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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稼亭) 이곡(李穀·1298~1351) 연보 그의 사후 아들 이색(李穡)과 사위 박상충(朴尙衷)이 엮은 《가정집(稼亭集)》 所收 ‘가정선생연보(稼亭先生年譜)’에 의한 그의 일생은 다음과 같다.(출처 한국고전번역원 DB) 대덕(大德) 2년 무술(1298, 충렬왕 24) : 7월 임인일에 공이 태어나다.연우(延祐) 4년 정사(1317, 충숙왕 4) : 거자과(擧子科)에 합격하다. 박효수(朴孝修)가 감시(監試)하다.연우 7년 경신(1320, 충숙왕 7) : 가을에 수재과(秀才科)에 제2명(第二名)으로 합격하다. 익재(益齋) 선생 이제현(李齊賢)이 지공거(知貢擧)였고, 박효수가 동지공거(同知貢擧)였다. 복주 사록참군사(福州司錄參軍事)에 조용(調用)되다.태정(泰定) 3년 병인(1326, 충숙왕 13) : 가을에 정동성(征東省) 향시(鄕試)에 제3명으로 합격..
낙랑군 속현 지명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漢書 권제 28下는 地理志 第八上이라, 이에는 아래와 같은 전한시대에 설치한 郡별로 그 호수와 인구, 그리고 속현 명단이 저록됐거니와,遼西郡 : 戶七萬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萬二千三百二十五。縣十四:且慮,海陽,新安平,柳城,令支,肥如,賓從,交黎,陽樂,狐蘇,徒河,文成,臨渝,絫。遼東郡 : 戶五萬五千九百七十二,口二十七萬二千五百三十九。縣十八:襄平,新昌,無慮,望平,房,候城,遼隊,遼陽,險瀆,居就,高顯,安市,武次,平郭,西安平,文,番汗,沓氏。玄菟郡 : 戶四萬五千六,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縣三:高句驪,上殷台,西蓋馬。樂浪郡 : 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縣二十五:朝鮮,俨邯,浿水,含資,黏蟬,遂成,增地,帶方,駟望,海冥,列口,長岑,屯有,昭明,鏤方,提奚,渾彌,吞列,東傥,不而,蠶台,華麗,邪頭昧,前莫,夫租。당시 중국 한 왕..
용케 살아남은 건축물 2015년 1월 27일 어떤 학술대회 내 발표문 중 일부 구절이다. 더불어 문화재로 분류하는 전통시대 건축물에 대해서는 또 다른 신화가 용틀임하고 있으니, 그런 건축물은 현대의 어느 건축물보다 더 견고하다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냉혹해야 합니다. 그 건축물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현재 전하는 건축물은 그것이 전통기법에 따라 지었기 때문에 튼튼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물론 그런 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살아남을 호조건이었기 때문에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옛날 건축물 중 천만이 사라지고, 아주 용케 개중 몇 개가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 중 나무 중에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들 두 나무가 특별히 수명이 길어서, 그리고 튼튼해서 살아남은 것입니..
찬탈과 양위, 그 시소게임 방원이는 왜 생전에 셋째 이도한테 양위했을까? 방석이 때문이다. 방석이가 실패한 원인..그건을 전복한 자가 본인이기에 어찌해야 하는지를 너무 잘 알았다. 성계가 실패한 이유는 골육의 정을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석이를 제외한 모든 아들은 죽여버리거나 팔다리를 끊고 지방으로 위리안치했어야 한다. 이걸 본능으로 방원이는 알았다.한데 이도는 이걸 몰랐다. 아들이 병약함을 알았으되 그 아들을 지나 바로 손자에게 갈수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로대 혈육에 이끌려 후사를 망치고 말았다. 권력은 부자라도 나누는 물건이 아니다. 태양은 하나다.
화랑세기를 피해가는 한 방법 나는 물건 감정과 전문가는 다르다고 본다. 미술사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예컨대 도자기가 있다. 나는 도자기 감정을 잘 한다 해서 그 사람이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로 보지는 않는다. 이 논리대로라면 가장 뛰어난 도자기 연구자는 그 진위를 감정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사동 같은 데서 일하는 골동품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골동품 취급하는 일과 도자기를 연구하는 일은 다른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하지만 연구자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으니, 무엇인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단안해야 할 때는 서슴없이 해야 한다. 그것이 잘못된 감정일지라도 말이다."1989년 부산에서 발견된 이른바 화랑세기에는 김흠돌 모반의 전말이 확인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 중이..
"똥에 핀 꽃 왕소군(王昭君)"-석숭(石崇) 아래 텍스트는 《옥대신영玉臺新詠》 卷1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제목 왕소군사(王昭君辭)의 '사辭'란 굴원의 대표작을 《초사(楚辭)》라 하거니와, 이는 초 지방 노래라는 뜻이니 이에서 비롯되어 왕소군을 소재로 한 노래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듯하다. 이 시에는 아래와 같은 서문에 있거니와, 이 서문이 《玉臺新詠》 찬자의 것인지, 아니면 왕소군사의 원래 저자인 석숭石崇의 것인지 지금 단안은 못하겠지만, 후자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석숭(249~300)은 서진시대를 대표하는 사치가요 권력가였다가 나중에 패가망신했다. 그를 둘러싼 사치 행각은 《세설신어世說新語》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산발한다.왕명군(王明君)이란 본래 왕소군(王昭君)인데, 曺나라 황제 문제文帝의 휘諱에 저촉된다 해서 이름을 고쳤다. 흉노匈奴가 강..
태수님 껄떡거리지 마오..이백(李白)의 자야오가(子夜吳歌) 李白의 ‘子夜吳歌’ 4首 중 春歌다.秦地羅敷女 진나라땅 나부라는 여인采桑綠水邊 푸른 강가에서 뽕을 따네 素手青條上 고운 손 파란 가지에 올리니紅粧白日鮮 붉은 화장 햇살에 희게 빛나네 蠶飢妾欲去 누에가 배고파요 저는 가요 五馬莫留連 태수님 껄떡거리지 마오
전성남(戰城南) : 내 시체 먹어줄 까마귀에게 漢 樂府 중에 전쟁과 관련한 노래인 곡취곡사(鼓吹曲辭) 중에 나중에는 그 첫 대목을 따서 ‘성전남’(戰城南), 즉 ‘성 남쪽에서 싸우다가’라고 부르는 시 한 편이 있으니 가사와 옮김은 다음과 같다.戰城南死郭北 내성 남쪽에서 싸우다가 외성 북쪽에서 죽고마네野死不葬烏可食 들판에서 죽어 묻어주지 않으니 까마귀밥 신세爲我謂烏 나 대신 까마귀에게 말해주오且爲客豪 부디 객을 위해 곡이나 해주라고野死諒不葬 들판에서 죽어 묻어주지 않으니腐肉安能去子逃 썩은 육신 어찌 그대에게서 도망치리오水深激激 깊은 물살 세차고蒲韋冥冥 갈대 덮어 어둑어둑梟騎戰鬪死 날쌘 말은 싸우다 죽어버리고駑馬徘徊鳴 둔한 말만 서성이며 울부짓네梁築室何以南何以北 집짓는 사람들 어찌하여 남북을 왔다갔다 하는지禾黍不獲君何食 곡식 거두지 못하니 그대 무얼 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