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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1920~1999 에서 반추하는 아버지 지난 보름 정도는 이 양반을 죽어라 팠다. 김재근金在瑾..한국선박사 조선사에서는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연구자요 조선공학도다. 서울대출판부라는 데서 이른바 학술서적이라 해서 그 특유한 판형 디자인으로 내던 시절 거의 유일한 한선韓船 연구서는 그의 독보하는 업적이었다. 그가 이 책을 내던 시절 그 실물이라 해봐야 안압지 통통배랑 신안선이랑 완도선 꼴랑 세 척이었으니 그의 지난한 삶을 알겠다. 한선은 평저선이라는 선언도 저때 나온 것으로 안다. 다행히 그는 수상록 회고록 자서전이라 할 만한 글도 제법 남겼으니 어찌하여 개중 하나가 헌책방서 나한테 용케 걸려들어 궁금하던 차 그를 파게 되었고 또 그를 통해 한국선박사와 한국 조선사까지 얼추 따라가게 되었다. 다만 내가 안타까운 점은 나는 저 양반을 직접 접.. 2023. 8. 3.
공존? 염탐? 농가무? 2017년 6월 7일 새벽 나는 차를 몰고 원주로 달렸다. 동이 트고 태양이 어느 정도 오를 즈음 나는 원주시 부론면 남한강에 도착했다. 저 백로 한 마리는 왜 낚시꾼 꽁무니를 배회할까? 나는 아직 그 의문을 풀지 못했다. 서해를 향해 달리는 남한강 너머 저 산 중턱으로 구름이 걸렸다. 시간이 조금 흘러 두물머리 흥원창 자리에서 섰을 땐 황화의 물결이 넘실댔다. 2023. 8. 3.
뽑아버린 톤유쿡 비문에서 지광국사현묘탑을 경고한다 7월 28일 튀르크학 언어 전공자인 이용성 선생이 언어학과 박상철 교수가 좀 전에 보내줬습니다. Tunyukuk 비문이 이제 해체되어 건물 안에 있네요. 라는 메시지와 함께 첨부해준 사진들인데 그대로 인용해도 되는지 원저자 동의를 구하지 못해 주저 중이었는데 마침 노마드학 전공자인 경상대 정재훈 교수가 아마도 같은 출처일 듯한 사진을 공개하며 분개하기에 더는 미룰 수 없어 공개한다. 혹 원 촬영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라도 내릴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터키 쪽에서 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하는 꼬라지 발상은 저 꼴로 지광국사현묘탑도 전시관 안에 두거나 현지 보호각을 씌워야 한다 주장하는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도들 발상과 똑같다. 지광국사탑은 죽어도 본래 자리로 가야 하며 죽어도 그 자리서 비 맞고 .. 2023. 8. 2.
독일에서 만난 맨발의 안희정, 낙마한 그에게 부탁한 해저박물관 대선 주자들 봉인이 풀렸으니 이번에는 안희정 얘기를 좀 해 볼까 한다. 첨부 사진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에 등재한 2015년 7월 독일 본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39차 회의 몇 장면이다. 그는 백제역사유적지구 중 공주와 부여 지구를 포함하는 충남도지사이니 당연히 이 자리에 부하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여담이지만, 이 기간 그가 독일에서 보인 행동에 매료되어 그의 팬이 된 사람들이 좀 있다. 그만큼 그는 직접 겪어보면 매력적인 사람이다. 이런 그가 이후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초반기 돌풍을 일으킬 때는 그만한 인재라는 생각을 나는 하기도 했다. 그가 이번 대선에서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 첫 장면은 회의장이다. 그의 옆에 앉아 내가 그를 일부러 시간을 두고.. 2023. 8. 2.
사적으로 격상한 장수 침령산성 이 전북 장수 침령산성 관련 발굴소식은 이곳에서도 여러 번 전했으니, 그런 기존 소식들은 맨 아래 첨부하는 관련 링크를 참조해주시압. 이런 성과를 토대로 문화재청이 성벽 기준 둘레 497m인 이 산성을 7세기 초 백제가 축조한 후 고려 초기까지 사용했으며, 낙동강 유역의 신라세력과 금강 유역의 백제 세력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이유를 달라 사적 지정을 했거니와 기존에 소개한 사진들이기는 하지만, 이참에 관련 성과를 일목으로 요연하게 보는 효과도 있어 새삼 소개한다. ‘침령’이라는 명칭은 이 일대 고개 이름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만기요람」, 「대동지지」, 「해동지도」, 「대동여지도」 등의 조선시대 지리지를 보면 ‘침치’, ‘침치고성’, ‘침령’으로 보인다. 2005년 정밀지표조사 이래 20.. 2023. 8. 2.
대학박물관 문제(輔), 무한경쟁만이 살 길이다 앞서 지적한 대학박물관 문제를 스스로 타개하고자 하는 노력이 박물관 업계 혹은 대학박물관계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고 말했지만, 실은 내 기억에 대략 15년전쯤으로 기억하는데, 그 어간에 이 문제가 심각히 대두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문화재 말고도 문체부도 담당하기도 했으니, 그때 기억이 또렷하다. 왜? 나 역시 그것을 위해 힘을 보태고자 했고, 무엇보다 당시 문체부에서도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서는 교육부 쪽에다가 꾸준히 이 문제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종합대학의 경우 그 설립 인가 조건에 박물관이 있어야 함을 규정하기는 했다가 그것이 어느 시점에 빠져버렸고, 이를 심각히 여긴 문체부와 박물관업계가 그 타개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으며, 당시 그에 대한 요청이 나한테도 들어왔다. 하지만 이 운동은 이내 ..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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