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3321 광개토왕비와 신공 49년조: 일관성의 딜레마 앞에서 일본서기 신공 49년조와 광개토왕비는 사실 거의 비슷한 구조의 글이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하나는 근초고왕 시대에 있었다는 남정을 일본의 시각에서 본 것으로, 근초고왕 시대에 백제가 전남 지역까지 정치적으로 통합했다는 근거로우리측에서 이 기록을 이용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측에서 이 기사를 이런식으로 믿는다 해도,정작 왜의 시각-. 즉 백제가 남정 이후 왜를 주인으로 섬기기로 했다는 부분은 우리가 또 믿지 않는다. 같은 기사에서 어떤 것은 믿고 어떤 것은 믿지 않은 셈이다. 이번에는 광개토왕비를 보자. 광개토왕비의 내용, 특히 이 시대 광개토왕의 남정기사 일체,백제에게서 항복을 받았다던가, 신라의 요청으로 고구려군이 가야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며 정벌하고, 인심좋게 신라 수병에게 .. 2024. 8. 16. 문화재 짜가를 양산케 하는 국가 공립박물관이라 일컫는 전국 박물관을 돌아보면 레플리카가 그리 많다. 익히 지적했듯이 갖은 악조건에서도 공립박물관 중에서는 성공작이라 평가받는 전곡선사박물관 같은 경우는 아예 진짜 유물이 없다. 그 유명한 전곡 선사 유적을 전시 홍보하기 위한 전문박물관이라 하지만, 또 그 유적을 대표하는 유물이 이른바 아슐리안 돌도끼라 하지만, 실제로 적지 않은 그런 돌도끼가 이곳에서 출토했다 하지만, 이 박물관이 소장한 아슐리안 도끼는 단 한 점도 없다는 사실이 믿기는가? 그 박물관 상설전시실 입구에는 그래도 이곳이 전곡선사유적 대표 박물관이라 해서 돌도끼 5점을 전시해 놓았지만 개중에 진품은 꼴랑 1점밖에 없고, 나머지 4점은 그 흉내를 내서 현대 고고학하는 친구들이 돌 깨뜨려서 만든 짜가다. 그 진품 1점도 주인은 .. 2024. 8. 16. 박물관학도는 왜 국가주의와 싸워야 하는가? 박물관학도를 자처하는 이 중에 왜 이 국가주의 폐해를 지적하는 이가 단 하나도 없는가? 나는 한국박물관학계를 보면서 언제나 이 의문을 지울 길이 없다. 그만큼 이 문제는 심각성을 넘어 한국박물관계는 물론이고 문화재업계 전반을 질식케 하는 독버섯이요 암적인 존재임에도 이 거대한 병증은 치료는 고사하고 그 병증 자체를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국가가 비록 이른바 출토문화재에 국한하기는 하지만, 나아가 근자 변화하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그 소유권을 독점하면서, 그 소유권 독점을 넘어 그에서 비롯하는 보관시스템은 특히나 박물관계에서는 공립박물관 존립을 근간에서 흔드는 문제로, 온통 그 흔한 토기 석기조차 진품이 기증품 아니면 온통 짜가로 넘쳐나게 만들며 나아가 한때는 박물관 세우라 권장하던 국가가 언젠가부터는.. 2024. 8. 16. 신라를 정벌했다는 일본서기 신공황후 49년 조의 경우 이제 광개토왕 비문 시각으로 맨 밑에 첨부하는 일본서기 기록을 보자.어떠한가? 알다시피 일본서기는 우리 삼국사기보다 성립연한도 더 빠르다. 아래 기록이 과연 호태왕비문의 광개토왕 남정기사와 어느 정도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아, 물론 광개토왕의 남정기사건, 신공황후 49년조이건 간에 양쪽 모두 삼국사기에는 없다. 호태왕비에서 고구려인의 시각은, 신공 49년조에서 왜인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글을 읽어보면 매우 비슷하구나, 하는 점을 느낄 것이다. 이 신공 49년조의 기록은 사실일까? 아니면 어떤 사실을 뻥튀겨 쓴 이야기일까? 호태왕비와 신공황후 49년조는, 둘 다 한국 기록에는 없지만 자국의 승리를 크게 특필해 놓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는 그대로 믿고, 다른 하나는 거짓이고 왜.. 2024. 8. 16. 동성왕과 함께 온 왜병 500인 잘 알다시피 동성왕은 곤지의 아들로 원래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차례가 아니었는데 개로왕 대에 한성백제의 멸망으로 인해 생각지도 않게 그에게도 왕위에 오를 기회가 왔다. 왜에 있던 동성왕이 귀국할 때 그를 호위하기 위해 따라 들어온 왜병이 있었는데 그 숫자가 일본서기에 의하면, 500명이었다. 눌지왕 때 "신라에 주둔"했다는 고구려병 100명은 애초에 속국 지배용으로 보기에는 숫자가 너무 적었던 셈이다. 눌지왕이 신라영토 내의 고구려병 100명을 죽이게 한 첫째 이유는 그렇게 해도 될 만큼 그들의 숫자가 미미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우리는 호태왕과 충주 고구려비의 내용, 신라가 고구려에 보낸 인질, 그리고 신라땅에 주둔했다는 고구려군만 보고 신라가 이때 고구려의 속국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때 신라가 인질을 .. 2024. 8. 15. 피에타Pietà, 겁없는 24살 미켈란젤로가 단 2년 만에 속성으로 만든 대리석 조각 피에타Pietà, 겁없는 24살 미켈란젤로가 단 2년 만에 속성으로 만든 대리석 조각이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 Buonarotti, 풀네임을 말하니깐 무척이나 생소한데 그래 그냥 미켈란젤로다. 이 양반 조각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거론하는 피에타Pietà다. 현재 바티칸시국 성 베드로 대성전이 전시하는 르네상스시대 조각 예술이다. 이 정식 이름이 피테타의 마돈나 Madonna della Pietà 라던가? 이 조각 제작시기가 1498–1499년. 미켈란젤로 생몰년이 1475~1564년. 착수시기 23살, 완성 시점 24살. 착수에서 완성까지 걸린 기간은 단 2년. 한창 겁대가리 없던 시절에 겁없이 만든 것이 저 피에타다. 카라라 대리석 Carrara Marble 하나를 깎아서.. 2024. 8. 15. 라니 키 바브 Rani ki Vav, 인도 계단우물 건축의 걸작 이곳 라니 키 바브 Rani ki Vav 또는 여왕의 계단식 우물 Queen's Stepwell 이 어떤 데인지는 앞서 비교적 자세하게 정리한 적 있다.이를 통해 계단우물 혹은 계단식우물 Stepwell이 어떤 데인지도 정리했다. 저 인도 구자라트Gujarat 주 파탄Patan에 위치하는 경이로운 건축물은 11세기 우다야마티Udayamati 왕비가 남편 빔데브Bhimdev 1세 왕을 기념하여 지은 것으로 인도 계단식 우물 건축물 중 가장 훌륭한 사례로 기록된다.저는 물 저장 시스템을 뛰어넘어 신화적 주제, 신,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복잡한 조각품을 갖춘 곳이며 문화적 중심지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 related articles *** 바올리baoli or 바브Vav, 가뭄을 이기기 .. 2024. 8. 15. 깅가밍가하다 후회하는 나폴리 카세르타 궁전 갈까말까 망설이다 담에 가자 해서 꼭 후회한다. 더구나 그런 데가 국내도 아닌 외국임에랴? 저 이탈리아 나폴리 소재 카세르타 궁전 The Royal Palace of Caserta 이라 하는 데가 그래서 지난달 나폴리 공략 때 갈까말까 망설이다 단념하고 말았으니 이리 후회할 줄 알았더래면 쳐들어가 볼 걸 그랬다. 나폴리 북부 카세르타Caserta 라는 데 있는 저곳은 바로크건축Baroque architecture 걸작으로 꼽힌다. 18세기 건축가 루이지 반비텔리 Luigi Vanvitelli 가 디자인했다. 부르봉 왕조 Bourbons 의뢰를 받아 나폴리 왕국 왕실 거주지로 사용했다. 궁전은 1,200개 이상의 방, 정교한 정원, 웅장한 계단을 자랑한다. 넓은 부지에 분수, 폭포, 아름답게 조경된 공원이.. 2024. 8. 15. 폼페이가 양산하는 고양이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화산재에 묻힌 폼페이 유적에서 드러난 프레스코화 중 동물 모티브를 모아놓은 것들이다. 개중에서도 고양이 종류만 선별한 것이라 저거 보면 저 무렵에 품종이 매우 다채롭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2024. 8. 15. 속국 신라에 보냈다는 고구려 병사 100명 흔히 4말5초 광개토왕의 남정 이후 고구려는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고, 군대까지 주둔시켰다고 한다.이 이야기는 일본서기가 출전이다. 한국사 기록에는 필자가 아는 한 관련 기록이 없다. 그 이야기 내용을 보면유명한 "수탉을 죽여라"라는 바로 그 이야기다. 귀환하는 고구려 장교가배웅하는 신라인에게니네나라 조만간 없어질 것이다 하니, 그 이야기를 신라왕에게 전해주어신라왕이 남아 있는 고구려 병사를 깡그리 죽여버리라고 했다는바로 그 이야기다. 그런데-.이 당시 고구려 군이 신라땅에 몇 명이 있었을 것 같은가? 백명이다. 이 이야기가 나와 있는 출전인 일본서기에 나와 있으니 수탉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이 말도 맞을 것이다. 고구려군의 신라주둔 이야기? 물론 필자가 아는 한 삼국사기에는 그런 이야기 없다. 이 이야기는 .. 2024. 8. 15. 박지 못한 서울지하철 1호선 스파이크 한국에 지하철시대 개막을 알린 1974년 8월 15일.서울지하철 1호선이 개통했다.저 가운데 자리에 당연히 박정희가 서야 했고 설 예정이었지만 그가 빠진 채 개통식이 진행됐다.개통식 1시간 전.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진행된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통령 박정희가 경축사를 하던 도중 청중석에 있던 재일 한국인 문세광이 쏜 총에 의해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맞았다.이 스파이크는 개통식에서 박정희가 박을 예정이었다.저기다 말이다.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지하철 특별전시실에서 2024. 8. 15. 방진공법을 적용한 서울지하철 1호선 남대문 공사 "전부다 전철화를 같이 해가지고 연결을 하게끔 했는데, 요새 학자들 쓰는 융합계획이지. 지하철만 건설하는 게 아니고 기존 철도를 전철화랑 같이 한다는 거죠. 그때 양 시장이 안 오셨으면 도저히 일체를 못 만들고 도시교통 문제가 해결 불가능한 상태에요. 서울시 도시계획은 원래 좁은 장소여서 1,000만을 포용하기에는 도시계획적으로 결함이 많은 거에요. 지하철 노선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교통에 철도를 갖다가 보완한 거지... 지하철이 안 만들어졌으면 서울시 도시계획은 빵점이에요." 김명년 (전 지하철건설본부장) 땅 위도 땅밑도 제대로, 탈 없이 1971년 4월 12일 시청 앞 광장, 수많은 인파 속에서 착공식을 개최하며 지하철 공사의 시작을 성대하게 알렸다. 하지만 이내 곧 건설공사는 여러 난관에 봉착하.. 2024. 8. 15. 서울지하철과 남대문 동대문 1971년 4월 12일 착공하고 1974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개통한 서울지하철 1호선은 대한민국 또한 지하철이라는 새로운 교통운수수단을 제공한 혁명이었다. 이 1호선이 봉착한 문제 중 하나가 문화재였으니 공교롭게도 남대문과 동대문을 둘 다 관통했다. 이 문제를 어찌 해결했을까? 저 앞 사진은 동대문 옆을 관통하는 지하철 구간이며 이건 남대문을 통과하는 구간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재관리국과 적지 않이 부닥치게 되는데 이때 자리를 박차고 절대 불가를 외친 문화재위원이 손보기였다. 이 이야기는 다른 자리서 마련해보기로 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지하철 특별전시실에서 초한다. 2024. 8. 15. 본질과 현실은 팽개치고 기예능으로 달려가는 박물관학 아이콤ICOM이라는 데서 새로운 박물관 정의로 다음을 던진 것이 20022년이다. “A museum is a not-for-profit, permanent institution in the service of society that researches, collects, conserves, interprets and exhibits tangible and intangible heritage. Open to the public, accessible and inclusive, museums foster diversity and sustainability. They operate and communicate ethically, professionally and with the participation of c.. 2024. 8. 15. 청진동을 뚫고 오른 백자 달항아리 백자 항아리 호壺 White Porcelain Jar 15세기 말 ~16세기 초 보물 제1905호, 종로 청진 1지구 출토 서울역사박물관 이 분들은 출토 과정을 내가 봤다. 종로 청진지구 피맛골에서 일괄로 발굴된 백자 항아리다. 피맛골은 시전 행장의 배후에 뻗어있는 뒷골목에 해당하는 곳이다. 여러 계층 사람들이 살았다. 이 유물을 통해 조선전기 한양 사람들의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박물관 안내 태그가 있다. 무슨 생활상? 말이 없다. 모르기 때문이다. 뭔가? 지진구? 진단구? 태항아리일 가능성 90프로다. 출토 장면 보자. 2024. 8. 15. 개뻥으로 얼룩진 광개토왕비는 그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땅의 고구려 강성주의자들과 그에 기초한 강성한 한민족 내셔널리스트들은 몹시도 저 절대하는 성전인 광개토왕비문이 실은 과장 축소 왜곡으로 얼룩졌다는 말에 분개할 것임을 안다. 그럼에도 내가 이를 줄기차게 틈날 때마다 지적하는 이유는 당대 기록일수록 저럴 위험성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함이며, 나아가 그것을 사실FACT로 간주하는 출발 자체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함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저 광개토왕비문은 벌써 그 절대하는 뿌리는 고구려왕실의 출발 자체부터 역사왜곡으로 출발한다. 이 고구려가 출발한 내력은 부여 왕실에서의 권력투쟁 패배다. 그에서 패한 주몽 혹은 추모는 결국 부여를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그 도망 과정에서 추격병을 피하느나라 목숨을 건 도박을 했다. 도망길에 가로막고 선 엄리대수.. 2024. 8. 15. 에도시대 연구가 더 필요함 우리나라는 에도시대 연구가 더 필요하다. 에도시대를 모른다는 건 조선을 모른다는 거고, 조선을 정확히 모르니왜 망했는지 진단도 안 되는 것이다. 왜 망했는지 진단도 안 된다는 건망하는 방향으로 앞으로 또 한번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사를 보면, 가마쿠라 시대 이후 한국과 일본은 상당히 다른 역사의 행로를 겪었지만, 사실 그 차이라고 해 봐야 별 것 없고, 결국 에도시대 이후에야 양국 사이에, 질적 양적 차이가 발생하여 두 나라 수준차가 현격히 벌어져그 최종 결과는 불행하게도 조선의 식민지화로 이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실학을 파는 노력의 10분의 1만 일본 에도시대 연구에 한국학계가 매진해도, 조선 후기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한국근세사에 있어 에도시대에 대한 이해는 .. 2024. 8. 15. 왜 밖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 궁릉의 경우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을 합쳐 흔히 4대 궁이라 하고 추모시설이자 귀신집인 종묘를 포함해 5대 궁묘宮廟라 한다. 나 역시 이쪽 업계 종사하는 바람에 아주 자주 내 처지를 망각해버리고선 이쪽 업계 시각에서 저들을 바라보는데 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예를 들어보자. 저 오대 궁묘 한번 이상 다 가 본 사람이 대한민국 오천만 중 몇명이라 생각하며 서울시민 중에선 몇 명이나 될까? 이 기초통계 수치가 문화재청엔 없어 내가 이 기초조사 필요하다 주문하기도 한다. 개별로 들어가 가장 유입이 많은 경복궁은? 울 엄마 저 중 경복궁만 딱 한 번 가봤고 선친은 단 한 군데도 모르고 돌아가셨다. 한데 우리가 저들 궁묘를 바라보는 시각은 온통 그것을 내집마냥 여기는 나같은 사람들의 그것이다. 궁묘 다가본 사람? 장담.. 2024. 8. 14. 김형구 한국등잔박물관장 타계 김형구 한국등잔박물장이 12일 타계했다고 이 박물관이 말했다. 향년 82세. 고인은 3대에 걸쳐 수집한 등잔 관련 유물을 모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한국등잔박물관을 개관 운영하면서 매년 1~2회 기획전시를 개최했다. 등잔박물관은 1969년 수원에서 개관한 고등기전시관에 뿌리를 두며, 고인은 1997년 9월 박물관을 재단법인으로 만들어 정식 개관하고 2년 뒤에는 이를 던담하는 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이는 사유재산을 공공재산으로 전환한 신호탄으로 평가된다. 등잔에 혹닉한 고인은 등잔이는 호를 쓰기도 했다. 올해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한 ‘제27회 전국박물관인대회’에서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기성 언론에 부고조차 보이지 않아 위선 간단히 소식을 전한다. 2024. 8. 14. 박물관이 내 무식을 폭로하는 자리일 수는 없다 우리 박물관이 훈육 일변도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제 그 정체를 폭로할 때가 되었다. 나는 저 괴물이야말로 박물관이 버림받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 본다. 나는 작금 우리 박물관이 저렇다고 본다. 물론 저에서 벗어나는 데가 더러, 혹은 적지 않이 있다고 보지만 시종일관 가르치려 들고 그런 까닭에 시종일관 우리네 박물관은 가는 나를 무식하게 만든다. 더 간단히 내가 무식하다는 사실을 토설하게 만드는 곳, 그런 곳이 박물관이다. 왜 내가 무식해야 한단 말인가? 왜 내가 그런 무식함을 확인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주의에 철저한 박물관일수록 넌 이건 몰랐제? 넌 이건 알고 가야 한다는 윽박과 훈시로 넘쳐난다. 내 무식을 폭로하는 자리, 이것이야말로 박물관이 버림받는 이유다. 자! 진단이 나왔으니 무엇을 해야.. 2024. 8. 14. 박물관을 가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박물관 귀족주의 다시금 지적하지만 박물관이 장착한 문제는 박물관을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박물관을 가지 않는 사람들한테 답을 찾아야 한다. 박물관을 가지 않는 사람들,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 한 번 가고는 다시 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해야 박물관이 내포한 문제가 풀린다. 작금 박물관학이 장착한 문제는 모조리 박물관 안에서 박물관을 본다는 데 있다. 안에서 뭐가 보이겠는가? 그 테두리를 벗어던져야 한다. 박물관에 갇힌 박물관 바라보기는 이렇게 좋은 박물관이라는 자화자찬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실제 박물관학이라 범주하는 거의 모든 흐름이 내가 볼 때는 이런 자아도취다. 그런 자아도취는 급기야 신판 귀족주의라 할 만한 우려스런 흐름을 낳고 있는데, 실제 내가 박물관을 한다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태에서 이런 우려스.. 2024. 8. 14. 이전 1 ··· 320 321 322 323 324 325 326 ··· 111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