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2199 초고속 승진 가도 달린 최항, 이삼십대에 이미 지공거 최언위 손자인 최항崔沆이 역사 전면에 등장한 시점은 고려 성종成宗 10년(991)이라, 이해는 윤달이 끼어 그 윤2월에 실시된 과거시험에 그가 급제해 등단한 것이다. 고려사 그의 열전에는 이때 나이 20세로 갑과甲科에 급제했다 했으니, 972년, 광종 23년에 태어났다. 20세 등과는 상당히 빨랐으니, 서희 역시 이 나이인가 더 빨리 등단했으니, 할아버지 아버지 위광이 있었다 해도, 대단한 재능을 발휘한 천재임을 엿본다. 유의할 점은 그는 77세로 장수한 할아버지 최언위 얼굴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보았듯이 최언위는 이미 944년 사망한 것이다. 이는 마흔두살 다 늙어서 고려로 귀환한 최언위가 귀국 뒤에 새 장가를 갔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어린 놈이 잘나서 이뻤는지 성종은 우습유 지제고右拾遺 .. 2024. 2. 4. 왜 남이 버린 축구장 쓰레기까지 치우는가?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108&aid=0003212952 [카타르 현장] 김민재 미담 이어... "대단한 韓팬들" 경기장 청소 화제, 현지팬들 감탄[스타뉴스 | 도하(카타르)=이원희 기자] 클린스만호를 응원하는 한국 팬들. /사진=OSEN대표팀 수비수가 지난 8강 호주전을 마치고 한 축구팬에게 유니폼을 선물하고 있다. /사진=OSEN'괴물 수비수' sports.news.naver.com 초등학생도 아니고 국제경기에서 남들 버린것 까지 다 치우고 나오는 것은 그만들 좀 했으면 한다. 자기가 만든 쓰레기만 치우고 나오면 되는 것이지 다른 잘 사는 나라들도 남들것 까지 쓰레기 봉투 들고 다니며 치우지 않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그런 것이다. 경기장에 치우는 사.. 2024. 2. 4. 기구한 인생을 산 최언위 네 아들, 국제 이산가족 작금 방영 중인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 고려 조정 신료 중에 최항崔沆(?~1024)이라는 이가 있어 꽤 비중 있는 역할로 나온다. 그가 바로 최언위 손자다. 그의 아버지가 최광원崔光遠인데 최언위 셋째 아들로 그의 아들 중에서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아 생전에 관직이 비서소감秘書少監까지 이르렀다. 맏아들 최광윤崔光胤은 아버지처럼 일찍이 아버지와 비슷한 코스를 걸어 빈공진사賓貢進士로 후진後晉936년~946)에 가서 유학했지만 인생이 꼬이고 말았다. 후진을 침략한 거란에게 사로잡혀 거기서 벼슬살이를 한 것이다. 귀성龜城이란 데로 사신으로 갔다가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려는 것을 알고 글을 써서 번인蕃에게 부탁하여 알렸다 했으니 이 일로 고려가 군사 30만을 뽑아 광군光軍을 조직하게 된다. 둘째 최행귀崔行歸는 북쪽.. 2024. 2. 4. "신라를 악의적으로 헐뜯고자 한 위작" 1989년의 화랑세기 가짜론 임창순 "화랑들의 활동이나 화랑도의 성격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군음 혼음 관계를 중점적으로 서술한 이 필사본의 내용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인용한 것과도 크게 다를 뿐더러 사람의 성격 묘사 등이 마치 문학작품에서처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점으로 보아 후대의 사람이 신라사회를 헐뜯기 위해 쓴 악의에 찬 위작으로 보인다" "자체와 사용되고 있는 용어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당시의 것들이라 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고 더구나 이것들이 일본의 사료들에 나타나고 있는 특징들과 많이 닮아 있어 위작이라도 우리나라 사람이 행한 것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 필사본의 출처가 불명확한 점도 위작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 "이 사료가 진품일 경우 신라시대의 역사가 완전.. 2024. 2. 4. 다양한 입춘첩 입춘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만 쓰는 줄 아는데, 이 문구로 굳어진 건 오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전에는 시를 지어서 붙이는데, 1구와 2구는 대문 밖 좌우에 3구와 4구는 대문 안쪽 좌우에 붙였다고 한다. 미암 유희춘은 그의 일기에 지은 문구와 붙인 위치를 정확히 써 두었다. 어떤 이는 주련을 입춘마다 바꾸기도 했더라. 전근대시대 문집에 남은 수많은 입춘첩이 그것들이다. 권근(權近, 1352~1409)이 세상을 떠나던 해인 1409년 1월 12일 입춘에 지은 입춘첩은 이 궁벽한 곳에 딱 맞기에 인용한다. 〈입춘 첩자(立春帖子)〉-기축년 1월 12일- 북두성 자루 처음으로 돌아와 北斗星初轉 동풍에 봄기운이 이미 새롭네 東風氣已新 하늘은 후하고 박함이 없어서 天心無厚薄 촌구석에도 푸른.. 2024. 2. 4. 성당시대 지배층 여성 설유순薛柔顺 석관 벽화묘 서안서 출현 서안西安 당唐 설유순薛柔顺 석관벽화묘石棺壁画墓는 서안시西安市 행복림대幸福林带 동쪽, 북령장락동로北邻长乐东路에 위치하며 2023년 섬서성고고연구원陕西省考古研究院이 신성구新城区 장락동로长乐东路区 개발구역을 발굴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이 무덤은 무덤 안쪽으로 비스듬히 파고 들어가는 출입시설인 사파묘도斜坡墓道를 갖추고 묘실 지붕에 3개 뚫음이 있는 삼천정三天井에 묘실은 하나인 단실单室이며 재료로는 벽돌로 쌓은 전실묘砖室墓에 속한다. 이미 도굴 피해를 봐서 석문石门과 묘실墓室 천장은 파괴됐고 묘실 내 유물로 대부분 도굴당해 겨우 소량 도기陶器 조각들만 건졌을 뿐이다. 묘도 양쪽에는 두 개 벽감壁龛이 있으며, 그 내부에는 닭、개、낙타 등 동물용动物俑 70여 건을 그나마 건졌다. 묘실 서쪽에서 석관 1구가 발견.. 2024. 2. 4. 낙양 북망산에서 출현한 위진魏晋시대 고위 관료 가족 공동묘지 https://haokan.baidu.com/v?pd=wisenatural&vid=8905354517960629528 낙양洛阳 맹진구孟津区 송장촌送庄村 동남쪽 지구에서 3개 묘장墓葬을 남북 방향으로 안치하고서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차례로 만든 위진시대 가족 공동묘지가 발굴됐다고 낙양시고고연구원洛阳市考古研究院이 최근 발표했다. 이들 무덤은 모두 시신을 묻는 공간인 묘실墓室은 북쪽에 두고 그 반대편 남쪽에다가 묘실 안쪽으로 통하는 출입구인 묘도墓道를 설치했다. 이번 발굴 책임자인 연구원 부연구원副研究员 유빈刘斌에 의하면 낙양에서 발견된 위진시대 묘장은 매우 드문 상황에서 고위 관료를 역임한 가족 공동묘지가 처음으로 낙양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조사단은 이들 무덤에 대해 각각 M1、M2、M3라는 구별 명칭을 .. 2024. 2. 4. 나말여초 문단 거물 최언위와 그의 네 아들(1) 나말여초 문단을 호령한 인물로 최치원崔致遠(857~?), 그리고 견훤을 섬긴 최승우崔承祐(?~?)와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 같은 경주최씨로 그보다는 열한 살 어린 최언위崔彦撝(868~944)다. 치원과 언위 둘은 당나라 유학파로 그에서 급제한 인생 행로가 아주 비슷한데, 또 세트로 움직이기도 했으니, 다만, 최치원은 나말에 해인사로 은거한 뒤에는 행적이 묘연한 데 견주어, 최언위는 달라서 오래산 까닭도 있지마는 고려가 건국한 다음에는 아예 주거지를 경주에서 개경으로 옮기고, 고려 조정에서 문한을 담당한다. 고려사 열전이 정리한 그의 행적을 보면 초명初名이 신지愼之라 했으니, 이는 삼가고 삼갈지니라 하는 뜻에서 취한 이름이라, 다만 그 바꾼 이름 언위彦撝는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내가 아직 추적하.. 2024. 2. 4. Best of best, 수선전도首善全圖의 수선首善 조선시대 도성都城이라 하면 글자 그대로 성곽으로 두른 도읍을 의미했으니, 구체로는 현재 우리가 한양도성이라 일컫는 나성羅城이 둘러친 공간 구역 안쪽을 말한다. 이곳이 서울이라 지금의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가 본래는 엄격한 의미의 도성이며, 이곳이 바로 서울이다. 이 도성은 조선 왕조 건국 직후에 이미 둘러치기 시작해 후대에 끊임없는 보수가 있었지만, 그 공간 구역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조선왕조 오백년 내내 저 구역은 그대로였다. 물론 도시 구역이 성밖으로 계속 확장해가기는 했지만, 한양도성은 죽죽 그 자리에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제작한 도성지도란 곧 저 한양도성 안쪽 지도를 말한다. 실제 그런가는 차치하고 생긴 모양은 천상 자궁 딱 그것이다. 조선시대, 특히 그 후기 도성을 .. 2024. 2. 4. 시루는 똥구멍 숫자도 중요하다 시루 똥꾸멍 숫자 변화로도 사상 변화를 감지한다. 어느 시대까지는 똥꾸멍 숫자에 법칙성이 없어 지 맘대로 뚫는다. 그러다가 어느 시기 이후엔 정합성이 있다. 음양오행설은 시루 똥꾸멍에서 탄생했다. (2016. 2. 3) *** 시루 똥구멍 숫자에 어느 시기부터 정합성이 생기는 거 아는가? 내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고고학도들은 앞으로 살펴 보기 바란다. 어느 시기에 시루 똥구멍에 혁명이 일어난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시루는 똥구멍이 중요하니 박물관 종사자들은 유념해서 전시해 주었으면 한다. 서울대박물관만 해도 십년 전엔 저리 전시했다가 권오씨 집권기에 와서 똥구멍을 감춰 버렸다. 권오가 닭대가리 계수호에 정신이 팔려 k컬처 선두주자인 시루를 등한히 한 까닭이다. 2024. 2. 4. 사무라이 블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870년 당시 호적조사에 의하면 일본 전체 인구의 3.6% 정도가 사족, 다시 말해 좀 폼잡을 수 있는 사무라이 계급이고, 2.7% 정도가 졸족卒族, 다시 말해 아시가루 같은 최하급 무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가루까지 포함해서도 전 인구의 6프로 조금 넘는 정도만이 사족이나 졸족이 되고 나머지는 거의 모두 농민이었던 셈이다. 당신이 일본에 가서 만나는 사람 100명 중 94명은 농민의 후손이고, 그 중 6명이 사족, 그리고 그 여섯 명 중에 또 절반인 3명은 아시가루이니 엄밀히 이야기 하면 사족이라 부르기도 뭣한 계급이었던 셈이다. 근대 일본에서 사무라이 정신 어쩌고하는 것은 그러니까 웃기는 이야기인 것이다. 일본도 "농민정신"이 맞다. 그러니 일본 축구대표팀을 "사무라.. 2024. 2. 4. 바닥부터 재상으로 수직 상승한 왕자지王字之 이름 듣고는 대뜸 대물열전 등판 인물 아닌가 하겠지만, 또 그 후속타를 기대한 사람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아니다. 고려 중기 때 인물이다. 그는 이미 궁예 정권 시절 경사經史에 통달했다 해서 출사해 원외랑員外郞을 거쳐 동궁기실東宮記室까지 이르렀지만 궁예가 포악하게 변하자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가 훗날 세상이 격변하고 왕건이 쿠데타로 고려를 건국하자 다시 나와 국가 기밀을 관장하게 된 박유朴儒라는 사람 현손이다. 박씨 집안 직계 후손임에도 왕씨 성을 쓴 까닭은 이미 저 박유가 하도 고려 왕조가 자리 잡는 데 공이 크다 해서 그 할아버지 박유한테 아예 왕실 성인 왕씨를 하사해 왕유王儒로 창씨개명한 데 따른다. 고려사 왕유 열전에 부기된 왕자지王字之 열전에 의하면 그는 자字가 원장元長이고, 어릴 적 이름은 소중紹.. 2024. 2. 3.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 아래는 충남 부여군 2017년 7월 19일자 보도자료다. 해직 당시인 저 무렵 나는 저 전 5권짜리 단행본 시리즈 중 부여 능산리 고분·사지: 지난 100년의 일기 라는 항목 집필자로 참여했다. 아래 보도자료에서 말하는 △ 5권-능산리고분군과 능산리사지 조사·정비에 관한 취재기록 및 에피소드 가 그것이다. 나 역시 하도 저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 내 기억 환기 차원에서 전재해 둔다. ****************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발간 작성일 2017-07-19 10:27:40 부여군은 사적 제14호 부여 능산리고분군 관련기록을 종합 정리한 「부여 능산리고분군 조사 기록화사업 보고서」를 발간했다. 부여 능산리고분군은 백제 사비기를 대표하는 왕릉군으로 1915년 이래 여러 차례 조사.. 2024. 2. 3. [해외답사모집] 세계문명탐방 그리스 안녕하세요. 작년에 이집트 탐방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2024년에는 그리스를 향해 떠나려 합니다. 일정은 4월 18일부터 28일까지 확정입니다. 서양문명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그리스로마신화와 성경은 필수죠. 그 두 가지 키워드를 가장 핵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곳. 바로 그리스입니다. 최고의 코스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답사를 준비하다가 갑자기 이직을 하는 바람에 다소 늦었지만 그 사이 근동지방 답사 전문 여행사에서 착실히 모든 준비를 진행하고 있더군요. 저와 같이 그리스문명 탐방에 나설분은 아래 연락처로 메세지 주시기 바랍니다. 딱 10자리 남았습니다. *** 내 친구 춘배 호소문이다. 2024. 2. 3. 동양사에서 귀족제사회의 개념 동양사에서 귀족제사회란 한국사 안에서 귀납적으로 도출된 개념이 아니다. 정확히는 중국사, 그리고 일본사에서 도출된 개념이다. 중국사의 경우 귀족제 사회란 결국 과거제에 기반한 사대부-관료제 사회의 성립 이전, 구체적으로는 당대 이전 사회를 말한다. 당대에 과거제가 작동하기 시작하여 비로소 귀족제사회에서 탈피하여 송대가 되면 사대부 사회가 개화되는 것이다. 일본사에서는 귀족제란 다름 아닌 헤이안시대다. 귀족들이 모든 정치 군사적 권력을 독점하고 번영하다가 무가=사무라이들한테 타도되어 중세가 열린다. 고려시대를 귀족제 사회라고 보는 것은 이 시대를 중국사의 당대 이전, 일본사의 헤이안시대와 같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어떻게 과거제가 식년제로 꼬박 꼬박 시행되고 급제자가 한두 명도 아니고 34명.. 2024. 2. 3. 고려시대 귀족제 설에 대해: 과거제의 관점에서 고려시대는 "귀족제"라고 보는 관점이 아직도 있다. 필자는 이에 대해 여러 번 이 블로그에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는데, 귀족제라고 보는 근거가 매우 박약하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어 귀족제로 보는 근거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아마도 음서제라고 생각하는데, 음서제가 어느 정도로 성행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려사회에서 과거제에 의해 출사한 인물들이 어느정도로 정계를 장악하고 있었는가 이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처럼 식년제 과거로 34명의 급제자를 전 시대에 걸쳐 (무신집정시대의 일부시기를 제외하고) 꼬박 꼬박 배출하고 있었고, 과거제란 귀족제와 절대로 병립할 수 없다. 귀족제라는 것을 인정하려면, 필자 생각에는 이렇다. 과거제를 일체 무시한 출사자들이 정계의 정상부를 차지하고, 그 .. 2024. 2. 3. [五九自述] 나는 책을 구걸하는 거지였다 보도자료를 전문 서비스하는 업체 여산통신이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다. 이 회사의 등장과 그 역사가 바로 문화부 기자, 특히 그 중에서도 학술을 담당하는 내 인생에 일대 변모를 가져오게 된다. 무슨 말인가? 이 여산통신을 통해 나는 더 이상 신간新刊을 구걸하는 시대를 청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산통신이 제공하는 서비스 중에 바로 각 출판사의 신간 홍보 업무가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책을 낸 출판사가 그것을 언론사를 통해 홍보하려 할 적에 여산통신 이전에는 일일이 출판사에서 주소를 써서 그것을 해당 언론사와 해당 기자에게 우편물로 발송했지만, 여산통신의 등장과 더불어 이것이 단일창구로 정리된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여산통신이 정착함에 따라 여산통신 자체에서 발언력을 높여 신간 배포처를 나름 독자적으로.. 2024. 2. 3. 뜯어먹다 남은 고려사 목종 이전 실록, 황주량의 고군분투 고려는 왕건 이래 사관을 두었으며, 각 왕대별로 실록을 편찬했다. 즉,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 곧바로 전대 왕 실록 찬수에 착수해 왕대별 실록을 찬진해 나갔다. 하지만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통독하다 보면, 왕건 이래 제7대 목종穆宗(재위 997~1009)까지 기록은 빈한하기 짝이 없어 뜯어먹다 버린 다랑어 같다. 이리 된 까닭은 제2차 고려거란전쟁에 개경이 함락당하면서 궁궐이 불타버리고 전대 실록 역시 모조리 소실된 까닭이라, 그런 흔적이 너무나 뚜렷해서 목종 이전과 목종 이후 고려사는 질과 양 모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전기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목종시대까지 실록을 흔히 7대실록이라 이름하니, 고유명사가 아니라 그 전 시대 통사를 통칭하는 것이다. 실록을 편찬하려면 그를 위한 임시기구라 출범하는데,.. 2024. 2. 3. 열받은 김방경 1277년 모함을 받아 국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그를 모함한 이들과 대질신문을 하였는데, 상대가 거짓말을 늘어놓자... 김방경은 성품이 과묵하였는데 또 분노하게 되니 말할 수 없는 정도에 달한 듯하였다. - 김방경 열전 중에서 2024. 2. 3. 최충과 경쟁한 사설학원들, 모조리 재상이 재단이사장 한민족 특징 중 하나는 사돈이 땅을 사면 내 배가 아프다는 증상이라, 최충이 연 사립학교가 성공하자, 그 꼴을 딴 사람들이 보고둘 리 만무했다. 더구나 쪽집게 강사로 소문나서 떼돈까지 벌어가는 명문입시학원이라는데 그것을 어찌 눈뜨고 차마 볼 수 있겠는가? 각자 찌라시 만들어 돌리며 학생 유치에 혈안이었으니 그때라고 허위과장광고가 왜 없었겠는가? 그 찌라시엔 이런 구절이 빠지지 않았다. 과거 합격 백퍼 보장 앞서 소개한 고려사 권74 지志 권 제28 선거選擧2 학교學校 사학私學 편에는 최충과 경쟁한 다른 사립학원들이 소개되어 있다. 또 (최충 말고도) 유신儒臣으로서 도徒를 세운 이가 11명이었다. 고 하면서 그 명단을 나열하기를 1. 홍문공도弘文公徒 by 시중侍中 정배걸鄭倍傑, 일명 웅천도熊川徒. 이름으로.. 2024. 2. 3. 강남의 귤 강북의 탱자 양자강에서 한반도로 바로 쌀농사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양자강에서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쌀농사가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강남의 귤, 강북의 탱자라는 속담이 있다. 강남의 쌀농사가 한반도나 일본으로 바로 이식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엔 힘든다. 강남의 쌀농사가 한반도나 일본으로 바로 이식되면 쭉정이가 많이 생길 것이 틀림없다. 평균기온과 일조량 때문이다. 복잡하게 떠들 것 없고. 한 번만 농사 지어보면 안다. 2024. 2. 3. 이전 1 ··· 378 379 380 381 382 383 384 ··· 105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