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룡검(龍劒) 삼국사기 열전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 제2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 : 또 에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부자 한 사람이 있어 모양이 몹시 단정했다. 딸이 아버지께 말하기를 "밤마다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침실에 와서 관계하곤 갑니다"라고 하자 아버지는 "너는 긴 실을 바늘에 꿰어 그 남자 옷에 꽂아 두어라"라고 하니 그 말대로 했다. 날이 밝아 그 실이 간 곳을 찾아보니 북쪽 담 밑에 있는 큰 지렁이 허리에 꽂혀 있다. 이때부터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낳으니 나이 15세가 되자 스스로 견훤(甄萱)이라 일컬었다. 경복(景福) 원년(元年) 임자(壬子·892)에 이르러 왕이라 일컫고 완산군(完山郡)에 도읍을 정했다. 나라를 다스린지 43년 청태(淸泰) 원년(元年) 갑오(甲午·934)에 견훤의 세 아들..
능환(能奐) 삼국사기 열전
광학(廣學) 명랑 법사의 밀교 신인종(神印宗)을 계승한 신라말 승려로 고려 태조 왕건이 창업할 때 해적을 퇴치하는 공로를 세웠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명랑신인(明朗神印) : 우리 태조(太祖)가 나라를 세울 때 또한 해적이 와서 침범하니, 이에 안혜(安惠)ㆍ낭융(朗融) 후예들인 광학(廣學)ㆍ대연(大緣) 두 고승(高僧)을 청해다가 법을 만들어 해적을 물리쳐 진압했으니, 모두 명랑의 계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사를 합하여 위로 용수(龍樹)에 이르기까지를 구조(九祖)로 삼았다. (본사기本寺記에는 삼사三師가 율조律祖가 되었다고 했으나 자세히 알 수 없다) 또 태조가 글들을 위해 현성사(現聖寺)를 세워 한 종파(宗派)의 근본을 삼았다....돌백사(堗白寺) 주첩주각(柱貼注脚)에 씌어 있는 것을 상고하여 보면 이러..
낭융(朗融) ☞랑융(朗融)
랑융(朗融) 명랑 법사의 밀교 신인종을 계승한 신라말 승려로 짐작되지만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명랑신인(明朗神印) : 우리 태조(太祖)가 나라를 세울 때 또한 해적이 와서 침범하니, 이에 안혜(安惠)ㆍ낭융(朗融) 후예들인 광학(廣學)ㆍ대연(大緣) 두 고승(高僧)을 청해다가 법을 만들어 해적을 물리쳐 진압했으니, 모두 명랑 계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사를 합하여 위로 용수(龍樹)에 이르기까지를 구조(九祖)로 삼았다. (본사기本寺記에는 삼사三師가 율조律祖가 되었다고 했으나 자세히 알 수 없다.) 또 태조가 글들을 위해 현성사(現聖寺)를 세워 한 종파(宗派)의 근본을 삼았다.
안혜(安惠) 명랑 법사의 밀교 신인종을 계승한 신라말 승려로 짐작되지만 자세한 행적은 미상이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명랑신인(明朗神印) : 우리 태조(太祖)가 나라를 세울 때 또한 해적이 와서 침범하니, 이에 안혜(安惠)ㆍ낭융(朗融) 후예들인 광학(廣學)ㆍ대연(大緣) 두 고승(高僧)을 청해다가 법을 만들어 해적을 물리쳐 진압했으니, 모두 명랑 계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사를 합하여 위로 용수(龍樹)에 이르기까지를 구조(九祖)로 삼았다. (본사기本寺記에는 삼사三師가 율조律祖가 되었다고 했으나 자세히 알 수 없다.) 또 태조가 글들을 위해 현성사(現聖寺)를 세워 한 종파(宗派)의 근본을 삼았다.
존승(尊勝) 신라 중기 때 각간 벼슬을 지낸 사람인 듯한데, 자세한 행적은 알 수 없다. 삼국유사 제5권 신주(神呪) 제6 혜통황룡(惠通降龍)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혜통의 세속 이름은 존승 각간(尊勝角干)이라고 하는데 각간은 곧 신라의 재상과 같은 높은 벼슬이니, 혜통이 벼슬을 지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또 어떤 사람은 시랑(豺狼)을 쏘아 잡았다고 하지만 모두 자세히 알 수 없다.
신충(信忠) (1) 신라재상 신라 효성왕 때 중시가 되었다가 경덕왕 때 상대등으로 승진했지만, 자연재해로 물러났다. 삼국사기 권 제9(신라본기 제9) 효성왕 : 3년(739) 봄 정월에 왕이 할아버지와 아버지 사당[祖考廟]에 참배했다. 중시 의충(義忠)이 죽었으므로 이찬 신충(信忠)을 중시로 삼았다. 삼국사기 권 제9(신라본기 제9) 경덕왕 : 16년(757) 봄 정월에 상대등 사인(思仁)이 병으로 관직을 그만두었으므로 이찬 신충(信忠)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22년(763)...가을 7월에 서울에 큰 바람이 불어 기와가 날라가고 나무가 뽑혔다. 8월에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다시 피었다. 상대등 신충(信忠)과 시중 김옹(金邕)이 관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