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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579

부끄럽다 피한 적 없다 전문가입네 문화재 애호가입네 하는 사람 난 믿지 않는다. 배에 칼이 들어오고 목구녕으로 쇠꼬챙이 날아들어도 쑤셔라 외치며 막아서는 사람을 나는 전문가라 하며 문화재 애호가라 한다. 떼거리 뒤에 숨어서 무슨 학회입네 하는데 겨우 이름 하나 걸쳐 놓고는 성명서 한 장 딜링 그 학회, 것도 연대보증 받아서는 몇 개 학회가 공동서명했네 하며 내가 전문가입네 문화재 애호가입네 하는 넘들 구토난다. 틈만 나면 정부더러 국가더러 책임지라는 책임지지 못할 말 일삼으며 그걸로 내 할 일 다 했다고 하는 넘들 구토난다. 적어도 난 그리 살진 않았다. (2021. 8. 15) *** 두렵다 피한 적 없다. 용기 없어 도망한 적 없다. 부끄럽다 숨은 적 없다. 들이받아 깨지더라도 들이받았다. 그렇게 해서 못 지킬 거 지키기도.. 2023. 8. 15.
비닐하우스와 경운기, 농업혁명의 시작 콩알 만한 토마토를 키우는 비닐하우스다. 옛날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농가 수익 작물이다. 동네 형님 젊은 아들 내외가 들어와서 아예 정착해 농업을 생업으로 삼아 자식들 다 공부시키고 한다. 같은 땅이지만 세대가 바뀌고 농법이 바뀌니 농사로도 먹고 사는 시대가 우리 동네에서 열렸다. 포도다. 김천서 포도야 조마가 유명했으니 거긴 감천이라는 낙동강 지류가 만든 충적평야가 발달한 덕분이다. 집 우물가에나 한두 그루 심던 포도가 이 산촌에서도 출하를 목적으로 대량 재배되기 시작했다. 같은 땅인데 주리기만 해서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날에 견주면 격세지감이라 소출도 없는 논을 오로지 먹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주구장창 나락 농사만 지어댔다. 그래서 열 식구가 바글바글 일단은 먹기는 했다. 하지만 농사는 하늘의.. 2023. 8. 14.
국가유산산업전, 갈아 엎고 새판 짜라 그래 역사와 전통이 일천해서라고 하자. 경주시가 만든 행사를 작년인가 재작년부턴가부터 쥐꼬리 만한 국가예산 투입해서 이제 조금은 판을 키우는 초창기라 하자. 하지만 규모가 작다 해서 그것이 표방하는 정신까지 쥐꼬리만해서야 되겠는가? 언제까지 전통안료 전통문양에 격발해 그걸로 만들었다는 굿즈 내놓고선 또 발굴현장이니 보수현장이니 해서 동원한 물품 몇 가지 내어놓고선 그걸로 문화재산업이네 어쩌네 하는 이런 동네 꼬꼬마 행사 언제까지 계속하려는가? 문화재산업이라 하니 고작 실감콘텐츠며 3D스캔이며 메타버스니 어중이떠중이 다 갖다놓고는 그것이 곧 문화재산업인양 떠드는 구멍가게 잔치 그만할 때 아닌가? 자고로 문화재산업이라면 문화재로 떼부자 재벌되기 문화재로 세계 정복하기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는가? 슈가가 대취타.. 2023. 8. 13.
선악의 이분과 적대적 변용 미국의 부시 정권이 악의 축과의 전쟁을 선언하자 국내 지식인 사회 혹은 그 언저리에서는 그것의 부당함을 질타했다. 후세인이 악인의 대명사였는지는 모르겠다. 암튼 그 비판의 이면에는 그런 전쟁을 선포한 미국과 부시정권의 도덕성을 문제삼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나는 이런 선악의 구분이 이십세기 이십일세기에도 통용한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런 나에게 노무현 정부가 들고나온 선악의 이분법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의 이분법보다 그것을 지지하는 일련의 흐름에 실은 경악했다. 그것은 무차별한 학살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데 이런 비판에 저들이 늘 내세우는 반대논거 중 하나가 니들은 안그랬느냐 하면서 이승만 이래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이르는 민주화운동 탄압과 그것을 뒷받침한 반공주의를 내세우기도.. 2023. 8. 13.
농업은 그 자체가 환경파괴 개발과 오염이 싫다며 농촌으로 시골로 산속을 향하곤 한다. 하지만 농업 자체가 실은 환경 파괴의 주범이다. 가을녁 벼로 온통 누른 들녁을 바라보며 혹자는 젓소부인 몇배나 되는 거대한 젓통 드리운 젓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대관령 목장을 바라보며 목가와 자연을 꿈꾸겠지만, 그 자체가 필연의 환경 파괴 소산이다. (2015, 8. 12) *** 돌이켜 보면 상식을 파괴하는 이런 어처구니가 한둘이리오? 2023. 8. 13.
십만양병설 vs. 이순신 기용론 임진왜란 책임론을 둘러싼 당파론 양축은 율곡의 십만양병론과 이순신 기용론이 아니었나 싶다. 십만양병설을 뒤늦게 들고 나온 서인들한테 동인, 특히 류성룡이 내세울 가장 강력한 무기는 이순신이 아니었나 싶다. (2014. 8. 11) *** 십만양병은 당시 조선 사정상 할 수도 없고 해도 소용없었다. 따라서 설혹 율곡의 말대로 십만을 양병했다한들 저런 수치는 없었을 것이란 서인의 가정은 언어도단이다. 이순신을 저 자리로 천거한 이야 류성룡이 맞겠지만 그가 무슨 임란이 있을 줄 알고 저리 선제조치했을 것이며 또 그를 가용한 것은 같은 당파로 그 자리를 채울 만한 이가 이순신밖에 없었기 때문이지 우수마발 없다. 그렇게 기용한 이순신이 불패 신화를 쓴 것은 동인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었다. 이순신이 아니었.. 2023.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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