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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墓와 廟] (2) 종묘가 없어 성묘省墓를 택한 고려 현종 나는 앞서 무덤에 봉분이 등장함으로써 조상 추숭 의례는 종래 그 혼령인 신주를 모신 종묘(집안으로 좁히면 가묘家廟) 말고도, 그 후손이 무덤에 직접 가서 제사를 올리는 능행陵行도 생기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따라서 봉분의 출현은 廟에서 墓로 조상 추숭 의식이 이동(혹은 병행)했음을 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 이런 내 말을 단칼에 증명하는 대목이 있다. 《고려사절요》 권제3권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갑인 5년(1014) 여름 4월 조 대목이다. “왕이 친히 재방齋坊에 체제禘祭하고 (선대왕과 그 부인들에게) 존시尊諡를 더 올렸다. 당시에 대묘大廟가 완성되지 못하여 매양 시제時祭가 되면 각기 해당 능陵에 관원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했다가 이제 재방을 수리하여 임시로 신.. 2023. 11. 21.
[슬렁슬렁 자발 백수 유람기] (53) 틈나는 대로 싸라! 맥도날드의 성공 비결 몇 푼 되지 않는데 괜히 기분 나쁜 게 내 오줌 싸고 돈 내는 일이다. 한국에서야 이 오줌 서비스가 근간이 무상이지만 그리하여 내가 싸고 싶을 때 천지사방 그걸 해소할 공간이 있지마는 국경만 벗어나면 이게 참 지랄맞아 변소는 찾기도 힘들고 있어도 돈 받는 데 천지라 싸기도 지랄 맞다. 이태리도 마찬가지라 다만 카페에 가거나 할 때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맥도날드가 왜 성공했는가? 그 가장 큰 힘이 오줌싸기 무한리필제공에 있다고 본다. 그러니 언제 터질지 모르니 맥도날드만 보이면 무조건 싸고 뵈라. 덜 채워져도 곧 채워질 것이니 즉각잭깍 비워야 한다. 맥도날드 창립 정신은 이것이다. 마려븐 자여 나에게로 오라! 2023. 11. 21.
잡곡문명의 이해 삼국통일 이전 한국문명의 북쪽 절반은 잡곡문명이다. 우리는 이 잡곡문명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다. 도작문명에 익숙한 우리는 고구려 부여의 이 잡곡문명이 그저 도작문명 비슷한 것이었거니 한다. 그러나 쌀농사가 없는 문명은 그 자체 엄청나게 다르다. 잡곡만으로 이루어진 문명. 이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가. 부여에 대한 삼국지의 기술을 보면 "오곡"이 난다고 했다. 삼국지 기술에는 "오곡"과 "벼"를 따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오곡은 쌀을 제외한 잡곡들이 다양하게 난다는 말이다. 쌀을 뺀 잡곡, 아마도 콩, 조, 피, 수수, 기장 등을 먹었을 텐데, 이는 단순히 먹는 곡식의 종류가 달랐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잡곡문명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이해해야만 우리는.. 2023. 11. 21.
세계유산에서도 나날이 쪼그라드는 문화재청 한국, 세계유산위 4번째 진출 도전…22일 파리 총회서 선거 2023-11-19 11:06 아태지역 2개 공석에 한국·카자흐·베트남 경합 https://m.yna.co.kr/view/AKR20231119019400504?section=culture/scholarship 한국, 세계유산위 4번째 진출 도전…22일 파리 총회서 선거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한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하고 결정하는 권한을 지닌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www.yna.co.kr 이와 같은 일이 근간에서는 외교 업무 맞다. 그런 점에서 이와 같은 소식을 외교부 담당기자가 외교부 발로 쓰는 것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또 하나 잊어서는 안 되는 대목이 이 업무는 문화재.. 2023. 11. 20.
부여와 고구려는 쌀과는 무관한 사람들 한국문명은 잡곡문명과 도작문명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잡곡문명은 지금 도작문명이 본격화하기 이전 초보적 농경 정도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럴까? 일단 부여와 고구려는 도작과는 상관없는 문명권이 아니었을까. 이 부여와 고구려의 잡곡문명은 어디서 왔을까. 요서 아닐까. 그렇다면 한반도의 도작문명은 어디서 왔을까. 산동반도 아닐까. 이 두 개의 이질적 문명이 평양쯤에서 결합해서 한반도 남부를 거쳐 일본으로 빠져 나간 것이 아닐까. #도작문명 #잡곡문명 #벼농사 #벼농사전파 2023. 11. 20.
6세기 도작 문명의 바닥을 확인한 진흥왕 누차 썼지만, 진흥왕의 황초령, 마운령비는 신라가 생각하는 벼농사 문명의 북쪽 끝에 해당한다. 저 지역을 넘어서면 한반도 남부의 사람들이 볼 때 전혀 다른 별개의 세상이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신라의 이러한 경험은 삼국통일 후 북진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임에 틀림없다. 삼국통일의 단계에서 만주를 묶어 내려면 잡곡문명과 도작문명 둘 다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남쪽에서 올라간 문명은 이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이후 한국사가 도작의 북진과 영토의 확장이 항상 같이 따라 갔던 것은 신라의 북진선이 곧 그 당시 도작문명으로서는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북쪽선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2023. 11. 20.
고분시대 일본 열도의 전방후원분 분포가 시사하는 점들 일본 고분시대 전방후원분 분포다. 전방후원분이 북쪽에도 몇 개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어느 선까지 집중되어 있는가를 보고 아래 지도를 보자. 이것이 고분시대 도작을 바탕으로 성립한 정치권력이 북상한 한계선이다. 이 위쪽으로 북진한 것이 7-9세기의 일이다. 9세기 말이 되면 센다이 북방까지 진출한다. 한반도의 동위도 (37도) 이남이 대체적으로 청동기시대 이래 송국리문화권에 해당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방후원분 #전방후원분분포 *** Edotor's Note *** 이리 살피면 한국사 아닌 것이 어디있는가? 전방후원분이 비로소 한국사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가? 영산강유역에 전방후원분이 나타난다 해서 그것이 한국사인가? 이런 접근은 2차원적이다. 2023. 11. 20.
사후 700주기 맞은 마르코 폴로 세계사에 마르코 폴로 Marco Polo 라는 이름을 아로새긴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은 내가 아주 일찍이 두어 번 통독하기는 했는데, 그때 이상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쥬라기공원 여행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아마 번역본 대본은 동서문화사 번역본이 아니었던가 하는데, 그때야 내가 이 여행기가 생성된 내력이라든가 판본 문제라든가 하는 데는 거의 관심이 없을 때라,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지만, 다만 이 일기를 그가 직접 보고 듣고 한 것들을 버무렸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후 이 책은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이 동방견문록이 실제 그가 경험한 것이 아니라 가공하거나 꾸며낸 것들이거나 하는 보도 비스무리한 것을 접한 기억이 있으니, 이 기억도 실은 확실치 아니해서 아무튼 동방견문록.. 2023. 11. 20.
지도 단 한 장으로 한국사를 설명하는 방법 필자가 어찌어찌 하다 보니 외국인에게 한국사를 설명해야 할 때 흔히 쓰는 지도다. 여기 플로리다가 보이는가. 이게 한반도다. 여기 플로리다를 뺀 나머지 미국. 이게 중국이다. 쿠바 자리에 쿠바 대신 영국이 있다고 생각해 봐라. 그게 일본이다. 그런데 플로리다가 미국에도, 영국에도 들어가지 않고 수천년간 독립국가를 유지했다고 생각해 봐라. 이게 한국사인데, 한국사의 모든 영욕은 이런 지리적 문제를 감안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사는 민족정기, 경제학, 정치학 다른 모든 것보다 지리적 요건이 최우선적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지정학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국가운영 책략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P.S.) 플로리다는 한국보다는 농사가 잘 되었을 것 같다. 2023. 11. 20.
[슬렁슬렁 자발 백수 유람기] (52) 노는 백수는 월요일이 휴일, 하지만.. 한국이나 유럽이나 대체로 문화관련 기관들이 월요일에 휴관한다. 이들한테 대목은 주말이라 이 주말 이틀에 총력을 쏟고는 월요일 하루 쉬는 패턴이 문화계엔 정착했다. 로마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곳에 따라 수요일에 쉬는 곳도 있어 수시로 홈페이지를 방문해 확인해야 한다. 요새는 구글지도 한 방으로 의문을 푸는 시대다. 따라서 월요일이라 해서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지 모름지기 그런 것은 아니다. 심심파적 삼아 로마 시간 월요일 오전 일곱시인 지금 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 두 군데, 콜로세오와 바티칸미술관을 두들기면 아래와 같다. 영업 개시 시간은 30분 차이가 있지만 월요일인 오늘도 문을 연다. 하긴 저 정도 시설을 한가롭게 월요일이라 해서 닫아두면 날리는 돈이 얼만가 생각해보면 놀릴 수도 없겠단 생.. 2023. 11. 20.
만주땅이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If 라는 말은 역사에서는 별 소용없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만주땅이 한국사에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필자가 보기엔 만주땅은 한국사의 경로를 바꾸는데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 본다. 만주땅이 한국인에게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이 지역이 농경지로 바뀌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그 후에 비로소 만주땅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고려와 조선이 북진정책을 한데도 그건 어디까지나 농사가 제대로 되는 선까지 북진을 말하는 것이지, 시베리아 벌판 바로 아래까지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사에서 if가 통한다면, 이것이 있었다면 한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한반도의 남쪽이 일본의 큐슈 남부 지역, 중국의 양자강 북.. 2023. 11. 20.
trastevere : b와 v의 호환 Trastevere · 로마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www.google.com 일전에 나는 저 두 발음이 지금은 엄격히 구분되지만 인도유러피안 언어들을 비교하면 실제는 딴판이라 호환이 빈번했다고 한 적 있다. Trastevere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 행정구역 하나다. 수도를 리오네 rione라는 행정구역으로 세분하거니와, 개중 13번째라 해서 R. XIII라 약칭한다. 이 말은 라인어 trans Tiberim에서 비롯한다. 글자 그대로는 'beyond the Tiber', 티베르 강 너머라는 뜻이다. 구체로는 지금의 로마는 북쪽에서 흘러내린 Tiber강이 로마 북쪽에서 방향을 서쪽으로 틀다 다시 남쪽으로 직진해 시내를 관통한다. 뜨라스떼베레는 티베르 강이 관통하는 서쪽 건너편을 일컫는다. 지금의 베네치아.. 2023. 11. 20.
모던뽀이 modern boy에 대한 소리옮김이 식민지시대 문건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모던 뽀이다. bus 역시 뻐스가 많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아마도 외래어 표기법이 생기면서가 아닐까 하는데 예외없이 모던보이 버스가 되었다. 어쩌면 종래의 한국어 표기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유별난 표기를 통해 이것이 외래어임을 증명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어 ㅂ과 ㅍ은 입술소리다. 그에 해당하는 영어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b와 p 역시 입술터짐 소리다. 이외에도 ㅃ이 이에 속한다. 영어에서는 f와 v가 순음 계통에 속하나, 이것은 한국어에는 없다. 한데 이건 음성기호라는 사실이 곧잘 망각되곤 한다. 편의상 가깝게 들리는 음을 근사치로 대응한데 지나지 않는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ㅂ과 ㅍ을 확실히 구분한다.. 2023. 11. 20.
처음 찍은 게 맞다 북송의 성리학자 정호가 어느 날 창고에 앉아 있었는데, 심심풀이로 뒤채 행랑의 기둥 수를 세어 두었다. 그런데 다시 세어보니 맞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불러다 소리내가며 세게 했더니 처음 센 게 맞았다. 이에 정호는 '집착할수록 안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시험 칠 때 처음 찍은 게 맞는다는 것을 900여년 전에 알아차리신 위대한 명도 선생이시여. #시험 #겐또 #찍기 2023. 11. 20.
[슬렁슬렁 자발 백수 유람기] (51) 라틴어권의 영어 같은 유럽이라 해도 영어 친숙도가 문화권별로 극도로 갈리는데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이른바 라틴어권은 거의 깡통수준이라 한국 일본사회의 그것과 비슷하다 보아 대과가 없다. 물론 외국 관광객 내방이 많은 지점 종사자들이야 사정이 다르지만 이 범위만 벗어나면 깡통이라 보면 된다. 반면 독일이나 북구권은 초동급부까지 영어가 졸라 유창하다. 언뜻 네이티브 영어 스피커가 아닌가 할 정도다. 왜 이런 대비가 일어날까 생각해보면 결국은 뿌리 문제로 귀착하는데 영어는 실은 독일어라는 사실이 곧잘 망각되곤 한다. 영어는 독일어에서 갈라져 나왔다. 반면 라틴어는 저와는 계통이 완전히 다르다. 견주건대 영어와 독일어는 한국어와 일본어 관계인 반면 영어와 라틴어는 한국어와 중국어만큼이나 이질적이다. 한데 신기한 건 의사소통. .. 2023. 11. 20.
사군육진 개척을 둘러싼 의문 사군육진은 위도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다. 사군 육진은 홋카이도 남부지역과 위도가 같다. 세종 때 이 지역에 사민이 이루어진 것은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우선 도대체 뭘 먹고 살았을까? 일본사에서도 15세기에는 저 위도까지 올라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특히 두만강 연안의 사민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유지되었는지, 도대체 뭘 먹고 살았는지 밝혀진 것이 너무 없다. 거듭 이야기 했지만 북방 사민은 그냥 올라가서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사에서 북해도까지 올라가 개척을 한 시대는 메이지유신 이후에야 본격화하는데 이 당시 북해도에 심을 적당한 종자가 없어 개척농민들은 크게 고생을 했다. 일본 동북지역은 19세기 초중반까지도 만성적인 흉년에 시달렸는데 결국 그 이유는 벼농사가 안정적이지.. 2023. 11. 20.
거지 로마의 미스터리 로마는 그 명성과는 달리 거지다. 실제로도 거지라 툭하면 북쪽에다 손을 벌린다. 이것이 미스터리다. 도시별 관광객 숫자 통계 수치가 있을 텐데 로마야 파리 바르셀로나와 어깨를 견주거나 그에 버금하지 않겠는가? 이리도 관광객이 쏟아져들어오는데도 왜 로마는 거지인가? 부패 때문일가? 조폭 때문일까? 모르겠다. 이태리는 남북 문제가 심각하다 하는데 로마보다 남쪽 나폴리는 같은 대도시지만 이보다 더 거지 슬럼도시라 김민재가 1년만에 왜 뮌헨으로 떠났는지 알겠더라. 마누라가 그 더러움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 등살 못이겨 냅다 튀었으리라. 2023. 11. 19.
[슬렁슬렁 자발 백수 유람기] (50) 계란 빵쪼가리 주워 담는 이유 늙어보니 알겠더라 그래 지금 나보다 늙은 사람들아 쿠사리 찐밥 먹여 미안하외다. 특히 아줌씨 할매들 해외 나가셔서 아침 식사 더불어 빵쪼가리 계란 밀감 사과 바리바리 주서담아 나오시는 모습 심히 꼴불견이었고 제발 코리언 가오상하니 그런 짓 좀 그만하라고 욕 되바가지 했던 일 잘못했소이다. 늙어보니 알겠더이다. 다니다 보마 배가 그리 고푸고 그때야 저 빵쪼가리 고마운 줄 알겠더이다. 그랬소 나도 따라해봤소. 에르콜라노 들어서기 전 호텔 나서며 계란은 두 개, 빵쪼가리도 두 개 쌔벼 나왔다오. 두 시간 흘러 배가 뒤지도록 고프더이다. 꺼내먹었소. 꿀맛이었소. 이젠 알았소. 고맙소. https://youtu.be/yIaD_cb40Q8?si=GtBsvAW2Qmh-YHu- 2023. 11. 19.
이규경《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가 유전한 내력과 군밤장수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가 최초로 발견된 때는, 말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어떤 이는 1910년대, 어떤 이는 1920년 중반, 어떤 이는 1930년대라고 한다. 육당 최남선(崔南善)이 설립한 조선광문회가 당시 고문헌을 수집할 때 권보상(權輔相)이란 사람이 광교(廣橋)근처 군밤장수로부터 입수했다고 전한다. 확인해 보니, 1918년 12월 17일 신문에 《五洲衍文》을 설명하고 내용을 인용한 것이 보인다. 이규경의 초고본은 육이오에 불탔지만, 규장각에 필사본이 두 종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에 필사본 한 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본은 언제 필사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규장각본 보다 정확하다. 이규경 친필본 《오주서종五洲書種》이 고려대 도서관에 있는 것을 보면 군밤장수 이야기는 너무도 극.. 2023. 11. 19.
젊은 소정小亭, 폭포를 그리다 근대 한국화단에는 숱한 화가가 있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림솜씨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는 적고, 또 그 중에서도 처신을 흠잡을 구석이 드문 분은 더욱 적다. 그 적은 사례 중 한 분이 바로 소정 변관식(1899-1976)이다. 오원 장승업(1843-1897)의 제자뻘인 소림 조석진(1853-1920)의 외손으로 태어난 그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 도기과陶器科에 입학해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이를 마친 뒤엔 외할아버지가 간여하던 서화미술회에 드나들며 그림을 배운다. 1920-30년대 변관식은 서화협회전, 조선미술전람회에 여러 차례 작품을 내는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두 차례 특선을 거두면서 기량을 널리 인정받는다. 1925년부터 4년간은 일본에 건너가 고무로 스이.. 2023. 11. 19.
더덕을 자신 선화봉사고려도경의 저자 서긍 선생님 1123년,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서긍(1091-1153)은 그의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순천관에서 매일 제공하는 반찬[日供食菜]에는 더덕[沙蔘]도 있었다. 그 모양이 크고 부드러워 맛이 있는데, 약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 권23, 풍속2, 토산 중에서 고려 사람들도 더덕을 더덕구이나 더덕무침이나, 뭐 여러 가지로 만들어 반찬으로 먹은 모양이다. 이때는 고추가 없었다. 그러니 더덕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넓게 펴가지고 고추장 발라 기름 두른 번철에 살짝 구워낸 더덕구이 같은 건 없었겠지만, 더덕 향과 맛은 외려 요즘보다 더 좋았겠다. 그런 더덕을 고려에 있는 동안 날마다 먹었다니 아아! 부러워라 서긍 선생이여. 2023.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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