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1979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는데 대하여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는 것을 현대 중국인들은 철석같이 믿는다. 그러니 위키에서는 위만조선 이전의 고조선을 기자조선이라고 아예 써 놓는다. 그들로서는 역사서 써 놓은 그대로이니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볼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고 믿지 않는다. 이건 일종의 모함이라고 생각한다. 전공자분 중에는 이 시기를 예맥조선이라 한 분도 있는 것으로 안다. 나는 이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지만 구태여 여기서 논란할 생각은 없다. 사실 준왕이 기자의 후예라고 해 봐야 40여세 손이라 되어 있다. 40여세 손.. 필자가 속한 집안의 시조로부터 필자는 35세 손이다. 40여세 손이면 기자의 후예건 뭐건 믿거나 말거나다. 본인이 기자의 후예를 자처했더라도 그쯤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기자의 후예였을 수도.. 2024. 1. 11.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말,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러면서 왈, 팔만대장경판도 모르면 빨랫판이라 그래 언뜻 들으면 솔깃하고 그럴 듯하다. 하지만 한 꺼풀 뒤집어 보면 문화재업계를 지배하는 저 말이야말로 문화재를 시민대중에서 유리케 하니 왜 그런가? 첫째 앎과 모름의 무식한 이분법이니 안다는 말은 곧 유식이요 모른다 함은 곧 무식이니 이에서 극심한 식자와 무식자의 차별을 전제한다. 둘째 그 안다는 주체의 문제이니 이 앎은 언제나 특정한 교육을 받고 특정한 지식을 장착한 자를 전제하니 기타는 우수마발 무지몽매라 이 무지몽매를 겨냥한 윽박과 훈육을 전제한다. 셋째 이에서 어느 일방으로부터 다른 일방으로의 일방적인 훈시를 전제하니 이 강고한 질서가 바로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정치라 저 말은 철인정치의 새로운 버전에 지나지 아니한다. 그렇다면 그 속내는 어떠한가?.. 2024. 1. 11. 발목지뢰 마름쇠는 이리 뿌렸다 귀전살도鬼箭撒圖라는 제목이 붙은 전쟁통 그림 중 하나로 출전은 《고금도서집성 경제휘편 융정전 제300권 古今圖書集成·經濟彙編·戎政典·第三百卷》이다. 말 그대로 귀전鬼箭을 뿌리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깡통에 담은 귀전을 뿌리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저 무기를 모양을 따라 마름쇠라 하거니와 삼각형 모양 철심이라 사람이나 특히 기병을 제압하고자 적들이 오갈 만한 길목에다 뿌렸다. 국내 산성 주변에서 흔히 발견된다. 일종의 발목지뢰인 셈인데 도전이 있으면 응전이 있는 법. 어찌 저걸 돌파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이 자석이다. 자석 갖다 대서 다 수거해버리면 된다. 2024. 1. 11. 어쩌다 나는 잡탕학이 되었는가? 모르겠다. 이것저것 하도 걸쳐 보지 아니한 데가 없고 비록 오십 이전에 국한하기는 하나 읽지 않은 책이 없다. 그리하여 혹 남들 눈엔 저 놈은 모르는 게 없고 걸치지 아니한 데가 없다 할지 모르나 나 진짜 잡탕학 맞다. 이 잡탕학은 고질이 있어 어느 하나는 죽어라 파는 일이 없어 금새 실증을 내 버리고선 딴 데를 찾아튄다. 잡탕학 근간이 바로 이것이라 무불통지한듯 하나 실상 깊이 아는 데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역사? 이것만 해도 내가 어디에 정신이 팔렸는가 하면 고려사 씹다 거란사 씹다 로마사 씹다 에트루리아 씹다 하는 중이며 에라이 이걸로 만족치 못하다 해서 여진으로 튀었으며 이 게걸스럼이 끝나면 또 어디로 갈지 나도 모르겠다. 청사는 통독한 적이 없지만 25사 표점본을 머리맡에 두고 만지작거리는 중.. 2024. 1. 11. 인신引伸, 바느질의 경우 강민경 선생이 이규보가 읊은 바느질 시를 보며 잊어먹기 전에 차기箚記를 겸해 적어둔다. 저 바느질이라는 말 말이다. 바늘로 하는 놀이 혹은 행위를 일컫는 말인데, 문자 그대로는 바늘을 통한 옷수선을 말한다. 하지만 바느질은 그 본래하는 의미를 박차고 일어나, 바늘에서 유래하는 행위 전반, 곧 꼭 바늘이 아니라 해도 바늘이 수행하는 옷 수선 전반을 의미하는 뜻으로 발전했으니 그것을 인신引伸이라 한다. 이 인신이라는 말은 동사이아 한자문화권에서는 특히 사전이 필두하는 소학小學에서 자주 보이는 말로 의미 영역 확장을 말한다. 단, 인신에도 바운더리가 있기 마련이라, 그 원초적 의미는 지닌 채 퍼져간다. 같은 소리 같은 글자인데 전연 다른 뜻이라면 이건 실은 계통이 달라서 전연 별개하는 소리 혹은 문자가 있다가.. 2024. 1. 11. 남자가 바느질을 하다니? 이규보의 기롱 애처가 눈빛처럼 하얀 비단 치마 밟아 찢어지니/ 踏破香紈雪色裙 뉘 집 휘장에서 탁문군卓文君 희롱했나 / 誰家帳底弄文君 부인께선 삼가 바느질일랑 그만두시고 / 細君愼勿加針線 앞으로는 무산에서 운우 꿈 꾸시구려 / 又向巫山染雨雲 - 전집 권5, 고율시, "이중민 군이 치마를 꿰맨 일을 희롱함" *** Editor's note *** 남자가 바느질을 해서는 안 되는데 백운거사 이규보 친구가 마누라 대신해서 바느질을 한 모양이라 그걸 희롬삼아 시로써 읊었다. 이 시에서 건져내야 할 것은 바느질이 적어도 이규보 시대에는 여성의 전유물로 통했다는 점이다. 이는 보희 문희 김유신 김춘추 축국 이야기에서도 여실히 증언한다. 다시 말해 적어도 이 시를 기준으로 신라시대 이래 이규보 시대 고려 중기에 이르기까지 바느질은 .. 2024. 1. 11. 일본의 1리는 언제 4킬로가 되었나 일본은 1리가 4킬로미터다. 우리가 대략 10리가 4킬로이므로 일본의 1리는 우리의 10배 정도에 달한다. 따라서 10리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라면 4킬로 정도로 얼마 안되지만, 일본은 40킬로 정도나 된다. 언제부터 이렇게 1리가 10배나 차이가 나게 바뀌었을까? 도량형이 이렇게 급변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검색해 보면, 일본도 원래는 10리가 4킬로였다. 일본의 고대문화는 초기에는 한반도, 후기에는 당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므로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헤이안시대가 종식되면서, 율령시대가 끝나면서 일본의 리는 10리가 4킬로로 고정되지 않고, 각지마다 중구난방으로 리의 거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중에 1리가 4킬로짜리는 시대로는 헤이안시대까지도 올라가는 모양인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 2024. 1. 11. 윤관의 북벌이 당긴 여진의 통일 열망이 마침내 동아시아를 진동하다 거란이 한창 강성할 시기, 아마도 성종 연간 무렵 거란 최대 판도를 보여주는 지도라 해서 항용 들곤 하는 전형의 모습이라 물론 저에서도 문제는 없지는 않아 무엇보다 북쪽 판도가 과연 저와 같았는가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나아가 그때는 지금과 같우 국경선 개념이 확실치 않은 데가 많아 선보다는 빗금으로 국경선을 그어야 하는 데가 많다. 또 하나 저것이 근대 이후 국경 혹은 영역 판도로 곧바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 저 당시 동아시아 절대 패자는 거란 요나라였고 명목상은 주변 제국이 다 굴복했으니 고려 서하는 물론이고 송나라까지 신속했으니 관념상으로도 또 어느 정도 실질로도 요나라 천하였다. 하지만 실질로 따지고 들어가면 저 판도는 허약하기 짝이 없었으니 동쪽만 보자. 이쪽이 문제인데 그 남쪽 고려는 말.. 2024. 1. 11. 탈상脫喪과 49재齋, 거상居喪을 줄이기 위한 몸부림 탈상은 글자 그대로는 상복을 벗는다는 뜻이라, 이 탈상을 통해 비로소 상주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탈상하지 아니한 기간이 바로 상중喪中인데, 이 상중을 얼마로 삼느냐 해서 孝를 절대 가치로 앞세운 동북아시아에서도 적지않은 논란이 있었으니 공자가 3년상을 제기한 이래, 이것이 줄곧 대세였을 듯하지만, 이 3년상도 실상을 따지면 27개월과 25개월 설로 맞섰고, 아주 혹가다가 액면대로 해석해서 36개월을 지내는 일도 있었지만, 대세는 아니다. 27개월과 25개월은 권력투쟁도 끼어 후한시대 이래 동아시아 경전해석의 양강 구도를 형성한 정현인가 마융인가 어디를 따르느냐에 따라 정해졌다. 이 3년상은 공자 당대에 벌써 너무 길다고 문제가 되어, 논어를 보면 누구더라? 그의 제자 중에서도 열라 부자로 공자의 시종일관.. 2024. 1. 11. 1915년과 1917년 능산리고분을 가르는 중대한 분기선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문화재로 발견된 때가 1915년이다. 이를 백제시대 왕릉으로 재발견한 이가 흑판승미 黑板承美 구로이타 가쓰미 와 관야정 關野貞 세키노 다다시다. 이들은 이해 7월, 각기 다른 통로로 부여에 왔다가 우연히 삽자루 들고는 능산리를 파기 시작했으니, 이를 통해 비로소 사비시대 묘제墓制의 실상을 어느 정도 들여다 본다. 다음 조사는 곡정제일 谷井濟一 다니이 세이이치에 의한 1917년 발굴. 이 두 시기 조사 사이에 중대한 제도 변화가 있게 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한 총독부령과 그 시행세칙이 제정 시행되고, 그 운용을 위한 기구로써 고적조사위원회가 출범한다. 단군 이래 없던 강력한 문화재 보호정책이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률을 통해 비로소 무엇이 문화재인가가 확정된다. 봤는.. 2024. 1. 11. 청동기 문명의 포지션 한국은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청동기문명에 둔다. 청동기시대의 문명. 쉽지 않은 이야기다. 필자가 아는 한 청동기시대에 기반한 문명은 거의가 단일 민족, 단일 국가의 민족사적 흐름에서만 놀고 있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는 무엇 때문인지 문화적 수준의 단절성이 간취되는데 당장 진한 제국과 전국시대 이전만 해도 그렇다. 한국사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질적 수준의 제고가 삼국시대 이전과 이후로 차이를 두고 이루어졌다고 보는데 고조선을 단순히 민족사라고만 보고 그 안에서 이것저것 분석하려 하니 청동기시대 문명으로서의 특수성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본다. 고조선을 좀 더 편하게 놔줘야 그 문화적 특징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까. 이를 한국사에 묶어 두고 한민족 최초의 국가의 틀안에서만 보려 하니 역.. 2024. 1. 11. 태대각간, 옥상옥에 다시 얹은 집 안록산 사사명의 난이 낳은 최고 스타는 곽자의와 이광필이었다. 안록산의 난이 진압 기미가 있는 시점에 급하게 황제 자리에 오른 숙종이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전공을 포상할 방법이 없는데, 안록산의 난이 평정되면 무슨 자리를 덧붙여 주는가"를 걱정할 정도였다. 이런 고민에 똑같이 봉착한 이가 신라 문무왕이었다. 신라가 백제에 이어 고구려를 멸하자, 그 최대 공신 김유신을 포상할 방법이 없었다. 군신이 머리를 싸맸다. 모르긴 해도 이런 말이 오갔을 것이다. "저 영감을 달래긴 해야는데, 이미 직급도 대장군이요 대각간인데 자칫하면 삐질 텐데 도대체 뭘로 보상한단 말이요?" 이런 고민이 한참 이어지다 누군가 이런 제안을 냈다. "대각간이 최고 아입니까? 그럼 대각간 우에 한자리 더 만듭시데이" "거 좋은 생.. 2024. 1. 11. 삼국지와 배송지 주 일반적으로 동이전을 읽을 때 삼국지보다 배송지주의 신빙성을 아래에 두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배송지가 삼국지 진수보다 후대의 사람이라는 것 때문인듯 한데, 삼국지에서도 동이전은 위략을 인용해 놓은 것이 많은데 위략의 저자는 어환으로 이 사람은 진수와 동시대의 사람이다. 다시 말해서 삼국지에 붙인 배송지주는 위략을 인용해 놓은 것인데, 위략과 삼국지 원전은 성립연대가 거의 비슷한 시기였던 책일 가능성이 많아서 동이전의 배송지 주만큼은 위략을 인용한 이상은 삼국지 원전과 비슷한 비중을 두고 봐야 옳다고 본다. 배송지가 진수보다 후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배송지주가 신빙성이 낮다? 글쎄. 최소한 동이전에 대해서 만큼은 이런 선입견은 맞지 않을 듯 하다. *** Editor's Note *** 이 문제는 편집자가.. 2024. 1. 11.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5) 무왕 왕비가 선화공주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익산 미륵사 석탑 봉영사리기가 발견, 공개되기 전에 이미 나는 여러 번 단언했다. “선화공주는 때려죽여도 백제 무왕의 정비(正妃)일 수는 없다. 정비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자칫 대통령이 탄핵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했다가 결코 그리 하지 않은 새누리당 대표 이 머시기 꼬라지가 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이렇게 장담했다. 나는 내 저 장담이 내 생전에 증명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데 정말로 느닷없이 출현한 백제시대 금석문이 백제 무왕의 정식 왕비는 신라 출신 선화공주가 아니라, 백제 좌평 사탁적덕의 딸임을 폭로했다. *** previous article ***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4) 화랑세기 자매편 상장돈장上狀敦牂과 선화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4) 화랑세기 자매편 상장.. 2024. 1. 11. 고려 현종은 불륜의 씨앗, 과부가 된 조카 며느리랑 바람난 왕욱王郁 고려사 권 제90 열전 권 제3 종실宗室에 실린 고려 현종 아버지 왕욱王郁 행적은 다음과 같다. (태조 왕건 아들인) 안종安宗 왕욱王郁은 살던 집이 왕륜사王輪寺 남쪽에 있었는데 경종景宗 비妃인 황보씨皇甫氏 사제私第와 가까웠다. 경종이 훙서하자 비는 〈대궐을〉 나와 그 집에 살았는데 왕욱과 더불어 드디어 불륜해서[烝] 임신하게 되었다. 일이 발각되자 성종成宗은 왕욱을 사수현泗水縣으로 유배 보내며 일러 말하기를, “숙부께서 대의大義를 범했기 때문에 유배 가게 되었으니, 삼가 애태우지 마소서.”라고 하였다. 내시알자內侍謁者 고현高玄에게 명령하여 압송하게 했는데, 〈고현이〉 돌아가게 되자 왕욱이 시를 지어 주어 이르기를, “그대와 함께 같은 날 서울[皇畿]을 나왔건만, 그대는 먼저 돌아가고 나는 돌아가지 못하네.. 2024. 1. 10. 탈북자의 고백과 한국사 탈북자들 증언을 보면 중국으로 탈북해서 북한의 프로파간다를 머리에서 밀어내는데 딱 몇 달 걸린다고 한다. 중국에서 돌아다니면서 이것 저것 보고 거기서 한국 드라마만 몇 달 보면 그동안의 프로파간다가 다 거짓이라는 것을 금방 안다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사가 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해외 여행 몇 번이면 다 알게 된다. 거기다가 현지 박물관, 역사유적 들여다 보게 되면, 한국사 서술이 뭐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것은 직감으로 알게 된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사기가 가능했다. 모든 사람이 다 나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나 소나 다 나간다. 그런 친구들에게 한국사를 알면 알수록 뭔가 보인다...? 당장에 그러면 이런 대답이 온다. 그런데 다른 나라는 그렇게 알면 알려고 안해도 다 보이던데요? .. 2024. 1. 10. [2023 대만풍경] (5) 국립고궁박물원 북원(北院) ④ 벼루 매니아들과 그 벼루 이야기 from 장남원 나는 필기구를 좋아한다. 한때 사고 모으고 불고 닦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 일본에서 학회 발표를 마친 후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고문으로 계시던 이토 선생과 2차까지 간 날이 있었다. 우연히 서로 가지고 있던 펜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이토 선생은 이런 이야기를 도자사 전공자와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다시며 훗날 내게 만년필 한 자루를 선물로 주셨다. 문구를 좋아하다 보면 자연, 먹이나 벼루로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연히 본 중국 벼루 관련 다큐에서 좁디 좁은 단계端溪 노갱의 극한 갱도에서 석질이 상할까 남성들이 팬티만 입고 맨몸으로 채취하는 장면을 보고는 더 이상 벼루를 사지 않았다. 대만 고궁박물원의 벼루전 는 매니아들 벼루이야기다. Inkstones, through the Eyes of an .. 2024. 1. 10. 왕조 존속 기간과 조선총독부 시대가 지닌 힘 촉한 42년(221~263) 조위 45년(220~265) 서진 52년(265~317) 유송劉宋 49년(420~479) 남제南齊 23년(479~502) 양梁 55년(502~557) 진陳 32년(557~589) 수隋 27년 (581~618) 태봉 17년(901~918) 후백제 44년(892~936) 조선총독부 35년(1910-1945) 총독부 식민지시대 35년, 통감부 시대(1906~1910)를 포함하면 물경 39년에 달하는 저 시대가 얼마나 긴지 실감할 것이다. 저 통감부 총독부시대는 한국사로 보면 별개 왕정이다. 그 통치자가 일본 천황인 왕조국가였고, 그 아래서 신민은 국민으로 급속히 편제되고 한반도에서는 처음으로 국민이 탄생함으로써 단군조선 이래 그 국민이 권리를 갖고 국민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시.. 2024. 1. 10. 고려사절요 강감찬 졸기卒記, 그 고고학적 중요성에 대하여 고려사절요 권3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22년 8월 (이달에) 강감찬이 졸했다. ○시중侍中으로 치사致仕한 강감찬姜邯贊이 졸했다. 강감찬은 금주衿州 사람으로 성품이 청렴하여 살림을 돌보지 않았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기묘한 계략이 많았다. 체격과 용모가 작고 초라했으며 의복은 때가 끼고 해져 보통사람[中人]과 다를 바 없었으나, 엄정한 안색으로 조정에 서서 큰일에 임할 때마다 위대한 계책을 결정하며 굳건하게 나라의 기둥과 주춧돌이 되었다. 나이 70세가 되자 궤장几杖을 하사하고 3일에 한 번 조정에 나오도록 했지만, 결국 사직하고 도성 남쪽 별장으로 돌아갔다. 84세에 사망하니, 〈왕이〉 애도하면서 부의賻儀를 매우 후하게 보내주었고, 시호를 인헌仁憲이라고 하였으며, 백관에게 명하여 장례에 참례하도록.. 2024. 1. 10. 꼬끼오 어근당 소리 듣고 왕이 된 고려 현종 원문대왕 왕순王詢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3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휘는 순詢이고, 자는 안세安世다. 안종安宗(으로 추존된) 왕욱王郁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효숙왕후孝肅王后 황보씨皇甫氏다. 성종成宗 11년(992) 임진 7월 임진 초하루에 태어났다. 성품이 총명하고 인자했으며, 배움에 있어 명민하고 문장에 뛰어났다. 처음에 머리를 깎고 숭교사崇敎寺(라는 절)에 거처하니, 한 승려가 일찍이 꾼 꿈에서, 큰 별이 절 마당에 떨어져서 용으로 변하고 또다시 사람으로 변하였는데 곧 왕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왕을 기이하게 여겼다. (북한산에 있는 절인) 신혈사神穴寺로 옮겨 머무를 때 또다시 꿈에 닭 울음소리와 다듬이질 소리를 듣고는 술사術士에게 물어보니, 우리말[方言]로 해몽하여 말하기를, “닭 울음소리는 ‘꼬끼오[高貴位]’이.. 2024. 1. 10. 강조康兆의 변變, 앞뒤가 안 맞는 고려사 미스터리 목종이 승려가 된 대량원군(훗날의 현종)을 궁중으로 불러들였다는 건 죽음을 앞둔 후계자 지명이다. 회생 불능이라 판단한 목종은 태조 왕건의 혈육(손자)인 대량원군을 환속시켜 보위를 물려주려 했다. 이미 죽음을 앞둔 왕이었다. 분란이 생길 것을 우려해 그 후견인으로 목종은 서부지역 사령관 강조에게 군사를 이끌고 들어와 호위하라 했다. 근데 강조가 칼을 거꾸로 돌려 목종한테 겨눴다고? 왜? 목종을 폐위케 하고 유배를 보냈다고? 그리고 자객을 보내 죽였다고? 죽음을 앞뒀다는 그가 살아났다고? 안 맞자나? 이미 죽음이 눈앞에 둔 왕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강조康兆의 변變 도대체가 이 난은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이 난을 접하게 되기는 중학교 때 처음이었을 것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 2024. 1. 10. 이전 1 ··· 384 385 386 387 388 389 390 ··· 104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