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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숙권](4) 추가 학살을 막은 이는 중국어 군관! 그에 투영한 자신 공무원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어숙권은 분명 명종 즉위년인 1545년 발생한 황당선荒唐船 전라도 고흥 표류 사건과 그에 따른 왜적 오인으로 인한 대규모 학살사건이 일어났음을 이야기하면 이 사태가 더 확대되지 않도록, 다시 말해 추가 학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사람이 버벅이 중국어를 하는 당시 전라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김세한金世澣이었음을 대서특필했다.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이 사건이 미친 여파가 상당히 커서 그 발생과 처리 과정이 명종실록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보인다.하지만 어디에도 이 사태 해결에 김세한이 관여했다는 언급 자체가 없다.어숙권이 말한 그 김세한이 저 어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무관으로 실록 곳곳에 등장하기는 하나 이 사건 그 어디에서도 언급이 없다.함에도 어.. 2025. 2. 20.
이른바 '조선귀족' 천태만상 1924년 6월, 제48호엔 관상자觀相者라는 인물이 쓴 "경성京城의 인물백태人物百態"란 기사가 실렸다. 말 그대로 경성, 곧 서울을 주름잡던 거물들의 모습을 풍자하듯 그린 글인데 그 말미에 이른바 '조선귀족'들도 언급된다. 그 대단한 나으리들의 모습을 볼작시면... 閔泳綺男의 大學目藥은 광고가 잘 되얏스니 더 말할 것 업고- 민영기(1858-1927)는 을사늑약을 반대한 덕에 '을사오적' 칭호는 듣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뒤엔 제법 친일행적이 있었고 남작 작위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웬 '대학목약'? 눈 목자가 들어갔으니 안약인 셈인데, 일제 때 꽤 유명한 상표였단다. 근데 그 신문 광고를 보니 둥근 얼굴에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또 다른 특징도 있으나 언급하지 않겠다) 인물이 등장한다(참고자료: .. 2025. 2. 20.
이것은 도마뱀일까 도롱뇽일까,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었을까 3.1운동으로 한국인에게 채워진 족쇄가 약간은 헐거워졌던(그러나 풀릴 기미는 없던) 1920년대,한국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끈 잡지라 하면 아마 대부분 을 꼽을 것이다.천도교에서 만들었으되 종교색이라고는 별로 없이 온갖 시사를 다루었던 이 잡지는 그 자체만으로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는 이들의 노다지 광산이 아닐 수 없다.그 29호(1922년 11월)에 "천지현황天地玄黃"이란 제목의 꼭지가 실렸다. 여러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식으로 실린 기사인데 그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자에 토를 달아 읽는 식이므로 최대한 풀어본다.- 진고개[泥峴] 조선관내朝鮮舘內 수족관水族舘에는 근자에 함경남도 낭림산 깊은 소沼에서 나온 이른바 용龍이라는 기이한 동물을 구입하야 일반에게 관람케 하는데, 그 동물의 머리는 전부 뱀과 같고 .. 2025. 2. 20.
[어숙권](3) 중국 표류민 학살사건, 그 무대는 전남 고흥 가정 을사년, 곧 1545년, 명종 즉위년에 일어난 중국 복건福建 사람들이 탄 배가 정박한 일과 그에 따른 대규모 학살사건이 일어난 무대를 패관잡기는 호남 흥양興陽을 지목했거니와, 그렇다면 흥양은 어디를 말하는가?지금 이 지명이 남아있지 않거나, 남아있다 해도 현지에서나 알아들을 법한 곳이니 이를 찾아서 우선 확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흥양은 어디인가?신증동국여지승람 제40권 전라도全羅道에 흥양현興陽縣을 별도 항목으로 독립했으니, 이에 이르기를 서쪽으로는 보성군 경계까지 78리에 이르고 남쪽으로 발포鉢浦까지가 40리, 북쪽으로 낙안군樂安郡 경계까지 82리에 이른다 하고본래는 장흥부長興府에 소속된 고이부곡高伊部曲이라 하면서, 그에 注하기를 고이는 방언으로 고양이라 했으니, 고양이 마을이 곧 흥양이라, 고려 .. 2025. 2. 20.
한국 고고학 백년을 쏟아부은 '팔수록 더 깊어지는 발굴 이야기' 어떤 일을 부탁했을 적에 단 한 번도 그 부탁을 거절하는 일을 나는 못봤다. 나 같은 기자가 한둘이 아니었을 터인데, 내가 듣기로 모든 기자한테 이랬으니, 참으로 부단히 기자들이 써먹는 대표 고고학도가 바로 저자다. 흔히 이런 이를 일러 언론친화형 연구자라 하는데, 그 말에는 비난 조 색채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기자가 좋아하는 말만 한다는 그런 비아냥 말이다. 기자들을 일러 이런저런 말들이 있는 것처럼 왜 연구자를 향해 그런 이런저런 말이 없겠는가? 기자들이 좋아하는 말만 하는 연구자, 기자들이 모를 것 같아도 옥석 구분 다 한다. 기자들이 가장 자주 찾으면서도 어느 기자도 기자들이 좋아하는 말만 한다 해서 결코 비아냥을 할 수 없는 천상 연구자 중 한 명이 바로 '팔수록 더 깊어지는 발굴 이야기'(책과.. 2025. 2. 20.
석고에서 DNA로, 폼페이가 이룩하는 고고학 혁명 여러 번 소개했지만, 폼페이 유적 매몰 인체 복원은 1863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가 개발한 석고 응고 기술을 출발로 삼는다. 뜨거운 화산재에 묻힌 인체는 동물도 마찬가진데 이내 녹아내린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 있어 그 녹아내린 구멍은 화산재가 메꾸지 않고 구멍으로 남긴다. 이걸 발견하기까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구멍이 송송 뚫린 지점을 의아하게 여긴 저 고고학도가 이건 사람 흔적이다 해서 그것을 발견하고선, 다음으로 그렇다면 그 사람을 죽음 직전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발상이 저것이다. 그래 석고를 붓자!석고가 넘쳐날 때까지 쌔려 붓자. 액체화한 석고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수분을 증발하고 굳어버린다.. 2025. 2. 20.
[어숙권 스핀오프] 시간, 순환에서 한 줄로 앞서 인용한 어숙권 패관잡기 한 일화에는 가정 을사년에 복건福建에서 표류漂流한 사람들이 호남 흥양興陽에 정박했는데, 현감縣監 소련蘇連과 녹도 첨사鹿島僉使 장명우張明遇 등이 왜적倭賊이라고 여겨서 전후 300여 명을 베어 죽였다.  는 논급이 보인다. 이런 대목을 만날 때마다 독자들은 돌아버리는데, 저 일이 발생한 시점을 어숙권은 "가정 을사년"이라 하지만 이것이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 대뜸 들어오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저 가정 을사년을 저를 번역한 사람들이 친절하게 언제라고 구체로 서기로 환산해 주는가?안 한다. 물론 요새는 저걸 해주는 역주자도 많지만, 조금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불친절하기 짝이 없어 그냥 저리 퉁치고 넘어간다. 그렇다면 저 시점이 구체로 언제인가? 결국 목마른 놈이 우물 파기 .. 2025. 2. 20.
[어숙권](2) 어버버한 중국말이 200명 목숨을 살리다 이런 어숙권이 패관잡기稗官雜記라 해서 필기류 만담집을 하나 쓰는데, 제목을 풀어보면 패관이 정리한 잡다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패稗는 곡물이라 하지만 곡식 사료에나 쓰는 암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 피죽도 못 먹은 얼굴이라 할 때 그 피이며, 흔히 나락 혹은 벼를 겨냥해 잡물을 의미한다. 패관을 일러 흔히 말하기를 임금이 민간의 풍속이나 정사政事를 알기 위하여 세상의 풍설과 소문을 모아 기록시키던 벼슬아치 라고 하나, 흔히 벼슬아치가 자신을 겸칭할 때도 쓴다. 저 패를 응용한 대표 만담집이 고려 말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찬술한 역옹패설櫟翁稗說이라, 패설이란 말 자체가 그리 신뢰성을 주지 못할 이런저런 잡스런 이야기지만 그런 대로 읽으면 재미 있는 이야기라는 뜻도 함유한다. 어숙권이 비록 공무원 생활을 했다.. 2025. 2. 20.
투탕카멘 이후 이집트에서 최초의 파라오 무덤 발견 1924년 투탕카멘 왕묘 이래 처음으로 이집트 고고학이 고대 이집트 최고 통치자 파라오 무덤을 발견했다고 목하 외신들이 20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를 종합하면 이집트-영국 공동 고고학 조사단이 기원전 2000년에서 1001년 사이에 통치한 고대 이집트 왕 투트모세Thutmose 2세 무덤을 확인했다고 이집트 관광 및 고대유물부Ministry of Tourism and Antiquities(이집트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식 발표했다. 처음에는 "무덤 C4[Tomb C4]"로 식별된 이 유적은 이집트 룩소르 지역 왕들의 계곡Valley of Kings에서 서쪽으로 약 2.4km(1.5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조사팀은 2022년 무덤의 입구와 주요 입구corridor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것이 왕의 아내.. 2025. 2. 20.
공지가 돌파되는 경우: 병자호란의 예 앞에서 한국과 중국 양국간 공지空地 이야기를 했다. 이 공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예를 병자호란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알려진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병자호란 때 서울 인근까지 침투한 홍타이지가 서둘러 철수한 배경에는 당시 주둔지 주변에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었다는 점-. 물론 이것이 청나라 군대가 서둘러 철퇴한 배경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서로 분리되었던 두 지역 사람들이 어느날 대면하는 것은 전염병의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신대륙 발견 당시 유럽인에 의해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전염병에 의해 쓰러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음은 같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을 따라 남하한 우역-. 이 우역은 처음에는 청나라 영토인 심양에서 발생하였는데 호란 당시 .. 2025. 2. 20.
거란문자로 적고 한자로 번역한 여진 비석 #대금황제도통경략낭군행기 大金皇弟都統經略郞君行記 탁본이 낭군행기는 금나라 황제의 동생인 낭군郞君의 여행 기록을 담은 비석으로, 원래 당나라 측천무후의 비석이었으나 금나라 시기에 거란 문자와 한자가 함께 새겨졌습니다.거란문자는 920년부터 1191년까지 거란어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된 문자로, 한자의 형태를 빌려 만든 한자 계통 문자입니다. 이 비석은 거란 소자와 한문 번역문이 함께 기록되어 있어 거란 문장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을 포함해 거란어 해석에 도움을 줍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몽골어를 통해 거란어를 해독하고 있으며,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 이상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소개다. 2025. 2. 19.
[베로나에서 생긴 일] (1) 두오모도 제낀 The world's oldest library 줄리엣 하우스를 뒤로하고는 뚜벅뚜벅 걸어 베로나 구심 중앙을 관통해 북상했다.아디제 강이 감돌아 흐르면서 자연 해자 구실을 하는 그 도심 꼭지점 부분, 그러니깐 하늘로 치면 북극성 자리에 정좌한 이가 Complesso del Duomo di Verona콤플레소 델 두오오 디 베로나, https://maps.app.goo.gl/zijyEWRh3szqWu3Z9 Complesso del Duomo di Verona · Verona, Province of Veronawww.google.com곧 이곳 베로나 모든 성당 교화 중에서도 왕초 노릇하는 데라 이곳을 잡았으니아디제 강과 인접한 데다 그에서 강을 건너 북쪽으로 도시가 확장하는 구심점이 되는 피에트라 다리Ponte Pietra폰테 피에트라https://map.. 2025. 2. 19.
생몰년도 모르는 너무나 우뚝한 셀렙 어숙권 조선 중기를 살다간 셀렙이지만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유명인사가 있다. 각종 증언이 풍부하게 남았고, 더구나 엄청시리 유명한 저술도 남겼으며, 이리저리 인구에 회자한 명성에 비추어 보아 도저히 이럴 수가 없다. 어숙권魚叔權. 위선 성씨가 참말로 묘해서 희성이다. 거기다 서얼이라 하니, 더했겠다 싶기는 하다. 이런 서얼이 기성에 침투해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가 외국어였으니, 하긴 뭐 구한말 이래 대한민국 시대 초중기에 이르기까지 영어 하나 잘하면 그걸로 날고 기었으니, 그 영어가 중국어인 시절, 어숙권은 이걸로 그런 대로 그에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며 그런대로 떵떵거리며 살다갔다. 그의 족적을 각종 인명사전에서 추려보면 1525년, 중종 20년에 그 유명한 권신 남곤南袞이 빽을 써서 설치한 이.. 2025. 2. 19.
간도 이주민처럼 숨어 든 위만 위만이 연나라에서 도망쳐 그 무리와 함께 처음 숨어든 땅은한나라가 지키는 요새 바깥은 공지空地였다. 그리고 이 공지는 고조선 땅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조선과 한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공지였다는 말이다. 고조선으로서는 공지에 사는 위만을 서쪽 변경을 지키는 박사로 임명했다니고조선이 볼 때 그 땅은 공지가 아니라 자기들 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땅은 비워둔 땅이었다. 관념상 누구의 땅이건 간에 일단 비운다는 말이다. 청나라 때 유조변柳條邊 바깥 땅도 관념상으로는 청나라 땅이었지만 자기네들 땅을 비워 공지로 만든 것이다. DMZ가 오늘날 한국과 북한 사이에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다. 위만이 건너와 살았다는 한나라 요새 바깥의 공지는 아마도 청나라 때 유조변 바깥에서 압록강 북쪽에 설정된 공.. 2025. 2. 19.
심심하면 관짝에서 불려나온 양사언 1546년(명종 1) 문과에 급제하여 대동승大同丞을 거쳐 삼등三登(평안남도 강동 지역)·함흥咸興·평창平昌·강릉江陵·회양淮陽·안변安邊·철원鐵原 등 여덟 고을 수령을 지냈다. 자연을 즐겨 회양의 군수로 있을 때는 금강산에 자주 가서 경치를 감상했다. 만폭동萬瀑洞 바위에 ‘蓬萊楓岳元化洞天(봉래풍악원화동천)’이라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안변 군수로 있을 때는 백성을 잘 보살펴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品階를 받았고, 북쪽의 병란兵亂을 미리 예측하고 말과 식량을 많이 비축해 위급함에 대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릉智陵(이성계 증조부의 묘)에 화재가 일어나자 책임을 지고 해서海西(황해도의 다른 이름)로 귀양을 갔다. 2년 뒤 유배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세상을 떠났다. 이상은 한민족대백과사전 양사언 관련 .. 2025. 2. 19.
국경의 변화와 전염병 근대국가는 국경에서의 체계적 검역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 침탈도 국경선에서의 검역관리라는 모습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일본도 구한말 조선에 대해 검역관리를 이유로 국권침탈을 시작했고 조선이나 중국이나 모두 개항 이후 가장 서두른 것이 바로 검역이었다. 언젠가 김 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근대국가의 전환은 곧 국경선 모습의 변화이기도 하다. 전근대시대 국가간 경계가 꼭 이렇다는 보장은 할 수 없겠지만 이 당시 국가간 경계는 공지를 두어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다. 지금처럼 국경선이 국가간 영토가 맞닿는 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사이에는 공지를 둔다는 것이다.이런 국가간 국경선에 두는 공지의 기원은 한국사에서는 멀리 고조선시대에도 볼 수 있.. 2025. 2. 19.
축복이 된 비극, 폼페이 유적 이는 고고학자도들이 서기 79년 베수비오 산 폭발로 파괴된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를 발굴하는 한 장면이다.재앙적인 폭발로 폼페이는 화산재와 부석으로 뒤덮여 도시와 그 비극적인 마지막 순간을 보존했다.오늘날 폼페이는 고대 로마 도시의 일상을 엿보게 하는 독특한 창을 제공한다.비극이 선사한 특혜다. 저 장면에서 유의할 점은 흰색을 띠는 시신들이다.시신이 저리 보존되었을 리는 없다. 저건 인공으로 발굴하는 과정에서 고고학도들이 만든 캐스트cast다. 1863년 이탈리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가 개발한 기술을 사용해 만든 석고 모형이다.발굴자들은 굳어진 화산재에서 저와 같은 사람이나 동물 시신, 혹은 다른 유기물질이 녹으면서 생긴 구멍을 발견하고는 그 구멍에다가 액체 상태인 석고.. 2025. 2. 18.
주자소에 삥땅쳤다는 동활자, 인사동 그거야?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 필원잡기筆苑雜記 제1권에는 조선 초기 활자 양상을 참말로 일목요연히 정리한 구절이 있으니 다음이 그것이다. 태종이 일찍이 주자鑄字를 만들었는데, 모양이 썩 좋지는 못하였다. 경자년에 세종이 이천李蕆에게 명하여 중국의 좋은 글자 모양으로 고쳤는데, 이전 것에 비해서 더욱 정교하였으며 이를 경자자庚子字라 한다. 갑인년에 세종이 명하여 좋은 음양자陰陽字 모양으로 다시 주조하였는데, 극히 정교하였으며 이를 갑인자甲寅字라 한다. 경자자는 작고 갑인자는 컸는데 인쇄한 서책이 매우 아름답다.세종 말년에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이 쓴 글자 모양과 강희안姜希顔이 쓴 글자 모양으로 다시 주조하였는데, 인쇄한 서책이 점차 예전만 못하여졌다. 지금에 동자銅字는 다 공장工匠들이 훔.. 2025. 2. 18.
만들다가 버린 비석, 뭘까? 차순철 선생 소개라부여 쌍북리 590번지 일원 유적 2호 초석 건물지에서 출토되었다 하며 보고자는 사택지적비와 비슷한 모습으로 추정한다는데 출처는 호남문화재연구원, 2025, 부여 쌍북리 590번지 일원 유적I 이라 한다. 보니 전형하는 중국식 규형圭形 석비라 문자를 새길 요량으로 줄만 치고 칸은 만들지 않았다. 칸을 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 단계에서 비석 제작을 중단한 느낌이다. 규모를 보면 몇 글자가 새길 공간이 아니다. 사택지적비랑 비교할 수도 있겠으나, 아닌 듯한 느낌이다. 전반으로 보아 비면만 다듬었고 나머지는 대략 쳐 냈다. 기왕 쓸 거 같음 몇 글자라도 쓰고 버리지 쯧쯧 썼다가 지웠을까? 저것을 깔고 누운 초석 건물지 연대가 저 비석이 생성된 시기 하한선일 텐데 이건 어찌 되는지 모르겠다. 2025. 2. 18.
구석기를 식탁에 올려놓은 '우리가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 고고학이 진가를 발휘하는 분야는 그네들 시대 구분에 의하면 역사시대보다는 선사시대다. 인류가 등장하면서 그 시원을 열어제낀 구석기를 필두로 신석기, 그리고 그 절반은 문자기록이 없는 청동기시대 중반까지가 인류문화사를 구명하는 데 고고학이 독패를 구가한다 하겠다.저 중에서도 그 기간만 따지면 절대량이 구석기시대다. 내가 세계문화사를 배울 때만 해도 지구에 인류가 출현한 때를 2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 했지만, 지금은 아마 700만년 전까지 올라가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 신석기는 그 시작점과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고 논란이 되기는 하지만, 또 곳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하지만, 대략 1만년 전에는 들어갔다고 본다. 근동 같은 경우가 좀 빠르다 해도 1만2천년 전을 넘기는 힘들다. 이리 보면 인류역사는.. 2025. 2. 18.
행장을 믿니? 지나가는 소를 믿으리라 [진실]역사학 논문에서 한 인물을 논할 때 그 행장에 따라 나열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그래선 안 된다.행장에서 절대 믿어선 안 되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가난해서 일단사일표음 했다. 행장까지 쓰일 인물이면 요새로 치면 최소한 중상류층 이상이다.둘째, 벼슬에 뜻이 없었다. 그런 인물 문집에 실린 부나 표는 과거 시험 답안지다. 90% 이상은 노력했으나 떨어진 것이다.셋째, 그 선대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벼슬을 버렸고, 사화 때는 화를 입거나 은거했으며, 혼란한 시기에는 과거에 합격했으나 파방되었다. 이 조건 모두 갖춘 가문은 단언컨대 한 집도 없다. *** related article ***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3대 새빨간 거짓말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3대 새빨간 거짓말1.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도 없.. 2025.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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