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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 우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소리가 하도 많이 들려서역사를 대단히 많이 알고 있는 나라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한국처럼 역사의 기본 팩트도 제대로 조사 안 된 상태에서 자신의 욕망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내 놓는 나라도 없다. 당장 20세기 이전에 소, 돼지, 말, 개, 닭이 어떤 품종이 길러지고 있었는지, 쌀, 기장, 조, 수수 콩, 보리는 도대체 어떻게 재배되고 있었는지 하나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것과는 별개로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단다. 소, 돼지, 말, 개, 닭, 쌀, 기장, 조, 수수, 콩, 보리는 모르는데 다른 역사는 제대로 알까. 필자가 보기엔 우리모두가 입에 달고 사는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할 때그 역사는 욕망의 다른 말이다. 팩트가 아니라. 그 잊.. 2024. 10. 5.
강서엔 곱돌, 전곡엔 짱돌 진짜 돌잔치>> 전곡하면 뭐니 뭐니 해도 돌이죠. 2024.10.19. 토요일 가 열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주에 공지하겠습니다. (진짜 돌잔치...기대해주세요) #10월축제 #연천가볼만한곳 #서울근교나들이 #아이와가볼만한곳 *** 강서 허준박물관 곱돌 전시를 돌stone 잔치라 했더니 전곡에서도 돌잔치라고 그 털보 관장이 개뻥을 친다. 공립박물관들이 돈이 없나 보다. 돌잔치 벌이는 걸 보니. 2024. 10. 4.
어떤 박물관 도서실에 대한 생각 필자가 다닌 대학은 80년대에 이미 커리큘럼이 빡빡해서 도대체 휴강도 공강도 없고 시간표가 기계처럼 물려 여름방학 한달 겨울방학 두달을 빼고는 일년 내내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 시간 없이 돌아갔다. 아무리 빡빡한 스케줄이라도 사람은 살아야겠는지라 필자도 틈틈이 강의 땡땡이를 쳤는데 그때 주로 도망가 한숨 돌린 곳이 지금도 대학로에 있는 학림이라는 카페, 그리고 또 하나는 의대 도서관이었다. 2층에 올라가면 그때까지만 해도 전자도서관이란 게 없던 시대인지라 도서관 장서가 전 건물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정말 여기 가면 별의별 책들이 다 있었다. 필자의 기억으로 대한제국시대까지 올라가는 의대 학술저널이 있는가 하면 의학사와 인문학 관련 책까지 있어 장서실에 들어가면 정말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학술지도 해방 .. 2024. 10. 4.
사로가 곧 신라지 어찌 모태란 말인가 고고학이나 역사학에서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기원전 1세기 이래 3세기 중후반 이전 신라 흔적이 나왔다고만 하면 사로국 운운하며 그것이 신라의 모태라 하는 작태라 나 역시 한때는 아무 문제의식 없이 그런 말을 쓴 적 있는 듯하며 언론에서도 그리 흔히 쓰기도 한다. 심지어 고고학에선 어디서 그런 쓰레기를 주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원삼국이란 개떡 같은 말을 버젓이 쓴다. 쓰면서도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외려 자랑스러워한다. 저 말 개소리다. 고려왕조를 일러 태조 이래 현종까지를 고려 왕조 모태라 하며 조선왕조를 일러 원심 분리하고는 태조 이래 성종까지를 조선왕조 모태라 하던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잔치다. 왜 사로가 신라의 모태란 말인가? 신라일 뿐이다. 물론 그것이 국호 변동에 따른 단순 구분이라 한다면야.. 2024. 10. 4.
비단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유통한 마한 후한서나 삼국지가 그리는 3세기 중후반 이전 삼한 사회를 다름 아닌 역사학도나 고고학도들이 바로보는 관점을 어찌 일률로 논하겠느냐마는 나는 원시미개주의 그 짙은 그림자를 본다. 간단히 말해 제대로 된 국가 체계, 이른바 중앙집권적 통제 질서가 확립되지 아니했다는 관점이 널리 분포하는데 이는 이 시점, 그러니깐 3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삼아 이후 신라와 백제를 제대로 된 국가 혹은 왕조로 보려 한다는 점에서 내 판단은 유효하다가 본다. 더 간단히 말해 3세기 중후반 이전 신라 백제는 국가다운 국가, 왕조다운 왕조도 아니요 동네 꼬꼬마 대장 같은 그런 존재로 본다는 뜻이다. 이 삼한 사회가 그리 간단한가? 역사학이나 고고학은 허심하게 넘기는 대목으로 양잠이 있다. 마한 사람들은 농사와 양잠을 할 줄을 알며,.. 2024. 10. 4.
용미리 부처님 독대를 신청하며 각중에 기돗발이 필요해서 기돗발 센 곳으로 주말은 행차하려 한다. 2011년 혹은 2012년 무렵 찾았을 때라고 기억한다. 물론 이 파주 용미리 석불은 수시로 다니곤 했다. 첫째 내가 필요해서 둘째 수도권 가차운 곳에서 보여줄 만한 곳이라 해서 그렇게 해서 다니곤 했다. 그러고 보니 저 부처님 용안 뵌 지 오래라 느닷없이 뵙고 싶다. 이 부처님 보다시피 사람다운 냄새 물씬해서 더욱 좋다. 부처님이라 해서 저쪽 간다라처럼 빼빼로여야겠으며 아니면 통말고려처럼 풍만하거나 펭귄 다리여야 하겠는가? 또 시대 추세에도 맞는 부처님 아니겠는가? God 부처님이니 말이다. *** 근자 현장을 다녀온 지인에 의하면 그 아래 용암사라는 조계종단 사찰 용암사가 아래서만 부처님을 뵙게 해 놓았다 해서 아쉬웠다 하거니와 이곳은.. 2024. 10. 4.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31) 문화재청장 서정배 (1) 풍납토성과의 운명적 만남 한국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인 문화재청은 그 모태를 구황실재산사무국을 삼는다. 이 기구가 1962년 1월 10일 문화재보호법이 제정 시행되기 시작함으로써 문화재관리국으로 탈바꿈한다. 지금은 차관급 문화체육관광부 외청이지만 출범 당시는 지금의 교육부 전신인 문교부 산하 외국外局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궤를 같이한 문교부는 1990년 12월 26일 교육부로 개편되거니와 그것을 구성하는 국 단위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현재에 견주어 권능은 형편 없었다. 초대 관리국장은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을 역임한 한당욱. 문화재관리국은 1967년 7월 24일 소속이 문화공보부로 넘어간다. 이름은 그대로 문화재관리국이었다. 문화공보부에서 공보가 따로 독립하자 문화부에서 계속 자리를 지킨다. 내가 문화재 분.. 2024. 10. 4.
한원翰苑, 고대사의 도토리 버전 일본에서 와와!!! 한다고 줏대없이 우리도 와와!! 하며 따라가는 분야가 어디 한둘이겠냐마는 지금 계속 거론하는 고고학 분야 도토리, 딱 그 버전에 해당하는 고대사학계 버전이 한원翰苑이라는 어디 듣보잡 문헌이다. 다 사라지고 1권인가 하는 분량만 꼴랑 남았는데, 상어한테 다 뜯어먹히고 뼈다구만 남은 헤밍웨이 다랑어랑 진배없어, 그 남은 뼈다귀 붙잡고 일본이 와! 하니깐 줏대 없는 한국사학계도 와! 무슨 보물이나 되는양 난리버거지를 피운다. 뭐 대단한 문헌 아닌가 하겠지만, 뜯어보면 암것도 아닌 빈쭉정이다. 이르기를 당 고종 현경 5년(660년) 이전에 장초금張楚金이라는 자가 찬술하고 그에다가 송나라 시대에 옹공예雍公叡라는 자가 주석을 가한 유서類書, 곧 분류식 백과사전이라 하는데 남은 건 꼴랑 그 권 제.. 2024. 10. 4.
[마한 성곽론 점검] (1) 같은 듯 다른 두 가지 증언 마한에 성곽이 있었는가? 그 모순을 점검한다.이를 판별하는 기준은 현재 전해지는 판본이다. 다시 말해 이를 점검하는 두 가지 절대적인 사료, 곧 후한서後漢書 한전韓傳과 삼국지三國志 한전韓傳 두 가지다.그 원본이 등장한 이래 이미 천년이 넘게 흘렀으니 그것이 그 원본 그대로 현재로 전승되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따라서 이 시점에서 저 제목에서 제기하는 문제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오로지 현재 전해지는 후한서와 삼국지 판본을 검토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 둔다. 그렇다면 마한에 성곽이 있었는가? 이와 관련해서 후한서와 삼국지는 비슷한 내용인 듯하면서도 자세히 따지면 전연 다른 내용도 없지 않으니 이를 세밀히 검토해야 한다. 이런 기초 작업이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제대로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2024. 10. 4.
학술논문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글쓰기 1996년 경 필자의 첫 번째 학술논문이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320편 정도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펴냈는데 필자가 마음속에 담아둔 생각을 뜻대로 다 펴내서 쓴 논문은 단 한 편도 없었던 것 같다. 항상 심사를 거쳐 출판하다 보니 자기 검열 기제가 작동하기 마련으로, 심사에서 지적될 만한 근거가 완벽하지 않은 논리는 알아서 쓰지 않고, 그 와중에서도 조금 무리해서 글로 나간 것들은 예외없이 심사과정에서 삭제를 권유받아 출판을 하고 나면 논리적으로야 더 탄탄할지 모르겠지만 논문이 뼈다귀만 남고 살점은 다 뜯긴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보니 논문이 수백 편이라고 한들 내놓을 수 없는 스토리 하나 변변히 짜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항상 아쉬웠다고 하겠다. 이제 60을 넘어서며 이 블로그에 선언하였듯이 학.. 2024. 10. 3.
전공도 아닌 동식물을 열심히 파는 이유 필자가 요즘 전공도 아닌 동식물을 열심히 파는 이유는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다. 그리고 동물고고학, 식물고고학. 필자는 이런 데는 관심이 없다. 이 분야는 하는 분들이 따로 계실 것이고, 필자가 추구하는 방향도 이런 쪽과는 다르다. 필자가 동식물을 파는 이유는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상태를 규명하는데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시대에 현대의학의 발전이 없는 상태에서 결국 사람들의 건강과 죽음을 결정짓는 것은두 가지- 얼마나 잘먹고 사느냐와 주기적으로 창궐하여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 넣은 전염병. 이 두 가지다. 이 두가 지를 규명하다 보니 팔자에도 없는 동식물을 파고 있는데, 유심히 필자의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필자의 글이 단순히 동식물 자체의 규명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를 이용했는가 쪽에.. 2024. 10. 3.
부북일기에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들 예전에 부북일기赴北日記라는 조선 후기의 일기가 소개된 적이 있었다. 북쪽으로 부임하며 쓴 일기라는 뜻이다. 이 일기는 필자에게도 의미 심장하여 처음 이 일기를 알게 된 후 기존의 연구 성과를 검토하여 조선시대의 매독 감염에 대한 종설 논문을 영어로 집필하여 보고한 바도 있었다. 이 일기는 그 학술적 가치에 비해 일기를 쓴 분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솔직하게 썼다는 점 때문에 조선시대의 엽기적 일기로 오해되어 대중에게 소개된 측면이 있다. 이 일기는 이제 다시 한번 면밀히 읽고 동시기 일본사와의 대조를 통해 얻어내야 할 부분들이 따로 있다 하겠다. 부북일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조선의 당시 간선도로의 여관 사정이다. 이 조선의 여관사정은 동 시기 에도시대 일본의 간선도로 여관과 비교분석할 필요가.. 2024. 10. 3.
곱돌 앉히는 춘배 허준박물관이 낼 곱돌온심 특별전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유물을 앉히는 중이다. 유리장에 들어가 노가다 중인 친구가 춘배다. 곱돌 발등에 찍히면 전치 최소 석달이다. 아작 난다. 중금속 수준 무게다. 곱돌이라면 역시 쌍화차다. 또 돌솥비빔밥이다. 쌍화차 팔고 돌솥밥 팔아야 남는 장사다. 하지만 지금 법과 제도로는 원천에서 불가하다. 한데 넌 누구냐? 한입만? 새마을운동? 얼마 주냐 물었더니 재능기부랜다. 그래 부자가 가오가 있지 구멍가게서 삥을 뜯는단 말인가? 낼 개막식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참해야 하므로 미리 와서 토닥인다. 옥상엔 가을이 물씬하다. 2024. 10. 3.
[도토리 심판론] (3) 추앙하라! 숭배하라! 도토리 신을 도토리 쏟은 정성 반의 반, 그 반의 반만 조 수수 기장에 쏟았으면얼마나 좋겠는가 마는없다.아예 없다.조 수수 기장은 개별 연구가 쏟아져도 시원찮을 판에아예 전업 연구도 없다.전업 농업사로 가면 사정이 달라지겠지만 고고학에서 명색 농업고고학한다는 자들도 조 수수 기장은커녕 그 구분조차 못하는 놈 천지다.조 수수 기장을 팽개친 자리에 새로운 신이 정좌했다.시절음식 간식거리에 지나지 아니하는 도토리라는 절대 강자가 말이다.한국신석기는 진짜로 읽어보면 오직 우리 조상들은 도토리만 먹었댄다. 1년 내내 도토리 묵만 드시다 간 듯하다. 갈돌 갈판도 도토리 묵 만드는데 썼댄다.추앙하라 도토리를숭배하라 도토리를만세만세 만만세 도토리여! 2024. 10. 3.
[도토리 심판론] (2) 일본열도 조몬을 시원으로 삼는 도토리 습격 한국학계 고질이 있으니 일본에서 뭘 하면 우수수 따라가는 풍조가 그것이라, 저 도토리 광풍, 도토리 환장주의도 실은 한반도발이 아니라 일본열도발, 더 구체로는 조몽발이다. 일본 조몽고고학이 우수수 도토리 도토리 하니 너도나도 줏대없이 조몽을 따라갔을 뿐이다. 그것이 작금 한국신석기혁명이 도토리혁명이 된 까닭이다. 안 믿겨? 못 믿겠어? 2024. 10. 3.
삼국지가 말하는 그 무수한 삼한 성곽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3세기 중후반에 편찬했다는 삼국지三國志 중 위서 魏書30 동이전東夷傳 이른바 한韓 조를 보면 마한馬韓은 서쪽에 위치하였다...[國마다] 각각 장수長帥가 있어서, 세력이 강대한 사람은 스스로 신지臣智라 하고, 그 다음은 읍차邑借라 했다. 산과 바다 사이에 흩어져 살았으며 성곽城郭이 없다.○ 馬韓西...各有長帥, 大者自名爲臣智, 其次爲邑借, 散在山海間, 無城郭. 라 했지만 이는 개소리라, 스스로 모순을 일으키니 같은 마한전에서 이르기를 그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있거나 관가官家에서 성곽城郭을 쌓게 되면,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는 모두 등 가죽을 뚫고, 큰 밧줄로 그곳에 한 발[丈]쯤 되는 나무막대를 매달고 온 종일 소리를 지르며 일을 하는데, 아프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작업하기를 권하며, 또 이를 강건한 .. 2024. 10. 3.
군불이 불러온 혁명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내가 요새 푹 잠을 잔다.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직전까지는 줄곧 잠자리를 뒤척였다.그래 저 놈은 잠도 없다지만 선잠을 잘 수밖에 없던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기상조건 때문이다.나는 그에 더 민감한 체질이다.기온이 떨어져서 잠을 잘 자는가?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군불 덕을 본다고 생각한다. 침대를 쓰지 않는 나는 바닥에 더 민감하다.한여름에도 방다닥은 요를 깔아도 한기가 올라온다. 그 한기는 침대를 쓰는 사람들은 절감하기 어렵다.그 한기 가득한 방바닥에 군불을 넣으니 비로소 푹잠이 온다.정신없이 골아 떨어진다.아무리 늦잠을 자도 여섯시 전에는 아니 네시 다섯시에는 깨던 내가 요새는 골아떨어졌다 하면 해가 중천에 오른 뒤에야 깨기 일쑤다.이 군불이 없는 곳으로 나는 군불을 가져간다... 2024. 10. 3.
왕과 국가를 보위해? 안중에도 없던 조선 양반 딴 거 없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관련 실기류를 읽어봐도 금방 안다. 임란 일기류를 흔히 용사일기龍蛇日記라 하거니와, 쇄미록鎖尾錄 역시 개중 하나라, 저자는 오희문吳希文(1539~1613). 비단 쇄미록만이 아니라 읽으면서 이상한 점은 이들은 국가나 왕의 안전에는 그 어떤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일신보신. 나랑 내 가족 안위만 걱정일 뿐이다. 물론 임란 발발 당시 오희문만 해도 이미 나이 오십이 넘어 노인네 취급되었지만, 그 아들들은 관직에 진출한 상태라 동분서주 군사 모으고 군량대느라 여념이 없지만, 오희문 정신 세계는 전연 딴판이라 오로지 제 일신과 가족 걱정 뿐이다. 그는 전직 고위관리도 아니었기에 그 어떤 국가와 왕에 대한 의무도 없었다. 그런 그를 이상하다 여긴 사람도 없었다. 난리통.. 2024. 10. 3.
[도토리 심판론] (1) 한반도 신석기혁명의 절대지존 한국선사문화, 특히 신석기문화에 관한 글들을 보면 생업경제라는 측면에서 오직 이 하나로 수렴해 오직 이 하나로 끝난다. 그 하나가 무엇인가?놀랍게도 도토리다. 저네들 글을 보면 한반도 신석기인은 오로지 도토리만 주어다가 도토리만 가공해서 오로지 도토리 묵만 해 먹었다. 도토리가 없으면 한반도 신석기문화는 없다!그만큼 도토리는 한반도 선사농경문화 위대한 꽃이요 농경혁명을 주도한 절대지존 언터처블 넘버원이다. 예서 우리는 위대한 결론에 도달한다. 한국 신석기 농경 혁명은 도토리다!이 도토리주의를 해부하고자 한다.한국고고학은 왜 도토리에 혹닉 환장하게 되었는지 그 유래까지 이 참에 폭로하고자 한다. [독설고고학] 토기 타령 집터 타령 도토리 타령, 타령타령타령만 일삼은 암사동 유적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밤[栗.. 2024. 10. 3.
죽천행록, 바다 앞에 발가벗은 사람들 이야기 연전에, 아마도 부산 국립해양박물관 김윤아 아니었나 하는데, 이 죽천행록을 애타게 찾는 전갈이 있었다. 이 책이 분명 나한테는 있었지만, 내 서재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 있다면, 내가 소장한 내 책을 왜 찾을 수 없는지 금방 알리라. 저 책이 있다 하셨는데, 꼭 빌려 달라는 읍소였다. 하지만 나는 찾지 못했다. 서재를 뒤진다 했지만, 이럴 때마다 필요한 책은 안 보이는 그 신이한 법칙이 그때도 작동했다. 저 책이 저자 조규익 선생한테도 없었고 출판사 박이정에도 남아 있지 않다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제 서재를 뒤지는데 뿔싸 저 책이 보인다. 저 책, 아니 더욱 정확히는 저 책이 다루는 죽천竹泉 이덕형李德泂이라는 사람을 비롯한 조선 사신단 행적을 기록한 한글 기행문인 죽천행록竹泉行錄은 2001년 세상에 공.. 2024. 10. 3.
한국의 학문이 삼류인 이유 불퇴전의 의지로 끝장을 보고자 하지 않아서 그렇다.연구라는 것이 선승의 수행과 비슷한 바가 많아 득도하고자 함에 있어화두를 잡으면 끝장을 보겠다는 의지가 결국 성과를 만든다. 필자도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의 학문이 삼류인 이유-. 불퇴전의 의지가 없어서 그렇다. 학문의 초발심과 함께 연구의 화두를 잡으면 제정신인 한은 이를 놓지 않고 끝까지 추적해 결판을 보겠다는 의지가 있어야하다 못해 뭐라도 결과가 나오는 법이다. 한국의 학문이 삼류인 이유는 연구비가 없어서도 아니고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고 바로 이러한 불퇴전의 의지가 없어서 그렇다. 산스크리트어 아위니와르따니야(avinivartanīya) 또는 아위와르띠까(avivartika) 등을 아비발치(阿毘跋致), 아유월치(阿惟越致) 등으로 음사하고 불퇴전(不退轉.. 2024.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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