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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라 해서 친일파라 해서 훌륭한 작품 쓰거나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은 천박하기 짝이 없다. 20세기 한국문단에서 시詩로는 미당 서정주를 뛰어넘을 이 없고, 미술, 특히 조각에서는 김경승은 절대지존 언터처블이다. 2018. 2. 3.
본토에서 버림받고 우리가 거둔 세 가지 그것이 태어난 본토에서는 별 볼 일 없는데 한국에 상륙해 득세한 대표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스모키 노래 living next door to alice 2. 베르나르 베르베르 3. 기 소르망 조선시대에도 이런 비슷한 인식이 있었다. 유몽인柳夢寅(1559~1623) 《어유야담於于野譚》에서 1. 조맹부趙孟頫 글씨2. 십구사략十九史略 3. 고문진보古文眞寶 이 세 가지를 일러 중국에서는 버렸지만 우리만 숭상한다면서 이르기를 "우리나라에서 숭상하는 것이 이처럼 낮고 보잘 것 없으니 중국에 미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호는 시대와 공간을 따라 다른 법이다. 그것을 쪽팔림이 아니라 특질로 볼 수도 있으리라. 2018. 2. 3.
정다산의 중국환상 "중국은 문명이 발달해 아무리 외진 시골이나 먼 변두리 마을에 살더라도 성인이나 현인이 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 사대문에서 몇 리만 떨어져도 아득한 태고적처럼 원시사회다. 하물며 멀고먼 시골은 어떠하랴? 무릇 사대부 집안은 벼슬길에 오르면 서둘러 산기슭에 셋집을 얻어살면서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 한다. 혹시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재빨리 서울 근처에 살며 문화의 안목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사대부 집안의 법도다." 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이다. 원문을 대조하지 않고 누군가의 번역을 옮긴다. 원문이 없으니 대조가 불가능하다. 다산...요즘 태어났으면 재빨리 미국으로 날랐을듯.. 거기서 원정출산도 했을 듯 왜 중국이었을까? 그것이 단순한 환.. 2018. 2. 3.
예의염치禮義廉恥란? 본능에 대한 타박이며 분출에 대한 억압이요 나체에 대한 가식이다 (2016. 2. 3) 2018. 2. 3.
Tomb of Lee Deokhyeong Tomb of Lee Deokhyeong, Yangpyrong, Gyeonggi Province京畿道楊平郡漢陰李德馨墓 / 경기 양평군 한음 이덕형묘 Lee (1561~1613) was Prime Minister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 of the Jeonseon Dynasty 2018. 2. 3.
The Han River The Han River Crossing Yangpyeong, Gyeonggido Province 京畿道楊平郡漢江二水頭(或云兩水頭) / 경기 양평 두물머리 2018. 2. 3.
문화재로서의 설악산 우리가 흔히 국립공원으로 아는 대부분은 실은 문화재이기도 하다. 정확한 통계치는 없는데 국립공원 구역 전체 40% 정도를 문화재가 침탈한 상황이다.국립공원과 같은 환경자원은 문화재보호법상 명승 혹은 천연기념물 지정 대상이다. 명승名勝..이게 참으로 묘해서 2000년 이전까지는 전국에 걸쳐 명승으로 지정된 문화재는 5군데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유홍준이 문화재청장으로 재직한 시절에 자연유산 바람을 타고서 대대적인 영역 확장을 꾀해 지금은 백 곳을 넘었다. 이에 의해 북한산 역시 중요한 부분은 문화재보호법상 명승이기도 하다. 명승만이 아니라 국립공원 내 사찰 같은 곳은 대부분 문화재보호구역이다. 설악산 역시 상당 구역이 국립공원이면서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며 명승이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설악산은 전.. 2018. 2. 2.
남편을 몽둥이로 때려치는 마누라 임진왜란 어간을 살다간 조선의 지식인 어우당(於于堂)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나오는 일화 중 한 토막이다.예로부터 교화하기 어려운 이가 마누라다. 남자 중에 강심장인 사람이라도 몇이나 부인을 두려워 않을 수 있으리오? 옛날에 어떤 장군이 10만 병사를 이끌고 드넓은 들판에서 진을 치고는 동서로 나우어 큰 깃발을 세우니, 하나는 푸른색이고, 다른 하나는 붉은색 깃발이었다. 장군이 이윽고 군사들에게 거듭 말했다.“마누라가 두려운 자는 붉은 깃발 아래 서고, 두렵지 않는 자는 푸른 깃발 아래 서라.”10만 군사가 모두 붉은 깃발 아래 모여 섰는데 유독 한 놈만 푸른 깃발 아래 섰다. 장군이 전령을 시켜 그 이유를 물으니 답이 이랬다.“제 마누라가 항상 저에게 경계하기를 .. 2018. 2. 1.
왕건의 죽음과 이일역월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의하건대, 고려 건국시조 태조 왕건은 서기 943년 음력 5월 29일, 양력 7월 4일에 사망한다. 이틀 뒤에 발상(發喪)하고, 그 다음날 그의 시신은 빈전(殯殿)에 간다. 빈전은 궁궐 정전 혹은 편전이었을 상정전(詳政殿) 서쪽 뜰에다가 마련했다. 빈(殯)을 마치고 그를 장사한 때가 같은 해 음력 6월 26일, 양력 7월 30일이다. 그의 무덤에는 현릉(顯陵)이라 했다. 이로써 본다면 왕건은 죽은 시점을 기준으로 정확히 27일 만에 묻혔다. 나아가 왕건 기제(忌祭)는 매년 6월 1일이다. 이런 상장(喪葬)제도를 보건대, 고려는 이미 건국과 더불어 왕에 대해서는 한 달을 하루로 쳐서 27일간 상장 의례를 치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상장제를 이일역월제(以日易月制)라 한다. 말 .. 2018. 1. 31.
꿩 대신 닭 한반도에 꿩이 많을까 아님 원앙이 많을까? 나는 원앙이 더 많다고 본다. 원앙이 이쁜가 꿩, 특히 숫꿩인 장끼가 이쁜가? 나는 후자가 낫다고 본다. 고기는 어느 쪽이 나을까? 원앙은 먹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꿩은 죽여준다. 오죽하면 꿩 대신이 닭이라 했을까? 설날 떡국에는 꿩기미를 쓰야는 법이다. 하지만 꿩은 귀한 까닭에 그와 비슷한 품종으로 흔한 닭을 썼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왔다. 여러 모로 꿩은 원앙보다 귀하다. 그럼에도 꿩은 그저그런 날짐승이요 원앙은 천연기념물이라 해서 문화재로 대접받는다. 왜 이리 된 것인가? 뭔가 잘못 아닌가 말이다. 2018. 1. 30.
Royal Tombs of Silla Kingdom Daereungwon or Great Tumuli Park, Gyeongju, Gyeongangbukdo Province慶州大陵苑 경주 대릉원 Photo by Drying Oh 2018. 1. 30.
한문과의 만남 돌이켜 보면 내가 한문에 혹닉惑溺이랍시고 한 시절은 중2 무렵이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줄곧 말했듯이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엔 책이라곤 교과서와 동아전과가 전부였으니 한문 교재라고 있을리 만무했다. 한데 어찌하여 그 무렵에 이웃집 형이 쓰는 고등학교 한문책(소위 말하는 한문2가 아니었다 한다)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거니와, 한데 또 어찌하여 이를 살피니, 그에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赤壁賦적벽부(전후편 중 전편이다)와 태백太白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만나게 되었다. 중학생이 뭘 알겠냐만, 그걸 번역문으로, 그리고 원문과 대략 끼워 맞추어 읽고는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그날로 단숨에 두 작품을 반복하여 읽고는 전체를 암송해버렸다. 지금은 적벽부라 해봐야 壬戌之秋임술지추 七月旣望칠월기망이란 그 첫.. 2018. 1. 30.
인덱스index vs 색인索引 vs 인득引得 인덱스index에 해당하는 말이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는 원래 없었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색인(索引)’이라는 말이 그 번역어로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 말은 애초에 일본에서 인덱스에 대한 번역어로 만들어낸 말로써, 그것이 다시 한국과 중국으로도 침투해 광범위하게 사용한다. 한데 중국에서는 색인이라는 말 대신에 ‘인득(引得)’이라는 말도 더러 사용한다. 요새 학술계에서는 이 말이 서서히 대세를 장악해 가는 느낌을 받는다. 한데 인덱스에 해당하는 일본식 한자어 색인을 버리고 인득이라는 말을 쓰게 된 사유가 무척이나 재밌다. 引得이라는 말 역시 근대의 발명품인데, 이 말을 제안한 이는 안식년을 맞은 국내 교수들이 툭 하면 똥 폼 낸다고 싸질러 가는 미국 하버드 옌칭연구소의 발명품이다. 이 연구소에.. 2018. 1. 30.
<한문 강좌> 使, 令으로서의 以 얼마 전에 나는 를 읽다가 그에서 나오는 다음 구절.... 唐明皇以諸王從學,命集賢院學士徐堅等討集故事,兼前世文詞,撰《初學記》。 을 예로 들면서 이 구절은 "당 명황(현종)이 제왕인 아들들에게 공부를 시키고자 할 요량으로 집현원학사인 서견 등에게 명하여 고사 모아서....초학기라는 책을 편찬케 했다"고 옮기면서 이 경우 以는 使나 令에 해당하는 사역 동사라고 말한 바 있다. 한데 각중에 과연 以가 이런 뜻으로 쓰인 경우가 있는지 추가로 조사해 보고픈 욕망이 있어 강희자전 등을 뒤졌더니 전한 말기에 유향이 편집한 《전국책战国策》卷三 진책秦策 一에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사용한 다른 용례를 검출했다. 泠向謂秦王曰: 向欲以齊事王, 使攻宋也. 영향(泠向)이 진왕(秦王)한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나라가 왕을 섬기게.. 2018. 1. 30.
전통의 단절과 고도高度·선진先進 명맥과 전승이 단절된 기술을 선진先進 혹은 고도高度로 오도誤導해서는 안된다. 고려청자...이를 재현할 수 없다지만, 냉혹히 말해 그 기술이 단절된 까닭은 더 이상 필요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가 버린 기술이었다. 다뉴세문경...그것을 재현하고자 하는 무수한 시도가 있었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그렇다고 그 기술이 특별히 위대하다고 나는 보지 않는다. 그것을 만든 그들에게는 어쩌면 요즘의 우리에게는 종이접이로 만드는 비행기 수준이었을 수도 있다. ***가마니짜기가 있다. 나 역시 어린시절 아버지가 가마니짜는 모습을 자주 목도했고, 나 역시 가마니를 짤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른다. 다 까먹었다. 내가 가마니짜는 기술을 잊어먹고 모른다 해서, 그 기술이 고도는 아니다. 필요없다 해.. 2018. 1. 30.
유배는 자비유학이다 유배 생활엔 돈이 엄청 나게 든다. 관에서 무상으로 집 임대하거나 먹을 것 대주는 일 따위 않는다. 유배는 자비 유학이다. 그렇다면 다산은 무슨 돈으로 18년간이나 강진에서 생활한 거임? 첫째, 원래 부자다. 둘째, 큰아들 정학연이가 무허가 의사하면서 댔다. 셋째, 고액 과외 수업을 했다. 나는 세번째로 본다. 다산이 처음 강진 촌구석에 내려갔을 적에 어떻게 학생들을 모았을까? 서울대 출신 하버드 박사 기재부 과장 출신 이렇게 뻥을 쳤다고 본다. 입소문 났겠지. 족집게 선생 왔다고. 그 소문 진원지는 주막 여인이었을 것이다. 2018. 1. 30.
여자들이 반대해 무산된 일부다처제 고려 태조 왕건과 그의 정비 신혜왕후(神惠王后) 유씨(柳氏)를 합장한 현릉. 경기 개풍군 중서면 곡평리. 그에겐 정식부인은 오직 이 한 명뿐이다. 한국처럼 강고하면서 억압적인 신분제 나는 유사 이래 본 적이 없다. 능력이 아니라 피로써 그 사람 생평을 절단낸 가족제도로 한국사만큼 엄혹한 데가 없다. 능력에 따른 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고한 일부일처제를 혁파해야 했다. 하지만 한국사에서 일부일처제를 포기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모든 신분 문제는 일부일처제에서 비롯한다. 한데 내가 알기로 이 일부일처제를 법적으로 폐기하고자 한 심각한 움직임이 전근대에 딱 한번 있었다. 고려시대 원간섭기였다. 이를 당시 힘께나 쓰는 어떤 관료가 원나라 제도 관습을 들어 그 혁파를 과감히 주창하고 나섰다. 누가 반.. 2018. 1. 30.
동물의 대량 유입과 고려시대 고려가 좀 독특한 면이 있어 지들은 요遼나 금金에서 책봉을 받았지만, 그 내부에서는 또 하나의 조공책봉 체계를 유지했으니, 탐라 울릉도, 그리고 금 건국 이전 여진에 대해서는 시종일관해서 종주국을 자처했다. 종주국이 일방적인 공물의 받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쪽에서 하나를 가져오면 두 개를 줘야 하는 것이 조공 책봉 체계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요 금에 대해 조공하니, 중국 대륙 남쪽 송宋과의 관계가 참말로 오묘하다. 이게 조공 책봉 관계도 아니면서 긴 것 같은 묘한 관계. 양국 국교는 나중에야 성립하는데, 송이건 고려건 북쪽 요를 의식하지 않을 수없었다. 송 역시 요에 신속臣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송과 고려 교유는 비외교의 관계가 훨씬 더 활발한 이상한 시스템이 정착한다. 줄기차게 송나.. 2018. 1. 30.
일본서기와 노동신문 이 이야기도 내가 늘쌍 하는 말이다. 일본서기가 대표하는 고대 일본이 하는 논법은 작금 북한의 행태와 같다. 일본서기 이래 저들의 각종 기록을 보면 한반도 모든 사신 행차는 목적이 조공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든 사절을 조공사로 표현한다. 하도 저리 뻥을 쳐놓으니 진짜일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역사연구자가 의외로 많다. 하지만 다 헛소리다. 작금 북한이 하는 꼴과 같다. 저들의 눈에는 모든 외교사절이 그들에 대한 조공 행렬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특사 방문도 저들을 알현하러 온 조공사에 지나지 않는다. 개뿔도 없으면서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줄기차게 주장한다. 북한이 땡깡부릴수록 인근 국가의 사신 행렬이 줄을 이을 수밖에 없다.어찌 이것이 조공 행렬이리오? 일본서기는 지금의 북한 로동신문.. 2018. 1. 29.
내가 다 풀어주면, 새로운 왕은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매양 史를 읽을 적마다 고려 성종이 죽음에 임해 취한 행동을 보고는 찬탄을 거듭해 마지 않으면서 지도자는 자고로 이러해야 한다는 전범으로 삼는다. 그의 죽음에 즈음한 《고려사절요》 언급이다. (997년) 겨울 10월 무오일에 왕이 병환이 매우 위독해지자 조카인 개령군開寧君 송誦을 불러 왕위를 전하고는 내천왕사內天王寺로 옮겨갔다. 평장사 왕융王融이 사면령을 반포하도록 청하니, 왕이 말했다. “죽고 사는 일은 하늘에 달렸는데, 어찌 죄 있는 자를 놓아 주어 부정하게 목숨을 연장하려 하기까지 하겠느냐. 더구나 나를 이를 사람은 무엇으로 새로운 은전을 펼 수 있으랴" 그러고는 허락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당시에는 왕이 병들면 죄수를 사면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를 통해 복을 구하고자 하는 관습이었다. 하지만 .. 2018. 1. 29.
Seokgulam Temple Seokgulam Grotto, Gyeongju Photo by Seyun Oh 2018.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