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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일기]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 이런 친구들이 있단 소문만 알았지 나는 그와는 초연한 삶을 살았다. 한데 놀랍게도 저들 아이디가 우리 집안에 모두 있고 더구나 저것들을 마누라 아들놈 말고도 심지어 장모님까지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처연하여 아들놈 불러 나도 깔아 달라 했다. 답변은 이랬다. "아부지 서재 TV는 연결 안되. TV가 안 되는 거야. 내 아이디 줄 테니 그걸로 봐." 한 마디 더 붙인다. "어차피 요새 할 일도 없자누?" 2024. 1. 22.
엘만 서비스의 추억 필자가 대학생 초년병이던 대학 예과시절 이것저것 잡다한 책을 읽었는데 그 중 즐겨보던 책 중에 고고학 책도 꽤 있었다. 그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엘만 서비스 Elman Service (1915~1996) 라는 미국 고고학자 주장을 인용한 모 교수님 글이었는데 워낙 유명한 인용이라 뭐 이쪽 전공자 분은 다들 아시리라 생각한다. 당시가 80년대 중반이니 아마 그 교수님도 당시 40초반 소장학자였으리라. 거두절미하고 생각해 보면 당시로서는 참신한 이야기이고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 많은데 문제는 이 이야기가 아직도 유령처럼 한국에서 떠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이론은 내가 알기론 북미 원주민을 대상으로 연구한 미국 인류학자들의 국가형성이론으로 사실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이걸 80년대.. 2024. 1. 22.
[自述] 한문과의 만남 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동아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 리 만무했다.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이웃집 형이 쓰는 고등학교 한문책(소위 말하는 한문2가 아니었나 한다)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또 어찌하여 이를 살피니, 그에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赤壁賦적벽부(전후편 중 전편이다)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그리고 원문과 대략 끼워 맞추어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암송해버렸다. 지금은 적벽부라 해봐야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이란 그 .. 2024. 1. 22.
[自述] 세 가지 회환 내가 기자가 되고 나서 초창기에 나름대로 정열을 쏟은 분야가 있으니 이른바 전후청산 관련 문제가 그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나는 원폭피해 문제와 시베리아 삭풍회, 그리고 이른바 위안부 문제에 주력해 그때 그 당시에는 이를 life work로 삼고자 하는 욕망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일전에 내가 어떤 자리에서 말한 적이 있듯이 이런 열망은 한 사건으로 완전히 내 뇌리에서 지워버리기로 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위안부 문제에 직면한 일본정부가 아시아평화기금이라는 걸 맹글었으니, 이 사태에 대응하는 국내 관련단체, 아직은 그 실명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행태에 실망을 거듭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또 하나 짚을 문제가 있다. 첫째 이른바 역사학계가 대표하는 학계와 둘째 동료 언론의 문제였다. 그 .. 2024. 1. 22.
[自述] 장미여관 vs. 올림픽여관 나한테 익숙한 여관이 요즘은 모조리 모텔이라는 이름으로 변모했다. 개중에는 호텔도 있는 듯하다. 여인숙, 여관이라는 간판은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우리가 신촌에서 막 생활하기 시작한 무렵, 신촌과 안암골에는 양대 걸물이 화제였다. 안암골에서는 까까머리 김용옥이라는 사람이 여자란 무엇인가를 들고 나와 노상 구멍 얘기만 했고, 신촌에서는 마광수라는 이가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마광수 수업은 딱 한 번 청강했다. 200명은 너끈히 수용할 종합관 교양수업이었다고 기억하는데, 수업시간 내내 담배를 꼬나물고 하는 말이라고는 x지 x지밖에 없었다. 나는 마광수에게서 얻은 것이 없었다. 그가 말한 장미여관은 신촌의 실제 여관이다. 나도 그 시절에 장미여관을 가본 적이 있는 걸로 기억한다. 한데.. 2024. 1. 22.
어쩌다 검색에 걸린 2015년 [단독] 기사 나는 설혹 단독이라 해서 [단독] 이런 식 개뻥치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기자랍시고 가끔 저런 짓을 하기도 했으니, 개중 하나로 아래와 같은 기사가 검색에 우연히 걸린다. 다른 자료 찾다가 이것이 걸려들었다. 〔단독〕풍납동식 한성백제 와당 용인 출토 송고시간 2015-06-02 08:31 주거지서 평기와와 함께…풍납토성 바깥에선 처음 〔단독〕풍납동식 한성백제 와당 용인 출토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성도읍기 백제(BC 18~AD 475) 왕성인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것과 거의 똑같은 백제 와당(瓦當)이 용인...www.yna.co.kr 저 기사 작성시점이 2015년 6월 2일이라 하는데, 저런 비스무리한 기사를 쓴 기억은 나지마는, 그것이 단독이었는지 어땠는지까지 내가 기억할.. 2024. 1. 22.
식민통치는 총칼로 하지 않았다, 돈으로 했다! 한국역사학이 가르치는 구한말 이래 해방까지 조선총독부 혹은 그 식민 모국으로서의 제국 일본은 오직 총칼로써 했다고 강요 윽박한다. 통치를 무슨 총칼로 한단 말인가? 돈!!! 이 있을 뿐이다. 돈 없이 무슨 총칼을 마련한단 말이며 돈 없이 무슨 경찰을 부리며, 군대를 주둔한단 말인가? 이는 결국 식민지시대를 볼 때 저 돈 문제가 알파요 오메가임을 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일본 혹은 조선총독부는 돈을 어디에서 어떻게 마련했고, 그렇게 마련한 돈은 어디에다 어케 썼는가? 나는 이런 점들일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 이쪽 연구가 얼마나 구축되어 있느냐 이 언저리를 공부하는 친구한테 들으니, 내가 궁금해하는 저 정도 자세한 정보를 구축한 연구는 없다 하며, 어느 대학 누군가가 손대기 시작했다는 말이 들리는 정도다. 돈.. 2024. 1. 22.
역사 조작은 이세민 이성계처럼 1. 스무살 꼬맹이 주제에 지가 당 왕조 창업을 다하고, 쿠데타로 집권해서는 간언을 잘 받아 태평성세를 구가한 것처럼 생쑈를 해댄 이세민처럼 2. 위화도 회군이 불가피했던 것처럼, 또 천명인 것처럼 사기를 치고, 그 주모자도 그 자신이 아닌 조민수였음에도 그 공을 탈취한 이성계처럼 역사는 이렇게 조작해야 한다. (2016. 1. 22) 2024. 1. 22.
호암자전과 삼성문화문고 어찌어찌하다 호암자전을 구득하다. 나야 한국문화사 측면에서 호암을 주목하거니와 삼성문화재단 설립이 대표하는 그의 문화활동 역시 정치 경제와 밀접하다. 70년대 문고본의 전성시대 이 재단 역시 삼성문고를 냈다. 이를 두고 재벌이 헐값에 책을 내서 출판시장을 교란한다는 아우성이 많았다. 이 문고 제1권이 무언줄 아는가? 피히테 《독일 민족에게 고함》이다. 2권이 뭔 줄 아는가? 《명이대방록》이다. 시대정신이 보이는가? 안 보이여? 둘다 격렬한 국가 멸망의 타개책이다. 이병철 호암자전을 읽어보니 역시나 이 문고 얘기가 있더라. #삼성문고 #이병철 #호암자전 2024. 1. 22.
노신과 최현배, 병원을 박차고 나온 사회의 집도의들 노신은 애초 의학 공부한다고 일본 유학을 감행했다. 하지만 그가 치료할 환자는 중국이라 생각하고 이를 위해선 문예운동 만한 게 없다 해서 작가로 전향한다. 그의 글쓰기가 시종해서 메스 들고 집도하는 의사인 이유가 이에서 말미암는다. 그의 글은 언제나 인습과 구습의 도려내기였다. 썩어문드러진 곳을 외과수술 의사처럼 도려내고자 했다. 노신과 흡사한 길을 걸은 식민지 조선 청년이 있다. 이 양반도 내가 알기로 의사 지망생이었다가 일본 유학 중에 철학사상으로 돌아선다. 귀국하자마자 조선 민족 갱생의 도를 부르짖었다. 그 역시 곳곳에서 집도의를 자임했다. 썩어문드러진 정신을 뜯어고치자고 말했다. 외솔 최현배였다. 그는 투사다. 이 점이 전연 부각하지 않는 점이 나로선 기이할 뿐이다. 오로지 국어학자 조선어학회 사.. 2024. 1. 22.
글에 따라 위치가 중요한 주석 주석을 책 뒤로 몰아버리는 후주後注는 구미와 일본 쪽 전통이다. 내가 늘 말하지만 이런 후주가 우리네 글쓰기와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다. 구미 쪽 후주는 실은 안 쳐다봐도 읽기에 방해가 전연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주석이 본문과 일체화해서 주석과 동시에 읽어야 하는 글 천지다. 이건 또 내가 늘 말했듯이 주석을 오인한데 따른 참사다. 이 하이쿠 주석 보다시피 뒤로 돌린 후주다. 이 후주 없으면 본문을 이해 못한다. 본문 읽고 뒤로 가서 주석 찾다 보면 짜증이 밀려온다. 이 경우는 당연히 각주를 해당 페지 아래로 돌리는 각주, 혹은 측면으로 돌리는 측주를 택했어야 한다. 각 하이쿠별로 저렇게 노는 페이지 뭘 한단 말인가? 뭐야 여백의 미야? (2016. 1. 22) *** 아주 간단한 주석은 본문 괄호.. 2024. 1. 22.
김연아는 대한민국을 찾지 않았다 김연아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인터뷰를 나는 잊지 못한다. 단상에 서서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김연아를 눈물을 흘렸다. 직후 인터뷰가 있었다. 많은 시청자가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성원해준 우리 국민께 감사하다" 나는 김연아가 무슨 말을 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아무래도 그리 아니 행동할 듯해서였다. 한데 진짜로 김연아는 대한민국 혹은 국민이라는 말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홀가분하다고 했다. 끝나서 홀가분하다고 했다. 그외 아무 생각도 안났다고 했다.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제 우리한테 익숙한 스포츠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말이다. 국가와 국민을 팔아먹는 시대는 갔다. 김연아는 그것이 끝났음을 보여주는 서막이었다. 동계올림픽의 민족 코스프레? 북한 이벤트? 북한을 우리 민족이라고, 그것을 민족통.. 2024. 1. 22.
[대물大物 이야기] 거근巨根의 창시자 노애嫪毐 (4) 수염도 눈썹도 다 뽑아버리고 앞서 우리는 여불위가 자신을 자꾸만 잠자리로 불러들이는 과부 조태후한테서 벗어나고자 오동나무 수레바퀴를 매달아도 끄떡없는 대물왕 노애嫪毐라는 자를 그 대타로 골라 자신은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했음을 보았거니와 한데 당시 궁중에서 상시로 곁에 있으면서 태후를 봉양해야 하는 남자는 내시여야 한다는 조건이 문제였다. 그래서 내시를 선발할 때는 그때나 조선시대나 다 불알을 조사했다. 이 놈이 고자인가 아닌가? 고자라도 서는가 서지 않는가를 조사해서 흔적기관만 남은 남자를 환관으로 고용했다. 문제는 이 조건을 뚫으려는 노력 역시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장한 남자가 들어가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고, 실제 가슴은 여자이고 외모도 여자인데 아랫도리엔 부랄스가 달린 사방지 비스무리한 쉬메일 shemale도 있었.. 2024. 1. 22.
[202401 독일풍경] (1)함부르크 ①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from 장남원 집을 떠나온 지 며칠이 지났다. 비껴가지 않은 여행의 복병을 만나 ‘눈 떠보니 잠시 파리’였지만 이제 독일로 들어와 적응 중이다. 하지만 어제 밤 공연생각에 마음이 눅눅하다. 함부르크의 엘프 필하모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https://www.elbphilharmonie.de/de/Elbphilharmonie Laeiszhalle Hamburg - ElbphilharmonieMerkliste Anmeldung erforderlich. Wenn Sie noch kein Elbphilharmonie-Kundenkonto besitzen, können Sie sich schnell und einfach registrieren.www.elbphilharmonie.de 침머만(Bernd Alois Zimmermann.. 2024. 1. 22.
민족이라는 틀안에서 한국사를 사고 하면, 도달할 결론은 사실 뻔하다. 최근 한국사의 논의가 조금 슬럼프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필자가 보기엔 개별 학자분들의 문제라기 보다는 지금 한국사가 설계된 파라다임이 시효를 다한 결과라 본다. 지금 한국사는 해방 이후 한 손에는 식민사관의 극복, 다른 손에는 민족주의라는 쌍칼을 들고 설계된 사유체다. 이 틀로는 더이상 발전이 어렵다고 본다. 한길사 한국사는 이제 무덤 안에 넣어버리고, 민족주의로 부터 자유로와져 한국사를 바닥부터 뒤집기 전에는 슬럼프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고조선을 한민족국가의 첫머리에 올려놔서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은 좀 되었는가? 필자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 민족으로 현대사를 설계하니 미래가 보이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자유로운 사고가 혁신과 발전.. 2024. 1. 22.
고조선과 낙랑은 분리하면 안 될 것 지금 한국사에서는 고조선과 낙랑을 분리하여 고조선은 한국사, 낙랑은 중국의 식민지로 정의하여 한국사에서 사실상 퇴출된 상태이다. 심지어는 낙랑 대방 등 군현이 들어간 지도 한 장도 변변히 교과서에 들어가 있지않다. 이런 건 좋다. 문제는 고조선이라는 실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인데, 언젠가 썼지만,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문명에서 고조선과 비슷한 종말을 겪지 않은 문명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예전에 예를 들었지만 그리스 문명,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페르시아 문명까지도 문명의 끝은 모두 이민족 지배로 끝났다. 낙랑은 그 고분에서 나오는 유물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고조선 멸망 이후 낙랑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문화적으로 과도적인 변화를 겪는 양상이 역력하며 군현 자체도 .. 2024. 1. 22.
2024 세계지질과학총회(IGC) 8월 부산 개최 최대 규모 지질과학의 올림픽! 2024 세계지질과학총회(IGC)가 올해 8월 부산에서 개최됩니다. 1878년 부터 전 세계를 돌아가며 4년마다 열리는, 지질과학을 대표하는 가장 큰 학술대회로 6000명 정도의 학자들이 참여해 왔는데, 팬데믹으로 8년만에 열리게 되었고, 한국에선 이번이 처음입니다. 인류세, 화산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 희토류 등 자원개발, 탄소중립, 원자력 안전, 우주지질 등의 주제로 지질계 이슈 토론의 장이 될 것입니다. 여러 지질학자들과 함께 저도 조직위원회 집행위원으로서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학술대회 외 지오필름 페스티벌, 필드트립 등 다양한 지질 관련 행사가 준비되어 전문가 뿐만 아니라 지질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 청소년도 참여할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셔서 함께 즐기는.. 2024. 1. 21.
심곡서원과 조소앙 [2021. 1. 21.] 평상시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오늘 용인 심곡서원 교육관에 걸린 역대 원장 사진을 쭉 보다가~ 조소앙 선생님이 계신 걸 알게 됐다. 이전에 기록으로 보았을 때는 주로 해외에 계셨던 걸로 알고 있어서 동명이인이 아닌가 했는데, 사진을 보니 같은 분😳 어떻게 1942~1945년 사이에 심곡서원 원장이신 거지....!? 당시 이 포스팅을 보고 안중근의사기념관 이주화 선생님께서 이런 의견을 주셨었다. “조소앙 선생 관련 기록은 크게 세 가지인데요. (소앙문집이라고도 함)과 은 중국에서 33년에 간행하였고요, 는 37~40년 사이의 기록이예요. 심곡서원 연혁에는 43년에 원장을 맡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 시기에는 조소앙이 남긴 기록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회의록과.. 2024. 1. 21.
산릉山陵을 구현하는 방법이 다른 백제와 신라 대략 4~6세기 동시대 왕릉 혹은 왕릉급 무덤을 비교하면 백제와 신라는 저렇게 대별할 수 있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으니, 다시금 간단히 정리하면 백제가 구릉에 가까운 산을 파고 들어가 묻으면서 봉분은 있는둥마는둥 하고 마는 반면 신라는 평지에다가 거대한 봉분을 인공으로 쌓아 만든다. 그래서 그 무덤 자체를 비교하면 크기가 비교가 되지 않으리만치 신라 쪽이 압도적으로 크고, 그만큼 껴묻거리도 많을 수밖에 없다. 왜? 산을 파고 들어가서 신라만한 규모로 무덤을 만드려면 얼마나 많은 공력이 더 필요하겠는가? 한데 우리가 잊은 점이 있다. 백제의 무덤을 논할 때 그 배경이 되는 산을 곧잘 망각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저 산이 있음으로써 저 산을 포함하는 전체 구역이 묘역墓域이 되는 것이며, 그런 묘역이 바로 다.. 2024. 1. 21.
[당시삼백수] 동교東郊 : 위응물韋應物 吏舍跼終年 出郊曠淸曙 楊柳散和風 靑山澹吾慮 依叢適自憩 緣澗還復去 微雨靄芳原 春鳩鳴何處 樂幽心屢止 遵事跡猶遽 終罷斯結廬 慕陶眞可庶 (편집자주- 필자는 번역을 안 했지만 저 시는 대강 다음과 같이 옮길 만하다.) 벼슬살이 평생토록 매달리다 탁 트인 교외 나가니 맑은 새벽 버들솜 부드러운 바람에 흩어지고 푸른산에 내 근심 담담해지네 숲에 기대 자적하며 쉬면서 시내 따라 왔다갔다 하네 가랑비 꽃 핀 들판에 자욱한데 봄 비둘기 어디서 우는지 은거하려 했지만 여러 번 막히고 공무 따르느라 여전히 바쁘기만 하네 벼슬 그만두고 이곳에다 집 지으면 도연명 동경하는 삶 이루어지겠지 위응물은 오랜 공무를 마치고 은퇴하여 노후를 보내려 한 모양이다. 새로 집을 마련할 곳을 보니 산도 들도 마음에 딱 들어서 여기다 집지어 살면.. 2024. 1. 21.
[독설고고학] 훼기毁器, 왜를 포기한 참상(1) 모르겠다!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재연구원)이 펴낸 한국고고학 사전 시리즈 중 하나인 《한국고고학 전문사전(고분편)》을 보면 훼기毁器라는 항목을 설정하고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훼기는 제사 또는 장사를 지낼 때, 그릇이나 공구·무기 등을 용기나 도구 등을 깨뜨리거나 구부리는 등 의도적으로 훼손시켜 충전토나 봉토, 주구 등에 매납하거나 뿌리는 습속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행해진 습속의 하나이다. 무덤에서의 훼기습속은 선사시대부터 행해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청동기시대의 지석묘 부석시설에 파편의 토기편이 확인되어 청동기시대 이후부터 무덤을 만들거나 또는 매장 후에 제사를 지내면서 물품을 파쇄하는 행위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삼국시대 무덤의 봉토와 주구에서 이.. 2024.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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