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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옛날 있었을 것 같은데 드문 요리 달걀요리다. 요즘은 달걀이 너무 흔해서 싼 값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기 가장 좋은 식재료가 되어 있지만, 달걀을 넉넉히 먹기 시작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에 양계장이라는게 언제쯤 생겼는지 찾아보면 그 시기 이전으로는 소급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 조선시대에 집집마다 닭을 기르고 있었을 것 같지 않나?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닭, 굉장히 귀했다. 대부분 새요리는 꿩을 먹었기 때문에 닭을 많이 키워야 달걀요리고 뭐고가 되는데, 닭 사육자체가 많지 않으니 댤걀이 정말 귀했다는 말이다. 이건 당장 요즘 북한에서 탈북자들 이야기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북한 탈북자들이 내려와서 가장 놀래는 것 중의 하나가 남한에 닭걀이 너무 싸고 흔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못살게 되어 달걀이 귀해진 것이 아니라.. 2023. 11. 12.
산초로 드러난 천마총 출토 곡립穀粒 신동훈 교수께서 요새 시루 타령이 한창이시라, 그러면서 한국음식문화사 관련 섭렵에 열혈이시라, 그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내 글 중 하나로 경주 천마총 산초를 새삼 거론하고자 한다. 문제의 글은 지금은 충북사학회로 이름을 바꾼 충북대학교 사학회에서 내는 역사학 전문잡지로 당시 내가 이 글을 투고한 2009년 무렵만 해도 명맥 유지가 위태로울 때라, 서울역사박물관에 근무하다 제주대학교로 옮긴 충북대 사학과 출신 김영관 교수(얼마 뒤 충북대 사학과로 옮겼다)가 그걸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할 때라, 나한테까지 논문 제출 의뢰가 왔었던 것이니 그 무렵 이 잡지에 두세편 논문을 거푸 투고한 계기가 김 교수와의 이런 인연에서 비롯되었음을 위선 밝혀둔다. 문제의 논문 서지사항은 아래와 같다. 설림(說林) : 천마총(天馬塚.. 2023. 11. 12.
한국음식에서 퇴출된 귀리 귀리가 한국에 수입된 것은 원나라 때라 한다. 아마도 원간섭기 때 말이 들어오면서 말먹이로 함께 들어왔을 거라는데, 한국이건 일본이건 귀리 수입은 꽤 늦었다. 일본은 귀리가 메이지 유신 이후에 들어온 모양이다. 한국은 귀리가 들어왔지만 제대로 정착 못하고 퇴출되었다. 유럽도 귀리는 말먹이기도 하지만 사람도 먹는다. 갈아서 오트밀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우리도 귀리를 굳이 먹자면 그렇게 갈아서 끓여먹어야 했겠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우리 조상님들은 귀리를 수확해서 이를 밥을 지어 먹어봤을 가능성이 백프로다. 귀리밥 드셔 보셨는지? 사람 먹을 게 못된다. 필자는 잡곡을 정말 좋아하는데 귀리는 정말 맛이 없다. 최근에는 다이어트식으로 각광을 받는 모양인데 당연한 일이다. 맛이 없으니까. 귀리는 고려시대 들어와 .. 2023. 11. 12.
무쇠솥과 결합한 고구려 시루 고구려 시루-. 시루 이야기만 나오면 등장하는 것으로 고구려 아차산 보루에서 나왔다던가. 아래는 철솥이고 위는 토기 시루인 이 조합. 그런데 만들려면 둘 다 철로 만들지 왜 위쪽 시루는 토기일까? 필자가 보기엔 바닥에 구멍내기가 쉽지 않아 그런 것 아닌가 한다. 시루면 구멍을 여럿 뚫어줘야 할텐데, 그냥 쓰던대로 시루는 토기로 아래 솥만 무쇠솥으로 간것이 아닌가 한다. 이걸로 고구려 전방 부대원들은 뭘 해먹었을까. 저 시루로는 아마도 잡곡밥을 지어 먹지 않았을까. 보리밥, 조밥, 수수밥. 그렇다면 그런 잡곡밥도 시루로 지어볼 일이다. *** Editor's Note *** 보루에서 아마 필자가 말하는 곡물도 검출되지 않았나 한다. 이는 결국 곡물과 밀접한데 고고학 자료를 가미하면 콘텐츠가 사뭇 풍부해진다.. 2023. 11. 11.
압도적 인용빈도 미셸 푸코의 위대함 미셸 푸코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겠지만, 적어도 학문적 지표로만 보면 미셸 푸코는 인문학 부분 노벨상이 있다면 최초로 수상했을 사람이다. 그의 인용빈도를 구글 Scholar에서 보면, 이와 같다. 풀어보면, 지금까지 미셀 푸코가 쓴 저술은 총 132만 번 인용되었고, h-index가 310이나 된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숫자냐 하면, 그의 논문 중 310번 인용된 논문이 310개나 된다는 소리다. 자연과학 분야 연구자도 이 정도 h-index를 보유한 사람은 거의 없다. h-index는 그 한계도 많이 지적되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지표 중에는 소위 말하는 석학을 구별해 낼수 있는 가장 유효한 지표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쓴 논문이 200개가 있다고 치자. 그 중에 20번 인용된 논문이 20.. 2023. 11. 11.
기레기 철부지 사랑이 초래한 로마의 오늘 저 돌댕이 손가락 함 쑤셔볼끼라고 이리 줄을 섰다. 글타고 내가 오드리요 내가 그레고리가 되겠는가? 나야 전직이긴 하지만 아직 현직의 향기가 채 가시지 않은 풋내기 자발백수라 기자 혹은 전직기자라지만 공주야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겠고 묻지마 관광은 혹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나야 경건한 사람이니 저들 속세 찌든 사람들 뒤로하고 예수님 독대하러 왔다. #로마의휴일 #진실의입 2023. 11. 11.
국립중앙박물관 오세창吳世昌 전시장에서 위창 오세창(1864-1953), 그는 누구인가. 3.1운동 33인의 한 명인 독립운동가이자, 전서로 일세를 풍미한 서예가요, 기자로 시작해 와 를 거쳐 사장까지 역임한 언론인에 와 을 엮은 수집가, 거기에 을 저술한 미술사가. 도대체 어느 한 면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70주기를 기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촐한 전시를 꾸렸다. 한국미술사의 시조에게 바치는 헌사 - "근대 문예인, 위창 오세창"이다. 12월 말까지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놓치면 다시 전시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 많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으시거든 꼭 한 번 다녀오시기를. 그리고, 한국의 근대라는, 그 어려운 시기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격랑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한 인물('문예인'이란 표현.. 2023. 11. 11.
춘궁기 촌주의 점심 밥상 한반도 남부 춘궁기 촌주의 점심밥상을 재미삼아 복원해 본다. 춘궁기니 아무리 촌주村主라 해도 보리밥을 먹지 않았을까. 해서 찐밥을 보리밥으로 해보았다. 뭐 깡보리고 뭐고 간에 서너시간 물에 담궈 놓으면 시루로 찌면 10분이면 다 익는다. 깡보리밥이다. (요즘은 보리도 손질을 해서 나오니 옛날에는 보리 익히는데 시간이 더 걸렸을 수도 있겠다) 촌주는 마을의 어른이지만 춘궁기다 보니 쌀이 모자라 깡보리밥을 드시는 것으로 했다. 깡보리밥에 무우절임과 생선 한토막 구이가 부식으로 올라갔고 가장 오른쪽 오징어는 사실 오징어무침이다. 비주얼상 젓갈인 醢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醢는 신문왕 때 역사기록에도 보이므로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여기서는 생선을 잡아 만든 젓갈 정도로 퉁치겠다. 깡보.. 2023. 11. 11.
한국연구자는 왜 자기홍보를 못하는가? 얘기 나온 김에, 또 외우 신동훈 교수께서도 비슷한 맥락 논급을 하셨기에 이어간다. 그래 천성이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 인정한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에서 비롯한 사람 많다는 정도는 내가 이해한다. 하지만 이 역시 이제는 내실을 따져 진짜로 그런지 분석해야 한다. 수줍음이 많고 남한테 나서기 싫어하면 논문 쓰면 안 된다. 왜 나서기 싫어한다면서 남들한테 보이기 위한 글을 쓴단 말인가? 저런 성격이야 그래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네 연구자들은 대체로 왜 그렇게 자기 홍보에 인식한가? 그래 요새는 오죽 sns 등을 통한 설화가 그리 많으니, 그런 설화를 두려워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 점은 내가 인정한다. 그럼에도 전반으로 보아 우리네 연구자는 자기홍보에 인색하기 짝이 없으니,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2023. 11. 11.
연구업적의 홍보 중요성에 대해 김단장께서 쓰시는 연구업적의 홍보 부분에 대해 약간만 글을 보탠다. 연구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데 서구에는 이것이 정성화된 평가방법도 있겠지만, 그네들의 속성대로 정량화한 평가방법도 있다. 어느 쪽이 우위에 있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로 논문은 출판되면 인용이 되어야한다. 인용이 많이 된 논문을 쓴 연구자일수록 우수한 연구자라는 인식은 공통적이다. 최근에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노벨상 시즌만 되면 신문 지상에 오르는데, 이는 그냥 막 추천받아 올리는 것이 아니고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의 경우에는 인용빈도를 가지고 정량화하여 최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이 대개 노벨상 수상자로 추천된다. 따라서 자기 논문의 인용에 초연한 사람들은 적어도 지금 학계풍토에서는 연구자라고 부르기 .. 2023. 11. 1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연구 국제학술행사 '서남아시아의 재발견: 도시문화와 생활양식'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연구 국제학술행사 서남아시아의 재발견: 도시문화와 생활양식 2023년 11월 14일,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 주제가 좋고 발표 글들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2023. 11. 11.
일본의 강반 레시피 필자가 우리의 청동기시대 찐밥 제조법, 그리고 약밥과 기원이 같다고 생각하는 일본식 강반 레시피는 아래와 같다. 한국의 약밥 레시피와 동일하다는 것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색깔 칠해 놓은 곳에 주목. 強飯とは、現在のおこわのルーツです。 現代ではもち米で作るのが一般的ですが、当時はうるち米の玄米を蒸して食べていました。玄米を蒸す手順は、以下の通りです。 <材料> 玄米 100g 水 100mL <作り方> 1.玄米を洗い、6時間程度浸漬させる 2.ザルに上げて水気を切り、玄米と水を器に入れ、アルミホイルでフタをする 3.蒸し器の準備をする 4.蒸気が上がったら2.を入れて30分程度蒸す 5.火を止め、10分程度蒸らしてできあがり ※玄米の浸漬時間は長いので、寝る前や朝、出かける前に水に漬けるのがおすすめ ※雑菌の繁殖を防ぐため、必ず冷蔵庫で浸漬させる(2~3回水.. 2023. 11. 11.
논문 썼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2차 가공이 필요한 시대 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가? 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가? 누군가 나한테 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이 반복한다 한 적 있다. 특히 한국고고학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그렇다고 했다. 같은 말보다는 같은 논조 비슷한 주장을 담은 글들을 말할 것이다. 아 historylibrary.net 이 이야기에 덧붙인다. 특히 이는 내가 직업적 학문종사자라 분류할 만한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거니와, 그런 연구자라 해 봐야 몇 명 되지도 않던 시대에나 통용했을 말이 "그건 내가 이미 논문으로 다 썼어." 라는 말이 있거니와, 그런 직업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완성의 궁극을 논문으로 보는 까닭에 저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한다. 저에서 나 역시 예외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무엇보다 연구자라 분.. 2023. 11. 11.
추정해 보는 밥짓기의 변화 어차피 필자는 이것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이 아닌지라, 이쯤 하면서 지금까지 쓴 내용을 요약한다. 청동기시대, 생산된 곡물은 시루로 쪄내 밥을 해서 먹었다고 본다. 시루가 나오니까 원래 한국인들은 떡을 먹다가 나중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던데, 그게 아니고 시루를 쓰던 때도 밥을 쪄서 먹었다. 잡곡이건 쌀이건 전부 다 잘 익는다. 몇 시간만 불려주면 딱 10분만 쪄내면 곡식은 다 익는다. 시루를 밥 짓기로 쓰려면 전제조건은 딱 하나다. 뚜껑이 있어야 한다. 뚜껑없는 시루로는 밥을 못 짓는다. 한 번만 해 보면 안다. 먹을 때의 식감 문제는 역시 찐밥의 문제점 중 하나다. 다 익어도 소화는 확실히 잘 안 된다. 덜익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밥의 함수율이 확실히 뜸들이는 취사 때와는 차이가 있다는.. 2023. 11. 11.
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가? 누군가 나한테 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이 반복한다 한 적 있다. 특히 한국고고학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그렇다고 했다. 같은 말보다는 같은 논조 비슷한 주장을 담은 글들을 말할 것이다. 아무튼 그에 대해 내가 한 말 요지는 이렇다. 안다. 너무 잘 안다. 소재가 고갈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또 그건 내 한계겠지만 같은 말이건 비슷한 논조를 반복하는 거 맞다. 부인하고픈 생각없다. 나는 왜 그러는가? 단 한 번의 지적 비판으로 바뀌는 일 네버에버 없다. 단군조선 이래 그런 적 없다. 물론 내 주장 입론이 모두가 타당하다고는 보지 않으며 동의 못하는 구석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내 주장 입론이 대의에서는 80프로 이상 옳다고 본다. 예컨대 토기 타령 축조기술 타령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누가 거부할 .. 2023. 11. 11.
로마는 여전히 1953년 오드리 햅번의 시대? 내가 노땅 행세 아무리 한대도, 또 가끔씩 로마의 휴일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저 영화는 내 세대가 아니라 선친 세대다. 저 영화가 나온 때가 1953년 한국전쟁 종결하던 시점이니,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내가 저 영화를 소비하면서 저를 잠시나마 이런저런 자리에서 불러내는 힘은 어린시절 주말을 명화에 말미암는다. KBS인가 MBC인가 매주말이면 외화 1편씩을 상영했으니, 그때야 저 영화가 언제적 만든 것인지 관심이나 있었겠는가? OK목장의 결투니 황야의 무법자니 하는 서부영화가 활개하던 시대에 권총 찬 존 웨인 흉내를 내기도 한 힘이 시간을 초월하는 그런 상영 때문이었다. 요새야 이 업계에서도 인디아나 존스조차 주말의 명화 시대로 접어들었으니, 그러고 보면 불과 반세기 전, 혹은 그.. 2023. 11. 11.
약밥의 기원 필자는 청동기시대 토기가 그안에 물을 부어 조리하는 방식으로는 밥을 만들수 없고 용기의 특성상 아마 밥을 쪄서 만들었을 것이란 가정 하에 곡물을 쪄서 만들어보는 실험을 몇 가지 해 보았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찐밥을 상당히 오래 먹어왔기 때문에 찐밥에서 뜸들이는 밥으로 전환하여 지금같은 밥 짓기가 정착했으리라 보고, 그 전환에는 무쇠솥 등의 발명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 보았다. 막상 찐밥을 만들어 보니 결국 청동기시대 시루밥이 가능하냐 아니냐의 여부는 뚜꼉이 제대로 기능했느냐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지금도 먹는 "약밥"의 레시피가 사실 이런 찐밥 레시피와 같다는 것이다. 1. 찹쌀을 물에 불려 시루에 쪄낸다. (찰밥 짓기) 2. 쪄낸 쌀에 감미료,[3] 기름, 간장 등을 섞어.. 2023. 11. 11.
우중에 야경까지 담은 베네치아광장 트리아누스 원추 오늘 늘어지게 뻗었다가 이 친구 촬영하겠다 해서 오후 늦게 숙소에서 길을 나섰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또 비가 퍼부었다. 다행히 장대비 쏟아지기 전이기는 했지만 영 촬영환경이 좋지는 아니했으며 무엇보다 주변이 온통 공사판이라 여건이 더 좋지 아니했다. 낮에 정밀촬영하고선 인근 베네치아미술관 들렀다 나서니 칠흑이라 마침 비도 그치고 야간 조명을 해서 다시 한 바퀴 돌면 야경을 담는다. 무슨 정신 나간 놈들인지 유적 드글드글한 이 베네치아광장과 인근 코앞이기는 하나 콜로세움을 연결하는 지하철공사는 그때나지금이나 변한 거 없이 온통 공사막이고 주변은 발굴과 복원으로 어지러우니 이 시대 최고신은 아시바 맞다. 이 친구는 로마시대사를 조각 혹은 부조라는 기법으로 증언하는 일급 사료 중 하나라 해서 로마사 기술에선.. 2023. 11. 11.
누룽지가 없는 시루 밥짓기 쌀을 냄비에 담아 밥을 지으면 아무리 잘지어도 바닥에는 탄 쌀의 층, 쉽게 말해 누룽지가 생긴다. 시루에 종이 (천)를 깔고 밥을 해 보니, 누룽지가 없다. 누룽지가 있어야 숭늉도 있을 거 아니겠는가? 누룽지와 숭늉은 쇠 솥이 없던 시절에는 맛보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고 보면 누룽지와 숭늉은 삼국시대나 되야 한국인의 식단에 등장했을 수도 있겠다. 2023. 11. 10.
청동기시대 시루는 떡을 쪄내는 용도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뭔지 모르겠지만 청동기시대 시루는 떡을 쪄내는 용도가 아니다. 청동기시대 시루가 나오는 것을 보고, 청동기시대 한국인 주식은 떡이라고 하는 주장도 봤는데, 그게 아니고 곡물을 씻어 적당히 불렸다가 쪄내면 거의 전기밥통 수준의 밥이 나온다. 생각보다 훨씬 밥이 잘 지어져 놀랐다. 필자 세대 사람들은 찐밥 하면 학생식당과 군대밥의 추억이 너무 강한데, 쪄서 먹어보니 시루밥은 그런 요즘 식 찐밥과는 완전히 달랐고, 오히려 고두밥에 매우 가까운 것이었다. 곡물을 잘 씻어 불렸다가 시루에 넣고 30분만 쪄보면 필자의 말 뜻을 알 수 있다. 이런 밥이 나온다는 것은 밥-반찬으로 이루어진 한식 포맷이 이미 청동기시대에 완성되었을 가능성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주식인 곡물밥이 완성되면, 부식을 준비.. 2023. 11. 10.
다음 테스트는? 잡곡을 쪄내기 필자의 다음 테스트는, 쌀 이외에 다른 잡곡도 쪄서 익겠는가 하는 것이 되겠다. 이를 위해 청동기 시대 작물인 조, 피, 수수, 보리, 기장, 팥 등을 쪄서 익혀 보겠다. 필자 생각으로는 청동기 시대 시루가 음식 조리 기구로 성공적으로 기능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뚜껑이다. 뚜껑이 나오는 게 없다는 것은 그 뚜껑이 유기물이었다는 소리일 테고, 아마도 나무 뚜껑이었을 터이다. 나무뚜껑을 토기위에 엊고 적당한 무게의 돌을 얹지 않았을까? 이러한 작업이 테스트로 확인되면, 청동기시대 곡물은 어떻게 익혀 먹었는가에 대한 시사점을 얻지 않을까. 2023.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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