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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술로 풀어야 한시, 계절의 노래(57) 끄적이다(戱題) 당(唐) 맹호연(孟浩然) / 김영문 選譯評 나그네 취해 자다못 일어나니 주인이 해장하자불러 깨우네 닭개장과 기장 밥익었다 하고 술동이엔 맑은 술있다고 하네 客醉眠未起, 主人呼解酲. 已言雞黍熟, 復道甕頭淸. 함께 술을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벗이 있다면 당신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술자리에서조차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위선과 가식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하지만 술은 위대한 마력으로 인간의 위선과 가식을 벗겨 버린다. 코가 비틀어지도록 함께 술을 마셔봐야 그 사람의 본 모습을 알 수 있다.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의 등을 두드려주며 우정은 깊어간다. 함께 술에 취해 잠을 자다가 아침에 해장국을 끓여놓고 잠을 깨우는 벗이 있다면 당신은 더 없.. 2018. 6. 3.
하늘하늘 피어오르는 침향 한시, 계절의 노래(58) 귀공자의 한밤중 노래(貴公子夜闌曲) 당(唐) 이하(李賀) / 김영문 選譯評 하늘하늘 침향 연기피어오르고 까마귀 울어대는한밤중이네 굽은 못엔 연꽃이물결 이루고 허리에 찬 백옥 띠는차가워지네裊裊沉水煙, 烏啼夜闌景. 曲沼芙蓉波, 腰圍白玉冷. 중국 당나라 시인 이하를 흔히 시귀(詩鬼)라 부른다. 이백을 시선(詩仙), 두보를 시성(詩聖), 왕유를 시불(詩佛)이라 부르는 것에 비교해보면 매우 그로테스크한 별명이다. 시를 귀신같이 잘 써서 그렇게 불렀을까? 그런 면도 없지는 않지만 그의 시가 드러내는 귀기(鬼氣) 때문에 그런 호칭이 붙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리라. 그의 시 대부분이 위의 시와 같은 귀기에 둘러싸여 있다. 불우하게 살다가 27세에 요절한 이하는 어쩌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2018. 6. 3.
대숲이 머금은 절대고독 한시, 계절의 노래(56) 죽리관竹裏館 [당唐] 왕유王維 / 김영문 選譯評 그윽한 대 숲에나 홀로 앉아 거문고 타다가또 긴 휘파람 숲 깊어 다른 사람알지 못하고 밝은 달 다가와비춰주누나 獨坐幽篁裏, 彈琴復長嘯. 深林人不知, 明月來相照. 근대는 빛과 함께 왔다. 모든 빛(文明)은 어둠과 야만을 적대시한다. 우리는 밤을 몰아낸 찬란한 빛 속에서 산다. 그윽하고[幽] 깊은[深] 대숲[竹林]은 사라진지 오래다. 죽림에 숨어 살던 현인들도 이제는 만날 수 없다. 혼자 태어나 혼자 죽으며 하나의 생명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은 절대적으로 고독한 존재다. 현대인은 자신의 고독을 보듬기 위해 산으로 강으로 몰려 가지만 이제 우리 산천 어디에도 고독을 음미할 장소는 없다. 산도 강도 욕망에 굶주린 암수 군상들의 시끄러운 캬바.. 2018. 6. 3.
외진 모래톱에서 춤추는 고니 한시, 계절의 노래(55) 절구 여섯 수(絕句六首) 중 첫째 당(唐) 두보 / 김영문 選譯評 태양은 사립 동쪽강에서 뜨고 구름은 집 북쪽뻘에서 이네 대나무 높이 자라비취새 울고 모래톱 외지니고니 춤추네 日出籬東水, 雲生舍北泥. 竹高鳴翡翠, 沙僻舞鵾雞. 한시에서 시인의 주관적인 감정을 자연 속 사물에 의탁하는 방법을 흥(興)이라고 한다. 자연을 통해 마음 속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시경』에 수록한 시에서 매우 빈번하게 쓰이기 시작한 수법이다. 그것은 은유일 수도 있고 상징일 수도 있지만 독자는 시인의 본래 의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말하자면 시인의 주관과 독자의 주관이 자연이라는 객체를 매개로 무한한 상상 속에서 만나는 셈이다. 이와는 달리 묘사 대상을 직접 객관적으로 펼쳐서 써내는 방법은 부.. 2018. 6. 3.
지는 꽃 애달파 한시, 계절의 노래(54) 모란꽃을 아끼며 두 수[惜牡丹花二首] 중 둘째 [당(唐)] 백거이(白居易) / 김영문 選譯評 적막 속에 시든 붉은 꽃비를 향해 쓰러지니 고운 모습 헝클어져바람 따라 흩어지네 맑은 날 땅에 져도오히려 애달픈데 하물며 진흙 속에흩날리는 꽃잎이야 寂寞萎紅低向雨, 離披破豔散隨風. 晴明落地猶惆悵, 何况飄零泥土中. 신라 설총의 「화왕계(花王戒)」에 등장하는 꽃의 왕이 바로 모란이다. 같은 시기 당나라에서도 모란을 재배하고 감상하는 붐이 일어나 모란이 만발하면 도성 장안 전체가 미친 열기에 휩싸였다고 한다. 대체로 중국 남북조시대에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모란은 수·당(隋·唐)시대에 모란 신드롬이라 불러도 줗을 만큼 애호의 절정에 달했다. 이후 열기가 잦아들기는 했지만 청나라 말기에 이.. 2018. 6. 3.
벼는 새파란데 세곡 창고는 수리 중 한시, 계절의 노래(53) 농가 두 수(田家二首) 중 첫째 당(唐) 섭이중(聶夷中) / 김영문 選譯評 아버지는 들판밭 갈고 아들은 산 아래황무지 개간하네 유월이라 아직벼도 패지 않았는데 관가에선 벌써창고 수리하네父耕原上田, 子斸山下荒. 六月禾未秀, 官家已修倉. 예나 지금이나 국가는 막대한 세금을 거둔다. 국민의 피와 땀이 서린 돈이므로 이를 흔히 혈세(血稅)라 한다. 혈세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낸 공금이다. 그걸 국민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사사롭게 유용하는 자를 세금 도둑이라 한다. 혈세를 제 마음대로 쓰므로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나 드라큐라라 불러도 무방하다. 일도 하지 않고 혈세를 꼬박꼬박 받아 챙기는 자들, 혈세를 눈먼 돈이라 여기고 착복하는 자들은 모두 역적 패거리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피를 빨.. 2018.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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