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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진 선생과 화랑세기 향가, 그리고 나 그제 향가연구로 저명한 김완진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향년 91세로 타계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 소식은 이 글 맨 뒤에 첨부하는 우리 공장 부고 기사를 참조하셨으면 하고 그의 타계 소식에 즈음해 나랑은 어쩌면 밀접한 대척점에 선 화랑세기 문제가 있어 이 문제를 이참에 다시금 짚어보고자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1989년과 1995년에 각각 두 종류가 공개된 화랑세기 필사본 가짜론자다. 더 간단히 말해 그 화랑세기 필사본은 후대 누군가가, 아마도 그것을 필사한 남당 박창화라는 사람이 신라 사람 김대문金大問이 쓴 그 화랑세기로 팔아서 가짜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쪽에 선다. 아다시피 이 화랑세기 문제에서는 나는 격렬한 진본론에 섰으며,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수백가지 이야기는 한때 목이.. 2023. 8. 21.
곤충 미쳐 다니는 아들놈을 보면서 저 곤충 덕후가 잠깐하다 말 줄 알았다. 한데 증세가 더욱 심해져 이젠 어찌할 수가 없다. 그만 하라 말린 적은 없다. 군대까지 갔다와서 예비군에 편입된 놈이 어찌하다 아주 용케도(실은 지 엄마 덕분이다만) 대학 학과도 무슨 곤충학 관련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점점 더 증세가 심해져서는 새벽마다 메뚜기니 뭐니 하며 찾아서 중랑천으로 기어가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와서는 그 채집한 곤충이 뭐가 그리 좋은 지 애비 서재로 와서는 이게 뭐다 이게 짝짓기하는 거다 알 낳는 거다 블라블라하면서는 내가 그래? 하고 영혼없는 대답을 하면 이건 찍어서 유튜브 안 올리냐 한다. 그래 가끔씩 유튜브에 오르는 그런 영상들은 압력에 굴한 것이라 말해둔다. 어제는 양평곤충박물관이라는 데를 데리고 갔다. 이 놈은 현장 체질이라 박물.. 2023. 8. 21.
도봉서원 영국사 유물이 남긴 것들 2014년 오늘(8. 21) 문화재청이 국립고궁박물관서 도봉서원터 발굴조사 과정에서 쏟아진 영국사 관련 유무들을 국립고궁박물관서 공개했다. 지금은 터만 남은 조광조 배향 도봉서원은 본래 영국사라는 고려시대 이래 불교사찰이 있던 자리라 율곡 시대에 그 자리에다가 도봉서원을 짓게 된다. 서원을 지을 적에 저 청동기물이 있는줄을 몰랐다. 알았으면 저 돈덩이를 가만둘 리 없기 때문이다. 이게 다 돈이다. 조선시대 청동은 희귀해서 금덩이였다. 실제 숙수사라는 절 자리에다 소수서원을 지으면서 주세붕은 저런 청동기물을 발견하고선 이게 웬 떡이나 해서 서울 가서 싹 팔아서 서적 샀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이 발굴하다 찾았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뒷말이 있었다. 이것도 느닷없이 막판에 발견되는 바람에 뒤늦게 언론에 공.. 2023. 8. 21.
막말幕末 어느 번藩의 갈등 (1) 도사번土佐藩의 경우 막말 일본은 갈등의 시대였다. 흔히 막부와 반막부, 천황과 쇼군의 대립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시대 갈등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고-. 특히 하나의 번 안에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갈등이 빚어진 곳이 많았다. 이러한 갈등을 그대로 안은 상태에서 보신전쟁[무진전쟁 戊辰戦争]이 터졌기 때문에 이 전쟁 와중에 개인이 보인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일본열도 시코쿠四国 섬에는 도사번土佐藩이 있었다. 이 번만큼 메이지유신의 와중에 갈등의 심각했던 데는 없다. 대개 한 번이 막부, 반막부의 길을 통일해 적어도 그 번안에서는 혼란이 심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던 반면 이 번은 위로는 번주藩主(영주)에서 아래로는 말단 사무라이에 이르기까지 생각이 죄다 달라 격렬한 갈등이 있었다. 아래 그림은 막말 도사번의 신분구조 및 각 인.. 2023. 8. 20.
분노와 절박, 주저앉음에의 저항 투자, 특히 그 대상이 사물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일 때도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윈윈이다. 나도 그를 통해 내가 없는 그 무엇을 얻고 그 또한 나를 통해 그가 없는 그 무엇을 얻어야 한다. 이것이 합작이 성공하는 절대 관건이다. 물론 많은 경우 저 관계는 여러 이유로 이내 흐지부지하거나 심지어 원수로 돌변해서 파탄나고야 만다. 내가 뭐 거창하게 사람을 투자한 적 있던가 자문하곤 하는데 안 해본 건 아니라고 하고 싶다. 이건 일전에 한 말인데 개중 그런 대로 잘 풀리는 사례가 없지는 않으니 이 경우 거의 예외없이 나중에 잘 되서서는 지가 잘 나서 그리된 줄 알더라. 물론 이건 내 기준이고 내가 투자한다 생각한 저쪽에선 얼마든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안다. 내가 무에 거창한 인재 투자를 하겠는가.. 2023. 8. 20.
박보균 문체부 장관 시대는 10년 전 오늘 문화재청이 판을 딱 깔아줬다 솔직해지자. 첫째 이른바 전문성이라는 측면에서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보균은 빵점짜리다. 문화 쪽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다시피 했고 실제 그의 이쪽 안목은 꽝이었다. 그는 주구장창 정치부 기자였고 온통 정치 얘기만 썼다. 물론 현재의 문체부 소관 업무 중에 미디어, 특히 신문 관련 업무가 있어 아주 인연 혹은 전문성이 없다고는 할 수는 없다. 둘째 그의 유일한 문화 쪽 내세울 만한 족적이 딱 하나인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서 막상 그를 문체부 장관에 내정하면서 못내 문화 전문성이 걸려 그 딱 하나만 내세울 수밖에 없었으니 그 딱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셋째 이 딱 하나로 판을 깔아준 데가 다름 아닌 문화재청인데, 막상 문체부 장관 재직 시절 내내 박보균은 그런 문화재청을 시종일관 깔아뭉갰으니, 대통령실이.. 2023. 8. 20.
도와즈가타리, 천황 형제랑 쓰리썸까지 한 가마쿠라 천황가 어느 후궁의 자서전 "또 상황上皇의 소매 향기가 내 소매에 남아있고 거기에 보태어 아리아케노쓰키(땡중-인용자주)의 소매 향기가 다시 겹쳐지는 슬픔을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방법도 없다." (고후카쿠사인 니조 後深草院二条 지음, 김선화 옮김 《도와즈가타리》(학고방, 2014) 151쪽) 편의상 땡중이라 했지만, 저 땡중은 실은 문제의 상황한테는 어릴 적 친구라, 저 후궁을 그 땡중한테 가라 등 떠밀은 이가 다름 아닌 상황이다. 이 땡중과의 사이에서 후궁은 자식을 둔다. 퇴직 천황의 후궁으로서 다른 뭇 남자를 헤엄치다 한편으론 그런 행각이 들키까 두려우면서도 미안해하다 마침내 들켰으니, 그런 후궁한테 퇴물 천황은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잠자리를 네 엄마한테 배웠느니라. 너가 뱃속에 있을 때도 나는 참지 못했느니라. 그래서 너가.. 2023. 8. 20.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곤충학자 신유항 선생의 뒤늦은 타계 소식 2023년 5월 8일, 양평곤충박물관 명예관장 신유항 선생이 타계했다. 향년 94세. 곤충학 개척자이자 저 박물관 탄생의 원훈대신이라는 행적을 보아 그의 업적을 되새기는 부고 기사가 있어야 함에도 그 어디에서도 그 소식이 발견되지 않아 그제 이강웅 양평군청 문화유산팀장한테 지난 5월 돌아가셌다는 말을 접하고 그 정확한 사망일자는 곤충 덕후인 아들놈 대동하고 오늘 이 박물관 들린 김에 그 창구에 물어 확인하고 탑재한다. 이 박물관엔 그의 기본 정보를 정리한 코너가 있으니 다만 경황이 없어서인지 타계를 적지 아니했다. 앞과 같은 간단한 약력이 있다. 이 코너가 선생을 위한 헌사 섹션이며 그의 수집자료 기증서약서와 서약식 사진이 있으며 그가 저술 혹은 번역한 책과 채집도구 그리고 일부 표본이 전시 중이거니와 .. 2023. 8. 20.
성공 확률이 높은 고고학 상품 어제 문화재업계 친구랑 잠깐 나눈 대화 일부다. 그와 내가 전적으로 합치한 부분이 있는 까닭이다. 나는 매양 한국고고학은 상품이라는 관점에서 강조하거니와, 그럼에도 그 무한한 잠재력에 견주어 그 상품을 제대로 만들지도 못하고, 제대로 팔아먹지도 못한다 분통을 터뜨리거니와 예서 시장은 주로 해외를 말한다. 물론 국내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과연 이 상품을 제대로 만들어 제대로 팔아먹는가? 전연 아니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그러면서 나는 매양 고고학으로 밥 빌어먹고 산다는 자들을 성토한다. 매일매일 시일야방성대곡을 쓴다. 그런 일을 해야 할 넘들이 어찌하면 이걸 상품으로 만들어 어찌하면 세계시장에 팔아먹을 생각은 않고, 매양 문화재청 쳐들어가, 혹은 문화재청 직원들 만나 고고학회 지원하라, 대.. 2023. 8. 20.
관람객을 붙잡는 1481년 한양 채색작화 서울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 코너는 조선시대로 시작한다. 고려시대 남경 코너가 없는 점이 몹시도 아쉽지만 조선 건국 과정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간다. 그 이전 시대, 그러니깐 통일신라 삼국시대와 그 이전은 같은 서울시 공립박물관인 올림픽공원 안 한성백제박물관 몫이라 혹 이런 대목이 궁금하다면 그쪽으로 가야 한다. 그 조선실 코너 맨앞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이 채색판화는 관람객 반응이 재미있어 이쪽에 머물며 그 반응을 지켜 보는 일도 쏠쏠한 재미를 주는데 간단히 말해 다들 탄성을 지른다. 따라서 서울역사박물관 최고 걸작 전시품은 바로 이거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강렬한 색채로, 어쩌면 청록산수 기법을 원용해서 조선전기 한양을 판화 방식으로, 그것도 제법 큰 규모로 구상화하려 했으며 그것.. 2023. 8. 20.
징비록懲毖錄, 통절한 반성을 표방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회개는 없는 희유한 책 "백성들이 떠돌고 정치가 어지러워진 때를 만나 나처럼 못난 사람이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기를 바로잡지 못하고 무너짐을 떠받치지 못했으니 그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로대 그럼에도 외려 시골에 눈끄고 살면서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 어찌 나라의 관대한 은혜가 아니겠는가? 근심과 두려움이 조금 진정되어 지난 일을 생각할 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으니 이에 한가한 때에 임진년에서 무술년(1598)에 이르는 사이에 보고 들은 일을 대강 적어 모으니....어리석은 신하가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려 했지만 공을 세우지 못한 죄를 드러내고자 했다." 류성룡柳成龍(1542~1607)은 징비록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으니, 이를 보면 자신의 지난날 잘못이 많았음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점철한 책인 듯하다.. 2023. 8. 19.
요즘의 고민 2: 어떤 도록을 만들어야 할까 ‘전시가 끝나더라도 도록은 남는다.’라는 말을 일하면서 몇 번이나 들었다. 이 말 그대로, 학예사에게 도록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요즘은 전시가 끝나도 VR로 전시를 볼 수 있지만 모든 전시가 VR로 기록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전시 이후에도 그 전시가 궁금하다면 도록을 펼쳐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록은 남는다.’는 말은 말 그대로 전시의 전반적인 것을 전시가 끝나도 도록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게 때문인지, 전시만큼 도록에 신경을 많이 쓰는 학예사들도 있다. 다양한 도록들 도록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유물의 사진을 위주로 싣는 도록이 있는가 하면, 각종 도표와 설명글이 들어간 도록 등등. 그래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유물의 사진이 크게 실리고, 뒷면에 전문가의 글이 실리는 것이다... 2023. 8. 19.
계획도시 한양 Hanyang as Planned City 계획도시 한양 한양은 1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할 수 있도록 건설된 계획도시였습니다. 왕실과 전혀 연고가 없는 수도였던 한양은 처음부터 모든 기반 시설을 계획하여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때 고려한 것이 유교적 전통과 풍수지리였습니다. 유교적 전통에서 도읍을 건설할 때 중시된 것은 왕이 거주하는 궁궐, 종묘·사직과 같은 제사 시설, 관청 그리고 백성들이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입니다. 유교 경전인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는 ‘좌조우사左祖右社 면조후시面朝後市’라는 중국 고대의 도읍 건설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양의 도시공간은 『주례』의 원칙과 함께 고려시대에 유행했던 풍수지리 사상이 함께 적용되어 건설되었습니다. 경복궁은 국도풍수國都風水에서 한양 명당의 지맥이 흐르는 백악산 아래에 건설되었고, 종묘와 사.. 2023. 8. 19.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Establishing Joseon Capital  조선시대의 서울, 500년 왕도를 세우다 “이제 이 땅의 형세를 보니 왕도를 삼을 만하다. 더욱이 조운漕運이 통하고 전국에서 거리도 균등하니 사람들이 사는 일에도 편리한 바가 있으리라.” 1394년(태조 3) 8월, 태조가 한양을 왕도로 삼고 한 말입니다. 이내 종묘·사직과 궁궐이 들어서니 비로소 임금의 교화敎化와 정령政令이 나가며, 왕도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조선의 서울 한양으로 전국의 물산이 모여들었다 다시 흩어지고, 육로를 따라 갖가지 물품을 실은 말과 수레, 물길을 따라서는 배들이 모여들면서 한양은 조선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중국·일본·만주·유구에서 오는 사신들을 맞이하고, 또 그곳으로 사신들을 보내는 곳 역시 한양이었습니다. 외국의 물품이 한양으로 들어왔고, 조선의 물품이 한양에.. 2023. 8. 19.
한양의 조선시대 판문板門 Plank Door from Joseon period 한양의 판문 조선시대 주택가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서울 종로 청진지구 발굴조사는 조선의 폼페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유물이 잘 남아 있었죠. 운종가 시전 뒤편 주택가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을 통해 당시 한양 사람들의 실생활 모습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판문板門도 청진동 도심 재개발부지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판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0년 넘게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이 판문은 발굴 당시 앞면이 심하게 불탄 채 집 안쪽으로 넘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마도 16세기 어느 날 청진동 주택가에서 전란이나 사고로 큰 화재가 일어나 불에 탄 것으로 보입니다. 두 개의 두꺼운 소나무 판을 잇대어 만든 이 판문은 대문 옆에 나란히 세운 보조문으로.. 2023. 8. 19.
볼모 신세 청와대 불상은 울분한다 환지본처가 그리 중요하다면 이 부처님도 당연히 본래 있던 경주로 가야지 않는가? 함에도 그냥 저 자리 볼모로 있으라 한다. 누가? 대한불교계종이 그러라 부처님한테 명령한다. 그람서 지들은 열암곡 자빠진 불상 바로 세우라 난리블루스를 추어댄다. 이게 불교니? 이게 승려니? 사진들은 모두 오세윤 작가 촬영이다. 2023. 8. 19.
농민과 아시가루足輕 출신의 신센구미新選組 막말 쿄토를 피로 물들인 신센구미新選組(しんせんぐみ)라는 집단이 있다. 이 집단은 원래 막부가 막말 쿄토의 반막부 세력을 제압하고자 후원한 청부경찰조직 같은 것이었는데 20세기 후반들어 다수 소설가와 만화가가 이야기에 자꾸 살을 붙여 지금은 거의 사상 최강의 사무라이 집단, 사무라이 정신을 구현한 무사단 정도의 평가까지 받고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젊은층에 인기있는 애니 등에도 다수 이들 이야기가 다루어지고 있어 그 인기는 당분간 더 지속될 모양이다. 신센구미는 총인원 200여명 정도로 군대식 조직이 되어 있었는데 이 신센구미에서도 특히 유명한 인물은 다음 정도이다. 곤도 이사미 近藤勇 (こんどう いさみ, 1834~1868) 사이토 하지메 斎藤一 (1844~1915) 히지카타 토시조 土方歳三 (1835~.. 2023. 8. 19.
열암곡 불상 환지본처還至本處를 주장하는 조계종의 기이한 모습 대한불교조계종의 자빠진 불상 경주 남산 열암곡 불상 세우기 공작이 나날이 가속화하는 중이라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양태만 보면 그네들 작금 최대 현안은 이것이 아닌가 착각케 한다. 이 움직임 실로 묘해서 시급성도 없고 절박성도 없다는 점이 더 기이하거니와 그럼에도 왜 조계종이 열암곡 블루스를 추어대는가 하면 성동격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요지로 내가 여러번 발언했거니와 정치맛을 제대로 본 조계종은 거의 본능으로 저런 걸 두들겨야 다른 데서 불교계를 향한 지원이 나온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솔까 열암곡 불상이 조계종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저 불상은 조계종과는 직접 인연도 없어 저 불상 들어서던 무렵 이땅엔 조계종도 없었다. 아무튼 저 불상 제자리 세우라는 요구는 순수 액면대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그네.. 2023. 8. 19.
손재형이 신혼부부한테 써 준 붓글씨 1.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3년 3월, 황씨 성의 남자와 이씨 성의 여자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소전素荃 손재형(孫在馨, 1903-1981)이 붓을 들었다. 묵직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붓을 움직인 그는, 대담히 획을 생략하고 굳건히 틀을 짜 여덟 글자를 종이 위에 이루었다. 하늘과 땅이 짝지어 합했으니 天地配合 길이 아름다운 복을 받으리라 長受嘉福 그리고 부부의 이름을 넣어 낙관落款을 쓰고 도서圖署를 찍었다. 검고 흰 작품 위에 붉은 기운이 내리니 밋밋할 수 있는 글씨에 생기가 더욱 감돈다. 2.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주는 것을 쌍낙관雙落款이라 한다. 작품을 받은 이에게는 평생의 자랑이고 기념이 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때문에 같은 작가가 똑같은 수준.. 2023. 8. 19.
100년 동안 유전流傳한 조선고서간행회 발간 도서 100년도 더 전인 1913년(대정 2) 조선고서간행회에서 5집으로 간행한 3의 冊生流傳 1. 아마도 경성에서 발간된 직후에 기차나 소달구지에 실려 전라남도 도청에 들어갔다-장서인이 대출태그에 덮여버렸지만 全羅南道之印이나 全羅南道廳印인듯 2. 도청 도서실에서 해방과 6.25 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을 겪었다가 광주시립도서관으로 이관됨-1962년 9월 2일자로 3. 광주시립도서관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고 다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으로 이관됨-모르긴몰라도 시립도서관에서는 폐기도서를 처리해야했고, 독립운동기념관에서는 자료를 모아야 했을테니 일석이조의 효과였을듯 4. 그러다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도 어느 순간 방출되어 오게 된 곳이 서울의 모 헌책방-비닐끈에 묶이고 트럭에 실려 이루.. 2023. 8. 19.
일본의 세족공경은 전부 바보라던 메이지유신 주역들 일본의 에도시대는 사농공상의 신분이 철저하였고 이에 따른 직역이 대대로 유지되었다.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는 막부나 번에 의해 고용된 봉급생활자나 다름없었다. 지금과 차이가 있다면 그 봉급이 잘못이 없는 한 평생 주어지고 대를 이어 승계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일본 근대화의 기점이 된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은 이 사농공상 중에서 사, 그러니까 사무라이 계급이 주동이 되었다. 하지만 사무라이 계급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위로는 막부관리부터 아래로는 지방 각 번 말단 하급 무사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었다. 에도시대 후기로 올수록 사무라이계급은 점점 녹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상황으로 몰렸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하급무사 생활은 비참할 정도로서 녹봉만으로 생활이 안 되어 각종 부업을 하거나 심지어는 농민 수준.. 2023.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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