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0971 초치招致 vs. 약견約見 비단 꼭 한국 중국 외교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저런 일은 빈번하게 국제관계에서 볼 수 있거니와, 외교관계가 성립한 쌍방 중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에다가 불만을 표기하는 전형의 방법이 저것이다. 이런 일은 보통 해당 국가 외교부가 나서기 마련인데, 그쪽이 외교관계를 관장하는 부처이기 때문이다. 부르는 상대는 그 나라에 주재하는 그 국가 공식 외교기관 대표자인데, 대표자가 없을 수도 있으니, 그때는 그에 준하는 다른 고위 외교관을 불러다가 니들 왜 그랬냐? 이래서는 안 된다 따지는 모습을 연출하기 마련이다. 보통 이럴 때 우리는 그 해당 외교관이 외교부 청사에 들어서는 모습을 공개하는 일이 많다. 그런 식으로 대외를 향해 우리가 이렇게 외교 관계를 일방으로 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처하고 있다 뭐 이런 쇼를 .. 2023. 6. 12. 출구도 입구도 오직 하나뿐인 남영역 이런 데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 서울지하철 1호선 남영역은 들어가는 데랑 나오는 데가 오직 한 군데다. 그래서 아주 단순하다. 그 구내라 해 봐야 코딱지 만해서 남영역에서 만나자면 헷갈릴 여지도 없다. 그 인근 엎어지면 코 닿는 지점에 퍽 하고 윽했다는 박종철 고문치사실 남영동대공분실이 있다. 지금은 민주화 무슨 기념관으로 분한 시설이 있는데 운영주체가 어딘지 전연 존재감 제로다. 공사는 열심히 하더라. 저 얘기 나온 김에 내가 남영동 주민이나 저 대공분실 소재지는 남영동이 아니다. 2023. 6. 12. [宋] 소식蘇軾, 적벽 옛일을 회고하며[赤壁怀古] 大江東去,浪淘盡,千古風流人物。 出自於蘇軾的《염노교念奴娇·적벽회고赤壁怀古》 朝代:宋代 作者:소식蘇軾 큰 강 동쪽으로 흘러가며 물결이 그 옛날 영웅호걸 죄다 쓸어갔네 옛 누각 서쪽 성벽은 사람들이 이르기를 삼국시대 주유의 적벽이라 하네 울퉁불퉁 바위는 하늘 뚫고 놀란 물결은 벼랑 들이치며 천 갈래 눈꽃 말아올리네 강산은 그림 같고 한때 호걸은 얼마나 많았는지 멀리 주유 때 일 떠올리니 소교한테 막 장가들 무렵 영웅 같은 모습 피어 올랐네 깃 부채 들고 푸른 망건 걸친 채 담소하는 사이 군함들은 재 되어 날고 연기 되어 사라졌네 그 옛터 꿈처럼 노닐다 보니 다정도 병인 내가 우습구나 일찍 백발이 되고 말았으니 인생은 꿈만 같아 한 잔 들어 다시 강물 속 달님께 권하노라. 大江東去,浪淘盡,千古風流人物。 故壘西邊.. 2023. 6. 12. 몽블랑 정상에서 from 신정일 아름다운 경관을 만나면 매월당 김시습은 주저 앉아서 통곡을 했고, 화담 서경덕은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는데 그 오랜 전통을 몽블랑산에서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많은 나라 사람들이 보는 그 순간에. 2023년 6월 10일 2023. 6. 11. 잡지 <개벽開闢>을 읽기 전에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이 제주 안에 있어도 어지간한 문헌은 컴퓨터 모니터로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직접 자료를 찾아보러 육지로 나가야만 하기도 합니다(꼭 필요한 자료인데 꼭 그거만 원문공개를 안해줘가지고...). 가려고 날을 잡아보는데 거 참 쉽지가 않네요. 어쨌건, 이제 정말 을 읽게 생겼습니다. 도대체 그 잡지가 어떤 잡지기에 내가 쓰려는 글(다시 말하지만 전 고려시대 전공자입니다)에 필요한 자료를 실었나 싶더군요. 이에 까페에 자리잡고 이 책을 폈습니다. 도대체 이란 무엇인가? 2023. 6. 11. 고대 이집트의 희귀 귀금속 - 은 by 유성환 오늘은 제 페친 중 한 분이신 김태식 님께서 최근 포스팅하신 “고대 이집트엔 은 광산이 없나?”라는 질문을 받고 몇 자 적어보려고 합니다(아래 관련 링크 참조).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없다”입니다. ㅎㅎ 관련 링크: 이집트엔 은이 없어 에게해서 수입? 이집트엔 은이 없어 에게해서 수입?어찌하여 이 소식이 호주 시드니발인지는 모르겠으나, ABC News Australia 보도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 왕비 헤테페레스 Hetepheres 무덤에서 1920년대 발굴된 팔찌들에 쓴 은은 그리스 에게해 섬 수입산historylibrary.net 고대 이집트는 고대 서아시아 전역에서 금의 산지로 유명했지만 은을 채굴할 수 있는 광산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남부와 누비아(Nubia) 지역에서는 금과 은의.. 2023. 6. 11. 경성제국대학 개교를 축하합니다~축하합니다~(뿌우) 1924년 5월 2일, 칙령 103호로 가 반포 시행되며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이 개교했다. 1924년 5월 9일 경성제국대학 예과豫科 제1회 신입생 선서식이 거행되고, 이튿날 경성제국대학 예과 제1회 입학식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다음날인 12일 최초의 수업 시작, 곧 개강開講이 있었다. 그 다음날인 13일, 서울의 일본인 신문 에서는 1면의 거의 2/3을 할애해 경성제국대학 개설을 축하하는 광고를 실었다. 그런데 그 광고들을 보아하니 이들이 왜 대학 개설을 축하했는지 짐작이 간다. 남산 자락 혼마찌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서점은 "우와! 대학이 생겼으니 이제 대학 교재 수요가 생기렸다. 그리고 소설 같은 것도 좀 팔리겠지, 기왕이면 우리 가게에서 사가게 하자"겠고, 구두 가게와 모자 가게야 "크으!.. 2023. 6. 11. 일제시대의 지식인: [28] 김계원과 [29] 김영환 학병 출신에 대해서도 언젠가 자세히 써야 할 것이다. 해방 후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김계원과 공군 준장으로 순직한 김영환 양 장군은 두 사람 모두 학병 출신이다. 학병출신이라는 이름을 생소하지 않지만 이것처럼 오해가 많은 부분도 없다. 오해가 많으니 개인에 대한 평가도 들쭉날쭉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학병인데 항일운동급으로 추앙되고 어떤 사람은 똑같은 학병인데 친일파 급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보는 사람의 개인적 호불호가 평가에 개입한 탓이다. 학병은 그 자체는 70년대 강제징집이나 80년대 전방입소 등과 다를바가 없다. 원해서 간 것은 당연히 아닌데 학병이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끌려간것인지 온라인 상에는 제대로 정리된 글 하나 보이지 않는다.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제대로 된 팩트의 확인부터 필.. 2023. 6. 11. 이집트엔 은이 없어 에게해서 수입? 어찌하여 이 소식이 호주 시드니발인지는 모르겠으나, ABC News Australia 보도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 왕비 헤테페레스 Hetepheres 무덤에서 1920년대 발굴된 팔찌들에 쓴 은은 그리스 에게해 섬 수입산임을 보여주는 분석 결과가 나왔댄다. 이 왕비는 파라오 스네퍼루 Sneferu 와 혼인하고 기자 대피라미드 건설자인 쿠푸 Khufu 어머니로, 기원전 2589~2566 무렵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Macquarie University Karin Sowada가 말하기를 이집트에서는 local sources of silver가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런 은은 이전에는 은 함유 비율이 높은 local gold sources 에서 추출한 것으로 간주했단다. 한데 이번 팔찌 분석 결과 그 은의.. 2023. 6. 11. 장미와 대나무 라니 별 희한한 조합도 다 있다 싶지만, 그림으로 옮겨놓으니 제법 아취가 그럴싸하다. 계유년, 곧 1933년 어느 봄날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1897-1944)의 붓끝이 이 둘을 만나게 하였다. 채색이 들어갔다고 무조건 화려한 그림이 되지도 않고 먹만 썼다고 무조건 담담한 그림이 되지도 않는다. 채색을 써도 얼마든지 이처럼 맑고 담담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법이다. 시대가 시대였으니만큼 일본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무호라는 작가 자신의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였던들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 Editor's Note *** 저 이한복은 호를 호가 없다 해서 無號라 쓴 대목이 이채롭다. 그런 까닭에 무호는 자호自號일 것으로 본다. 덧붙여 전통 수묵화로 그렸을 법한 데다가 채색을 씌우고 더.. 2023. 6. 11. 이인직, 언어의 마술사 서창에 지는 해가 눈이 부시도록 비추는데 창밖에 지나가는 그림자는 날아드는 저녁 까치라, 서창을 마주앉아 꼬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주동이를 딱딱 벌리면서 깟깟, 깟깟깟 짖기를 구기拘忌 잘하기로는 장안 여편네 중 제일 가는 김승지의 부인 시앗이니 무엇이니 하고 지향指向을 못하는 중에 저녁 까치 소리를 듣고 근심이 버썩 늘었더라... 인간에 새벽되는 소식을 전하려고 부상 삼백척에 꼬키오 우는 것은 듣기좋은 수닭소리라. 그 소리에 인간에 있는 닭이 낱낱이 운다. 아시아 큰 육지에 쑥 내민 반도국이 동편으로 머리를 들고 부상을 바라보고 세상밝은 기운을 기다리고 있는 백두산이 이리 굼틀저리굼틀 삼천리를 내려가다 중심에 머리를 다시 들어 삼각산 문필봉이 생겼는데 그 밑에는 황궁국도에 만호장안이 되었으니 종명정식하.. 2023. 6. 11. 1876-1945: 계속 표변한 일본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 이렇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1876-1945년까지의 일본의 국력과 실체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도 시종일관 별 차이 없는 제국주의적 수준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러일전쟁 이전의 일본과 이후의 일본의 수준을 달리 보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느 시점 이전에 대해서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부터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 한국사에서 보는 일본은 주구장창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1876년 조선의 개항당시 일본의 국력은 제국주의와는 당연히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당시 수준이 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2023. 6. 11.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필자의 글도 이제 중반을 넘어선다. 여기서 지금까지 쓴 글에 비추어 잠시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보통학교 입학률과 경제성장률로 일제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일제시대 말로 갈수록 더 커지는 고등 교육수준 격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일제시대에 상당수 일본인이 조선땅의 경제활동 상층부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조선의 경제성장률은 조선인의 성장을 반영한다 할 수 있는가? 만약 식민지시대에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면,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조선인의 높은 문맹률은 무엇으로 설명 가능할 것인가? 통계학에는 심슨의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2023. 6. 10. 식민지시대 : 대학령은 왜 중요한가 앞에 글에서 식민지시대 조선과 일본을 결정해 버린 것은 대학령이라 했다. 물론 조선의 교육 문제는 대학수만 적다는 데 있지 않다. 전문학교와 고등학교수도 문제였고 특히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고등학교가 사실상의 대학예과 역할을 하던 시대에 대학이 없으니 고등학교도 당연히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수가 적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1차대전 이후 1920~1930년대는 일본의 기업들이 고도화하는 단계다. 그 전까지도 서구제국의 기업들에 비해 크게 못 미치던 일본 기업들이 이 시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해졌는데 정확히 말하면-. 학력에 따라 승진의 한계가 정해지는 일종의 "기업골품제"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먼저 아래 표를 보자. 1905.. 2023. 6. 10. 조선과 일본- 양자간 차이를 결정해 버린 대학령 식민지시대를 통틀어 딱 하나만 조선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법을 들어보라고 한다면 나는 대학령을 들겠다. 이 대학령에 의하면 제국대학 외에도 다수 대학이 설립되어 고등학력자를 다수 배출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이 대학령에 의해 설립된 대학은 1945년 일본이 망할 때까지 조선땅에는 단 하나도 세워지지 않았다. 유일한 대학 경성제대는 "대학령"이 아니라 "제국대학령"에 따라 세운 학교이기 때문이다. 대학령에 의해 다수의 대학이 만들어진 일본 땅에는 그럼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바로 이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다. 대학령이 발효된 1919년 이후 일본에는 대학 수가 급증했다. 대학령 발효 후 불과 6년 만인 1925년이 되면 5년 전에 비해 대학수와 학생수가 모두 두 배가 불었다. 이로부터 다시 5년 .. 2023. 6. 10. 언덕위의 구름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郎(1923~1996)은의 언덕위의 구름[坂の上の雲]이라는 역사소설이 있다. 국내에도 몇 번 번역되어 나왔다고 아는데, 의외로 이 책이 국내에는 일본 극우들의 일제찬양서 정도로 알려져 있는 듯하다. 글쎄. 보는 사람에 따라 관점은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여기서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 앞머리에 1897년 이전까지의 일본의 교육제도 발전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기술하기 때문이다. 이 책 주인공은 둘이다. 후일 일본육군 장성이 된 아키야마 요시후루秋山好古る(1959~1930)와 해군 제독이 된 그의 동생 아키야마 사네유키秋山真之(1868~1918)다. 이들의 소년시절부터 어떻게 교육받았는지 학교를 어떻게 들어갔는지, 메이지시대 초기 일본 교육제도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었는지 흥미.. 2023. 6. 10. 민립대 설립운동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 현행 교과서에는 1919년 이후 민립대 설립운동은 실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19년 이후 민립대를 조선인들 손으로 세우려 했는데 일본의 방해로 실패했다. 대개 요지는 그것인데. 틀린 논지라고는 할 수 없다. 이 민립대 설립운동의 배경은 필자의 글에서 몇번 지적했지만, 대학령 때문이다. 원래 일본에는 제국대학 이외에는 대학을 둘 수 없었는데 대학령이 발표되면서 사립대학 등의 설립이 허가되어 대학교와 대학생 수가 크게 늘게 되었다. 대학령으로 새로운 대학이 설립되는 것보다 기존의 전문대학이 대학으로 승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대학령에 따라 조선에도 사립대학을 두자-. 그것이 민립대 설립운동이다. 그 내역에 대해서는 필자 글에서 몇 번 쓴 것 같으므로 부연하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의 경우 이 민립.. 2023. 6. 10. 개관 이튿날 문을 닫아버린 계양산성박물관(1) 개관을 기념한 저 표석은 살피니 2020년 5월 28일이라 세운 주체는 당시 인천 계양구청장 박형우. 역대 계양구청장을 살피니 박형우는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당선하고는 그 다음 2014년 선거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그리고 그 다음 2018년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내리 3선 연임에 성공하고는 2022년 명예퇴임했다. 지금 구청장은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윤환. 계양구가 민주당 성향이 더 강한 지역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데, 역대 구청장 내력을 간단히 살핀 까닭은 저 박물관을 밀어부치고, 나아가 그 기반이 된 계양산성 발굴을 추진한 주역이 누구인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볼짝없이 계양산성박물관은 박형우 작품이다. 계양구립 공립박물관으로 출발한 저 박물관 불행.. 2023. 6. 10. '사랑의 불시착'이 실어 나른 곱지 않은 스위스행 관광열차 오버투어리즘 '사랑의 불시착' 촬영 스위스 마을, 관광객에 몸살…통행료 물려 송고시간 2023-06-09 16:10 인구 400명 호수 마을에 팬들 몰리며 교통체증 등 혼잡…7천원 요금 징수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주요 촬영장소 중 하나였던 스위스의 호수 마을이 드라마 팬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AFP통신은 9일(현지시간) '사랑의 불시착'의 촬영 장소였던 인구 400명의 작은 호수 마을 이젤트발트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주민들이 통행료를 받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사랑의 불시착' 촬영 스위스 마을, 관광객에 몸살…통행료 물려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한국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주요 촬영장소 중 하나였던 스위스의 호수 마.. 2023. 6. 10. 춘천 중도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고구려(2015) 2015.06.03 10:16:26 춘천 중도에서 고구려 귀고리 출토(종합) 삼국시대 석곽묘서 발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레고랜드 예정지인 춘천 중도에서 고구려 금귀고리 1점이 발견됐다. 중도 유적 5개 합동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 중 한 곳인 예맥문화재연구원(원장 정연우)은 중도 유적에 대한 2차 조사에서 삼국 시대 소형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를 확인하고, 이에서 금제 굵은고리 귀고리(金製太環耳飾) 1점을 수습했다고 3일 밝혔다. 이 무덤은 주축 방향을 북동-남서쪽으로 두었다. 마와 같은 땅을 깊이 가는 작물 재배 영향으로 덮개돌과 상단 벽석 일부가 교란돼 제위치를 잃었지만 시신과 부장품을 넣는 공간인 묘광(墓壙)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다. 조사 결과 묘광은 길이 320㎝, 너비 260.. 2023. 6. 10. 춘천 중도가 출토한 고구려 금귀고리? 춘천 중도 출토 이른바 고구려계 금귀걸이와 같은 양상을 보이는 유물들이다. 보다시피 이상하리만치 이른바 고구려 무덤에는 한짝씩만 나온다. 그에 견주어 신라무덤인 황남대총에서는 쌍이다. 문제의 귀걸이가 출토된 곳은 사진에서 보는 석곽묘 바닥 비닐봉다리로 표시한 곳이다. 저 곳을 귀걸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본다. 모르겠다. 귀걸이라면 고구려 여인들은 성인은 쌍으로 걸고, 미성년은 외짝을 걸었는지도. (2015. 6. 10) *** related article *** 중도 출토 귀걸이는 귀걸이? 목걸이 펜던트? 중도 출토 귀걸이는 귀걸이? 목걸이 펜던트? 춘천 중도 유적 석곽묘 출토 귀걸이. 이른바 고구려 귀걸이라 해서 화제인 바, 이런 소위 고구려 귀걸이는 한결같이 한짝만 출토한다. 나는 귀걸이를 의심한다... 2023. 6. 10. 이전 1 ··· 455 456 457 458 459 460 461 ··· 999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