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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염치禮義廉恥란? 본능에 대한 타박이며 분출에 대한 억압이요 나체에 대한 가식이다. (2016. 2. 3) *** 예의염치는 요컨대 억압이다. 무엇이에 대한 억압인가? 바로 저들에 대한 윽박이다. 억압없이 어찌 예의염치가 성립하겠는가? 2024. 2. 3.
쌍기가 일으키고 최섬이 붙인 혁명, 사설학원 난립시대를 낳다 중국 귀화인 쌍기 건의로 고려 광종 시대에 과거제가 개막할 때만 해도, 그것을 승인 추진한 광종과 그 실무를 밀어부친 쌍기조차도 이후 고려사회가 어찌 변할지 몰랐다. 그만큼 이 조치는 단군조선 이래 볼 수 없던 혁명이었다. 이른바 호족이라 일컬은 권문세가 자신들과 그 음덕으로 출사한 그 후손들이 관료들이 지배하던 사회가 급속도로 행정고시로 무장한 관료제 사회로 변화해갔기 때문이다. 이런 성공 신화 이면에는 그것이 배출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영웅으로 추앙되기 시작한 시대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랬다. 구국영웅 서희는 비록 아버지 음덕이 크긴 했겠지만, 그는 황금방 출신으로 일찍 출사해 고속승진을 거듭하다 제1차 고려거란전쟁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과를 냈고 강감찬은 비록 출사는 늦은 편인 것으로 보.. 2024. 2. 3.
단맛과 매운맛의 중독성 (1) 한국음식은 일본인들이 볼 때 미치도록 맵다. 일본음식은 한국인들이 볼 때 너무 달다. 두 나라 음식은 이처럼 달라 보이지만 원래 그랬을까.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단맛과 매운맛을 인류가 원하는 대로 낼수 있게 된 때가 얼마 안 된다는 것이다. 사탕수수에서 나온 설탕이 전 세계 무역으로 대량공급되기 전에는 단맛이란 정말 만들기 힘든 맛이었다. 반면 매운맛도 마찬가지다. 고추가 보편화하기 전에는 매운맛은 내기 힘든 맛이었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음식을 정의하는 두 가지 맛은 이처럼 최근에야 인류의 식단에 쉽게 오르게 된 것이라는 뜻이다. 필자는 한국과 일본의 음식은 임진왜란 이전까지만 해도 거의 별차이가 없었을 것이라 본다. 우선 양국에서 나는 식재료가 비슷하고 두 나라는 청동기시대 - 야요이시대 이래 같은.. 2024. 2. 3.
일제시대 인류학논문 일제시대 인류학 논문이 설왕설래가 많다. 이 시대에 쓰여진 논문일체는 몽땅 조선인의 열등함을 밝히기 위한 논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고 그런 논문도 분명히 있을 텐데. 전부는 아닐 수도 있고. 필자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럴 거라는 생각에 몇 가지 기초적 논문만 회자될 뿐. 필자가 나이 60 전후하여 새롭게 보겠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일제시대의 인류학 논문-. 모두 해제를 한번 달아볼까 생각 중이다. 젊은 친구들이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하고 놔둘 수도 없는. 딱 60넘는 연구자가 해야 할 만한 일이리라 본다. 2024. 2. 3.
구정毬庭, 고려시대의 축구장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읽다 보면 저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저 문제의 심각성을 어떤 역사학도도 지적한 일을 못 봤다. 저 구정이란 구毬하는 마당, 혹은 구장[庭]이라는 뜻으로 이 경우 毬란 바로 격국擊鞠 혹은 타구打毬 혹은 격구擊毬라 일컫는 스포츠로 폴로 경기를 말한다. 말타고 막대기로 공을 쳐서 골을 넣는 경기라, 이 스포츠가 고려시대에는 특히 성행한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에는 그랬다는 기록이 없어서 그렇지, 동시대 당나라에서는 현종 이륭기가 광팬으로 이 스포츠를 직접 혹닉한 것으로 보아 신라에도 도래해 성행했음에 틀림없다. 물론 구정毬庭이 꼭 격구 폴로만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데는 의문 혹은 반론이 없지는 아니해서 축구蹴毬 또한 약칭해서 구毬라 하니, 이 경우 축국은 현대 스포츠 축구의 그것과 매우.. 2024. 2. 3.
구황작물이란 무엇인가 한국사에서 구황작물이란 무엇인가. 한국에만 국한해서 말하자면, 쌀농사를 짓고자 했는데 딱 봐서 망할 것 같으면 급히 심어 아사를 면하고자 하는 작물이다. 그래서 구황작물은, 1. 재배 기간이 짧고 2. 쌀농사가 안 될 만한 악조건의 기후에서 척박한 땅에서도 자란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재배기간이 짧고, 쌀농사가 안 될 만한 악조건의 기후에서 될 만한 작물이라면, 이건 한반도에서 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했을 당시 재배되던 작물과 동일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감자, 고구마 등 나중에 들어온 작물을 제외하면 구황작물은 조, 피, 수수를 항상 예로 든다. 이들 작물은 쌀농사 이전에 이미 재배되던 밭작물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쌀농사 시대의 "구황작물"이란 실제로는 쌀농사보다 먼저 들어와 밭에 재배되던.. 2024. 2. 2.
과거제가 사설 학원시대를 열다 앞서 나는 쌍기에 의한 광종 9년(958) 과거제 도입을 이야기하면서 그 첫 시험에서 진사進士 갑과甲科에 급제한 최섬崔暹이라는 사람 또한 한국사 최초로 과거를 통해 등단한 인물임을 대서특필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이 최섬이라는 인물이 급제 이후 딱 한 번 사서에 모습을 드러내니, 고려사 권93 열전列傳 권 제6 제신諸臣 김심언金審言이라는 사람 열전이라, 관련 대목 기술은 다음과 같다. 金審言, 靜州靈光縣人, 初從常侍崔暹學. 暹坐寐夢, 審言頂上出火, 氣屬于天心, 異之, 妻以女. 김심언金審言은 정주靜州 영광현靈光縣 사람으로, 처음에 상시常侍 최섬崔暹에게서 배웠다. 최섬이 앉아 졸다 꿈을 꾸었는데, 김심언 정수리 위에서 불이 나오다가 그 기운이 하늘 한 가운데로 붙으니, 이를 이상하게 여겨 〈자기〉 딸을 그에.. 2024. 2. 2.
진 시황제 능 주변 딸린 무덤에서 출현한 각종 수레 진시황제능박물원이 최근 진시황제능秦始皇帝陵 1호 배장묘陪葬墓 최신 조사결과를 발표했으니, 그 묘 주인공은 신분이 극히 높아 시황제 치하 진秦 제국 제1급 배장묘陪葬墓임을 알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2011년 이래 이 박물원이 능 외성 저쪽 지점 고고 발굴조사 결과 현재까지 모두 9기에 이르는 중대형급 묘장墓葬을 발굴하고, 그것들이 동서 방향으로 한 줄로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2013년 이후에는 조사원들이 개중에서도 1호 배장묘라고 이름한 데를 조사했다. 그 결과 무덤은 묘도墓道와 묘실墓室, 그리고 3좌座 거마车马 배장갱陪葬坑을 발견했다. 시황제 능원 외성外城 서쪽 약 440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는 1호묘는 공중에서 내려다 본 형태가 “中” 자 모양을 하며, 전형적인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 2024. 2. 2.
박쥐 배트맨 천지 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박쥐는 새처럼 날아다니는 신묘한 쥐라 하여 선서仙鼠라고도 불리는 동물입니다. ‘박쥐 복蝠’자가 ‘복 복福’자와 발음이 같아 행복과 운을 뜻하며, 두루 복을 받기[편복遍福]를 바라며 박쥐[편복蝙蝠] 모양의 장식이나 손잡이를 안경·신선로·화로·담배합 등과 같은 일상용품에 꾸미기도 합니다. 두 마리 박쥐는 ‘쌍복雙福’을, 다섯 마리 박쥐는 ‘오복五福’을 가져다준다고 믿었습니다. ① 〈꺾기 다리 안경〉 민속30169 ∥ 조선 ∥ 길이 11.8 지름 3.5 ② 〈신선로〉 민속87929 ∥ 20세기 초 ∥ 높이 18 입지름 5 바닥지름 11.5 ③ 〈화로〉 민속2438 ∥ 조선 ∥ 높이 16 지름 18.5 바닥지름 14.5 ④ 〈담배합〉 민속2173 ∥ 조선 ∥ 높이 7 세로 11.5 가로 8 위의 유물들은 모두 .. 2024. 2. 2.
Collection of Edited Writings about Western Culture and Thoughts by 유길준 서유견문西遊見聞 Collection of Edited Writings about Western Culture and Thoughts by 유길준, 1895년 "그들은 연회에는 변 관심이 없고 오로지 한 가지라도 더 많은 것을 배우려는 데 열의를 보였다." - 퍼시벌 로웰 유길준의 서양 기행문이자 국정개혁서이다. 그는 보빙사 일원으로 미국에 갔다가 정부 유학생으로 남아 공부했다. 1885년 귀국하여 4년 동안 책을 집필한 후 1890년 초고를 고종에게 바쳤다. 그간 경험한 서구 문물을 소개하면서도 국내 실현방안을 함께 고민하며 개화사상을 집대성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서울역사박물관 #서유견문 #유길준 2024. 2. 2.
위대한 화학비료 흔히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과학이라고 하지만 정말 과학이 인류를 위해 봉사한 업적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대개는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연구가 대부분이고,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만한 그러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는 이야기다. 이런 예의 하나가, 화학비료다. 한해 농사가 끝나면 식물에게 영양분을 몽땅 뺏겨 휴경 하지 않으면 농사가 안되는 척박한 토지에 강제로 화학비료를 떄려부어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어 연작과 풍작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화학비료다. 화학비료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할 만하다. 흔히 유기농법 때문에 화학비료를 비하하는 경우를 보는데, 배부른 소리다. 화학비료야말로 수많은 인류를 굶주림에서 구출한 인류최고의 과학 발명품의 하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지금도 유기농법으로 만든 비.. 2024. 2. 2.
한성순보漢城旬報와 한성주보漢城週報 한성순보 제5호와 한성주보 제1호 Hanseong Ten-Daily No.5, 1883년 12월 9일 Hanseong Weekly No.1, 1886년 1월 25일 박문국에서 발행한 근대 신문 Modern Newspapers Published by Pakmunkuk "과거 순보가 간행되지 안았을 적에는 불편한 것을 모르고 지냈더니, 순보가 간행되다가 중단되니 겨우 틔었던 이목이 다시 어두워지는 것 같다고 하며 모든 사람들이 간행을 바라고 폐간을 바라지 않았다." 1886년 1월 25일 주보서週報序 박문국에서 발행한 한성순보 제5호와 한성주보 제1호이다. 정부는 개화사상을 보급하기 위하여 1883년 저동에 박문국을 설치하고 한성순보를 발간했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후 박문국이 불타면서 순보 발행은 일.. 2024. 2. 2.
찐밥만들기는 조와 기장 때문에 발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쌀과 보리를 쪄서 먹을 때 부담스러운 것은 익혀서 부드러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쌀이 도정이 충분치 않아 현미 비스무리 할 때는 쪄서 먹으면 보리와 막상막하다. 그래서 거칠다는 느낌을 준다. 필자 생각에는 조와 기장을 쪄서 먹게 되면 상당히 맛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조와 기장을 다른 곡식과 끓여 취사하게 되면 다른 곡식이 익을 때까지 끓여야 하므로 조와 기장은 너무 익힌 모양이 되는데, 이는 결국 조와 기장의 낱알 크기가 절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따라서-. 낱알 크기가 작은 조와 기장의 경우 쪄서 먹게 되면 오히려 끓여 취사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본다. 조만간 그렇게 먹어보겠다. 2024. 2. 2.
석촌동 5호분 한성백제 칠기 서울대박물관이 국가를 대신해 위탁 관리 전시 중인 석촌동 5호분 출토 한성백제시대 이른바 톱니 바퀴 무늬 칠기라 서울공예박물관 김수정 관장이 그제 찍어 소개한 것이라 저 댓글에 저 칠기 보존처리에 대한 이용희 전 국립박물관 보존관리부장 회고가 있어 전재 소개한다. 저 유물을 이용희 선생이 보존처리에 간여한 줄은 몰랐다. 발굴 조사 후 폭우가 쏟아져 고분이 침수되는 바람에 유물이 부분적으로 유실되는 손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원래 부터 목심은 부패되어 남아있지 않았고 여러 개의 조각으로 분리된 것을 겨우 겨우 모아 맞추고 실리콘판과 유리판 사이에 고정했는데 테두리가 어찌 생겼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저에 대한 추가 질의에 대한 답변이 있었다. 원래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에서 처리했는데 파편을 동.. 2024. 2. 2.
영감들에게 주는 고언, 흘러간 노래 그만 틀어라 이 업계 투신한지 대략 30년, 그때 접한 논문 연구성과라는 것이 이미 10년이 지난 것이 대부분이었으니, 하긴 뭐 그때도 이미 퇴직한 이기백은 고사하고 이병도까지 인용되던 무렵이라, 그래 그때는 연구층도 얇았기에 그렇다 치고 어찌하여 21세기가 대두한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내가 30년 전에 접한 그 논문들이 여전히 인용되고, 금과옥조로 군림한단 말인가? 흔히 인문학은 자연과학과 달라서 그 생명이 길다 하지만, 무슨 얼어죽을 변종이라고 30년 전에 본 10년 이상 지난 글이 여전히 인용된단 말인가? 그때 한창 활동하거나 이른바 대가라 해서 군림하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젠 백발이 성성한 70대 80대가 되었으니,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활개를 친다는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지 뭐가 있겠.. 2024. 2. 2.
직렬의 시간과 순환의 시간 지금의 우리는 시간을 직렬로 놓는다. 다시말해 서기라는 개념을 도입해 하나씩 숫자를 보태어간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야소교적 전통이다. 이게 백년전만 거슬러가면 복잡해 순환의 인식 성향이 강하다. 특히 육십갑자로 돈다고 여긴 형적이 많다. 하지만 직렬의 인식도 더러 있기는 했으니 조선왕조 건국 몇 년이라는 식의 시간 관념도 보인다. (2014. 2. 1) *** 시간은 가는가 도는가? 헤밍웨이가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 라 외쳤을 때는 순환이라는 개념이 강하지만 그렇다 해서 시간이 흘러가지 아니한 것은 아니다. 2024. 2. 2.
특강에도 성범죄 검증을 요청하는 세상 얼마전 어떤 지자체 어떤 공모사업에 심사위원 후보로 등록할 일이 있어 저짝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봤더니 재직증명서 혹은 경력증명서까지 요청하는 것을 보고는 못내 뒷맛이 씁쓸했으니 심사위원도 아니요 심사위원 후보자 등록이라는 데 꼭 이리 요란스레 해야 하나 불평하니 요새 경력을 위조하는 놈이 하도 많아 생긴 일이라 하는데 용 빼는 재주 있나? 할 수 없이 전직 회사에 경력증명서를 요청해 받았다. 그 어떤 형식으로 떠났건 떠난 회사는 당분간 꼴도 보기 싫음이 인지상정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자꾸만 내가 내 과거에 얽히는 일이 싫다. 작년인가 재작년에는 모대학에서 한류 특강을 의뢰받았으니 그 강의 응락서를 보니 범죄경력조회? 이런 걸 동의하라는 항목이 있었다. 내가 동의하면 관할 경찰서에서 김태식 범죄기록을 까서 .. 2024. 2. 2.
이미 다 알던 것이라는 데 대하여 우리가 이미 다 알던 것이라는 것은 사실은 제대로 된 논의를 막는 도그마, 정교하게 구축된 파라다임인 경우가 많다. 자연과학에서는 이런 경우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오랜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어느 날 그게 아니라고 발표한 내용이 느닷없이 노벨상을 받는 것이다. 그 보고가 있기 전에는 모두 실험이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잘못된 관찰이었다고 이야기 되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파라다임이 뒤집힌 보고가 한 번 나오면 그 다음에는 나도 그런 것 봤다는 후속보고가 잇따르고, 그건 원래 있던 것인데 운이 좋은 보고라는 말까지 나온다. 학문에는 논문으로 정확히 인용되고 보고된 것이 아니면 "원래 다 알던 것"이란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 2024. 2. 2.
외국인 특채로 벼락 출세한 쌍기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첫 급제자 최섬 쌍기雙兾라는 이는 한국사에서는 과거제를 도입한 인물로 대서특필한다. 그는 신라나 고려 사람이 아닌 짱꼴라 쏼라쏼라 젤싼거 담싼거 외치던 중국 후주後周 사람이다. 그 짝에서 벼슬하며 무승군 절도순관 장사랑 시대리평사 武勝軍 節道巡官 將仕郞 試大理評事 라는 데까지 승진한 상태에서 마침 광종 7년(956)에 광종을 제후로 책봉하는 사신단 우두머리 봉책사封冊使 설문우薛文遇를 따라 고려로 왔다가 병이 나서 그만 귀환하지 못하고 개경에서 치료에 전념해야 했다. 병이 나으니 광종이 그래 니 수고했데이 그래 이제 괜찮나? 따신 아메리카노 한 잔 하제이 하며 불러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와중에 그래 경이 생각하기에 우리 고려는 우째야 나라가 부강해지고 발전할 꺼 같노? 기탄없이 말해보레이 하는 질의에 응하여 통역을 통.. 2024. 2. 2.
제자의 처신, 손재형과 그의 두 제자 서희환과 하남호 1. 근대 한국의 명필로 꼽히는 이는 많다. 그러나 소전 손재형(1903-1981)처럼 글씨를 자유자재로 즐겼던 이는 드물지 싶다. 의 신화적 실화나 박정희(1917-1979)의 서예 스승이었다는 이야기는 젖혀두고라도, 같은 대작 글씨건 아담한 소품이건(앞 사진), 그의 작품을 보면 획의 움직임이며 대담한 구도며, 그야말로 별격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소전이 내세운 '한글 전서'는, 근거가 없다는 비판을 들었을 정도로 파격적이지만 또 그만큼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붓으로 글씨를 쓴다는 게 너무나 어색해져버린 이 시대, 서예가들이 그를 잘 연구한다면 뭔가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2. 소전에게도 제자는 많이 있었다. 그중 평보 서희환(1934-1995), 장전 하남호(1927-2007) 이 두 사람.. 2024. 2. 2.
병마용갱이 한국에서 발견됐다면? 이 역시 볼짝없다. 도용 몽땅 덜어내서 현장은 잔디밭 씌우고, 그 옆 적당한 곳 골라서 박물관이라는 거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아는 한국 문화재보호정책 근간이다. (2018. 2. 2) *** 왜? 배워 쳐먹은 게 봉쇄 밖에 더 있는가? 이런 놈들이 대전 정부청사에 앉아 국록 쳐먹으며 문화재 행정한다 하고 이런 놈들이 문화재위원입네 하면서 국록 쳐먹으며 문화재 행정한다 한다. 참고로 난 이미 문화재위원 두 번이나 해 쳐먹었으니 이런 말 맘대로 해도 된다. *** related articles *** 남월왕묘가 한국에서 발견됐다면? 남월왕묘가 한국에서 발견됐다면?이것도 볼짝 없다. 유물 몽땅 덜어내고는 봉분 씌우고 잔디 심고는 그 시내 중심 어딘가에 국립박물관 분소 만들고는 우린 유적 이리 훌.. 2024.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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