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1004 고대의 코끼리표 밥통: 무쇠솥 요즘은 쿠* 밥통이라는 소위 K 밥통이 전 세계를 휩쓰는 터라 젊은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해외 나가면 너도나도 일제 코끼리 밥통을 사들고 오는 때가 있었다. 정부에서는 일제 밥통보다 국산품 애용을 부르짖었지만 그래도 몰래들 들고 들어오는 이유는, 어머니들 보기에 밥맛이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이러한 역할을 쿠*밥통이라는 K 밥통이 그러해서, 탈북자를 이야기를 들어보면 K 밥통에서 목소리로 밥 다 됐다고 알려주는 기능을 죽이고라도 이 밥통은 반입되는가 보다. 밥맛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철로 빚어낸 가마솥-. 소위 무쇠솥은 그 당시의 코끼리표 밥통이자 K 밥통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쪄서 익혀 먹던 밥맛이 똑같은 쌀을 쓰고 잡곡을 쓰고도 밥맛이 달라지는걸 보고 아마.. 2023. 11. 12. 개체굴, 산란하지 않는 대따시 굴 3배체굴은 염색체가 3쌍으로 산란을 하지 않아 산란기 독소가 없으니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습니다. 덩이굴보다 2.5~3배 빠르게 성장하고, 맛이 진하고 향긋합니다. 일부러 홀수배체로 만들어서 몇 년 전에 개발한 양식 굴입니다. 양식할 때 스티로폼 부표 사용이 적어서 친환경적입니다. 개체굴은 요즘 지역마다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어서 통영, 고성, 고흥, 신안 등지에서 양식이 많이 늘었습니다. 지금은 비싼 편이지만 조만간 싼 가격에 시중에 나올 것입니다. 이상 조명치 특별전 한 방으로 방뜬 국립민속박물관 김창일 학예연구사 소개다. 산란하지 않음 후손은 어찌 생산하는가? 이런 물음에 김군이 이렇게 답한다. 3배체 개체굴 종패 생산을 하는 업체에서 4배체 어미생산과 채란, 수정을 해서 3배체 유생 양성후 종패.. 2023. 11. 12. 쌀밥 때문에 남하한 고구려 고구려의 남진 정책이 뭐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쌀밥 때문이다. 그만큼 쌀은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우수하며 맛이 탁월하다. 원래 고조선-한군현이 있었다는 낙랑평원은 일찍부터 쌀 농사가 시작된 곳이고 필자 짐작으로는 아마 이곳을 경유하여 한반도 남쪽으로 쌀농사도 확산했다고 보지만, 삼국시대쯤 되면 쌀 생산은 이미 한반도 남부가 북부를 압도한지 옛날이었을 것이다. 고구려가 남하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쌀밥 먹기 위함도 그 한 이유가 되었으리라 본다. 잡곡밥만 먹다가 쌀밥을 먹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으리오? 2023. 11. 12. 한달치 봉급으로 장욱진 그림을 산 김원룡 이 작품을 포장하며 장욱진 화백은 그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김원용씨는 이제 한달동안 무얼 먹고 사나?" *** Editor's Note *** 김원룡은 1세대 고고학도 겸 미술사학자로 국립박물관에 봉직하다 1961년인가 서울대에 고고인류학과가 창설되자 그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한동안 혼자 교수였고 신생인 데다 인기가 없는 학과라 매양 신입생 모집 때마다 미달 사태가 나서 괴로워했다. 이후 잠깐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땐 교수가 봉급으로 생활할 때가 아니었다. 삼불이라는 호를 쓴 그는 각종 정부 위원을 독식했고 각종 회의에 참석했다. 지금도 각종 회의에 불려다니며 짭짤한 수입을 내는 고고학 교수가 더러 있다. 아마 그 수당이 봉급에 육박할지도 모른다. 간단히 말해 장욱진 걱정과는 달리 적어.. 2023. 11. 12. 약밥의 기원 (2) 약밥의 기원은 필자가 아는 한 최초로 문헌에 등장한 것은 삼국사기인가 삼국유사인가 그렇다는 주장을 한다. 바로 소지왕대의 이른바 사금갑 설화인데, 글쎄. 이 소지왕이 만들었다는 그 찰밥이 과연 약밥의 기원인지 모르겠다. 필자가 보기엔 약밥은 찰밥으로 만든 것이 요점이 아니라, 밥을 쪄냈다는 것이 요체이기 때문이다. 밥을 취사하지 않고 쪄내면서 끈기가 사라져 우리가 아는 약밥의 비주얼이 완성된다. 약밥이 한덩어리로 뭉쳐 있을 수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밥의 끈기 때문이 아니라 여기에 섞어 놓은 감미료들 때문이 아니겠는가? 약밥을 먹으면 달면서도 밥알이 하나씩 따로 또는것을 느끼는데 이는 약밥은 밥을 쪄서 만들기 때문이다. 약밥은 불린 쌀을 찜통에 펼쳐 놓은 천 위에서 쪄 낸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취사발명 이.. 2023. 11. 12. FAO 세계중요농업유산에 올랐다는 제주해녀어업 '제주해녀어업' FAO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송고시간 2023-11-10 20:45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해녀어업'이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서 지정·운영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됐다. '제주해녀어업' FAO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 연합뉴스(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해녀어업'이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서 지정·운영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등재됐다.www.yna.co.kr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FAO가 시행하는 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 (GIAHS) 라는 사업 개념은 아래 앞선 글이 있으므로 그것을 참조했으.. 2023. 11. 12. 계란, 옛날 있었을 것 같은데 드문 요리 달걀요리다. 요즘은 달걀이 너무 흔해서 싼 값으로 단백질을 섭취하기 가장 좋은 식재료가 되어 있지만, 달걀을 넉넉히 먹기 시작한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에 양계장이라는게 언제쯤 생겼는지 찾아보면 그 시기 이전으로는 소급될 수 없다. 우리나라에 조선시대에 집집마다 닭을 기르고 있었을 것 같지 않나?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닭, 굉장히 귀했다. 대부분 새요리는 꿩을 먹었기 때문에 닭을 많이 키워야 달걀요리고 뭐고가 되는데, 닭 사육자체가 많지 않으니 댤걀이 정말 귀했다는 말이다. 이건 당장 요즘 북한에서 탈북자들 이야기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북한 탈북자들이 내려와서 가장 놀래는 것 중의 하나가 남한에 닭걀이 너무 싸고 흔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못살게 되어 달걀이 귀해진 것이 아니라.. 2023. 11. 12. 산초로 드러난 천마총 출토 곡립穀粒 신동훈 교수께서 요새 시루 타령이 한창이시라, 그러면서 한국음식문화사 관련 섭렵에 열혈이시라, 그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내 글 중 하나로 경주 천마총 산초를 새삼 거론하고자 한다. 문제의 글은 지금은 충북사학회로 이름을 바꾼 충북대학교 사학회에서 내는 역사학 전문잡지로 당시 내가 이 글을 투고한 2009년 무렵만 해도 명맥 유지가 위태로울 때라, 서울역사박물관에 근무하다 제주대학교로 옮긴 충북대 사학과 출신 김영관 교수(얼마 뒤 충북대 사학과로 옮겼다)가 그걸 살리겠다고 동분서주할 때라, 나한테까지 논문 제출 의뢰가 왔었던 것이니그 무렵 이 잡지에 두세편 논문을 거푸 투고한 계기가 김 교수와의 이런 인연에서 비롯되었음을 위선 밝혀둔다. 문제의 논문 서지사항은 아래와 같다. 설림(說林) : 천마총(天馬塚.. 2023. 11. 12. 한국음식에서 퇴출된 귀리 귀리가 한국에 수입된 것은 원나라 때라 한다. 아마도 원간섭기 때 말이 들어오면서 말먹이로 함께 들어왔을 거라는데, 한국이건 일본이건 귀리 수입은 꽤 늦었다. 일본은 귀리가 메이지 유신 이후에 들어온 모양이다. 한국은 귀리가 들어왔지만 제대로 정착 못하고 퇴출되었다. 유럽도 귀리는 말먹이기도 하지만 사람도 먹는다. 갈아서 오트밀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우리도 귀리를 굳이 먹자면 그렇게 갈아서 끓여먹어야 했겠지만, 필자 생각으로는 우리 조상님들은 귀리를 수확해서 이를 밥을 지어 먹어봤을 가능성이 백프로다. 귀리밥 드셔 보셨는지? 사람 먹을 게 못된다. 필자는 잡곡을 정말 좋아하는데 귀리는 정말 맛이 없다. 최근에는 다이어트식으로 각광을 받는 모양인데 당연한 일이다. 맛이 없으니까. 귀리는 고려시대 들어와 .. 2023. 11. 12. 무쇠솥과 결합한 고구려 시루 고구려 시루-. 시루 이야기만 나오면 등장하는 것으로 고구려 아차산 보루에서 나왔다던가. 아래는 철솥이고 위는 토기 시루인 이 조합. 그런데 만들려면 둘 다 철로 만들지 왜 위쪽 시루는 토기일까? 필자가 보기엔 바닥에 구멍내기가 쉽지 않아 그런 것 아닌가 한다. 시루면 구멍을 여럿 뚫어줘야 할텐데, 그냥 쓰던대로 시루는 토기로 아래 솥만 무쇠솥으로 간것이 아닌가 한다. 이걸로 고구려 전방 부대원들은 뭘 해먹었을까. 저 시루로는 아마도 잡곡밥을 지어 먹지 않았을까. 보리밥, 조밥, 수수밥. 그렇다면 그런 잡곡밥도 시루로 지어볼 일이다. *** Editor's Note *** 보루에서 아마 필자가 말하는 곡물도 검출되지 않았나 한다. 이는 결국 곡물과 밀접한데 고고학 자료를 가미하면 콘텐츠가 사뭇 풍부해진다.. 2023. 11. 11. 압도적 인용빈도 미셸 푸코의 위대함 미셸 푸코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겠지만, 적어도 학문적 지표로만 보면 미셸 푸코는 인문학 부분 노벨상이 있다면 최초로 수상했을 사람이다. 그의 인용빈도를 구글 Scholar에서 보면, 이와 같다. 풀어보면, 지금까지 미셀 푸코가 쓴 저술은 총 132만 번 인용되었고, h-index가 310이나 된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숫자냐 하면, 그의 논문 중 310번 인용된 논문이 310개나 된다는 소리다. 자연과학 분야 연구자도 이 정도 h-index를 보유한 사람은 거의 없다. h-index는 그 한계도 많이 지적되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지표 중에는 소위 말하는 석학을 구별해 낼수 있는 가장 유효한 지표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어떤 사람이 쓴 논문이 200개가 있다고 치자. 그 중에 20번 인용된 논문이 20.. 2023. 11. 11. 기레기 철부지 사랑이 초래한 로마의 오늘 저 돌댕이 손가락 함 쑤셔볼끼라고 이리 줄을 섰다. 글타고 내가 오드리요 내가 그레고리가 되겠는가? 나야 전직이긴 하지만 아직 현직의 향기가 채 가시지 않은 풋내기 자발백수라 기자 혹은 전직기자라지만 공주야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겠고 묻지마 관광은 혹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나야 경건한 사람이니 저들 속세 찌든 사람들 뒤로하고 예수님 독대하러 왔다. #로마의휴일 #진실의입 2023. 11. 11. 국립중앙박물관 오세창吳世昌 전시장에서 위창 오세창(1864-1953), 그는 누구인가. 3.1운동 33인의 한 명인 독립운동가이자, 전서로 일세를 풍미한 서예가요, 기자로 시작해 와 를 거쳐 사장까지 역임한 언론인에 와 을 엮은 수집가, 거기에 을 저술한 미술사가. 도대체 어느 한 면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 그의 70주기를 기려 국립중앙박물관은 조촐한 전시를 꾸렸다. 한국미술사의 시조에게 바치는 헌사 - "근대 문예인, 위창 오세창"이다. 12월 말까지이니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놓치면 다시 전시에서 만나기 어려운 작품이 많다. 바라건대, 이 글을 읽으시거든 꼭 한 번 다녀오시기를. 그리고, 한국의 근대라는, 그 어려운 시기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격랑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던 한 인물('문예인'이란 표현.. 2023. 11. 11. 춘궁기 촌주의 점심 밥상 한반도 남부 춘궁기 촌주의 점심밥상을 재미삼아 복원해 본다. 춘궁기니 아무리 촌주村主라 해도 보리밥을 먹지 않았을까. 해서 찐밥을 보리밥으로 해보았다. 뭐 깡보리고 뭐고 간에 서너시간 물에 담궈 놓으면 시루로 찌면 10분이면 다 익는다. 깡보리밥이다. (요즘은 보리도 손질을 해서 나오니 옛날에는 보리 익히는데 시간이 더 걸렸을 수도 있겠다) 촌주는 마을의 어른이지만 춘궁기다 보니 쌀이 모자라 깡보리밥을 드시는 것으로 했다. 깡보리밥에 무우절임과 생선 한토막 구이가 부식으로 올라갔고 가장 오른쪽 오징어는 사실 오징어무침이다. 비주얼상 젓갈인 醢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醢는 신문왕 때 역사기록에도 보이므로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여기서는 생선을 잡아 만든 젓갈 정도로 퉁치겠다. 깡보.. 2023. 11. 11. 한국연구자는 왜 자기홍보를 못하는가? 얘기 나온 김에, 또 외우 신동훈 교수께서도 비슷한 맥락 논급을 하셨기에 이어간다. 그래 천성이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 인정한다. 수줍음이 많은 성격에서 비롯한 사람 많다는 정도는 내가 이해한다. 하지만 이 역시 이제는 내실을 따져 진짜로 그런지 분석해야 한다. 수줍음이 많고 남한테 나서기 싫어하면 논문 쓰면 안 된다. 왜 나서기 싫어한다면서 남들한테 보이기 위한 글을 쓴단 말인가? 저런 성격이야 그래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네 연구자들은 대체로 왜 그렇게 자기 홍보에 인식한가? 그래 요새는 오죽 sns 등을 통한 설화가 그리 많으니, 그런 설화를 두려워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 점은 내가 인정한다. 그럼에도 전반으로 보아 우리네 연구자는 자기홍보에 인색하기 짝이 없으니,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2023. 11. 11. 연구업적의 홍보 중요성에 대해 김단장께서 쓰시는 연구업적의 홍보 부분에 대해 약간만 글을 보탠다. 연구자의 업적을 평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런데 서구에는 이것이 정성화된 평가방법도 있겠지만, 그네들의 속성대로 정량화한 평가방법도 있다. 어느 쪽이 우위에 있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로 논문은 출판되면 인용이 되어야한다. 인용이 많이 된 논문을 쓴 연구자일수록 우수한 연구자라는 인식은 공통적이다. 최근에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노벨상 시즌만 되면 신문 지상에 오르는데, 이는 그냥 막 추천받아 올리는 것이 아니고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의 경우에는 인용빈도를 가지고 정량화하여 최상위권에 있는 사람들이 대개 노벨상 수상자로 추천된다. 따라서 자기 논문의 인용에 초연한 사람들은 적어도 지금 학계풍토에서는 연구자라고 부르기 .. 2023. 11. 1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연구 국제학술행사 '서남아시아의 재발견: 도시문화와 생활양식'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연구 국제학술행사 서남아시아의 재발견: 도시문화와 생활양식 2023년 11월 14일,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 주제가 좋고 발표 글들도 신선한 느낌을 준다. 2023. 11. 11. 일본의 강반 레시피 필자가 우리의 청동기시대 찐밥 제조법, 그리고 약밥과 기원이 같다고 생각하는 일본식 강반 레시피는 아래와 같다. 한국의 약밥 레시피와 동일하다는 것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색깔 칠해 놓은 곳에 주목. 強飯とは、現在のおこわのルーツです。 現代ではもち米で作るのが一般的ですが、当時はうるち米の玄米を蒸して食べていました。玄米を蒸す手順は、以下の通りです。 <材料> 玄米 100g 水 100mL <作り方> 1.玄米を洗い、6時間程度浸漬させる 2.ザルに上げて水気を切り、玄米と水を器に入れ、アルミホイルでフタをする 3.蒸し器の準備をする 4.蒸気が上がったら2.を入れて30分程度蒸す 5.火を止め、10分程度蒸らしてできあがり ※玄米の浸漬時間は長いので、寝る前や朝、出かける前に水に漬けるのがおすすめ ※雑菌の繁殖を防ぐため、必ず冷蔵庫で浸漬させる(2~3回水.. 2023. 11. 11. 논문 썼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2차 가공이 필요한 시대 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가? 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가? 누군가 나한테 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이 반복한다 한 적 있다. 특히 한국고고학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그렇다고 했다. 같은 말보다는 같은 논조 비슷한 주장을 담은 글들을 말할 것이다. 아 historylibrary.net 이 이야기에 덧붙인다. 특히 이는 내가 직업적 학문종사자라 분류할 만한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이거니와, 그런 연구자라 해 봐야 몇 명 되지도 않던 시대에나 통용했을 말이 "그건 내가 이미 논문으로 다 썼어." 라는 말이 있거니와, 그런 직업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그 완성의 궁극을 논문으로 보는 까닭에 저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한다. 저에서 나 역시 예외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무엇보다 연구자라 분.. 2023. 11. 11. 추정해 보는 밥짓기의 변화 어차피 필자는 이것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이 아닌지라, 이쯤 하면서 지금까지 쓴 내용을 요약한다. 청동기시대, 생산된 곡물은 시루로 쪄내 밥을 해서 먹었다고 본다. 시루가 나오니까 원래 한국인들은 떡을 먹다가 나중에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던데, 그게 아니고 시루를 쓰던 때도 밥을 쪄서 먹었다. 잡곡이건 쌀이건 전부 다 잘 익는다. 몇 시간만 불려주면 딱 10분만 쪄내면 곡식은 다 익는다. 시루를 밥 짓기로 쓰려면 전제조건은 딱 하나다. 뚜껑이 있어야 한다. 뚜껑없는 시루로는 밥을 못 짓는다. 한 번만 해 보면 안다. 먹을 때의 식감 문제는 역시 찐밥의 문제점 중 하나다. 다 익어도 소화는 확실히 잘 안 된다. 덜익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밥의 함수율이 확실히 뜸들이는 취사 때와는 차이가 있다는.. 2023. 11. 11. 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가? 누군가 나한테 같은 이야기가 너무 많이 반복한다 한 적 있다. 특히 한국고고학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들이 그렇다고 했다. 같은 말보다는 같은 논조 비슷한 주장을 담은 글들을 말할 것이다. 아무튼 그에 대해 내가 한 말 요지는 이렇다. 안다. 너무 잘 안다. 소재가 고갈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또 그건 내 한계겠지만 같은 말이건 비슷한 논조를 반복하는 거 맞다. 부인하고픈 생각없다. 나는 왜 그러는가? 단 한 번의 지적 비판으로 바뀌는 일 네버에버 없다. 단군조선 이래 그런 적 없다. 물론 내 주장 입론이 모두가 타당하다고는 보지 않으며 동의 못하는 구석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내 주장 입론이 대의에서는 80프로 이상 옳다고 본다. 예컨대 토기 타령 축조기술 타령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누가 거부할 .. 2023. 11. 11. 이전 1 ··· 377 378 379 380 381 382 383 ··· 100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