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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맘 내 맘 같다면 복산자(卜算子) 이지의李之儀 저는 장강 위쪽에 살고요 당신은 장강 아랫동네 살지요. 날마다 당신 그리나 볼 수는 없지만 저 강물은 같이 마신답니다. 저 강물 언제나 그치며 제 한은 언제나 멈출까요. 당신 맘 제 맘 같다면 이 그리움 결코 외면 않으리. 我住長江頭, 君住長江尾. 日日思君不見君, 共飲長江水. 此水幾時休, 此恨何時已 只願君心似我心, 定不負相思意. 2018. 9. 24.
유우석(劉禹錫)이 노래하는 모란(牡丹) 영호 상공 모란에 화답하며[和令狐相公牡丹] 唐 유우석(劉禹錫, 772~842) / 서성 譯 재상 댁 안 화단 가득 핀 꽃한창 피어나는데 집을 떠나는구료낙양이 가깝다고 말하지 마소춘명문 밖이 바로 아득한 하늘 끝이라오 平章宅裏一闌花, 臨到開時不在家. 莫道兩京非遠別, 春明門外卽天涯. 2018. 9. 23.
나은(羅隱) <모란牡丹)> 牡丹(모란) 唐 나은(羅隱·833~909) / 서성 譯 艶多煙重欲開難 여러 꽃 피어날 때 함께 피기 싫더니紅蕊當心一抹檀 온통 분홍색 가운데 붉은 꽃술로 피었네公子醉歸燈下見 귀공자는 취해 돌아가다 등불 들고 살펴보고美人朝揷鏡中看 미인은 아침에 꺾어 꽂고는 거울 속을 바라본다當庭始覺春風貴 정원에선 봄바람이 귀한 줄 비로소 느끼고 帶雨方知國色寒 비가 뿌리면 국색이 추운 줄 그제사 아는구나日晩更將何所似 날 저물 땐 더욱이 무엇으로 비유하랴?太眞無力憑欄干 양귀비가 힘없이 난간에 기댄 것 같아 羅隱(833~909)은 字가 소간(昭諫)이며 신성新城(지금의 浙江 富陽市 新登鎮) 사람이다. 833年(太和 7年)에 태어나 大中 13年(859)에 底至京師하고, 應進士試했지만 歷七年토록 不第했다。咸通 8年(867), 乃自編其.. 2018. 9. 23.
백거이 <모란(買花)> 買花값비싼 꽃 [唐] 백거이(白居易, 772~846) / 서성 譯評 帝城春欲暮 봄이 저무는 장안에喧喧車馬度 수레 오가는 소리 소란스러워共道牡丹時 모두들 모란이 한창 때라 말하며相隨買花去 어울려 꽃을 사러 가는구나貴賤無常價 희귀한 것은 일정한 가격이 없고酬直看花數 값을 지불하며 꽃이 몇 송이인지 살펴본다灼灼百朶紅 타오르는 듯한 붉은 꽃 백 송이면戔戔五束素 다섯 필 흰 비단도 사소하다네上張帳幄庇 위에는 휘장을 펼쳐 덮고傍織笆籬護 주위로는 울타리를 쳐 보호한다水灑復泥封 물을 뿌리고 또 뿌리에는 흙을 덮어遷來色如故 옮겨 심어도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네家家習爲俗 집집마다 기르다 보니 습속이 되어人人迷不悟 사람마다 미혹된 채 깨어날 줄 몰라라有一田舍翁 어느 나이든 농부가 있어偶來買花處 우연히 꽃 사는 곳에 와선低頭獨.. 2018. 9. 23.
유득인(劉得仁) <연화봉(蓮花峰)> 서성 선생 글이다. 유득인(劉得仁)은 공주의 아들로 장안에서 정원(貞元) 연간에 태어났다. 개성(開成), 대중(大中) 연간에 형제들이 모두 현달하였지만, 유득인만이 시문에 각고의 노력을 쏟아 과거를 보고 벼슬을 하려고 하였다. 30여년에 걸쳐 과거를 준비하고 보면서 논밭과 정원을 팔며 생활했지만 결국 급제하지 못했다. 대중 연간 말에 죽었다. 900년 조정에서 진사 급제를 추사(追賜)하였다. 유득인은 요합(姚合), 옹도(雍陶), 정거회(丁居晦) 등과 친하였으며 항상 고음(苦吟)하며 시를 지었다. 특히 오언율시에 뛰어났으며 시풍이 청영(淸瑩)하다. 비록 감정이 깊고 음미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변화가 약해 당시의 설능(薛能)으로부터 “백 수가 한 수와 같고, 시집의 첫 시가 말미의 시와 같다”(百首如一.. 2018. 9. 23.
배이직裴夷直 <담금질하는 용천검[觀淬龍泉劍]> 서성 선생 글이다. 배이직(裴夷直)은 字가 예경(禮卿)이고, 군망은 하동(河東, 산서성 永濟)이며, 오현(吳縣, 강소성 蘇州) 사람이다. 815년 진사과에 급제하여 우습유가 되었고 이후 이부원외랑에 올랐다. 834년 왕질(王質)이 선흡(宣歙)관찰사로 나갈 때 유분(劉蕡), 조석(趙晰) 등과 함께 종사로 징초되어 갔다. 840년 간의대부와 어사중승을 역임하였으나 무종이 즉위하면서 항주자사로 출임하였고 다음해 환주(驩州) 사호참군으로 폄적되었다. 847년 선종이 즉위 후 강주자사, 병부랑중, 소주자사, 화주자사로 외직과 내직을 번갈아 하였고, 산기상시로 벼슬을 마쳤다. 《신당서》 예문지에 《배이직시(裴夷直詩)》 1권이 저록됐으며, 원대 신문방(辛文房)의 《당재자전》에서도 시문집 1권이 당시 통행된다(今傳於世.. 2018. 9. 23.
심아지(沈亞之) <황성에 가득한 봄색(春色滿皇州)> 서성 선생 글이다. 심아지(沈亞之·781~832)는 자가 하현(下賢)이며, 오흥(吳興·절강성 湖州) 사람이다. 젊어서 한유의 문하에 들어가 이하(李賀)와 사귀었고, 나중에 두목(杜牧), 장호(張祜), 서응(徐凝) 등과도 친했다. 815년 진사과에 급제한 후 경원(涇原)절도사 이휘(李彙)의 징초를 받아 장서기로 들어갔다. 얼마 후 비서성정자가 되었다가, 821년에 현량방정능직언극간과(賢良方正能直言極諫科)에 급제하여 역양위(櫟陽尉)가 되었다. 824년 복주단련부사(福州團練副使)로 나갔다가 다시 입조하여 전중시어사에 올랐다. 829년 덕주행영사 백기(柏耆)의 판관이 되었으나, 백기가 좌천되면서 심아지도 건주(虔州) 남강위(南康尉)로 좌천되었다. 831년 영주(郢州) 사호참군으로 옮겼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심아.. 2018. 9. 23.
이우중(李虞仲) <봉루 비추는 새벽해(初日照鳳樓> 서성 선생 글이다. 이우중(李虞仲·772~836)은 자가 견지(見之)이며, 조군(趙郡·하북성 趙縣) 사람이다. 시인 이단(李端)의 아들. 806년 진사과에 급제했으며 곧 이어 박학굉사과에도 급제하여 홍문교서(弘文校書)가 되었다. 812년 태상박사가 되었으며, 821년 검남서천절도 판관이 되었다. 822년 이후 병부원외랑, 사훈랑중, 병부랑중 겸 지제고, 중서사인을 역임하고, 830년 화주(華州)자사로 출임했다. 833년에 다시 조정에 들어가 좌산기상시, 상서우승, 병부시랑, 이부시랑이 되었다. 인물됨이 간담(簡淡)하여 벼슬길이 통달했어도 뻐기지 않았다. 『신당서』「예문지」에 『이우중제집』(李虞仲制集) 4권이 저록됐지만 망일했다. 현재 시 1편 이외에 산문 18편이 『전당문』에 전한다. 『구당서』와 『신당.. 2018. 9. 23.
남산에 같이 오른 상념 이틀 뒤면 추석이다. 달 보러 올랐으리오? 지난 여름 참말로 견디기 힘들었으되, 그 여진 한 켠에 짙은 상흔으로 남아 흔들어 털어버리고자 함이라. 은하수에서 사라진 무수한 별이 지상에 깔렸다. 본다. 언제나 저 자리에 앉았더랬다. 상념이 버둥한다. 헛살았나? 석가모니를 생각한다. 당신 진짜로 반열반했소? 날이 좋은갑다. 나도 좋으렴 좋으련만. 2018. 9. 23.
한준韓濬 <청명절에 하사하는 불[淸明日賜百僚新火]>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한준(韓濬)은 강동(江東, 지금의 화동 지역) 사람이다. 774년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며 시인 이단(李端)과 사귀었다. 그밖의 사항은 미상. 현재 시 1수가 남아있다. 淸明日賜百僚新火 청명일에 백관에게 새 불을 하사하다 朱騎傳紅燭, 말을 탄 관리가 붉은 촛불을 전해주고 天廚賜近臣. 궁중의 주방에서 근신들에게 음식을 베푸니 火隨黃道見, 불이 어도(御道)를 따라 나타나고 煙繞白楡新. 연기가 느릅나무에 새로워라 榮曜分他室, 눈부신 빛이 여러 집으로 나누어져 恩光共此辰. 은혜의 밝음이 이 날을 함께 하여라 更調金鼎味, 다시금 청동 솥에 맛을 조화시키고 還暖玉堂人. 더불어 옥당의 사람을 따뜻하게 하는구나 灼灼千門曉, 환하디 환하게 문마다 새벽이 온 듯하고 輝輝萬井春. 밝디 밝게 집마다 .. 2018. 9. 22.
상리常理 <고별리古別離>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상리(常理)는 천보 연간 이전에 활동한 시인이란 사실 외에 그밖의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시 2수가 당대 천보 연간(742-755)에 이강성李康成이 편찬한 『옥대후집』玉臺後集에 실렸다. 古別離 고별리 君御狐白裘, 임자는 호백구(狐白裘)를 입고 妾居緗綺幬. 첩은 담황색 비단 휘장에 살지요 粟鈿金夾膝, 좁쌀 모양이 새겨진 황금 협슬(夾膝) 花錯玉搔頭. 꽃문양이 파여 있는 옥 비녀 離別生庭草, 이별 후에 마당에는 풀이 자라는데 征衣斷戍樓. 출정나간 후엔 수자리 소식 끊어졌어요 蠨蛸網淸曙, 갈거미가 이른 새벽에 거미줄을 치고 菡萏落紅秋. 연꽃이 붉은 가을에 시들어 떨어져요 小膽空房怯, 담이 작아 빈 방에 들어가기 겁이 나고 長眉滿鏡愁. 긴 눈썹이 거울 속 가득 수심이어요 爲傳.. 2018. 9. 22.
냉조양(冷朝陽) <입춘(立春)> 이 역시 서선 선생 글이다. 냉조양(冷朝陽)은 윤주 강녕(江寧, 남경시) 사람이다. 769년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며, 급제 후 장안에서 강동으로 부모를 뵈러 갈 때 전기(錢起), 이가우(李嘉祐), 한굉(韓翃) 등이 나와 시를 지어 송별하였다. 상위(相韋)절도사 설숭(薛嵩)의 빈객이 되었다가, 784년 태자정자(太子正字)에 임명되고, 정원 연간(785-804)에 감찰어사까지 올랐다. 원대 신문방(辛文房)은 “법도가 약간 약하지만 어휘와 리듬이 청월하다”(法度稍弱, 字韻淸越)고 평하였다. 현존하는 시는 『전당시』에 11수, 『전당시보편』에 1수 등 모두 12수가 남아있다. 立春입춘 玉律傳佳節, 옥 율관이 아름다운 절기를 알리니靑陽應此辰. 봄이 오늘부터 시작이어라土牛呈歲稔, 흙으로 만든 소가 풍년을 기약하고彩燕.. 2018. 9. 22.
왕손지王損之 <탁수에서 찾는 명주[濁水求珠]>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왕손지(王損之)은 798년 진사과에 급제하였다. 그밖의 사항은 미상. 현재 시 1수가 전한다. 濁水求珠 탁수에서 명주를 찾다 積水非澄徹, 강물이 맑지 않아 明珠不易求. 명주 찾기가 쉽지 않네 依稀沈極浦, 아마도 먼 포구에 가라앉았으나 想像在中流. 물 가운데 있으리라 여겨지네 瞪目思淸淺, 눈을 부릅떠 맑기를 기다리고 褰裳恨暗投. 치마 걷고 건너다 몰래 던진 일 한스러워 徒看川色媚, 아름다운 강물 빛을 부질없이 바라보고 空愛夜光浮. 떠오르는 야광을 하릴없이 사랑하네 月入疑龍吐, 달빛이 들어가니 용이 토하는 듯하고 星歸似蚌遊. 별들이 지니 방합조개가 헤엄하는 듯해라 終希識珍者, 결국 보배를 아는 사람이 采掇在冥搜. 후미진 곳을 뒤져 찾아내기 바라네 濁水求珠(탁수구주): 흐린 물에서.. 2018. 9. 22.
육복례陸復禮 <중화절에 황제께서...[中和節詔賜公卿尺]>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육복례陸復禮는 791년 진사과에 급제했으며, 다음해 박학굉사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선부원외랑까지 이르렀다. 현존하는 작품은 시 1편 이외에 「균천악부」(鈞天樂賦)와 「환주합포부」(環珠合浦賦)가 있다. 中和節詔賜公卿尺 중화절에 황제께서 공경에게 자를 하사하다 春仲令初吉, 음력 이월에 절기가 초하루라 歡娛樂大中. 바르고 큰 정치를 모두가 즐거워하네 皇恩貞百度, 황은은 온갖 법도를 바르게 하고자 寶尺賜群公. 자를 신하들에게 하사하시는구나 欲使方隅法, 사방 모서리가 법도에 맞게 하려고 還令規矩同. 똑같은 직각자와 컴퍼스를 사용하게 하였네 捧觀珍質麗, 받들어 바라보니 진귀한 재질이 아름답고 拜受聖心崇. 엎드려 받드니 성심이 드높아라 如荷丘山重, 마치 산과 같이 무거운 은택 받고서 思.. 2018. 9. 22.
이행민李行敏 <경운도를 보고[觀慶雲圖]>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觀慶雲圖 ‘경운도’를 보고 이행민李行敏 縑素傳休祉, 하얀 명주가 아름다운 길상을 전하여 丹靑狀慶雲. 단청으로 상서로운 구름을 그렸어라 非煙凝漠漠, 안개가 아니면서 막막히 엉겨있고 似蓋乍紛紛. 산개(傘蓋) 같으면서 갑자기 분분히 흩어지네 尙駐從龍意, 구름은 용을 따른다는 뜻을 넣었고 全舒捧日文. 해를 받드는 형상을 펼쳤구나 光從五色起, 빛은 오색 구름에서 일어나고 影向九霄分. 그림자는 구천을 향해 흩어지네 裂素留嘉瑞, 비단을 자른 화폭에 상서로움을 남겼으니 披圖賀聖君. 그림을 열어보고 성군을 축하하네 寧同窺汗漫, 광대한 하늘을 바라본 것과 같으니 方此睹氛氳. 여기에서 무성한 기운을 목도하노라 〔해설〕 ‘경운도’를 보고 지은 제화시(題畵詩)이다. 그림을 사실과 같이 여기는 고대 .. 2018. 9. 22.
나양羅讓 <윤달로 정한 사시(閏月定四時)>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나양(羅讓·767~837)은 자가 경선(景宣)이며, 월주 회계(會稽·절강 소흥시) 사람이다. 경조윤을 지낸 나향(羅珦)의 아들. 801년 진사과에 급제하고, 806년 재식겸무명어체용과(才識兼茂明於體用科)에 급제하여 함양위(咸陽尉)에 제수됐다. 809년 부친이 사망하자 여러 해 동안 상을 지키며 징초에 응하지 않았다. 나중에 회남절도사 이부(李鄜)의 종사(從事)가 되었다. 나중에 감찰어사, 전중시어사, 이부원외랑, 사봉랑중 등을 역임했다. 831년 급사중에서 복건관찰사로 출임하고, 다시 들어와 좌산기상시가 되다. 836년 강서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죽었다. 《신당서》에 저작 30권이 있다 했지만 나중에 망일되었다. 현존하는 작품은 시 2편, 부 3편, 대책(對策) 1편 뿐이다.. 2018. 9. 22.
독고수獨孤綬 <연못에 감춘 옥 [藏珠於淵]> 이 역시 서성 선생 글이다. 독고수獨孤綬는 779년 진사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박학굉사과에도 급제하였다. 그밖의 사항은 미상. 독고수는 부賦와 송頌에 뛰어났는데, 「방순상부」放馴象賦는 덕종德宗이 격찬했다. 그의 작품은 『전당시』에 시 2수가 실려 있고, 『전당문』에 문장 24편이 전한다. 藏珠於淵 옥을 연못에 감추다 至道歸淳朴 최고의 도는 순박으로 돌아가는 것 明珠被棄捐 보옥 주웠다 해도 버려야 하리 失眞來照乘 진솔함 잃으면 수레 비추는 보옥에 불과하나 成性却沈泉 천성 이루면 오히려 샘물에 잠긴다네 不是靈蛇吐 뱀이 수후隋侯한테 물어준 게 아니라 猶疑合浦旋 합포合浦로 진주 돌아온 일 같으니 岸傍隨月落 강가 언덕에 달과 함께 떨어지고 波底共星懸 파도 아래 별과 함께 걸렸네 致遠終無脛 발 없어도 결국은 멀리 .. 2018. 9. 22.
우윤궁于尹躬 <동짓날 태사국 관리가...(南至日太史登臺書雲物) 이 역시 서성 선생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가져왔다. 우윤궁(于尹躬)은 于允躬이라고도 쓴다. 경조 만년(萬年·서안시) 사람으로 부친 우소于邵도 문명이 있었다. 대력 연간(766~779)에 진사과에 급제한 후, 807년 중서사인에 올랐고, 811년 지공거知貢擧가 되었다. 811년 5월 동생 죄에 연좌되어 양주자사洋州刺史로 폄적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현재 시 1수가 전한다. 南至日太史登臺書雲物 동짓날 태사국 관리가 대에 올라 경물을 기록하다 至日行時令, 동지에 월령을 시행하니 登臺約禮文. 대에 올라 예식을 거행하여라 官稱伯趙氏, 관직은 백조씨伯趙氏라 칭하고 色辨五方雲. 색으로 오방의 구름을 분별하네 晝漏聽初發, 낮 물시계가 막 시작하는 걸 듣고 陽光望漸分. 태양 빛이 점점 옮겨가는 걸 보네 司天爲歲備.. 2018. 9. 22.
[唐] 두원영杜元穎 <옥수기방류 玉水記方流> 서성 선생님 글이다. 원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약간 손을 대고, 명백한 오타는 바로잡았다. 나아가 간혹 내가 새로 보강한 대목도 있다. *** 두원영杜元穎(769-833)은 경조京兆 두릉杜陵(서안시) 사람이다. 800년 진사과에 급제하고, 806년에는 박학굉사과에 급제했으며, 816년 무재이등과茂才異等科에 급제했다. 젊어서부터 절도부에서 두 번 징초徵招받았다. 817년 좌습유에서 시작해 태상박사, 우보궐을 거쳐 820년 중서사인에 올랐다. 821년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가 823년 검남서천절도사로 출임出任했다. 당시 황제 경종敬宗이 사치하자 두원영은 적극적으로 진기한 물건을 색출하고, 심지어 군량까지 헐어 상납했기에 백성과 병사들 원망을 샀다. 829년 성도成都가 남조南詔한테 침략당해 크게 피폐.. 2018. 9. 22.
자기PR은 이렇게...강세황과 원매의 경우 ** 2013년 9월 22일 내 페이스북 포스팅을 글을 약간 손질한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이 양반 올해(2013년을 말함-저자이자 인용자 추기) 탄신 300주년이라 해서 여기저기서 관련 기념행사를 했거나 하거니와, 시·서·화 삼절(三絶)이라 일컬었다는 이 양반, 자기 자랑 증세가 심했으니, 그의 글을 엮은 《표암유고(豹菴遺稿)》를 보건대, 석가재(夕可齋) 이태길(李泰吉)이라는 친구가 금강산으로 유람하러 떠날 적에 그에게 써 준 글이 있으니, 이 글 첫 대목은 이렇다. 내 친구인 석가옹이 중랑(中郞) 원굉도의 유람기를 읽고는 그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이 사람의 글이 표암의 단편들에 미치지 못하니 볼 만한 게 무에 있겠는가?"라고 했다. 뒤에 이어지는 문장은 안봐도 비디오다... 2018. 9. 22.
늙는다는 것 "떠나면 만나고, 만나면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수 있다. 늙으면 다시 젊어질 수는 없다" - 원매(袁枚) 2018.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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