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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까지 2차대전 전황과 조선의 상황 1942년 중반까지 일본의 태평양전쟁 최대판도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미드웨이 해전 (1942년 6월)의 승전으로 미국은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일본 해군은 여전히 건재했다. 이 시기에 조선에서는-. 3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중국, 미국, 영국, 소련 측에 임시정부 승인을 요청 일제, 일반 가정의 금속 공출 시작. 4월 18일 - 미국 육군 항공대 소속 지미 둘리틀 중령의 지휘하에 16대의 미국 B-25 폭격기 16대가 일본의 주요도시를 폭격한 이른바 둘리틀 공습(Doolittle raid)이 실행됨. 5월 - 잡지 가 로 제호를 바꾸고 민족지에서 친일지로 전향 조선어학회 잡지 이 통권 93호로 폐간 5월 8일 - 일제, 조선에 징병제 실시 결정 5월 15일 -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원봉의 조선.. 2023. 6. 26.
세계사와 한국사 동 시대 세계사 전개를 모르면서 이해 가능한 한국사란 하나도 없다. 일본이 어떻게 제국을 운영했는지 모르면서 조선의 30년대를 알 수 있을까 태평양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무시하면서 해방전후사를 논할수 있을까 아니 인도사를 모르면서 왕오천축국전을 어떻게 이야기 하겠느냔 말이다. 전 세계 전염병 발생현황을 모르면서 조선의 역병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애초에 "한국사"만 떼어 가르친다는거 자체가 무리에 억지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사의 수준은 우리가 세계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2023. 6. 26.
석촌동 고분의 백댄서 롯데월드몰 저 친구가 한창 공사 중일 때, 그리하여 한참 공중을 향해 부양할 때 나는 저 친구야말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재 관람대가 될 것이라 예언했거니와 저 꼭대기서 사방을 조망하며 무엇보다 석촌동 방이동고분군 풍납토성 몽촌토성을 한 눈에 조망하는 경관적 위압성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제 송파구문화재야행이 있었으니 메인 무대가 저 거대한 고층건물을 백댄스 삼고는 석촌동 3호분 앞에다 메인무대를 꾸몄으니 실로 기묘한 연출을 빚었다. 제2롯데월드, 작금 공식 명칭은 롯데월드몰 Lotte World Mall인 저 친구가 주변 문화재엔 괴물일까? 빛나는 조연일까? 저 위대한 건물도 이제는 21세기 문화재라는 관점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언제까지 문화재는 고물 구닥다리만 부둥켜 안고선 신주단지 삼아야겠는가? 2023. 6. 25.
시간이 약이더라. 나를 키워준 곳,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곳, 동시에 정말 즐거웠던 곳!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나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꼬꼬마 얼라였고, 내 그릇의 크기가 함지박만큼은 되겠지 생각했지만,째깐한 간장종지였고, 내 마음은 번철 만큼 단단하겠지 싶었는데,달궈진 번철 위 돼지비계 같이 흐물흐물 거렸다. 지금은 좀 달라졌나 물어보신다면? 놉! ㅎㅎㅎㅎㅎㅎㅎ여전히 똑같다. 아예 아무렇지 않을 수 없겠지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 시간이 약인 것 같다. 여전히 박물관은 긴 세월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 2023. 6. 25.
[내가 본 박경식] (2) 한백문화재연구원 출범과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 해체 이번에 박경식 퇴임 기념논총이라 해서 나온 제1권 《한국 석조미술 연구》를 보면 그의 업적이라 해서 오만 잡가지가 나열되는 모습을 보는데 개중 하나가 보고서라 해서, 그가 직간접으로 간여한 문화재 조사 관련 보고서-말할 것도 없어 발굴보고서가 주류를 이루지만-도 망라했으니, 그 보고서는 다시 간행기관별로 크게 단국대 매장문화재연구소와 한백문화재연구원으로 대별함을 본다. 두 기관은 모두 그가 창립을 주도하고 그 오야붕적 자리를 차지한 까닭에 그가 그런 자리를 차지하는 한, 모든 보고서 작성자 명단 맨 꼭대기엔 항상 그의 이름이 올라가기 마련이라, 저 많은 보고서를 실제로 그가 작성했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두 기관은 성격이 판이하지만 계승적 관계다. 다시 말해 단국대학교라는 사립대학 부설기관으로 출범한 매장.. 2023. 6. 25.
1945년 6월 현재: 태평양전쟁 종료 2개월 전 한국 해방전후사의 정확한 인식을 위해서는 태평양전쟁을 제대로 따라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설명하고자 한다. 1945년 6월 현재 미국 라이프지에 실린 전황도다. 사람 모양 그림 하나가 1개 사단이다. 다른 곳은 다 놔두고, 일본 본토와 만주의 관동군이 몇 개 사단이 이때까지도 남아 있었는지 보기 바란다. 이 지역에만 일본군이 아직 100만명 (100개사단)이 남아 있었다. 이 지도를 보면, 왜 미국이 소련에게 만주지역으로 밀고 내려와 달라고 요청했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상황 대로면 미군이 일본 본토를 공격했을 때 사상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 계산도 안 되는 판국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44년 6월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연군은 이미 소멸하여 사라지고 그 잔여 병력은.. 2023. 6. 25.
홍이포紅夷砲 Hongipo 1637년, 중국 복제 Reproduction 길이 215cm. 구경 I0cm. 사정거리 700m 홍이紅夷는 붉은 오랑캐 라는 의미로 머리털이 붉은 네델란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또는 네넬란드의 옛 이름인 '홀랜드'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고도 한다. 홍이포는 16세기 네델란드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 명나라에 전해진 서양 대포를 말한다. 17세기 초 정두원이 서양 선교사로부터 받아 조선에 전했다. 전시된 홍이포는 1637년 중국 연안을 수비하기 위해 설치한 16기 중 하나를 복제한 것으로 발사가 가능하다. 1) 포구를 통해 화약과 포탄을 밀어 넣어 장전하고 사격 각도를 조절한다. 2) 포 뒤쪽 구명에서 포 안쪽 화약까지 이어져 있는 심지에 불을 붙인다. 3) 심지를 타고 들어간 불이 화약에 붙으면서 탄환.. 2023. 6. 25.
해방 후 위상이 바뀐 고보와 중학 조선에는 일제시대 중등교육과정에 중학과 고보 둘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썼다. 이중 중학은 대개 일본인들이 다녔고, 고보는 조선인들이 다녔는데, 1922년 2차 조선교육령 이후 5년으로 동일한 학제가 되었다. 중학과 고보는 학생 구성원에 차이가 있고 한참 배우는 젊은 학생들이라 양자간 상당한 알력과 경쟁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일제시대 조선인 1고보, 2고보, 3고보를 자임했던 세 학교 (경성고보, 평양고보, 대구고보)의 이야기를 좀 적어보고자 한다. 일제시대 대도시에는 대개 같은 이름의 중학과 고보가 같이 있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서울에는 경성중학 (일본인)과 경성1고보 (나중의 경기고), 경성2고보 (나중의 경복고)가 있었고, 평양에는 평양중학 (일본인)과 평양고보 대구에는 대구.. 2023. 6. 25.
따로국밥을 하나국밥으로 만든 문화재, 그 위대한 탄생 저 말이 하도 문제가 많고, 또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는 못하는 까닭에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다가 마침내 그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재청 주도로 저걸 대체하는 새로운 대체어로 유산 heritage라는 말을 들고 나왔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유산을 염두에 둔 것이라 이 세계유산은 1971년 채택한 국제협약에 뿌리를 두었으니, 한데 이 협약이란 것도 약칭 World Heritage Convention 라 하지만 그 정식 명칭은 the 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이라, 계통이 다른 두 heritage를 임시 봉합한 데 지나지 않는다. 이 유산은 Cultural Heritage와 Nat.. 2023. 6. 25.
어느해 여름 송광사 2023. 6. 25.
"상주의 고대국가 사벌국의 제사유적 확인" 어제 상주박물관에서는 학술발굴조사 중인 "상주시 외답동 산24-1번지유적"의 자문위원회의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설명회를 개최하였다. 상주박물관은 경북지역 공공박물관으로는 유일하게 매장문화재발굴조사(고고학조사)도 할수 있는 기관이다. 발굴조사단 운영은 기록만 남아있는 상주지역의 역사와 숨어있는 매장문화유적을 학술조사를 통해 찾아내고 보존하기 위함이다. 그동안 ʻ세종실록지리지ʼ에 기록된 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던 상품(上品) 자기소를 포도가 유명한 모동면 상판리에서 찾아 발굴조사하여 현재 "상판리 자기가마"로 사적지정을 추진 중이다. 또한 추가적 발굴조사와 지표조사를 통해 2개의 중요 자기소도 확인하였다. 최근에는 삼국사기에 전해지는 상주의 고대 국가인 "사벌국"의 실체를 밝혀내고자 여러 유적을 조사중에.. 2023. 6. 24.
2차대전의 전개와 해방전후사 물론 우리의 운명을 다른 나라들이 전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해방정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2차대전은 뚝 잘라서 버려버리고, 2차대전 이후 해방된 이후만 잘라 항복한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해 진주한 미군을 점령군 운운은 웃기지도 않는 논리이다. 어제까지 일본제국 조선총독부 관할이던 지역을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과의 전쟁에서 뭘 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민의를 수렴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건준과 인공을 들이대며 이것을 한국정부로 인정하지 않으면 미군은 점령군-정복자라고 우겨댄다면, 그런 논리가 어디있나?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1937-1945년까지 세계대전의 이해가 가장 우선적이며 그 안에서 한국의 독립을 설명해야 한다... 2023. 6. 24.
해방전후사와 한국전쟁의 기원 기본적으로 이 두 책은 실증적인 연구인 것처럼 보이지만 팩트의 해석 자체가 문제가 있는 책이다.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은 크게 보아 내용이 아래 세 가지다. (1) 이승만 욕 (2) 건준 옹호 (3) 토지개혁의 해석의 편파성. 남한의 "유상몰수 유상분배"에 대한 왜곡. (1)과 (2)는 통해 있고, 당연히 미군정 욕으로 이어진다. (3)은 그 후 사구체 논쟁에서 이른바 남한사회를 식민지반봉건사회로 보는 NL의 세계관의 남상을 이루는 것이다. (3)은 이미 남한의 선진국 진입과 북한의 거지화-몰락에 의해 뻥이란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부연할 필요 없다. (1)과 (2)가 문제인데, 이 논리가 먹히려면 한 마디로 전술한 바와 같이 2차대전 종전 이전까지 미군의 역할을 일체 무시하고 리셋하지 않으면 불가능.. 2023. 6. 24.
Opening of 3rd Han River Rairoad Bridge 미국의 지원으로 복구된 한강 제3철교 개통식 Opening of the 3rd Han River Rairoad Bridge after it had been restored with U.S. assistance 1957. 7. 5 문봉제 교통부장관, 월리엄 E. 원 주한미경제조정관 참석 Willam E, Warne, U.S. Economic Coordinator for Korea and Mun Bongje, S. Korean Minister of Transport Mun Bongje 뭐 주고 뺨 맞는다고 미국이 그랬다. 자국 이익을 위해 그랬을 뿐이라고 참 말들 쉽게 한다. 2023. 6. 24.
일본의 조건부항복과 카이로선언 아주 간단한 질문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동향분석이 한 번도 없었다. 필자의 짐작이지만, 일본이 시도하려 했을 "Conditional Surrender"에는 조선을 독립시키지 않는 내용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일본이 핵심이익을 모두 포기한다고 할 때 재기의 발판은 결국, 조선, 대만의 영유와 천황제유지, 그리고 미군의 일본 진주 거부, 자발적 무장해제 등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전 말 태평양일대에서 계속 완강히 저항하면서 저 조건부 항복을 끊임없이 들이밀었을 것이라 보는데, 저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연구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2차대전 중 한국의 독립이 공식화 된 것은 카이로선언의 다음 문구이다. We are mindful of the treacherous enslavement of t.. 2023. 6. 24.
일본의 "무조건" 항복 워낙 일본의 항복 임팩트가 강하다 보니 "무조건"이라는 말에 우리는 둔감하기 쉬운데, "무조건"이라는 말은 "조건부 항복"이 있었다는 말이다. 일본이 질 때 지더라도 미국에게 관철하려 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이 "조건"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거 안 받아 주면 니네도 우리만큼 죽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가미카제이건 반자이어택이건 옥쇄이건 나오는 건데. 그 "조건"이 과연 무엇이었을지 이것도 한 번은 우리로서는 궁금해 할 만한 일이다. 왜 얄타협정의 소련군 참전 밀약만 궁금해 할까? Three members held out for three additional terms: Army Minister General Korechika Anami and the Chiefs of Staff of the Army,.. 2023. 6. 24.
스탈린그라드 전투: 러시아의 기억 필자는 여기 여러 차례 썼지만, 러시아의 연구자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한 바 있어, 현지에 몇 차례 오간 적이 있다. 이때 북극권에 위치한 현지 박물관에서 샘플 조사를 했었는데, 당시 작업을 하다가 잠깐 쉬는 시간이 있어 커피와 과자를 같이 먹으며 담소하게 되었다. 이때 당시 어찌 어찌 이야기를 하다가 화제가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로 비약하게 되었는데, 같이 담소하던 러시아 학자가 넷이었는데, 이들의 조부, 조모의 다수가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서 전사한 것을 듣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 당시 네 명의 러시아 친구 조부, 조모, 외조부, 외조모 합쳐 각각 4분 중 평균적으로 절반 이상이 두 도시 공방전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 두 도시 공방전에서 다수 러시아인이 사망한 것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 2023. 6. 24.
미국의 배신?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3/06/24/MSDQQE7LTVGYFOKFNFSOEKF2IM/ “미국은 얄타에서 한국을 소련에 팔아넘겼다” 미국은 얄타에서 한국을 소련에 팔아넘겼다 아무튼, 주말 전봉관의 해방 거리를 걷다 이승만이 제기한 얄타 밀약설 www.chosun.com 글쎄. 팩트로만 보자면 이 부분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의 밀약설 비판 제기도 독립운동가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필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당시 조선에서 미국의 얄타밀약을 "조선에 대한 배신"이라고 이야기할 상황이었냐 하는 점이다. 당시 미국은 태평양 군도의 일본 점령지를 하나씩 함락시키고 있었는데 일본군의 결사저항에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2023. 6. 24.
Douglas MacArthur Commanding Incheon Landing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 Commander of the United Nations Command General Douglas MacArthur commanding the Incheon landing during the Korean War 1950. 9. 15 *** 한국전쟁이라 할 때 그 상징 중 하나로 등극한 장면이다. 한국전쟁은 전쟁과 언론, 홍보가 일체화한 국제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하나하나는 철저한 언론통제 아래 배포됐다. 이것이 고고학으로 전용된다. 천마총 발굴이 그랬다. 언론홍보를 염두에 둔 영상 연출은 천마총이 시작이었다. 개판 친 무령왕릉 발굴 보고를 받은 당시 문공부 장관 윤주영이 김원룡한테 했다는 푸념을 잘 새겨야 하는 이유다. 2023. 6. 24.
[내가 본 박경식] (1) 스승, 죽어야 눈물을 받는 존재 불금이라 해서 요새 유별나게 다를 건 없다. 초저녁 잠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바람에 저녁 약속은 되도록이면 잡지 않지만 어제 금요일 저녁은 조금 달라 피치 못할 사정이, 그것도 두 개가 겹쳤으니, 천만다행으로 같은 강남 권역이 약속장소였고 시작 시간이 두어 시간 격차를 두어 결론으로만 보면 그 두 개 일정을 그런대로 다 소화하기는 했다. 문제는 5시30분 신사역 인근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시작한 인암仁巖 박경식 교수 정년퇴임 기념논총 봉정식이었으니, 저 두 권으로 구성한 논총집이 고역 중의 고역이라, 박 교수 기간 발표논문을 박박 긁어 총서로 기획한 《한국 석조미술 연구》가 1050쪽, 주변 지인 회고담과 제자들 논문으로 구성한 《박경식 그리고 한국고고미술》이 540쪽에 달하는 거질이었으니 학연문화사에서 .. 2023. 6. 24.
자랑스러운 한국사 이상의 메시지 언젠가 썼듯이 지금 한국사 기술은, 도전과 응전, 침략과 생존으로 큰 골격을 잡고, 그 사이사이에 각 시대별로 자랑스러워 할 만한 한국 문화를 중간 중간 끼워 넣어 장식한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사를 읽고 나면 쳐들어오는 외적을 격퇴하면서 그 사이에도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웠다는 것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한국사 기술 방식은 본질적으로 대한민국과 휴전선 이북의 북한정권, 양쪽이 모두 공유한다. 남한에서 기술하는 역사는 북한과 엄청나게 다른 것 같지만 사실 곰곰히 따져 보면 근본적인 기술 방식은 북한의 한국사 기술방식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자. 이제 다른 나라의 역사를 들고 읽어보자. 일본사. 유럽사. 미국사. 이런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는가? 2023.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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