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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2) 마음이 쉬어가야 할 때, 송네 피오르, 베르겐 Sognefjorden, Bergen 피오르는, 수식어가 무색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식상한 찬가가 입에서 터져나오지는 않았고 누군가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마음을 침잠시킬 수 있었던 공간. 2024.01.25 - [새록새록 여행 이야기] - [노르웨이] (1) 마음이 쉬어가야 할 때, 송네 피오르, 베르겐 Sognefjorden, Bergen 내가 스스로 잘 못한다고 인정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진이다. 사람이 어떻게 모든걸 잘 할 수 있느냐고 항상 당당히 항변하지만, 여기선 사진을 잘 찍는 사람과 좋은 카메라 가진 사람이 정말 부러웠다. *참고로, 내가 방문했던 시기는 4월 중순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자연유산)인 내뢰위 피오르 Nærøyfjord를 지난다. 송네 .. 2024. 2. 1.
[60전후] 책을 탈고하고 느낀 것 이미 여기서 알려드린 것처럼 필자가 편집한 책이 새해 들어 새로 탈고하게 되었는데 책을 탈고하고 느낀 것은 이미 출판한 논문의 수명이 10년을 못간다는 것이다. 필자가 기왕에 발표한 내용들 중 지금도 학계에서나 대중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대략 10년 안쪽에 발표한 것들이고 그보다 이전에 출판한 것은 모두 골동품이 되어 있더라는 의미. 그 이야기는-. 지금부터 10년 후에는 필자가 지금 가지고 있는 논문의 거의 전부가 학술적으로는 수명을 다하게 된다는 의미가 되겠다. 다시 또 그 이야기는-. 지금부터 새롭게 써 내는 이야기가 없다면, 대략 몇년 후부터는 학계에서도 입닫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겠다. 물론 지금이라도 새롭게 써 내 가는 이야기가 계속 있다면 그건 또 다른 소리겠지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지.. 2024. 2. 1.
생존 앞에 추풍낙엽 같은 충忠과 효孝, 살고자 하는 아우성만 버둥칠 뿐 忠으로 지탱하는 국가한테 언제나 고민은 孝였다. 유가는 둘의 조화, 그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일체화를 꾀했지만 개소리라, 그것이 충돌하는 지점은 너무나 많았다. 저 두 윤리는 다름 아닌 유가의 비조 공자의 생각을 집약했다는 점에서 유가의 절대 윤리로 군림하거니와,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은 그런 직분에 각자 충실하면 그것을 곧 忠의 완성으로 보았다. 군사부君師父라는 말은 실은 저 말을 푼 데 지나지 아니해서, 문제는 평상시엔 그럴 듯해 보이고, 그 조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보이나, 천만에. 생각보다 저 윤리는 너무나 잦은 충돌을 보였으니 특히 전쟁통에 두 윤리가 충돌하는 문제는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전쟁이.. 2024. 2. 1.
[문화재 기자 17년] (1) 왜 그리고 무엇을 쓰려는가? 2015년 11월 28일자로 나는 가당찮은 이유로 연합뉴스에서 해임되었다. 이를 통해 나와는 전연 인연이 없다고 본 해직기자라는 밴드를 팔뚝에 자랑스럽게 찼다. 해직을 통해 우선은 1993년 1월 1일 연합통신에 입사한 이래 23년간 계속한 기자 생활을 나는 청산했다. 우선이라고 하는 까닭은 그 해임에 대한 부당성을 논하는 법적 소송, 다시 말해 해고무효소송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 소송이 언제, 어떤 식으로 결판날지 나는 모른다. 나야 물론 내가 당연히 이기리라고 보지만, 그것은 하늘만이 알 뿐이다. 기나긴 투쟁이 될 것이 뻔한 이 소송을 나는 느긋이 준비하고, 담담히 바라보려 한다. 이번 일이 나로서는 침잠과 반추와 정리의 시간이다. 이에 이 황금 같은 시간을 빌려 지난 시간을 차분히 회고하며 그에.. 2024. 1. 31.
[60세 전후] 혼자에 익숙해져야 필자는 젊었을 때도 혼자 지내는것을 크게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는지라 지금도 별 차이는 없는데, 주변을 보면 60세 전후에 혼자 지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에 당황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필자가 보건데 가장 큰 이유는 이렇다. 우선 젊은 시절부터 유지해오던 직업상의 공적 만남이 사라지면 사적인 교류는 계속 유지될 것 같지만, 딱히 대인관계에 문제가 없던 사람들도 이 시기가 되면 체력때문에 확실히 이전보다는 사람들과 만남이 줄어드는 것 같다. 무슨 소린고 하니, 젊었을 때 대인관계를 얼마 만큼 잘 유지했는가와는 상관없이 체력의 이유로, 또 은퇴의 이유로 주변과 만남은 점점 줄어들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결국 주변과 만남이 줄어드니 입는 것도 신경을 안 쓰게 되고 결국 허름한 노인의 모습이.. 2024. 1. 31.
몽진蒙塵, 비행기로 도망가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은 유습 몽진蒙塵은 글자 그대로는 먼지를 뒤집어쓴다는 뜻이다. 저 글자 그대로 쓰이는 경우도 있고, 비유해서 흔히 최고 권력자가 도망가는 신세를 묘사할 때 인신引伸해서 쓰기도 한다. 간단히 임금의 도망 도주를 몽진이라 한다. 회남자淮南子 무칭훈繆稱訓에 이르기를 “蒙塵而欲毋眯,涉水而欲毋濡,不可得也。”라 했으니, 이는 먼지를 뒤집어 쓰고서도 앞이 잘 보이리라 기대하겠으며, 물을 건너면서 옷지 젖지 않기를 바라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는 뜻이라, 이 경우는 글자 그대로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을 형용한 말이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24년 조에는 “天子蒙塵於外, 敢不奔問官守?”라 했으니 천자께서는 지금 밖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계시니 어찌 관원들한테 묻지를 않습니까? 라는 뜻이라, 이 경우는 임금의 피난을 말한다. 후.. 2024. 1. 31.
[문재인시대 회고] 내 자리 아니라며 거푸 국박관장을 거부한 A 앞서 문재인 정부 초대 관장 배기동 이야기를 했거니와 그에 이어지는 일화 한 토막. 그의 재임기간은 2017년 07월 17일 ~ 2020년 11월 01일이지만 중간에 교체 움직임이 심각히 있었고, 결국 훗날 교체되는데 이 두 번 모두 가장 강력한 같은 후보가 있었다. 대략만 말해도 누군지 짐작하기에 그냥 편의상 A라고만 해둔다. 그는 두 번 다 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내가 갈 자리가 아니라는 이유여서다. 국박 관장은 대통령령에 의한 차관급 대우라 청문회도 없는데다 상징성이 강한 자리라 행정력을 동반해야 하는 여타 차관이나 차관급 외청장들과도 또 달랐다. 그만큼 부담이 덜한 고위 임명직이다. A가 첫번째 물망에 오른 이유는 전문성과 행정력 때문이었다. 그만한 인재 찾기 힘들다 해서 제일순위로 거론되고 청와.. 2024. 1. 31.
국가유산청에 신설한다는 종교협력관 尹대통령 "종교유산협력관 신설해 불교 유산 체계적 보호" 송고시간 2024-01-30 19:41 "불교, 전통문화 중심…'선명상' 대중화 노력에 공감" 2024. 1. 31.
울릉도는 공도空島가 아니라 왕화王化 밖이었다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 시문집인 아계유고鵝溪遺稿 제3권 / 기성록箕城錄 ○ 잡저雜著에 수록된 울릉도설蔚陵島說이라는 논설이다. 울릉도는 동해 가운데 있는 섬으로, 육지와의 거리가 몇 백 리가 되는지 모른다. 매년 가을과 겨울이 교차할 즈음 흐릿한 기운이 말끔히 걷히고 바다가 청명할 때, 영동嶺東으로부터 바라보면 마치 한 조각 푸른 이내가 수평선 저편에 가로놓여 있는 것과 같다. 유독 진주부眞珠府가 이 섬과 가장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기 때문에 행인들 중 소공대召公臺에 오른 이들은 더러 이 섬의 숲과 묏부리의 형상을 명료하게 볼 수 있으니, 이로써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기성 사람들이 말하기를, “노루나 사슴, 갈대, 대나무 따위가 왕왕 바닷가 백사장에 떠밀려 오고, 이름 .. 2024. 1. 31.
쏜살 같은 도망길, 돌아올 땐 장가도 가고 느릿느릿 고려 현종 밤에 몰래 왕궁을 빠져나가 보름 만에 나주까지 줄행랑을 친 고려왕 현종 왕순. 따라오지도 않는 거란군을 피해 도망다니다, 돌아보니 거란군은 흔적도 없어 쑥쓰러워지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젠 가오를 생각할 때였다. 1010년 1월 13일일 노령을 넘어 나주에 도착하고서는 거란군이 물러났다는 보고를 접하고는 맥이 풀렸는지, 아니면 이젠 온 김에 좀 쉬고 가야 한다 생각했음인지, 거기서 물경 8일이나 퍼질러 놀다가는 21일 을미乙未가 되어서야 행장을 꾸려 북상을 시작하는데 앞서 본 남행 도망길과 이제 시작하는 복귀하는 길은 조금 달랐다. 그만큼 여유가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이제는 민심을 다독일 때가 된 까닭이다. 도망길이 순행길이 된 희유한 케이스가 바로 현종의 피난길이었다. 귀경길에 오른 그는 첫.. 2024. 1. 31.
제8차 남아시아고고학대회 4월 개최 Bihar Museum - Event detail Bihar Museum - Event detailThe SOSAA brings Archaeologists, Historians, Anthropologists, Museum experts, Social Scientists, Archaeological Scientists, etc. working on diverse facets of heritage and culture on one integrated platform to discuss common issues related to population movwww.biharmuseum.org 제8차 남아시아고고학대회가 4월 4일-7일까지 인도 비하르박물관에서 개최된다고 알려왔습니다. 원래 1월이었는데 4월로 연.. 2024. 1. 31.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이 지자체만의 업무인가 국가유산기본법 : 제정 2023. 5. 16. / 시행 2024. 5. 17. 하도 많이 써서 이젠 제정 날짜와 시행 날짜도 외울 지경이다. 작년 5월 국가유산기본법이 제정된 후, “문화재”가 아니라 “국가유산”으로 통칭하고, 분류체계를 “문화유산, 무형유산, 자연유산”으로 재정립하는 변화가 생겼다. 국가유산기본법의 입법 취지와 방향의 큰 틀에 대해 문제를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법 시행은 24년 5월이지만, 작년부터 문화재청에서는 국가유산 체제 전환에 따라 지자체에 문화재 명칭이 들어간 조직 명칭 변경이나 조례 개정, 안내판 정비 등을 국가유산기본법 시행 전까지 “문화재” 용어를 지우는 작업을 완료해달라고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된 가이드라인과 상위법령 개정이 선행되어야만 지자체에서도 혼란.. 2024. 1. 31.
과테말라가 토해 낸 1,700년 전 마야 옥 가면 Stunning jade mask found inside the tomb of a mysterious Maya king National Geographic Explorer Francisco Estrada-Belli’s discovery in Chochkitam, Guatemala, sheds new light on an ancient society.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history/article/maya-jade-mask-carved-bone-discovery Stunning jade mask found inside the tomb of a mysterious Maya kingNational Geographic Explorer Francisco Estrada-.. 2024. 1. 31.
같은 대머리수리 조난 기사, 결이 다른 두 아티클 미국 덴버 동물원 인식표 단 대머리수리, 전남 광양서 구조돼 2024-01-30 12:38 https://m.yna.co.kr/view/AKR20240130084800054?section=search/news 미국 덴버 동물원 인식표 단 대머리수리, 전남 광양서 구조돼 | 연합뉴스(광양=연합뉴스) 정다움 기자 = 미국 덴버동물원의 인식표가 부착된 독수리가 전남 광양에서 다친 채 발견돼 동물센터에 의해 구조됐다.www.yna.co.kr 이 기사를 보면서 모든 독자가 품는 의문은 똑같다. 어찌하여 미국 덴버동물원에서 인식표를 달아준 대머리수리 라는 독수리가 전남 광양 땅에서 발견되냐 이거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어떤 인연으로 미국 쪽에서 저 독수리를 잡아서 이건 우리 꺼다 하는 표식을 달아줬는데 그놈이.. 2024. 1. 31.
류렬의 한국어 연구 특징 앞서 월북 국어학자 류렬과 관련한 그의 국어학 주장 요지 하나를 소개했으니, 아래 기사는 그 무렵 그와 짝해서 별도로 작성해 송고한 내 기사다. 2000년 당시 여든두살 류렬은 이산가족방문단 일원에 포함되어 딸 류인자(당시 59세) 씨를 상봉했다. [2000.08.17 송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그리하여 이 부문(국어)의 연구에서 부르죠아 반동학자들과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앞잡이들이 퍼뜨리고 있는 온갖 그릇된 관점과 주장, 방법론, 그리고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과 민족 분렬책동을 합리화하려는 궤변들에 대하여 리론적으로나 자료적으로나 응당한 타격을 주고 짓부셔버려야 한다". 1983년 북한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나온 『세나라 시기 리두에 대한 연구』 서문에서 이 책 저자인 류렬(82)은 이렇게 .. 2024. 1. 30.
삼국시대 지명 분석을 통해 동일민족설을 주창한 월북 국어학자 류렬 앞에 강민경 선생이 월북한 저명한 국어학자 김수경金壽卿 관련 글을 기고했기에, 비슷한 처지였던 월북 국어학자 류렬柳烈(1918~2004)에 관한 기억이 나서 2004년 내가 쓴 관련 부고 기사를 전재한다. 1918년이라는 생년은 남쪽에 남은 같은 국어학자 허웅 선생, 이강로 선생과 같다. 류렬이 특히 비판한 남한 국어학 거물 이기문은 1930년생이라 나이 차이가 좀 난다. 기사 본문에서 보듯이 허웅 이강로 두 선생 논급이 있다. 그의 연구성과 중 《세나라시기의 리두에 대한 연구》는 특히 중요하다. 삼국시대에 보이는 지명은 거의 다 망라하여 그 유래를 추적했다. 물론 그의 주장을 모두 따를 수는 없겠지만, 엄두도 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월북 국어학자 류렬 박사교수 별세 연합뉴스 2004.08.02 11:.. 2024. 1. 30.
페라리 타고 도망가던 현종, “너무 왔나?” 앞서 보았듯이 코앞까지 밀어닥친 거란군을 피해 고려 현종 왕순은 1010년 12월 28일 임신壬申, 양력 2011년 2월 3일 남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드라마는 현종이 끝까지 개경을 사수하려다가 할 수 없이 피했다고 해서 고뇌에 찬 군주의 모습을 그렸지만, 실상은 전연 달라 이날 밤 몰래 후비后妃 몇 명과 이부시랑吏部侍郞 채충순蔡忠順을 포함한 금군禁軍(궁궐 수비대) 50여 인과 더불어 아주 단촐한 규모로 경성을 빠져나갔다. 소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꼼수였다. 밤새 달린 현종은 이튿날인 1010년 12월 29일 계유季酉에는 적성현積城縣 단조역丹棗驛이란 곳에 이르고 다시 그곳을 떠나 날이 저물어서야 창화현昌化縣이란 곳에 이르렀다. 앞 지도를 보면 이날 임진강을 도하했음을 본다. 아마 그쪽 현 치소에서 머물.. 2024. 1. 30.
남쪽으로 튄 현종, 보름 만에 날아서 나주에 닿다 성종이 친정한 이른바 2차 고려거란전쟁에서 결국 개경까지 함락 당할 위기가 닥치자 현종은 1010년 12월 28일 임신일에 남쪽으로 줄행랑치기 시작해 1011년 1월 13일 정해丁亥(양력 2월 18일) 노령蘆嶺을 넘어 나주羅州에 입성하니 개경 출발 기준 불과 보름 만이었다. 왕의 행차가 이렇게 빠를 수는 없으니 얼마나 급박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줄행랑이었다. 예서 궁금증. 남쪽은 고려시대 당시에도 개경을 기준으로 삼아 크게 두 가지 통로가 있었다. 나주로 곧장 남진하는 코스와 소백산맥 넘어 경주 방면으로 가는 길이 그것이었다. 두 길은 천안, 구체로는 갈기비가 있는 데서 갈라진다. 현종은 단 코스를 선택했다. 왜? 저 코스는 전반으로 보아 평탄하나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천안.. 2024. 1. 30.
장성을 왜 쌓았을까 우리 역사에는 몇 차례 장성 축조 역사가 있다. 고구려, 고려 때 두 차례 천리장성이 있고 전술한 대령강장성도 어느 시기엔가 쌓았던 6백리짜리 장성이다. 연길에도 장성이 있다. 이것도 고구려 시대라는 주장이 있는데 알 수 없다. 장성을 왜 쌓았을까. 흔히 문명과 야만의 경계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여유가 있었을까. 나이가 들면서 한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뀌는데 한국사는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적이 없는 역사인데 그 없는 살림에 필사적으로 군대도 운영하고 대장경도 찍고 금속활자로 100부 되는 다품종 책도 찍어내고 한글도 만들고 했던 나름 근검 절약 빡센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처럼 호화막대한 건물 유적은 별로 없어도 수천년 무지막지한 침략에도 살아남고 수 없는.. 2024. 1. 30.
강동6주? 서희가 강제로 탈취했지 거져 얻은 것이 아니다 저 강동육주江東六州라는 말은 전통시대 사서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못내 옛날부터 미심쩍기 짝이 없었지만, 그런 대로 저 시대 역사를 설명할 때는 편리한 점이 많아 그대로 따르기는 했지마는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우리한테 각인한 이미지는 서희라는 세 치 혀로 무장한 뛰어난 고려시대 외교관이 80만 대군이라 설레발 친 거란 소손녕과 외교 담판을 지어 그 자리서 저 땅을 받았다고 하지만 천만에. 당시 양쪽 조정을 대표한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밀실 야합이 있었는지는 고려사(절요 포함)와 요사 모두 침묵하지만, 이후 전재된 양상으로 보건대 명확해서, 또 많은 이 시대 연구자가 지적하듯이 고려는 송과의 조공책봉 관계를 끊고 이제부터는 거란을 종주국으로 섬겨 요나라에서 조공 책봉을 받겠다. .. 2024. 1. 30.
조선의 건국, 왕후장상을 씨로 따지는 시대의 개막 거리마다 외국산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가 있었다. 해마다 외국 상선이 쏟아져 들어오는 시대가 있었다. 장사로 떼돈 버는 사람도 생겼다. 언감생심 출세는 꿈도 꾸지 못할 사람들이 불알 짤라 출세하고 소 잡는 백정하다가 벼락출세하는 시대가 있었다. 그들은 당당히 외쳤다.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으리오? 이런 시대 카니벌이 있었다. 모인 군중은 툭하면 삼만이요 많으면 수십만이었다. 한데 혁명이 일어나 느닷없이 외국산 수입 전면 금지 조치를 내렸다. 원리주의자들이 등장해 세상은 썩었다고 성토하면서 농업만이 살 길이라고 설레발을 쳤다. 군중 집회 역시 전면 금지되었다. 이로써 한국사는 오백년을 후퇴했다. 저 싸가지 없는자 수괴가 이성계요 정도전이다. 저들이야말로 수구반동이다. (2016. 1. 30) *** 좀 과..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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