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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나는 에트루리아 청동거울 에트루리아 시대 청동 손거울(기원전 470-450년)이다. Etruscan Bronze Hand Mirror (470-450 BC), southern Italy 남부 이탈리아 출토라 하는데 남부? 에트루리아 본거지는 중부 투스카니 일대인데, 로마 남쪽에 식민지 비스무리한 게 있기는 하니 혹 그쪽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에트루리아는 주석과 구리가 풍부하게 매장된 곳이라 지중해 전역에서 항해 상인들을 끌어 모았다. 그 지역 금속 세공인들은 두 금속을 결합하여 만든 합금인 청동을 다양하고 아름다운 물건으로 만드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 이런 청동 품목은 아테네 지역 도자기와 기타 사치품과 교환하기도 했으니, 청동제품은 수출품목이었던 셈이다. 미국 MET 박물관 소장품이다. 딱 봐도 폼나게 만들었다. 2024. 10. 24.
베베 꼬인 뱀들을 치장한 미노아 여신들 미노아문명을 대표하는 그리스 크레타섬 이라클리오 소재 크노소스 궁전 유적 출토품 중에서도 꽤 이름 있는 두 여인상이다. 지금은 이라클리오 고고학 박물관에서 상설전시 중인데 저에 대한 영문 설명은 다음과 같다. THE "SNAKE GODDESSES" AND OTHER MINIATURE OBJECTS FROM THE TEMPLE REPOSITORIES 신전 저장고 출토 "뱀 여신들"과 다른 미니어처 유물들 The most important cult objects from the Knossos Temple Repositories are the figurines of the "Snake Goddess". 크노소스 사원 저장소에서 출토한 가장 중요한 숭배 대상은 "뱀 여신들" 형상이다. They are named.. 2024. 10. 24.
염소 대가리가 된 말 대가리 적어도 2,500살은 잢수신 이 동물 머리 조각은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한다. 석회암으로 조각한 이 파편은 처음에는 말 머리라 했지만 나중에 수염 때문에 염소로 재해석되었다. 이 조각이 사육 중인 염소를 나타내는지 아니면 아마도 신인 판Pan을 나타내는지에 대한 학문적 논쟁을 촉발했다. 현존 높이 35cm(13 3/4인치).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클리블랜드 미술관 Cleveland Museum of Art 소장. 1926년 레너드 C. 한나 주니어 Leonard C. Hanna Jr. 라는 사람이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우리한테나 주지. 2024. 10. 24.
실상보다 꽤 과장한 듯한 크노소스Knossos 궁전 크레타 입성했으니, 더구나 그 주도 이라클리오 들어앉았으니 참새 방앗간 지나칠 수는 없는 법이라 더구나 어제 그 맛배기로 이라클리오 고고학 박물관서 이곳 출토 고고 유물 질리도록 봤으니 자연스레 발길이 크노소스Knossos 궁전 이라는 데로 향할 수밖에 없다 하겠다. 어제 하루는 렌트카도 휴식을 줬으니 이제 힘이 도로 만땅일 터 아침 8시에 문을 연다 하고 이라클리오 구심 기준 7~8킬로미터 야외 지척이라 호텔서 조식 일찌감치 해결하고선 구글 내비 찍어 시내 통과해 곧장 남쪽으로 차를 몰아가는데 도착 1킬로미터를 남겨두고선 인적이 사라지고 한적한 산촌 나오는데 주차장 널찍하고 또 일찍이라 차도 몇 대 없어 암데나 세우고는 출입구 마주하는데 뿔싸 아직 개관 20분이나 남았댄다. 하릴없이 빈둥빈둥하는데 단체.. 2024. 10. 24.
조선시대 셜록 홈즈의 현실 조선시대 살인사건 조사가 무원록이라는 책에 기반하여 매우 합리적 해결을 독려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에 영향을 받은 극이나 영화들이 꽤 인기를 끌었다. 이런 영화에서는 대개 매우 합리적 추리를 하는 조선의 선비가 셜록 홈즈같은 솜씨로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소설이나 영화는 과연 어느 정도로 사실에 접근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선시대 사망사건 조사는 검험관 임의로 판결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한 것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증언과 검시 결과, 무원록의 기술 세 가지가 모두 하나의 결론을 가리켜야 사건이 종결되었기 때문에 상당히 치밀한 논리 전개로 살인사건이 규명된 경우도 드물긴 하지만 있다. 살인을 엄폐하려 한 시도를 검험관이 뒤집어 진범을 잡는 경우도 있다... 2024. 10. 24.
틀림없는 범인도 범인이라 하지 못하는 앞에서 필자는 조선시대 의문사 사건을 종결하는 데는 취조 결과 (혹은 증언) 검시 결과, 그리고 무원록에 기록된 관련 사항 이 셋이 일치해야 비로소 끝난다고 했다. 대개 두 번을 다른 관리가 검시해서 의견이 동일하면 그대로 사건이 종결되었는데 이때 두 번의 검시가 서로 의견이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고, 검시 때 관련자 증언하고 검시 결과가 안맞거나 무원록에 기록된 관련 사항하고 안 맞으면 상부에서 초검과 재검을 물려 버리고 삼검을 다시 지시했다. 이때 삼검이 초검과 재검하고 결론이 다르면 한 번 더 검시를 지시하니 총 네 번의 검시를 서로 다른 관리 (대개 군수) 주재 하에 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최근에 읽은 사건은 아주 재미있는데 어떤 양반이 왠 불한당 둘을 만나 맞아 죽었다는 고발이.. 2024. 10. 24.
바보처럼 보이는 그 짓에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앞에서 조선시대 재판에서 사람을 패는 이야기를 했다. 조선시대 재판에 대한 기록은 구한말 외국인의 기행문에 제법 나온다. 뭐 평이 대개는 안 좋다. 왜 저렇게 패냐. 야만적이다. 대략 그런 이유들이다. 그 기행문을 보면 구한말 관리들은 악귀다. 이런 선입견을 장착하고 구한말 관리들 보고서를 보면 정말 적응이 안 될 지경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당연히 사람을 패고 고문을 했겠지만 문제는 보고서에 기술된 내용에서 범인을 결정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정상적이라 처음 보면 적응이 안 될 지경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보고서를 보다 보면, 아 이 사람들이 재판을 이렇게 했구나, 이 타이밍에서 고문을 했겠구나, 필이 딱 오는 장면이 나온다. 필자는 조선시대 관리들이 남긴 재판 기록이 백프로 사실이라고 생각.. 2024. 10. 24.
네 마리 사자가 받침하는 스키타이 파지릭 테이블 사자 조각 다리를 갖춘 테이블이다. 알타이 파지리크 2호분 출토, 기원전 300-290년. 초기 스키타이 시대 "파지릭 문화 보물" 목록에는 이 문화를 대표하는 무덤(쿠르간)과 암각화를 포함한다. Table with carved lion legs. Pazyryk, Altai, Barrow no. 2, 300-290 BC. 에르미타주박물관 소장일 텐데 자신은 없다. 아주 먼훗날 한반도에서 저와 비슷하게 사자 네 마리가 상다리로 등장하는 불탑이 생겨난다. 2024. 10. 24.
[발칸기행](32) 대청소 하는 날 이제 나들이 열흘이라 손톱도 자라고 발톱도 자랐으니 왁싱해야 할 때다. 어제 나가 떨어지는 바람에 근질근질한 몸뚱아리는 샤워로 씻어내고 덩달아 시염도 쳤다. 오모나 달라진 내 얼굴. 수염 하나 밀었을 뿐인데.. 수염 치기 직전 저 몰골로 내 투숙한 내 호텔 내 식당에서 우거적우거적 씹고 있으니 호텔 종업원이 유독 나만 골라 몇 호 투숙객이냐 물어보지 않았겠는가? 어디 동네 걸베이 난민 거지 온 줄 알았겠지. 산뜻 샴푸 냄새 채 가시지 않은 상태서 장비를 푼다. 먼저 손톱을 친다. 뭐 이 정도면 장화홍련전 출연해도 되겠다 싶은만큼 손톱이 자랐다. 다음 발톱. 생각보단 생장이 느리다. 하도 싸질러다녀 자연 마모됐나 보다. 다음 귀를 후빈다. 생각보다 왕거니가 걸리지 아니해서 실망하지만 종유석 같은 덩치가 스.. 2024. 10. 24.
사또 재판의 시말 (2) 언제 주리를 트는가? 대개 우리는 조선시대 재판에는 고문이 일상적이었다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꼭 틀리다고는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초검과 재검까지는 딱 잡아 떼던 피의자가 삼검 때 갑자기 다 자백한 걸로 조선시대 보고서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필자가 보기엔 잡아다 팬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재판관은 재판 중에 패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을 것 같지만, 조선시대 검험을 담당한 관리가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책이 바로 "무원록無寃錄"이다. 원통함이 없도록 하자는게 책 제목인데 일단 잡아 놓고 패는 것-. 물론 그 시대에 그리 할 수는 있겠지만 조선시대도 역시 내가 사람을 패서 사건을 해결했다고 사또가 자랑스레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선시대에 관련자를 취조하는 상황을 보면, 대개 사또가 사건을 정.. 2024. 10. 24.
사또재판의 시말 (1) 전광석화 같은 속도 조선시대 사또 재판이라는 말이 있다. 뭐 엉터리 재판이라는 뜻일 게다. 대략 조선시대 사또 하면 옛날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서영춘씨가 구봉서씨가 글자 하나 제대로 못 읽는 사또로 나와서 엉터리 재판을 하는 모습이 익숙해 있다. 범인으로 의심할 만한 사람이 잡히면 일단 주리부터 틀고봤으리라 생각들 한다. 예전에 어떤 판사분이 직을 관두면서 내가 조선시대 사또 재판을 하는 것도 아니고.. 했다던가 그런데 미안하지만 조선시대 사또 재판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사또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하는 건 지금 그 보고서가 꽤 남아 있다. 이 보고서를 보면 가장 놀라는 것이 그 재판 속도다. 대개 사망사건이 났다 하고 고소가 들어오면 그 다음날 벌써 현지 군수가 시신이 놓여 있는 곳에 가서 검시를 시작.. 2024. 10. 23.
[크레타통신] 단군할배부터 반품해야 인간적으로다가 너무 징글징글 맞다. 첫째 박물관 규모는 코딱지요 그 겉모습 볼품없으나 내부는 상당히 최신화했고 둘째 그 컬렉션 규모가 압도하며 셋째 그 수준 하나하나가 당대 최첨단을 구가한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네가 정점에 이른 그 시기 지금의 그리스는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았고 사막에 갇혀 물놀이나 즐긴 저들보다는 훨씬 외부로 열렸다. 이라클리오 고고학박물관 들어선지 한 시간 만에 넉다운이다. 가뜩이나 체력방전이요 그에다가 이 광활한 컬렉션이 주는 시기 질투 분노가 나를 무력케 한다. 멧돼지 송곳니 투구나 봐야겠다. 그건 그거고 진짜 조상 잘 만나야 한다. 그래서 후손이 성공한다는 말은 아니다. 후손이 장사해먹을 거리는 우리가 마련해줘야 한단 뜻이다. 우린 단군할배 잘못 만났다. 반품이 가능하다.. 2024. 10. 23.
편지봉투 쓰는 데도 격식이 있나니 지금까지도 근대 문인이라 해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인물 중 한 분인 상허 이태준(1904-?). 글 쓰는 법을 가르치는 《문장강화》로 이름이 높지만, 편지 쓰는 법을 일러둔 《서간문강화》란 책을 낸 일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요즘이야 손편지 쓰는 분이 드물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e-mail이나 문자 카톡이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오직 종이에 글자를 적어 부치는 편지, 엽서, 간찰만이 멀리 있는 이에게 소식을 전하는 수단이었다.그런데 그걸 보내려면 봉투에 넣어야 할 터.  거기 받을 사람의 주소를 제대로 적고 우표도 붙이고 해야 하는데 때에 따라, 봉투 종류에 따라 적는 문구나 방법이 달라진다.  헌데 당시에도 그 격식이 헷갈리는 분이 적잖았던 모양이다.  이에 상허 선생은 한가지 수를 낸다.  자신이 받.. 2024. 10. 23.
편집의 힘, 증보문헌비고의 경우 보는 사람에 따라 대한제국 최후의 업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대한 유서類書 .정말 다행스럽게도 국역이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나와 지금 서비스 중이다.뒤적뒤적거리는데, 생각보다 재미있다.특히나 원문을 살짝살짝 떼내어 짜깁기하는 그 솜씨가 예술이라 까딱 잘못하면 무슨 말인지 헷갈릴 뻔 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그 유명한 최승로의 를 인용한 이 부분을 보자.정광正匡 최승로의 상소에 이르기를, "서인庶人 백성이 문채文彩를 입지 못하는 것은 귀천貴賤을 구별하고 존비尊卑를 분변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문채 있는 물건은 모두 토산土産이 아니니, 사람마다 입는다면 사치스럽고 참람됨이 절도節度가 없게 되고 재물을 소모하는 한탄이 있을 것입니다. 에 이르기를, '천자天子는 당堂이 9척尺이고 제후諸侯는 당이 7척이라'고 하여.. 2024. 10. 23.
영덕이랑 충배한테 크레타서 고한다 난 내가 가서 좋은 고고학 현장은 꼭 영덕이 충배 불러다간 내년엔 꼭 같이 오자 한다. 작년 몰타 가서도 그 기겁할 선사시대 거석기념물 보고서도 그랬고 크레타 하니아Chania 라는 데 와서도 다시 기겁할 신식 박물관을 보고서도 그랬다. 왜? 이 좋은 데를 나만 향유하기 아까워서이며 다른 누구보다 저들만큼은 이런 순간을 같이 즐겼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한 코스포폴리탄이라서이겠는가? 이 정도는 같이 봐줘야 더 늙어서도 나눌 이야기가 더 많을 듯해서다. 하지만 그때마다 저 두 친구 반응은 똑같은데 첫째 춘배 씹는다. 아무 대꾸가 없다. 같잖다 이거지. 그 좋은 데를 왜 너가 가냐 왜 나보다 먼저 가냐 이거겠지. 그래서 주구장창 아예 물음을 씹는다. 다음 영디기. 반응이 즉자적이다. 일단 .. 2024. 10. 23.
이젠 축조기술 타령 그만 둘 때다 이제 축성기술 운운하는 사기 그만 칠 때가 됐다.이런 말 하려는데 고국에선 아직도 이 놀음이라풍납토성을 팠더니 말목을 박았네마네김해 봉황동 토성 팠더니 조개껍데기를 넣었네마네 하는 타령이라그럼 조개 많이 나는 데선 조개 쓰지 뭘 쓴단 말이며한강변 도성은 그렇담 미쳤다고 다른 성곽 쌓듯이 했겠는가?하나마나한 이야기 이젠 그만두고 딴 이야기할 때다.홍수 막고자 풍납토성 성벽 댐처럼 막았단 이야기 전연 새로울 수 없다.이 베네치안 성벽 두고 축조술 타령이라던가?하나마나한 이야기는 집어쳐야 한다.왜?왜 이곳에다 쌓았으며 이를 통해 꿈꾼 것들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크레타 섬 이라클리오 베네치안 씨티월 바스티온에서 쓴다. 2024. 10. 23.
[발칸여행 스핀오프] 잘 이용해야 하는 호텔 조식당 에어비앤비는 사정이 다르니 논외로 치고 나처럼 천방지축 문화재현장을 싸질러다니는 사람들은 조식을 제공하는 호텔 식당을 잘 이용해야 한다. 물론 한없이 욕심내다 저 꼴이 벌어지고 말았지만 현장에 따라 편의시설 없는 곳 천지고 또 반나절 이상 소비해야 하는 현장까지 겹치면 사전정보 없이 갔다간 골로 간다. 얼마전 들른 델로스 유적이 딱 그랬는데 편의점이라 해봐야 출입구 자판기 음료수가 전부라 무인도에다 유적은 더럽게 넓어 꼴랑 음료수 한 병에 빵쪼가리 하나 준비해갔다가 낭패를 봤다. 작년 폼페이는 그런대로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지인이 사전 정보를 주는 바람에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벤또랑 음료수랑 그런대로 준비했기에망정이지 하마터면 열사병으로 죽을 뻔했다. 요샌 호텔 조식당에서도 하도 가져가는 사람이 많아 그런.. 2024. 10. 23.
[발칸기행](32) 이라클리오 일출 마주하며 노는 것도 디다는 경상도 말이 있다. 말이야, 또 남들 눈엔 틀림없이 그리 비치겠지만 내 성정에 딩기딩가라는 말은 등재될 수 없다. 끊임없이 무얼 찾아다니려 하며 그에서 뭐라도 하나 더 주워담으려했으니 그 담은 자리만큼 뒤로 금새 빠져나가는 것도 적지 않다. 그걸 다 담았다간 내가 터지고 말았을 것이니 이곳 시간 이제 아침 8시, 크레타섬 주도 이라클리오 동쪽에서 해가 뜬다. 서쪽으로 치달았다 도로 제자리 돌아왔으니 이제 동서방향이 대강은 잡히며 내가 마주한 바다가 지리 상식 동원하면 북쪽이리라. 어젯밤, 긴 운전 여파도 있고 단 하루도 쉼없이 달린 잔영이겠지만 샤워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새벽, 몸은 천근만근인데 이상하게도 제대로 쉬었다는 느낌이 온다. 오늘부턴 이라클리오를 아지트 삼아 이곳.. 2024. 10. 23.
니코스 카잔찬키스 무덤을 배회하는 한강 https://goo.gl/maps/b1VkHmYP4odN7fFY9 2024. 10. 23.
12년 전 나는 시화호 상공을 날았다 12년 전 오늘 그러니깐 2012년 10월 22일 나는 저 경비행기 타고 시화호 상공을 날았다. 저때만 해도 드론 상용화 전이라 공중에서 내려다 보며 내가 직접 내가 내 눈으로 사진 찍는 일이 꿈이던 시절이다. 드론이 일상이 된 이 시절에도 드론의 최대 약점은 내가 직접 내가 내 눈으로 보고서 포착한 장면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그에도 찍는 사람 의도와 구도가 들어가긴 하나 영 맘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다. 저 경비행기는 그 동호회 회원들이 모는 그것이라 그네들 비행장이 시화호에 있었지만 당국은 그 철거에 돌입한 때였다. 물론 그네들이야 그럴 만한 곡절이 있었겠지만 그 처사가 참말로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내가 당시 문화부 기자인 시절이라 무턱대고 기자랍시고 저런 사안을 다룰 계제가 되지 못했으니 안타.. 2024. 10. 23.
[발칸여행](31) 그리스 국부 무덤서 조망하는 크레타 하니아 https://maps.app.goo.gl/6HbXzBZWE5ntsFCX6 Venizelos Graves Τάφοι Βενιζέλων 크레타 섬 하니아Hania 시내 탐방은 무덤 방문으로 대미를 고한다. 하니아 시내와 바다를 한 눈에 조망하는 시내 외곽 언덕배기에 이 분 무덤이 있으니 관록이 대단한 사람일 터. 엘레프테리오스 키리아쿠 베니젤로스 Ελευθέριος Κυριάκου Βενιζέλος (1862~ 1936) 영어로는 Eleftherios Venizelos 라 표기한다. 그리스 저명한 혁명가이며, 20세기 초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이자 뛰어난 정치가로 그리스 독립의 아버지다. 그의 막강 위치는 에트나르히스(ἐθνάρχης, '국가의 지도자)라는 별칭에서 우뚝하니 이웃 튀르키예에서 아타튀르크 무스타.. 202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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