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69 [김태식이 말하는 김태식] (3) 신뢰 딱 하나 보고 달렸다 물론 내 이름으로 나간 모든 기사, 혹은 내가 내보낸 모든 기사가 저에 해당한다 자신할 수는 없으며 개중에선 부끄러운 기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분야에 어느 정도 사명감이 생기고 나서는 내 이름단 모든 기사, 내가 내보낸 그 어떤 기사도 오직 저 믿음 하나는 확고했으니 적어도 내 기사에 관한 한 나는 사초史草를 쓴다는 자세로 임했다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 기사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고 논문 같다는 말도 들었으며 장황하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 기사가 당대를 증언하는 제일급 사초여야 한다는 생각 단 한 번도 저버린 적 없고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흘러도 김태식이 쓴 기사는 믿을 수 있다는 그 일념 하나로 달렸다. 내 기사는 그 어떤 학술논문에서도 참고문헌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 2023. 10. 5. 정년퇴직을 해고합니다, 저는 떠납니다 그 까닭을 저도 모르겠으나 저를 계속 압박한 두어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저는 정년퇴직이 죽어라 싫었습니다. 굳이 이를 자연사라 할지 모르나 제 죽을 날을 미리 점지하고는 그날 죽었다는 선덕여왕이 내가 아닐진대 그 끝을 굳이 제가 기다릴 이유도 없었고 그래서 그 순간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정년퇴직을 해고하고 싶었습니다. 둘째 저는 기자로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칫 이 말이 그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다른 기자분들께는 누가 될지 모르나 이 기자라는 굴레도 제가 스스로 해고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 두 가지를 동시에 해고함으로써 다른 국면에 들어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떠납니다. 첫째 정년을 앞질러 미리 그 목을 쳤습니다. 둘째 기자를 잘라 그 목을 쳤습니다. 아마 예정대로라면 저 김.. 2023. 10. 5. 열암곡 부처, 사진 한 장이 만든 신화 5㎝의 기적이네 하는 말이며, 느닷없이 조계종이 찡겨들어 이리해라 저리해라 하는 통의 사태 전개는 경주 남산 열암곡 불상을 둘러싼 일종의 신화라 할 만한 현상을 낳았으니, 저 마애불이 뭐 대단한 보물인양 되는양 하지만, 미안하나, 그 엎드린 불상 고만고만해서 실상 현장을 가서 살피면 같은 남산 일대에 포진하는 다른 불상, 혹은 국립경주박물관이며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데 전시하는 불상들에 견주어 이렇다 할 만한 비교우위는 전연 없는 평범 부처다. 저 분 세우고 바라보면 저 모습이라, 오랜기간 엎드려 있는 통에 보존 상태는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보다시피 짜리몽땅 부처라 이른바 종래 압도하는 고미술 해석이 자주 동원하는 묘사들로 견주건대 비율도 안 맞고, 어째 펭수 같은 느낌을 준다. 신앙대상으로야 어떨지 모르.. 2023. 10. 4. 발견 반년 뒤에 탄생한 '5㎝의 기적' 열암곡 엎드려 불상 경주 남산 열암곡 기슭에서 통일신라시대 엎드려 마애불이 발견됐다고 공포되기는 2007년 5월 30이라, 이날 문화재청은 이런 사실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으니, 이를 시발로 우리가 아는 열암곡 불상 사태가 벌어지는 빌미를 마련한다. 물론 그 사태 주동자는 조계종이다. 왜 이에 조계종이 끼어들어 이리 복잡하게 사태가 전개되게 되었는지는 추후 다른 기회를 마련해 보겠다. 이 불상 역사를 이야기할 때 첫째 발견, 둘째 사진 한 장, 셋째 '5㎝의 기적'이라는 간판 달기, 넷째 조계종 끼어들기가 매우 중대한 국면을 만들어갔다 할 수 있겠거니와, 발견 기준으로 15년밖에 되지 않은 마애불 하나가 이렇게 다채로운 역사를 써내려 간 일 역시 기적이라 불러야 한다. 이 불상은 보고 당시 암석(약 610 x 250 x 19.. 2023. 10. 3. [김태식이 말하는 김태식] (2) 용 꼬리 될지언정 뱀대가리 이건 분명 결과론이다. 내가 애초 이 문화재업계 몸 담을 때만 해도 이쪽에 이리 오래 있을 줄 몰랐다. 있다 보니 이 분야는 첫째 뱀대가리지 결코 용대가리는 아니었으니 그만큼 폭도 좁았고 둘째 그러면서도 없어질 자리는 아니었으며 셋째 무엇보다 다들 진저리 치는 일이라 이 일을 하겠다 나서는 사내 경쟁자가 없었다. 이 점은 내가 이곳에 정착하는 호조건을 형성했는데 또 결과론이긴 하겠지만 내가 입성하고서 이내 이 업계를 평정하고 나니 설혹 이 일을 하고 싶은 동료들이 있다한들 내 아성을 넘을 수는 없으니 이 일은 이 분야를 나를 제외하면 무주공산으로 남겼다. 그렇다고 이 자리가 언터처블이었던가?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 성정이 누구한테나 고분고분한 사람도 아니고 정 아니면 대가리 쳐들고 받아버렸으며 무.. 2023. 9. 29. 문화유산에서 자연유산으로 한국 문화재 정책은 지나치게 문화유산 중심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고 자백한다. 하지만 그 덩치, 그리고 일상과의 밀접성이라는 측면에서 자연유산을 이제는 더 소홀히 할 수 없는 시대를 맞았다. 이 분야 괄목할 만한 외적 성장도 있다. 2000년까지 다섯건인가에 지나지 않던 명승이 제국의 팽창이라 할 만한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순식간에 바뀌지 않는다. 나는 그 시금석으로 천연기념물센터 독립을 꼽는다. 이 센터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 소속이다. 이 센터가 독립해야 한다. 연구소에서 독립해 무형문화재 분야가 국립무형유산원으로, 해양문화재연구소가 독립했듯이 센터 역시 독립해야 한다. 지금 센터 인적 구성을 보면 박사가 다섯 명이라 분야는 고루 갖춘 편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그네들이 각기 .. 2023. 9. 28.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6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