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20052

설렁탕에는 왜 조밥을 말아 먹는가 설렁탕에는 쌀밥보다 조밥을 말아 먹는 게 더 맛이 있어서 설렁탕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조밥을 말아 먹는다고 한다. 딱 맞는 말이다. 국물은 쌀밥에는 사실 필요 없다. 필자도 평소에 쌀밥 먹을 때는 국을 안 올린다. 국을 먹어 봐야 소금만 더 섭취하게 되고 쌀밥 먹을 때는 국이 별로 필요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잡곡밥 특히 기장이나 조밥은 국을 부른다. 국에 말아 먹거나 부어 먹으면 정말 밥맛이 바뀐다. 우리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밥에 국이 따라나오는 전통은 잡곡을 먹던 우리 조상들이 처음 시작했을 가능성이 그래서 높다고 생각한다. #조밥 #설렁탕 #설렁탕_조밥 2024. 2. 15.
[거란의 치맛바람] (11) 네 번 결혼한 거란의 리즈 테일러 소배압 말고 야율륭서耶律隆緒 만큼 일반에 친숙한 거란 사람 있을까? 드라마가 불러온 현상이다. 이제는 초동급부까지 야율륭서를 알게 됐으니 말이다. 거란 황금기를 이룩한 위대한 군주라는 야율륭서는 죽어서 성종聖宗이라는 묘효廟號를 얻으니 흔히 이렇게 일컬어지만, 생전에 그 자신은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왜? 귀신이 되어 받은 이름인 까닭이다. 성종은 생식력 또한 왕성했으니, 딸만 해도 열넷을 두었다. 귀비貴妃한테서 야율연가耶律燕哥라는 첫딸을 두니, 이 여식은 수국공주隨國公主에 봉해졌다가 나중에 진국공주秦國公主로 바뀌었으며, 흥종興宗 시대에는 송국장공주宋國長公主라 했다. 장공주는 보통 현재의 황제 고모한테 붙인다. 소필리蕭匹里한테 시집갔다. 이 자리서 논하고자 하는 성종 따님은 앞에서도 집중으로 다룬.. 2024. 2. 15.
위대한 기장 우리나라와 일본은 쌀 아니면 제대로 된 곡식이 아닌 걸로 보지만, 사실 인류사에서 쌀 못지 않게 중요한 곡식이 기장이다. 기장은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서 쌀농사를 짓다가 딱 봐서 이건 망했다 싶으면 갈아 엎고 바로 기장을 심었다. 이유는 기장은 몇 개월이면 수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지 같은 날씨에 척박한 땅에서도 수확이 가능했다. 그래서 수렵채집민이 농경민으로 바뀔 때 가장 먼저 다루는 곡식이 기장이다.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되고 척박한 토지에서 잘 자란다는 말은 별다른 시비나 관리 없이도 수확이 된다는 의미이고, 또 심은 후에 빨리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장이 황하문명을 이루었고, 마찬가지로 고조선문명, 부여, 고구려 문명도 모두 기장으로부터 일어났다. 기장을 우습게 보면 다친다. 2024. 2. 15.
쪄서 만든 깡기장밥 예상 대로 기장밥은 쪄서 만들면 굉장히 잘 익는다. 낱알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물에 미리 불릴 필요도 없다. 딱 10분 정도 찌면 다 익는다. 맛도 괜찮다. 특히 된장국이라도 있으면 말아먹으면 최고다. 결론: (1) 밥을 쪄서 만드는 것은 잡곡밥 용이다. (2) 잡곡 중에서도 낱알이 작은 조나 기장밥이 쪄서 밥을 지으면 가장 잘된다. (3) 쌀농사도 처음에는 밥을 쪄서 지었겠지만 찐밥 자체는 잡곡문화권에서 왔을 것이므로 밥을 끓여 뜸들이는 무쇠솥 밥짓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잡곡보다 별로 맛이 썩 낫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4) 국이라도 하나 있으면 쪄서 만든 기장밥에 말거나 부어 먹으면 최고다. (5) 밥과 국의 조합은 쌀농사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6) 숭늉과 누룽지는 무쇠솥 나온.. 2024. 2. 14.
정조 앞에서 활쏘기 힘 자랑하고 고통없이 간 오재순 왕과 함께 활쏘기 후 잘했다고 받은 종이 쪼가리. "후과後課 선물은 나중에 준다." '훗, 왕 앞에서 잘 쏴봤자 정조 뒤끝 쩔구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종이쪽을 받은 사람을 보니 오재순吳載純(1727~1792)이다. 오재순이 궁금해져 찾아보니 현종의 딸이자 숙종의 누이인 명안공주의 손자다. 아버지 현종과 어머니 명성왕후와 주고 받은 애틋한 한글 간찰의 주인공이자, 마누라 세 번 갈아치우는 동안에 사람 목숨은 몇십 배로 갈아치운 남자 숙종이 '하지만 내 누이에게는 따뜻하겠지'를 시전하며 각종 살가운 선물을 남발한 대상이 명안공주다. 그녀가 해주오씨 집안에 시집간 덕에 오재순은 그 손자로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명안공주의 후사가 없어 부친 오원이 양자로 들어간다) 친할머니는 김창협의 딸이고 장인은 영조.. 2024. 2. 14.
[거란의 치맛바람] (10) 꼭지 돌아 남편도 바꿔버린 공주 거란 5대 황제 경종景宗은 정비 예지황후한테서 딸 셋을 두고 개중 둘이 소배압-소항덕(소손녕) 형제한테 하가했다는 말을 했지만, 걸물이 첩실 발해비潑海妃한테서 둔 야율숙가耶律淑哥라는 공주다. 그 어미는 발해비라 했으니, 발해를 평정하고서 그에서 혹은 그 후손에서 맞이했을 것이니 발해 왕성으로 대조영 후손인 대씨大氏일 것이다. 이 숙가 공주는 아무래도 첩실 자식이라 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사 공주표公主表에서는 봉호封號가 따로 없다고 했다. 그래도 위세는 대단해서 남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바꿔버린 케이스다. 이 공주표에 의하면 그는 아버지 야율현耶律賢, 곧 경종이 재위 12년째를 맞은 건형乾亨 2년, 서기 980년, 북한北漢에서 귀부한 노준盧俊이라는 사람한테 시집갔다. .. 2024. 2. 14.
[거란의 치맛바람] (9) 공주들이 설치는 왕조 앞선 시기에 나온 정사류를 찾아봐야겠지만 공주표公主表라 해서, 표 형식으로 각 황제별 공주 행적을 정리한 첫 정사가 아마 요사遼史 아닌가 싶거니와 그 권65 표表 제3이 공주표公主表거니와, 이에는 태조 야율아보기 이래 소회태자昭懷太子에 이르기까지 각 황제(일부 태자 포함)가 어떤 공주를 두었고, 그 어머니는 누구이며,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봉작을 받았으며, 누구한테 하가下嫁해서 그와 관련한 사적은 무엇이고 혹 죄를 지었다면 어떤 내용이며, 사망 관련 정보와 그가 둔 자식은 누구인지를 일목요연 표로써 정리했다. 이 표를 만드는 이유를 요사 편찬자들은 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거니와, 이는 거란 사회를 엿보는 하나의 독특한 시선을 제공한다 하겠다. 춘추의 법[春秋之法]에는 왕의 딸[왕희王姬]의 하가下嫁.. 2024. 2. 14.
소배압-손녕 형제한테 나란히 시집간 경종의 딸들 크게 3차에 걸친 고려거란전쟁에서 거란군 수뇌를 형성하는 소씨蕭氏 형제, 곧 소배압蕭排押과 소손녕蕭遜寧(=소항덕蕭恆德)은 국구國舅 소부방少父房 후손들이라, 대대로 집안이 황비를 공급하며 위광을 누렸다. 물론 부침도 없지는 않아서 걸핏하면 한대 얻어맞고 죽임을 당하는가 하면 삭탈관직되어 서민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저 두 소씨 형제를 흔히 부마도위駙馬都尉, 약칭하여 부마駙馬라 하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황제의 사위인 까닭이다. 본래 부마駙馬란 말 자체가 딸린 말이라는 뜻으로, 황제가 행차할 적에 지금 모는 말이 피곤에 지치거나 혹은 부상당했을 적과 같은 비상사태에 투입할 대타를 의미했으니 이것이 훗날 임금의 사위라는 뜻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요사遼史 소배압 열전에 이르기를 그가 위국공주衛國公主한테 .. 2024. 2. 14.
한국사에 교치설을 주물한 이기백 교치설僑置說 그 난무 문제는 차치하고, 중국사에서나, 그것도 위진남북조시대에 등장하는 이른바 교치설僑置說, 곧 땅 덩어리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기가 느닷없이 한국사에 등장해 유령처럼 배회하기도 하니, 이 신종 코리언 버전 땅귀신은 놀랍게도 고고학과 결합해 새로운 괴물을 주물鑄物하게 되는데, 그것이 장수왕에 의한 한강 유역 점령설이 그것이다. 이는 간단히 요약하면 고구려가 장수왕 시대에 백제 응징을 내세우며 475년 단행한 백제 정벌 결과, 지금의 한강 유역, 말할 것도 없이 강남 땅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고분군이 포진한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그 왕 개로는 아차산 아래서 목을 베어 버린 다음 그곳에 주둔군을 두어 551년 백제와 신라에 의한 대대적인 한강 유역 수복 전쟁 혹은 정복전이 있을 때.. 2024. 2. 14.
한반도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 요서로 갔다는 낙랑 대방 위서魏書 권4상卷四上 세조기世祖紀 제4상第四上 세조 태무 황제世祖太武皇帝 4년(432) 秋七月己未, 車駕至濡水。庚申, 遣安東將軍·宜城公奚斤發幽州民及密雲丁零萬餘人, 運攻具, 出南道, 俱會和龍。帝至遼西, 文通遣其侍御史崔聘奉獻牛酒。己巳, 車駕至和龍, 臨其城。文通石城太守李崇·建德太守王融十餘郡來降, 發其民三萬人穿圍塹以守之。是月, 築東宮。八月甲戌, 文通使數萬人出城挑戰, 昌黎公元丘與河間公元齊擊破之, 死者萬餘人。文通尚書高紹率萬餘家保羌胡固。己卯, 車駕討紹, 辛巳, 斬之。詔平東將軍賀多羅攻文通帶方太守慕容玄於猴固, 撫軍大將軍·永昌王健攻建德, 驃騎大將軍·樂平王丕攻冀陽, 皆拔之, 虜獲生口, 班賜將士各有差。九月乙卯, 車駕西還。徙營丘·成周·遼東·樂浪·帶方·玄菟六郡民三萬家于幽州, 開倉以賑之。 (북위 도읍인 평성을 떠나) 가을 7월 己.. 2024. 2. 14.
세 군데로 다 써먹은 화랑세기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김영사, 2002)는 이 책 서두에 붙인 '감사의 말'에 썼듯이 2001년 11월, 이종욱 선생이 진행한 서강대 사학과 대학원 수업 시간에 발표한 200자 원고지 600매가 바탕이 되었다. 당시는 내가 무슨 정신이었는지, 작정하고 600매를 완성해 앞에서 발표한 것이다. 그 직전 아마 1999년인가 이 선생은 김영사를 통해 화랑세기 해설을 겸한 연구 대중서를 출간했으니, 이때 발표에서는 그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지적했다고 기억한다. 그때 발표 원고는 아마 망실했을 것이다. 이 발표문을 나는 당시 내가 몸담은 연합뉴스를 통해 2002년 1월  14일부터 2월 23일까지 물경 41회에 걸친 연재를 시작해 풀어제꼈다. 이 발표와 더불어 나는 이 화랑세기에 드러난 신라와 가야의 관계에.. 2024. 2. 14.
합천군 야로현冶爐縣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0권 경상도慶尙道 합천군陜川郡【건치연혁】을 보면 이곳은 본래 신라 대량주大良州라 했다가 경덕왕 때 강양군江陽郡이라 고쳤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려 현종이 대량원군大良院君에서 왕이 되고 황비 효숙왕후孝肅王后가 태어난 곳이라 해서 지합주사知陜州事로 승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 태종 때에 합천이라는 하고는 군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이것이 지금에 이른다. 그【속현】으로는 우선 야로현冶爐縣이 군 북쪽 30리에 있다 했으니 신라 때는 적화현赤火縣이라 했다가 경덕왕이 야로현으로 고쳤다고 한다. 야로冶爐나 적화赤火 모두 결국은 표기로 보건대 쇠물을 부어 철기를 만드는 일을 말하거니와, 이곳이 실로 오래도록 포스코나 광양제철 같은 공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나아가 고적 조에 의하면 좌이부곡坐伊部曲ㆍ말.. 2024. 2. 14.
제주에서 운양 김윤식을 생각하다 1. 터에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제주 시내-여기서는 옛날 제주의 중심이랄 수 있는 구제주-를 어슬렁거리다가 만난 곳, '제주시 소통협력센터'란 이름이 붙은 여기가 조선 말 한문학 대가이자 온건개화파 거두 운양 김윤식(1835-1922)이 유배와 살던 곳이더군요. 동도서기東道西器 곧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을 소통, 협력시켜보자는 주장을 펼친 운양이 살던 곳에 소통협력센터가 들어서다니 인연도 이런 인연이 있을까요(억지스럽다고 하면 그것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2. 김윤식은 을미사변 당시 외무아문대신으로 명성황후 폐위에 일조했다는 죄를 입어 1898년부터 1901년까지, 제주에 약 3년간 유배와 있었습니다. 여기 올 때 인천에서 화륜선을 타고 왔다니 그것부터 근대 느낌 물씬 나는데, 그가 .. 2024. 2. 13.
북미 고병리학회 심포지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오는 3월 18~20일 열리는 제51차 북미 고병리학회에서 인류사와 동물사의 융합을 꾀하는 시각에 대해 심포지움이 개최됩니다. 경희대의 홍종하 교수와 제가 한 꼭지 같이 발표합니다. 심포지움 제목은 "21세기의 고병리 (21st Century Paleopathology)입니다. 심포지움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혼용한 hybrid meeting입니다. 이 학회는 미국 인류학회 위성학회 중 하나로 인류학회 회원들이 따로 만들어 조직한 모임으로 인류학회 할 때 같은 장소 같은 시기에 개최합니다. 대회 소개는 아래 참조 https://paleopathology-association.wildapricot.org/page-18191 Paleopathology Association - Meetin.. 2024. 2. 13.
기원전 1370년 어느 여름날 죽은 덴마크 소녀 엑트베드 소녀 Egtved girl 소녀로 알려진 유럽 청동기시대 소녀 무덤(왼쪽) 발굴 당시 모습과 그 출토 양상을 토대로 재현한 이 소녀 매장 당시 패션이다. 저에서 수습한 상수리 oak 목관 나이테 연대측정 결과 덴마크에서 발견된 이 무덤은 기원전 1730년 어느 여름날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이늣 저 소녀가 죽어 묻힌 시점이다. 소녀는 목관 안에 안치됐다. 발굴 당시 머리카락과 두개골 이빨 손톱 일부가 남았고 피부 일부도 확인됐다. 이삘 분석 결과 죽을 당시 나이는 16~18세. 키 160센티미터에 몸매는 마른 편이고 단발 에 금발이었고 손톱은 잘 관리했다. 짧은 튜닉에 무릎까지 오는 코르덴지 치마를 걸쳤다. 배 쪽에는 청동제 나선 문양을 정교하게 새긴 벨트 프례이트 belt plate 가 발견됐.. 2024. 2. 13.
AI로 증폭한 안중근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사진들이 고화질일 리는 없다. 해상도 구리기 짝이 없어 50kb도 안 되는 것들이다. AI 증폭 기술로 이들을 얹어봤다. 왜곡도 적은 듯해 그대로 인쇄용으로 사용해도 무방할 듯 하다. 이전에 나는 사진은 고화질로 찍어야 한다 하면서 고화질은 줄일 순 있지만 저화질은 늘릴 순 없다 했지만 그 말은 철회한다. 2024. 2. 13.
안서도 둔전을 현화사에 시주했다는 기사 고려사절요 권3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을 읽어가다 보면 그 11년, 1020년 8월에 왕이 안서도安西道 둔전 1,240결을 현화사玄化寺에 시주하니 양성兩省에서 두 세 차례나 논박했지만 왕이 받아들이지 않았다[八月. 以安西道屯田一千二百四十結施納于玄化寺. 兩省再三論駁, 不納.] 고 하거니와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난 이것이 무슨 뜻일가 몹시도 궁금하다. 혹 이에 관한 선행 연구가 있기는 할 법한데 찾아보지는 않았다. 안서도라면 고려사 지리地理3에 보이는 안서대도호부安西大都護府를 말할 것이어니와 그 수도는 해주海州라, 이는 지금도 도시 이름으로 남았거으니, 이에 의하면 이곳은 태조 왕건이 군郡 남쪽에 큰 바다가 있어 해주海州라는 이름을 내리고 성종 2년(983)에 12목牧을 설치할 때는 해주에도 그 하나가 설.. 2024. 2. 13.
인문학에 드리는 고언: 논문의 길이 필자는 인문학자가 아니라 이를 고언이라 포장한다 해도 역시 조심스럽다. 다만 평소 느끼던 일을 좀 적어둔다. 문외한의 헛소리라고 볼 일인지 한 번 고려해 볼 만한 일인지는 인문학자들 몫이다. 여기서 쓰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나라 인문학관련 학술지의 경우 논문의 길이가 획일적으로 너무 길다. 학계에 보고하는 것은 장편도 있지만 단편도 있어야 하고 아이디어에 따라서는 4페이지를 넘지 않기도 한다. 이를 이유 막론하고 장편 논문만 실어서는 그런 빛나는 아이디어는 전부 사장되고 이 때문에 "원래 알던 건데.."라는 말이 학계에 횡행하게 되는 것이다. 짧은 논문만으로 채우는 학술지가 나와도 되고 (총4페이지 이내) 학술지에 일정 부분을 짧은 논문으로 채워도 된다. 어느 쪽도 상관 없는데, 짧은 논문은 반드시 두어야.. 2024. 2. 13.
1925년 풍납토성을 답사한 일본 인류학자 기요노 겐지[清野謙次] 일본의 저명한 형질인류학자로 기요노 겐지라는 인물이 있다. 청야겸차 清野謙次 라 쓴다. 1885년에 태어나 1955년에 사망했다. 교토제국대학 출신으로 독일 유학 뒤에 귀국해서 모교인 교토제국대학 교수가 되어 활동하면서 일본인은 아이누 후손이라는 주장을 부정하고 일본인 독자 형성론 혹은 혼혈론으로 주창해 열렬한 칭송을 받았다. 수집벽이 정신병적이라, 사찰 보물을 훔쳐내다가 잡혀서 유죄판결을 받아 면직되는가 하면, 이 사태로 당시 교토제국대 총장이면서 한국고고학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신화적 인물로 추앙하는 하마다 코사쿠 빈전경작 濱田耕作 이 사임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친구가 길러낸 제자 중에 731부대장이 있어, 이런 인연을 발판으로 생체실험에 깊이 간여한다. 전후 처리에 미국과 일본의 밀약으로 극적으로.. 2024. 2. 13.
AI로 복원한 도산 춘원 민세 단재 나혜석 AI 증폭 기술을 이용해 저화질 구린 서비스 사진 서비스가 이뤄지는 근세기 안재홍 안창호 이광수 박한영 신채호 나혜석 을 증폭해 봤다. 다른 데서는 문제가 안 생기는데 나혜석 할매는 얼굴 그림자를 수염으로 인식한다. 저런 건 후손질 포토샵을 활용해야 한다. 나머지는 그냥 써먹어도 왜곡 논란이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2024. 2. 13.
[문화재 기자 17년] (2) 사천성 대지진과 도강언 2008년 중국 사천성이 무너졌다. 이해 5월 12일 오후 2시28분에 발생한 리히터 규모 8.0의 대지진 희생자는 사망자가 약 6만9천 명이요 부상자가 약 37만4천 명, 행방불명자가 약 1만8천 명에 붕괴 가옥은 21만6천 동이라 하니 미증유의 재앙이었다. 내 기억에 구조 활동에는 한국 사람들도 깊숙이 관여했으며, 그 직후 중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 이명박은 현지를 찾아 구조활동을 응원하기도 했다. 이런 자연의 대참사에는 으레 그 흥분이 조금은 가라앉을 즈음에는 문화재 피해 상황에 대한 후속보도가 따르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건 발생 얼마 뒤 문화재 역시 피해가 적지 않다는 외신 인용 보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개중 내 기억에 가장 생생한 문화재 피해 현장이 도강언都江堰이라는 곳이었다. 전국시대.. 2024. 2. 1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