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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와 그 이웃-39] 그릇이 식사법을 말한다 앞서 쓴 그릇과 식사법 이야길 조금 더 해 본다.유명한 무용총 벽화 한 장면이다. 여기서 필자가 이야기하고픈 것은 바로 주인 내외로 보이는 두 사람의 앞에 나온 밥상이다. 겸상하지 않고 각자 밥상을 받았다. 사이에는 식사를 돕는 사람이 있다. 이 밥상의 모양을 보자. 그리고 현대한국인의 밥상을 보자.뭔가 닮아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결국 그릇 종류와 배치는 식사법을 말해준다고 본다. 반면 마왕퇴 밥상차림을 보자.이런 배치라면 식사법이 달랐을 것이다. 결론은 결국,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인의 밥상차림 연원은 상당히 올라갈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밥상차림은 마왕퇴와는 달라 보인다는 뜻이다. 이는 곧 식사법이 우리와는 뭔가 달랐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본다.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38] 밥을 어떻게 먹었을까? 위 사진은 필자의 글에 김단장께서 붙여준 사진이다. 여기서 간단한 의문이 있다. 밥을 어떻게 담아 어떻게 먹었을까? 일단 젓가락만 놓여 있는데, 필자가 아는 한 중국에서는 한국처럼 원래 수저가 다 있다가 숟가락이 탈락한 것으로 안다. 저 위에 밥상을 세팅한 이는 현대 중국인의 밥먹는 방식에 따라 저렇게 놓지 않았을까. 과연 숟가락이 없었을까. 또 한 가지-. 밥을 주식인 곡물에 반찬을 곁들여 먹는 한국식 밥상 비스무리하게 차려 먹었을까. 밥상을 저렇게 차리면 비슷한 모양 다섯 개 칠기 그릇에는 요리가 각각 담겨 있었을까. 제일 왼쪽의 그릇 두 개가 하나는 국그릇, 다른 하나는 밥그릇일까? 모르는 것투성이이다. 2025. 3. 8.
[마왕퇴와 그 이웃-37] 관을 가득 채운 의문의 액체 마왕퇴 발굴 당시 관련자들의 주목을 끈것은 관속 액체였다. 마왕퇴는 전한 제후왕의 예에 따라 여러 겹 관곽이 포개져 있었는데 마지막 관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상당량의 액체가 바닥에 차 있었고 썩지 않은 유물은 바로 그 액체 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마왕퇴 무덤이 처음 열렸을 당시 하나도 썩지 않은 시신과 유물을 보고중국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은 부패하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처리된 것이라 보았다. 시신을 부패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원망은 사실 한대에 전혀 없던 것도 아니었고 그 시대에 시도했던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마침내 성공을 거두어 시신과 유물이 잘 남았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관을 열었을 떄 유물은 물론 시신까지 완벽하게 남은 것을 보고 당시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은 .. 2025. 3. 8.
[마왕퇴와 그 이웃- 36]: 마왕퇴 미라가 드신 음식들 역사와 고고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마왕퇴 하면 역시 그 호화찬란한 유물이겠지만 필자에게는 관심이 이 무덤에서 나온 먹거리에 있다. 1호묘에서는 많은 농산물 흔적이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대나무로 짠 바구니나 항아리, 자루 등에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물들이 발견되었을까? 그 종류를 보면 이렇다. 먼저 곡물에는 벼, 보리, 밀, 수수, 기장, 팥, 조, 콩 등이 있고기타 작물에는 뽕나무 열매 (오디), 해바라기, 겨자, 생강, 연근, 계피, 산초, 대마초, 오이 등이 있었다. 과일에는 딸기, 대추, 매실, 산복숭아, 배, 감 등이 있었는데 1호묘에서 발견된 미라가 되신 분 위장에서 발견된 참외 씨가 그 중 이채롭다. 이는 중국 쪽 기록을 보면 甜瓜라 되어 있어 멜론 종류인 것은 알겠는데, 이것.. 2025. 3. 8.
[마왕퇴와 그 이웃-35] 청동기시대의 비단옷 청동기시대 비단옷이라고 하면 대개 반응이 그 시대에 무슨 비단옷이라는 반응이 나오겠다. 그런데-. 중국은 양잠해서 비단을 신석기시대에 했다.용산문화기에는 이미 비단 생산이 완전히 정착했다고 하니까. 농경이 본격화한 청동기시대에 양잠에 비단이라고 해도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솔까 우리가 신석기시대에 예컨대 비단옷을 걸쳤다한 들, 혹 늦잡아 청동기시대 걸쳤다한들 그게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양잠에 비단이라고 하면 요즘 보는 초고급 실크만 연상을 해서 그런데, 누에실로 짠 직물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우리나 일본의 경우는 농경 도입이 늦어 중국의 신석기시대에 볼 수 있는 변화가 청동기시대에나 뚜렷이 나타난다는 시각이 학계에 있다는 점-. 잘 안다. 다만 이런 부분은 한 번 생각해.. 2025. 3. 8.
유전학이 드러낸 훈족, 동양피도 있고 혼종이 심했다! 흉노족 연관성 부정할 수도 없어 4세기 후반에 유럽 역사를 바꾼 강력한 유목민 전사인 훈족의 기원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의 주제가 되었다. 과거에 전문가들은 훈족이 몽골 대초원을 지배했지만 서기 100년경에 붕괴된 제국인 흉노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흉노가 붕괴된 후 유럽에서 훈족이 출현하기까지 3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역사상 미스터리였다.최근의 유전학 연구에서 이 오래된 의문에 새로운 빛을 던졌다.유전학자, 고고학자, 역사가로 구성된 팀이 370개 고대 유전체를 분석했다.이 샘플은 기원전 200년에서 서기 600년까지 약 800년에 걸쳐 있다. 이 연구는 유럽연구위원회European Research Council에서 자금을 지원한 HistoGenes 프로젝트 일부다. 부다페스트 소재 막스.. 2025.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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