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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황사에서 미세먼지, 미세먼지에서 초미세먼지로 <그제 서울의 미세먼지>내가 20여년 전 기상청 출입기자인 시절에는 미세먼지라는 기상 용어는 없었다. 그때는 모두 '황사(黃沙)'라 했으며, 그 진원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중국발 사막모래였다. 고비사막에서 황사가 발생해 편서풍을 타고는 한반도로 날아든다 해서, 그런 고비사막을 초원과 수풀로 만들겠다 해서, 현지로 가서 사방공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던 황사가 어느 순간 '미세먼지'라는 말로 교체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그것으로도 부족함인지 '초미세먼지'라는 말로 대체되는 장면을 목도한다. 나아가 중국발 황사도 슬그머니 기어들어가더니, 그 원인 중 하나로 전락하고, 다른 발생 원인을 찾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명칭이야 무엇이건 '흙비'라는 검색어로 내가 과거에 송고한 기사 내역을 뽑아봤더니 2건이 걸러..
日本後紀・船の記録 日本後紀・船の記録日本後紀에서 船에 関한 記述과 朝鮮半島와의 往来에 関한 記述을 抽出한다. 平安時代 船を研究하기 위한 資料収集이 목적이다. 日本後紀는 吉川弘文館 新訂増補国史大系日本後紀에 의한다. 逸文에 대해서는 講談社学術文庫・森田悌の日本後紀(上、中、下) 를 따랐다. 巻四 桓武天皇延暦 14年(795) 11月 3日, 出羽国이 申했다. “渤海国使 呂定琳 等 68人이 夷地志理波村에 漂着했다”延暦 15年(796) 4月 27日, 渤海国이 使를 遣하여 方物을 献上했다. 【渤海国王 大欽茂의 죽음을 전해왔다】同年 5月17日, 渤海国使 呂定琳 等이 帰国することになった. 正六位上인 上野介御長真人広岳과 正六位上인 行式部大録桑原公秋成 等에게 渤海国使 等을 따라가게 했다.【天平勝宝より以前にもたらされた数度の渤海国王の啓は文体が整い、言..
지옥과도 같은 나날들 나는 미군 방위였다. 1987년 11월 20일, 논산훈련소 제30연대에 훈련병으로 입대해서는 한달간 교육받고, 같은 훈련소 30연대로 옮겨가 다시 한달 훈련을 받고, 평택 주한미군 군사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로 가서 그곳 카투사 훈련소인 KRTC에서 다시 한 달을 훈련받고는 석달 만에 미군 제501여단 산하 캠프 험프리스 제3정보대대에 배속되어 모학이라는 정찰기 정비소 Tool Room에 근무하고는 1990년 2월 15일,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이등병 월급은 4천원인가 5천원으로 기억하며, 제대할 당시 병장 월급은 만원이 채 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군번은 71131676이다. 용돈 마련을 위해 미군인지 한국군에서 지원하는 군사용품 무슨 kit인가는 자주 시장에 내다 팔았으며, 1년에 한 ..
구제역이 작살 낸 고향 <구제역 방역..연합DB>소 구제역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11년 2월 4일 설날 무렵 고향 풍경 일단을 읊조린 과거 블로그 글인데, 이 시대를 증언하는 한 단면이라 생각해 전재한다. 며느리, 손자와 함께 왔다는 말에 전을 부치던 老母는 반가움과 더불어 떠들지 말고 빨리 방에 들어와 조용히 있으란다. 그만큼 고향은 뒤숭숭했다. 해마다 이맘쯤이면 동네 서원 앞마당에는 외부에서 온 차량이 빼곡해야 하지만, 올해는 김천역에서 우리 가족을 실어온 동생 차밖에 없다.언제부턴가 고향 명절이 명절답지 않다고 여겼거니와, 올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한 까닭은 바로 구제역 때문이었다. 듣자니 소를 키우는 옆집, 뒷집에는 아예 자식들이 오지 않았단다. 동네에서도 제 아무리 이 동네 출신이라도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했다.그..
번데기를 먹는 인간들 <낙안읍성에서 어제>우리 집은 어린 시절에 누에를 쳤다. 이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꼭 이맘쯤이라, 뽕에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누에 농사를 시작한다. 누에를 치는 방이라고 그 좁은 산골 마을에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 일상 주거공간이 곧 누에실이라, 우리가 자는 방엔 시렁을 쳐서 칸을 만들고, 그 칸마다 누에를 슨다. 누에 치는 방은 항상 일정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온실이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군불을 때야 한다. 그런 뜨끈한 방에서 누에랑 우리는 기거를 함께 한다. 누에가 자라는 속도는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광년光年이라, 이것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엄청 쳐먹기 시작한다. 쉴새없이 뽕을 따다 날라야 한다. 젤로 곤혹스러운 때가, 누에가 한창 자라기..
포대화상의 시대 실명을 적시하기 곤란한 전남 지역 한 사찰에 철퍼덕 걸터앉은 포대화상이다. 그가 주는 익살성 때문인지, 아니면 현전하는 그에 행적이 현대사회에 맞은 매력성이 있기 때문인지 국내 사찰마다 이런 포대화상 하나 안치하지 않은 사찰이 없다시피 하다.그에 관한 증언들을 종합하면 포대는 당말~송초 교체기 중간에 낀 오대 시대를 살다간 중국 불교승려다. 생김새는 저 조각과 같이 묘사되지만, 실은 저리 웃는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 우락부락했다고 하거니와, 저 몸매를 유지하고자, 혹은 저 몸매가 되기까지 게걸스레 걸리는대로 남들한테 얻어먹으나, 반면 베풀기를 잘 했다 하니, 특히 어린이들한테 잘 했다 한다. 생김새만 보면 일본 스모선수 혹은 과거 씨름판에서 익살성으로 이름을 날린 박광덕과 흡사하다. 활동 시기가 저러..
카이사르에서 시저로, 시저에서 짜르로 우리가 잘 아는 줄리어스 시저는 말할 것도 없이 라틴어가 모국어다. 현대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직접 조상이다. 시저 시대 문맹률은 압도적으로 높기는 했지만, 시저를 필두로 하는 식자층은 문자 기록 시대라, 우리한테 익숙한 그 라틴 알파벳으로 편지를 쓰고, 논문을 쓰고, 책을 썼다. 시저 풀네임은 라틴어 표기가 Gaius Iulius Caesar이다. 그가 정복한 땅 중에 Britannia가 있으니, 이는 곧 Britain, 영국을 지칭하는 고전시대 라틴어 지명이다. 나아가 그와 더불어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함께 제1차 삼두정치를 형성한 로마 장군이 있어, 마르쿠스 ..
기자사회와 골프, 내가 본 꼴불견 나는 골프를 치지 아니한다. 친 적도 없으며 쳐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골프채는 딱 한번 잡아봤다. 1986년인가였다고 기억하거니와 대구 출신 부잣집 아들이 친구라, 그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골프장이 있어 한 번 가서 골프채 한 번 휘둘러봤다.남들 어찌 생각할지 모르나, 나는 골프에 대한 경멸이 있다. 골프 그 자체가 운동 혹은 레크리에이션으로 지닌 고유 가치를 부정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경멸한 것은 그것을 두고 벌어지는 행태였다. 내가 기자 생활 초입 시절, 젤로 꼴뵈기 싫은 놈들 행태가 부장 혹은 그 이상 놈들이었다. 물론 다 그러한 건 아니지만, 상당수 보직 간부라는 놈들이 틈만 나면 의자에서 자빠자거나, 깨어있을 땐 언제나 부장 자리에서 골프 스윙 연습만 했다.그때 나는 저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