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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증폭한 윤동주 김별아 작가 포스팅을 보니 내일 2월 16일이 윤동주 시인 공식 사망일이라 한다. 각지를 저화질로 떠도는 동주 사진들을 모조리 AI로 증폭해 봤다. 그대로 클릭해서 다운로드 가능하니 사용하고픈 분들 맘껏 사용하시기 바란다. 2024. 2. 15.
각중에 궁금해서 물어본 안중근 키와 몸무게 현역에서 나름 기자랍시고 우쭐대며 현장을 뛸 때 이야기다. 근자 느닷없이 경기도박물관장으로 튄 이동국 선생이 예술의전당 서예관을 한창 말아드실 적에 안중근 유묵전을 대대적으로 개최한 적이 있는데, 그 유묵 중에는 널리 알려졌듯이 이른바 단지斷指 동맹이라 해서 조국 독립 의지를 다지며 동지들과 손가락 하나를 짤라 맹서한 그 흔적이 오롯하거니와 그는 유묵마다 거개 이 손바닥으로 낙관을 대신해 찍었으니, 그때 전시실을 채운 그 유묵에다가 무심코 내 손바닥을 펴서 얹어보고서는 놀란 점이 하나 있으니 이 유묵 손바닥은 말할 것도 없이 안의사 손바닥 실물크기를 말해줌이라, 한데 그에다 얹어 보니 내 손바닥보다 딱 마디 하나가 짧았다. 아 그때야 못 먹고 살 때니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영 기분이 묘했으니, .. 2024. 2. 15.
잡곡문화의 이해는 왜 중요한가 최근에 중국 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잡곡기반의 황하유역과 도작기반의 장강유역이 심지어는 돼지키우는 법도 달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활양상 전반이 양쪽은 많이 달랐는데 그 이유는 역시 양측의 생산기반이 무엇이었느냐가 정말 중요했던 듯 하다. 도작기반 사회가 언제나 경제적으로 우위였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도작기반의 장강유역이 경제적으로 잡곡기반의 황하유역을 압도한 것은 어마무시한 세월의 뒤로 서기 천년기가 되어야 비로소 강남의 경제력이 중원을 앞질렀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우리는 잡곡 기반사회라고 하면 무조건 후진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조선 고구려는 깡 잡곡이나 먹고 살던 사회라고는 생각않는다. 그래도 쌀농사 지었겠지.. 여기랑 비슷했겠지 하는 생각이 머리 .. 2024. 2. 15.
정월대보름 조밥을 바다에 띄운 이유는? 어릴 때 저희 지역 바닷가에서는 정월대보름에 조밥을 지어 피마자잎(묵은나물할 때 불려 남겨둔 거)이나 종이에 싸서 물에 띄웠어요. 돌아오지 못한 분들을 위한 거라고. 왜 조밥일까?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 김포에 사는 지인 신소희 선생이 아래 설렁탕 조밥에 대한 글에 붙인 일화라, 혹 민속학을 중심으로 이런 쪽에 관심이 있을 분도 없지는 않은 듯해서 따로 소개한다. 혹 이에 대한 조사와 논급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설렁탕에는 왜 조밥을 말아 먹는가 설렁탕에는 왜 조밥을 말아 먹는가 설렁탕에는 쌀밥보다 조밥을 말아 먹는 게 더 맛이 있어서 설렁탕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조밥을 말아 먹는다고 한다. 딱 맞는 말이다. 국물은 쌀밥에는 사실 필요 없다. 필자도 평소에 쌀밥 먹 h.. 2024. 2. 15.
[202401 독일풍경] (8) 베를린 ② 과거를 기억하는 법,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from 장남원 [202401 독일풍경] (8)베를린 ②과거를 기억하는 법...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독일역사박물관... 그리고 홀로코스트 기념비 베를린에는 과거에 대한 독일의 입장이 박물관들을 통해 정리되어 있다. 에서는 https://www.jmberlin.de/ Jüdisches Museum Berlin Planen Sie ihren Besuch und tauchen Sie in das digitale Museum ein. Erfahren Sie mehr zu jüdischer Geschichte und Gegenwart in Deutschland. www.jmberlin.de 독일내 유대인들의 위치와 영광, 기여, 역할 그리고 나찌시대에 겪은 비극적 역사를 통해 최대한 객관적인 좌표 위에 그들을 자리매김 하려는 .. 2024. 2. 15.
[거란의 치맛바람] (12) 딸을 죽였다고 사위 소손녕을 죽여 순장한 장모 예지황후睿智皇后 소작蕭綽 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에는 소항덕蕭恆德, 곧 蕭손녕遜寧이 열전이 그의 친형 소배압蕭排押 열전 바로 뒤에 붙었거니와, 이에 의하면 소항덕은 통화 원년(983) 제5대 황제 경종景宗 야율현耶律賢과 예지황후睿智皇后 소작蕭綽 사이에서 난 월국공주越國公主한테 장가들어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어 주로 군사 분야에서 출세가도를 달린다. 물론 굴곡도 없지는 않아서 군사 발동을 잘못했다 해서 공신 칭호를 삭탈당하기도 한다. 통화統和 14년(996)에는 행군도부서行軍都部署가 되어 포로모타부蒲盧毛朵部를 치고 개선했다. 문제는 이때 생겼다. 그의 열전에는 이렇게 적었다. (소항덕이 전장에서) 돌아오자 (부인 월국) 공주가 병이 들었다. 태후가 궁인宮人 현석賢釋을 보내 병 간호를 하게 하였는데 소항덕이 그와 사통하니 공주.. 2024. 2. 15.
고구려의 밥 색깔 노란색이다. 고구려 주식은 조, 기장, 수수였을 가능성이 백프로다. 쌀? 있기는 했겠지만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귀족들 기호품 정도였을 것이라고 본다. 수수는 또 다른데 기장과 조로 밥을 하면 노란색으로 밥이 나온다. 고구려 밥은 노란색이다. 2024. 2. 15.
이조판서 인사발령 이틀만에 급서했다 해서 칭송받은 오재순 정조실록에 의하면 그 16년, 1792년 12월 28일 임진일에 이조판서 정민시鄭民始를 체직하고는 오재순吳載純을 그 자리에 앉힌다. 당시 오재순은 66살 상노인이었지만, 적어도 몇 년은 더 써 먹을 체력은 된다 정조가 생각한 인사조치였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오재순은 허망하게 간다. 실록이 적기한 그의 졸기卒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원임 이조판서 오재순이 죽었다. 재순은 자字가 문경文卿이라 고 대제학 오원吳瑗의 아들이다. 풍채가 청수하고 차분하고 말수가 적었으며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좋이 여기지 않았다. 영종英宗 임진년에 급제하고 상이 등극하자 내각에 들어와 이조·병조판서를 지내고 대제학을 역임했는데, 상이 그의 겸손하고 과묵함을 가상히 여겨 우불급재愚不及齋라는 호號를 내리기도 하였다. 어려서부터 경전.. 2024. 2. 15.
설렁탕에는 왜 조밥을 말아 먹는가 설렁탕에는 쌀밥보다 조밥을 말아 먹는 게 더 맛이 있어서 설렁탕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조밥을 말아 먹는다고 한다. 딱 맞는 말이다. 국물은 쌀밥에는 사실 필요 없다. 필자도 평소에 쌀밥 먹을 때는 국을 안 올린다. 국을 먹어 봐야 소금만 더 섭취하게 되고 쌀밥 먹을 때는 국이 별로 필요 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잡곡밥 특히 기장이나 조밥은 국을 부른다. 국에 말아 먹거나 부어 먹으면 정말 밥맛이 바뀐다. 우리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밥에 국이 따라나오는 전통은 잡곡을 먹던 우리 조상들이 처음 시작했을 가능성이 그래서 높다고 생각한다. #조밥 #설렁탕 #설렁탕_조밥 2024. 2. 15.
[거란의 치맛바람] (11) 네 번 결혼한 거란의 리즈 테일러 소배압 말고 야율륭서耶律隆緒 만큼 일반에 친숙한 거란 사람 있을까? 드라마가 불러온 현상이다. 이제는 초동급부까지 야율륭서를 알게 됐으니 말이다. 거란 황금기를 이룩한 위대한 군주라는 야율륭서는 죽어서 성종聖宗이라는 묘효廟號를 얻으니 흔히 이렇게 일컬어지만, 생전에 그 자신은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 왜? 귀신이 되어 받은 이름인 까닭이다. 성종은 생식력 또한 왕성했으니, 딸만 해도 열넷을 두었다. 귀비貴妃한테서 야율연가耶律燕哥라는 첫딸을 두니, 이 여식은 수국공주隨國公主에 봉해졌다가 나중에 진국공주秦國公主로 바뀌었으며, 흥종興宗 시대에는 송국장공주宋國長公主라 했다. 장공주는 보통 현재의 황제 고모한테 붙인다. 소필리蕭匹里한테 시집갔다. 이 자리서 논하고자 하는 성종 따님은 앞에서도 집중으로 다룬.. 2024. 2. 15.
위대한 기장 우리나라와 일본은 쌀 아니면 제대로 된 곡식이 아닌 걸로 보지만, 사실 인류사에서 쌀 못지 않게 중요한 곡식이 기장이다. 기장은 전술한 바와 같이 조선시대에서 쌀농사를 짓다가 딱 봐서 이건 망했다 싶으면 갈아 엎고 바로 기장을 심었다. 이유는 기장은 몇 개월이면 수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지 같은 날씨에 척박한 땅에서도 수확이 가능했다. 그래서 수렵채집민이 농경민으로 바뀔 때 가장 먼저 다루는 곡식이 기장이다.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되고 척박한 토지에서 잘 자란다는 말은 별다른 시비나 관리 없이도 수확이 된다는 의미이고, 또 심은 후에 빨리 수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장이 황하문명을 이루었고, 마찬가지로 고조선문명, 부여, 고구려 문명도 모두 기장으로부터 일어났다. 기장을 우습게 보면 다친다. 2024. 2. 15.
쪄서 만든 깡기장밥 예상 대로 기장밥은 쪄서 만들면 굉장히 잘 익는다. 낱알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물에 미리 불릴 필요도 없다. 딱 10분 정도 찌면 다 익는다. 맛도 괜찮다. 특히 된장국이라도 있으면 말아먹으면 최고다. 결론: (1) 밥을 쪄서 만드는 것은 잡곡밥 용이다. (2) 잡곡 중에서도 낱알이 작은 조나 기장밥이 쪄서 밥을 지으면 가장 잘된다. (3) 쌀농사도 처음에는 밥을 쪄서 지었겠지만 찐밥 자체는 잡곡문화권에서 왔을 것이므로 밥을 끓여 뜸들이는 무쇠솥 밥짓기가 나오기 전까지는 잡곡보다 별로 맛이 썩 낫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4) 국이라도 하나 있으면 쪄서 만든 기장밥에 말거나 부어 먹으면 최고다. (5) 밥과 국의 조합은 쌀농사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6) 숭늉과 누룽지는 무쇠솥 나온.. 2024. 2. 14.
정조 앞에서 활쏘기 힘 자랑하고 고통없이 간 오재순 왕과 함께 활쏘기 후 잘했다고 받은 종이 쪼가리. "후과後課 선물은 나중에 준다." '훗, 왕 앞에서 잘 쏴봤자 정조 뒤끝 쩔구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종이쪽을 받은 사람을 보니 오재순吳載純(1727~1792)이다. 오재순이 궁금해져 찾아보니 현종의 딸이자 숙종의 누이인 명안공주의 손자다. 아버지 현종과 어머니 명성왕후와 주고 받은 애틋한 한글 간찰의 주인공이자, 마누라 세 번 갈아치우는 동안에 사람 목숨은 몇십 배로 갈아치운 남자 숙종이 '하지만 내 누이에게는 따뜻하겠지'를 시전하며 각종 살가운 선물을 남발한 대상이 명안공주다. 그녀가 해주오씨 집안에 시집간 덕에 오재순은 그 손자로서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명안공주의 후사가 없어 부친 오원이 양자로 들어간다) 친할머니는 김창협의 딸이고 장인은 영조.. 2024. 2. 14.
[거란의 치맛바람] (10) 꼭지 돌아 남편도 바꿔버린 공주 거란 5대 황제 경종景宗은 정비 예지황후한테서 딸 셋을 두고 개중 둘이 소배압-소항덕(소손녕) 형제한테 하가했다는 말을 했지만, 걸물이 첩실 발해비潑海妃한테서 둔 야율숙가耶律淑哥라는 공주다. 그 어미는 발해비라 했으니, 발해를 평정하고서 그에서 혹은 그 후손에서 맞이했을 것이니 발해 왕성으로 대조영 후손인 대씨大氏일 것이다. 이 숙가 공주는 아무래도 첩실 자식이라 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사 공주표公主表에서는 봉호封號가 따로 없다고 했다. 그래도 위세는 대단해서 남편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 바꿔버린 케이스다. 이 공주표에 의하면 그는 아버지 야율현耶律賢, 곧 경종이 재위 12년째를 맞은 건형乾亨 2년, 서기 980년, 북한北漢에서 귀부한 노준盧俊이라는 사람한테 시집갔다. .. 2024. 2. 14.
[거란의 치맛바람] (9) 공주들이 설치는 왕조 앞선 시기에 나온 정사류를 찾아봐야겠지만 공주표公主表라 해서, 표 형식으로 각 황제별 공주 행적을 정리한 첫 정사가 아마 요사遼史 아닌가 싶거니와 그 권65 표表 제3이 공주표公主表거니와, 이에는 태조 야율아보기 이래 소회태자昭懷太子에 이르기까지 각 황제(일부 태자 포함)가 어떤 공주를 두었고, 그 어머니는 누구이며,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봉작을 받았으며, 누구한테 하가下嫁해서 그와 관련한 사적은 무엇이고 혹 죄를 지었다면 어떤 내용이며, 사망 관련 정보와 그가 둔 자식은 누구인지를 일목요연 표로써 정리했다. 이 표를 만드는 이유를 요사 편찬자들은 그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거니와, 이는 거란 사회를 엿보는 하나의 독특한 시선을 제공한다 하겠다. 춘추의 법[春秋之法]에는 왕의 딸[왕희王姬]의 하가下嫁.. 2024. 2. 14.
소배압-손녕 형제한테 나란히 시집간 경종의 딸들 크게 3차에 걸친 고려거란전쟁에서 거란군 수뇌를 형성하는 소씨蕭氏 형제, 곧 소배압蕭排押과 소손녕蕭遜寧(=소항덕蕭恆德)은 국구國舅 소부방少父房 후손들이라, 대대로 집안이 황비를 공급하며 위광을 누렸다. 물론 부침도 없지는 않아서 걸핏하면 한대 얻어맞고 죽임을 당하는가 하면 삭탈관직되어 서민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저 두 소씨 형제를 흔히 부마도위駙馬都尉, 약칭하여 부마駙馬라 하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이 황제의 사위인 까닭이다. 본래 부마駙馬란 말 자체가 딸린 말이라는 뜻으로, 황제가 행차할 적에 지금 모는 말이 피곤에 지치거나 혹은 부상당했을 적과 같은 비상사태에 투입할 대타를 의미했으니 이것이 훗날 임금의 사위라는 뜻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요사遼史 소배압 열전에 이르기를 그가 위국공주衛國公主한테 .. 2024. 2. 14.
한국사에 교치설을 주물한 이기백 교치설僑置說 그 난무 문제는 차치하고, 중국사에서나, 그것도 위진남북조시대에 등장하는 이른바 교치설僑置說, 곧 땅 덩어리 비행기 타고 날아다니기가 느닷없이 한국사에 등장해 유령처럼 배회하기도 하니, 이 신종 코리언 버전 땅귀신은 놀랍게도 고고학과 결합해 새로운 괴물을 주물鑄物하게 되는데, 그것이 장수왕에 의한 한강 유역 점령설이 그것이다. 이는 간단히 요약하면 고구려가 장수왕 시대에 백제 응징을 내세우며 475년 단행한 백제 정벌 결과, 지금의 한강 유역, 말할 것도 없이 강남 땅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석촌동고분군이 포진한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그 왕 개로는 아차산 아래서 목을 베어 버린 다음 그곳에 주둔군을 두어 551년 백제와 신라에 의한 대대적인 한강 유역 수복 전쟁 혹은 정복전이 있을 때.. 2024. 2. 14.
한반도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 요서로 갔다는 낙랑 대방 위서魏書 권4상卷四上 세조기世祖紀 제4상第四上 세조 태무 황제世祖太武皇帝 4년(432) 秋七月己未, 車駕至濡水。庚申, 遣安東將軍·宜城公奚斤發幽州民及密雲丁零萬餘人, 運攻具, 出南道, 俱會和龍。帝至遼西, 文通遣其侍御史崔聘奉獻牛酒。己巳, 車駕至和龍, 臨其城。文通石城太守李崇·建德太守王融十餘郡來降, 發其民三萬人穿圍塹以守之。是月, 築東宮。八月甲戌, 文通使數萬人出城挑戰, 昌黎公元丘與河間公元齊擊破之, 死者萬餘人。文通尚書高紹率萬餘家保羌胡固。己卯, 車駕討紹, 辛巳, 斬之。詔平東將軍賀多羅攻文通帶方太守慕容玄於猴固, 撫軍大將軍·永昌王健攻建德, 驃騎大將軍·樂平王丕攻冀陽, 皆拔之, 虜獲生口, 班賜將士各有差。九月乙卯, 車駕西還。徙營丘·成周·遼東·樂浪·帶方·玄菟六郡民三萬家于幽州, 開倉以賑之。 (북위 도읍인 평성을 떠나) 가을 7월 己.. 2024. 2. 14.
세 군데로 다 써먹은 화랑세기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김영사, 2002)는 이 책 서두에 붙인 '감사의 말'에 썼듯이 2001년 11월, 이종욱 선생이 진행한 서강대 사학과 대학원 수업 시간에 발표한 200자 원고지 600매가 바탕이 되었다. 당시는 내가 무슨 정신이었는지, 작정하고 600매를 완성해 앞에서 발표한 것이다. 그 직전 아마 1999년인가 이 선생은 김영사를 통해 화랑세기 해설을 겸한 연구 대중서를 출간했으니, 이때 발표에서는 그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지적했다고 기억한다. 그때 발표 원고는 아마 망실했을 것이다. 이 발표문을 나는 당시 내가 몸담은 연합뉴스를 통해 2002년 1월  14일부터 2월 23일까지 물경 41회에 걸친 연재를 시작해 풀어제꼈다. 이 발표와 더불어 나는 이 화랑세기에 드러난 신라와 가야의 관계에.. 2024. 2. 14.
합천군 야로현冶爐縣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0권 경상도慶尙道 합천군陜川郡【건치연혁】을 보면 이곳은 본래 신라 대량주大良州라 했다가 경덕왕 때 강양군江陽郡이라 고쳤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려 현종이 대량원군大良院君에서 왕이 되고 황비 효숙왕후孝肅王后가 태어난 곳이라 해서 지합주사知陜州事로 승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 태종 때에 합천이라는 하고는 군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이것이 지금에 이른다. 그【속현】으로는 우선 야로현冶爐縣이 군 북쪽 30리에 있다 했으니 신라 때는 적화현赤火縣이라 했다가 경덕왕이 야로현으로 고쳤다고 한다. 야로冶爐나 적화赤火 모두 결국은 표기로 보건대 쇠물을 부어 철기를 만드는 일을 말하거니와, 이곳이 실로 오래도록 포스코나 광양제철 같은 공장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나아가 고적 조에 의하면 좌이부곡坐伊部曲ㆍ말.. 2024. 2. 14.
제주에서 운양 김윤식을 생각하다 1. 터에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모양입니다. 제주 시내-여기서는 옛날 제주의 중심이랄 수 있는 구제주-를 어슬렁거리다가 만난 곳, '제주시 소통협력센터'란 이름이 붙은 여기가 조선 말 한문학 대가이자 온건개화파 거두 운양 김윤식(1835-1922)이 유배와 살던 곳이더군요. 동도서기東道西器 곧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기술을 소통, 협력시켜보자는 주장을 펼친 운양이 살던 곳에 소통협력센터가 들어서다니 인연도 이런 인연이 있을까요(억지스럽다고 하면 그것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2. 김윤식은 을미사변 당시 외무아문대신으로 명성황후 폐위에 일조했다는 죄를 입어 1898년부터 1901년까지, 제주에 약 3년간 유배와 있었습니다. 여기 올 때 인천에서 화륜선을 타고 왔다니 그것부터 근대 느낌 물씬 나는데, 그가 ..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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