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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은 "유학모칭자"들이 주도했다 동학혁명은 필자가 보기엔 19세기에 급증하여 많게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까지 차지했을지도 모르는,"유학모칭자"들이 주도했다고 본다. 이들은 기본적인 문자 해독 등 어느 정도의 독서층이고, 사는 것도 다른 이들보다 나은 사람들, 그리고 19세기가 될 때까지 양반들의 집요한 견제를 뚫고 마침내 유학을 모칭하는 데까지 이른 장난 아닌 사람들이라, 19세기 말 정부를 뒤엎겠다고 들고 일어날 사람들은 그 규모나 성정으로 볼 때 이 사람들 아니면 할 만한 사람들이 없다. 이 안에는 당연히 농사를 자기 손으로 짓는 사람도 있었을 터이고, 유학까지 따냈으니 다음 단계로 소과 정도는 급제자도 많이 나왔을 터, 동학혁명이 아래로는 농사꾼에 위로는 진사까지도 참여하였다고 하는데, 이 모든 사람을 하나로 아울러 그 성격을 정의.. 2025. 9. 6.
동학농민혁명을 "동학혁명"으로 불러야 네이버가 제공하는 옛날 신문 등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지금의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이름은1980년을 거치며 1990년대 초반부터 보편화한 명칭이다. 그 이전에는 그냥 "동학혁명"이라 불렀다. 동학혁명이 필자가 보기엔 보다 학술적으로 훨씬 더 중립적인 명칭이다. 여기에 그 정체도 불분명한 "농민"을 굳이 동학혁명의 명칭 안에 집어 넣은 것은1980년대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게 그 당시 불렀다고 해도 그건 사회적으로 그럴 필요가 있다고 치고, 지금은 이 명칭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완전히 타성적으로 이 명칭을 유지하는데, 정체도 불분명한 "농민"을 이 안에 넣어놓으니까이 혁명의 역사적 의미가 정확히 구명이 안 되고 제자리를 맴도는 것이 아니겠나. 왜 1980년대를 거치며 동학혁명의 이름에 농민짜가.. 2025. 9. 6.
리마 가스 공사 현장에서 2,000년 전 선사 시대 무덤 발굴 페루 수도 리마의 가스 파이프라인 확장 공사 중 800년에서 2,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최소 5구 무덤이 발견되어 리마에서 한때 번성한 고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증거가 드러났다고 이곳 언론 EFE가 6일(한국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유적은 도시 남서쪽에 위치한 고급 주택가 산티아고 데 수르코 지구Santiago de Surco district 지하에서 천연가스 유통업체인 칼리다Cálidda 노동자들이 발견했다. 고고학자들은 이 무덤들이 오늘날 약 1,100만 명이 사는 대도시가 위치한 계곡 지역에 살았던 리마Lima 문화 및 이흐스마Ychsma[발음을 들어보면 이슈마 정도로 들린다] 문화에 속하는 것으로 확인했다. 리마와 칼라오 대도시권 칼리다 고고학 모니터링 계획 Archaeologica.. 2025. 9. 6.
호박 보석 장식한 4,000년 전 폴란드 우네티체 문화 무덤 발굴 폴란드 서西 포메라니아West Pomeranian Voivodeship 주 노베 오브제지에르제Nowe Objezierze에서 호박과 청동 보석이 묻힌 4,000년 된 우네티체Únetice 문화 무덤들이 발굴되었다고 슈체친 대학교University of Szczecin 조사단이 최근 발표했다. 슈체친 대학교 고고학자들이 노베 오브제지에르제에서 4,000년 된 무덤을 추가로 발견했다.이 무덤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과 어린이 무덤이다. 이 학과 아그니에스카 마투셰프스카Agnieszka Matuszewska 박사가 주도한 이번 조사에는 슈체친Szczecin 국립 박물관 전문가, 트리시티Tricity 지역 고고학자, 포메라니아 의과대학Pomeranian Medical University 이보나 텔Iwona Teu.. 2025. 9. 6.
중공군은 쨉이 안 되는 북한군 구스 스텝goose step https://www.youtube.com/watch?v=7ohj6Qbe-Qk https://www.youtube.com/shorts/fUccldGxG8I https://www.youtube.com/watch?v=1zSowOS4Wyg 중국이 근자 전승 80주년 기념식 군사 퍼레이드에서 보여준 구스 스텝goose step이 전파를 타고서 갖은 영상으로 재가공되어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거니와 저 구스 스텝이 무엇인지 그 내력과 전파 양상을 위키피디아 영문 항목에 기대어 정리한다.글자 그대로는 오리 발걸음을 의미하는 구스 스텝은 공식적인 군사 퍼레이드 및 기타 의식에서 행해지는 특별한 행진 스텝을 지칭하거니와 퍼레이드 대형으로 행진하는 동안, 병사들은 각자 자기 다리를 꼿꼿이 펴고 일제히 다리를 땅에서 흔들.. 2025. 9. 6.
[기고] 문화부 박미박람회와 국가유산청 국유산업전의 상생전략 두 문화 행사, 즉 '국가유산산업전'과 '박물관미술관 박람회'를 창조적 융합시켜 한국문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중요한 실마리를 발견한다. 하나는 과거의 유산을 답습하며 쇠퇴하는 길을 걷고 있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트렌드를 포용하며 성공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이는 단순히 두 행사의 성패를 가늠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문화유산이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고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문화유산을 박제된 과거의 유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창조적 진단과 제언을 시도한다. 1. 관(官) 주도에서 민(民) 주도 협력으로의 전환현재 '국가유산산업전'이 겪는 어려움은 관 주도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관 중심 행사는 시장의 역동성과 민간의 창의성을 담아내기 어렵다. 반.. 2025. 9. 6.
예상대로 버벅버벅인 발해 묘지명 [2] 버벅댈 이유가 눈꼽 만큼도 없는 진릉珍陵 그렇다면 그제(5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용두산龍頭山 발해 왕실묘지: 1997, 2004-2005, 2008년 발굴보고' 분석 보고회에서 진릉珍陵 문제는 어떻게 보았는가?이 역시 예상대로 개발소발 께부작사부작 핵심도 짚지 못했으니 간단히 결론만 말하면 갸우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거니와 이 대목 연합뉴스 보도는 다음과 같다. 발굴 조사 이후 20여 년이 지나 보고서가 공개됐으나,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도 있다. 효의황후 묘지에 적힌 '진릉대'(珍陵臺)가 대표적이다. 묘지에는 '그해 겨울 10월 24일 갑신에 진릉대에 천장(遷葬·무덤을 다른 곳으로 옮김)'했다는 문구(其年冬十月卄四日甲申, 遷葬於珍陵台禮也)가 남아있다. 권 선임연구원은 "기존에는 '진릉'을 고왕 즉, 대조영(재위 698∼719) 또.. 2025. 9. 6.
잉글랜드 왕국 초석을 닦은 초대 왕 에설스턴Æthelstan 잊힌 잉글랜드 초대 왕은 유명해질 자격이 있다!by 케임브리지 대학교 에설스턴Æthelstan의 새로운 전기는 서기 925년 대관식 이후 1,100주년을 기념하고, 그가 잉글랜드 초대 왕으로 불릴 권리를 재확인하며, 왜 그가 더 잘 알려지지 않았는지 설명하고, 그의 수많은 간과된 업적을 조명한다.이 책 저자인 데이비드 우드먼David Woodman 교수는 서기 927년 에설스턴이 잉글랜드를 건국한 일을 대중이 더 잘 알도록 촉구한다.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Battle of Hastings와 1215년 마그나 카르타 서명signing of Magna Carta은 잉글랜드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두 해 중 하나다.하지만 925년이나 927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케임브리지 대학교에.. 2025. 9. 6.
예상대로 버벅버벅인 발해 묘지명 [1] 왕비족의 경우 발해 황후 묘지에 새긴 '동국'…"'당 지방정권' 주장 맞지 않아" 송고 2025-09-05 17:42 김예나기자 동북아역사재단, 20여년 만에 발간된 효의·순목황후 묘지 분석 울씨 등 새로운 성씨 확인…문왕 가족 관계 등 역사의 '빈칸' 주목 "보고서, 당나라 영향 강조하기도"…향후 발해사 연구에 도움 될 듯 발해 황후 묘지에 새긴 '동국'…"'당 지방정권' 주장 맞지 않아"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우리 황제의 성스럽고 밝은 교화는 태양이 비추고 하늘이 임한 것 같고, 우리 황후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계책은...www.yna.co.kr 예상대로다. 무슨 심층하는 분석과 그에 기반한 연구를 기대하겠는가?딱 보니, 소개 수준이었고, 딱 보니 번역 수준이었다. 무엇에 대한 번역인가?저 .. 2025. 9. 6.
아직 제대로 된 호칭조차 없는 19세기 유학모칭자들 19세기 유학모칭자들, 이라고 하지만이 숫자는 거대하다.많게 보면 전체 조선인구 절반 가까이 될 수도 있으며 적게 봐도 30프로는 넘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많아 봐야 인구의 20프로를 넘지 못하던 유학호가 19세기 중 후반에 이르면 인구의 60-70프로에 달하게 되는 탓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무더기로 유학호를 달게 되었는데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들을 부르는 호칭조차 변변한 게 없다. 그 당시부터 돌이켜 보자면, 놀고 먹는자들, 군역회피자, 향촌의 중인, 등등이 이들에 대한 호칭이며현대 한국의 학계에서도 유학모칭자, 항촌 중인, 등등을 비롯해 가짜양반에 이르기까지다양한 호칭이 있지만 무려 인구의 절반에 육박할지도 모르는 이 사람들에 대해 통일된 호칭이 없다. 이와 대응하여 가장 많이 쓰이는 호칭이 잔반일 .. 2025. 9. 6.
경주 황성동 유적 유리 곡옥 거푸집 유리 곡옥을 만들어내던 틀, 곧 곡옥 거푸집 관련 출토품 중 경주 황성동 유적 출토품이 있으니, 그 출전은 다음이라(자료는 차순철 선생이 수고해서 찾아 주었다. 차 선생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國立慶州博物館 學術調査報告 第12冊 《慶州 隍城洞 遺蹟Ⅰ- '가' 地區 木文·圖面》, 國立慶州博物館, 2000 이에서 이와 같은 유리 거푸집이 발굴되었다 한다. 유리 제품 생김새별로 보면 곡옥曲玉이 있고, 관옥管玉도 있음을 본다. 이로써 보면 곡옥은 유리 제품인 경우가 많아야 하는데, 그 성분 조사가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는 솔까 모르겠다.거듭 말하지만, 한국고고학은 과학 분석과는 담을 쌓은 놈들이라, 과학과 담을 쌓은 자리에는 경험이라는 이름의 자의적 판단만이 득시글거리게 되며,이에서 바로 고고학이 아니라 고고 .. 2025. 9. 6.
괴베클리 테페? 카라한 테페? 나도 있다 사이부르치 이 장면을 보면 고고학적 전문 지식을 무장한 사람들한테는 대뜸 괴베클리테페Göbeklitepe를 떠올리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현장이 아니다. 하지만 대뜸 봐도 그거랑 떼레야 뗄 수 없는 같은 결을 이루는 곳임 또한 직감한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만2천 년 전쯤, 저쪽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는 이제 구석기 시대를 훌훌 털어버리고 신석기시대로 돌입하게 되는데, 그 대표하는 증언으로 약방 감초처럼 등장하는 데가 저 괴베클리테페랑 더불어 그 인근 지역 카라한테페Karahantepe라는 데라그렇다면 저 사진은 후자? 천만에!그렇다면 터키 신석기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다. 저런 신석기 유적이 대개 입지로 보면 언덕에서 발견되고, 그 양태를 보면 돌로 각종 기념물을 세운 까닭에 저쪽에서는 타스 테펠레르Taş Tepe.. 2025. 9. 6.
1억 5천만년 전 아기 익룡, 거센 폭풍에 휘말려 희생 날개 부러진 독일 졸른호펜 두 개체 화석 분석 결과 드러나 by 레스터 대학교레스터 대학교 고생물학자들이 사후 분석 post-mortem을 통해 1억 5천만 년 전 두 마리 아기 익룡pterosaurs의 사망 원인을 밝혀냈다.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저널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이 비행 파충류flying reptiles는 강력한 폭풍에 비극적으로 희생되었으며, 이 폭풍은 익룡과 수백 개 유사한 화석을 보존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중생대Mesozoic, 즉 파충류 시대는 종종 거인들의 시대로 여겨진다.거대한 공룡, 거대한 해양 파충류, 그리고 거대한 날개를 지닌 익룡이 박물관과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러한 익숙한 이미지는 왜곡되어 있다. 오늘날의 생태계가 .. 2025. 9. 6.
호적을 보면 매우 이상한 균역법 1750년 이후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균역법의 실체에 대히 의문을 갖는다. 이거이 실제로 제대로 시행되었던 것일까. 매우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균역법 실시이후 선무군관 숫자가 너무 적다. 실록인지 어딘지 기록에 의하면 균역법을 실시하면 정부 수입이 줄어드니까 이를 메꿔 줄 선무군관은 정부에서 도별로 숫자를 정해 위에서 반드시 채우라고 내려 꽂았다. 그런데 막상 향촌의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이 몇 없다는 말이다. 선무군관을 받으면 직역이 그 이전에 유학이건 업무건 업유건 간에선무군관으로 바뀐다. 거의 백프로 이전에는 갖은 방법으로 군역을 회피하던 소위 향촌의 중인들이 대거 충원되었어야 정상인데막상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으로 잡혀 들어간 사람이 몇 안 된다. 그나마 이 사람들도 그.. 2025. 9. 6.
광마狂馬 마광수와 장미여관, 그리고 올림픽여관 마광수는 인간이면 누구나 탑재한 변태를 변태가 아닌 정상으로 자리매김하려 한 이라고 나는 평가하고 싶다. 그의 전법은 폭로였고 대면이다. 그와 동시대를 산 다른 이들이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점잖이라는 가면 뒤에 감추려 한 그 적나라한 욕망, 인간이면 누구나 지녔을 그 욕망을 그는 그대로 노출했다. 내가 신촌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그때, 한창 젊은 국어국문학과 교수 마광수는 '즐거운 사라'를 발간하기 전이었지만, '가자 장미여관으로'는 그 시절 막 발간했다고 기억하니, 실제 서지사항을 보니 1989년 자유문학사 간이다. 이 무렵 나는 평택 미군부대서 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시집을 정식으로 통독한 적이 없다. 오다가다 한두 편 긁적거렸을 것이로대 그렇다 해서 그 이전 보들레르가 나한테 준 충.. 2025. 9. 6.
호적에서 보는 균역법 균역법은 1750년, 영조 26년에 공포되었다. 온라인의 나무위키 글을 따서 옮겨보면 이렇다. 인정(人丁) 단위로 2필씩 징수하던 군포(軍布)를 1필로 감해주고, 대신 균역청을 설치하여 줄어든 세원을 보충하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했다. 왕족이나 권문세가, 지방 관아에서 세금을 매겨오던 어전(漁箭), 염분(鹽盆), 곽전(藿田), 태전(苔田)과 선박에 대해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게 하였다. 그리고 토지마다 1결당 2말의 결작미를 징수하였는데, 이는 군역의 부담이 전세로 바뀌게 된 셈이다. 일부 상층 평민을 대상으로는 선무군관제에 따라 선무군관이라는 지위를 주어 선무군관포 1필을 납부하게 하였다.요약하면 군포를 노상 내던 평민들 2필을 1필로 감하는 대신, 새로 1필을 내는 사람들을 뽑아 손실분을 메꾸게 했다 이.. 2025. 9. 6.
유리 곡옥을 만들어낸 거푸집, 거창 출토품의 경우 장수 곡옥 거푸집 출토와 관련해 이곳저곳 본인들이 아는 비슷한 종류 유리 거푸집 소개가 잇따르는데 이는 경남 거창 출토품이라고 이곳 문화재 터줏대감 구본용 전 거창박물관장이 소개한다. (다음번에는 경주 출토품을 소개하려 한다.) 그가 소개하기를 저 유물은2024년 거창 남하면 무릉리 황강정비 사업 발굴 출토품이라 하거니와 정식 발굴보고서는 내년쯤 나오지 않을까 한댄다.조사는 경강문화유산연구원에서 했고 올 초에 해당 유적은 발굴완료되었다 한다.출토 지점은 남하 무릉리 황강 변이고 고인돌 산포지와 삼국시대 고분이 혼재한 유적으로서 곡옥틀은 삼국시대 주거지 바닥에서 출토되었는데 상태는 양호하댄다. 발굴단에서는 삼국시대 자료로 보는 것 같다고 한다.곡옥에 대한 성분분석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모조.. 2025. 9. 5.
전남 나주에서 출현한 2,000년 전 유리 슬래그 전북 장수군에서 아마도 유리로 곡옥을 만들어냈을 법한 이른바 곡옥 거푸집이 출토한 일과 관련해 한반도 고대 유리 관련 엇비슷한 자료들을 검출하려 하다 보니, 2008년에 다름 아닌 내가 작성 배포한 아래 기사가 보이는데 문제는 나로선 이 기사가 전연 기억에 남지 않으니, 영혼이 없이 썼나 보다. 이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 년 전,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땅에서는 유리를 자체 제작하는 시스템이 있었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리 슬래그, 곧, 유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찌꺼기가 발견됐다는 것이니, 당시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주 조개무지서 유리 工房 흔적 입력 2008.03.18. 오후 3:16 수정 2008.03.18. 오후 6:11 1-2세기 생활유적..점뼈도 발견 (서울=연합뉴스) .. 2025. 9. 5.
[연구 소식] 일본인류학회 발표 국립청주박물관 이양수 관장, 경상국립대학교 박물관 송영진 선생과 함께 韓国の考古学から見た弥生人の原郷 이라는 제목으로 시모노세키에서 열리는 79회 일본인류학회에서 발표하게 되었다. https://www.kuba.co.jp/anthropology79/index.html 2025. 9. 5.
19세기 유학모칭자들 우리나라 18-19세기에 향촌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소위 유학 모칭자들-. 이들은 숫자도 많고 신분 상승의 욕구도 강하여19세기 후반 이미 뚜렷한 입지를 드러내는데, 과연 조선 후기의 각종 차별을 뚫고 입신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들은 구한말의 거쳐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이들의 그 이후 추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연구를 필자는 본 적이 없다. 일제시대 활발한 활동을 하던 한국인이 19세기 유학 모칭자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해방 이후 활동하던 사람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면밀하게 따라가는 연구를 본 적이 없는 까닭이다 다만 필자의 막연한 추측이기는 하지만이들이 19세기, 유학호를 참칭하며 신분상승을 꿈꾸며 벌이던 그 강렬한 에너지와 물불 안 가리는 행각을 생각하면, 이들은 20세기 .. 2025. 9. 5.
메이지 초기를 지배한 출세주의 (2) 메이지 시대, 하면 우리는 아무래도 식민지배의 기억이 있어서이 시대는 제국주의자들의 시대, 라고 정의하기 쉽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메이지시대의 초창기는 조금 다른 각도에스의 조명도 필요한 것이, 이 메이지 초기는 막부를 쓰러뜨리고 개국개화의 국가적 대전환 위에 막부편에 섰던 사람이나 아니면 신정부 편에 섰던 사람이나 극소수의 벌열이 된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쪽박 차고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여 극도로 빈핍한 이들이 공부 하나로 출세해보겠다는 기풍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대였다. 이 시기에 일본의 교육제도라는 건 근대적이라고 보기 일천하여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래로는 소학교에서 위로는 대학까지 졸업생도 없고 가르칠 선생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가며 교육하는 상황이라 어제까지 교육생.. 2025.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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