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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가리에서 산 세형동검 envelope knife 문득 책상을 보니 요시노가리에서 산 세형동검 봉투칼이 20년 가까이 되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붓과 연적을 자기 벗으로 삼았다던데, 내게는 어쨌건 20년을 같이 책상을 지킨 벗이나 다름없다. 요시노가리 유적 옹관묘에서 나온 세형동검으로 안다. 2022. 12. 10.
추사秋史는 김정희의 자字가 아니다 며칠 전 추사秋史는 김정희의 호號가 아니라 자字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1810년 청나라를 방문하여 청나라 문인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이름은 정희고, 자(字)는 추사(秋史)이며, 호는 보담재(寶覃齋)라고 적은 것을 통해 추사가 자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자필로 쓴 것이니 믿을 만하다고 여긴 듯하다. 당시 간략히 정리해야겠다고 여겼지만, 당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지라 그러지 못하고 답글로 대충만 쓴 적이 있었다. 민규호(閔奎鎬, 1836~1878)가 지은 〈완당김공 소전(阮堂金公小傳)〉에는 “김공 정희(金公正喜)의 자는 원춘(元春)이고, 호는 완당(阮堂)이며, 또 다른 호는 추사(秋史)인데, 본관이 경주(慶州)이다.[金公正喜 字元春 號阮堂 又號秋史 慶州人也 .. 2022. 12. 10.
어느 학예연구사의 눈물 천상 마타하리다. 아님 레옹인가? 이 친구가 일을 냈다. 진군의 나팔을 울릴 때만 해도 오합지졸이더니 말똥가리 소똥 굴리듯 덩치 키우다가 친위세력으로 경기도 지역 동종 업계종사자들을 끌어모으다기 마침내 전국으로 조직을 확산하니 그 추세 진승 오광을 뛰어넘고 황건적을 능멸했다. 그렇다고 그가 놀기를 좋아하지 않은 것도 아니요 힐링을 치지도외하진 않았으되 전의 다지기 위함이었는지 델피 신전에 가서 신탁도 받기도 했더랬다. 그 신탁에 소백산맥 기슭 엄원식을 옹립하여 대장으로 삼고 동해가 김대종을 필두로 일부 노땅들을 기로소에 앉혔으니 천만다행 이들 노친네도 세를 규합하고는 여의도를 뻔질나게 들락하며 우리가 왜 이를 하며, 또 대한민국은 왜 이를 해야 하는지를 설득했다. 김예지와 마침내 손잡은 이들이 일을 냈다.. 2022. 12. 10.
서너달 만에 해치운 자치통감 완독 주변에 한학에 뛰어난 분이 꽤 있다.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따라가지 못할 분들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술술 원전 읽는다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한문으로 먹고 산 전통시대 아무리 뛰어난 한학자라도 한문 원적을 술술 읽었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한적漢籍은 왜 번역되어야 하는가? 번역본으로 읽으면 술술 읽히기 때문이다. 물론 번역에는 오역이 있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한학자라도 오역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권중달 교수가 완역한 자치통감 31권을 읽는데 한두 달을 소비했다. 한데 내가 이걸 원전으로 읽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번역본에서 내가 필요한 곳, 의문나는 곳은 반드시 원문을 봐야 한다. 번역본은 이렇게 반드시 봐야 할 곳을 제외한 원문 읽기의 수고를 왕청나게 덜어준다. (2013... 2022. 12. 10.
학력차별 전공차별, 문화재판을 좀먹는 암덩어리들 나는 그런대로 좋다는 대학 나왔고 그런대로 좋다는 학과를 나왔으며, 종잇쪼가리에 지나지 않으나 이른바 문화재 관련이라 분류할 만한 석사 학위도 있고 박사는 수료한지 백악기 시대다. 이런 내가 오직 분노하는 데가 있으니 학력차별 전공차별이다. 왜 내가 어떤 일을 선택하는데 대학을 나오고 관련 전공을 했느냐가 장벽이어야 하는가? 이 꼴이 문화재판에서도 갈수록 기승이라 뭘 뽑는데 대학을 나와야 한다 하고 관련전공을 해야 한다고 갈수록 규제를 강화한다. 어제도 이런 일이 있어 열받아 해부쳤다. 관련학과? 역먹어라. 너희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청차장도 대학 출신이긴 해도 이른바 문화유산 관련학과가 아니다. (참고로 차장은 대학원박사를 이쪽으로 해서 신분을 세탁했다.) 더 웃긴 건 이런 정책을 입안하는 실무자나 간부도.. 2022. 12. 10.
현판, 격조 있는 알림 1. 보고서를 쓰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현판이란 기본적으로 이 집이 무얼 하는 곳이라는 표시이다. 만약 저 대리석 현판이 없더라면 저 건물이 그 유명한 '통문관'인지 쉽게 알겠는가. 하지만 없더라도 어찌어찌 알 방도야 있을 것이다. 들어가서 물어본다든지 지번을 검색해본다든지. 2. 어쩌면 현판의 더욱 중요한 쓰임이란 이 건물을 쓰는 사람의 생각과 격조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은근히 자랑하려 함이 아닐까? 저 '통문관' 현판이 만약 검여 유희강의 글씨가 아니라 그냥 컴퓨터 폰트였더라면...어후, 상상에 맡길 뿐이다. 3. 생각해보건대 현판의 용도와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얘기하신 분은 바로 현철 선생님이 아닐까 한다. 왜 그분의 히트곡을 들어보면... "이름표를 부~~ㅌ여 내~가슴에, 화~ㄱ실한 사랑의 도.. 2022. 12. 10.
지석誌石, 저승세계로 가는 도로 안내판 지석誌石은 묘지명墓誌銘 일종이나 무덤 밖에서 여기가 누구 무덤임을 표지하는 신도비神道碑 혹은 갈기碣記碑와는 달리 무덤 안에다가 시체랑 같이 묻는 표식이라는 점에서 갈 길을 달리한다. 그 구체하는 매장 위치는 일정한 패턴이 없어 중국의 경우 현실玄室 통로 쪽에 두는 관례가 있으나 고려나 조선의 경우는 봉분 흙더미나 그 바깥 묘역에 묻는 일이 많았으니 힘께나 있는 집안에선 신도비랑 지석을 동시에 세우거나 묻었으나 아무래도 신도비 쪽이 돈이 많이 들고 또 그걸 세우는 자격에 제한도 있어 지석만 넣는 일이 많았으니 그 내막이 무엇이건 여기가 누구네 무덤임을 표식하는 구실에는 변함이 없다. 경기도박물관이 이런 지석만을 조명하는 특별전을 꾸미고선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런 자리를 장만했다기에 자칫 무미하기 짝이 없을.. 2022. 12. 9.
반복되는 기억: 두번째 멸망 백제는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 망한 것이다. 첫번째는 서기 476년. 앞에서 설명한 한성 함락으로 개로왕은 참수당하고 사실상 당시 백제 지배층을 이루던 이들이 몽땅 사라져버리면서 나라가 공중분해되었다. 이후 백제가 부흥하는 과정은 실로 남송이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 비유할 만한데, 문주왕과 삼근왕을 끝으로 개로왕 직계가 소멸하자 왕위계승 서열상 가장 가까운 곤지 계열이 왕위에 차례로 오르기 시작했을 것이라 하였다. 곤지는 알다시피 한성함락 이전 이미 왜로 가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당연히 이 계열은 왕위를 요구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한성함락으로 개로왕 직계가 사실상 소멸함으로써 이들에게 기회가 왔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곤지 계열은 남송의 황실, 동한의 광무제처럼 이전의 백제와는 이질적이라 할 수 있는데 비록 왕.. 2022. 12. 9.
유혁로柳赫魯라는 인물의 글씨 요즘은 학교에서 갑신정변(1884)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이라고 해봤자 20년쯤 전) 교과서에는 개화파가 조선을 개혁하려는 의도로 벌인 사건이라는 식의 긍정 서술이 많았다고 기억한다. 김옥균 위인전도 있었고(물론 거기서 김옥균은 '위인'스럽게 나온다) 역사만화전집 같은 데서도 '젊은 그들'의 행보는 진취적으로 묘사되곤 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다시 본 갑신정변은 그리 긍정이지 않았다. 비유컨대 숯불 속에서 설익은 감자를 꺼내려다 손만 데고 감자마저 떨구어버린 격이랄까. 전개과정만 그랬다면 몰라도 이후 이른바 개화파 행보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10년을 더 살았으나 허랑하고 만 김옥균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라를 구하겠다고 일어선 이들이 뒷날 나라 망하는 데 손을 보태고 만 건 지독한.. 2022. 12. 8.
[유성환의 이집트 이야기] 투탕카멘과 하워드 카터(6) 파라오의 저주? 왕묘가 발견된 후 몇 주 뒤 영국의 제5대 카나본 백작 조지 허버트(George Edward Stanhope Molyneux Herbert, Fifth Earl of Carnarvon: 1866-1923년) 경은 면도를 하다 모기에 물린 부분을 잘못 건드렸는데 이때 그만 상처가 덧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 부분에 심각한 염증이 생겨 1923년 4월 5일 결국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공식적인 사인은 패혈증에 의한 폐렴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에 언제나 목말라하던 언론에 의해 ‘파라오의 저주’(curse of the pharaohs)라는 해묵은 미신이 또다시 기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편승하여 카나본 경이 사망한 날 “카이로 시내가 정전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사망한 바로 그 시각.. 2022. 12. 8.
백제: 한성함락과 곤지왕 앞서 북송의 멸망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지배세력의 교체가 태종계열에서 태조계열로 이루어졌음을 언급하였다. 필자의 생각에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시기가 바로 백제의 한성 함락이다. 고구려 장수왕에 의한 한성함락이 어떻게 벌어졌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 김단장이 쓰신 "풍납토성~"에 자세하니 부연하지 않겠다. 사실상 이 당시 개로왕으로 상징되는 한성백제의 주류는 풍비박산 나다시피하여 북송의 멸망을 연상시킬 정도였다고 보는데, 개로왕 이후 백제왕 계보에 대해서는 워낙 이설이 난무하여 여기에 일일히 그 설들을 하나하나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주목할 만한 사실은 한성함락과 함께 백제왕권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보이는 곤지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보이는 (혈연적으로나 의제적인 관계에서나).. 2022. 12. 8.
김태식이 기록한 권중달 자치통감 완역 실록 28권으로 재탄생한 '자치통감' 번역본…판매수익, 장학기금 기부 김예나 / 2022-12-08 07:33:00 권중달 교수 50여년 연구·번역에 '이정표'…"정본 의미 지닌 마지막 판본"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34266870581 28권으로 재탄생한 ′자치통감′ 번역본…판매수익, 장학기금 기부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중국 북송시대의 역사가 사마광(1019∼1086)이 쓴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한글 완역본이 새로운 구성으로 출간됐다. 도서출판 삼화는 최근 번역서 27권과 해설서 k-odyssey.com 자치통감 완역이라는 오직 한 길만을 향해 반세기 열정을 쏟아부은 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가 또 하나의 금자탑을 쌓았으니, 20.. 2022. 12. 8.
발굴 인부의 문화유산상 수상을 마주했을 때 발굴 현장인부의 문화유산상 수상에 부친다 어제 문화재청이 발표한 '2015년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대상자' 중에는 대통령 표창 보존·관리 부문 수상자 최태환 반장이 포함됐다. 한데 그 어떤 기자도 최 반장의 수상 의미를 제대로 짚은 이가 없다. 문화재청이 발표한 그의 공식 직함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경주 월성발굴조사단 현장반장....현장반장은 현직 공무원이 아니다. 최 반장은 누구인가? 발굴인부다. 생평을 발굴현장에서 직접 삽과 곡갱이 호미로 땅을 파는 발굴인부다. 내 기억에 그가 이 분야에 발을 딛기는 1966년 경주 방내리 고분 발굴이다. 이후 이 분은 지금까지 생평을 발굴현장에서 발굴인부로 일한다. 최 반장은 경주관광개발계획 당시에는 4대 현장반장이었다. 두 분은 이미 타계하고 '용만반장'이라 .. 2022. 12. 8.
흥선대원군이 쓰던 사구인詞句印 만 권이나 되는 기이한 책 쟁여놓고서 欲藏萬卷異書 죽도록 파고들어 휘파람 불며 읊으련다 終身嘯詠其中 평생 정치의 소용돌이를 만든 석파 태공도 마음 깊숙이 저런 삶을 꿈꾸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런 소망을 이루기엔 조선의 근대가 너무도 슬펐으니. (2019. 12. 5) 2022. 12. 8.
거미줄 걸린 매미를 풀어주며 by 이규보 그동안 좀 격조했는데, 모처럼 짬이 난 김에 별밤 들으면서 한 장 그려보았다. --- 저 교활한 거미는 그 종류가 아주 많구나. 누가 너에게 교활한 재주 길러 주어 그물 만들 실로 둥근 배를 채웠는가. 어떤 매미가 거미줄에 걸려 처량한 소리를 지르길래 내가 차마 듣다 못하여 놓아 주어 날아가도록 했더니 옆에 서 있던 어떤 자가 나를 나무라면서, “오직 이 두 미물微物은 다 같이 하찮은 벌레들인데 거미가 자네에게 무슨 손해를 끼쳤으며 매미는 자네에게 무슨 이익을 줬기에 오직 매미만 살리고 거미는 그만 굶겨 죽이려 하느냐? 이 매미는 자네를 고맙게 여길지라도 저 거미는 반드시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다. 매미를 놓아 보낸 것에 대해서 누구든 자네를 지혜롭다 하겠는가?”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처음에는 이마.. 2022. 12. 8.
황룡사 터, 그 완벽한 폐허 어쩌다 경주를 다녀오고선, 그러고 또 어쩌다 황룡사 터를 찾고선 흔연欣然해져 넋을 잃은 작가는 말한다. "겨울이고 저물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고, 새벽이나 한낮이라도 나름의 정취는 고스란했을 테다. 예술품에 '완벽하다'는 말이 쓰일 수 있다면 석굴암에 그러할 거라 했는데, 폐허에 '완벽하다'는 말을 쓸 수 있다면 황룡사지에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도 못내 독자 혹은 청중이 믿기지 못한 듯 "그냥 가보시라, 황룡사지, 그토록 위대한 폐허"를 부르짖는다. 무엇이 이토록 그를 매료했을까? 그는 말한다. "화려했던 과거를 되짚을수록 현재의 폐허는 허무로 깊어진다." 상술하기를 "거대한 초석들 위에 세워졌을 거대한 기둥은 온데간데없다. 사라진 영화, 사라진 신전 앞에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2022. 12. 8.
시공을 달리하나 묘하게 닮은 남송南宋과 백제百濟 남송과 백제는 존속한 기간도 다르고 장소도 달리하는 왕조로 비교가 어려울 듯하지만, 남송 역사를 보면 백제사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 심장한 부분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정강의 변-. 오대의 혼란을 종식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160여년간 번영한 북송은 휘종-흠종 대에 이르러 금의 침공에 궤멸적 타격을 입고 수도 개봉부가 함락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때 북송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는가를 하면 당시 휘종의 비, 후궁, 왕자에 이르기까지 깡그리 납치당하여 금으로 끌려가는 통에 황실 적통의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휘종의 처첩과 왕자 등 직계존속 등 금으로 납치된 사람이 수만 명에 달했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강남에서 휘종의 아홉번째 아들인 조구가 남송 초대황제로 즉위할 즈음에는 그 많던 .. 2022. 12. 8.
다리미 머리 이고 왕림하신 신라의 남성 권력자, 황남동 120호분 발굴성과 공개 금귀걸이·은허리띠 한 신라 무덤 주인은…"키 165cm 이상 남성" 김예나 / 2022-12-07 09:55:24 8일 경주 황남동 120호분 발굴 현장 설명회…"신라 문화 이해 위한 학술 가치 커" https://k-odyssey.com/news/newsview.php?ncode=179542971613927 금귀걸이·은허리띠 한 신라 무덤 주인은…"키 165cm 이상 남성"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는 ′황남동 120호분′은 5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며 무덤 주인은 키가 165㎝ 이상인 남성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조사 결과가 나왔다. 문화재 k-odyssey.com 저 무덤 발굴소식은 두어 번 전했거니와, 발굴조사기관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라는 데고, 아무래도 출토유물도 많고 .. 2022.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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