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991 [1차 고려거란전쟁] (1) 뻘짓한 고려 편의상 고려거란전쟁을 세 차례 있었다 하지만, 누누이 말했듯이 그것 말고도 두 왕조 사이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끝임없이 벌어졌다. 치열한 탐색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그 서막을 연 것이 널리 알려졌듯이 993년, 고려 성종 12년, 요遼 통화統和 11년에 펼쳐진 제1차 전쟁이라 이 전쟁이 실은 두 왕조에 모두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거란 부마 소손녕蕭遜寧이 자칭 80만을 이끌고 국경을 넘었다 했지만 이는 개뻥이며, 실제 동원한 군사는 절반도 안 된다. 쪽수가 많다 해서 겁박했을 뿐이다. 다행해 이 전쟁이 이렇다 할 충돌없이 외교협상으로 끝나서 그렇지망정이지 하마터면 고려 국토가 초토화할 뻔 했다. 우리는 이 조우에서 세 치 혀 서희에 의한 이른바 강동육주 획득을 한국 역사상 가장 빛나는 외교협.. 2024. 3. 1. 朝鮮総督府設置ニ関スル件[조선총독부설치에 관한 건] 朕枢密顧問ノ諮詢ヲ経テ朝鮮総督府設置ニ関スル件ヲ裁可シ並ニ之ヲ公布セシム 睦仁 内閣総理大臣侯爵桂太郎 勅令第三百十九号 朝鮮ニ朝鮮総督府ヲ置ク 朝鮮総督府ニ朝鮮総督ヲ置キ委任ノ範囲内ニ於テ陸海軍ヲ統率シ一切ノ政務ヲ統括セシム 統監府及其ノ所属官署ハ当分ノ内之ヲ存置シ朝鮮総督ノ職務ハ統監ヲシテ之ヲ行ハシム 従来韓国政府ニ属シタル官庁ハ内閣及表勲院ヲ除クノ外朝鮮総督府所属官署ト看做シ当分ノ内之ヲ存置ス 前項ノ官署ニ在勤スル官吏ニ関シテハ旧韓国政府ニ在勤中ト同一ノ取扱ヲ為ス但シ旧韓国法規ニ依ル親任官ハ親任官ノ待遇、勅任官ハ勅任官ノ待遇、奏任官ハ奏任官ノ待遇、判任官ハ判任官ノ待遇ヲ受クルモノトシ尚在官 朝鮮総督府設置ニ関スル件・御署名原本・明治四十三年・勅令第三百十九号 行政文書*内閣・総理府太政官・内閣関係御署名原本(明治)明治43年勅令 請求番号 御08512100 保存場所 分館 作成.. 2024. 3. 1. 조선총독은 과연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가? 1910년, 일본 메이지明治 43년 8월 29일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에 따라 일본은 조선통치를 전담할 현지 기관으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한다. 다만 시급성 때문에 기존 조선통감부와 그 소속 관서官署를 존치하는 한편 기존 통감을 조선총독 업무를 맡겼다. 나아가 대한제국 정부에 속한 여러 관청도 조선총독부 소속 관서로 간주되어 당분간 존치케 했다. 그러다가 제반 준비가 완전히 갖추었다고 판단한 한 달 뒤, 동년 9월 30일 ‘조선총독부 및 소속 관서 관제’를 공포하고 10월 1일자로 이를 시행했다. 공포와 시행이 하루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이에 육군대신이자 자작인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이날짜로 이날 조선총독 겸임을 명받는 한편, 정무총감에는 야마가타 이사부로가 임명되었다. 바로 이 날짜가 훗날 매년 10월 1일을.. 2024. 2. 29. 산송山訟을 쓸어버린 조선총독부 묘지규칙 4. 묘지규칙[221] 1) 종전의 폐풍 조선은 예로부터 묘지 존중의 관념이 깊었는데, 여기에는 여러 미신이 수반되어 선조의 묘지가 좋고 나쁨에 자손들의 화복이 결정된다는 풍수설이 견고하여 뿌리 뽑을 수 없는 관념으로 굳어졌다. 따라서 풍수가가 가리키는 묘지는 전 재산을 바쳐서라도 이를 얻으려 하였고, 얻을 수 없으면 남의 토지라고 해도 그것을 범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심한 경우에는 타인의 분묘를 발굴發掘하여 자가自家에서 사용하는 경우도 적 지 않았다. 이로부터 범죄자가 속출하고 항상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묘지와 관련된 민사 소송에서는 가산을 탕진하면서도 이를 다투었다. 그 결과 분묘가 도처에 산재하 여 풍속·교화 및 위생에 해를 끼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양호한 경지를 황폐하게 하고 민력民力.. 2024. 2. 29. 조선총독부 시정25년사가 정리한 3.1만세운동 2) 시국에 대한 조치 1914년(大正 3) 8월 구주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일본제국은 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 리제국과의 국교를 단절하였고, 선전宣戰의 조칙이 내려졌다. 이에 데라우치 총독은 특 별히 유달諭達(8월 24일)을 발표하여 관내 일반 관민에게 고하였다. 여기서 충실히 성의 聖意를 받들어 봉공奉公의 정성을 다하고, 제국의 위무威武1)를 신뢰하여 냉정하게 본업 에 힘쓰며, 유언비어를 경계하여 인심의 동요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일반 인민에게 경거망동을 깊이 경계시키는 한편, 신문·잡지 등의 기사에 대 해서는 경무총감부를 통해 엄중히 단속하게 하였다. 당시 인심이 다소 흥분되는 조짐이 있었지만, 교주만膠州灣의 함락(1914년 11월 7일 開城)과 함께 민심이 완전히 평온하게 .. 2024. 2. 29. [비형랑과 화랑세기] (4) 전군殿君의 조건과 예외 모계 혈통이 만드는 사자私子와 사녀私女 《화랑세기》에 보이는 용어들에 대한 개념 정의는 계속 다듬는 중이다. 특히 친족 관련 용어에 대한 개념 정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번에 다른 전군과 사자 사녀, 그리고 이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사매私妹 같은 개념에 대한 정리는 궁극으로 내성사신內省私臣에 대한 실체를 파헤치는 지름길이라고 나는 본다. 내성사신은 내가 간단히 언급했지만 이는 忠하는 대상이 王이 아니다. 내성사신은 왕의 모후를 비롯한 왕실 여성들에게 忠하는 臣이다. 公과 私를 엄밀히 구분한 신라의 시스템을 엿보게 한다. 그만큼 전군이며 하는 개념들이 중요하다. 용수와 용춘의 전기가 모두 수록되었을 《전군열기殿君列記》는 그 명칭으로 보아 왕자들 열전이다. 《화랑세기》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전군殿君은 원칙으로는 아버지가 왕인 왕자 중에서도 왕위 계.. 2024. 2. 28. 이전 1 ··· 244 245 246 247 248 249 250 ··· 49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