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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이 두보에게 한시, 계절의 노래(144) 장난삼아 두보에게 주다(戱贈杜甫)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반과산 꼭대기에서두보를 만나는데 머리에는 삿갓 쓰고태양은 중천이네 지난 번 이별 후로너무 말랐네 그려 이전부터 시 짓느라고심했기 때문이오. 飯顆山頭逢杜甫, 頂戴笠子日卓午. 借問別來太瘦生, 總爲從前作詩苦. 중국 시사(詩史)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이백과 두보다. 중국문학사에서 이백은 시선(詩仙),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송나라 이후로 이·두(李·杜) 우열을 두고 수많은 논란이 벌어졌고, 그 논란은 지금까지도 지속 중이다. 어쩌면 시작과 끝,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 띠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성당 시대에 두 사람 관계는 어땠을까? 언뜻 보기에 시풍이 다른 만큼 서로 적대적인 라이벌이었을 듯 싶지만 실.. 2018. 8. 16.
늦여름 더위 한시, 계절의 노래(143) 늦여름 즉흥시(季夏卽事) 송 조보지(晁補之) / 김영문 選譯評 붉은 접시꽃 비를 맞아꽃대 길게 자라고 푸른 대추 바람 없어도가지 무겁게 누르네 주춧돌 축축하니사람도 땀에 젖고 찌는 숲 속 매미들뜨겁게 울어대네 紅葵有雨長穗, 靑棗無風壓枝. 濕礎人沾汗際, 蒸林蟬烈號時. 늦여름 찌는 듯한 더위를 읊은 6언절구다. 이 시만 읽고 있어도 온몸에 곧바로 땀이 솟아오를 듯하다. 무덥고 습기 찬 늦더위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대학에서 중국문학사를 강의할 때 이 시의 작자가 활약하는 북송 시기에 이르면 매우 곤혹스러웠다. 이 작자의 우리말 발음 때문이다. ‘조보지(晁補之)’는 황정견(黃庭堅), 장뢰(張耒), 진관(秦觀)과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에 속하므로 언급하지 않을 수도 없다. 소문사.. 2018. 8. 16.
타들어가는 대지 한시, 계절의 노래(142) 정원 연간 가뭄(貞元旱歲) 당 마이(馬異) / 김영문 選譯評 뜨거운 땅 염천 도성한 치 풀도 안 남았고 온갖 시내 물이 끓어물고기를 삶는구나 만물 불타 스러져도구해주는 사람 없어 옛 『상서(尙書)』 세 편에눈물을 뿌리노라 赤地炎都寸草無, 百川水沸煮蟲魚. 定應燋爛無人救, 淚落三篇古尙書. 정원(貞元)은 당나라 덕종(德宗)시대 연호다. 정원 19년(803년)에 큰 가뭄이 들어 곡식이 모두 말라죽었다. 이 시는 바로 당시의 참상을 보여준다. 문학적 과장은 있지만 강물이 끓어 물고기가 삶길 정도라 했으니 얼마나 극심한 가뭄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마지막 부분 『상서』에 눈물을 뿌린다는 구절에도 그 옛날 유명한 가뭄과 기우제에 관한 고사(故事)가 포함되어 있다. 상(商)나라 탕왕(湯王)은.. 2018. 8. 16.
구슬처럼 튀는 빗방울 한시, 계절의 노래(141) 6월 27일 망호루에서 술 취해 쓰다. 다섯 절구(六月二十七日望湖樓醉書五絶) 중 첫째 송 소식 / 김영문 選譯評 먹장구름 뒤집히나산도 아직 못 가린 때 희뿌연 비 구슬처럼나룻배로 튀어드네 땅 휩쓸며 바람 불어갑자기 비 흩으니 망호루 아래 저 호수는하늘인양 펼쳐졌네. 黑雲飜墨未遮山, 白雨跳珠亂入船. 卷地風來忽吹散, 望湖樓下水如天.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말이 떠오른다. 아무 꾸밈이 없고 자연스럽다. 소동파가 여름날 서호(西湖) 가 망호루에서 술을 마시다 갑자기 몰려온 먹장구름과 소나기를 보고 흥에 겨워 일필휘지로 이 시를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묘사 대상을 구름, 비, 바람, 하늘로 금방금방 옮기면서도 눈앞에 펼쳐지는 특징을 너무나 생생하게 잡아냈다. .. 2018. 8. 16.
현좌충신 양장용졸, 김대문의 이데올로기와 김부식의 이데올로기 "이는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니, 20세기에 활발히 출간되고 있는 우리나라 각 교사校史라든가 지방지를 보면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 항목이 '우리 학교(혹은 고장)를 빛낸 인물들'이라는 곳인데, 이것만 보면 우리는 마치 그 학교, 그 고장 출신자 전체가 모두 독립투사이며 의병장이며 뛰어난 학자인 줄 착각하게 되는 착시현상에 견줄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집단 전체와 그 집단을 구성하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그 학교, 그 고장을 빛냋 인물이 될 수는 결코 없다. 개중에는 일제에 빌붙어 나라와 동포를 팔아먹은 놈이 있는가 하면 협잡꾼도 있을 것이고 천하의 난봉꾼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혹 김대문(金大問)이 현좌충신(賢佐忠臣) 양장용졸(良將勇卒)은 모두 화랑도 출신이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화랑세기》가 그런 인물.. 2018. 8. 15.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1) ‘怪物(괴물)’의 출현 아래 원고는 2010년 11월 6일 가브리엘관 109호에서 한국고대사탐구학회가 '필사본 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제로 개최한 그해 추계학술대회에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라는 제목을 발표한 글이며, 그해 이 학회 기관지인 《한국고대사탐구》 제6집에는 '‘世紀의 발견’, 『花郞世紀』'라는 제목으로 투고됐다. 이번에 순차로 연재하는 글은 개중에서도 학회 발표문을 토대로 하되, 오타를 바로잡거나 한자어를 한글병용으로 하는 수준에서 손봤음을 밝힌다. 1. ‘괴물怪物’의 출현 역사는 두 개의 축을 갖는다. 둘 중 하나만 무너져도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소설’이 된다. 그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이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인간과 자연이 얽어내는 파노라마다. 시간 혹은 공간을 무시한 역사 구축은 이미 .. 2018. 8. 14.
내가 기억하는 역대 국립박물관장 - 한병삼 아래는 2018년 6월에 발간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식지 《박물관신문》 562호 기고 전문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내가 만난 박물관인들을 이런 식으로나마 정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리 붙여봤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단발성이라 아쉽기만 하다. 내가 기억하는 역대 관장 - 한병삼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장 역대 국립박물관장 혹은 국립중앙박물관장 중에 무게감만으로는 아마 한병삼 선생을 최고로 치지 않나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지만, 이런 그와 나는 이렇다 할 인연이 실은 별로 없다. 그도 그럴 것이 1998년 12월, 정기 인사에서 내가 사회부를 떠나 문화부에 안착해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는 관장직에서 물러난 지 한참이나 지난 뒤였거니와 그에 따라 문화재위원회라든가 발굴현장에서 가끔 마주치.. 2018. 8. 14.
경험있는 기관이 대가야 왕릉을 파야 한다? 근자 문화재 소식을 훑어보니, 대구경북 지역에 기반을 둔 어떤 언론에서 고령 지산동 대가야고분 발굴업체 선정이 잘못되었음을 질타하는 보도가 있었음을 보았다. 무슨 내용인가 본즉슨, 지역에 대가야고분 발굴경험이 많은 발굴조사 전문기관이 많은데, 그런 경험이 전연 없는 타지 발굴업체가 조사기관으로 선정되었느냐는 비판이었다. 〈대가야고분 '잘못된 발굴입찰' 한 목소리〉라는 제하 이 보도에 의하면, 경북 고령군이 지산동 고분군을 구성하는 대가야시대 무덤 중에서도 604호분이라고 명명한 대가야 후기 왕릉급 고분을 발굴키로 하고, 그 조사기관을 최근 공개입찰한 결과, 공개입찰이라는 제도 함정을 뚫고서 "왕릉급 고분 발굴 경험이 없는 외지 기관"이 선정됐다는 것이다. 보도는 나아가 "왕릉급 고분발굴 경험이 많은 다수.. 2018. 8. 14.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고대 일본의 도교사원 도관(道觀) 《일본서기》 제명천황(斉明天皇) 2년 조 말미에는 그 발생 날짜를 특정하기는 힘들어 '시세(是歲)'라는 표지 아래 다음과 같은 비조강본궁(飛鳥岡本宮) 터 확정과 그 궁궐 완성한 사건을 기술했다. 飛鳥岡本更定宮地。時、高麗・百濟・新羅並遣使進調、爲張紺幕於此宮地而饗焉。遂起宮室、天皇乃遷、號曰後飛鳥岡本宮。於田身嶺、冠以周垣(田身山名、此云大務)、復於嶺上兩槻樹邊起觀、號爲兩槻宮、亦曰天宮。 飛鳥의 岡本에다가 궁을 세울 자리를 다시 정했다. 이때 高麗・百濟・新羅가 모두 사신을 보내 調를 받치자 이들을 위해 이 궁 자리에다가 감색紺色 장막을 치고는 그들에게 향연을 베풀었다. 나중에 궁실이 완성되자 天皇이 그곳으로 옮기고는 이름하기를 後飛鳥岡本宮이라 했다。전신령田身嶺에다 그 봉우리를 빙 두른 담을 쳐서 마치 갓처럼 만들고(전신田.. 2018. 8. 13.
김유신론(7) 보안사령관에 수방사령관을 겸한 절대권력자 서기 654년 음력 3월, 신라 제28대 왕 김승만(金勝曼)이 재위 8년 만에 죽으니, 이를 흔히 진덕왕(眞德王)이라 한다. 《삼국사기》 그의 본기에서는 그가 죽자 "시호를 진덕(眞德)이라 하고 사량부(沙梁部)에 장사 지냈다. 당 고종이 이를 듣고는 영광문(永光門)에서 애도를 표하고 태상승 장문수(張文收)를 사신으로 삼아 부절을 가지고 조문케 하고, 진덕왕에게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추증하고 부의로 비단 3백 필을 내려주었다"고 하거니와, 이제 문제는 차기 대권이 누구한테 가느냐였다. 그의 죽음이 실로 묘한 까닭은 죽음에 대비한 후사 문제를 전연 정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대목이 수상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곡절을 따지면 그럴 만한 사정이 없었던 것도 아니니, 승만의 죽음으로 신라에는 이제 신분.. 2018. 8. 12.
이화여대박물관 뿌리는 상허 이태준? 내가 회고록 읽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런 글들을 훑다보면, 이런저런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거니와, 근자에 한번 훑은 국어학자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1896~1989) 자서전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역시 그런 회로록 중 하나다. 내가 읽은 판본은 도서출판 선영사에서 2001년 11월 25일 1쇄가 나온 2016년 4월 20일 간행 그 재판이어니와, 그 원판은 이 책에 붙은 저자 서문에 의하면, 1975년 11월 8일에 시작해 이듬해 1월 26일까지 '나의 이력서'라는 제목 아래 《한국일보》에 연재한 글을 원바탕으로 삼고, 이후 "약간의 보충과 오기(誤記)가 뚜렷한 개소(個所)를 정정(訂正)하여" 1977년 한국능력개발사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생몰년에서 보듯이 94세로 장수한 일석의 그 .. 2018. 8. 12.
궁주宮主 원주院主 전주殿主 《화랑세기》가 공개되었을 무렵, 저들 용어가 다시금 세간, 엄밀히는 고대사학계에 오르내렸다. 이들 용어는 《화랑세기》 곳곳에 등장하는 까닭이다. 이들은 실은 고려사를 무대로 하는 곳에 빈출한다. 《삼국사기》에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고, 《삼국유사》에는 딱 두 군데만 등장하는 것으로 안다. 나아가 《해동고승전》에도 한군데 보이거니와, 그 등장 맥락이 《삼국유사》의 그것과 같다고 기억한다. 그런 까닭에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이것이 고려시대 봉작인데, 시대를 거꾸러 거슬러 올라가 신라시대에 붙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제법 많았다. 그런 의심이 이런 용어로 넘쳐나는 《화랑세기》가 출현하면서, 텍스트 자체가 위작이라는 의심으로 번지기도 했다. 내 기억에 이들이 대표하는 용어 문제로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여 .. 2018. 8. 12.
《텍스트론》 편찬연대 선후가 반드시 계승 관계를 말하지는 않는다 같거나 비슷한 내용 혹은 같거나 비슷한 사건을 전하는 기록물 A와 B가 있을 때, 역사학도를 비롯한 텍스트 연구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그 편찬 선후를 배열하고선 그것을 계승 관계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A가 먼저 나온 기록물이라면 덮어놓고 B는 A를 베꼈다고 본다. 하지만 이는 안이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A와 B가 그 선대에 존재하는 각기 다른 C와 D를 각각 참조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가 사금갑 이야기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증거에 의하는 한, 현존 문헌 중에 이 이야기를 수록한 가장 이른 시기 문헌은 《삼국유사》 기이편이다. 이후 이 이야기는 각종 후대 문헌에 빈번히 등장한다. 한데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후 문헌들이 모조리 《삼국유사》를 참조한 것으로 간주한.. 2018. 8. 12.
서원이나 향교엔 왜 은행나무가 많을까? 지금의 서울 성균관대학교는 그 이름을 성균관에서 따왔다. 그런 까닭에 그 역사 전통 또한 조선시대 국립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에서 구하기도 하거니와, 하지만 이는 역사를 늘리기 위한 엿가락 조작의 결과이니, 이런 논리대로라면, 그런 국립대학이 모름지기 조선시대이겠는가? 고려시대에도 그런 학교가 있었고, 신라시대에도 그 원조로써 국학(國學)이 있었으며, 그것을 더욱 거슬러가면 고구려 소수림왕 때 국학으로 역시 뿌리를 구할 수 있거니와, 하지만 뿐이랴? 그 뿌리 역시 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으로 쳐들어가니, 성균관은 공자를 시조로 삼거니와, 공자학단 그 자체가 곧 성균관인 셈이다. 지금은 삼성그룹으로 재단이 넘어간 성균관대학은 그 직접 뿌리가 해방 직후인 1946년에 있으니, 이때 저명한 유학자 출신 꼬장꼬.. 2018. 8. 11.
백일홍 품에 안긴 병산서원 올해는 아니나, 지금 안동 병산서원은 이 모습에 얼추 가까우리라. 백일홍 배롱나무가 꽃을 흐드러지게 만발하는 시즌이 이 무렵이니 말이다. 3년 전이다. 그때 무슨 인연으로 왜 이곳을 행차했는지 내가 자세한 기억은 없다. 아마 그 무렵 이를 포함한 전국 주요 서원을 엮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한다 하고, 그에 이 병산서원이 포함되어, 내가 그 무렵 이들 후보지 서원들을 찾기 시작할 때이니, 이 일환이 아니었던가 싶다. 내가 배롱을 만나러 간 것은 아니로대, 마침 그 시즌이었다는 기억만 남았다. 이 배롱나무, 서원이나 향교 같은 마당에서는 비교적 드물지 않게 보는 나무지만, 이곳 병산서원의 그 만발한 모습은 무척이나 인상으로 뇌리에 각인한다. 이 병산서원은 서원 그 자체는 물론이려니와 그 앞 산과 계곡을 .. 2018. 8. 11.
달빛은 차가운데 인간세상 소는 왜 헐떡이는지 한시, 계절의 노래(140) 여름 밤 꿈속에서 짓다(夏夜夢中作) 송 주송(朱松) / 김영문 選譯評 만경창파 은하수에태극 배 띄워놓고 누워서 피리 불며출렁출렁 흘러가네 달나라 누각은뼛속까지 추운데 인간 세상에 헐떡이는 소진실로 못 믿겠네 萬頃銀河太極舟, 臥吹橫笛漾中流. 瓊樓玉宇生寒骨, 不信人間有喘牛. 전설에 의하면 경루(瓊樓)는 달나라 광한궁(廣寒宮)에 있다는 아름다운 누각이다. 천우(喘牛)는 천월오우(喘月吳牛)의 줄임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편에 의하면 중국 남쪽 오(吳) 땅의 소는 더위에 지쳐서 밤에 뜬 달을 보고도 해인줄 알고 숨을 헐떡인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해는 뜨거움을 상징하고 달은 차가움을 상징한다. 달나라 궁전을 광한(廣寒)이라고 명명한 이유도 달나라가 춥다는 인식과 관련이.. 2018. 8. 11.
귀뚜라미랑 보내는 밤 한시, 계절의 노래(139) 귀뚜라미[蛩] [당] 이중李中 / 김영문 選譯評 잔디 뜰에 달빛 차가워 밤은 이미 이슥한데 온갖 벌레 소리 밖에서 맑은 소리 들려오네 시흥詩興 일어 고심에 차 잠도 오지 않는지라 부끄럽지만 계단 앞에서 너를 짝해 읊어보네 月冷莎庭夜已深, 百蟲聲外有淸音. 詩情正苦無眠處, 愧爾階前相伴吟. 김광균은 추일서정秋日抒情에서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이 없어” 라고 읊었고, 박두진은 「숲」에서 “찬바람에 우수수수 누렁 나뭇잎들이 떨어지며,/ 달밤에, 귀뚜라미며 풀벌레들이 울곤 하면,/ 숲은 쓸쓸하여, 숲은, 한숨을 짓곤 짓곤 하였다” 라고 읊었다. 이뿐 아니라 가을과 풀벌레를 연결하여 묘사한 문학작품은 너무나 많다. 우리의 의식 속에도 가을의 상.. 2018. 8. 11.
화장실을 장식한 볼로냐의 석조문화재 Museo Civico Archeologico..무제오 치비코 아르케올로지코라고 읽는다. 옮기면 시립고고학박물관이다. 그렇다면 어느 시가 운영하는 곳인가? 그 명판 아래에 보면 Comune di Bologna 코뮤네 디 볼로냐라고 했으니, 볼로냐 자치시라는 뜻이거니와, 이탈리아 볼로냐 시립 고고학 박물관이다. 이곳을 정하고 찾지는 아니했다. 이런저런 곳 둘러보고는 이제 볼로냐가 물릴 무렵, 다음 행선지로 옮기는 길에 시간이 좀 남아 어슬렁거리다간 우연히 저 간판 마주하고서는 들어갔다. 마침 내부 공사 중이라고 미안해 하면서, 이집트 콜렉션을 보겠느냐 한다. 유서 깊은 유럽 웬만한 박물관이라면, 이런 이집트 콜렉션은 거개 다 있다. 이들에게 이집트 컬렉션은 그 역사 전통의 유구함을 증언하는 필수품 같아, .. 2018. 8. 9.
농촌의 일상 한시, 계절의 노래(138) 시골 풍경 네 수(村景四首) 중 둘째 여름(夏) 송 진저(陳著) / 김영문 選譯評 시골집에선 모종에 물대러두레박질 계속하고 상점에선 물을 길어미숫가루 만드네 어린 아이 맑은 시내에서한낮에 목욕하고 늙은 나무꾼 푸른 숲에서시원하게 쉬고 있네 田舍灌苗戽水, 店家汲水施漿. 稚子淸溪浴午, 老樵綠樹休凉. 옛날 시골 마을의 여름 일상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했다. 관묘(灌苗)는 곡식이나 채소 모종에 물을 대는 것, 호수(戽水)는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것이다. 장(漿)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음료수다. 간장, 미음, 미숫가루, 술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시장(施漿)은 상점에서 다양한 음료수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시는 6언 4구로 되어 있으므로 형식상 6언절구에 속한다... 2018. 8. 8.
가을문턱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137) 입추立秋 [송宋] 방저方翥 / 김영문 選譯評 별빛이 달빛처럼 넓은 하늘 비추는데 시름 겨운 잠이 깨니 밤은 자정 향해 가네 남은 더위가 침상을 괴롭혀도 무방하리 창너머 우는 나뭇잎 서풍에 흔들리니 星光如月映長空, 驚起愁眠夜向中. 殘暑不妨欺枕簟, 隔窗鳴葉是西風. 입추는 24절기 중 13번째에 자리하므로 양의 계절이 음의 계절로 바뀌는 첫 번째 절기에 해당한다. 아직 처서處暑까지는 늙은 더위老炎의 끝이 돗자리를 뜨겁게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완연한 가을 기운을 풍긴다. 하늘은 점차 맑아져 한밤중 별들은 달빛처럼 찬란하게 우주만물을 비추고 창밖에는 어느덧 요란한 가을벌레 소리가 시름 많은 인간의 심사를 어지럽힌다. 서풍西風은 가을바람을 가리킨다. 금풍金風이라고도 한다. .. 2018. 8. 8.
매미 울어대는 계곡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136) 저녁에 시내에서 목욕하다(晚浴溪上) 송 왕염(王炎) / 김영문 選譯評 산발치엔 풀 우거져나무꾼 길 덮였고 시내엔 물이 줄어돌다리 높아졌네 강 위의 바람 이슬독점하는 사람 없고 버들 고목 검은 매미곳곳에서 울어대네 山脚草深樵徑沒, 溪頭水落石梁高. 一川風露無人占, 古柳玄蟬處處號. 시인은 산발치 맑은 시내에 몸을 담그고 있다. 무더운 여름 저녁 시원한 시냇물에 몸을 담그면 온몸으로 스며드는 청량감에 내 몸에 쌓인 열기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더운 여름에 차가운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죽음과 같을 것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대개 샤워로 몸의 열기를 식히지만 옛날 시골에서는 등목으로 여름을 견뎠다. 뜨거운 땡볕에서 밭일을 하다 돌아와 방금 길어낸 우물물로 등목을 하면 뼛속까지 냉.. 2018.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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