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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의 범위 10년전 오늘 페이스북에 이 런말을 썼네. [교감의 범위] 옛날옛날 고전자료 정보화사업 초기에 많은 사람이 ‘한자는 대표자로 입력해야 한다.’고 하도 우기는 바람에, 상당히 많은 글자가 ‘그 대표자라는 것’으로 고쳐 입력되었다. 이건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에 나오는 한시 구절 중, “不覺天西殘月落, 終宵空伴草虫吟” 이 있는데, ‘虫’을 ‘蟲’으로 고쳐놓았고, 에, 이라는 한시가 있는데, 이걸 교감하여 이라고 고치고, 시 내용에서도 ‘有虫有虫小如蠶’을 ‘有蟲有蟲小如蠶’으로 고쳐 놓았다. 이러한 것이 대단히 많다. 시를 지은이가 아무 생각 없이 쓴 글자라면, 고쳐도 무방하겠으나, 지은이가 생각을 갖고 쓴 글이라면, 글자를 고치면 안 된다. 초충(草虫)은 ‘풀벌레 한 마리’라는 느낌이 들고, 초.. 2024. 3. 25.
뉴그레인지, 스톤헨지를 천년 앞지른 아일랜드 초거대 신석기시대 무덤 Newgrange, a neolithic tomb about 5,200 years old,was built in 3,200 BC. Located in county Meath in the Republic of Ireland. It's older than the pyramids in Egypt by 600 years and older than Stonehenge by 1,000 years. More: https://thetravelbible.com/top-artifacts-from-the-stone-age/ Top 22 artifacts from the Stone Age The Stone Age, a time of profound human innovation and adaptation, marked the.. 2024. 3. 25.
국내성 동대자 유지와 조선왕릉 홍살문, 그리고 쓰쿠리다시造出 집안 일대 고구려 시대 현재까지 드러난 고구려시대 주요 유적 분포지도다. 저 대부분은 형성시기로 보면 장수왕에 의한 평양 천도 이전에 형성된 것이라 보면 대과가 없다. 평양 천도 이후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저 옛수도가 어찌 관리되었는지 알려주는 기록도, 고고학적 증거도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다만 과거의 수도로 무엇보다 고주몽 이래 선대 왕들 묘소가 이 일대에 포진했다는 점은 천도 이후에도 저곳이 지속으로 관리되었을 것이다. 물론 저곳이 수도였던 시절과는 비교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때로는 폐허상태로 방치되기도 했을 것으로 본다. 평양 천도와 더불어 분명 고구려는 평양에 종묘를 세웠을 것이고 그리하여 조상추숭은 이 새로운 종묘를 무대로 펼쳐졌을 것이다. 물론 왕에 따라 저 국내성 일대 선대 왕릉을 배알하.. 2024. 3. 25.
기린 vs. 다리미, 시대가 초래한 변화와 착란 좀 오래된 실화다. 아마 천마총 출토 천마도와 관련한 논쟁으로 기억하는데, 그 천마도 장니 소재 그림이 말이 아니라 기린이라는 문제 제기가 미술사 쪽에서 있었거니와, 그러한 논쟁 와중에 그것이 기린이 아니며 말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어떤 분이 계셨는데, 한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저야 각기 논거가 있고, 그런대로 각기 설득력을 구비했거니와, 한데 이 논쟁에서 그가 말하는 기린이 아니라는 논거가 처음부터 아주 이상했으니, 그 이유는 이내 드러났다. 그는 이 논쟁에서 시종일관 저런 기린을 생각했다고 하는데, 그걸 알고서는 얼마나 허탈했던지. 물론 그는 이른바 천마총 백마도가 기린이 아니며 말이라는 쪽에 서기는 했지만, 도대체 어찌 저런 일이 벌어질까 지금 생각해도 의아하기 짝이 없다. 저 실재.. 2024. 3. 25.
[무령왕릉이 봉착한 최대 난제 둘] (1) 왜 남녀 위치 머리 위치는 반대인가? 보꾸와 열라리나 바까야로데싯따. 머리를 남쪽으로 둔 이유를 이제야 풀다니. 해직 직후 직설 무령왕릉 단행본 원고를 막판 손질하던 과정에서 2016년 3월 25일 나는 내 페이스북 계정에 저와 같이 적으면서 아래 두 도판을 제시했다. 도판1이 무령왕이 죽어 지금의 공주 송산리고분군 이른바 공주 백제왕릉원에 묻힐 상태의 묘실 배치도요 도판2는 그로부터 3년 뒤 무령왕비가 죽어 같은 무덤에 왕비가 매장될 때 모습을 간단히 시각화한 것이다. 결국 이 무덤은 1971년 발견 개봉 당시 도판2와 같은 상태로 발견됐거니와 이것이 심대한 두 가지 문제를 양산했는데 첫째 남녀 위치가 바꼈고 둘째 머리 방향이 바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간단히 말해 동아시아 예제에 의하면 첫째 부부를 합장할 적에 남자는 서쪽, 여자는 동쪽.. 2024. 3. 25.
대파가 무슨 죄라고? 들었다 놨다? 다음달 총선 정국에 나한테 남는 건 없고, 난데 없는 대파 논쟁이라, 뭐 그 한 단을 얼마네 샀네 마네 하면서 오가는 정치인 말들을 보노라니,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대파 타령인가 싶기도 하거니와 대파가 얼마건 말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대파 가격이 얼마건 말건 것도 정치 잘하고 못한 탓인가? 웃기는 소리들 좀 작작 했음 싶다. 가격은 철저히 수요 공급에 따라 정해지기 마련이며, 소출이 적으면 가격은 올라가고, 소출이 많으면 가격은 내려가기 마련이라 내가 늘 이야기하듯이 풍년은 결코 농민한테는 축복이 아니다. 풍요기원? 웃기는 소리다. 그 풍요가 나한테 풍요롭기 위한 절대의 조건은 다른 사람 농사는 다 망하고 오직 나만이 풍년이 들 때다. 풍년은 흉작만큼이나 농민한테는 재앙이다. 대파 가격이 얼.. 2024. 3. 25.
세형동검이라는 이름은 일본 야요이 고고학의 정통 적자 필자는 고고학 전공자가 아니므로 틀릴 수 있다 그걸 감안하고 듣기 바란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대표적 지표유물 중 하나인 세형동검. 이 동검 이름은 한 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세형동검이라는 이름이 비파형동검과 대조하여 하나는 넓고 하나는 좁아서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아는 한 그게 아니다. 세형동검은 내가 알기로 비파형동검이 알려지기 전, 일본에서 먼저 붙인 이름이다. 이유는 일본 야요이시대에도 한반도 영향을 받아 세형동검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 야요이 시대 후기에는 이른바 평형동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폭이 넓다. 이 평형동검과 달리 같은 야요이시대에 폭이 좁은 동검이 있다고 해서 일본에서 붙인 이름이 세형동검으로 세형동검은 비파형동검과 비교하여 나온 이름이 아니다. .. 2024. 3. 24.
[고고학용어] 비유가 성립하지 아니하는 비파형동검 vs. 세형동검 이 둘은 분포지역, 그리고 성행 시기가 다르지만 계승관계로 보기도 하거니와 이설이 많기는 하나 대체로 기원전 8세기 무렵 요동반도에서 등장해 그곳에서 성행하기 시작한 비파형동검이 기원전 4~3세기 무렵에는 한반도에서는 그에서 비롯한 세형동검으로 바뀐 것으로 본다. 이른바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더 발달한 형태처럼 보이는 비파형동검이 나중에 등장했을 법 하나, 볼품없는 세형동검이 후발주자다. 저 둘은 이칭이 많다. 또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과 한국에 부르는 이름도 다르다. 아무튼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일반화한 명칭이 비파형동검琵琶形銅劍[lute-shaped bronze dagger]과 세형동검細形銅劍[Slender Bronze Dagger]이어니와, 여러모로 이 두 동검은 서로를 염두에 둔 명명이거나 그렇게.. 2024. 3. 24.
왜 다리미를 북두칠성이라 하는가? 요새야 다리미라 하면 전기다리미를 생각하나 전통시대 다리미는 다음과 같다. 실례로는 청동을 제시했지만 철제도 드물지 않다. 저 생김이 흡사 북두칠성이라 그 생김이 흡사 청동다리미 단면도다. 그래서 다리미를 위두熨斗라 해서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斗자를 굳이 썼다. *** previous article *** 북두칠성 상징으로 다리미를 매장한 조영동 무덤 북두칠성 상징으로 다리미를 매장한 조영동 무덤아직은 불완전하다. 1988년 영남대박물관이 조사한 경산 조영동 E 2-1호분이다. 환두대도가 나온 걸로 보아 묻힌 사람은 남자로 본다. 축조연대는 오세기 후반으로 조사단이 봤다. 저 다리미가 칠historylibrary.net 2024. 3. 24.
비파형동검 vs. 바이올린형동검, 시대 추세에 따라 학술용어 시대 추세에 따라 학술용어도 급격한 교체를 요망한다. 비파형 동검은 바이올린형 대가 dagger로 바꿔야 한다. 우각형 파수부 호 牛角形把手附壺는 뭐라 바꿔야나? 트윈트리 핸들드 포터리 twin tree handled pottery? 이중구연 단사선문 공렬토기토기二重口緣端斜線文孔列土器는? 난 한국어부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2016. 3. 23) *** 우스갯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저 문제 심각하다. 비파형 동검은 그 모양이 비팍늘 닳았다 해서 저리 이름하기 시작했지만 요즘 세대에 비파가 무슨 개떡인지 모르는 사람 천지인 시대에 저 이름을 고수할 수는 없다. violin like 혹은 violin shaped dagger 라 쓰는 편이 훨씬 적어도 그 모양을 유추하기는 쉽다. 우각형 파수부 호 牛角形把手.. 2024. 3. 24.
3천600년전 키프러스에선 와당을? Cosmos University에서 근자 소개한 유물이라 설명은 이렇다. At least 3600 years old, an ivory disk in the shape of a rosette, from ancient Cyprus. This artifact is now housed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in New York City, New York, United States. #AncientWonders #archeologyart #archeologysite #archeologylovers #humanhistory #archaeology #ancientworld #relic #historical #art #discovery #old #ancient #artifact .. 2024. 3. 24.
머스트 팜 Must Farm, 3천년 전 화재가 남긴 영국의 폼페이 Research reveals ‘cosy domesticity’ of prehistoric stilt-house dwellers in England’s ancient marshland https://www.cam.ac.uk/stories/must-farm-prehistoric-stilt-house-dwellers?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fbclid=IwAR2lwcuAUHSrgpbg6gU28g964DiD20M81qTHuGRe6IOxDFCAtq3sKqyFzAQ Research reveals ‘cosy domesticity’ of prehistoric stilt-house dwellers in England’s ancient marshlandDetailed repo.. 2024. 3. 24.
동경은 등때기에 둘러맸지 가슴팍에 걸친 것이 아니라는 내 주장은... 나는 줄기차게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 그 가장 결정적인 근거는 동진시대 도사 갈홍 저술 포박자抱朴子에 보이는 기술이었으니 그에서 갈홍은 선경仙經이라는 지금은 망실한 도교 옛 문헌을 인용하며 이르기를 "옛날엔 동경은 등에 울러맸다" 고 했거니와,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해야 한다. 첫째, 동경은 본래 도교에서 법구法具로서의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본래는 등에 울러매서 사용했다는 것이 그것이며 둘째 그것이 옛날에는 그러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갈홍 당시에는 그 착장 방식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본래하는 착장 방식은 근간이 등에다가 둘러매는 것이었지 결코 가슴팍에 걸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대가 흘러 동경을 착장하는 방식이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어니와 그리하여 가슴팍에 걸치기도 .. 2024. 3. 24.
북두칠성 상징으로 다리미를 매장한 조영동 무덤 아직은 불완전하다. 1988년 영남대박물관이 조사한 경산 조영동 E 2-1호분이다. 환두대도가 나온 걸로 보아 묻힌 사람은 남자로 본다. 축조연대는 오세기 후반으로 조사단이 봤다. 저 다리미가 칠성판 대용이라는 내 주장 수긍할지 모르겠지만 수긍해야 한다. 머리맡 다리미는 엎은 상태로 저 지점에 놓았다. 뭐 다리미로 머리카락 다렸나? (2016. 3. 22) *** 다리미를 위두熨斗라 한다. 그 모양이 북두칠성이라 해서 저리 부른다. 간단히 말해 다리미 자체가 북두칠성이다. 저것이 조선시대로 내려오면 등때기에 칠성판을 대는 전통으로 변모한다.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장하는 성신星神이다. 주검과 더불어 북두칠성을 상징화한 다리미를 넣은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고고학은 끊임없이 왜? 왜? 왜? 를 묻는 데서 출발.. 2024. 3. 23.
필드웍 필자의 연구는 발굴 현장에서 샘플링에 참여하는 필드웍(fieldwork)과 실험실에서 작업하는 wet lab work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필드웍은 문자그대로 현장을 누비고 뒹굴며 샘플링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 작업도 더이상 하지 않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도 직접 했다. 2024. 3. 23.
2019년 클리블랜드 북미고병리학회 이 학회는 필자가 COVID-19이전 마지막으로 참석한 미국학회였다. 이 학회 이후 미국학회는 온라인 미팅을 제외하면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학회는 2022년 이후 재개되었는데 국제학회가 많은 부분 온라인으로 전환된지라 굳이 현장에 참가할 필요가 많이 줄었다는-. 필자는 이 학회에 세션 하나의 좌장을 맡았는데, 학회 학술위원으로 투고된 논문의 심사를 했다. 클리블랜드 하면 Rust belt 도시로 삭막할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도시였다. 필자는 이때 클리블랜드가 처음이었다. 2024. 3. 23.
리즈 시절의 임경희 페이스북 타임라인 과거의 오늘을 보니 이 꾸러미가 등장하는데 저 시절 함께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동고동락한 홍광희 군 첨언에 의하면 2011년 마도3호선 기자브리핑 장면이라 한다. 요새도 저 해양연구소는 자랑할 만한 수중고고학 성과는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서 밥상 차려놓고 기자님들 초청하는데 저때도 그러했다. 저야 지금이 리즈 시절이라 하겠지만 내 보기엔 저때가 임경희 황금기였다. 시절이 좋아져 화질 구린 사진도 ai 증폭 시대라 그 힘 빌려 전재해 둔다. 2024. 3. 23.
2018년 북미학회 워크샵 주관 과거 필자가 참여한 학회를 좀 요약해 보면-. 2018년 텍사스 오스틴에서는 북미체질인류학회(American Association of Physical Anthropologists)가 열리는 기간 동안 그 위성학회인 고병리학회(Paleopathology Association)가 함께 열렸는데 해당 학회에서 고기생충 관련 워크샵을 주관할 기회가 있었다. 이 워크샵은 고고기생충 관련 발표가 4개가 있었고, 현미경을 준비하여 직접 참가자들에게 고고 시료에서 기생충란을 관찰하는 실습까지 시행하여 상당히 좋은 반응이 있었다. 이 워크샵이 성공리에 끝난 덕에 같은 워크샵을 북미 고고학회 (Society for American Archaeology)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 한참 준비하던 중에.. .. 2024. 3. 23.
너덜너덜한 동의보감이 진짜 세계기록유산 대전 한밭교육박물관이 전시 중인 동의보감이다. 보다시피 너덜너덜하고 무엇보다 인본印本 상태가 불량하기 짝이 없다. 보나마나 목판으로 찍어낸 것인데 판본 상태가 형편 없다. 이건 먹을 발라 찍어내는 수준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본래 목판 상태가 그러해서 빚어진 현상이라 봐야 한다. 이렇게 좋지 아니한 목판으로 찍어낸 것들은 그닥 인기가 없다. 왜? 읽기 편하지 않아서다. 보기 불편해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쇄본들. 목판이건 금속활자건 문화재로 지정된 것들을 보면 끼끗하기 짝이 없어 글자들 상태를 보면 무슨 패션쇼를 보는 듯해서 금속활자는 그것이 주는 그 특유한 날카로움은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판본은 실상 독자가 없었다는 뜻이다. 판본이 좋다는 말은 그만큼 독자가 없었다는 뜻.. 2024. 3. 23.
[독설고고학] 집터 꼴랑 다섯 개 파고 세계 고고학을 흔드는 영국 영국 고고학은 고작 불탄 수변 건물터 5개로 몇 년간을 천착해 그것이 브리튼의 폼페이 유적이라고 세계 고고학을 쥐고 흔들며 개사기를 치는데, 이짝 고고학도들은 타운 혹은 빌리지만 할 만한 데만 해도 판 데가 도대체 몇 군데인지 모를 지경이라 수백 군데 수천 군데 달하는데도 아직도 더 모자란다고 더 파게 해달라 아우성이다. 저만큼 파제꼈으면 뭔가 연구다운 연구 내놔야 할 게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K-heritage 아닌가? 연구한다는 놈들도 연구는 뒷전이고 맨 발굴현장 쫓아다니며 거기에 학술자문위원 어디 이름 하나 걸치지 않나 기웃대고 그리하고서도 사적 지정 회의에는 뻔질나게 기어나가서 맨 여기서 하던 말 저기서 지명만 바꾸면서도 것도 연구랍시고 개사기 치면서 무슨 문화재위원입네, 학술자문위원입네 개 똥폼.. 2024. 3. 23.
연구자의 마지막은 스토리로 장식해야 한다 일생 동안 밥만 먹으면 했던 연구가 도대체 뭔 소리를 하려고 했던 것인지 그 이야기를 써야 하는 시기가 바로 60 이후이다. 이 시점 이후에는 디테일보다는 전체를, 나무보다는 산을 봐야 하는 시기다. 팩트보다도 스토리를 써야 하는 시기다. 그러자면 닭을 잡던 칼을 버리고 소를 잡는 칼을 새로 장만해야 하고 심지어는 조리법도 달라져야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온다. 그러자면 지금까지 익숙해져 있던 연구의 습관을 폐기해야 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데, 이것은 벼랑에 서서 첫 발을 떼야 비로소 안 보이던 다리가 나타나던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과 유사한 것이다. https://youtu.be/sBBbq2g7yf8?si=JiH3gk2vOnNmtN1k 이 시점이 되면 버려야 산다. 2024.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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