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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조선통감 총독 2024. 2. 17.
한국근현대사는 팩트고 나발이고 기본을 팽개친 것이 문제 신동훈 교수께서 앞서 한 말을 이어 부친다. 현대사 빼고 식민지시대만 이야기한다. 교과서고 논문이고 나발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편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또 국사편찬위원회니 뭐니 하는 관변 기관들이 무수한 역사 서비스를 하고 자빠졌지만, 이 식민지시대와 그 직전 어간 꼬라지를 보면 도대체 저런 악정에도 한민족이 인종청소 당하지 않고 어찌 살았는지가 궁금할 정도로 처참해서 어찌 35년간이나 그렇게 매질만 당하고 총칼에 찔리고 쏘이고서도 이렇게 한민족이 살아남았는지 알 수가 없다. 저네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한민족은 10년이 되지 않아 이 지구상에서 멸종했어야 하는 까닭이다. 식민통치를 무슨 총칼로 하니 이 썩을 놈들아. 맨 총칼로 찔러대고 쏘아대면서 어찌 통치를 한단 말인가? 내가 궁금한 것은 조선 .. 2024. 2. 17.
조선총독부 시정25년사가 말하는 조선물산공진회 9. 시청 5년 기념 공진희 개설 1) 개설 박람회, 전람회, 기타 유사한 시설은 예전 한국에는 전혀 없있다. 따라서 그것은 1907년(명치 40) 한일 양국의 유지有志들이 발기하여 개최한 경성박람회가 효시이다. 이 박람회는 명의상으로는 한일 유지들이 주최하였지만, 통감부는 물론 한국정부도 상당한 원조를 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한일 관민 합동 사업과 다름없었다. 경성박람회는 1907년 9월 1일부터 11월 15일에 이르는 2개월 반 동안 개설되었는데, 단지 조선 내에서만이 아니라 내지의 각 부. 현 및 훗카이도·대만에서도 출품하여 그 수가 [120] 총 7만 9천여 점에 달하였고, 관람인은 총 20만 8,000여 명에 이르러 당시로서는 상당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 무렵에는 일반적으로 한국 부인이 남자와 함.. 2024. 2. 17.
조선총독부 시정25년사가 증언하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 2) 기타 한·수해 구제 조선에서 한해와 수해는 거의 매년 일어나서 일일이 거론하려면 한이 없는데 1919년의 한해에 이어 특별히 기록해야 할 것은 1924년(大正8)의 한·수해와 1925년(대정9)의 대수해다. 1924년(대정8)은 갑자년甲子年으로, 조선의 미신에 따라 일반의 무지한 인민 사이에 연초부터 인심이 흉흉했다. 그런데 모내기철이 되어 쌀 산지인 남선南鮮 지방에 대한해가 일어났고 모내기를 할 수 없는 논은 전남 전북 경북 경남 충남의 여러 도에 걸쳐 약 26만 1천 정보에 달했으며, 약 300만 석이 감수減收할 것으로 예상되어[520] 남선 일대의 인심은 날로 험악해져 갔다. 이에 총독부를 비롯해 도 당국에서는 최선으로 그 대책을 강구했다. 전남도청의 경우는 솔선해서 이들 재해지의 대용작代用作.. 2024. 2. 17.
조선미술전람회와 조선총독부박물관 제19장 문화적 시설 조선 고유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만약 채용해야 할 것이 있다면 채용해서 통치에 도움이 되도록 한디는 것은 제3기 시정의 한 방침이었다. 1) 개설 총독부에서 시행한 문화적 사업은 종래부터 이어진 박물관, 고적 조사, 고적조사보 고서 및 고적도보 출판, 조선인명휘고彙考 편찬 등이 있었다. 또한 제3기에 들어 경성제국대학이 설치되자, 경성제국대학 내에서 조선 고문서의 수집, 무격의 조사, 조선 토속품 수집 등의 사업이 시행되었다. 제3기에 총독부에서 직접 착수한 사업은 다음과 같다. 2) 구관舊慣 및 제도 조사 총독부에서는 종래 중추원의 부대사업으로 구관 및 제도의 조사를 시행하여, 이를 입법 자료와 재판의 준칙으로 삼고 정무에 참고해 왔다. 이를 확충해 시정에 한층 더 효과적일 수.. 2024. 2. 17.
[거란의 치맛바람] (13) 남편은 도륙되어도 공주는 살아남는다 이 경우는 사실 치맛바람이라기보다는 황제 혹은 황후의 권위라 봐야 한다. 부마도위에 책봉된 황제의 사위가 반란과 같은 불미한 일에 연루되어 죽임을 당해도 공주가 그에 직접 관련되지 않고서는 같이 처벌받는 일은 없었다. 거란 6대 황제 성종聖宗은 처첩한테서 14명에 달하는 딸을 둘었으니, 후궁 중 한 명이 대씨大氏가 있다. 보나마나 대조영한테로 거슬러 올라가는 발해 계통이라, 그는 딸 하나를 두는데, 이름이 장수長壽다. 당시 이름을 보면 불교에서 비롯한 전통과 더불어 장수를 기원하는 뜻 글자가 많은데 장수와 더불어 연수延壽 또한 같은 맥락이다. 이 공주는 엄마 격이 좀 떨어져서 처음에는 공주로 책봉되지는 못하고 그 아랫등급인 군주郡州가 되는데, 조선시대로 보면 옹주 정도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임해군주臨海郡.. 2024. 2. 1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이는 아래 사이트에서 제공하니 검색해서 이용하면 된다. https://www.museum.go.kr/modern-history/main.do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 메인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www.museum.go.kr 2024. 2. 16.
고적조사위원회 규정 [古蹟調査委員會規程] 고적조사위원회 규정(古蹟調査委員會規程) 조선총독부관보 제1175호 1916(다이쇼 5)년 7월 4일 조선총독부훈령 제29호 제1조 조선에 있는 고적, 금석물, 기타 유물 및 명승지 등의 조사와 보존에 관한 사항을 심사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 고적조사위원회를 둔다. 제2조 고적조사위원회는 위원장 1인, 위원 약간 명으로 조직한다. 제3조 위원장은 정무총감으로 충당한다. 위원은 조선총독부 고등관 중에서 명하거나 학식 경험이 있는 자 가운데 촉탁한다. 제4조 위원장은 회무會務를 총리한다. 위원장이 사고가 있을 경우는 위원장이 지정한 위원이 그 사무를 대리한다. 제5조 위원회에서는 다음 사항을 심사한다. ① 고적 및 유물의 조사에 관한 사항 ② 고적의 보존 및 유물의 수집에 관한 사항 ③ 고적‧유물‧명승지 등에 .. 2024. 2. 16.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 [古蹟及遺物保存規則] 「고적 및 유물 보존규칙(古蹟及遺物保存規則)」 조선총독부관보 제1175호 1916(다이쇼 5)년 7월 4일 조선총독부령 제52호 제1조 본령에서 고적은 패총, 석기, 골각기류를 포유包有하는 토지 및 수혈 등의 선사유적, 고분 및 도성, 궁전, 성책, 관문, 교통로, 역참, 봉수, 관부, 사우, 단묘, 사찰, 도요 등의 유지 및 전적, 기타 사실史實과 관계있는 유적을 말하며, 유물은 오래된 탑, 비, 종, 금석불, 당간, 석등 등으로 역사, 공예, 기타 고고 자료가 될 만한 것을 말한다. 제2조 조선총독부에 별기 양식의 「고적 및 유물 대장」을 비치하고, 전조前條의 고적 및 유물 중 보존 가치 있는 것에 대하여 다음 사항을 조사하여 등록한다. ① 명칭 ② 종류 및 형상, 크기 ③ 소재지 ④ 소유자 또는 관.. 2024. 2. 16.
조선총독부 시정 25년사 구관舊慣 및 역사 조사와 문화 보존 구관 및 역사 조사와 문화 보존 1) 구관舊慣 조사 조선에서 구관 및 제도 조사는 1906년(明治39) 중에 구한국정부에서 부동산조사회不動産調査會를 [ 225] 설치하여 부동산에 관한 관습 조사를 시행한 것이 시초이다. 이어서 1908년(明治41) 법전조사국法典調査局을 설치하여 법학박사 우메 겐지로梅謙次郞를 초빙하여 민사民事와 상사商事며 전반에 걸친 관습 조사를 개시하게 하였는데, 총독부 설치 후에는 이 사무를 취조국取調國에서 계승하여 널리 일반의 구관 제도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1912년(명치45)에는 취조국을 폐지하고 그 사무를 참사관參事官 관장으로 옮겼다. 마침 그해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이 제정되었고, 그중에는 조선인의 능력, 친족 및 상속 등에 대해서는 관습에 따른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민사.. 2024. 2. 16.
도연명과 돈 없이 못지키는 지조 도연명의 귀거래사는 명품이다. 관리에 등용되어 몇 푼 안되는 돈을 받다가 다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가 그 기쁨을 노래한 글이다. 登東皋以舒嘯,臨清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樂乎天命復奚疑? 그런데 말이다. 귀거래사에서 도연명이 짓는 농사를 보노라면 정말 관리로 버는 몇 푼 안 되는 녹봉보다는 농사짓는 편이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 도연명의 지조는 돈 없이 못지키는 지조라 할 만하다. 일제시대-. 도연명의 지조를 지킨 사람들이 꽤 있다. 지금도 쉽지 않을 유럽 유학을 갔다 온 양반들도 있다. 필자가 보기엔 이 양반들은 일제시대 어렵사리 정치적 지조를 지켰다고 하나 사실 일제시대 하급관리로 출사해서 가족들 박봉으로 먹여 살린 사람들보다 과연 떳떳하다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양반들도 있다. 그 중에는 독립운동도 한.. 2024. 2. 16.
ai로 복원하는 연희전문 교장 윤치호 이 사진은 연희전문 교장 시절 윤치호라 해서 소개되곤 하는데 아마 원본 필름은 상실했을 것으로 보며 그걸 직접 현상한 것도 없는 걸로 알거니와 연대박물관에도 저 비슷한 사진을 걸어놓은 것으로 기억하니 짜증 나서 참을 수가 없어 ai 도움을 빌리니 이렇다. 왜곡 논란이 없지는 않겠지만 관상술을 하는 것도 아니니 사용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며 다만 원본 자체가 워낙 흔들렸으니 그런 까닭에 이를 본래였을 흑백으로 전환하니 아래라 조금 후가공이 있음 더 좋겠지만 저 거지 같은 사진에서 이런 모습을 추출한다. 우리가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음은 틀림없다. 2024. 2. 16.
춘원 눈빛이 살아있네 감옥에 간 춘원 이광수 에모리 유학시절의 윤치호와 늙어 수염 덮수룩한 윤치호 할배 월남 이상재 감옥에서 웃는 우남 이승만 거지 같은 저화질시대 ai 도움 받아 청산한다. 2024. 2. 16.
구글어스를 변형한 평양 안학궁 구글어스로 탐방한 평양 안학궁 터를 앞서 보았거니와, 이건 같은 구글어스 지도에 일부러 강렬한 포토샵 기능을 주어 왜곡이라 할 정도로 처리해 봤다. 이게 장점이 있는데, 윤곽을 뚜렷이 더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발굴조사 결과 드러난 성과를 토대로 초석들을 노출하고, 그 초석 자리에 현대 돌들을 깔아놨을 텐데, 그 건물배치는 이 이상 나올 것도 없다. 구글 이용하면 수치 측량도 가능한 시대다. *** previous article *** 구글어스로 탐구한 고구려 안학궁구글어스로 평양을 탐방한다. 툭하면 하는 북한 여행인데 묘미가 있다. 이 구글어스도 유료인가 전환하면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안다. 요새 계속 이 대성산 남쪽 기슭 안학궁을 탐방historylibrary.net 2024. 2. 16.
왕검성王險城과 王公设险以守其国 최근 고조선 왕검성(왕험성) 어원에 관련하여 중국 쪽에서는 이런 주장도 나온다. 王险城,是古朝鲜的都城,“王险”之名出自《易经》“王公设险以守其国”。 公元前108年,卫满朝鲜脱中华以自立受到西汉的征讨,王险城陷落,古朝鲜灭亡。 왕검성王险城은 고조선古朝鲜 도성都城으로 “왕험王险”이라는 말은 《易经》의 구절 곧, “왕공王公은 험난함을 쌓아 그 도읍을 지킨다”에서 왔다.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卫满朝鲜이 탈 중화해서 자립하여 서한西汉의 정토征讨에 이르러 왕험성이 함락됨으로써 고조선은 멸망했다. 왕검성은 다름 아닌 역경 이 구절을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다. 왕검성에 대해서는 고조선의 군주의 명칭이 왕검이었다는 주장이 있고, 또 한국말 임금의 음사라는 주장도 있어 기왕의 통설과 부딛히는 이야기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여기 .. 2024. 2. 16.
관찰은 자연과학의 기법만은 아니다 근대과학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관찰에 입각한 경험론 만큼 위대한 로직은 없다. 현상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 편견을 배제한 경험에 입각한 입론이야 말로 현대과학의 기초이다. 한국의 지적 풍토는 최소한 조선후기 이후에는 이러한 관찰에 입각한 지적 사유의 전통이 거의 없다. 우리는 흔히 주자학의 묵수를 이야기 하지만 이 주자학의 묵수라는 것이 결국 전술한 보고들에 대한 맹종이라는 점에서 현재 한국학계가 앓고 있는 중병과 사실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면에서 이 블로그 김단장께서 주장하는 바, 기보고를 무시하고 1차 사료와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는 말은 상당히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우리나라 사상계는 해외 사유에 대한 맹종, 입으로는 자주를 주장하지만 박래품 이데올로기에 대한 추종의.. 2024. 2. 16.
구글어스로 탐구한 고구려 안학궁 구글어스로 평양을 탐방한다. 툭하면 하는 북한 여행인데 묘미가 있다. 이 구글어스도 유료인가 전환하면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으로 안다. 요새 계속 이 대성산 남쪽 기슭 안학궁을 탐방한다. 2024. 2. 16.
90년대 한국의 사상계 80-90년대 사상계는 필자도 거친 시대로 한마디로 쓰레기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한국 사상계는 한국사회의 현상에 대한 냉철한 관찰을 바탕으로 이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그럴 듯한 학설, 특히 전 세계 좌파 학설을 무더기로 도입해 잡탕밥을 만들어 그걸 한국사회에 억지로 끼워 맞추고자 했다는 게 옳다. 이때문에 주장과 달리 한국사회가 망하지 않고 선진국으로 올라가도 반성도 없이 그냥 딴 구라를 부담없이 풀 수 있는 것이다. 왜? 어차피 내 이론도 아니고 남의 이론 가져다가 한국에 구라 풀어본 것이므로. 필자는 2020년 현재 인문학의 위기, 사회과학의 위기 운운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80-90년대의 그 엉망진창이었던, 어거지와 무분별한 외래 이론의 억지 해석이 난무한 시대를 돌이켜 .. 2024. 2. 16.
월북 언어천재 김수경, 그는 국어학자가 아니라 언어학자였다 北 언어학 설계한 '천재'…분단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 김수경 송고시간 2024-02-16 07:01 '남북 통틀어 20세기 최고 언어학자' 조명한 신간 '북으로 간…' 이산가족 등 한반도사 압축적으로 담겨…일본인 학자의 연구 결실 https://www.yna.co.kr/view/AKR20240215148700005?section=culture/scholarship 北 언어학 설계한 '천재'…분단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 김수경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일한다는 뜻을 가진 한자 '勞'는 단어의 가운데에서는 '로'로 표기하지만, 맨 앞에 올 때는 '노'로 읽는다....www.yna.co.kr 일본인 조선학도 이타가키 류타板垣龍太가 일본에서 3년 전에 낸 단행본이 국내에 근자 번역되어 소개.. 2024. 2. 16.
이승만-박정희 정권의 정책적 연속성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전후 도합 30년 정도의 세월인데 이 기간 동안 한국정부의 정책적 연속성은 눈부신 바 있다. 우리는 흔히 이승만 정권은 개판 오분전 자유당 시절로 간주하고 박정희 정권 때부터 산업화의 시대로 보는데, 진실은 그게 아니라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정책적 연속성이 매우 강한 시대로 하나로 통틀어 봐야 한다. 박정희의 산업화 드라이브는 이승만의 교육정책으로 막대한 숫자의 대학생을 양산하지 못하면 발도 못 떼었을 것이 틀림없다. 이승만은 자기가 길러낸 대학생에 의해 타도되었다는 것이 진실이다. 문맹자가 70프로를 넘나드는 나라에서 10여년 만에 대학생을 무지막지 어거지로 키워낸 최종 결과가 이승만 정권의 타도였다는 말이다.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은 전자를 후자가 부정하면서 성립된 것이 아니.. 2024. 2. 16.
불나국弗奈國 vs. 불내후不耐侯 고려사 본기와 고려사절요를 보면 현종顯宗 11년(1020) 6월 19일 기해己亥에 이르기를 불나국 추장 사가문沙訶門이 여진의 노울달奴鬱達來을 보내서 토산물을 바쳤다. 己亥 弗奈國酋長沙訶門遣女眞奴鬱達來, 獻土物. 라 했거니와, 이 불나국弗奈國이 다른 데 보이지 아니해서 그 정체를 추정하기 매우 곤란하거니와, 나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왜 자꾸만 이보다 8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시점에 보이는 불내不耐가 어른어른하는지 모르겠다. 삼국지三國志 권 제30 위서魏書 30 동이전東夷傳 예濊에 이르기를 (위나라) 정시正始 6년(AD 245, 고구려 동천왕東川王 19)에 낙랑태수樂浪太守 유무劉茂와 대방태수帶方太守 궁준弓遵이 [단단대單單大]령領 동쪽 예濊가 구려句麗(고구려)에 복속하자, 군대를 일으켜 정벌하니 불내후不耐侯.. 2024.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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