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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천(橫川)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평왕본기 : 22년(600) 고승 원광이 조빙사(朝聘使) 나마 제문(諸文)과 대사 횡천(橫川)을 따라 돌아왔다. 해동고승 권2 2018. 9. 28.
시부(詩賦) 해동고승전 권2 2018. 9. 28.
혜숙(惠宿) 해동고승 권2 삼국유사 제4권 의해(意解) 제5 이혜동진(二惠同塵) : 중 혜숙(惠宿)이 화랑(花郞)인 호세랑(好世郞)의 무리 중에서 자취를 감추자 호세랑은 이미 황권(黃卷)에서 이름을 지워 버리니 혜숙은 적선촌(赤善村; 지금 안강현安康縣에 적곡촌赤谷村이 있다)에 숨어서 산 지가 20여 년이나 되었다. 그때 국선(國仙) 구참공(瞿참公)이 일찍이 적선촌 들에 가서 하루 동안 사냥을 하자 혜숙이 길가에 나가서 말고삐를 잡고 청했다. "용승(庸僧)도 또한 따라가기를 원하옵는데 어떻겠습니까." 공이 허락하자, 그는 이리저리 뛰고 달려서 옷을 벗어부치고 서로 앞을 다투니 공이 보고 기뻐했다. 앉아 쉬면서 피로를 풀고 고기를 굽고 삶아서 서로 먹기를 권하는데 혜숙도 같이 먹으면서 조금도 미워하는 빛이 없더니, 이윽.. 2018. 9. 28.
비마라진제(毘摩羅眞諦) 해동고승전 권2 2018. 9. 28.
농가타(農加陀) 해동고승전 권2 2018. 9. 28.
불타승가(佛陀僧伽) 해동고승전 권2 2018. 9. 28.
비멸(毘滅) 해동고승전 권2 cf. 비마라(毗摩羅) 2018. 9. 28.
반야발마(般若跋摩) 해동고승전 권2 2018. 9. 28.
혜갑(惠甲) 혜동고승전 권2 2018. 9. 28.
살파신약체파(薩婆愼若提婆) 해동고승전 권2 2018. 9. 28.
일체지천(一切智天) 해동고승전 권2 2018. 9. 28.
단군(檀君) 고조선 시조 제왕운기 권下 전조선기(前朝鮮紀) : 처음에 어느 구가 나라를 열었던고/석제(釋帝) 손자 이름은 단군(檀君)일세/(원주 : 본기(本紀)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상제 환인은 서자(庶子)가 있었으니 이름이 웅(雄)이었다고들 한다. 이 웅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려가 삼위태백에 이르러 크게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웅이 천부인 세 개를 받고 귀신 3천을 거느려 태백산 마루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 분을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부른다고들 한다.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되게 하여 단수신(檀樹神)과 결혼시켜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이라 하고 조선 땅을 차지하여 왕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시라(尸羅).고례(高禮).남북옥저(南北沃沮).동북부여(東北扶餘).예(濊)와.. 2018. 9. 28.
단웅천왕(檀雄天王) 고조선 시조인 단군의 아버지가 천강에서 얻은 칭호. 제왕운기 권 下 전조선기(前朝鮮紀) : 본기(本紀)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상제 환인은 서자(庶子)가 있었으니 이름이 웅(雄)이었다고들 한다. 이 웅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려가 삼위태백에 이르러 크게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웅이 천부인 세 개를 받고 귀신 3천을 거느려 태백산 마루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 분을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부른다고들 한다.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되게 하여 단수신(檀樹神)과 결혼시켜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이라 하고 조선 땅을 차지하여 왕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시라(尸羅)ㆍ고례(高禮)ㆍ남북옥저(南北沃沮)ㆍ동북부여(東北扶餘)ㆍ예(濊)ㆍ맥(貊)은 모두 단군의 자손이다. 1천38년을.. 2018. 9. 28.
환인(桓因) 상제(上帝)로서 단군의 할아버지이자 환웅(桓雄)의 아버지. 제왕운기 권下 전조선기(前朝鮮紀) : 처음에 어느 구가 나라를 열었던고/석제(釋帝) 손자 이름은 단군(檀君)일세/(원주 : 본기(本紀)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상제 환인은 서자(庶子)가 있었으니 이름이 웅(雄)이었다고들 한다. 이 웅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려가 삼위태백에 이르러 크게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 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웅이 천부인 세 개를 받고 귀신 3천을 거느려 태백산 마루에 있는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 분을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 부른다고들 한다.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되게 하여 단수신(檀樹神)과 결혼시켜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이라 하고 조선 땅을 차지하여 왕이 되었다. 이런 까닭에 시라(尸羅).고례(高禮).남.. 2018. 9. 28.
기자(箕子) 단군조선을 이은 소위 기자조선의 시조. 제왕운기 권下 후조선기(後朝鮮紀) : 후조선을 시작한 분 기자이니/주 무왕 그 원년 기묘(기묘 봄)에/ 마명해 와 스스로 나라를 세우더라/무왕이 멀리서 인끈을 보내오니/예로써 갚으려 찾아가 뵈올 적에/홍범구주 인륜들을 물어오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1 고조선(古朝鮮) 왕검조선(王儉朝鮮) : 당나라 에는 이렇게 전한다. “고려(高麗)는 원래 고죽국(孤竹國; 지금의 해주海州)이었다. 주(周)나라에서 기자(箕子)를 봉해 줌으로 해서 조선(朝鮮)이라 했다. 한(漢)나라에서는 세 군(郡)으로 나누어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곧 현토(玄菟)ㆍ낙랑(樂浪)ㆍ대방(帶方. 북대방北帶方)이다.”에도 역시 이 말과 같다(한서漢書에는 진번眞蕃ㆍ임둔臨屯ㆍ낙랑樂浪ㆍ현토玄菟의 네 군郡으로 되어 있.. 2018. 9. 28.
준왕(準王) 기자조선 말왕. 기자의 41세손으로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마한을 세웠다. 제왕운기 권下 후조선기(後朝鮮紀) : (기자의) 41대 손자 되는 준왕님은/ 남에게 나라 잃고 백성마져 빼앗겼도다/ 928년이라는 오랜 세월 다스리니/ 기자의 남긴 유풍 찬연히 전했도다/ 나라 잃은 준왕 금마군(金馬郡)에 옮겨 앉아/도읍 이뤄 또 다시 임금이 되었도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1 마한(馬韓) : 위지(魏志)에 이렇게 말했다. “위만(魏滿)이 조선(朝鮮)을 공격하자 조선왕(朝鮮王) 준(準)은 궁인(宮人)과 좌우 사람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 서쪽 한(漢)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마한(馬韓)이라고 했다.” 또 견훤(甄萱)이 고려(高麗) 태조(太祖)에게 올린 글에 “옛적에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뒤를 이어 혁거세(赫居.. 2018. 9. 28.
위만(衛滿) 위만조선 시조. 연나라 도망민으로 조선에 들어와 준왕을 내쫓고 왕이 되었다. 사기 열전 한서 열전 제왕운기 권下 후조선기(後朝鮮紀) : 한나라 장수 위만은 연나라에서 태어나서/고제(高帝) 12년 병오년에/준을 내쫒고 그 나라 앗았도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1 위만조선(衛滿朝鮮) : 연왕(燕王) 노관(盧관)이 한(漢)을 배반하고 흉노(匈奴)에게 들어가니 연(燕)나라 사람 위만(衛滿)은 망명(亡命)해서 무리 1,000여 명을 모아 요동(遼東)의 요새지를 넘어 도망하여 패수(浿水)를 건넜다. 여기에서 진(秦)나라의 옛 빈 터전인 상하(上下)의 변방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차츰 진번(眞蕃)·조선(朝鮮)의 오랑캐들과 또 옛날에 연(燕)과 제(齊)에서 망명(亡命)해 온 자들을 자기에게 소속시켜 왕이 되어 왕검(王.. 2018. 9. 28.
견훤(甄萱) 후백제 건국시조(?~936). 재위 900~935년. 삼국사기 권 제11(신라본기 제11) 진성왕본기 : 6년(892) 완산(完山)의 도적 견훤(甄萱)이 그 주에 근거하여 스스로 후백제(後百濟)라 칭하였는데, 무주(武州) 동남쪽의 군과 현이 항복하여 소속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12(신라본기 제12) 효공왕본기 : 5년(901) ...가을 8월에 후백제 왕 견훤(甄萱)이 대야성을 공격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군사를 금성(錦城)의 남쪽으로 옮겨 연변(沿邊)의 마을을 약탈하고 돌아갔다. 11년(907) 봄과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았다. 일선군(一善郡) 이남의 10여 성이 모두 견훤에게 빼앗겼다. 14년(910) 견훤이 몸소 보병과 기병 3천 명을 이끌고 나주성(羅州城)을 에워싸고 열흘이 지나도록 풀지 않았다. 궁.. 2018. 9. 28.
아자개(阿慈介) 후백제 건국자인 견훤의 아버지로 신라인. 가은현 출신으로 농사를 짓다가 뒤에 장군이 되었다. 삼국사기 권제12(신라본기 제12) 경명왕 : 2년(918) ...가을 7월에 상주(尙州)의 도적 우두머리 아자개(阿玆盖)가 사자를 보내 태조에게 항복하였다. 삼국사기 권제50 (열전 제10) 견훤(甄萱) 열전 : 견훤은 상주(尙州) 가은현(加恩縣) 사람이다. 본래의 성은 이(李)씨였으나 후에 견(甄)으로 씨(氏)를 삼았다.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다가 후에 가문을 일으키어 장군이 되었다. 이보다 앞서 견훤이 태어나 어린 아기였을 때 아버지가 들에서 일하면 어머니가 식사를 날라다 주었는데, 아이를 나무 수풀 밑에 놓아두면 호랑이가 와서 젖을 먹였다. 시골에서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 2018. 9. 28.
량길(良吉) 삼국사기 열전 2018. 9. 28.
양길(良吉) ☞ 량길(良吉) 2018.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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