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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 독일풍경] (2)함부르크 ② 쿤스트 할레 [Hamburger Kunsthalle] from 장남원 이곳은 미리 작정하고 갔어야 했다. 특히나 현대관에서 열리는 독일 낭만주의 대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1774-1840) 탄생 250주년 특별전은 매진, 매진.. 작가 생몰년을 보니 추사 김정희 시대다. 벽돌보다 두터운 도록에 인산인해였다. 포스터는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이곳 소장이다. 새로운 화풍을 개척했으나 나치시대 선전물로 이용되면서 훗날 기피되었고 화가로서 재평가되기는 1970년이 이후다. 지금은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다. https://www.hamburger-kunsthalle.de/ausstellungen/caspar-david-friedrich-0 Caspar David Friedrich | Hamburger Kunsthall.. 2024. 1. 25.
우리가 아는 밥맛은 쇠솥이 나오면서 나왔다 필자가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곡물취사는 초기에는 찌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찌는 방식으로 취사를 해 보면 쌀과 다른 잡곡의 맛이 별차이가 없는 것을 알게 된다. 쌀의 단맛도 덜하고 특히 쌀 도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현미로 밥을 찌게 되면 수수밥이나 기장밥과 별차이 없다. 우리가 아는 쌀밥 맛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쌀밥맛은-. 철제 솥이 나온 후에도 한참이 지나서 곡물을 솥안에 직접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불을 줄여 긴 시간 작은 불로 뜸들이는 우리가 아는 방식의 밥 짓기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다른 곡물로 차별성이 생기게 되었다고 필자는 본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이런 경우에는 해먹어 보는 수밖에 없다.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 알겠는가? 해 먹어 보니 그렇더라 그 이야기다. 특히 쇠솥이.. 2024. 1. 25.
고려거란전쟁이 건진 영웅은 양규와 지채문이다 이 두 사람 저 드라마가 아니었던들 언제까지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언젠가는 부각했겠지만, 솔까 양규는 그나마 개설서에 이름은 잠깐 들이밀기는 하지만 지채문은 노답이었다. 실제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보면 두 사람 활약은 영웅적이다. 그 압도적 거란군 위력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40만 거란군을 상대로 흥화진을 사수하고 드라마처럼 곽주성을 천700명으로 탈환했으며, 회귀하는 거란군을 곳곳에서 요격해 공포에 빠뜨린 이가 양규다. 회귀하는 거란군을 상대로 7전7승인가 하고는 나중에 장렬히 산화했다. 그는 역사가 추앙해야 할 영웅이다. 지채문. 동북면 지금의 함경도 쪽에 배치되어 있다가 급보를 받고는 서경을 구원하러 갔다가 여의치 않게 되자 개경으로 곧바로 달려 내려가 몽진하는 현종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 2024. 1. 25.
무쇠솥 뚜껑은 왜 중요한가 결국 압도적 밥맛은 밥을 할 때 가열되는 와중에 어느 정도로 효율적으로 증기를 잡아낼 수 있는가에 있다. 지금도 이것은 중요하다. 현대 전기밥솥이 거의 압력솥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코펠로 밥을 지어 본 사람은 알 텐데, 요즘은 취사가 불가능하지만 필자가 학생 때만 해도 설악산 꼭대기에서 코펠로 밥 지어 먹는 사람 천지였다. 설악산이 해발 1700 미터인가 뭐 그럴 텐데 이 정도 고도만 되도 물이 100도 아래에서 끓기 때문에 코펠 같이 얇은 두껑으로 간신히 막아 놓은 취사기로 밥을 하면 백프로 설익게 된다. 산 꼭대기에서 선 밥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때 어떻게 하는가 하면 주변에서 어마어마한 짱똘을 가져다가 코펠 뚜겅 위에 올려 놓는다. 100도 이하에서 끓는.. 2024. 1. 25.
침술의 혁명, 연길 소영자 유적 延吉小營子遺蹟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시延吉市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대규모 무덤 흔적을 말한다. 1937년 일본 관동군이 만주 일대에서 채석 작업을 하던 중 유물이 발견되어 알려지자 이듬해 7월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교수로 등나무 우거진 밭 가문 출신 후지타 료사쿠 등전량책藤田亮策이 정식 발굴조사를 했다. 그 결과 52기로 구성된 대규모 돌널무덤 석관묘 石棺墓 무덤떼로 드러났으니 무엇보다 무덤에서 100여 기에 달하는 인골을 비롯해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발굴 전 유적이 이미 많이 훼손되어, 유물의 정확한 출토 맥락을 파약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당시에 선사시대 무덤 유적을 발굴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남겼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그 유물 일부가 권오씨가 임시 계약직 관장인 서울대박물관에 상설전시 중이다. 유물 중 놀.. 2024. 1. 25.
왕 또한 마누라는 한 명뿐, 부묘祔廟의 중요성 전반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견주어 고려시대가 적서 차별 양상이 극심하지는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는 상대성 이론이라, 견주어 볼 때 그리 보인다뿐이지, 고려시대라고 적서차별은 예외가 아니었다. 이 적서 문제는 결국 혼인 양태에서 비롯하는데, 더 구체로는 남자 한 명에 부인이 한 명인 1부1처제 때문이다. 한국사에서는 적어도 기록으로 남은 흔적으로 볼 때는 철저한 1부1처제 사회였고, 남자한테 부인은 같은 시기에 한 명이 있을 뿐, 복수로 존재할 수는 없었다. 고려시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어서 이쪽도 철저한 일부일처제였다. 어느 인터넷 사전을 보니 "고려시대에는 두 명의 정실 부인 외에 첩을 두고 서자를 두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서자를 적자와 다른 존재로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태종 때였다.. 2024. 1. 25.
[문화재청장 정재숙] (2) 임명과 더불어 연판장 돌린 고고학계 중앙일보 현직기자인 정재숙을 임명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문화재 업계 일부에서는 연판장이 돌았다. 역시나 고고학계였다. 이 놈들은 지들이야말로 문화재 업계 전부라 착각하는 놈들이다. 그 연판장은 그놈들 소행이었는데, 성명서를 내기 위한 초고 상태로 바로 나한테 들어왔다. 보니 가관이었다. 첫째 어떤 놈이 썼는지 문장이 주술관계도 맞지 않았고 둘째 주술관계는 고사하고 앞뒤 문맥도 없고 논리도 없었다. 어떤 교수놈이 썼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 초고를 누가 썼는지 확인은 못했다. 저런 중구난방 연판장이 주장하는 요지는 결국 이거였다. 문화재는 전문분야이니 전문가가 해야 한다. 중앙일보 기자 정재숙은 문화재 전문가가 아니다. 그 연판장 초고를 막 취임한 정재숙한테 보냈더니, 이 누님 여걸이라 .. 2024. 1. 25.
밥 뜸들이기는 한국의 발명품인가? 현재로 봐서는 그런 것 같다. 실제로 밥 뜸들이기는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한국의 발명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학계에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물로 밥을 끓인 후 마지막 단계에서 뚜껑을 닫고 불을 줄여 뜸들이며 바닥 쪽을 가볍게 태워 누룽지도 만들어 내는 방식의 취사는 밥맛을 혁신적으로 좋게 했는데 이런 방식의 취사는 한국 쪽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그 구체적 시기는 아마도 쇠솥의 출현 이후일 텐데, 필자의 감으로는 쇠솥의 모양.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전 포스팅에서 김단장께서도 얼핏 지적하신 듯한데 필자가 보기엔 같은 쇠솥이라도, 밥을 찔때 쓰는 쇠솥과 밥을 끓여 뜸들일 때 쓰는 쇠솥의 모양이 다른 것 같다. 밥을 찔떄 쓰는 쇠솥은 아마도 청동기시대 이래 토기 중 시루 아래 쪽에서 물을 끓이는 토기와.. 2024. 1. 25.
도판으로 보는 궁궐 조명기구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궁궐 조명기구 총정리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궁궐 조명기구 총정리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시대·대한제국기 조명기구 조사 결과를 정리한 단행본 《조명기구照明器具》를 발간하는 한편 숙종과 고종 연간에 각각 편찬된 궁궐 보고서인 《궁궐지宮闕志》를 한 historylibrary.net 바로 앞에 국립고궁박물관이 그 조사보고서를 냈다는 소식을 전했거니와 이에서는 그에 수록한 조명기구 면면을 도판들로 살피기로 한다. 2024. 1. 25.
[독설고고학] 한국고고학은 가마솥을 팔아먹어야 코로나도 끝났으니, 세계 유수하는 고고학 관련 단체들이 다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런 데 가서 한국고고학 또한 이제는 무엇인가를 팔아먹어야 한다. 문화재산업? 국가유산산업? 고고학이 내어놓은 산업이 뭐가 있는가? 트롤? 장사 안 된다. 호미로 잠깐 BTS RM힘을 빌렸지만, 그걸로 고고학이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각종 굿즈? 고고학이 무엇을 팔아먹었단 말인가? 교육세트? 구멍가게다. 나는 한국의 발굴제도 자체를 팔아먹으라 했지만, 이것도 한 놈도 관심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외국 고고학이 바라보는 가장 큰 상품은 한국의 발굴제도 자체라는 사실은 입이 아프도록 지적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자리건 이제는 한국고고학 또한 이것이 한국고고학이라고 들고 나가 방방 뜨며 선전 홍보할 것들이 있어야 한다고 .. 2024. 1. 25.
철솥의 진화: 쇠뚜껑은 언제 출현했나 최근까지 발굴 보고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철솥은 초기에는 쇠뚜껑이 없었던 것 같다. 우선 가장 이른 시기 철솥은 토기로 밥을 쪄먹던 시대의 물끓이는 아래쪽 토기의 역할을 했다고 보이고, 이런 예가 아차산보루에서 나온 위는 토기 시루 아래는 쇠솥의 조합이 아닐까 한다. 이런 것이 어느 시기부터인지 특정하기 어렵지만, 밥을 쪄먹는 것이 아니라 직접 끓는 물로 취사하는 방식의 지금과 같은 밥짓기가 탄생했다고 보이는데 이런 밥짓기가 나온다 하더라도 아마 처음에는 쇠솥의 뚜껑은 나무뚜껑이었지 싶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쇠솥의 뚜껑을 나무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어느시기부터인지 쇠뚜껑이 나올 텐데 필자 생각에는 이 쇠솥의 쇠뚜껑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를 특정하는 것 역시 쇠솥이 출현하는 시기 못지 않게 .. 2024. 1. 25.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궁궐 조명기구 총정리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시대·대한제국기 조명기구 조사 결과를 정리한 단행본 《조명기구照明器具》를 발간하는 한편 숙종과 고종 연간에 각각 편찬된 궁궐 보고서인 《궁궐지宮闕志》를 한글로 번역한 고문헌국역총서 《국역 궁궐지-숙종 연간》·《국역 궁궐지-고종 연간』(1건 2책)》을 각각 발간했다고 25일 말했다. 박물관 소장품 도록 제18책인 조명기구는 등잔대, 촛대, 좌등座燈, 초롱燭籠·등롱燈籠, 괘등掛燈 등으로 분류한 전통식 조명기구 43점과 함께 서양식 촛대와 석유등, 전등기구 등 개항과 더불어 들어오기 시작한 근대 조명기구 52점을 합친 총 95점을 사진과 해설로 정리했다. 이런 조명기구 정리는 믿거나말거나 처음이다. 사립 박물관 쪽에서 정리한 적이 있기는 하지마는... 조명기구는 초·석유·전기 등 광원光源별.. 2024. 1. 25.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건축장인 대목大木의 세계 보고서 발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사라져가는 전통기술의 계승과 보존을 표방하며 전통 건축 목공사를 담당하는 대목大木이 사용한 도구를 그림과 영상으로 풀어낸 보고서인 「근현대 대목大木 도구」, 「그림으로 보는 전통건축 장인 대목의 도구」 두 종을 최근 발간하고 그 원문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근현대 大木 도구」는 연구가 2022년 이래 실시한 대목 작업에 대한 현장 조사와 영상 기록화 등을 통해 수집한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심화 연구를 거쳐 완성한 결과물로, 대목이 사용한 도구 50여 종에 대한 정의, 사용법, 관리법, 대목의 경험담 등을 수록했다. 강의환 안강영 두 대목이 직접 출연해 주요 도구를 설명하는 구술 영상(수어 통역 포함)도 정보 무늬(QR코드)로 수록했다. 해당 영상은 연구소 유튜브 채널에서도 제공한다.. 2024. 1. 25.
대장경, 경판은 왜 만들었고 몇 부나 찍었을까? 한국의 금속활자는 다들 아시겠지만 소량 다품종 도구다. 대량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한번 판을 짜면 한 백부나 찍었을까. 20-30부 찍고 판을 깨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던 듯 하다. 요즘으로 치면 복사기보다 조금 더 찍는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해야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가 그 정도였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은 인쇄가 필요한 경우는 알다시피 목판을 찍었을 테고. 항상 드는 의문은 대장경판목-. 초조대장경부터 재조대장경까지 판목수가 정말 수십만 장인데 이거 판각한 후 과연 몇 질이나 인쇄했을까. 지금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 조판 후 지금까지 몇 부나 찍었을까. 왜 이런 생각이 드는고 하면 팔만대장경 전체를 과연 몇 번이나 인쇄했을까 싶어서다. 그만한 종이와 먹이 .. 2024. 1. 25.
[노르웨이] (1) 마음이 쉬어가야 할 때, 송네 피오르, 베르겐 Sognefjorden, Bergen 노르웨이 여러 피오르 중 가장 길다는 송네 피오르, 그리고,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 한동안 마음의 위로가 되어주었던 곳들. 둘 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품고 있다. https://maps.app.goo.gl/nbKncq3UCLafcLVq5 베르겐 · 노르웨이 베르겐노르웨이 베르겐www.google.com https://maps.app.goo.gl/6SjJrwAnZjty5oKu7 송네 피오르 · 노르웨이★★★★★ · 피오르드www.google.com 노르웨이 피오르에 언젠가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히 했었는데 내가 노르웨이까지 아무 때나 휙 떠날 정도의 금수저는 아닌지라 베를린-베르겐 티켓을 싸게 구한 김에, 지인도 만날 겸 가게 되었다. 게이랑에르와 송네 피오르 등이 유명하고, 멋진 하이킹 코스.. 2024. 1. 25.
사비시대 깊고 둥근 백제 철솥 정체는? 백제고도문화재단이 2017년 사비도성 동쪽 100미터 미만 산지 중 곡간 경작지에 해당하는 부여 석목리 농협주차장 부지에서 찾은 유물 중 사비시대 철솥이다. 뒤에서 개똥폼은 심상육이다. 이 철솥 이상하지 않은가? 엄청나게 깊다. 저기다 밥을 하거나 국을 끓였을까? 이건 고고힉도한테 물어선 답이 안 나온다. 첫째 한국고고학은 그런 물음을 물을 줄도 모르고 둘째 물어봐야 꿀먹은 벙어리를 면치 못하고선 고작 하는 말은 글쎄요? 밖에 없다. 고민을 해 봤어야지? 이건 주부들한테 물어야 한다. 저런 데다 밥 안 하고 국 안 끓인다. 미쳤니? 이 철솥이 출토한 유적을 다른 출토유물과 견주어 볼 때 이곳이 공방이 있던 자리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조사단이 했다. 어떤 공방? 금속품 제조와 관련하는 도가니, 철솥과 화살촉.. 2024. 1. 25.
한국 출판문화의 세계화 우리나라 출판계- 지금 같은 시스템으로는 한국 내에서 출판하여 국제적으로 책 팔아 먹기는 참 요원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천년 전에 목판 수십 만 장을 파서 대장경 수천 권을 사방에 뿌려댄 우리 조상들도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 양반들이 요즘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출판물은 한반도 남쪽 절반 바깥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못 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2024. 1. 25.
고려 시대 내내 한반도 밖에 위치한 울릉도 정광태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은 울릉도와 독도가 이사부 정벌 이래, 그러니 신라 지증마립간 이래 두 섬이 죽 한국 땅이라 했지만 웃기는 소리라 놀랍게도 울릉도는 고려시대 내내 고려 땅이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리만치 철저히 한반도 밖에 위치한 별도 문명 문화권이었다. 고려사 권58卷 志 권 제12 지리地理3 동계東界 울진현蔚珍縣을 이르기를 본래 고구려 우진야현于珍也縣【고울이군古亐伊郡이라고도 한다.】으로, 신라 경덕왕 때에 지금 이름으로 고쳐 군郡으로 삼았다. 고려 때에 현(縣)으로 강등시켜 현령(縣令)을 두었다[置令]. 고 하고는 그에다가 울릉도鬱陵島를 첨부하기를 현縣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이라 불렀고, 무릉武陵 혹은 우릉羽陵이라고도 불렀으며 사방이 백리이다. 지증왕 12년(5.. 2024. 1. 25.
[독설고고학] 내가 정통고고학을 전공했다면 뭐하긴 뭐해? 토기 그림 그리면서, 그 변천 양상을 따지면 이건 경주식 신라토기, 이건 의성식 토기하면서 지만 아는 그림 잔뜩 나열하고서는 이건 5세기4사분기, 이건 6세기 1사분기 초기 하며 그걸 논문이라 쓰고 자빠졌거나 그것이 지겨워지는 순간 성곽으로 눈길 돌려서는 아 이건 신라 초축 고려 보축하면서 이런 기술은 한반도에서 먼저 나타나 일본으로 전래되어 나타나니, 동아시아 문물교류양상을 훌륭히 증명하므로 세계유산 크라이테리아 넘버 1원에 해당하니 세계유산이 될 만하다는 보고서나 쓰고는 연구비나 받아먹고 있겠지? 나한테 가장 큰 축복은 선생이 없고 전공이 없다는 점이다. 선생이 있었더래면, 고고학 전공이었더래면 지금과 같은 이야기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채 저 그림 그리고 축조술 논하는 일을 내 본령.. 2024. 1. 24.
자작나무 껍질에서 뽑아낸 기름 https://www.youtube.com/watch?v=uHpYwZ71jXg 이 동영상은 자작나무 껍질을 벗겨서 기름을 짜내는 방법을 소개한 것으로 그 방식은 실로 간단해서 깡통 두 개와 장작불로 충분하다. 큰 깡통에다 자작나무 껍질을 잔뜩 채우고, 그 한쪽에다가 구멍을 뚫고서는 작은 깡통을 잇대어 땅을 파고 그 작은 깡통을 아래로 두고, 위로 노출된 큰 깡통 위로 두세 시간 장작불을 피우면 자작나무 껍질에서 흘러내린 기름이 아래 작은 깡통으로 흘러내리는 구조다. 위 큰 깡통 속 자작나무 껍질은 완전히 타서, 기름기를 빼낸 재에 지나지 않아 푸석푸석 바스라지니 버린다. 자작나무는 흔히 그것이 탈 때 자작자작하는 소리를 낸다 해서 그리 일컫는다 하듯이 그만큼 그 이파리에는 기름기가 많다는 뜻이니, 그에다.. 2024. 1. 24.
여진 소굴로서의 울릉도 여진이 약탈경제 기반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그래서 유목민 비스무리한 족속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그네를 둘러싼 가장 큰 착란이 그들이 바다에 약할 것이라는 실로 막연한 생각이 점철하지만, 그들은 해전海戰의 명수였으며 이들보다 바다를 잘 이용한 민족은 동북아시아에서 찾기 힘들다. 그런 면모는 고려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마는, 주로 말갈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삼국시대 역시 그에 못지 아니해서 동해안을 치는 말갈은 예외없이 바다를 통한 침략이었다. 신라가 북방으로 치고 올라가고 그곳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이 여진 혹은 말갈은 골치였으니, 동해를 주름잡은 그들의 해군력을 약화하고자 단행한 일이 바로 이사부에 의한 우산국 정벌이었다. 신라가 왜 우산국을 쳤는지는 언급이 없다. 하지만, 당시 추세를 ..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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