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3294 사진보다 사진도덕이 먼저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정좌한 경주 대릉원이다. 전면 정중앙 뒤편에 마치 낙타 등 모양을 한 저 무덤이 한반도 무덤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는 황남대총이다. 마립간시대 어느 신라왕과 그 왕비를 각기 다른 봉분에다가 매장하되, 그 봉분을 남북쪽에다가 각각 이어붙여 마치 쌍둥이를 방불한다 해서 쌍분(雙墳)으로 분류한다. 고신라시대에는 흔한 봉분 만들기 패턴 중 하나다. 요즘처럼 목련과 사쿠라가 만발하는 이맘쯤이면 이 구역에서 매양 이런 풍광이 빚어진다. 공교하게도 이 방향에서 바라보면 저 쌍분 전면 좌우에 나란한 각기 다른 봉분 사이로 목련 한 그루가 만발한다. 한데 그 모양이 아주 묘하다. 어제 경주에서 내가 포착한 이 장면에서는 무수한 사진기와 무수한 사진작가들이 병풍처럼 늘어친 까닭에 그런 면모가 잘 드.. 2018. 4. 2. Hwangryongsa and me At the Hwangryongsa Temple site on the drone taken by Seyun Oh 2018. 4. 1. The Great Tumuli Daereungwon, Gyeongju Photo by Seyun Oh 2018. 3. 31. Being the Director-General of UNESCO hahaha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되어 봤다. podium에 서 봤다. 2015년 6~7월 독일 본 World Congress Center에서 열린 39th session of the World Heritage Committee에 나는 한국 취재단 일원으로 참관했다. 일원이라 하지만 유일한 한국기자였다. 당시 이 회의에서 우리는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세계유산에 등재했고, 일본은 진통 끝에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유산군을 등재했다. 두 건이 모두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회의장도 그날 일정을 마치고 참관자들이 떠날 무렵, 이쪽에 서 봤다. 대회기간 내내 저 자리는 내가 알기로 딱 두 번인가 사용했을 것이다. 유네스코 사무총장 Irina Bokova가 개회를 선언하고, 폐회를 선언했을 것이다. 두 장면 모두 보지 못했지만.. 2018. 3. 31. Manangyo Bridge, 만안교(萬安橋) Manangyo Bridge The bridge was specially built for the convenience of King Jeongjo(1776-1800) of the Joseon Dynasty and his procession for his annual trips to his father's tomb (his father, also called Sadose ja literally the ilI- Destined Crown Prince, was originally the Crown Prince, but was put to death locked in a wooden box by his own father King Yeongjo due to court intrigue). King Jeongjo.. 2018. 3. 30. sunrise in Rome The sun rises from Tivoli, Italy. Tivoli is a town and comune in Lazio, central Italy, about 30 kilometres (19 miles) east-north-east of Rome. For more information see https://en.wikipedia.org/wiki/Tivoli,_Lazio 2018. 3. 30. 담육(曇育) 신라 진평왕 시대 고승으로 동왕 18년(596)에 불법을 배우러 수에 들어갔다가 10년 만인 동왕 27년(605) 귀국했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평왕본기 : 18년(596) 봄 3월에 고승 담육(曇育)이 불법을 배우러 수나라에 들어갔다.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토산물을 바쳤다. 겨울 10월에 영흥사에 불이 났는데, 불길이 번져 가옥 350채를 태웠으므로 왕이 몸소 나아가 진휼하였다. 27년(605) 봄 3월에 고승 담육이 입조사(入朝使) 혜문(惠文)을 따라 돌아왔다. 2018. 3. 30. 안홍安弘 중국에 유학한 신라 중고기 불교 승려로, 진흥왕 37년(576)에 호승(胡僧) 둘을 대동하고 《능가경(稜伽經)》과 《승만경(勝經)》, 그리고 부처 사리를 받쳤다. 황룡사 구층목탑 창건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데 《해동고승전》을 보면, 호승 둘을 데리고 온 이는 안홍이 아니라, 안함(安含)이며, 더구나 그 시기는 진흥왕 시대가 아니라 지평왕 27년(605)라 착란이 있다. 이 점에서 수상했는지 《해동고승전》 찬자는 같은 사람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어쩌면 안함과 안홍은 실제로 두 사람이었는디 모른다"고 했다. 安含과 安弘은 글자 모양이 비슷한데 이에 따른 착간이 있지 않나 한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4 진흥왕 : 37년(576) 봄에...안홍법사(安弘法師)가 수나라에 들어가 불법을 배우.. 2018. 3. 30. 아리나발마(阿離那跋摩) 신라 중기 당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70여 세에 입적한 승려.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라고도 한다. 해동고승 권2 :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귀축제사(歸竺諸師) : 광함(廣函)의 《구법고승전(求法高僧傳)》에 이렇게 말했다. 승려 아리나(阿離那·나那는 야耶라고도 했다) 발마(跋摩·마摩는 혹은 낭郞이라고도 한다)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에 정교(正敎)를 구하려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인(聖人)의 자취를 두루 찾아볼 마음이 더했다. 이에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당(唐)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五天)에 갔다. 나란타사(那蘭陀寺)에 머물며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많이 읽고 패협(貝莢)에 베껴 썼다. 고국(故國)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2018. 3. 30. 아리야발마(阿離耶跋摩) 신라 중기 당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나 70여 세에 그곳에서 입적한 승려. 아리나발마(阿離那跋摩)라고도 한다. 해동고승 권2 :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귀축제사(歸竺諸師) : 광함(廣函)의 《구법고승전(求法高僧傳)》에 이렇게 말했다. 승려 아리나(阿離那·나那는 야耶라고도 했다) 발마(跋摩·마摩는 혹은 낭郞이라고도 한다)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에 정교(正敎)를 구하려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인(聖人)의 자취를 두루 찾아볼 마음이 더했다. 이에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당(唐)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五天)에 갔다. 나란타사(那蘭陀寺)에 머물며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많이 읽고 패협(貝莢)에 베껴 썼다. 고국(故國)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2018. 3. 30. 혜업(慧業) 신라 중기 당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난 승려. 해동고승 권2 :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귀축제사(歸竺諸師) : 광함(廣函)의 《구법고승전(求法高僧傳)》에 이렇게 말했다. 승려 아리나(阿離那·나那는 야耶라고도 했다) 발마(跋摩·마摩는 혹은 낭郞이라고도 한다)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에 정교(正敎)를 구하려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인(聖人)의 자취를 두루 찾아볼 마음이 더했다. 이에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당(唐)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五天)에 갔다. 나란타사(那蘭陀寺)에 머물며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많이 읽고 패협(貝莢)에 베껴 썼다. 고국(故國)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연히 그 절에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2018. 3. 30. 혜륜(慧輪) 신라 중기 당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난 승려. 해동고승 권2 :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귀축제사(歸竺諸師) : 광함(廣函)의 《구법고승전(求法高僧傳)》에 이렇게 말했다. 승려 아리나(阿離那·나那는 야耶라고도 했다) 발마(跋摩·마摩는 혹은 낭郞이라고도 한다)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에 정교(正敎)를 구하려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인(聖人)의 자취를 두루 찾아볼 마음이 더했다. 이에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당(唐)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五天)에 갔다. 나란타사(那蘭陀寺)에 머물며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많이 읽고 패협(貝莢)에 베껴 썼다. 고국(故國)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연히 그 절에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2018. 3. 30. 현각(玄恪) 신라 중기 당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인도로 구법 여행을 떠난 승려. 해동고승 권2 : 삼국유사 제3권 탑상 제4 귀축제사(歸竺諸師) : 광함(廣函)의 《구법고승전(求法高僧傳)》에 이렇게 말했다. 승려 아리나(阿離那·나那는 야耶라고도 했다) 발마(跋摩·마摩는 혹은 낭郞이라고도 한다)는 신라 사람이다. 처음에 정교(正敎)를 구하려 일찍이 중국에 들어갔는데, 성인(聖人)의 자취를 두루 찾아볼 마음이 더했다. 이에 정관(貞觀) 연간(627~649)에 당(唐)나라 서울인 장안(長安)을 떠나 오천(五天)에 갔다. 나란타사(那蘭陀寺)에 머물며 율장(律藏)과 논장(論藏)을 많이 읽고 패협(貝莢)에 베껴 썼다. 고국(故國)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홀연히 그 절에서 세상을 떠나니, 그의 나이.. 2018. 3. 30. 현조(玄照) 해동고승 권2 2018. 3. 30. 정명왕(政明王)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본명이 김정명(金正明)이라, 이를 따서 그의 생전 즉위시에는 이리 부르기도 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제31대 정명왕(政明王)이 즉위한 개요(開耀) 원년 신사(辛巳; 681)에는 금관경(金官京)이라 이름하고 태수(太守)를 두었다. 삼국사기 권 제32 (잡지 제1) 樂 : 고기(古記)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정명왕(政明王) 9년(689)에 신촌(新村)에 행차하여 잔치를 베풀고 음악을 연주케 하였는데, 가무(舞)는 감(監) 여섯 사람·가척(尺) 두 사람·무척(舞尺) 한 사람이고, 하신열무(下辛熱舞)는 감 네 사람·금척(琴尺) 한 사람·무척 두 사람·가척(歌尺) 세 사람이고, 사내무(思內舞)는 감 세 사람·금척 한 사람·무척 두 사.. 2018. 3. 30. 준필(俊必) 신라 말기, 금관성을 장악하고는 성주장군이 된 잡간(匝干) 충지(忠至)의 핵심 참모 중 한 명이었던 듯한 아간(阿干) 영규(英規)의 아들로, 김수로 사당 제사장에서 행패를 부리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말년에 충지(忠至) 잡간(匝干)이란 이가 있었는데 높은 금관성(金官城)을 쳐서 빼앗아 성주장군(城主將軍)이 되었다. 이에 영규(英規) 아간(阿干)이 장군의 위엄을 빌어 묘향(廟享)을 빼앗아 함부로 제사를 지내더니, 단오(端午)를 맞아 고사(告祠)하는데 공연히 대들보가 부러져 깔려죽었다. 이에 장군(將軍)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해서 외람되이 성왕(聖王)이 계시던 국성(國城)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니 마땅히 .. 2018. 3. 30. 간원(間元) 김수로왕 후손으로 신라 말기 금관에 거주하면서 아버지 규림(圭林)을 이어 김수로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일을 주관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말년에 충지(忠至) 잡간(匝干)이란 이가 있었는데 높은 금관성(金官城)을 쳐서 빼앗아 성주장군(城主將軍)이 되었다. 이에 영규(英規) 아간(阿干)이 장군의 위엄을 빌어 묘향(廟享)을 빼앗아 함부로 제사를 지내더니, 단오(端午)를 맞아 고사(告祠)하는데 공연히 대들보가 부러져 깔려죽었다. 이에 장군(將軍)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해서 외람되이 성왕(聖王)이 계시던 국성(國城)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니 마땅히 나는 그 영정(影幀)을 그려 모시고 향(香)과 등(燈)을 바쳐 신하된 은혜를 갚아야겠다.”.. 2018. 3. 30. 규림(圭林) 김수로왕 후손으로 신라 말기 금관에 거주하면서 김수로 사당에 제사를 지내는 일을 주관하다가 88세에 죽었다. 사후 그의 아들 간원(間元)이 이 일을 맡아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말년에 충지(忠至) 잡간(匝干)이란 이가 있었는데 높은 금관성(金官城)을 쳐서 빼앗아 성주장군(城主將軍)이 되었다. 이에 영규(英規) 아간(阿干)이 장군의 위엄을 빌어 묘향(廟享)을 빼앗아 함부로 제사를 지내더니, 단오(端午)를 맞아 고사(告祠)하는데 공연히 대들보가 부러져 깔려죽었다. 이에 장군(將軍)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해서 외람되이 성왕(聖王)이 계시던 국성(國城)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니 마땅히 나는 그 영정(影幀)을 그려 모시고 향(香)과 등.. 2018. 3. 30. 영규(英規) 신라 말기 아간(阿干)으로, 금관성을 장악하고는 성주장군이 된 잡간(匝干) 충지(忠至)의 핵심 참모 중 한 명이었던 듯하다. 충지의 위력을 빌려 김수로 사당을 함부로 강탈해 멋대로 제사를 지내다가 사당 대들보가 무너져 깔려 죽었다. 그의 아들 준필(俊必) 또한 비슷한 행패를 부리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죽었다 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紀異) 제2 가락국기(駕洛國記) : 신라 말년에 충지(忠至) 잡간(匝干)이란 이가 있었는데 높은 금관성(金官城)을 쳐서 빼앗아 성주장군(城主將軍)이 되었다. 이에 영규(英規) 아간(阿干)이 장군의 위엄을 빌어 묘향(廟享)을 빼앗아 함부로 제사를 지내더니, 단오(端午)를 맞아 고사(告祠)하는데 공연히 대들보가 부러져 깔려죽었다. 이에 장군(將軍)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 2018. 3. 30. 하다의장(何多宜藏) 자세한 행적을 알 수 없는 6~7세기 무렵 백제인이다. 1991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한 부여 부소산성 동문지(東門址) 출토 백제시대 금동광배 뒷면에 적힌 조성기에서 존재가 드러났다. 이 광배를 장착한 불상 발원자일 수도 있고, 그것을 만든 장인일 수도 있다. 부여 부소산성 동문지(東門址) 출토 백제 금동광배 뒷면 : 하다의장(何多宜藏)이 불상을 만들었다.(何多宜藏治佛) 2018. 3. 29. “역신을 베자 황사가 그쳤다” 미세먼지로 골머리를 앓지만, 역사를 통괄하면 이런 일이 비일하고 비재했다. 연례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런 점에서 과연 요즘 미세먼지 원인이라 지목하는 것들이 타당성을 지녔는지 아닌지는 심각한 성찰을 요한다. 주로 산업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듯하니, 이런 진단에 따라 차량 매연이 주범이라 해서 자동차 부제를 실시하기도 한다. 글쎄, 그럴까? 자동차가 없던 그 시절 토우(土雨), 다시 말해 흙비가 내리는 현상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각중에 궁금하다. 2002.03.22 16:36:43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조선초 김종서 등이 편찬한 「고려사」 제131권에는 조일신(趙日新)이라는 인물의 전기가 실려 있다. ‘반역’이란 딱지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사 편찬자들에게 결코 좋은 인상을 .. 2018. 3. 29. 이전 1 ··· 1045 1046 1047 1048 1049 1050 1051 ··· 111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