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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고고학] 연구하라 현미경 던져줬더니... 우리 THE HERITAGE TRIBUNE 맹렬 필자 중 한 분인 신동훈 선생이 줄곧 잡곡과 쌀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으니, 그 일환으로 철솥과 시루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든다. 왜 철솥인가 시루인가? 그 등장이 초래한 식문화 혁명은 어떤 것인가를 각종 실험을 통해 구명하려 안간힘을 쓴다. 내가 생각하는 고고학이라면 이 정도 탐구는 기본이라 본다. 하지만 실상은 딴판이라, 맨 껍데기만 물고 늘어져서 반세기 동안 하는 일이라고는 그 양식을 분류하면서 그 변천은 어떠하며, 그것이 어떤 시대인지 판명하려 하며, 그를 통해 시대별 문화별로 어떤 차이로 변천하는가에 매달리니, 물론 이런 일이 고고학 출발선 중 하나임을 내가 부정하고픈 생각도 없고 그런 작업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다음 단계로 전진을 하기 위한 사.. 2024. 1. 15.
쌀과 잡곡이 별 차이 없는 찐밥 쌀과 잡곡을 찐밥으로 해 먹으면 별 차이가 없다. 둘다 맛이 없기 때문에. 밥을 솥에 넣고 끓여 마지막에 뜸을 들여 만들어 내야 비로소 쌀이 자신이 가진 포텐셜을 백프로 발휘하여 다른 곡식이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는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곡식으로서 쌀이 높은 평가를 받게 된 것은 결국 조리기구가 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번만 쌀과 잡곡을 쪄 먹어 보면 아는데, 정말 둘다 맛이 없다. 아마 솥에 밥을 뜸들여 만들어 처음 먹어 본 사람은 그 쌀밥 맛에 기절할 정도로 놀랐을 것이다. 2024. 1. 15.
[로마열전] (3) 전기차도 경운기로 만드는 삼피에트리니Sampietrini, 로마의 보도블럭 전기차는 구르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어떤 전기차도 경운기를 만드는 신이한 도로가 이 친구다. 이태리어로는 삼피에트리노 sampietrino 혹은 산피에트리노 sanpietrino 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sampietrini 혹은 sanpietrini 라고도 하는 이 로마 특유한 보도블럭은 그 양태 하나하나를 보면 흔히 묘사하기를 피라미드 모양이라고 하나, 내 보기엔 옥수수 씨 모양으로 짤라낸 돌 하나하나를 촘촘피 박아 쌓은 보도블럭인데 로마 곳곳에 포진한다 하지만, 이번에 나폴리는 갔을 때도 보니 나폴리 곳곳에도 이 보도블럭이 남았다. 사진은 로마 중심부 피아자 델라 레푸블리카 Piazza della Repubblica, Rome 라는 데라, 가운데 저 분수대도 꽤 이름 있다 하지만 베르니.. 2024. 1. 15.
[지증왕의 아버지를 찾아서] (1) 습보와 기보 : 두 아버지 신라 제22대 지증왕은 아버지가 두 명이다. 기보期寶와 습보習寶가 그들이다. 둘은 모두 신분 혹은 직위가 갈문왕葛文王이라 보인다. 하기야 이 시대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그 아버지는 갈문왕이라 추봉하는 일이 상례이니, 이에 의하면 기보와 습보는 아들이 왕이 되면서 죽은 뒤에 이렇게 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지증왕은 어머니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공통이니 조생鳥生, 혹은 오생烏生이라 기록된 여인이다. 조생鳥生과 오생烏生은 글자 모양이 대단히 비슷한 데다 뜻까지 통하는 점이 있어 둘 중 어느 하나가 잘못 적혔을 뿐 같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기보와 습보는 누구인가? 지증왕 아버지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각각 내세운 사람들이다. 즉, 지증왕 아버지를 《삼국사기》가 갈문왕 습보를 거론한데 비해 .. 2024. 1. 15.
[2023 대만풍경] (6) 국립고궁박물원 남원南院 ① 고속열차로 가는 고궁 남원 from 장남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타이완고속열차. 세계 정치 외교의 압력과 로비 속에 시스템, 차량, 자연재해 등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타이페이에서 까오슝까지 운행되고 있다. 台灣高鐵Taiwan High Speed RailNews · Timetable and Fare Search · Tickets and Fares · Stations · About Us · Lost and Found · Customer Service · Sustainability · Investor Relations · Corporate Governanceen.thsrc.com.tw 고궁박물원 남원은 중남부 가의嘉義에 있다. 타이페이에서 1시간 30분 안팎이면 가의에 도착하는데, 역에서 차로 10분이내에 박물관이 있다. 셔틀버스도 있었다. ‘아리산.. 2024. 1. 15.
이설이 많은 일본사 일본사를 읽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참 이설이 많다는 것이다. 위키만 찾아봐도 그건 금방 알 수 있다. 정설은 뭐라고 하는데 이설이 정말 많다. 이건 이런 설이 있는데 다른 설도 있다 여기는 이렇게 설명이 있는데 다른 데는 또 다르다. 이게 뭐 일본 역사학자들이 사료비판 정신이 투철하고 의고의 기풍이 강해서 그런 게 아니다. 남아 있는 사료들이 분량은 어쨌건 간에 그 성격들이 다 고만고만하다 보니 어떤 사료 하나에 주도권을 안겨주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다 보니 일급사료, 이급사료 운운으로 사료에 그레이딩까지 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건 일본적 환경에서 나온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이걸 따라 할 필요가 없다. 그쪽에야 고만 고만한 사료들이 바글바글 하니 그런 거고, 한국은 상황이 다르니 이런 부분에 있어 일본.. 2024. 1. 14.
피임? 누구 맘대로? 왕건을 거역한 나주 촌딸 고려사 권 제88 열전 제1 후비后妃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는 나주羅州 사람이다. 조부는 오부돈吳富伅, 아버지는 오다련군吳多憐君이니 (이 집안은) 대대로 나주의 목포木浦에 살았다. 오다련군이 사간沙干 연위連位의 딸 덕교德交한테 장가들어 왕후를 낳았다. 왕후가 일찍이 나루터의 용이 뱃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놀라면서 깨어 부모한테 말하니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오래지 않아 태조太祖(왕건)가 수군장군水軍將軍으로 나주에 출진出鎭하여 목포에 정박하면서 강가를 바라보았더니 오색五色 구름 같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곳에 이르니 왕후가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태조가 불러 사랑을 나누었지만 측미側微(집구석이 볼품없음)하므로 임신해서는 안 된다 해서 잠자리에 깐 돗자리에 쏟았지만 왕후가 바로 이를 집어 넣어 결.. 2024. 1. 14.
장화왕후 오씨, 질외사정 피임을 거부한 왕건의 여인 잘 알려진 것처럼 고려 태조의 후비는 29명이다(왕건이시여~). 그중 성씨, 본관, 아버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에다가 어머니의 이름이 밝혀진 분은 둘째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 한 분뿐이다. 장화왕후 오씨吳氏는 나주인羅州人이다. 할아버지는 오부돈吳富伅, 아버지는 오다련군吳多憐君으로, 대대로 나주의 목포木浦에 살아왔다. 오다련군은 사간沙干 연위連位의 딸 덕교德交에게 장가들어 왕후를 낳았다. - 권88, 열전1, 후비1, 태조 후비 장화왕후 오씨 같이 실린 다른 태조의 후비들을 보면 본관과 아버지 정도만 언급되고, 더러는 성씨마저 잃어버린 경우도 있다. 분명 이들은 당대 내로라하는 세력의 여식들이었을 것인데 말이다. 나 는 한목소리로 오씨의 집안이 '측미側微'하다고 진술한다. 그 진술 뒤에는 그래가지고 태조가.. 2024. 1. 14.
연애결혼으로 들어온 며느리를 싫어한 시아버지 고려 문종 사위 사랑은 장모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데, 고려 전성기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군주 문종文宗(1019~1083, 재위 1046~1083)은 그렇지 못했다. 권88, 열전1, 후비1, 순종順宗(1047~1083, 재위 1083년 7~10월) 후비 선희왕후宣禧王后 김씨金氏 조를 보자. 순종은 문종 아들이다. 선희왕후 김씨는 경주인慶州人으로 대경大卿 김양검金良儉의 딸이다. 순종이 동궁東宮에 있을 때 궁에 뽑혀 들어가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문종文宗이 미워하여 칙서[勑]를 내려 궁궐 바깥의 집으로 돌려보냈으며, 그런 까닭으로 끝내 자식이 없었다. 연복궁주延福宮主라 불리었고, 인종仁宗 4년(1126) 2월에 죽자 선희왕후라고 추시追諡하였다. 태자가 좋아해서 들인 아내를 시아버지는 용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 2024. 1. 14.
오줌 싸서 고려 현종 낳은 경종비 청상과부 황보씨 (4) 왕실을 뒤흔든 불륜 스캔들 고려사절요 권 제2 성종문의대왕成宗文懿大王 11년(992) 7월, 개경을 뒤흔든 불륜 스캔들이 터진다. 저간의 사정이 어땠는지를 관련 기술을 보면서 추적한다. ○ 가을 7월. 왕욱王郁을 사수현泗水縣으로 유배보냈다. 왕욱은 태조의 8번째 아들로서 그의 집이 경종景宗비 황보씨皇甫氏 집과 서로 가까웠다. 경종이 훙서하자 그 비가 궁 밖으로 나와 머물렀는데, 일찍이 곡령鵠嶺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더니 오줌이 온 나라에 흘러 넘쳐 온통 은빛 바다로 변해버리는 꿈을 꾸었다. 꿈을 점 쳐보니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면 곧 왕이 되어 온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비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과부가 되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겠는가. ”라고 하였다. 후에 왕욱과 마침내 사통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으나 사람들이 감.. 2024. 1. 14.
왕의 부인임에도 능陵에 묻히지 못하다 의 축, 임금 현종顯宗(992~1031)에게는 13명의 왕후와 후궁이 있었다. 그중 원목왕후元穆王后 서씨徐氏(?~1057)라는 이가 있다. 이천 서씨로 내사령內史令 서눌徐訥(?~1042)의 딸이고, 세 치 혓바닥으로 거란 군사를 되돌린 서희徐熙(942~998)의 손녀다. 현종과 1022년(현종 13) 혼인하였으니 아마 1000년~1005년 어간에 태어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현종보다는 26년을 더 살았다. 그가 죽자 문종은 이런 명을 내린다. 후비 열전을 보면..... 문종文宗 11년(1057) 5월에 죽자 ... 또 제制를 내려 명하기를, “흥성궁주興盛宮主의 화장火葬을 마치면 해당 관청에 명하여 타고 남은 유골을 묻고 능을 두며 시위侍衛할 관리와 능을 지킬 민호民戶를 정하여 각 절기[歲時]마다 제사를 받.. 2024. 1. 14.
[독설고고학] 한국 일본 고고학도들이 암포라를 연구했으면? 지금쯤 뭘 어찌하고 있을까? 뭘 어찌해? 지금도 그림 그리면서 실측을 해야, 손맛을 봐야 고고학 제맛을 안다 헛소리 찍찍 해 대고 물건을 많이 만져봐야 고고학을 제대로 한다 헛소리 찍찍하며 저 시대별 변천 주구장창 200년 동안 계속 그려대면서 양식 변천이 어떻고 지역별로는 또 어떤 차이가 나니 이건 로마식 암포라요 이건 아테네식 암포라요 이딴 놀음 계속계속 주구장창하다가 지금도 할 것이요 저 중에서 유행을 민감히 반응하는 어떤 거 하나 콕 집어내서 이건 졸라 중요하니 표지 유물이라 하면서 이건 장경長頸 암포라요 이건 바닥이 편평한 평저平底요 이건 손잡이가 달렸으니 파수부把手附요 하는 이딴 놀음한다고 정신 팔렸을 것이라 보면 대과 없다. 왜? 한국고고학과 일본고고학이 배워 쳐먹은 게 그딴 거 밖에 없기 .. 2024. 1. 14.
The Rise and "Fall" of the Kingdom The rise and fall 어쩌구 붙은 책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이고 선구적인 것이, The Ris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그리고 이러한 책을 흉내를 낸 것이, 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 이런 책들은 흥망사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사실 잘나가는 놈이 왜 잘나가는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 그게 왜 궁금한가. 잘난 놈이 잘 산다는데. 중요한 것은 왜 잘 나가던 놈이 멸망하는가 하는 것에 있다. 이런 것을 "멸망학"정도로 이름 붙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느데,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 라는 책도 이름은 다르지만 바로 이러한 멸망학의 한 부류라 할수.. 2024. 1. 14.
드루와! 거란을 농락하는 고려 몇 차례 걸친 고려 정벌전에서 거란이 얻은 소득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정벌전에서는 강감찬 강민첨 두 강씨한테 참패를 맛봤으니 가오만 열라 상하고 말았다. 그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란을 요동케 하는 내란이 발발한다. 발해 왕족 후손 대연림大延琳이 태평太平 9년(1029) 요 왕조 부수도 중 하나인 요양遼陽을 공격 점거하고 흥료국興遼國이라는 별도 왕조를 건국 선포하는 한편 자체 연호가 제정해 천경天慶이라 반포하기에 이른다. 이 흥료국은 이듬해 진압되고 말았지만, 이 반란은 반란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동아시아 국제정세까지 흔들어댔으니, 신국가 선포 직후 그 신왕조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주변국가의 승인을 받는 것이다. 대연림 역시 고려와 송나라 등지에 사신을 보내서 연합을 제안하게 되니, 고.. 2024. 1. 14.
둔전屯田 장착하고 북방으로 진격한 고려 고려사절요 권 제4> 정종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8년(1042) 4월 조에 이르기를 ○ 여름 4월. 동여진東女眞 대상大相 오어달吳於達이 밭을 갈 소를 달라 하니 동로둔전사東路屯田司에 소속된 소 10마리를 하사했다. 이 무심한 증언이야말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줄기찬 북방 개척 그 실상에 대한 일대 증언이다. 동여진이라 하고, 동로東路라 했으니, 지금의 함경도 일대 동해안 쪽임을 유추한다. 저쪽은 여진 땅이다. 그 여진 땅을 향해 고려는 끊임없이 진격 북상해 올라갔다. 비록 윤관에 의한 여진 정벌이 한때 성공했다가 이내 실패하고 말았지만, 간단없이 전진 북상해갔다. 지금에서 저 모습을 바라보는 자들은 왜 한꺼번에 연해주까지 치고 오르지 않았느냐 하는 헛소리들을 해대지만(실제 백년 전 우리 조상들, 민족주의 역.. 2024. 1. 14.
망했더라도 나름의 이유가 있어 유지되었던 시스템 조선시대 후기의 우리나라 시스템은 종국에는 망국으로 간 시스템이다. 그 수백년은 결국 실패의 경로였다고 할 만 할 것이다. 여기서 인문학자들이 할 일은 이 시스템이 좋은 것이었다고 커버쳐주거나, 아니면 이러니까 망했지라고 욕질을 하기 전에,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런 시스템이 유지되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냉정히 규명해야 하는 것이겠다. 주변 조건이 열악해지면 그 조건에서 살아 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겠고, 조선후기의 시스템은 바로 그 열악해진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 결과다. 우리가 앞으로 이러한 사건을 역사상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은 열악한 조건에서 북한처럼 죽네 사네 버티는 게 아니라 그런 조건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라 하겠다.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한 것 같은데 조.. 2024. 1. 14.
식목대왕 고려 정종 : 허심한 기록, 하지만 중대한 증언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 제4 정종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원년元年 4월 대목에는 아래와 같은 아주 짧은 기사가 무심하게 적기摘記되어 있다. ○ 禁京城名山樵採, 遍植樹木. 서울의 이름난 산에서 땔나무를 벌채하는 일을 금지하다. 이를 어찌 읽어야 하는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물어야 할 것은 왜 이 기록이 남았는가? 왜? 당연히 국가지대사라 생각한 까닭이다. 그래서 남겼다. 이를 통해 이를 편찬한 조선왕조는 무엇을 노렸는가? 이 물음이 곧 저 기록을 유독 대서특필한 이유다. 둘째 지극히 당연하다 개소리하겠지만 저때도 끊임없이 식목을 했다. 예서 관건은 어떤 나무를 심었는가겠지만, 이런 의문이 고려시대 증언에서는 잘 풀리지 않는다. 조선시대 기록들을 찾고, 특히 개경과 가까운 지점 서울 주변에 어떤 나무들을 심곤 .. 2024. 1. 14.
왜 왕은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는가? 토론의 전형 성종실록 163권, 성종 15년 2월 23일 경신庚辰 두 번째 기사 1484년 명 성화成化 20년에 성종은 승정원承政院을 통해 관리들한테 아래와 같이 전교한다. "대신大臣이 졸卒하여 거애擧哀함은 《대전大典》에 실렸으나, 이제 대비전大妃殿이 있는 까닭으로 행할 수가 없다. 내가 예문禮文을 상고하건대, 회장會葬하는 예禮가 있어 내가 행하려고 하니, 이제 《대전大典》을 수개讎改하여 첨가해서 기록함이 어떠하겠느냐?" 하니, 우승지右承旨 권건權健 등이 합사合辭하여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진실로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일이니, 홍문관弘文館으로 하여금 고제古制를 상고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우부승지右副承旨 김종직金宗直이 아뢰기를, "예전에 위징魏徵이 졸卒하여 백관百官이 회장會葬하였으나, 이것은 특.. 2024. 1. 14.
조선 준왕이 도망쳐 웅거한 데는 섬! 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삼국지와 그 배송지 주를 논하면서 개중 한 장면으로 위만의 쿠데타에 왕국을 통째로 강탈당한 조선 마지막 군주 준왕准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바다로 도망가 한韓 땅에 정착하는 과정을 기술하는 구절이 있으니, 그것을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진수의 삼국지 기술은 다음과 같다.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號韓王。(그 좌위 궁인을 거느리고 바다로 들어가 한 땅에 살면서 한왕이라 칭했다) 이에서 우리가 무심히 넘겼지만 세심히 볼 대목이 있다. 좌우 궁인들을 데리고 바다로 들어가서[入海], 한韓 땅[韓地]을 점거하면서, 자칭 한왕韓王이라 했다는데, 이를 그간 많은 이가 준왕이 위만한테 넘어간 왕검성을 탈출해(탈출보다는 나는 위만과 준왕 사이에 협상이 있었다고 본다. 내가 조선을.. 2024. 1. 14.
쉽게 설명을 못해서 어려운게 아님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쉽게 설명을 못해서 어렵게 들린다는 생각이 있다. 그게 아니고, 대개 어려운 설명을 하게 되는 경우 그 내용을 자기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설명하면 그렇게 들린다. 우리나라 인문학도 대중에게 가까이 간다고 쉽게 풀어 이야기 한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요는 수준을 낮추는 것과 쉽게 풀어 이야기 한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수준을 유지하면서 쉽게 설명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게 어렵다. 하지만 이게 아무나 되는 거라면 누가 전문가라 하겠는가. 전문가임을 자임하는 이상에는 수준과 평이한 설명은 반드시 둘 다 잡아야 할 토끼다. *** Editor's Note *** 저 문제 대해 편집자는 줄기차게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가장 학술적인 글이 가장 대중적.. 2024. 1. 14.
삼국지연의는 다 뻥인가 삼국지연의는 뻥이 많아서 실제 삼국지와는 내용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아다닌다. 과연 그럴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 그 양반들은 대개 진수 삼국지 원전을 한 번 안 본 사람들이라 필자는 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진수 삼국지는 배송지 주를 함께 달고 출판된 경우가 거의 전부로, 삼국지 원전을 보면 배송지 주에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이야기가 거의 다 실려 있다. 물론 과장의 정도나 사건의 사소한 차이는 있겠지만 하나하나 사건 자체는 연의에 나오는 이야기는 배송지 주에 거의 다 나온다는 말이다. 따라서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는 다르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삼국지 원전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지만 배송지 주까지 삼국지 원전으로 본다면, 삼국지연의는 스토리라인이나 개별 사건이 삼.. 202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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