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2841 조몽시대의 두개골 손상 조몬시대 두개골이 뚫린 흔적이? 대개 인골에서 폭력에 의한 손상이 많이 보이는 것은 전쟁이 급증하는 징후로 보아 일본에서는 야요이시대 이후의 인골에서는 많이 보인다. 조몽시대는 이보다 폭력의 징후가 많지 않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번에 찾은 sign은 제대로 된 무기는 아니라 해도 녹각이나 골각기 등으로 조몽시대 사람들 사이에 이미 폭력이 빈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저자들은 하고 싶어 하는것 같다. 사람 사는 곳에 분쟁이 왜 없겠는가. 먼 옛날은 평화로운 시대였다는 생각은 매력적일지 모르겠지만 사실과는 동떨어진 일일 가능성이 높겠다. 아래는 해당 논문이 수록된 학술지와 초록이다. 羽島貝塚は岡山県倉敷市に所在する縄文時代前期の貝塚である。当遺跡から1920年に発掘された頭骨1点には左前頭部に楕円形の孔があるが,それは先行研.. 2024. 4. 4. 추락해서 더 고운 동백 Camellia, a flower that becomes more beautiful after falling 지는 꽃이 아름다울 순 없다. 동백은 유일한 예외라 고공낙하해서 더 빛을 발한다. 늙을수록 추해지지 말아야 한다 2024. 4. 4. 10년 전에 짚어본 중국의 수중발굴 작금 수중고고학 분야에서 중국의 행보는 가히 고삐 풀린 망아지라, 어느 쪽으로 얼마만큼 튈지를 모르겠다. 특히 근자 그네가 남해南海라 부르는 남중국 해역에서 시도한 명나라 시대 고선박 발굴은 지켜보는 이들을 경악케 했으니, 해저 1천500미터 뻘에 가라앉은 난파선 두 척을 그 해저로 내려가 조사하고, 유물을 인양한 것이다. 그네가 공개한 조사 몇 장면을 보면 로봇이 도자기를 수습하는 장면이 있는데, 더 놀랍게도 사람이 직접 그 심해에서 조사를 했다고 하니, 이것이 경악할 노릇 아니고 무엇이랴? 그 전에는 같은 남해 해역이기는 하나, 가장 먼저 발견한 고선박이라 해서 남해1호南海1號라 이름한 송나라시대 침몰선은 아예 4천톤짜리 크레인선을 이용해 비록 수심이 얕기는 하나, 아예 선체 전체를 밑에서부터 삽자루.. 2024. 4. 4.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1) 정몽주가 죽다 살아난 봉래선 2006년 8월 28일은 월요일이었다. 이날 오전을 기해 나는 미리 준비한 관련 기사를 와장창 쏟아냈으니, 요새 언론계가 선호하는 표현을 빌리건대 이른바 [단독기사]들이었다.말 나온 김에 같은 단독기사라는데, [단독]이라 하면 밋밋하고, [특종]이나 [스쿱 scoop]이라 하면 좀 있어 보이는데, 내가 언제나 말하듯이 그 표현이 무엇이건 특종이라는 거 실상 암것도 아닌 언론계 지들 마스터베이션에 지나지 않으며, 일반은 그딴 데 아무런 관심도 없다.그 보도가 사실이냐 아니냐, 믿을 만 한가 아닌가? 그 파급력은 어떤가? 하는 이런 점들이 중요하지, 그런 기사를 누가 언제 가장 먼저 썼느냐가 무에 중요하겠는가? 나아가 단독 혹은 특종은 정의가 간단해서 다른 언론 혹은 기자가 쓰지 않은데 내가 쓴 기사를 말한.. 2024. 4. 4. 조몬시대 두개골이 뚫린 흔적이? 차순철 선생을 통해 접한 소식이다. 약 100년 전에 일본국 오카야마현岡山県 구라시키시倉敷市 조개무지[패총貝塚]에서 출토되어 동경대종합연구박물관東京大総合研究博物館에서 소장한 약 6천년 전 조몬시대縄文時代 전기 인간 두개골에 뾰족한 도구로 찔린 듯한 흔적이 있다는 사실이 이 자료를 정리하던 학생이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다른 조몬시대 인골도 살폈더니 비슷한 양상이 확인됐다고. 다만 이것이 생전 폭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사후에 모종의 의식 일환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발견 내용은 4일 일본인류학회지에 게재된다고. 동경대 대학원 수사과정修士課程 2년 생인 평야력야平野力也 씨는 이 대학 박물관 소장 품을 정리하던 2022년 12월에 이 두개골을 살피하다가 그 전두부前頭部에 타원형 구멍이 있음을 보았거니.. 2024. 4. 4. 또 한 척의 중국 난파 도자무역선, 남오1호南澳一号[남해2호南海二號] 발견 직후엔 남해2호南海二號라 부르다가 2009년 9월 25일을 기해 중국에서 남오1호 南澳一号 혹은 난아오 원 Nan'ao One으로 개칭한 이 난파선은 25.5 m 길이, 7.0 m 폭 규모인 옛 도자 중심 중국 무역선 merchant ship으로, 중국 명나라 시대 광동성廣東省 산두시汕头市 남오현南澳县 동남쪽 오서乌屿와 관서官屿 사이 속칭 “삼점금三点金”이라 하는 반조초半潮礁 해역, 곧 남오도南澳岛 운오진云澳镇 약 2해리 지점에 침몰해 해저 27미터 지점에 묻혔다. 2007년 5월 25일, 다이빙해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한테서 우연히 발견된 이 침몰선은 2009년 9월 수중 발굴 프로젝트가 공식 시작되어 2012년 9월까지 3차에 걸친 인양 작업이 완료되어 총 3만 점에 가까운 유물을 출수出水했다. .. 2024. 4. 4. 대학과 정치 필자도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보니 나라 밖의 대학, 그리고 연구자들과 교류가 좀 있는 편인데, 필자 기억으로는 선진국 후진국을 막론하고 연구를 하다가 정치판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정말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같은 동양권인 일본의 경우도 필자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필자가 아는 한 대학에서 제대로 연구를 하던 사람이 중의원선거니 참의원선거니 나간다고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물론 필자가 과문해서일 수도 있겠고, 필자가 아는 사람들 폭이 좁은 탓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대학과 정치판의 교류, 특히 연구자들과 정치판의 동기화가 너무 심하다고 보는데 국제적으로 따져 봐도 아마 유례가 없을 수준일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대학의 연구자들이 정치판 진출이 잦은 .. 2024. 4. 4. 소호 김응원(1855-1921)의 묵란 墨痕香沁影欹斜 먹 흔적에 향기 스미고 그림자 비껴있는데 紙上參差盡着花 종이 위에 길고 짧은 선 다 꽃을 피웠고나 흥선대원군의 청지기였다는 이야기가 전할 정도로 한미한 출신이었던 김응원, 그러나 그는 발군의 서화 실력으로 20세기 초 한국 예술계에 군림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난초에 뛰어났다. 출신 때문에 그의 그림도 흥선대원군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 그가 남긴 작품을 보면 '석파란'과 다른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려 무진 애쓴 흔적이 보인다(그 노력이 성공적이었는지는 둘째치고). 이 묵란도 그런 김응원의 노력과 성취를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난초 잎에 리듬을 주어 길게 뽑아내는 모습은 아직 석파 태공의 태를 못벗었고 확실히 그보단 약간 미숙해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시덤불 속에서 .. 2024. 4. 4. 벚꽃 절정 경주 느닷없이 기온이 뚝 떨어진 데다 하루 종일 비바람이 친 여파인지 사쿠라 만발한 경주 김유신길은 사람으로 미어터져야 하나 한산하다. 한산하면 한산한 대로 복닥하면 복닥한 대로 각기 다른 맛이 상춘엔 있는 법이다. 변덕하는 봄날씨에 장단을 맞추지 못한 사쿠라가 주말을 고비로 마침내 부풀어 오르다 터져버린 고름처럼 폭발했다. 꽃은 굳은살이 없다. 작년에 보았다 해서 올해는 시들어디는 무딘 살이 아니다. 겪을수록 더욱 새롭고 만날수록 더욱 들뜨고 볼수록 더욱 물림이 없는 이 그걸 꽃이라 부른다. 사랑은 쉬 식어버리나 그 사랑 더욱 새롭게 하는 이 春花라 이름한다. 2024. 4. 4. 닭 사육의 기원 이야기 김단장께서 소개하신 논문을 대략 살펴 보았다. 사실 며칠 전에 필자가 동물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미국 대학의 지인으로부터 요즘 새로 나온 닭의 기원과 확산에 대한 논문이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갑자기 메일로 전해진 소리라 무슨 소린지 모르고 있다가 오늘 김단장께서 올린 기사를 보고 비로소 그 이야기가 이 이야기인지 알았다. 이 논문을 오늘 간략히 읽어 보았는데 사실 이 논문은 실크로드-서역지역이 닭 사육의 기원지라는 뜻으로 쓴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현재 고고학적으로 닭 사육의 증거는 상당히 시기가 거슬러 올라가 있어 중국의 경우 황하 유역에서 기원전 5000년 경의 닭뼈도 확인된 바 있다. 특히 가축의 사육에 있어 중요한 부분인 야생종의 경우, 야생닭은 남아시아, 동남아, 남.. 2024. 4. 3. 남해1호南海一号, 중국 수중고고학의 금자탑 남해1호, 난하이 원 The Nanhai One, 혹은 South China Sea No. 1은 중국에서는 南海一号 혹은 南海I号 라 표기하는 남송南宋 초기에 침몰한 당시 중국 도자기무역선으로, 난파 시점은 1127~1279년 무렵으로 생각한다. 1987년 영국 사우샘프턴 해양 탐사 및 복구 PLC(MER PLC) 팀이 18세기 선박 Rhynsburg 난파선을 수색하던 중 발견된 이 난파선은 길이 30.4m, 너비 9.8m, 돛대 제외 높이 3.5m로 드러난 이른바 해양실크로드 중국 최초 발견 선박 실물로, 조사 결과 도자기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 물품을 잔뜩 싣고 중국 남부 항구를 출항했다가 폭풍우에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송나라 도자기 약 200점과 송나라 동전, 약 130kg에 이르는 은.. 2024. 4. 3. 벚꽃 축제 끝나기 기다려 만발한 경주 사쿠라 날씨 체크 안했다가 낭패라 경주역 가까워지자 여찔금 지름 짜듯 빗방울 찻장 때리기 시작하더니 버스 갈아타고 대릉원 후문 내려 능원 통과하는데 각중에 빗방울 굵어지기 시작한다. 우산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할 수 없이 빵집 피신하고선 오작한테 sos 우산 가꼬 나오라. 문도 열지 않은 빵집 아저씨 닥달해서 문 열게 하고선 아뜨 한잔 땡기니 살 만하다. 이쪽은 부부가 한쪽은 빵집 다른 쪽은 커피숍이라 각자도생이라 해서 어느 쪽이 이문이 남냐 하니 마누래 쪽 빵집이라 해서 쪼끼나지 말고 잘 모시고 살라 부탁한다. 올핸 불순한 달거리마냥 봄이 불순한 까닭에 봄 축제 준비했다 낭패 당한 데 한둘 아니라 하거니와 경주사쿠라축제도 그 모양이 난 모양이라 지난주 축제 기간 내내 사쿠라는 구경도 못하다가 이쪽 대릉원 기준 .. 2024. 4. 3. 구리와 화폐경제 한국사에서는-. 모자란 구리 때문에 공급되는 화폐의 양이 적어 화폐경제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순전히 실물경제의 문제 때문에 화폐를 공급해도 돈이 제대로 돌지 않은 것일까? 한국사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필자가 보기엔 구리의 부족이다. 이 때문에 청동기시대에는 청동기물이 모자라 돌칼까지 갈아 위신재를 만들어야 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화폐경제를 제대로 띄우는데 필요한 통화량의 절대 부족으로 그 최종 결과물이 조선후기까지도 현물거래를 완전히 불식하지 못했다는데 있는 것 같다. 한국사에서 항상 보는 전황. 전황은 근대 이전 한국사에서는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사가 근대 이전 경제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왠만한 수준의 경제면 다.. 2024. 4. 3. 닭 사육도? 실크로드가 하지 않은 일이 뭔가? [사이테크+] "실크로드는 치킨로드였다…가축화한 닭 중앙亞서 세계로 확산" 2024-04-03 05:00 獨 연구팀 "중앙아 실크로드 유적지 12곳서 가축화된 초기 닭의 알 확인" https://m.yna.co.kr/view/AKR20240402134200017?section=culture/scholarship [사이테크+] "실크로드는 치킨로드였다…가축화한 닭 중앙亞서 세계로 확산"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고대 동·서양 문물 교류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실크로드가 세계에서 중요한 먹거리 중 하나가 된 가축화한 닭이 ...www.yna.co.kr 요새는 기자질도 힘든 시대라 저 보도 말미엔 해당 기사 원천ㅊ소스인 문제의 논문 출처 url를 명기하거니와 클릭하고 들어가니 오픈액세스라 전.. 2024. 4. 3. 조선시대 이해에 가장 중요한 에도시대 조선시대의 이해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필자가 보기엔 에도시대 연구다. 에도시대가 시작되기 이전에도 이미 양국은 소위 말하는 사대부사회와 무가사회로 시스템의 측면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진짜 차이가 발생하는 시기가 바로 에도시대인 까닭이다. 이 에도시대 300년간 양국 정치문화경제적 차이가 모두 확연해졌고 그 최종 결과물이 1910년 국치다. 조선시대를 정확히 알고 싶다면 에도시대를 파고 들어가야 한다. 조선시대 사상사를 확실히 알고 싶다면 에도시대 지성사를, 조선시대 경제사를 정확히 파악하고 싶다면 에도시대 경제사를 섭렵해야 할 것이다. 에도시대는 조선시대의 거울이자 조선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24. 4. 3. 실상사 넘어가는 고갯길 마주한 남원 여원치 마애불상 남원 여원치 마애불상이다. 광한루 용담사 쪽에서 실상사로 넘어가는 해발 480미터 고개 여원치 길목에 위치한다. 겨냥하고 간 것은 아니다. 2012년 4월 24일, 실상사로 넘어가는 길목에 똥색 문화재 안내판이 보여 그것이 안내하는 곳을 따라 가다 보니 만난 부처님이다. 인연이었을까? 글쎄다. 고려말 이성계의 이 지역 왜구 토벌과 연관이 깊음을 증언하는 명문이 있다. (2017. 4. 3) 2024. 4. 3. 애국심 고취를 내세운 위해威海 갑오침함甲午沉舰 발굴 국가문물국 총솔하에 국가문물국심国家文物局 고고연구중심考古研究中은 산동山东·요녕성辽宁两省 문박단위文博单位와 연합해서 2014년 이래 지속적으로 갑오침선甲午沉舰 수중고고발굴을 전개하여 황해黄海 북부 갑오해전甲午海战[청일전쟁] 주된 무대에서 치원致远·경원经远·초용超勇·양위扬威 네 척을 확인했다. 2017년 이래 국가문물국 고고연구중심은 산동성수하고고연구중심 등과 함께 위해만威海湾 북양해군기지北洋海军基地 부근에서 수중발굴조사와 조선당안造船档案, 그리고 전쟁당안战争档案 등을 종합 연구한 결과 정원定远·정원靖远·래원来远 3척을 확인하고 중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위해만 갑오 침몰선甲午沉舰 유적은 수심 6~10m에 있으며 분포 범위는 850~2100㎡이며 수중 뻘 0.5-3미터 아래에 있으며 완전한 선체는 없으며 관련.. 2024. 4. 2. 중국 수중고고학 또 하나의 성과, 복건성 장주에선 원나라 용천청자 민간 해외 무역상선 발굴 장주漳州 성배서圣杯屿 원대元代 침선 유지沉船遗址 1.6만여건 용천청자龙泉青瓷 出水 2023年10月19日14:13 | 来源:人民网小字号 人民网北京10月19日电 (记者韦衍行)10月19日,국가문물국国家文物局은 북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고중국考古中国' 주요 프로젝트 중요한 진전을 소개했으니 회견에서 복건성고고연구원福建省考古研究院 수하고고연구소水下考古研究所 부소장 진호陈浩는 장주漳州 성배서圣杯屿 원나라 시대 침몰선[沉船] 유적 발굴성과를 보고했다. 이 침몰선은 복건성福建省 장주시漳州市 고뢰항古雷港 경제개발구经济开发区 고뢰반도古雷半岛 동쪽 성배서圣杯屿 해역에서 발견됐다. 수심 약 30미터이며 중심 구역에는 목제 선체와 화물더미가 약 300평방미터 범위에 분포한다. 조사 결과 난파선 선체는 잔존 길이 약 16.9.. 2024. 4. 2. 요서지방의 이른바 진시황 행궁 글쎄다, 이걸 짓다 말았다는 말인가? 내 눈엔 아무리 봐도 다 지었다가 폭싹 내려앉은 건물지인듯한데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강녀석유지姜女石遺址 중 석비지유지石碑地遺址 第Ⅲ區 第1組-單元F1及ㅛ1 : Y1 北文(東-西). 출전 遼寧省文物硏究所 編著, 《강녀석姜女石 : 진행궁유지발굴보고秦行宮遺址發屈報告》(下冊), 文物出版社, 圖版 149, 2010 (2011. 4. 26) *** 저걸 중국에선 소병기 이래 진시황제 한무제 행궁지라 개사기쳐놨다. 시황제가 저 근처로 한 번 갔다는 사기 봉선서 기록 딱 한 구절에 보이는 갈석궁이라 하고 저 출토 유물들이 동시대 장안의 그것들과 비슷하다는 두 가지 근거로 말이다. 갈석궁? 행궁지? 웃기고들 자빠졌다. 그 갈석궁이라 게 뭐 대단한 게 있는 듯이 말을 하지만 실상.. 2024. 4. 2. 내가 좋은 전시는 나만 좋은 전시다 내가 좋은 전시는 필패한다. 그렇다면 어떤 전시가 성공하는가? 부연한다. 왜 고고학 전문박물관이 그렇지 아니한 박물관, 혹은 미술관에 판판이 밀려나는가? 전시기획자 본인이 좋아하는 전시를 하는 까닭이다. 유감스럽게도 본인이 좋아하는 전시는 지만 좋은 전시다. 어느 누구도 같은 신라 토기라 해도 지역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으며, 설혹 그것을 안다한들 살아가는데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아니하며 도움은커녕 허영하고 싶은 마음을 채워주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참사가 신라토기 지역성 역사성이 중요하다 해서 그것을 내세운 친구가 해당 전시를 기획한 데서 말미암는다. 신라토기가 지역에 따라, 시대에 따라 다르다고 전시 패널 잔뜩 쓰고 그림 사진까지 .. 2024. 4. 2.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4] 태胎를 목에 두르고 태어난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충남 서산瑞山 운산면 용현리 보원사지普願寺址에는 법인국사탑法印國師塔碑이라는 고려 초기 비석이 있으니, 고려 초기 화엄종 승려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900~975)의 생애와 업적을 새긴 것이다. 받침돌인 귀부와 머릿돌인 이수는 물론이고 그 업적을 기술한 부분이자 몸통에 해당하는 비신을 완비된 비석으로 비신 전면 아래쪽이 약간 훼손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보존상태가 좋다. 그 곁에는 당연히 그의 사리를 봉안한 탑이 있다. 비문은 김정언金廷彦이 짓고 글씨는 한윤韓允이 쓰고 김승렴金承廉이 새겨 그의 입적 후 3년 뒤인 고려 경종 3년, 서기 978년에 세웠다. 내용은 법인이 화엄을 배우고 태조가 시행한 승과를 주관하고 기도하여 광종을 낳게 했으며 재해에 반야를 강설하여 물리치기도 하고 화엄경을 사경하여.. 2024. 4. 2. 이전 1 ··· 378 379 380 381 382 383 384 ··· 108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