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74 연합뉴스 기자보다 더한 감투 없었다 정권교체기마다, 또 인사철마다, 무슨 공직 하나 얻겠다고 이곳저곳 줄대고 나서서 기웃대는 놈들 역겹기 짝이 없다. 특히 그럴 듯한 대학에 교수라는 타이틀 쓰고 있으면서 그보다 더 나은 감투 뭐가 더 있다고 무슨 자리 하나 더 보태겠다 해서 나대는 놈들 이런 행태가 나한테는 더 역겹기 짝이 없다. 그런 놈 중에 막상 그렇게 원하던 기관장 되어 잘하는 놈 단 한 놈도 못봤다. 왜인가? 오로지 그 감투가 목적인 까닭이며, 그런 감투는 오로지 제 사리사욕 채우거나 그걸로 제 똥폼 내는 데 쓸 뿐인 까닭이다. 그게 무슨 대단한 자리라고 기껏 길어봐야 2년짜리 임시 계약직에 불과한 놈들이 것도 알량한 권력이라고 휘두르는 꼴 역겹기 착이 없다. 떠나고 나면 다들 비웃지만 그 자리 있을 동안에도 다들 비웃는다. 그래봐.. 2023. 10. 7. 문화재 기자들은 누구랑 무엇으로 싸우는가? 외부? 생각보다 기자가 외부랑 부닥치는 일은 별것 아니다. 이건 비단 기자사회에만 국한하지는 않지만 그 투쟁 절대다수가 내부와의 그것이라는 사실이다. 문화재 기자의 그것은 독특한 대목이 있다. 앞서 말한 문화재기자 원년 멤버들의 경우 전문성이 다 있다. 조선 신형준 동아 이광표 문화 최영창은 아예 대학 전공이 사학이라 개중 형준 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광표 영창은 당시 대학원 재학 중이거나 박사수료 상태였고 여타 기자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저런 전문성에다 현장을 가미했다. 이런 기자들을 부장이랍시며 차장이랍시며 국장이랍시며 아는 체 하며 이거 쓰라 저거 쓰라 하면 짜증이 안 나겠는가? 저긴 저런 기사 났는데 넌 머하냐? 말이 안 되는 기삽니다. 그럼 저쪽은 바보냐? 얘기 안 되는 건 안 .. 2023. 10. 7. 해직에서 비롯한 문화부장이라는 자리 여러 번 얘기했듯이 해직 무렵 문화부 문화재 담당기자라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전국부로 발령나면서 가뜩이나 기자질에 환멸이 일면서, 그리고 복직소송을 진행하면서 다시는 내가 현장 기자로 돌아가지는 않겠다 스스로 다짐했거니와 그런 내가 막상 2년 만에 복직이 되어서는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전문기자를 나는 허울뿐이라고 계속 말하는데 막상 그 허울을 벗고나면 진짜로 갈 데가 없다. 용처가 하나로 고정되는 까닭이다. 현장 기자는 안 한다 했지, 또 복직한 마당에 정권도 바뀌고 나를 쫓아낸 경영진도 물갈이가 된 마당에 회사로서도 나를 배려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 배려가 거창한 것도 아니어서 너 어디 가고 싶으냐 해서 들어보고 웬간하면 들어주는 일을 말한다. 내가 딱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어찌했으면 좋겠냐 물어왔으니.. 2023. 10. 6. 문화재 언론계 맹주들이 다 사라지고 홀로 남은 지정생존자 내가 사회부에 있다 문화부 문화재 학술 담당 기자로 전근한 1998년 12월 당시 다른 언론사 문화재 분야 기자들을 보면 조선일보 신형준 한국일보 서사봉 경향신문 최정훈 동아일보 이광표 문화일보 최영창 이 형들이 매일 박터지는 특종 싸움을 벌일 때라 나이 여부와는 상관없이 언론계 경력으로 보면 1년 후배인 광표 형을 제외하고는 나보다 1-2년 정도 선배였으니 다 동년배로 보아 대과는 없다. 순서는 확실치 않으나 아마도 최정훈 형이 가장 먼저 언론계를 떠나 한창 뜨기 시작한 포털 다음으로 가지 않았나 싶은데 그 비슷한 시기에 서사봉 형도 아예 언론계를 떠나 출판사를 차렸으니 이 두 형은 극심한 기자생활이 초래한 스트레스로 건강을 아주 망치다시피 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기억하며 이어 아마도 신형준 형이 .. 2023. 10. 5. 나는 왜 연합뉴스를 떠나는가? 1. 직접 발단 : 연합뉴스의 곤경과 어찌할 수 없는 희망퇴직제 퇴직키로 했다 공개하니, 애꿎은 김충배한테 몇몇 지인이 사정을 캐묻는 모양이나, 그러지 말았음 싶은 마음에 몇 자 긁적거려둔다. 혹 내가 무슨 불미한 일에 휘말려 짤리는 게 아닌가 기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망시켜 미안하다만 그와는 전연 거리가 멀다. 퇴직 결정이 느닷없는 치기가 아님은 혹 지난 몇 달간 내 관련 글들을 읽은 분들은 눈치채셨을 줄로 알거니와, 결심이 선지는 오래되었다. 1993년 1월 1일, 연합통신에 입사한 내가 이번 달로 입사 만 30년 10개월이라, 그 어중간에 해직 혹은 해고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기자 생활, 더욱 엄밀히는 연합뉴스라는 제도권 언론의 기자로서는 내가 더는 할 일이 없다는 생.. 2023. 10. 5. [김태식이 말하는 김태식] (3) 신뢰 딱 하나 보고 달렸다 물론 내 이름으로 나간 모든 기사, 혹은 내가 내보낸 모든 기사가 저에 해당한다 자신할 수는 없으며 개중에선 부끄러운 기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분야에 어느 정도 사명감이 생기고 나서는 내 이름단 모든 기사, 내가 내보낸 그 어떤 기사도 오직 저 믿음 하나는 확고했으니 적어도 내 기사에 관한 한 나는 사초史草를 쓴다는 자세로 임했다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 기사가 어렵다는 말을 들었고 논문 같다는 말도 들었으며 장황하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 기사가 당대를 증언하는 제일급 사초여야 한다는 생각 단 한 번도 저버린 적 없고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흘러도 김태식이 쓴 기사는 믿을 수 있다는 그 일념 하나로 달렸다. 내 기사는 그 어떤 학술논문에서도 참고문헌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 2023. 10. 5.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63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