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897 나주 가다 절강성 밟은 운명, 금남선생표해록錦南先生漂海錄 금남선생표해록錦南先生漂海錄 조선 ㅣ종이 ㅣ 고고민속 13157 저자: 최부崔溥(1454~1504) 1487년(성종 18년) 제주추쇄경차관濟州推刷敬差官으로 제주에 부임한 금남錦南 최부崔溥(1454~1504)는 이듬해 1월 부친상을 당해 육지로 출발했으나 폭풍을 만나 29일 동안 표류한 끝에 중국 절강성浙江省 영파부寧波府에 이르렀고 같은 해 7월에 귀국하게 된 사건을 기록한 일기 형식의 표류기다. 지금은 최부 표해록 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기행문학의 금자탑은 불운이 내린 선물이었다. *** 서울역사박물관 홀에 섹션 전시 중이다. 제주서 가져왔다. 2023. 6. 8. 일제시대의 지식인: [23] 김수환 한국 최초의 천주교 추기경 김수환의 일제시대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보통학교 (6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서울 동성상업 을조 (1935-1941) -- 일본 조치(上智)대학 (1941-1944) (문학부 철학과? 예과?) 의외로 온라인에는 추기경에 대한 프로필이 자세하지 않은데 여러 군데 기록을 긁어모아 보면 위와 같다. 보통학교 6년 졸업 후 중등과정으로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를 거쳐 서울 동성상업 을조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동성상업은 목포상업 등처럼 보통학교 6년을 마친 후 진학하는 실업학교였다. 중등과정에 재학한 기간이 6년으로 1년 정도 더 긴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당시 동성상업 을조는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이른바 "소신학교"였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2023. 6. 8.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어질한 유리 외벽 닦이 이 작업을 지칭하는 말이 따로 있을 듯해서 물었더니 외부 유리 코킹 인가? 이렇게 부른댄다. 워낙 위험한 일이라 생명수당 같은 게 따로 있어 일당은 쎄다고 들었다. 일전에 우리 공장 옥상에서 밧줄 타고 내려가는 짬을 내는 저분들을 인터뷰 비스무리하게 한 적 있는데 그 팀원들은 특수부대 출신들로 군기도 쎄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내려다보기는커녕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나같은 넘은 근처도 못가는 일이다. 요새 부쩍 유리 외벽 닦기가 잦은 듯하다. 황사 혹은 미세먼지 시즌이 한물 가서인가? 2023. 6. 8. “오리알 빛 같은 하늘” 을 펼친 최찬식 《추월색秋月色》 시름없이 오가던 가을비가 그치고 슬슬 부는 서풍이 쌓인 구름을 쓸어보내더니 오리알 빛 같은 하늘에 티끌 한 점 없어지고 교교한 추월색이 천지에 가득하니 이때는 사람사람마다 공기 신선한 곳에 한번 산보할 생각이 도저히 나겠더라. 최찬식崔瓚植[1881. 8. 16~1951. 1. 10] 신소설 《추월색秋月色》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에는 시집 장가를 이렇게 정의하는 구절도 발견된다. 시집장가란 무엇인가? "장가는 내가 너한테 절하는 것이요, 시집은 네가 우리집에 와서 사는 것이란다." (2013. 6. 8) *** 구한말~식민지시대 초창기 신소설로 일컫는 대중소설 작가군에 속하는 최찬식崔瓚植은 이 무렵 「안의 성」, 「금강문」, 「도화원」, 「능라도」, 「춘몽」을 비롯한 일련의 작품을 연이어 발표한다... 2023. 6. 8. 부여논산가도가 절단낸 부여나성 부여와 논산을 연결하는 도로는 식민지시대 개설되었다. 이 부여논산가도는 백제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결정타였거니와 이 도로 개설을 즈음해 비로소 부여 나성이 속살을 드러냈다. 나아가 가도가 지나는 근처를 따라 백제고분이 밀집한다는 사실도 비로소 드러났으니, 능산리 고분군이 문화재로 재발견된 것으로 이때였고, 그 인근 다른 고분군들도 이때서야 존재를 드러냈다. 언제 짬이 나면 이 가도의 역사 자체를 정리하픈 생각도 굴뚝처럼 솟아난다. 하지만 지난 1년, 하도 능산리에 질린 까닭에 당분간은 숨고르기가 필요할 듯하다. 첨부 유리건판 사진은 틀림없이 그 가도가 통과하면서 절개한 나성 동문, 능산리사지 인접 지점인 듯한데, 자신은 없다. (2017. 6. 8) 2023. 6. 8. 엄동설한 야간에 후레시 켜고 발굴한 백제금동향로 널리 알려진 능산리 사지 이른바 추정 공방지 백제금동향로 출토 장면이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노출 등을 조정해 보니 야간 발굴이었음이 더욱 명백해진다. 후래시를 썼던 것이다. 졸저에 정리했듯이 지금 세종문화재연구원 실장으로 있는 진성섭선생과 지금 서라벌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단장 차순철 선생이 맨손으로 엄동설한에 야간에 팠다. 저 사진은 진 선생이 찍었다. 발굴 직후엔 금박이 비교적 완연했으나 부여박물관으로 옮긴 직후 뜨거운 물을 퍼부어 씻을 적에 금박이 많이 흘려내렸다는 후문도 있다. 적지 않은 문제를 노출한 엄동설한 야간발굴이었다. 2023. 6. 8. 이전 1 ··· 2091 2092 2093 2094 2095 2096 2097 ··· 398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