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438 부여나성 발굴현장 back to 2016 부여나성 발굴현장. 예상대로 구간을 나눈 흔적이 완연하고 후대보축 성벽도 드러난다. 바깥 성벽 기저부 처리기법도 엿보인다. 알아서 판단해라. (2016. 8. 11) *** 사진 속 주인공은 심상육 선생이다. 저때 나는 해직 중이었다. 2023. 8. 11. 동서양 광자狂者의 만남 동서양 광자狂者의 만남 오르세미술관에서 괜히 한번 가주야대는 곳인 듯 해서 가줬다. 미술관은 입장객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하나 순전히 이는 노이즈 마케팅 덕분이다. 콜렉션 수준은 꽝이라, 습작 수준이며 어디서 긁어다 모은 짜투리들만 잔뜩 갖다놓았다. 인상파 대작도 단 한 점이 없다. 역사驛舍를 재활용한 미술관이라는 점 딱 하나다. 이 전략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왜 미술관을 가는가? Vanity다. 첫째도 둘째도 배너티다. (2017. 8. 11) *** 저 미술관에서 귀짜름 고흐를 조우한다. 2023. 8. 11. 막부 학문소와 동경대학 이제 동경대 이야기를 해 보자. 일본 근대교육제도에서 메이지 초년에 원래 일본 전체에서 대학은 동경제국대학 단 한 개였다. 이러한 상황은 제국대학령에 의해 동경대 외에 쿄토대 등 다른 제국대학이 추가로 설치되면서 달라지게 되었지만, 아무튼 메이지시대의 교육제도 초반은 상당기간은 일본에 대학이 단 한 개만 있는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원래 메이지 정부의 방침은 동경대를 막부의 공식적인 최고학부인 昌平坂学問所를 중심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昌平坂学問所는 강항으로 부터 감화받아 일본최초의 본격적인 성리학자가 된 후지와라 세이카의 제자, 하야시 라잔이 막부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것으로 에도 막부의 명실상부한 최고학부가 되었다. 이 학문소의 유지가 일본 동경 간다역 근처에 가면 아직 남아 있는데 지금은 "유지마.. 2023. 8. 11. 허망한 이인로의 대답, "이거 제 글씹니다"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을 보면 고려 중기에 있었던 어떤 흥미로운 사건을 하나 기록하고 있다. 옛 어른들의 감정 - 흔히 배관拜觀이라고 하는 - 실력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해보도록 하자. 내가 일찍이 높으신 분의 댁[貴家]의 벽에서 초서(草書)가 적힌 족자 두 점을 보았는데, 연기에 그을리고 집안으로 샌 빗물에 젖어 형색이 자못 기이하고 예스러웠다. 그 시에 이르기를, 시가 적힌 단풍잎이 궁궐[鳳城]에서 나오니 紅葉題詩出鳳城 눈물 자국은 먹과 섞이며 오히려 분명하네 淚痕和墨尙分明 궁궐 도랑에 흐르는 물 흐려서 믿을 수 없네 御溝流水渾無賴 궁녀의 한 조각 마음을 흘려보냈다기에 漏洩宮娥一片情 이라고 하였다. 좌중 손님들이 모두 머리를 모아 보면서 당唐 · 송宋 시절 사람의 필체라 여겼다. 분.. 2023. 8. 11. 아이지현愛知県 제4중학이 된 번교藩校 시습관時習館 1752年(宝暦2年) - 藩校時習館、藩主松平信復により、城内の八丁小路(現在の豊橋市八町通)に設立。 1806年(文化3年) - 「時習館規条」制定。 1872年(明治5年) - 藩校時習館廃止。 1893年(明治26年) - 私立補習学校時習館(愛知県立時習館高等学校の前身)設立。藩校時習館の名を借りて称した。 1900年(明治33年) - 愛知第四中学校(ナンバースクール)へ改名。 1948年(昭和23年)10月 - 豊橋時習館高等学校の校名に改称し、「時習館」の名称が復活する。 1956年(昭和31年) - 愛知県立時習館高等学校に改称。 아이치현에는 미카와요시다 번이 있었는데 이 번의 번교藩校를 논어의 글귀를 따 시습관時習館이라 불렀다. 번교가 설립된 시기는 1752년. 메이지유신후 폐지되었다가 사립학교로 전환되었고, 1900년에 아이치현의 제4중학.. 2023. 8. 11. 대량으로 써제낀 증정용 식민지시대 글씨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제법 이름있는 이의 필적은 일본에 많이 전해진다. 대개는 일본에 망명한 뒤 생활비를 조달하려고 팔았거나, 신세진 이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사한 것이다. 조선-한국에 있었던 인물이 일본인을 만나도 으레 글씨를 써주거나 그림을 그려주곤 했던 모양으로, 요즘들어 그러한 작품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 그런 작품들을 보면서 몇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1) 금박종이나 호피선지를 둘러 휘황찬란하게 '표구(장황이 아니다)'한 현현거사玄玄居士의 글씨나 소호小湖의 난초를 흔히 만난다. 그런데 일본에서 일본 재료를 써서 만들어 일본인에게 준, 일본인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조선 19세기 말~20세기 초"라고 표기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단순히 만든 이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미술사의 영역 안에.. 2023. 8. 11. 이전 1 ··· 2077 2078 2079 2080 2081 2082 2083 ··· 407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