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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403

[마왕퇴와 그 이웃-88] 주객전도, 그리고 또 하나의 핵폭탄 마왕퇴 3호묘가 발굴되었을 즈음에는 발굴의 주관심이 완전히 주객전도되어 3호묘에서는 꽤 좋은 유물이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미라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발굴팀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처음에 미라가 보존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아니 미라를 연구할 가치는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확신을 못했던 데에 비하면 엄청나게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따라서 3호묘에서 미라가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결판 남과 거의 동시에 이번에는 2호묘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2호묘는 그 애매한 위치 때문에 처음부터 이것이 진짜 무덤인지 아닌지에 대해 설왕설래한 듯하지만 발굴이 진행되면서 먼저 발굴된 1호묘, 3호묘와 거의 유사한 구조가 확인되고무덤 옆에서는 3호묘처럼 석고를 부어 보니 사슴 뿔 모양을 한 수문장까지 ..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7] 거마의장도의 말 (9) 한혈마 이전의 말 이제 다시 거마의장도로 돌아와 기원전 168년에 무덤에 봉인된 말 그림을 다시 보도록 하자. 이 거마의장도는 당시 장사국長沙國이 남쪽에서 팽창해 오던 남월국 때문에 군비를 정비하던 와중에 장사국에서 준비하던 군비와 관련된 그림이라 보고 있는 모양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한나라에서 서역의 이른바 한혈마가 도입된 것은 기원전 106년 경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거마의장도가 등장한 순간에는 아직 군마는 한혈마와는 무관한 재래종 말이었던 셈이 되겠다. 물론 이 재래종 말이라 해도 처음 중국으로 도입되었던 상나라 때의 말과 같을 리는 없다. 상나라 때 전차를 끌던 말들도 전국시대를 거치며 북방으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품종이 들어와 기존의 재래종과 교배해서 개량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거마의장도 ..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6] 거마의장도의 말 (8) 순식간에 완성하는 기마전 말은 구경도 못하던 사람들이 "기마민족"으로 얼마나 빨리 바뀔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역사적 사례가 있다. 첫째는 미국 개척기의 북미원주민들. 이들은 유럽인들이 들어올 때까지는 말은 구경도 못한 사람들인데, 유럽인들이 들고 들어온 말을 타기 시작, 북미원주민과 미군 기병대 사이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19세기에는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들도 호쾌한 기마전술을 펼쳤다.   북미 원주민이 불과 몇백년 만에 "기마민족"으로 탈바꿈 한 셈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차를 타고 몰기 시작한 것은 얼마나 되었는가? 말을 사육하여 타고 다니는 것은 간단한 작업은 아니지만, 수백년이면 말을 구경도 못하던 사람들이 기병대를 조직하여 훌륭한 작전을 펼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일본사에서 유명한 기병 전투하면 흔히 두 가지를 드.. 2025. 4. 4.
[spinoff] 인도 전차 발굴 논쟁 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잠간 언급한 인도 아대륙 청동기시대 전차 발굴은 2018년에 있었다. 관련 소식을 따로 정리한다. 당시 이 소식을 비교적 자세히 보도한 한 아티클을 교재로 삼는다. 인도 아대륙Indian sub-continent에서는 처음으로, 철기 이전 시대Pre-Iron Age(청동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차chariots가 있는 매장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이 새로운 발견은 마하바라타 시대Mahabharata period의 연대를 밝히고 하라파 시대Harappa age 말馬의 기원을 더 조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는 우타르프라데시Uttar Pradesh 주 사나울리Sanauli에서 3개월간 시범 발굴에 참여한 전문가들 의견이다. 이런 매장 구덩이는 라키가리Rakhigarhi..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5] 거마의장도의 말 (7) 말살된 인더스 문명 위 그림을 보자. 인도문명의 기원전 2500-2000년 즈음에 인더스 문명이 있다.이 인더스 문명이 사라지고 또 다른 문명이 인도아대륙에 출현하는데그것이 바로  "Vedic India"이다.이렇게 이름 붙은 이유는 이 시대가 힌두교 경전 중 가장 오래된 성전인 "베다 (Vedas)"와 관련이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이 베다시대 (기원전 1500-기원전 500)야말로 이후 힌두교와 산스크리트 문학이 처음 형성되고 번영하기 시작한 시대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는 "인도문화"가 바로 베다시대 문화와 매우 관련이 깊다고 한다. 인도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더스문명"과 "베다시대" 사이에 중대한 단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대한 단절"이란 "기억의 단절"을 의미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극히 .. 2025. 4. 4.
[마왕퇴와 그 이웃-84] 거마의장도의 말 (6) 군대도 전쟁도 없던 인더스 문명 아리안-말-전차의 흐름은 인도사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알다시피 인도사에는 가장 첫머리에 인더스 문명 (하라파 문명)이 있다. 인도 고고학에서는 인더스 문명은 전쟁이 거의 없었으며 정예화한 군대도 없는 평화로운 사회였다는 개념이 강하다.인더스 문명은 군대와 무력보다는 무역과 종교로 결합된 사회로지배자는 군인, 황제가 아니라 승려와 같은 집단이었을 것이고 평상시 전쟁도 거의 없었던 사회"라는 것이다.그 근거 중 하나가 제대로 잘 만들어진 무기가 인더스 문명 시기 유적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을 들 수 있다.이 부분은 일정 정도 사실이다.인더스 문명 유적에서는 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제대로 된 무기가 발견된 적이 거의 없다. 사실 인더스 문명이 번영하던 당시에는 주변에 이렇다 할 강적이 없었다.. 2025.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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