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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비스 문화] 클로비스 창은 동물을 도살하는 데도 썼다 by Bob Yirka, Phys.org 미국 여러 기관 고고학자 및 인류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이 초기 북미 인구 집단인 클로비스인들Clovis이 소위 클로비스 창Clovis points을 창촉으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사냥한 동물을 도살하는 데에도 사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를 발견했다.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Reports에 발표된 이 연구에서 연구팀은 사냥꾼들에게 클로비스 창을 사용하여 들소를 도살하게 하고 그 성능을 조사했다.이전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1500년부터 10800년까지 북미 일부 지역에 고대 아메리카 문명이 존재한 것으로 밝혀졌다.이 문명은 클로비스 문화Clovis culture라고 일컫는다.클로비스 문화의 가장 두드러진 증거는 독특한 홈이 파인.. 2026. 2. 3.
잉카 어린이 희생 제사에 의도적인 미라화 증거 확인 고고학자들이 잉카의 카파코차 의식Inca capacocha ritual에서 희생된 어린이를 의도적으로 미라화한 최초 사례를 발견했다.이 발견은 바르샤바 대학교 다그마라 소차Dagmara Socha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이 했다.정밀 조사 결과, 시신에 의도적인 사후 변형deliberate postmortem alteration이 가해졌을 뿐만 아니라 식도 확장enlarged oesophagus과 폐 석회화calcifications in the lungs 등 여러 부상과 병리학적 변화가 발견되었다. 카파코차Capacocha는 잉카 제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의식 중 하나로, 주요 신들에게 어린이와 젊은 여성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었다.스페인 연대기 작가들은 남아메리카 정복 이후 이 의식을 기록했지만, 그.. 2026. 2. 3.
[클로비스 문화] 북미 클로비스 창촉은 불과 300년간 만 잠깐 쓰다 사라져 by Keith Randall, Texas A&M University (2020년 10월 23일) 1930년대 초 뉴멕시코주 클로비스Clovis 근처에서 발견된 석기 도구 이름을 딴 선사 시대 문화인 클로비스 문화 연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이들은 마지막 빙하기 말기에 북미에 거주한 것으로 추정한다.뼈와 유물에 대한 새로운 분석 결과, 클로비스 도구는 13,050년 전부터 12,750년 전까지의 짧은 300년 동안에만 제작된 것으로 나타났다.텍사스 A&M 대학교 인류학과 석좌교수이자 최초 아메리카인 연구센터Center for the Study of the First Americans 소장인 마이클 워터스Michael Waters 교수와 인류학자 데이비드 칼슨David Carlson, 그리고 콜로라.. 2026. 2. 3.
[클로비스 문화] 14,000년 전 알래스카 유적에서 드러난 아메리아 대륙 초기 인류 활동 흔적 by Paul Arnold, Phys.org 아메리카 대륙 최초 정착민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다. 알래스카 한 고고학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 및 상아 도구 연대 측정 결과, 초기 개척자들이 약 14,000년 전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하는 길에 이 지역을 거쳐갔음을 시사한다.클로비스Clovis 문화와의 연결고리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들인 사람들의 시기, 이동 경로, 그리고 적응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오랫동안 클로비스인들Clovis people이 최초 거주민으로 여겨졌지만, 인류가 수천 년 더 일찍 도착했다는 증거들이 발견되면서 이 이론은 도전을 받는다.하지만 Quaternary International에 발표된 새로운 논문은 알래스카에서 발견된 석기들이 후기 클로비스 문화Clo.. 2026. 2. 3.
43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손으로 잡는 나무 도구 튀빙겐 대학교University of Tübingen 제공 한 국제 연구팀이 인류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손으로 잡는 나무 도구hand-held wooden tools를 발견했다.튀빙겐 대학교 젠켄베르크 인류 진화 및 고환경 센터Senckenberg Centre for Human Evolution and Palaeoenvironment 카테리나 하르바티Katerina Harvati 교수와 레딩 대학교 안네미케 밀크스Annemieke Milks 박사가 공동으로 이끈 이번 연구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중부에 위치한 마라투사Marathousa 1 유적에서 발견된 43만 년 전 유물을 소개한다.PNAS 저널에 발표된 이번 발견은 인간이 제작하고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점 유물로 구성되며, 하.. 2026. 2. 3.
스페인서 발견된 희생 말이 폭로한 철기 시대 장거리 동물 이동 스페인 서부 타르테스 문화 유적Tartessian site인 카사스 델 투루뉴엘로Casas del Turuñuelo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은 약 2,500년 전 대규모 제례 행사에서 희생된 동물들 생애를 재구성했다.이 연구는 동물 이빨이 보존한 화학적 신호chemical signals 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 신호에는 식단, 수원water sources, 다양한 지형을 넘나드는 이동 경로에 대한 정보가 담겼다.카사스 델 투루뉴엘로는 바다호스Badajoz 주 과디아나 강 유역Guadiana River basin에 위치한다.발굴 조사 결과, 후기 철기 시대 대형 어도비 건물adobe building 한 채가 발견되었다.기원전 5세기 말 무렵, 사람들은 이 건물 안에서 연회를 열었다. 그 직후, 약 125제곱미.. 2026. 2. 3.
조선시대 미라 단행본의 최종 출간 Korean Mummies of the Joseon Kingdom: An Introduction for ArchaeologistsKorean Mummies of the Joseon Kingdom: An Introduction for Archaeologistswww.amazon.co.uk작년 계속 작업한 조선시대 미라 단행본이 영국 Archaeopress에서 최종 출간되었다. 구미권 서점에는 이미 깔리기 시작했는데 출판사로부터 출간된 책은 아직 받아보지 못했다. 이 책이 나올 때까지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책의 출판에는 을지대 오창석 교수, 경희대 홍종하 교수가 Asso. Editor로 함께 참여했음도 알려드린다. 2026. 2. 2.
일본 동경과학박물관 사진 해제 일본 동경에 있는 국립과학박물관에서 촬영한 사진에 대해 조금 써 본다. 이 과학박물관은 동경국립박물관 바로 맞은편에 있다. 다른 나라의 자연사박물관에 해당하지만그 외에 과학사 관련 자료도 함께 전시한다. 건물은 넓지 않지만 공간을 좁게 써서 전시물은 상당하다. 일본의 과학사 발전, 그리고 동물고고학, 인류학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한 번 방문할 만하다. 고고학 관련 편년은 조금 보수적이라요즘 유행하는 야요이 신편년만큼 끌어올리지는 않지만야요이인의 이동에 대해서도 보수적이라 야요이인의 원향에 대해서는 한반도를 명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인골자료도 꽤 있고 동물 자료 전시도 상당하다. 과학사는 메이지 이후 일본과학의 발전에 촛점이 맞춘다. 2026. 2. 2.
일본 동경과학박물관(3): 도래인 2026. 2. 2.
일본 동경과학박물관(2): 고인골 2026. 2. 2.
일본 동경과학박물관 (1) : 일본사에서 과학관측의 시작 2026. 2. 2.
"창의적으로 늙어가는 노화"는 가능한가 "창조"와 "노화"는 서로 반대의 개념인가 아닌가. "노인의 지혜"란 오랫동안의 경험으로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추이를 좀 더 높은 확률로 예측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창의성, 창조란 노인과는 관계가 없는 셈이다.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고, 그렇게 없던 이야기를 새로 생산해 내는 것에 보다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학계라는 데서 본다면, 노화가 창조, 창의성의 반대가 된다면 결국 일정 시점에서는 반드시 연구라는 데서 손을 떼야 하는 시점이 도래할 것이다. 창의성을 유지하면서 노인으로 늙어가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아니면 젊은 시절 해온 일을 종합하고 정리하면서 사라져야 할 것인가.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니 알 수가 없다. 필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여러분들이 보기에 창의적인가 .. 2026. 2. 1.
조선시대 회곽묘와 미라: 한글판 집필 중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조선시대 미라에 대해서는 영어 단행본이 나옴으로써 필자의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국내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조선시대 회곽묘와 미라에 대한 단행본을관련 박물관 분들과 함께 현재 준비 중이다. 올해 안에 단행본으로 전해 드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영어로 출판된 책과는 다를 것이다. 독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의 눈높이에 맞추어 새로 쓰고 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설명은 해외 독자에게는 필요했지만 국내에는 필요없으므로 과감히 생략하였고, 과학적 연구에 대해서는 영문판보다 내용을 더 줄였다. 반면 영문판에는 많지 않던 회곽묘 발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늘이고 (이 부분은 박물관 선생님들께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한국에서 조선시대 회곽묘와 미라 연구에 파생되는 다양한 주제를 새로 포괄하고.. 2026. 2. 1.
아들 다섯 중에 4명이 적자, 1명이 서자라면? 그리고 한 번 서자가 되면 그 아래 후손들은 모두 서얼 금고로 묶어 버린다면, 4대가 내려가면 "적자후손"과 "서자후손"은 각각 몇 명이 될까? (계속 다섯 명씩 낳고 그 중 네 명이 적자라는 것을 전제로)해답은 적자가 256명, 서자가 369명이다. 불과 4대만에!! 이 차이는 대가 올라갈수록 점점 커져서, 5대째가 되면 적자가 1024명, 서자가 2,101명이 되어 차이가 1000명 가까이 벌어진다. 8대째가 되면 적자가 65,536명, 서자가 325,089명이 된다. 사람들이 아들 다섯을 낳아 그 중 한 명만 서자로 만들어도 이렇게 숫자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서얼금고를 영구화한다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조선시대-. 처음에는 서자 몇 안되니 저 후손은 영구적으로 금고시키자고 생각하고 묶어버렸을 것이다.. 2026. 2. 1.
서자와 노비는 조선후기사의 뜨거운 감자 필자가 누차 하는 이야기지만우리나라 조선후기인구 전체에서 노비와 서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높을 것이라 본다. 필자가 보기엔 거의 90프로 가까운 인구가 노비와 서자에 포함될 것이라 보는데 이는 18세기까지도 각종 호적의 기록, 그리고 서자의 숫자에 대한 당대 인물들의 증언에서 여실히 알 수 있는 바다. 앞에도 썼지만 우리 집안은 명문 사족, 우리는 양반집안 출신이라고 생각 하는 분들도 태반은 서출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서출? 대단한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내내 한 번만 서자가 중간에 조상 중에 끼면그 집안은 서출이 되는 것이므로. 단순히 양반으로서 퇴락하여 몰락한 것이 아니라, 몰락할 수밖에 없는 조건, 다시말해 조상 중에 한 번만 서자가 나오면 그 이후 줄줄이 금고되어야 하는.. 2026. 1. 31.
산수계산이 안 되는 조선시대 위정자들 앞에서 우리나라 서얼(서자)의 문제를 좀 썼는데여기에 대해 좀 더 써 보겠다. 우리나라 서얼문제의 고질적인 부분은위에 조상 중에 한 명만 서얼이 있어도 그 이후로는 전부 금고로 묶여 버린다는 데 있다. 따라서 어떤 집안 자손들이 적자와 서자가 1대 1의 비율로 나온다고 치면, 적자가 될 확률은 1/2이지만 10대만 내려가면 적자로 계속 이어져 금고의 위험이 없는 이는 1024명 중에 한 명이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서얼이 얼마나 많았는가 하는 건 영정조 시대에 벌써 전체 인구의 절반이 서얼이라는 소리가 심심찮게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18세기라면 아직 노비가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있던 시대인데 거기에 절반이 또 서얼이라면 도대체 제대로 된 양반은 몇 명이라는 말인가 싶지만, 아무튼 단순계.. 2026. 1. 31.
서자에게 살길을 틔워주는 가족 한국사에서 적자로만 내려오는 가계에 태어나기란 로또 맞는 것과 비슷하다. 여말선초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500여년을 30년에 1대만 쳐도 16-17대는 될 텐데 이 16-17대를 모두 적자로만 내려온다? 우리나라는 중간에 서자가 한 명이라도 끼면 바로 금고가 되었기 때문에 서자 적자의 비율을 1대 1로만 잡아도 17대를 모두 적자의 후손이 될 가능성은2의 17승 분의 일이니 도대체 얼마나 낮은 확률이겠는가? 조선왕조의 종친이 아닌 담에야 서자는 예외없이 금고되었으니 조선은 노비 못지 않게 서자의 한으로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족보를 보면, 서자가 분명한데도 적자처럼 기재해 놓은 경우가 있다. 아마도 집안에서 보낸 명단에 서자라는 말을 빼고 보내지 않았을까 싶은데, 족보 수단收.. 2026. 1. 31.
(되려) 민주적인 부계 족보 흔히 우리나라 초기 족보는 처가와 딸까지 다 상세히 적지만 부계 족보로 전환하면서 이런 풍조가 사라지고 가부장적 권위가 관철된 것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이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초기 족보는 부계를 망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의 처가, 외가, 딸에 사위까지 족보에 올리므로 족보를 만든 집안에 수준이 맞는 이들만 족보에 올라가게 된다. 쉽게 말해 신분이 떨어지는 집안은 이런 족보에는 거의 이름을 올리지 못한단 말이다. 따라서 초기 족보라 할 문화유씨 가정보, 안동권씨 성화보 등에는 서자의 이름이 없다. 레벨이 안되므로 올리지를 않은 것이다. 반면에 임란 이후 부계 족보로 전환하면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같은 부계 뿌리에서 나온 후손이라고 해도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 2026. 1. 30.
왜 사족들이면서도 선계 계보가 부실했는가 조선시대 사족들을 보면선계 계보가 매우 부실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필자가 보기엔 그 이유가 이렇다. 첫째로 조선시대 사족들의 경우 그 기원이 향리 출신인 경우가 많다. 집안이 일어난 시점이 빨라야 무신난 이후, 늦으면 여말선초이다 보니 제대로 된 계보가 애초부터 없었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대개 여말선초의 몇 대 조 정도 가지고 있는 정도가 많고 그 위로 중시조, 혹은 원시조의 이름 정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로 고려 전기부터 내려오는 귀족 명문의 경우, 일차적으로 무신란때 절단 난 집안이 많고, 여말선초에 제대로 사족집안으로 전환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아주 예외적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족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여 계속 번성한 경우도 있긴 한데 이런 경우는 계보가 상대적.. 2026. 1. 30.
대동보는 어떻게 팽창하는가: 어느 집안의 경우 (2) 앞의 이야기를 계속 써 본다. 그러면 이 문중의 족보는 그 이후 어찌 되었을까? 사실 이 집안의 첫 족보가 나간 뒤우리도 이 집안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사족 집단들이 계속 쇄도했다. 이 시점이 17세기이다. 앞에서 증손 11 분으로 계보를 만들었고, 또 선계를 모르는 다른 지역의 종족 한 집안이 별보로 들어갔다고 했는데 그 다음 족보에는 이미 알려진 증손 11 분의 아버지 대, 다시 말해 그 손자 일곱분 중 한 분으로 부터 갈려나갔다고 주장하는 두 종족이 새롭게 합보를 요청해왔다. 이 경우는 앞의 종족과 달리 명확히 갈려나간 조상의 이름을 특정했다는 점에서 다른 면이 있었지만, 문제는 옛 족보와 각종 문헌을 보면 그 할아버지는 아들을 한명만 두었을 뿐, 그 들의 주장대로 아들이 원래 있던 아들 집안 포함 .. 2026. 1. 30.
사족 집단이 선계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합보? 대동보의 성립 과정에서 엄연히 사족으로 인정할 만한 집단이 무더기고 선계를 잊어버리고시조나 이에 준하는 인물의 후손이라는 주장 하나만 달랑 들고 있는 경우에는이를 무작정 내칠 수가 없으니 대개는 처음에는 족보의 별보에 편성해 두었다가 그 후의 족보 어느 시점에는 문중 계보 어딘가에 연결시키기 마련이다. 물론 이를 끝까지 연결시키지 않고 그대로 족보에 실어두는 경우도 드물게는 있지만대개는 어디라도 연결시키게 된다. 백년전 족보에는 계보에 연결되어 있지 않던 종족집단이 백년 후 족보에는 아무 설명 없이 어딘가 누군가의 자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아무 설명도 없이라는 것은 당대의 족보에 대한 이야기로, 그보다 이전, 백년 전 족보를 보면 대개 그 연유를 써 놓은 경우가 많다. 이러이러해서 논란이 있다고 .. 202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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