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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박물관 현황과 연혁] 예산 추사고택과 추사기념관 ➀ 추사고택 현황 ❍ 위 치 :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 면 적 : 토지(75필지, 137,969㎡) 건물(12동, 2,209㎡) ㆍ군유 22,541㎡(33필지)/국․도유 15,003㎡(21필지)/사유 100,425㎡(21필지) ㆍ고택(문간채, 사랑채, 안채, 사당), 추사기념관, 추사체험관, 화순옹주홍문, 관리사, 안내소, 창고, 화장실 2개소 ❏ 추사고택 연혁 - 1976. 3. 29. : 추사고택 정화사업 지시 - 1976. 4. 9. : 추사고택 매수 - 1976. 9. 4. : 추사고택 정화사업 착공 - 1977. 6. 27. : 추사고택 정화사업 준공 - 1977. 9. 22. : 충청남도 추사고택관리사무소 설치 - 1980. 1. 1. : 예산군 이관 및 추사고택관리사무소 설치 변.. 2023. 8. 11.
맨홀과 맨홀 따까리는 구별해야 남들은 전연 그리 여기지 않는데 혹 나만 혹 그런가 해서 못내 쪽팔리기는 하다만, 암튼 맨홀이라고 하면 대뜸 우리는 구멍이 아니라 따까리를 떠올리는데 혹 나 같은 사람 더 있을까 싶어 새삼하게 이 문제를 끌어낸다. 맨홀이란 manhole 이라, 그를 지칭하는 용어로 영어에서는 utility hole 이라든가 maintenance hole, 혹은 sewer hole 같은 유사 표현들이 있나 본데, 그 어떤 경우건 모두가 hole이지, 여기에는 그 따까리 뚜껑에 대한 개념이 없다. 나아가 그것을 수식하는 말에 따라 적절히 씀을 보는데, 유틸러티야 말할 것도 없이 그렇게 마련한 구녕이 다기능임을 말해서 하수구 구멍도 되고 통신케이블 구멍도 된다 해서 쓸 것이요 maintenance야 주로 통신설비를 염두에 둔.. 2023. 8. 11.
우즈벡 답사기: 에필로그 약 일주일 정도 짧은 여행이었지만, 유적 답사 외에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해서 느낀 단상을 몇 가지 정리해보려 한다. 먼저, 첫 느낌은 거리가 너무 깨끗하다는 거였다. 도로며, 인도며 쓰레기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공원이나 유적지에는 환경정화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무엇보다 꽃과 나무 키우는데 진심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공근로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길거리 화단에서 잡초를 뽑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본다. 샤흐리시압즈 공원에서 가로수로 뽕나무가 무척 많았다. 실크로드 도시들이라서 그렇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개인 집앞 화단이나 가로수들은 대부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더욱이 이 무더운 날씨에 화단마다 물을 그득그득 흘러 넘치게 주고 있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리.. 2023. 8. 11.
일본 근대적 교육기관의 기원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일본의 메이지 이전 교육기관의 상당수는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넘어왔는데 이는 일본전통의 보호 같은 한가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일본은 한국과 같은 "학교" 전통이 약하다. 에도시대 이전 제대로 된 "학교"가 없었다. 헤이안시대에 우리의 국학에 해당하는 것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고대의 학문전통은 중세시기에 사찰의 승려와 귀족들을 통해 전수되었다. 이러한 상황이 바뀐 것은 에도시대부터였다. 막부는 막부학문소 (지금의 유가와세이토: 탕도성당), 각 번은 번교를 만들고 그 아래에는 데라코야가 있어 한국의 성균관-서원(향교)-서당과 유사한 형태의 전근대적 교육제도가 완성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우 "교육의 기원"은 막부학문소, 혹은 번교로 보는 시각이 매우 강하다. 한국은.. 2023. 8. 11.
서원철폐는 혹시 경복궁 중건 때문이 아닌가? 필자도 전혀 확인한 부분은 아닌데, 서원철폐: 1865년 경복궁 중건: 1865-1868년 이 부분을 보면 사실 서원철폐가 경복궁 중건 때문이 아니었는지 강하게 의심한다. 요는 서원 철폐 후 대량으로 나왔을 그 땅, 토지 등 재물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봐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만약 국고로 들어갔다면, 결국 경복궁 중건의 재원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것이 만약에 맞다면, 나라의 학교를 헐어다 궁궐을 지은 셈이 되겠다. 이건 물론 필자도 실증적으로 확인 못한 부분이라, 단지 심증일 뿐이라는 것만 알려둔다. *** 이는 중요한 지적인데 서원 철폐가 단순히 서원 문에 빗장을 거는 일로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경복궁 중건은 막대한 재원, 특히 목재를 필요로 하는데 그 목재를 신부재.. 2023. 8. 11.
당파 없앤다고 학교를 다 때려 부순 흥선대원군 이하응 대원군의 서월철폐령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아는 것 같지만 의외로 아는 부분이 많지 않다. 대원군은 당시 당쟁의 온상이자 민폐의 진원지인 서원을 없앤다 하여 각광을 받았는지 어쨌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서월철폐후 조선땅에는 40여 개 잔존 서원을 제외하면 서당 외에는 교육기관이 일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원철폐 후 이를 대체하는 교육기관을 국가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정황을 보면 아마 사실일 것이다. 대원군-고종 연간 상황을 보면 이 시기가 일본 메이시시대에 거의 대응하는데 필자가 이 시기에 조선왕실이 조금만 제정신이고 똑똑했다면 나라가 식민지까지는 가지 않았으리라 이야 하는 부분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근대적 교육기관은 개화를 하게 되면 아무짝에도 소용없을 것.. 2023.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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