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680 식어버린 청동기시대 기장밥은 어떻게 먹는가 청동기시대 찐 기장밥을 한 번 더 만들었다. 아무리 먹을거리가 부족한 청동기시대라 해도 기장밥 같은 잡곡밥도 한끼 식사 끝나고 남지 않았을 리 없다. 남았을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되었을까? 한번 알아보자. 기장밥 찐것을 반나절만 놔 두면 마치 모래알처럼 바뀐다. 찰기가 있는 찰기장인데도 그렇다. 청동기시대도 이랬을 것이다. 이건 어떻게 먹었을까? 그냥 먹어봤다. 사람이 먹을 게 못된다. 다시 찌면 나아질 것 같은데 다시 쪘을까? 이건 분명히 국물을 썼을 것이라 생각하고 국물을 만들어 먹어보았다. 이거다. 청동기시대 잡곡 찐밥은 한번 식으면 절대로 그냥은 못먹는다. 반드시 국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냥 바로 한 밥 보다도 더 낫다. 이상 청동기시대 기장 찐밥, 식은 밥을 먹는 방법에 대한 실.. 2024. 3. 8. 남들 다 해먹고 박물관장 막차 탄 최순우 혜곡兮谷 최순우崔淳雨는 같은 개성 출신으로 같은 우현 고유섭을 사사했다 하지만, 나란히 1918년생인 황수영 진홍섭보다 두 살이 많다. 더구나 황과 진 두 사람이 비교적 일찍 학계 교수로 튄 것과는 달리 끝까지 박물관을 지켰으니, 태평양전쟁 말기 박물관에 발을 디딘 이래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가 국립중앙박물관장직을 퇴사한 시점이 1984년 12월 1일이요, 그가 사망한 시점은 그보다 보름 뒤인 같은달 16일이다. 사임 시점 문공부 장관 이진희랑 한 판 붙었다는데, 그 충격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저 3인방 중 진홍섭은 국립박물관 산하 경주박물관장(실은 분관장)을 하다가 1963년에 이화여대로 튀었다. 학계에는 비교적 늦게 진출했다. 최순우 이력을 보면 1943년 고유섭이 관장.. 2024. 3. 8. 메주 만드는 데도 식민지배 논리가 관철한다는 한국근대사 식민지대를 주축으로 삼는 한국근현대사는 강박 하나가 거대한 유령으로 배회하며 역사를 난도질하니 일본놈과 그에 부화뇌동한 놈은 극악무도해야 한다는 윽박이 그것이라 언제나 저 시대 기술은 일본놈 나쁜놈으로 출발해서 언제나 일본놈 나쁜 놈으로 끝난다. 허심하게 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까지 언제나 이르기를 강포한 일본놈이 한민족 정기를 말살하고자 한 짓거리라 하고 콩으로 메주를 쑤었다 해도 그 콩에도 그 메주에도 그것을 재배하고 만들고 유포하는 일에도 일제의 식민지배 논리가 강고하게 작동한다는 것이 작금 한국 역사학이다. 거지 행려병자 구제사업도 천황의 은사금이 있으니 일제의 식민지배 논리가 관철한다 하고 천둥벌거숭이 산을 녹화하는 일도 수탈을 위한 고도의 포석이라 하며 식량증산 계획도 오로지 수탈이라는 .. 2024. 3. 8. 사설학원 열어 연명하는 조선시대 유배 생활 황자黃梓(1689)~?) 1734년 진주사행陳奏使行이라는 대청 사신단에서 서장관 자격으로 북경을 간다. 이때 정사正使가 서명균徐命均, 부사副使가 박문수朴文秀였다. 갑인연행록甲寅燕行錄은 이 사행길에서 그가 보고 들은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청淸 옹정제雍正帝 12년, 조선 영조 10년 갑인년이라 해서 이리 이름하고 그의 문집 필의재유고畢依齋遺稿에 수록됐다. 7월 2일 창덕궁 인정전에서 잘 다녀오겠다고 영조를 배알하고 출발한 삼사三使는 이후에는 각자 도생이라 만났다가 헤어지고 각자 개인일도 보고 하는 요새 같으면 있을 수 없는 행태를 보이는데, 이것이 조선시대 사행길 일반 패턴이었다. 삼사가 붙어다니면 쌈박질밖에 더 하겠는가? 암튼 서장관 역시 넘버3이기는 했지만, 고위공무원단이라 전용 차가 배정되었으니, 그.. 2024. 3. 8. 조선시대는 고려시대보다 반드시 뭔가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고려에서 조선시대 사이의 획기는 단지 왕조가 교체되었을 뿐 아니라 반드시 두시대 사이는 뭔가 다르게 설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으니 이는 바로 "역사는 발전한다"는 테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역사는 발전한다, 그건 좋은데 일본을 보면 도저히 하나로 묶기 어려울 것 같은 헤이케 정권에서 에도막부까지를 묶어 무가정권이라 부른다.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고려왕조와 조선후기까지의 사회의 질적 차이는 헤이케 정권에서 에도막부사이의 차이보다도 더 적다. 헤이케 정권과 에도막부는 고려왕조와 조선후기까지의 차이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회인데도, 이를 무가정권이라 하나로 묶고, 굳이 에도시대를 따로 쓰고 싶다면 여기서 근세를 따로 둔다는 말이다. 고려시대를 귀족사회, 조선시대를 사대부사회. 억지다. 고려시대의 잘나.. 2024. 3. 8. [마질차] (4) 형수가 되었을 여인을 노리는 시동생 그때 태손太孫 소명전군昭明殿君이 이미 태어난 상태였고, 무열제는 (며느리인) 자의慈儀의 현숙함을 매우 아꼈다. (27세 흠돌欽突 전) 그때란 26세 풍월주인 진공이 흠돌한테 풍월주 자리를 물려준 때다. 이때가 656년 태종무열왕 재위 3년째다. 따라서 이로 보면 문무왕 김법민과 그의 정비 자의 사이의 맏이인 소명태자는 656년 혹은 그 직전에 태어났다. 소명을 전군이라 부르는 까닭은 아직 정식 왕자 혹은 태손으로 임명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전군은 정식 왕자보다는 한 등급 낮은 왕의 아들을 지칭하는 호칭이다. 이 두 가지 증언과 삼국사기 김흠운 열전을 종합할 때, 여기서 일어나는 일대 의문이 있다. 앞서 보았듯이 김흠운은 655년 백제와의 조천성 전투에 출전했다가 장렬히 전사했고, 그때 관위가 어느 정도.. 2024. 3. 8. 이전 1 ··· 1514 1515 1516 1517 1518 1519 1520 ··· 394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