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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송국리] (3) 일본을 향한 삿대질 부여 송국리 유적은 청동기시대에 속한다는 합의만 있을뿐 그 존속 연대에는 논란이 적지 않다. 물론 어떤 유적이 한 시기에만 있다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이 송국리 유적은 이른바 복합유적에 가깝고 존속기간도 꽤 되는 듯하다. 아무튼 이 문화 무덤 문화를 대표하는 1호 돌널무덤 연대를 어찌 보았는가 궁금해서 살피니 기원전 9~5세기로 설정해 놨더라. 연대, 곧 이른바 편년에 그리 매달리는 한국고고학에서 청동기시대 무덤 하나를 두고서 이렇게 연대폭을 넓게 설정하는 일을 나는 듣도보도 못했다. 그만큼 논란이 많다는 정도로 보아 넘기자.그 어떤 경우건, 다시 말해 기원전 9세기건, 기원전 5세기건 저 시대 한반도 금속문화 양상을 보면 실상 거지라, 청동기가 극히 일부 사용되었다 하지만, 거지나 진배 없는 돌삐족이다.. 2025. 3. 17.
[다시보는 송국리] (2) 거지 같은 도판 집어치고 칼을 묻다 새로 개장한 국립중앙박물관 선사실이 그래 부여 송국리 유적이 여러 모로 중요하다 해서 그 자체, 나아가 이를 통한 한국선사시대 문화를 부각하려 한 노력이야 가상하다만 그 이해를 돕고자 관련 섹션에 관련 유물을 진열하고선 그 이해를 돕고자 비름빡에다 붙인 아래와 같은 그 도해판을 보고선 내가 분노를 참지 못했으니 가뜩이나 볼품없는 한국 선사 문화를 더 거지 같이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어 할 수 없이 저가덤핑입찰, 곧 카카오톡 선물인지 커피 한 잔 기프트콘 보내고서는 지인한테 부탁하기를 제발 저 거지 같은 그림 좀 그냥 보기 쉽게라도 좀 해 주라 한 것까진 좋았는데 난 가볍게 생각했으나 받아들이는 친구가 무거웠던 모양이라, 언제나 이런 일마다 결심하거니와 이런 부탁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쩌겠.. 2025. 3. 17.
돌파리의 엉터리 처방, 지치주의 조선왕조의 출범은"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는 권문세가의 농장""북로남왜로 정신 없는 판에 세금 하나 안내고 무위도식하는 불교"이 둘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불교를 작살내고 사전혁파로 공전을 창출하여이를 통해 재원을 확보해서 여말 선초의 위기를 돌파한다-. 이 전략은 조선건국 초까지만 해도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딱 백년만에 한계에 부딪혔으니 중종, 인종, 명종 연간에 이미 사회는 다양한 난맥상을 보여 뭔가 새로운 경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생겨났다. 이때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들고 나온 것이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인데 한마디로 돌파리의 엉터리 처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 사회의 위기를 도학근본주의로 치달아 극복하자는 것으로 조광조의 주장을 냉정히 보면 될 만한 소리는 하나도 없다.. 2025. 3. 17.
전기 없던 시절엔 새벽형 인간밖에 없다 오늘 한국관광공사 대선배님이신 장태순 선생께서 새삼 소개하신 말로 묘사유파卯仕가 있으니 새삼 생각나서 한 줄 보탠다.이는 조선시대 공무원 근무시간을 말하거니와 이를 줄여서 묘유卯酉라 하기도 하는데글자 그대로 조선시대 관리는 묘시卯時(오전 5시∼7시)에 출근해 근무를 시작해 유시酉時(오후 5시∼7시)가 되면 퇴근한다는 뜻이니경국대전經國大典 중 이전吏典 고과考課 항목에 보이는 말이라, 지금의 행정안전부나 인사혁신처에 해당하는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가 6부 중에서는 이부吏府라 저 공무원 복무 규정이 이부가 관장하는 업무 범위를 규정한 이전吏典에 보인다. 고과考課란 요새도 인사고과라는 말에 엿보듯이 근무 실태 전반을 의미하지만, 그 평가를 내포하는 말이라 하겠다.암튼 저 항목에 이르기를 “諸司官員 卯仕酉罷 日短.. 2025. 3. 17.
"내가 영어를 잘했더라면..." 영어유치원 효과 있을까…깜짝 놀랄 결과 나왔다영어유치원 효과 있을까…깜짝 놀랄 결과 나왔다, 사회www.hankyung.com이 연구를 하신 분들도 열심히 하셨겠지만, 결과는 필자로선 동의하기 어렵다. 영어-. 요즘 20-30대는 영어하는 거 보면 우리 세대와는 발음 자체가 틀리다. 이건 훌륭한 원어민 아래에서 일찍부터 영어를 배우지 않으면 불가능이다. 그리고 또 다시 영어-. 필자는 영어를 위 영어유치원이고 나발이고 없던 시대에 배웠다. 영어학원도 제대로 된 것 다녀본 적이 없고 학교에서 영어시간에 배운 것이 전부인데, 그 당시 우리를 가르치셨던 선생님들도 나름 열심히 하셨겠지만, 필자의 된장 냄새 나는 영어 발음은 그 분들께서 다듬으신 대로다. 영어 공부는 중학교 시절 처음 배운 이래로 한 번도 손에.. 2025. 3. 16.
[다시보는 송국리] (1) 도무지 알아보기 힘든 비름빡 그림 하도 비름빡 색깔도 거지 같이 칠하고바탕 비름빡이 가뜩이나 그러한데저 그림도 어떻게 하면 관람객이 못 알아보게끔 저 따위 색감으로 그려놨는지 뭐가 보여야 말이지?애니웨이 새로 개편했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선사실에 작은 섹션으로 송국리 유적 코너가 있으니그새 얼마나 좋은 동시대 유적이 많이 발굴됐는데, 아직도 저걸 팔아먹는지 묻지 말자. 자기네가 발굴했다 해서 저리 내어놓는 모양인데, 그래 것도 저 흐리멍덩한 도판과 더불어 그래도 이쁘게 봐주자.  저 송국리 1호 돌덧널무덤을 알아보기 쉽게 단면으로 짤라 무덤방이 어떻게 생겨먹었고 또 그 무덤방 안에 무덤 주인공인 시신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모습으로 묻혔을 것이며(이건 뼈가 남아있지 않아 추정이긴 하지만 얼추 저 그림과 비슷할 것이다.) 그 껴묻거리는 어느 지.. 2025. 3. 16.
껍데기만 돌, 실제는 청동 화살촉 경북 칠곡 복성리랑 상주 마공리 출토 저 돌화살촉 돌이 아니다.재질만 껍데기만 돌이고 실제는 청동화살촉이다.청동화살촉 보고 그대로 도안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2025. 3. 16.
어림반푼어치도 안 되는 반달모양돌칼 잡다한 설명 필요 없다.첨부 맨앞 돌칼 봐라.화면 기준 오른쪽 앞쪽만 날이 있다.뮈 더 설명 필요해? 2025. 3. 16.
9세기 바이킹 여성이 찬 알라신 반지 이 반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서쪽으로 30 km 떨어진 고대 바이킹 도시 비르카Birka에 약 1천200년 전 묻힌 여성한테서 나왔다.이 반지가 특별한 이유는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널리 사용된 쿠픽 아랍어Kufic Arabic로 “알라를 위하여for Allah”라는 말을 새긴 까닭이다. 이 반지는 바이킹과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뒤를 이은 세 번째 칼리프인 아바스 칼리프Abbasid Caliphate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 관련 소식을 더 검색해 보니, 2015년에 관련 새로운 연구가 제출되고 저에 대한 논의가 잠시 있었다. 그것을 정리해 본다. 9세기 스웨덴 바이킹 무덤에서 발견된 이 반지에는 "AL_LLH"로 읽히는 쿠픽 아랍어 새김 글씨가 보인다.연구자들은 스캐닝 .. 2025. 3. 16.
[박물관 현황과 연혁 spinoff] 대단히 특이한 양평 소나기마을 문학관은 런던 코넌 도일 박물관이 아닌 다음에야 국내에서는 가뜩이나 인기 없는 여타 박물관류 시설 중에서는 그다지 더 인기가 없다. 그 인기없음은 그 이유가 또 다른 논란이 되겠지만 이른바 국민작가 부재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라 일단은 해 둔다. 영국만 해도 스트라포드 어폰 에이븐은 셰익스피어 고향이라 해서 셰익스피어 팔이로 미어터진다.그런 점에서 굳이 양평군이 인기도 없는 문학관을, 그것도 그다지 직접 인연이 있다 하기도 힘든 황순원문학관을 세우기로 한 일 자체가 이색하며, 나아가 그것이 자리한 데가 인적 드물기만 한, 한적하기 짝이 없는 산곡간이라는 점도 특이하다. 그럼에도 이곳은 그런 대로 입소문이 나서 관람객도 꾸준히 유치하는 편이라 하며, 설립운영 주체인 양평군은 연간 방문객이 10만이라 내세우는데.. 2025. 3. 16.
[마왕퇴 spinoff] 다시금 치밀어 오르는 무령왕릉 만행 나는 작금 신동훈 교수님과 함께 세계 미라를 정리 중이라, 그 와중에 지금은 마왕퇴 미라에 집중하거니와 그것이 발굴된 때가 1972년이라, 그 직전 1971년 무령왕릉 발굴, 그리고 같은 1972년 일본 고송총高松塚 다카마쓰즈카 고분 발굴 이야기를 아니할 수 없거니와 이미 졸저 직설 무령왕릉(메디치미디어, 2016)에 입이 아프도록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기적으로 출현한 무령왕릉을 하룻밤만에, 것도 거의 남기지 아니하고 쏵 걷어버린 김원룡 발굴에 다시금 분노가 치솟아 올라 뒷목이 뻐근하다. 이를 김원룡 스스로는 내 머리가 돌아서 그리했다 했지만, 그래서 사과 혹은 사죄를 했다 했지만 그런 사죄가 나온 시점이 90년대 들어와서야였고 그 이전에는 그런 의식 자체가 아예 없었다. 당시 우리 고고학 수준이 그것밖에..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9] 날이 갈수록 느는 실력 앞서 김단장께서 올리신 사가교 발굴에 대한 글이나 봉황산 발굴에 대한 글들에서 볼수 있듯이마왕퇴 이후에도 전국 초묘와 한묘의 발굴은 꽤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마왕퇴 정도로 잘 보존된 경우는 거의 없었고, 지금도 마왕퇴는 전국 초묘와 한묘를 대표하는 거대한 발굴 보고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김단장께서 올리신 사진이다. 이 발굴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왕퇴 이후 여러 차례 비슷한 발굴을 거듭하면서 그 조사기법도 점점 정밀해지는 것을 웅변하는 것으로초기에는 사진에서도 마왕퇴 발굴 때 우왕좌왕하던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찍혀 있는 듯 하지만 지금 이 사진에서는 이미 발굴 당시 고고학자들도 보호복을 착용하고 작업하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곽묘 조사 때의 과..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8] 보존이냐 부검이냐 앞에서 언급했듯이 마왕퇴 한묘에서 나온 미라는 보존하기로 결정이 되어 의과대학과의 협의하에 고정액 (방부액)에 담그어 처리하고 있었지만 이런 상태로는 완벽한 보존을 기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잘 알고 있었다. 시신에 대해 이런 식으로 외부로 부터 방부액을 침투시키는 방법은생각보다 효과적이지 않아서 아주 아주 느리게 내부로 침투하기 때문에 외부가 과다하게 처리되었다 싶을 때에도 정작 내부 장기는 전혀 방부액이 침투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의학 등 분야에서 시신을 장기적으로 보관하여 검사해야 하는 경우에는냉장보관을 하거나 혈관으로 방부액을 흘려 보내어 방부처리를 한다. 이런 방법도 금방 사망한 경우에나 가능한 것이고 이미 2천년 전에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따..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7] 일본의 세 가지 반응 당시 일본의 반응을 보면, 지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서, 학계와 대중 모두 열광적으로 소식을 기다렸다. 아사히 신문이 이러한 보도의 최전선에 있어 아사히주간에서는 중국에서 흘러나오는 소식과 사진을 받아 계속 속보를 냈고일본학계도 단순히 소식을 기다리는 수준을 넘어 마왕퇴 한묘의 실체에 대한 논쟁에 적극 뛰어들었다. 일본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일본이 마왕퇴 조사와 연구에 참여할 수 있을까. 이 제안은 중국측에 의해 거부되었다. 중국은 시종일관 마왕퇴 한묘를 중국인의 손으로 시작하여 끝내는 것이 국가적 체면과 사회주의 중국의 위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마왕퇴 한묘를 외교수단으로 이용하는 것과 동시에 이 무덤 조사를 중국인의 손으로 제대로 끝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 것이..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6] 일본의 관심 마왕퇴 한묘가 발견되어 조사되던 무렵은 동서 냉전의 양상이 일대 전환기를 맞던 무렵으로 소위 말하는 핑퐁외교를 통해 중국과 미국이 냉전을 넘어선 교섭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데탕트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일본으로 일본 외교가는 미국이 추진하는 외교 기조의 선을 넘지 않으려하되 물밑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중국 외교의 복원을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요즘은 중국이 팬더를 단순한 동물원 볼거리를 넘은 세계 외교의 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 당시는 마왕퇴 한묘가 탁구와 함께 팬더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중국 지도부는 마침 발견된 마왕퇴 한묘를 대미, 대일 외교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는데,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가 보다 깊은 일본쪽의 반응이 미국보다는 훨씬 컸던 모양이다. 주은래는 냉전..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5]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는 미라 중국 쪽에서 보고된 미라 중 마왕퇴 미라를 비롯한 소위 전국 초묘에서 발견된 미라는 "살아 있는 것 같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표현은 또 다른 중국 미라인 신강성 타림분지의 미라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미라는 건조한 기후 탓에 완전히 말라버린 형태로 발견되므로 잘 보존된 상태라도 조직이 굳어 있어 나무토막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마왕퇴나 전국 초묘에서 발견되는 미라의 경우, 자주 나오는 표현은 "매우 부드럽고 유연하며 관절의 움직임도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발견된 미라 시신의 피부가 부드럽고 결체조직이 탄력성을 가지고 있으며 내부 장기의 모습도 금방 사망한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 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탁월한 보존상태는 모든 전국 초묘나 서한묘.. 2025. 3. 16.
미라 기대했다 꽝 난 사가교谢家桥 한묘漢墓 마왕퇴 미라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곧이어 봉황산 무덤에서도 비슷한 습시濕尸가 출현함에 따라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발견되는 무덤에서는 한껏 추가 미라 출현을 기대케 했으니, 그런 데 중 하나가 이번에 말하고자 하는 무덤이다. 형주荆州 사시沙市 관저향关沮乡 소재 “사가교 1호 고묘 谢家桥1号古墓”라는 데가 있다. 다름 아닌 1975년 완전한 서한 시대 남성 미라가 발견된 봉황산 168호 한묘 凤凰山168号汉墓랑 멀지 않다. 사가교 무덤 또한 매장 연대, 보존 상황 및 지리적 조건이 168호 무덤과 유사한 까달겡 또 다른 한나라 시대 습시濕尸 출현을 기대했지만 시신은 없었다. https://heriworld.com/916 미라 기대했다 꽝 난 사가교谢家桥 한묘漢墓마왕퇴 미라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곧이어.. 2025. 3. 16.
일부러 구부린 쇠못 박은 2천500년전 덴마크 습지 청동검, 도대체 왜? 일부러, 아마도 모종의 의식을 진행하는 차원에서 S자 모양으로 구부러뜨린 2천500년 전 쇠못 박은 청동검 한 자루가 덴마크 어느 늪지에서 발견됐다고 한다.이때 유럽 대륙은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본격 전환할 무렵이라, 자루에다가 쇠로 만든 리벳 iron rivets 2개를 박은 청동검은 그 전환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라 해서 관심이 좀 있는 모양이다.실제 손잡이에 철제 리벳을 박은 이 검은 덴마크에서 발견된 가장 초기 철제 유물 중 하나일 수 있다 한다. 보도에 의하면 이 청동검은 덴마크 한 금속 탐지기 전문가가 코펜하겐 북서쪽 벡쇠 인근 한 늪지대 bog near Veksø에서 작은 청동 도끼bronze axes 두 점, 큰 청동 "발목 고리" bronze ankle rings 여러 점, 그리.. 2025. 3. 16.
머릿가죽 벗기고, 혀를 제거하고...영국 청동기시대가 폭로한 인간의 잔학성 유럽 대륙이 청동기 시대로 돌입한 4천년 전, 지금의 영국 땅에서 상대방 혀와 내장을 제거하는 한편 그들을 음식으로 삼아 씹어돌리는 식인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는 폭력성 'unprecedented' violence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연구성과가 제출됐다. 이럴 때 우리 언론은 항용 역사를 새로 쓰게 하는 증거라는 말을 하는데, 저들 서구 언론이라 해서 별다르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이런 연구가 rewriting the history of prehistoric Britain, 곧 브리튼 선사시대 역사를 다시 쓰게 한다고 찬사한다.작년 12월 저널 Antiquity에 탑재한 논문을 통해 영국 옥스퍼드대학 고고학자 릭 슐팅 Rick Schulting이 이끄는 팀이 이런 연구성과를 공개했으니, 이에서 연구팀은 영국.. 2025. 3. 16.
조계종 하나만 남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불교는 종단이 몇 있지만 조계종 아니면 나머지는 모두 존재감이 좀 약한 지라, 이렇게 강대무변한 조계종이 교종과 선종까지 겸하고 이전의 모든 종파의 교리를 두루두루 다 통합했다고 하는데, 이런 설명을 한국사에서 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다른 나라를 가 보니, 이건 불교 종파가 딱 하나만 살아 남은 한국이 이상한 것이지 나라 밖은 각종 불교 종파가 바글 바글 하더라 이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 책을 읽으면 한국불교가 조계종 하나로 수렴하게 된 이유와 경위 정도는 알 수 있어야 정상 아닌가? 사실 이런 비슷한 것이 꽤 있다. 한국 안에 있으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지내다 나라 밖을 나가보면 그것이 한국에서만 있었던 현상으로 황당해지는-. 불교가 조계종 하나의 종단만 남고 다 사라진것은 그냥 억불정책이.. 2025. 3. 16.
[마왕퇴와 그 이웃-54] 홍위병의 전투장으로 도망간 마왕퇴 미라 전술한 바와 같이 대중에 공개한 마왕퇴 미라를 보자고 수십만 명이 몰려들어 난장판을 이룬 덕에 다치는 사람도 나오고 당장 미라 자체의 안위가 위험해지는 국면에 처해 이 미라를 급하게 어딘가로 옮겨두어야겠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래서 옮긴 곳이 어디냐. 호기심에 가득찬 대중이 오지도 않고 홍위병도 감히 올 생각을 못하는 곳. 바로 호남의과대학 강의동 5층이었다. 왜 일까? 이 방에는 1960년대 문화혁명 초기에 의과대학 내 홍위병과 반대파들이 이 방에서 서로 무장을 하고 대판 맞붙어 싸웠다는데 이때 이 방에 보관되고 있던 방사성동위원소가 담긴 병을 그만 깨뜨려 먹었다. 방사성 물질이 바닥에 쏟기자 지금까지 치고 받던 양측은 모두 혼비백산 도망가버려 그 후 강의도 5층은 그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방이 되어버렸.. 2025.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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