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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와 그 이웃-44] 미라는 보존해야 하는가 매장해야 하는가 (1) 마왕퇴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미라 보존-재매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약간만 부연해 둔다. 이전에 올린 글을 다시 고쳐 썼다. **** 매스컴 타는 일을 썩 즐기지는 않지만 가끔이라도 조선시대 미라가 언론에 보도되면 거의 항상 반복 재연되는 논의가 있는데, 1) 미라는 이처럼 귀중한 연구 자산인데 제대로 연구도 없이 그냥 묻어버리고 화장하고 있다. 이것은 큰 문제다. 법률을 정비해서라도 제대로 연구할수 있게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또 하나는, 2) 미라도 사람인데 본인 허락도 없이 이렇게 과학적 연구라는 명분을 앞세워 맘대로 조사해도 되는건가. 연구자들은 죽은 사람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라.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1)번과 같은 입장은 미라가 지닌 학술적 가치..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43] 그 시대의 조미료 마왕퇴 1호묘에서 나온 것 중음식 맛을 돕는 향신료, 조미료로 볼 만한 것은겨자, 생강, 계피, 산초 등이다. 고추나 후추 등은 아직 없었을 터이고 여기에도 소금은 있었을 터이니 대략 대후 일족 같은 이런 최상층 귀족들은 이 정도의 조미료 향신료로 맛을 내며 음식을 즐긴 셈이 되겠다. 이 중 겨자는 인더스 문명권에서는 하라파 문명 절정기에도 이미 활발히 재배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중앙아시아에도 6,000년 전에는 재배가 시작되었을 것이라 하니 겨자가 이 지역들을 거쳐 중국으로 도입된 것 역시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혹 한나라 시대 서역과의 교통이 열리면서 함께 반입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나마왕퇴는 그 시기보다 빠르다.중국에서 겨자 재배의 오랜 기록은 확인해 보았지만 분..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42] 계피, 약재와 향신료의 갈림길 여성 미라가 출현한 마왕퇴 1호묘에서는 계피桂皮가 나왔다고 한다. 이 계피는 정확히 말하자면 시나몬cinnamon이 아니다. 계피에 대한 기록은 동아시아에서는 신농본초경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어문헌상으로는 후한대 이전으로 올라가기 어렵다는데 마왕퇴 1호묘에서 계피가 나왔으니 전한대에도 계피가 쓰였음이 실물로 입증되었다. 원래 계피는 우리나라는 대체로 수입종이라 계피 자체는 동아시아산이 아니라 남아시아에서 들어왔다고 보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정확히 말하자면 반만 옳은 것이다.  계피에는 남아시아 산 실론계피 Cinnamomum verum와 중국 산 육계肉桂(Cinnamomum cassia)가 있는데 이 둘은 동일 속이지만 종이 서로 다르다. 전통적으로 남아시아와 중국에서 각각 오랫동안 재배[혹은 자..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41] 마왕퇴 시신을 보존해야 하는가 중국에서는 마왕퇴 이전 고고학 발굴 중 확보한 시신을 보존해야 한다는 원칙이 없었다. 따라서 마왕퇴 이전에도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된 시신이 출현했고그 사실이 보고서에 적시되어 있음에도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사라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산동에서 발견된 명나라 노황왕 주단의 시신은 미라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전혀 수습되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명나라 신종의 릉인 정릉은 1957년에서 1959년 사이에 발굴되었는데이 무덤에서는 신종과 왕비 일족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인골 상태로 계속 보존되었던 것 같지만 1966년 문화대혁명 와중에 "지주계급의 우두머리인 만력제를 타도"한다는 명목하에 홍위병에 의해 모두 태워졌다. 때문에 마왕퇴의 시신 역시 발굴 직후 이는 보존할지 그렇지 않고 없애버..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40] 1호묘의 동물뼈 1호묘에서는 동물뼈가 많이 나왔다 한다. 지금 그 분류가 끝나 이미 어떤 종류의 동물뼈가 있었는지는 알려져 있다. 써 보면 다음과 같다. 총 24종 동물뼈가 나왔다.우선 네발 짐승에는 토끼, 개, 돼지, 사슴, 황소, 양 등의 뼈가 나왔는데 이 중 사슴을 제외하면 모두 가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류에는 기러기, 원앙, 오리, 닭, 꿩, 학, 비둘기, 올빼미, 까치, 참새 등이 있다. 야생조류와 가금이 두루 요리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닭은 이미 이 시기에는 중국 대륙의 경우 안정적인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있었다. 네발 짐승과 조류를 보면 가축-가금 사육이 이미 정착해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같은 시기 한반도에서는 이 정도 가축과 가금 뼈가 나오지 않고야생동물뼈 비율이 훨씬 높다.  마왕퇴 시기 한..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39] 그릇이 식사법을 말한다 앞서 쓴 그릇과 식사법 이야길 조금 더 해 본다.유명한 무용총 벽화 한 장면이다. 여기서 필자가 이야기하고픈 것은 바로 주인 내외로 보이는 두 사람의 앞에 나온 밥상이다. 겸상하지 않고 각자 밥상을 받았다. 사이에는 식사를 돕는 사람이 있다. 이 밥상의 모양을 보자. 그리고 현대한국인의 밥상을 보자.뭔가 닮아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결국 그릇 종류와 배치는 식사법을 말해준다고 본다. 반면 마왕퇴 밥상차림을 보자.이런 배치라면 식사법이 달랐을 것이다. 결론은 결국,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인의 밥상차림 연원은 상당히 올라갈지 모른다. 그리고 그 밥상차림은 마왕퇴와는 달라 보인다는 뜻이다. 이는 곧 식사법이 우리와는 뭔가 달랐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본다. 2025. 3. 9.
[마왕퇴와 그 이웃-38] 밥을 어떻게 먹었을까? 위 사진은 필자의 글에 김단장께서 붙여준 사진이다. 여기서 간단한 의문이 있다. 밥을 어떻게 담아 어떻게 먹었을까? 일단 젓가락만 놓여 있는데, 필자가 아는 한 중국에서는 한국처럼 원래 수저가 다 있다가 숟가락이 탈락한 것으로 안다. 저 위에 밥상을 세팅한 이는 현대 중국인의 밥먹는 방식에 따라 저렇게 놓지 않았을까. 과연 숟가락이 없었을까. 또 한 가지-. 밥을 주식인 곡물에 반찬을 곁들여 먹는 한국식 밥상 비스무리하게 차려 먹었을까. 밥상을 저렇게 차리면 비슷한 모양 다섯 개 칠기 그릇에는 요리가 각각 담겨 있었을까. 제일 왼쪽의 그릇 두 개가 하나는 국그릇, 다른 하나는 밥그릇일까? 모르는 것투성이이다. 2025. 3. 8.
[마왕퇴와 그 이웃-37] 관을 가득 채운 의문의 액체 마왕퇴 발굴 당시 관련자들의 주목을 끈것은 관속 액체였다. 마왕퇴는 전한 제후왕의 예에 따라 여러 겹 관곽이 포개져 있었는데 마지막 관을 열었을 때 그 안에는 상당량의 액체가 바닥에 차 있었고 썩지 않은 유물은 바로 그 액체 속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마왕퇴 무덤이 처음 열렸을 당시 하나도 썩지 않은 시신과 유물을 보고중국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은 부패하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처리된 것이라 보았다. 시신을 부패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원망은 사실 한대에 전혀 없던 것도 아니었고 그 시대에 시도했던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마침내 성공을 거두어 시신과 유물이 잘 남았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관을 열었을 떄 유물은 물론 시신까지 완벽하게 남은 것을 보고 당시 발굴에 참여한 사람들은 .. 2025. 3. 8.
[마왕퇴와 그 이웃- 36]: 마왕퇴 미라가 드신 음식들 역사와 고고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마왕퇴 하면 역시 그 호화찬란한 유물이겠지만 필자에게는 관심이 이 무덤에서 나온 먹거리에 있다. 1호묘에서는 많은 농산물 흔적이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대나무로 짠 바구니나 항아리, 자루 등에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음식물들이 발견되었을까? 그 종류를 보면 이렇다. 먼저 곡물에는 벼, 보리, 밀, 수수, 기장, 팥, 조, 콩 등이 있고기타 작물에는 뽕나무 열매 (오디), 해바라기, 겨자, 생강, 연근, 계피, 산초, 대마초, 오이 등이 있었다. 과일에는 딸기, 대추, 매실, 산복숭아, 배, 감 등이 있었는데 1호묘에서 발견된 미라가 되신 분 위장에서 발견된 참외 씨가 그 중 이채롭다. 이는 중국 쪽 기록을 보면 甜瓜라 되어 있어 멜론 종류인 것은 알겠는데, 이것.. 2025. 3. 8.
[마왕퇴와 그 이웃-35] 청동기시대의 비단옷 청동기시대 비단옷이라고 하면 대개 반응이 그 시대에 무슨 비단옷이라는 반응이 나오겠다. 그런데-. 중국은 양잠해서 비단을 신석기시대에 했다.용산문화기에는 이미 비단 생산이 완전히 정착했다고 하니까. 농경이 본격화한 청동기시대에 양잠에 비단이라고 해도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솔까 우리가 신석기시대에 예컨대 비단옷을 걸쳤다한 들, 혹 늦잡아 청동기시대 걸쳤다한들 그게 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양잠에 비단이라고 하면 요즘 보는 초고급 실크만 연상을 해서 그런데, 누에실로 짠 직물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우리나 일본의 경우는 농경 도입이 늦어 중국의 신석기시대에 볼 수 있는 변화가 청동기시대에나 뚜렷이 나타난다는 시각이 학계에 있다는 점-. 잘 안다. 다만 이런 부분은 한 번 생각해.. 2025. 3. 8.
유전학이 드러낸 훈족, 동양피도 있고 혼종이 심했다! 흉노족 연관성 부정할 수도 없어 4세기 후반에 유럽 역사를 바꾼 강력한 유목민 전사인 훈족의 기원은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의 주제가 되었다. 과거에 전문가들은 훈족이 몽골 대초원을 지배했지만 서기 100년경에 붕괴된 제국인 흉노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흉노가 붕괴된 후 유럽에서 훈족이 출현하기까지 3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역사상 미스터리였다.최근의 유전학 연구에서 이 오래된 의문에 새로운 빛을 던졌다.유전학자, 고고학자, 역사가로 구성된 팀이 370개 고대 유전체를 분석했다.이 샘플은 기원전 200년에서 서기 600년까지 약 800년에 걸쳐 있다. 이 연구는 유럽연구위원회European Research Council에서 자금을 지원한 HistoGenes 프로젝트 일부다. 부다페스트 소재 막스.. 2025. 3. 8.
[마왕퇴와 그 이웃-34] 누에 사육의 동진 중국은 동물 사육의 측면에서 최초로 가축을 사육하기 시작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한때 상당히 탐내서, 소, 말, 닭 등 각 종 가금 가축에 대한 유전정보 취합이 있을 때마다 중국기원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이 중에 현재 중국 내에서 최초로 사육되기 시작한 가축으로는 대략 돼지 정도가 거의 확실하며, 소와 말은 외래종이 분명하며 닭도 남방에서 북상했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다. 야생닭이 중국 본토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 떄문에 중국에서도 동물 사육은 개-- 돼지--기타 동물 순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많은데, 이 순서는 우리나 일본도 시간차를 두고 거의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동물 사육 측면에서 중국기원을 인정받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비단-양잠의 누에다. 알다시피 누에나방.. 2025. 3. 8.
[마왕퇴와 그 이웃-33] 중국의 비단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유물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아마도 비단 아닐까. 사실 마왕퇴 무덤에서 나온 유물에 대한 평을 다는 일이 필자로서는 조심스럽다. 비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여기서 매미 허물 같은 얇은 고도의 비단 옷이 나왔다던가, 상등품 비단에 그림을 그렸다던가, 글을 썼다던가, 이에 대한 문화적 가치에 대한 평은 필자가 내릴 수는 없다. 아마 김단장께서 좋은 글을 써 주실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비단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필자도 이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지 않다. 인간의 사육한 동물 하면 대개 소, 말, 돼지 등을 연상하기 쉽지만, 곤충도 사육한 동물에 포함된다.예를 들어 그 대표적 사육곤충 하면 누에와 벌이 있다. 이 중 누에는 야생종인 누에 나방을 키워 여기서 비단실을.. 2025. 3. 8.
거지 천국으로 만들어 놓은 국박 선사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선사실을 재개장했다 해서 돌아봤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무엇을 개비했다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보다 재개관이니, 그리고 세계 박물관 전시 흐름이 그러니 당연히 우리 박물관 선사실도 뽀사시하게 비름빡 칼라부터 알록달록 원색 계통, 예컨대 붉은색이나 파란색 혹은 그것이 아니라 해도 분홍색이나 노란색 정도로는 쏵 뺑끼칠 새로 하고 나아가 유물 안내 태그만 해도 요새 모든 세계 박물관 미술관이 그렇듯이 그런 흐름 궤를 같이해서 파란색 계통으로 완전히 개비했을 줄로만 알았다. 한데 문을 박차고 들어선 순간내가 70년대 대학박물관 들어선 줄 알았다. 도대체 무엇을 바꿨다는 것인지 무엇을 개비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색은 여전히 칙칙하기 짝이 없어 어디 거지 소굴.. 2025. 3. 8.
파동은 시간과 공간을 넘는다, 불상 혹은 불교의 경우(updated) 중국 고대사를 공부하시는 충북대 임병덕 교수님은 나랑은 이런저런 인연으로 얽힌 분이다. 어쩐 일로 페이스북이라는 sns 공간까지 연결되어 이런저런 정보를 주고받는 연으로 발전했거니와, 선생은 나를 통해 주된 분야인 중국사를 배운다는 겸양을 표하지만, 설혹 그럴 여지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나 역시 선생을 통해 귀한 정보들을 접하기도 한다. 선생이 내 글에다가 자주 형의전 이라는 대만 학자분 연구성과를 소개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내가 저 분야를 전업으로 삼는 연구자는 아닌 까닭에 나로선 생소한 분이라그 분이 邢義田 이라 쓴다는 이 사상사학도 내지 역사학도라로 짐작하거니와 선생 전언을 종합하면 이 분이 동서교류사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랑 얼추 비슷한 그림을 그리신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아래 .. 2025. 3. 8.
없는 집에 제사? 생일만 많더라 맹자는 군자 삼락을 들었으니개중 첫번째로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가 별 탈이 없는 것이 첫번째 즐거움이라했거늘이에서 비롯하는 고통이 적지 않다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저를 간단히 정리하면 화목한 가정이라화목한 가정이 좋기만 한가?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이다.없는 집에 제사만 자주 돌아온다고저 화목한 가정에 무슨 이벤트는 그리 많은지제사야 요새 간식화 바람 타고 우리집에서도 아버지 제삿날 딱 하나로 줄이고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엎어버렸지만무슨 기념일이 그리 많은지온 식구 생일은 왜 그리 많고 자주 돌아오는지 달마다 뻘건 생일 없는 때가 없고더하여 생일이면 생일이지 환갑이라고 칠순이라고 팔순이라고 구순이라고또 요새는 뇐네들이 고래심줄이라 걸핏하면 백수까지 하시니 이 기념한다고 식당 빌리고 난리블루스 추어댄다... 2025. 3. 8.
불가 관욕灌浴과 동경 절터에서 발굴되거나 혹은 사찰에 전해내려오는 동경銅鏡은 흔히 불화나 불상의 복장낭, 복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지만여기에 또 하나의 용도가 추가되어야 한다.바로 관욕灌浴 의식에 사용된 사례다.어쩌면 불화 복장낭으로 사용된 예만큼이나 관욕의식에 사용된 사례도 빈번할 것이다.어쩌면 열에 여덟은 관욕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지금도 영가 관욕의식 때 사용되는 물품으로 거울이 등장한다.산자나 죽은자나 모두 목욕을 하고 나서 거울을 보는 것은 똑같다. **** 이상 송광사 성보박물관 김태형 선생 글이다. 눈여겨 봐야 한다. 저 거울을 저런 중요한 의식에 신기神器로 활용하는 전통은 도교에서 비롯한다. 익히 알려졌듯이 도교 의식에서 검劍과 경鏡과 인印은 삼종신기三種神器다. #관욕 #구리거울 #동경 2025. 3. 8.
북해도에 격발해 저들과 우리를 반추한다 이건 얼마전 고교 선배님한테 들은 내용이라 확인한다. 다름 아닌 일본 북해도北海道가 말이다. 남한 면적과 필적하는데 인구는 500만이라 했다.나는 무심히 넘긴 대목이라 방금 확인하니 진짜 선배님 말씀 그대로다. 북해도는 면적이 8만3천422㎢라, 8만9천㎦인 남한에 거의 육박한다.인구는 503만8천409명이라, 남한 인구 5천만의 10분지 1 수준이다. 그렇다고 일본이 그리 큰가 하면 전체 다 합친 면적이래야 37만8천㎢라, 남북한 다 합친 22만㎢보다 대략 1.5배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물론 북한을 빼고서 비교하면 일본은 한국에 견주어서는 대국이지만, 그렇다고 그리 큰 대국이라 할 수는 없다.본주本州라 해서 본 섬 사정을 보면 면적 22만8천㎢라 남북한 통합 면적과 같다. 네 주요 섬 중 가장 작은 .. 2025. 3. 8.
괘릉 석인상은 서역인과는 관계없는 guardian 11년 전 오늘, 그러니깐 2014년 3월 8일 나는 내 페이스북 계정이 다음과 같이 썼다. 괘릉 석인상..항용 이를 두고 아랍인이 들어왔네 안 왔네 하는데 난 저렇게 생긴 아랍인을 본 적이 없다. 아랍인 종자가 개량됐나?이를 두고 지인들과 왈가왈부하는 와중에 나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들어왔건 말건 그렇다고 해서 저것이 아랍인상일 수는 없습니다. 이게 제 요집니다.동아시아 보편학의 관점에서 보면 저건 guardian일 뿐입니다 무덤의 진묘수, 사찰의 사천왕상이나 금강역사와 상통하는 가디언이지요. 몇 년 뒤내 저 주장과 딱 일맥상통하는 논문이 제출됐다. 저자는 내가 아니다. 저 딱 한 줄로 충분한 말을 어찌 논문으로 그리 구구절절히 쓸 수 있는지 나는 그 재주가 놀랍기만 하다. 저에서 무슨 말이 더 필.. 2025. 3. 8.
히타이트 서울전에 부친다 산통 깨고 싶은 생각없다.다만 냉혹히 짚자는 뜻일 뿐이다.저 전시 국립김해박물관이 심혈을 기울였고 아무리 국립이라 해도 지방 소재라는 핸디캡이 있었다.그런 가운데서도 듣기로는 꽤 호평받고 관람객 역시 그에 호응해 많았으니 저거 준비한다 똥을 뺀 윤형원 관장 필두로 김해박 직원들이 무척이나 고생한 점 높이 치고 수고했단 말 전한다.저걸 한성백제박물관이 가져와서 서울 전시를 어제 개막했다.우연히 얼마전 한수 대박관장 부친상 빈소 조문길에 한성박 김지연 관장과 잠시 동석했다.그엔 한성박 다른 직원들도 다 같이했다.앞에 앉은 김지연더러 내가 막 웃으며 그랬다."히타이트? 안 된다. 폼페이 이집트 미라 갖다 놔도 안 된다. 고고학? 죽었다 깨나도 장사 안 된다.유럽 왕실로 가라! 덮어놓고 유럽 왕실 이름만 걸어놓.. 2025. 3. 8.
자가 미라화로 열반을 완성한 승려 In 2014, researchers made a remarkable discovery when they conducted a CT scan of a Buddha statue estimated to be around 1,000 years old. To their surprise, they found the well-preserved remains of a monk in a lotus position within the statue. 2014년 연구자들은 약 1,0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을 CT 스캔하면서 놀라운 발견을 했으니 놀랍게도, 불상 안에서 연꽃 자세를 취한 승려의 잘 보존된 유해를 발견한 것이다.이 불상은 11세기 또는 12세기에 만든 것으로 여겨지며 중국 명상 스쿨 Chinese Med.. 2025.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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