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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와 더 닮은 초기 한국 천주교 이런 생각 해보셨는지 모르겠다. 한국 천주교는 재미있는 해프닝이 있다. 한국 천주교가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선교사의 선교 없이 교회를 세웠다는 부분. 선교사나 신부가 오지도 않았는데 신도들끼리 성직자도 정하고 미사도 드리고 성사도 주고 했다는 부분-. 그러다가 북경성당에 확인해 보고 정식 성직자가 아니면 성사를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생적 교회를 해체했다는 부분인데, 사실 한국 천주교에서는 이 부분을 자랑스러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냉정히 따져 보면 당시 한국천주교회를 세운 사람들 대부분이 성리학자였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왜 그럴까? 성리학에서는 선교사나 사도전승으로 대표되는 스승에서 제자로의 전수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주교.. 2025. 4. 27.
이러다 로마 참빗까지 실크로드 타령 나올 듯 Roman, probably 3rd-4th century AD This double-sided comb probably came from a woman’s grave. The inscription has sometimes been explained as Modestina Vale (‘Modestina, farewell’), but in that case the final word would be mis-spelt. (Source: The British Museum) 로마 시대, 아마도 서기 3-4세기 무렵에 만들었을 빗이랜다. 이 양면 빗은 아마도 여성 무덤에서 발견되었으리라 본다지만, 글쎄다 남자 무덤에서도 제법 다온다.저 가운데 몸통을 따라 라틴어를 박았으니 확실치는 아니하나 Modestina Val.. 2025. 4. 27.
업계 단연하는 언터처블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이탈리아산? The famous Venus Willendorf, an 11 centimeter figurine dating about 30,000 years old, was discovered in 1908 in the town of Willendorf, in the Wachau Valley in Austria. And today it is exhibited at the Museum of Natural History in Vienna. 너무나도 유명해서 구석기 비너스가 널부러졌지만 개중에서도 압도하는 셀렙이라, 빌렌도르프 비너스(Venus Willendorf)다. 약 3만 년 전 유산으로 11cm 크기밖에 되지 않는 구석기 조각으로, 1908년 오스트리아 바하우 계곡 Wachau Valley 빌렌도르프Willendo.. 2025. 4. 27.
저승길에도 불은 필요한 법, 투탕카멘을 위한 활비비 라이터 Tutankhamun's (r. 1332-1323 BC) lighter, from Tomb of Tutankhamun, Valley of the Kings, Luxor, Egypt. These holes, when this wooden stick is rotated (next to it), fire immediately ignites.오늘 저걸로 애꿎은 애들 데리고 한창 장난질 친 박영재 군이 갖고 놀던 그것바로 라이터다.우리 말로는 활비비라 한다는데, 활 같은 도구로 비벼서 불꽃을 일으킨다는 뜻에서 취한 이름인가 싶다.간단히 성냥, 라이터라 생각하면 된다.열을 마찰케 해서 불꽃을 일으키는 것이다.한데 이 분은 좀 사연이 있어 그 유명한 투탕카멘 왕묘 출토품이다.왜 저걸 무덤에 넣어줬는지 모르겠지만 저승.. 2025. 4. 27.
불가리아 바르나, 가장 빠른 황금을 제조한 공장 좀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황금이 아닌 것도 아니요 황금으로 할 짓 안 할 짓 다했다. 계속 줄곧 소개하는 불가리아 바르나 네크로폴리스 Varna Necropolis 라는 데서 출토한 황금 유물들이라 부적amulets, 반지rings, 귀걸이piercings 따위다. 저 공동묘지 중에서도 graves 330, 333, and 334라 명명한 곳에서 출토한 것들로 저 무덤 연대는 놀랍게도 Late Chalcolithic, second half of the 5th millennium BC라, 기원전 4천500~4천년 무렵이다! 저때 지구상은 대부분은 신석기시대라, 그 신석기시대에 저들은 구리보다 먼저 금을 만들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 더 연대가 올라가는 황금 유물이 비단 저기가 아니라 해도 다른 데서도.. 2025. 4. 27.
왜 몽골 제국은 정복에 환장했을까? 이 몽골 제국 팽창역사를 보면 언제나 궁금한 점이 왜 저리 땅을 넓히지 못해 환장했을까다.대체 왜 저랬을까?그냥 힘 자랑하려고?저 발판은 말할 것도 없이 칭기스탄이 추동했는데 왜 그는 그토록 땅을 넓히고자 했을까?왜? 왜?왜?보통은 이 정도면 됐다 하고 내치로 돌아서는데, 왜 몽골 제국은 아무리 초창기라는 시점을 고려한다 해도 저렇게도 무지막지하게 쳤을까?문제는 저러 넓혔다 해도, 진짜로 알짜배기 인구 기준으로 먹은 데는 중국 정도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땅만 넓었지 실은 내실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 물론 아랍권 같은 데서는 일부 예외가 있을 수는 있지만 말이다.저에 견줄 만한 땅덩어리가 러시아지만, 저 러시아도 실상 인구 기준으로 보면 그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베리아는 요새 지하자원으로 새롭게 부.. 2025. 4. 27.
논문 검색의 회고 (4): 온라인에 둥지를 튼 저널들 필자가 대학원 생활을 시작할 당시에는 온라인 저널이란 없었다. 모두 인쇄본으로 출판되고 나면 종이 학술지가 전 세계 도서관에 뿌려졌다. 그러다 보니 MEDLINE에 올라간 저널은 대단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2000년대부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그 여파가 학계를 덮쳤다. 우선 학술지가 온라인 상에 둥지를 틀었다. 원래 학술지에 논문 투고는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출력물을 국제 소포로만 가능했다. 2000년 이후부터는 온라인으로만 투고를 받는 학술지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종이와 우편물로 투고받을 당시에는 투고자로부터 3부의 논문을 받아 한 부씩 심사위원에게 보내 심사를 마치면 다시 편지나 팩스로 결과를 알려줬다. 온라인 학술지가되면서 이 과정이 필요 없어졌다. 온라인으로 투고를 하고, 온라인으로.. 2025. 4. 27.
논문 검색의 회고 (3): 혁명아 앨 고어 당초에 MEDLINE은 원래 전화번호부 만한 INDEX MEDICUS를 보지 않고 간단한 터미널 검색만으로 초록을 확인할 수 있어 이 시스템이 가능해졌을 당시 모두 혁명이라고들 했다. 그런데-. 이 당시까지만 해도 MEDLINE은 공짜가 아니었다. CD는 대학 도서관에 공급되었는데 미국에서 돈을 받고 팔았다. 매년 일정액을 내고 우리나라 의학도서관에서도 MEDLNE을 사용했다. 여기서 앨 고어가 나온다. 앨 고어는 아마 미국 부통령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일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필자의 전공, 대학에서 연구하는 사람으로 본다면 앨 고어는 혁명아다. 엘 고어는 부통령으로 재직 당시 했던 일중에 여러 가지 중요한 성취를 했는데그 중에서도 필자와 관련하여 가장.. 2025. 4. 27.
논문 검색의 회고 (2): MEDLINE 논문 검색 변천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필자의 기억에 의존하는 터라세세한 부분에서는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 양해 바란다. 아무튼 발행된 논문이 완전히 온라인 상에 숨어버려 사실 의미가 별로 없을 수 있는데 필자가 대학원 학생이던 당시에는 논문 index란 가상의 개념이 아니라 도서관에 있는 index medicus라는 전화번호부 닮은 책, 혹은 도서관에 CD로 비치되어 터미널로 검색가능한 (온라인이 아닌) MEDLINE이 안에 들어 있는 저널들 목록이 index였다. 지금 SCI니 SSCI니 AHCI니 하는 논문 목록 리스트는 (심지어는 우리나라 학진등재지까지도)이제는 수준 있는 학술지 리스트처럼 되어 버렸지만 당초에는 그런 것이 아니라 CD나 단행본 책에 저널 논문이 실리니 만큼매우 제한적인 논문과.. 2025. 4. 27.
논문 검색의 회고 (1) Index Medicus 최근에는 온라인 상에서 논문 원문을 쉽게 구하고, 원문 공개를 안하면 공개적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젊은 세대에게는 그런 시절도 있었나 싶겠지만, 필자의 대학원 시대는 도서관에서 논문을 찾던 시절에서 메드라인을 검색하는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 단계였다. 필자가 대학원 초년병 때는 대학 도서관 비중이 정말 중요해서 도서관 1층은 단행본, 2층은 국내외 학술지가 빈틈 없이 전시되어 있었다. 필자가 대학원생이던 무렵, 교수님들께서 쪽지에 찾아와야 할 논문을 적어주시면, 필자가 하는 일은 도서관에 가서 학술지에서 해당 부분을 찾아 논문을 복사해 교수님들께 돌려드리는 일이었다. 이 작업이 되어야 기본적으로 연구가 시작될수 있으니, 대학원생 일은 논문 찾기부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시대였다. 최근에는 병원도.. 2025. 4. 27.
노년의 연구 생산성을 유지시키는 것은 AI 필자가 보건데, 필자가 대학원 들어올 때와 같은 상황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면, 정년과 함께 연구를 접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그 당시와 많이 다르다. 우선, 연구 성과를 발표할 통로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필자가 대학원 시절 때만 해도 국제학술지라고 해 봐야 몇 개 되지도 않았다. 특히 그 당시에는 전자투고도 없는지라, 국제학술지 투고를 소포로 했다. 소포 안에는 논문 카피 3부를 출력해서 보내게 되어 있었다. 사진은 도판 3부를 일일히 만들어 레터링을 다해서 보내야 했다. 심사위원 3명에게 보낼 카피를 투고자가 준비해야 했던 탓이다. 이렇게 보내 논문이 채택되면 좋은데 거절이라도 당하면 처음부터 논문 출력, 사진 인화 ( 그당시에는 사진을 인화했다), 레터링 작업을 다시 해야 .. 2025. 4. 27.
그림은 그림일뿐, 그림이라서 간다 유럽 여느 동네에 가도 흔히 마주하는 이런 풍경을 우리는 그림 같다 한다. 그래 그림 맞다. 가서 보면 진짜 좋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저 그림도 이틀이 지나면 지긋해지기 시작하고 사흘이면 물린다.따분하다. 무료하다. 왜?그림이니깐.신기루가 신기루인 줄 몰라서 찾아가겠는가?신기루인 줄 알면서도 찾아간다. 그림이 그림인 줄 몰라서겠는가?그림인 줄 알기에 갈 뿐이다. 나 역시 하등 예외일 수 없다. 알면서도 간다. 아니 알기에 더 가고자 할지도 모른다. 저기는 이탈리아 그라다라Gradara라 한다는데 난 가 본 적 없다. 더럽기 짝이 없는 가장 아름다운 항구 나폴리https://historylibrary.net/entry/%E3%84%B7-668 더럽기 짝이 없는 가장 아름다운 항구 나폴.. 2025. 4. 27.
생각과 많이 다른 60이후의 연구 패턴 60이후의 연구가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막상 해 보니 더 많이 다르다. 일단 실험실을 버리고 작업해도 연구 실적은 나오고 성과는 계속 나온다. 실험실이 있으나 없으나 별 차이 없는 것 같다. 필자 연구의 상당 부분이 이미 실험실 밖으로 이동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생각과 다르다. 머리속으로 생각한 것과는 달라 60이후 시도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또 생각지도 않았던 방향이 열리기도 한다. 해보지 않고 머리속으로 그리는 인생이란 이래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60이후에도 왕성한 연구를 꿈꾸는 분들은 반드시 퇴직 이전 미리 이전의 연구패턴을 정리하고 새로운 연구패턴을 시도해 보기 바란다. 퇴직 후에 부랴부랴 그때부터 마련하는 연구패턴, 생활 패턴은아무리 평생을 부지런히 살았던.. 2025. 4. 27.
싱글맘을 자처한 만명, 계림을 탈출하다 충북 진천은 신라시대 중기에는 만노군萬弩郡이라 일컬었다. 신라 진평왕 시절, 계림을 흔든 일대 러브 스캔들 당사자 중 한 쪽인 김서현金舒玄은 총망받는 동량이었지만, 진평왕 엄마로 시퍼렇게 살아 아들을 왕위에 앉혀놓고선 신라를 주무른 태후 만호萬呼한테 찍힌다. 서현이 만호의 딸 만명萬明과 놀아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서현과 만명은 혈통이 달랐다. 내가 어느 쪽인지 까먹었는데, 모계로만 따지는 이 혈통이 당시 왕비는 다 말아먹었으니, 한쪽이 지금의 경북 의성 지방에 뿌리를 둔 조문국에 뿌리박는 진골정통眞骨正統이요, 다른 쪽은 왜 왕실에서 비롯하는 대원신통大元神統이라 두 인통姻統은 통합이 불가능했다. 저 새끼 가만 안 두겠다 엄마가 야마가 돌아버리자, 진평이 조용히 나서서 중재를 한다. "엄마 쫌만 기달리 주.. 2025. 4. 27.
바르셀로나에서 500년 된 중세 난파선 발굴 바르셀로나 고고학도들이 이곳 시우타데야 공원Ciutadella Park 인근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다가 잘 보존된 중세 선박을 발견했다고 Servei d'Arqueologia de Barcelona가 최근 공개했다. 이 이름 양태 보아 바르셀로나 고고학 서비스 분야 담당 부서 같다. "시우타데야 I [Ciutadella I]"라는 이름을 얻은 이 선박은 과거 수산 시장fish market(Mercat de Peix)이 있던 곳 지하 약 5미터 지점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이 지역은 과학 및 혁신 연구 중심지로 재개발되고 있다. 이 선박은 길이 약 10미터, 너비 약 3미터다. 30개가 넘는 곡선형 목재 리브curved wooden ribs[아마 만곡재라 옮길 것이다]와 최소 7개 선체 판자hull pl.. 2025. 4. 27.
신라말 대규모 학살 흔적, 이 엄청난 소식을 깔아뭉갠 국가유산청 '베이고, 찔리고' 진주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사람 뼈 정체는? '베이고, 찔리고' 진주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사람 뼈 정체는?[학술이 술술]은 우리 지역에서 나오거나, 지역을 다룬 학술 논문, 연구 보고서를 쉽게 풀어 설명하는 연재입니다. 배움은 모두의 것이니까요.지난해 8월 진주성 앞에 조성된 진주대첩기념광장. www.idomin.com 이 뼈다귀 연구는 내가 안심하는 구석이 있으니 이를 주도하는 친구가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 김헌석인 까닭이다. 이 친구 물건이라 향후 한국 고고과학은 이 친구가 말아먹을 날 올 것이다. 그만큼 내가 기대하는 바도 크다. 나는 저 인골 출토 소식 자체도 실은 몰랐거니와, 이미 떠난 마당이었고 정신이 딴 데 가 있었으니 더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뭐 요새 국가유.. 2025. 4. 27.
머리끈 중노동 흔적이 그대로 뼈에 드러난 청동기시대 누비아 여인들 헤드 스트랩 head strap, 혹은 텀플라인tumpline, 그리고 고인류학 헤드 스트랩 head strap, 혹은 텀플라인tumpline, 그리고 고인류학지금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 핵심 소재가 헤드 스트랩 head strap, 곧 글자 그대로는 머리 끈 정도로 번역되는데, 이걸 부르는 전문용어가 따로 있는 모양이라 텀플라인tumpline이라 하는 모양이다. 그historylibrary.net 앞에서 이 이야기 전 단계인 헤드 스트랩 head strap, 혹은 텀플라인tumpline은 일목요연히 설명했으니, 에누리 없이 그대로 핵심으로 치고 들어간다. 지금의 아프리카 수단을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누비아Nubia라 불렀거니와 이 건조한 사막 평원을 살다간 그 시절 여성들은 단순히 가정의 기둥을 넘어 공.. 2025. 4. 27.
바이킹이 떡대? 그들은 리오넬 메시였다 바이킹들은 정말 키가 얼마나 컸을까? 바이킹이 거대한 거인이었다는 이 모든 생각을 정리해 보자. 주로 할리우드 이야기일뿐이다. 진실은 실제 뼈를 봐야 한다.1. 바이킹 키에 대한 실제 통계고고학자들이 바이킹 매장지를 발굴하고 대퇴골을 측정했을 때, 700년대 후반부터 1100년까지 바이킹 시대 북유럽 남성 평균 키는 약 170cm였다. 북유럽 여성 평균 키는 약 157cm였다. 당시 기준으로는 건강하고 강했지만, 군중을 압도하는 키는 아니었다. 참고로, 영국의 이웃인 앵글로색슨족 평균 키는 약 170cm로 그다지 작지 않았다. 바이킹족은 생선, 육류, 유제품을 많이 섭취했기 때문에 키가 약간 더 컸을지 모르지만, 실제 차이는 없었다.2. 노르만족은 어땠을까?노르망디에 정착한 노르만족Normans은 롤로의.. 2025. 4. 26.
헤드 스트랩 head strap, 혹은 텀플라인tumpline, 그리고 고인류학 지금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 핵심 소재가 헤드 스트랩 head strap, 곧 글자 그대로는 머리 끈 정도로 번역되는데, 이걸 부르는 전문용어가 따로 있는 모양이라 텀플라인tumpline이라 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텀플라인이란 무엇인가? 그림 혹은 사진으로 그 실체 혹은 의문을 풀어본다. 언뜻 우리네 농촌에서 얼마전까지 흔한 지게로 둥구리를 져 나르는 장면 아닌가 하겠지만, 울러맨 것은 바구니라, 그 바구니 안에 장작감 나무를 잔뜩 넣고는 매고 하는데 아지메다. 한데 어깨에 짊어진 것이 아니라 저 무거운 짐을 오로지 이마에 까지 걸친 머리 끈 하나로 의지하고 간다. 저렇게 오래 생활하면? 볼짝없다. 목디스크 오고 난리난다. 골병 든다는 말 있는데 딱 안성맞춤이다. 셀파 같은 사람들이 험준한 산길을 .. 2025. 4. 26.
조선, 연구자는 단 한 명도 없던 동아시아의 이단아 신동훈 선생도 계속 비슷한 말씀하시는데 근대 이전 조선에는 학문 혹은 연구라 할 만한 흔적 자체가 없었다.이 점이 같은 동아시아 권역 문화권 중에 조선의 이단적 측면인데 서구식 근대 학문을 만나기 전에도 중국이나 일본에는 끊임없는 의심과 그 해결을 위해 매진하는 움직임이 부단했다.한데 조선은 그런 의심 분석 연구 자체가 아예 없다. 모조리 프라퍼갠더라 학문이라 하지만 실은 이해를 위한 정리밖에 없었으니 조금 예외가 될 만한 이가 김정희 금석학 정도가 있을 뿐이었으니 다산?다산 뭐가 연구자란 말인가? 세상 쓸데없는 이야기만 줏어보아 자고로 인간이라면 위정자는 이러해야 한다는 훈시밖에 하지 않았다.강역고니 뭐니 그럴 듯해 보이나 아해들 장난 같아 몇개 찾다 말았으니 단물만 쪽 빨아먹고 이내 버린 껌과 같았다.. 2025. 4. 26.
베네치아, 절박이 만든 도시 베네치아는 단단한 땅 위에 선 것이 아니라 해저에 박은 수백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버팀하는 도시다.서기 421년 이래 이 떠다니는 도시는 시간과 공학의 법칙을 무시했다.다른 도시들이 바위나 콘크리트 위에 서 있는 반면, 베네치아는 소금물에 잠긴 나무 통나무 위에 있다.나무는 진흙에 묻고 소금에 쩔면약해지지 않고 석화petrified한다수세기가 지나면서 굳어지고, 거의 돌처럼 지지력이 강해진다.이 고대 경이로움이 여전히 마을 전체를 지탱하고 있다.산 마르코스 종탑 San Marcos Bell Tower에는 10만이 넘는 이 나무 파일럿이 박혀 있다.장엄한 바실리카 델라 살루테Basilica della Salute는 백만 주 이상 나무기둥이 필요했다.모든 말목은 인력으로 박았고, 0.5미터마다 간격을 두었으.. 2025.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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