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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삼별초 유적 항파두리성의 기념식수 제주 애월에 가면 항파두리라고, 고려시대 삼별초의 유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발밑을 가만히 보다보면 그 시절 기와나 청자 쪼가리가 보이곤 하지만, 오늘날 그래도 멀쑤룩한 면모로 전해지는 것은 1970년대 대대적으로 벌어진 보수 정화사업의 결과입니다. 그때 정권은 유달리 역사 속 영웅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국난극복, 반외세, 항쟁 관련 유적을 골라 손질하여 대내외에 보여주는 일이 많았습니다. 강화의 초지진이나 고려궁터 같은 곳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 그때이고, 군데군데 끊기고 무너졌던 한양도성이 얼추 이어진 것도 그때입니다. 이곳 제주의 항파두리도 삼별초가 고려의 자존심을 지키며 몽골에 항거한 역사적 유적이라 해서 '복원'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그 지나간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성터 한.. 2023. 7. 2.
1955년 심산 김창숙 출판사등록증 가끔 이런 것도 다 돌아다니나 싶은 물건들이 세상에 나오는 경우를 본다. 원래대로라면 성균관대학교 어느 문서창고에 깊숙히 들어있어야 할 서류거늘. '동방문화연구원'이 어딘지 모르겠는데 혹 '대동문화연구원'의 시초일는지? *** Editor's Note *** 출판사 대표 김창숙은 성균관대 창립자라 아마도 성균관대 부설 연구원 아닌가 한다. 저 등록증이 어찌 하여 나돌아다니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혹 심산과는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다. 2023. 7. 2.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하얀전쟁 소설가이자 번역자로 맹활약한 안정효 선생이 1일 오후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암으로 향년 82세를 일기로 타계했단다. 이런 소식 접할 때마다 아 유명하신 분이 또 갔구나 하면서도, 이른바 대표작이라 해서 거론한 것들을 나 역시 잠시 떠올려보기는 하는데 물론 읽지 아니한 것도 많지만 읽은 것이라 해도 도대체 얼개조차 기억나지 않으니, 하긴 그러고 보면 그런 작품이라 해서 접한 때가 수십년 전이니 나 자신을 이해는 한다만, 갈수록 이런 경험이 축적하니, 이제라도 돌아가실 법한 분들 대표작이라 하는 작품들은 다시금 읽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심산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시절 참말로 무지막지 읽어 제낀 듯한데, 무엇을 위해 읽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때 그렇게 게걸스레 읽어냈으니 지금 이렇게라도 아는 체라도 하.. 2023. 7. 2.
[여행답사 자료정리論] ② 가고 본 데는 명패부터 찍어라 왜 그런 경험 누구나 많으리라. 찍어온 사진이나 영상은 잔뜩인데, 내가 도대체 무엇을 찍었는지도 가물가물하고, 심지어 내가 어디를 갔는지조차 헷갈리는 그런 경험 말이다. 이는 내가 명패를 기록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 대표가 실은 박물관 미술관 전시유물이다. 그래 이 유물 이 그림이 좋다 해서, 아니면 다른 관점에서 내가 독특하다 해서 찍어두긴 했는데 에랏 제기랄 내가 무얼 찍었는지도 몰라? 이런 사진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물론 내 방식이 누구에게나 통용해야 한다는 강요는 하지 않지만, 내가 쓰는 방식을 소개하니, 참고했으면 싶다. 나는 저런 데서 항상 유물을 촬영할 때는 가장 먼저 그 유물 태그, 간단히 말해 해당 유물 명세서를 먼저 찍는다. 그 명세서와 더불어 그 유물을 더 자세히 그 뒤 벽면 같은 .. 2023. 7. 1.
전시 스토리 :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까 메일을 열었던 때였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갑자기 울컥하면서 한참을 펑펑 울었다. ‘메일을 보내신 시간을 보니, 선생님의 고생을 알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 전시를 위해 유물을 대여해주기로 한 기관에서 회신 메일을 보내며, 힘내라는 말과 함께 덧붙인 문장이었다. 집이어서 망정이지, 사무실이었으면 엄청난 사연 있는 여자로 둔갑했을 것이다. 갑자기 울컥했던 이유 정말 전시를 즐기는 일부 학예사를 제외한다면, 전시 오픈이 다가올수록 대다수의 학예사들은 점점 피폐해진다(아니 어쩌면 그들도 피폐해질지도! 어쨌거나 이 말인 즉슨, 저는 전시를 즐기지 않습니다 ㅋ). 정해진 기한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상당한 스트레스다. 계속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며 일을 진행해야 하는 것도 생각지 못하게 마음.. 2023. 7. 1.
중국 영향력 확대가 우려스럽다고 슬쩍 유네스코 복귀하는 미국 미국이 국제사회에 보이는 행태 중 두드러진 특징으로 욱! 이 있어, 빈정상하면 나 간데이 하고는 사표 던지고 냅다 가버리는 양태가 있어, 그렇다고 아주 가는가 하면 것도 아니라서, 계속 주변을 얼쩡얼쩡대며 사태 추이를 면밀히 관찰하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그럴 듯한 명분 들이밀며 슬쩍 사표를 거두어 간다. 미국이 던진 사표, 이거 함부로 수리할 수도 없다. 지들이 아주 그렇게 싹을 확 잘라버리기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미국을 일러 깡패국가라 하는지 모르겠다만, 이런 깡패 양태가 유네스코라 해서 예외는 아니어서, 예서도 걸핏하면 탈퇴와 복귀를 반복하고, 또 그 전 단계로 어정청한 자세를 취하기도 했으니, 그런 미국이 마침내 유네스코 공식 복귀를 선언했다. 현지시간 6월 30일, 파리 본부에서 유네스코는.. 2023. 7. 1.
단재와 다카하시 토루, 정선태와 박노자, 그리고 브루스 커밍스 흔히들 식민사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건으로 반도성론 타율성론 당파성론을 들거니와 그 점에서 이에 가장 충실한 인텔리겐차는 실은 단재 신채호(1880~1936)다. 그의 이와 같은 조선인성론에 대한 비판은 참말로 혹독하다. 우리가 말하는 식민사관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는 실은 다카하시 토루(현행 외래어 표기법상은 다카하시 도루) 고교형高橋亨(1878~1967)이다. 경성제국대학에서 한국철학을 가르쳤다는 그 다카하시다. 함에도 똑같은 논조의 글인데 단재를 읽으면 탱천하고, 다카하시 글을 읽으면 구토가 난다. 요즘 한창 활동하는 한국근대사가로 가장 주목할 만한 이가 정선태 국민대 교수와 박노자다. 정 교수는 국문학이 전공이지만 나는 이만한 역사학자 본 적이 거의 없는 독보 그 자체다. 박노자 또한 그에 버금갈 .. 2023. 7. 1.
generalist vs. specialist, 공자의 경우 달항이라는 마을에 사는 사람이 말했다. "위대하도다 공자는. 모르는 게 없으면서도 어디 하나 내세울 데가 없으니 말이다" 공자가 그 말을 듣고는 제자들한테 말했다. "내가 뭘 하나 제대로 할까? 말 몰이에 전념해볼까? 활 쏘기 명수가 되어볼까? 난 말 몰이나 해야겠다." 達巷黨人曰: "大哉孔子! 博學而無所成名." 子聞之, 謂門弟子曰: "吾何執? 執御乎? 執射乎? 吾執御矣." 박학하지만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제너럴리스트냐 스페셜리스트냐 하는 논란인 듯 하거니와 어째 날 두고 하는 말인 듯 하니 뒷골이 잠시간 땡긴다. (2017. 2. 12) 2023. 7. 1.
[내가 본 박경식] (3) 정영호 몰래 문을 연 한백문화재연구원 한백문화재연구원 홈페이지 제공 정보를 따라 그 개원에 즈음한 주요한 움직임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먼저 2005년 12월 2일 창립발기인 대회를 하고, 같은 달 14일 창립총회 및 이사회의를 하고는 이사장과 이사, 감사 등 정관 심의를 진행했다. 그리하여 이듬해 1월 6일 개원을 하고, 1월11일 설립 등기를 완료했으며 3월 3일 성수동에서 개원식을 공식으로 했다. 문화재청 발굴조사 승인은 2006년 4월 12일에 났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인데, 이걸 준비하느라 서영일과 방유리가 똥을 쌌다. 저 과정에서 박경식 형이 실은 나한테 이사로 들어와 주었으면 하고 의사타진을 했지만, 나는 현직 기자로서, 더구나 문화재 담당 기자로서 그건 곤란하다 해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거 보면 나도 참 당시만 해도.. 2023. 6. 30.
‘국가유산기본법’은 이제 실행이 문제다 ‘국가유산기본법 제정의 의미와 정책과제’에 즈음해 김태식 연합뉴스 선임기자 문화재 존재 기반을 이루는 문화재보호법을 근간에서 뜯어고쳐야 한다는 비판을 거듭한 나로서는 문화재청이 그에 부응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겠지만, 나 좋은 식으로 해석한다면 이번 국가유산기본접 시행을 앞두고 그에 대한 부응 혹은 호응이라 자화자찬하고 싶다. 이는 그만큼 이 문제가 다른 어떤 문화재 현안보다 절박했지만, 또 그런 절박성을 적어도 이 업계에서는 공감하는 문제였지만, 어느 누구도 성큼 시도하기는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새로운 법 제정과 이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유산을 보는 관점 제시를 나는 적극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물론 법률 제정이 곧바로 인식 전환까지 불러올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발판으로 이.. 2023. 6. 30.
내셔널지오그래픽, 한 시대를 접는 또 하나의 시대 아이콘 헌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잡지를 무척이나 흔하게 만난다. 어이한 셈인지, 헌책방에 이 잡지가 그리 많을 수가 없다. 왜 그럴까? 그 시절 정기구독이 그리 많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개별호를 사는 일은 드물고, 거의 다 정기구독 형태가 아니었나 한다. 또 그만큼 영업활동도 활발해서,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중후반만 해도 정기구독을 판촉하는 영업사원을 드물지 않게 만났다고 기억한다. 대학가 정기구독 판촉을 이야기하니 그 시절 삼성출판사 세계문학 세계사상사 전집이 각중에 생각나기도 한다. 이 내셔널지오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공식 명칭이 The National Geographic Magazine인 잡지가 1888년 창간 이래 135년 만에 뿌리째 흔들리는 변화를 맞이했다는 소식이어.. 2023. 6. 30.
낙서, 콜로세움에 했다 해서 처벌 받는 아이러니 https://www.youtube.com/shorts/3ZAY08cVFkc 언뜻 해프닝으로 넘길 만한 일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사례야 한둘이리오? 오도방정하기는 예나 저기나 마찬가지라, 내 기억에 언제인가 일본 동대사 목조건물 난간인가 어딘가에다가 한국이 관람객이 글자를 썼다 말았다 해서 난리친 적 있으니 그 사건 결말이 어찌되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만 저 콜로세움 낙서 사건은 저 동영상을 보니 여러 모로 고려해야 할 점이 많을 법한데, 위선 발생 지점을 보니 내부 회랑식 벽돌 비름빡이라, 마침 그걸 찍은 다른 관람객을 보면서 씩 쪼개는 저 사람이야 크게 대수라 생각은 하지 않았겠지만, 저걸 찍은 사람이 저걸 공개했다는 데서 문제가 커져버렸으니 이 일로 무슨 이태리 문화부장관까지 나선 일을 뭐 공직자로.. 2023. 6. 30.
조건이 결정하는 논문, 강단을 먹여살리는 사이비역사 식민성 여부를 떠나 고조선 중심지가 지금의 평양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남한 강단역사학계서는 식민지시대 이래 눈꼽만큼도 새로울 순 없어 조선왕조를 이성계 일파가 세웠다는 주장이랑 진배없으니 이런 말을 담은 글은 적어도 논문이라는 형태로 실릴 수는 없다. 한데 이 철 지난 주장을 시종일관 내세우는 글이 논문이라 해서 버젓이, 것도 집중으로 실리는 시대가 불과 5~6년 전에 있었으니 백주대낮 날강도 같은 이런 일은 어찌해서 가능했던가? 당시 동북아역사지도니 해서 이른바 역사왜곡 사태에 즈음해 이른바 사이비역사학 혹은 유사역사학이라는 이름의 이른바 재야사학계 공격에 시달리던 강단사학자들이 저런 주장을 담은 글들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집중으로 투고하는 호시절이 있었더랬다. 왜 호시절이라 하는가? 표절이 합법화했고 결.. 2023. 6. 30.
여자만 수십명 떼로 묻은 2천500년 전 이스라엘 사막 무덤 Israeli Archaeologists Find Enigmatic 2,500-year-old Burials in the Desert Dozens of people, possibly all female, were found in an elaborate tomb in the middle of the Negev desert, nowhere near any ancient settlements. Was the goddess of crossroads involved? Israeli archaeologists find enigmatic 2,500-year-old burials in the desert***www.haaretz.com 저 Haaretz라는 이스라엘 언론은 그 지역 발굴소식을 집중으로 전하는 대표적인 .. 2023. 6. 30.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 답을 찾아서 (3) 출세의 시작, 권적과 권정평 1 12세기에 들어서면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개경에 올라 벼슬을 살던 안동권씨가 사료史料에 나타난다. 권적(權適, 1094~1146)과 권정평(權正平, 1085~1160)이라는 인물이 그들이다. 둘 다 묘지명이 현재 전해지고 있어 가계와 생애를 어느 정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한데, 와 에 모두 등장하는 권적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의종毅宗 2년(1148) 작성된 「권적 묘지명」(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서는 권적의 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공은 안동부安東府 사람이다. 증조할아버지[曾王父]는 호장戶長 배융교위陪戎校尉인 휘諱 균한이고, 할아버지[大王父]는 정조正朝에 추봉된 휘 좌섬佐暹이며, 아버지[王父]는 검교태자첨사檢校大子詹事인 휘 덕여德輿이다. 권적의 증조부 권균한은 에 권행의 증손이자 우일품별장右一品別將.. 2023. 6. 29.
번역과 반역 번역은 반역이다. 번역은 매양 그 너머를 미지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불경佛經. 우리가 아는 불경은 번역이 누층한 결과물이다. 이른바 원전은 팔리어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다. 이를 구마라집과 현장 등의 무수한 역경승들의 간난을 거쳐 외국어인 한문으로 태어났다. 이 땅 한반도는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해 이해한다. 중역을 넘어 삼역이다. 이런 고통에 불면의 밤을 지새운던 자 중에 일부가 괘나리 봇짐 싸들고 인도로, 인도로 갔다. 거기엔 번역 넘어 오리지널이 있으리란 확신을 안고 말이다. 하지만 그리 애타게 찾은 부처님 목소리는 결국은 내 곁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위로한 이가 원효다. 원효는 행복했을까? 죽는 날까지 그는 천축을 바라보며 절규했으리라. 부디 다음 세상엔 개돼지도 좋으니 천축에서.. 2023. 6. 29.
초거대 사찰 옆에 있어 억울한 미탄사, 누군가 저택을 희사했다? 미탄사味呑寺라는 사찰은 꼴랑 한 번 모습을 들이밀고는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 것도 역사상 저명한 인물을 소개하는 자리에 곁다리로 잠깐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말이다.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1편, 신라시조 혁거세왕 이야기에 이르기를 ‘최치원은 본피부 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그가 살던 집] 옛 터가 있다. 이것이 최후崔候(최 문창후-최치원)의 옛집이 분명하다.’ 이것이 전부다. 실제 미탄사 자리가 어딘지는 실상 오리무중이었다. 다만, 황룡사 남쪽이라 했고, 또 그 남쪽 인접 지점 드넓은 경주평야 한가운데 누가 봐도 신라시대 흔적인 삼층석탑이 우람하게 있어 이곳이 미탄사 터일 것이라는 심증만 있었다. 그런 심증은 이후 이 일대에 진행한 발굴조사를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포착됨으로써 .. 2023. 6. 29.
손대지 말란 건 모름지기 손을 대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우리 문화재를 망치는 대표적 고질로 실체도 없는 원형 고수 뒷다리 잡기와 더불어 신주단지 애물주의 를 매양 꼽거니와, 특히 후자와 관련해선 매양 반문하거니와 손 대면 어때서? 하거니와 저 걸상 의자만 해도 그렇다. 저것이 어찌하여 백년이 지난 지금도 불쏘시개로 가지 않고 살아남았는지 경외는 한다만 만지지 마시오 Please do not touch 라는 경고문이 놓여 있길래 보자마자 짜증나서 치워버렸다. 묻는다. 만지면 어때서? 치워 버리고 맘대로 어루만지며 사진 맘대로 찍었다. 물론 저 경고가 표방하는 정신 자체까지 내가 폄훼하고픈 생각은 없다만 그렇다고 만지지 않는 데서 없던 경외심이 생긴단 말인가? 사진 찍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붙일 필요도 없다. 또 붙이려거든 관람에 방해하지 않는 데 두든 .. 2023. 6. 29.
파전 들고 서빙 나선 폼페이 고고학은 홍보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학문이라, 시대 변화에 맞는 홍보 맞춤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변신을 꾀했으니, 그런 홍보에 이 폼페이 Pompeii 유적 만큼 최적화한 데가 있겠는가? 폼페이는 마르지 않는 샘이라, 발굴이 언제 완료될지도 모르고, 앞으로 수백년은 너끈히 해 먹을 만한 데라 종래엔 전통매체 기자님들 모셔다가 블라블라했지만, 요샌 그런 전통시대 매체는 캐털이라, 직접 기자님 되어 각종 sns 활용해 대중을 접촉한다. 이번엔 뭘 들고 나왔나 하니 살피니 파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I3Ml4lJNH8 이 분이 폼페이 유적을 전담하는 Director라시는데 성함이 가가멜 쭈그리? Gabriel Zuchtrigel 라 신다. 폼페이 유적은 이를 조사하는 .. 2023. 6. 29.
명태, 명천 사는 태씨가 잡은 물고기라 해서 얻은 이름? 조선 후기 학도 이유원李裕元(1814∼1888)이 손 가는 대로 써내려간 글 모음집 임하필기林下筆記 제27권 / 춘명일사春明逸史에 보이는 일화다. 미리 말하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명태明太 명천明川에 사는 어부漁父 중에 태씨太氏 성을 지닌 이가 있어 어느 날 낚시로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 고을 관청의 주방廚房 일을 보는 아전을 통해 도백道伯께 드리니 도백이 이를 매우 맛있다 해서 물고기 이름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고 다만 “태 어부太漁父가 잡은 것이옵니다”고 할 뿐이었다. 이에 도백이 말하기를 “명천의 태씨가 잡았으니, 명태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겠다” 했다. 이로부터 이 물고기가 해마다 수천 석씩 잡혀 팔도에 두루 퍼지게 되었는데, 북어北魚라 불렀다. 노봉老峯 민정중閔鼎重이 말하기를 “300년 뒤에는 .. 2023. 6. 28.
원조는 생존의 문제였다 이런 상황이 60년대라고 70년대라고 변화가 있었겠는가? 돈만 준다면 쌀만 준다면 전쟁터 총알받이도 해야 했고 탄광으로도 가야 했으며 해외 원정 간호사라도 해야했다. 그래도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남미행 이민 배를 탔다. 국가는 그렇게 폐허와 가난을 자양분 삼아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다. 미국의 구호원조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사대고 친미고 매판이고 나발이고 먹고 살아야 했다. 하루하루가 살아 있음이 하나하나 기적인 시대였다. #원조물자 #구호물자 #국가재건 #미국원조 2023.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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