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6880 Songgwangsa Temple in Spring Suncheon, Jeollanamdo Province順天松廣寺 / 순천 송광사, Photo by Seyun OhSonggwangsa (Hangul: 송광사; Hanja: 松廣寺) translation: Spreading Pine Temple; alternates: Songgwang-sa, or Songgwang Sa, or Songkwangsa; also known as: Piney Expanse Monastery; originally: Gilsangsa), one of the three jewels of Seon Buddhism, is located in South Jeolla Province[4] on Mount Songgwangsan on the Korean Peninsula. Situated a.. 2018. 3. 21. Songgwangsa Temple Songgwangsa Temple, Suncheon, Jeollanamdo Province 順天松廣寺 / 순천 송광사 Photo by Seyun Oh Songgwangsa (Hangul: 송광사; Hanja: 松廣寺) translation: Spreading Pine Temple; alternates: Songgwang-sa, or Songgwang Sa, or Songkwangsa; also known as: Piney Expanse Monastery; originally: Gilsangsa), one of the three jewels of Seon Buddhism, is located in South Jeolla Province[4] on Mount Songgwangsan on the Korean .. 2018. 3. 20. 김유신의 정년퇴직과 삽질 삼국사기 권제6 신라본기 제6 문무왕(⽂武王) 上에는 이 왕 재위 4년(664) 봄 정월에 "김유신이 늙었음을 이유로 정년퇴직하겠다고 했지만, 윤허하지 아니하고 궤장을 하사했다(春正月 金庾信請老 不允 賜几杖)"고 한다. 궤장이란 등받이 의자인 안석(案席)과 지팡이라, 늙은 신하에게 내리는 최고의 하사품이다. 이를 하사받으면 그런 신하는 예외없이 대궐에 들어서면서 내리지 않아도 되고, 그 문을 들어설 때는 허리를 굽히지 아니해도 된다. 물론 이런 영광이 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공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궤장은 곧 은퇴의 의미이기도 했으니, 세대교체를 위해 이제 그만 골방 늙은이로 물러나 있으라는 완곡한 뜻이기도 하다. 동아시아 왕조시대에 정년퇴직은 70세였다. 이는 이미 《예기(禮記)》에서 규정한 것으로,.. 2018. 3. 20. 김유신론 (번외판) 70세에 사표 던진 김유신, 맘대로 죽을 수도 없었다 《삼국사기》 신라 효소왕본기를 보면 원년(692) 8월에 "대아찬 원선(元宣)을 중시로 삼았다(以大阿飡元宣爲中侍)로 삼았다"고 하고, 그 3년 뒤인 같은 왕 4년(695) 겨울 10월에는 "중시 원선이 늙어서 관직에서 물러났다(中侍元宣退老)"고 한다. 이 원선은 김원선(金元宣)이니,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그 계보가 보이지 않으나, 《화랑세기》에 의하면 김흠순(金欽純)의 아홉 아들 중 여섯째다. 그가 언제 출생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출생 시기를 대략 짐작할 근거는 있다. 그의 아버지 김흠순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생몰년이 없지만, 김유신 동생이라 했으니, 형이 태어난 595년 이후 출생해야 한다. 《화랑세기》에는 그가 599년, 건복(建福) 16년이자 진평왕 21년에 태어나 8.. 2018. 3. 20. 김춘추金春秋 603년 ~ 661년, 재위 654∼661년. 진지왕 손자이면서 아버지는 이찬(伊飡) 용수(龍樹)인데,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작은아버지 용춘(龍春)에게 입적됐다. 어머니는 진평왕 딸인 천명부인(天明夫人)이다. 첫 부인 보라(寶羅)에게서 딸 고타소(古陀炤)를 두었으며, 이어 625년 무렵 김유신의 누이 문희를 두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여 문무왕 김법민 이하 자식들을 둔다. 김유신의 절대적인 후원 아래 세력을 키운 그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끝으로 성골이 씨가 마르자, 진골로는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풍월주 출신인 그는 즉위 전에는 외교 분야에서 주로 활약하면서 대중국 외교전을 수행했으며, 즉위한 뒤에는 당의 지원을 이끌어내숙적 백제를 멸망시킨다. 곧이어 고구려 정벌에도 나섰으나, 실패하고는 사망한다. 舊唐書.. 2018. 3. 20.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신라 제29대 왕인 김춘추(金春秋)가 죽어 얻은 묘호(廟號)와 시호(諡號)를 합친 이름. 태종이 묘호이고, 무열왕이 시호다. 그의 생애 정리는 '김춘추(金春秋)' 참조.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태종 무열왕(太宗武烈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춘추(春秋)이고 진지왕의 아들 이찬 용춘(龍春)의 아들이다. 어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진평왕의 딸이고, 왕비 문명부인(文明夫人)은 각찬(角) 서현의 딸이다. 왕은 용모가 영특하고 늠름하여 어려서부터 세상을 다스릴 뜻이 있었다. 진덕을 섬겨 지위는 이찬을 역임하였고, 당나라 황제가 특진(特進)의 관작을 제수하였다. 진덕이 죽자 여러 신하들이 이찬 알천(閼川)에게 섭정을 청하였으나, 알천이 굳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저는 늙고 이렇다 할 덕.. 2018. 3. 20. 김흠순(金欽純) 599~681년. 일통삼한 전쟁기에 맹활약한 신라 장군이다. 김서현과 만명부인 소생이며, 김유신에게는 동부동모 동생이면서, 태종무열왕비가 된 문명(문희)의 오빠다. 풍월주 출신이다. '欽春(흠춘)'이라고도 쓴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7년(660) ...여름 5월..21일에 왕이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에서 정방을 맞이하였다. 정방이 법민에게 말하였다. “나는 7월 10일에 백제 남쪽에 이르러 대왕의 군대와 만나 의자(義慈)의 도성을 깨뜨리고자 한다.” 법민이 말하였다. “대왕은 지금 대군(大軍)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장군께서 왔다는 것을 들으면 필시 이부자리에서 새벽 진지를 잡숫고[食] 오실 것입니다.” 정방이 기뻐하며 법민.. 2018. 3. 20. 김흠춘(金欽春) 599~681년. 일통삼한 전쟁기에 맹활약한 신라 장군이다. 김서현과 만명부인 소생이며, 김유신에게는 동부동모 동생이면서, 태종무열왕비가 된 문명(문희)의 오빠다. 풍월주 출신이다. '欽純(흠순)'이라고도 쓴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7년(660)...여름 5월..21일에 왕이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 병선 100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에서 정방을 맞았다. 정방이 법민에게 말했다. “나는 7월 10일에 백제 남쪽에 이르러 대왕의 군대와 만나 의자(義慈)의 도성을 깨뜨리고자 한다”. 법민이 말했다. “대왕은 지금 대군(大軍)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장군께서 왔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필시 이부자리에서 새벽 진지를 잡숫다가 오실 것입니다”. 정방이 기뻐하며 법민을 돌려보.. 2018. 3. 20. 반굴(盤屈) ☞김반굴(金盤屈) 2018. 3. 20. 김반굴(金盤屈) 일통삼한기 전쟁에서 맹활약한 신라 장군 김흠순(김흠춘)의 아들이면서 김유신에게는 조카이자, 사위다.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군에 밀리자, 신라군 사기 진작을 위해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다 전사했다. 그의 아들 령윤 역시 보덕성을 근거지로 훗날 신라에 반기를 든 고구려 유민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장렬히 산화했다. 삼국사기 권 제5(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 7년(660) ..가을 7월 9일에 유신 등이 황산(黃山) 벌판으로 진군하니, 백제 장군 계백(伯)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먼저 험한 곳을 차지하여 세 군데에 진영을 설치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유신 등은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네 번을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고 사졸들은 힘이 다빠지게 되었다. 장군 흠순이 아들 반굴(盤屈)에게 말하였.. 2018. 3. 20. 영윤(令胤) ☞김령윤(金令胤) 2018. 3. 20. 김령윤(金令胤) 신라가 백제를 멸하는 결정적인 단초가 된 황산벌 전투에서 산화한 신라 군인 반굴의 아들이며 대장군 김흠춘(김흠순)의 손자다. 신문왕 때 고구려 남은 세력 실복이 보덕성을 근거로 삼아 반란을 일으키자, 그 진압을 위해 황금서당(黃衿誓幢) 보기감(步騎監)으로 출전해 장렬히 전사했다. 삼국사기 권 제47(열전 제7) 김령윤 열전 : 김령윤(金令胤)은 사량(沙梁) 사람으로 급찬(級飡) 반굴(盤屈)의 아들이다. 할아버지인 각간 흠춘(欽春)은 진평왕 때 화랑이 되었는데, 어짐이 깊고 신뢰가 두터워 뭇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장년이 되어 문무대왕이 그를 올려 총재(冢宰)로 삼았다. 윗사람을 충으로 섬기고 백성에게는 관대하여 나라 사람이 모두 어진 재상이라 했다. 태종대왕 7년 경신(660)에 당 고종이 대장군 소정방에.. 2018. 3. 20. 부례랑(夫禮郞) 판본에 따라 실례랑(失禮郞)이라고도 하니, 글자 모양이 비슷한 데 따른 혼동이다. 신라 신문왕 때 화랑으로 문객 1천 명을 거느렸다. 북쪽 금란(金蘭)으로 갔다가 인근 적국 사람들한테 사로잡혀 목축에 사역됐지만, 신이한 행적으로 돌아왔으니, 이 일을 기념해 만파시적을 만만파파식적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삼국유사 제2 기이 2 만파식적 : 왕이 감은사에서 묵고 17일에 기림사(祗林寺)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太子) 리공(理恭·효소대왕孝昭大王)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와서 하례하고는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었다. "이 옥대(玉帶)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왕이 말했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이 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 보십시오... 2018. 3. 20. 실례랑(失禮郞) 신라 신문왕 때 화랑인데, 판본에 따라 부례랑(夫禮郞)이라고도 하니, 夫와 失이 글자 모양이 비슷한 데 따른 혼동이다. 이 무렵 신라 지배층은 그 자체 의미를 지닌 이름을 사용했으므로 失禮郞이 실상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자세한 행적은 부례랑을 보라. 삼국유사 제2 기이 2 만파식적 : (신문)왕이 감은사에서 묵고 17일에 기림사(祗林寺) 서쪽 시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을 먹었다. 태자(太子) 리공(理恭·효소대왕孝昭大王)이 대궐을 지키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말을 달려와서 하례하고는 천천히 살펴보고 아뢰었다. "이 옥대(玉帶)의 여러 쪽은 모두 진짜 용입니다." 왕이 말했다. "네가 어찌 그것을 아느냐." "이 쪽 하나를 떼어 물에 넣어 보십시오." 이에 옥대 왼편 둘째 쪽을 떼어 시냇물에 넣.. 2018. 3. 20. 민장(敏藏) 신라인. 생몰년 미상. 각간을 역임했으며 그의 이름을 딴 민장사(敏藏寺)라는 절을 창건했다는 사실만 확인된다. 주된 활동시기는 경덕왕 때가 아닌가 하지만 확실치 않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민장사(敏藏寺) : 우금리(禺金里)에 사는 가난한 여자 보개(寶開)에게 장춘(長春)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바다의 장사꾼을 따라 나가더니 오래 되어도 소식이 없자 그의 어머니가 민장사(敏藏寺·이 절은 곧 민장각간敏藏角干이 자기 집을 내놓아서 절을 만든 것이다) 관음보살 앞으로 가서 7일 동안 기도했더니 장춘이 금세 돌아왔다. 2018. 3. 20. 구제역이 작살 낸 고향 소 구제역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2011년 2월 4일 설날 무렵 고향 풍경 일단을 읊조린 과거 블로그 글인데, 이 시대를 증언하는 한 단면이라 생각해 전재한다. 며느리, 손자와 함께 왔다는 말에 전을 부치던 老母는 반가움과 더불어 떠들지 말고 빨리 방에 들어와 조용히 있으란다. 그만큼 고향은 뒤숭숭했다. 해마다 이맘쯤이면 동네 서원 앞마당에는 외부에서 온 차량이 빼곡해야 하지만, 올해는 김천역에서 우리 가족을 실어온 동생 차밖에 없다.언제부턴가 고향 명절이 명절답지 않다고 여겼거니와, 올해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한 까닭은 바로 소 전염병인 구제역 때문이었다. 듣자니 소를 키우는 옆집, 뒷집에는 아예 자식들이 오지 않았단다. 동네에서도 제 아무리 이 동네 출신이라도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 했다.그래서일까? 새.. 2018. 3. 20. Tour Eiffel Tour Eiffel or Eiffel Tower, Paris, France 2018. 3. 19. Korean Traditional Shoes 2018. 3. 19. 王煜:汉代镶玉漆棺及相关问题讨论 王煜:汉代镶玉漆棺及相关问题讨论2018-03-19 王煜 社科院考古所中国考古网 http://mp.weixin.qq.com/s/t2EPPz9xeP2RbpAy0LvIVw 2018. 3. 19. 번데기를 먹는 인간들 우리 집은 어린 시절에 누에를 쳤다. 이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꼭 이맘쯤이라, 뽕에 새순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누에 농사를 시작한다. 누에를 치는 방이라고 그 좁은 산골 마을에 따로 있을 수는 없으니, 일상 주거공간이 곧 누에실이라, 우리가 자는 방엔 시렁을 쳐서 칸을 만들고, 그 칸마다 누에를 슨다. 누에 치는 방은 항상 일정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당연히 온실이어야 한다. 그래서 언제나 군불을 때야 한다. 그런 뜨끈한 방에서 누에랑 우리는 기거를 함께 한다. 누에가 자라는 속도는 우사인 볼트보다 빠른 광년光年이라, 이것들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엄청 쳐먹기 시작한다. 쉴새없이 뽕을 따다 날라야 한다. 젤로 곤혹스러운 때가, 누에가 한창 자라기 시작하는 무렵이라,.. 2018. 3. 19. 김대문(金大問) 생몰년 미상. 신라인.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에 임명되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화랑 집단 우두머리인 풍월주를 배출했다. 아버지 오기는 27세 풍월주이며, 할아버지 예원은 20세, 증조부 보리는 12세, 고조부 이화랑은 4세, 5대조 위화랑은 초대 풍월주였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김대문 열전 : 김대문(金大問)은 본래 신라의 귀문(貴門)의 자제로서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으며 전기 몇 권을 지었다. 그가 쓴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記),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가 아직도 남아 있다. 삼국사기 권제1(신라본기 제1) 남해차차웅 :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이 왕위에 올랐다. 해동고승전 권 제1 법운(法雲) 전 : (진흥왕) 37년(576)에는 처음으로.. 2018. 3. 19. 이전 1 ··· 749 750 751 752 753 754 755 ··· 80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