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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15

문명사로서의 고조선-낙랑 필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고조선을 한민족의 첫 국가, 운운하여 민족주의적 사관의 첫 머리에 올리다보니 이 고대문명의 변천과 역사적 의의가 분명하게 드러나질 않는다. 이집트 문명을 보자. 장구한 이집트 문명의 마지막은 헬레니즘 문명이 장식한다. 필자 생각은 이렇다. 낙랑이 한의 군현이었냐 아니냐 이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대동강일대를 중심으로 성립한 고대문명을 설명하는데 있어 낙랑은 한국사 안에서 다루어야 하며 그 전사인 고조선과 묶어서 이해해야 한다. 낙랑은 고조선을 무너뜨린 단순한 한의 식민지가 아니라 고조선 변천사의 최종형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 낙랑과 대방은 아예 한국사에서 사라졌는데 한국사에서 사라졌다는건 이것이 중국사라는 걸 한국인들이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헬레.. 2023. 12. 22.
와카和歌와 당시唐詩 언젠가 쓴 듯하지만 와카는 당시의 후예요 당시가 없었으면 와카도 없다. *** Editor's Note *** 당시의 일본적 발현, 그것이 와카다. 당시가 대표하는 중국 문물이 물밀듯이 일본열도를 침공하는데, 그 당시 열풍을 웅변하는 것이 헤이안시대 백거이 열풍이다. 물론 이 와카가 모름지기 당시에서만 뿌리를 찾아야겠는가? 그 이전 그것이 발현할 수 있는 자체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이 당시를 만나 폭발한다. 지금은 이름만 남은 신라 가요집 삼대목三代目 역시 나는 당시의 신라적 발현이라 본다. 2023. 12. 21.
율령국가라는 개념 일본사에서나 쓸 수 있는 개념이지 이걸 들어다가 아무대나 잣대를 들이대는 안되는 개념이라고 본다. 이전에도 썼지만 율령국가란 일본사에서 중국식 왕조가 존속했던 기간을 말한다. 한반도 백제 멸망이후 견당사 파견, 헤이안 시대가 대략 율령국가와 얼추 일치하는 기간인데 이 기간 동안 정확히는 한반도 시스템과 결별하여 당나라의 제도를 직수입해 그대로 복붙한 시스템이 일본에서 작동한 기간이며 일본에서 중국식 왕조가 기능했던 거의 유일한 기간이기도 하다. 율령국가, 육국사, 화폐의 발행 등등 잡다하게 이 시기를 서술하지만 당시이 일본은 당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복붙한 것이라 보면 가장 이해가 쉽다. 육국사? 당의 실록이다. 화폐의 발행? 당나라에서 하던 대로 주조한 것. 와카? 당나라 이백 두보 백거이로 상징되는 당.. 2023. 12. 21.
동아시아 평행세계로서의 발해와 일본 신라는 이런 점에서 독특하다. 신라는 통일 후 당제를 그대로 도입하지 않은 것 같다. 통일 이전의 국제國制를 그대로 유지한 것 같고, 과연 신라의 왕도가 장안성처럼 조방제가 제대로 지켜졌을까? 모르겠다. 필자가 보기에는 발해와 일본이 당대의 당나라의 시스템을 그대로 복붙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평행세계에 해당하는 것 같다. 상경용천부는 일본의 헤이죠쿄, 헤이안쿄와 판박이다. 당연히 당 장안성을 베껴서 그럴 것이다. 관제도 발해와 일본은 비슷하다. 같이 당제를 베꼈기 때문에.. 발해와 왜는 신라보다 당제를 베끼는데 별 부담이 없었을 것 같다. 어차피 새로 산 공책에 글씨쓰는 작업이므로.. 신라는 지금 경주 모양을 보면 암만 봐도 통일신라 때 조방제 였을 거 같지가 않다. 아마 신라가 조방제가 엄격히 지켜지는 .. 2023. 12. 20.
60세 이후는 단행본으로 승부를 내야 연구자는 논문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는 말이 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동료연구자에 의해 심사가 완료된 논문을 Peer-Reviewed Article이라 하는데, 이를 학계에서 다른 논문들보다 위에 놓고 평가해주는 경향이 있다. 이는 수백년에 걸친 학문의 발전과정에서 얻어진 관행으로 앞으로도 학계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계속 될 것이다. 다만 연구와 성과 발표가 60이후에도 논문의 형식으로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는데 결론은 그것이 아닌 것 같다. 이 연구 발표의 매체 차이가 바로 60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차이가 될 것이라 보는데, 60이후가 그 이전까지는 불가능한 통섭적 연구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60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성과물 도출을 시도해야 한다. .. 2023. 12. 19.
신라와 백제의 수레 바퀴 흔적 고조선의 수레가 말이 끌었는가 소가 끌었는가는 솔직히 필자로서는 백프로 확신은 못하겠다. 고조선 유물을 보니 세형동검과 수레 부속이 나오는 무덤에서 말 재갈이 함께 나온 경우가 있어서다. 단 이것이 그 수레를 말이 끌었다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고구려의 예를 보면 서기 4세기 이후에는 귀인들의 수레는 소가 끌었던 것은 확실해 보이고, 이 시점이 되면 말과 소는 확실한 업무분담이 시작된것 아닌가 싶다. 말은 기승용으로 소는 귀인의 자가용끌기로. 아마도 김단장께서 올린 글처럼 북위에서 고구려로 전해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러한 전통이 말-소의 전파과 함께 일본에도 전해져 그 모양 그대로 헤이안시대에도 이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가끔 보고되는 백제와 신라 왕성이나 성에서 확인했다는 수.. 20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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