北室에서 수습된 것으로, 이는 현재까지 초나라 무덤에서 발굴된 가장 큰 현고를 지탱하는 호좌봉가라, 높이 약 1미터에 이른다.받침은 등을 돌린 호랑이 두 마리고, 호랑이 등에는 명봉鸣凤이 한 마리씩 서 있다.봉황은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고, 자세가 당당하며 날아갈 듯하다.반면에 복호伏虎는 왜소하고 움츠러들며, 공손히 길든 모습이다. 뭔가 좀 쪼다 같다. 이를 두고 초나라 사람들이 봉황을 존중하고 호랑이를 억제한다는 의.. 202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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