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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지왕(銍知王) 금관가야 제8대 왕이며, 재위기간은 451~492년. 일명 김질왕(金銍王). 취희왕(吹希王)과 인덕(仁德) 사이에서 태어났다. 왕비는 사간(沙干) 김상(金相) 딸인 방원(邦媛)이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8대 질지왕(銍知王)은 김질(金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취희(吹希)이며 어머니는 인덕(仁德)이다. 신묘년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9대 겸지왕(鉗知王)은 아버지가 질지왕(銍知王)이며 어머니는 방원(邦媛)이다. 임신년에 즉위해 29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금관성(金官城)의 파사석탑(婆娑石塔) : 수로왕(首露王)이 황후(皇后)를 맞아서 같이 150여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해동(海東)에는 아직 절을 세우고 불법(佛法)을 신.. 2018. 3. 16.
인덕(仁德) 금관가야 제7대 취희왕 비로서, 각간 진사(進思)의 딸이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8대 질지왕(銍知王)은 김질(金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취희(吹希)이며 어머니는 인덕(仁德)이다. 신묘년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취희왕(吹希王). 질가(叱嘉)라고도 함. 김씨(金氏). 영초(永初) 2년에 즉위. 치세는 31년 동안, 원가(元嘉) 28년 신묘(辛卯; 451) 2월 3일에 죽음. 왕비는 진사(進思) 각간(角干)의 딸 인덕(仁德). 왕자(王子)를 낳음. 2018. 3. 16.
질가왕(叱嘉王) 금관가야 제7대 임금 취희의 다른 이름.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취희왕(吹希王). 질가(叱嘉)라고도 함. 김씨(金氏). 영초(永初) 2년에 즉위. 치세는 31년 동안, 원가(元嘉) 28년 신묘(辛卯; 451) 2월 3일에 죽음. 왕비는 진사(進思) 각간(角干)의 딸 인덕(仁德). 왕자(王子)를 낳음.☞취희왕(吹希王) 2018. 3. 16.
취희王(吹希王) 금관가야 제7대 임금. 좌지왕과 복수 사이에서 났다. 질지왕 아버지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7대 취희왕(吹希王)은 김희(金喜)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좌지왕(坐知王)이며 어머니는 복수(福壽)다. 신유년에 즉위해 30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8대 질지왕(銍知王)은 김질(金銍)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취희(吹希)이며 어머니는 인덕(仁德)이다. 신묘년에 즉위해 38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좌지왕(坐知王). 김질(金叱)이라고도 함. 의희(義熙) 3년(407)에 즉위. 용녀(傭女)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의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니 국내가 시끄러웠다. 계림(鷄林)이 꾀를 써서 치려하니 박원도(朴元道)라는 신하가 간했다. “유초(遺草)를 보고 또 보아도 역시 털.. 2018. 3. 16.
복수(福壽) 금관가야 제6대 좌지왕 부인으로 제7대 취희왕 어머니다. 아버지는 도녕(道寧) 대아간(大阿干)이니, 금관가야인인지 신라인인지 확실치 않다. 삼국유사 권제1 왕력 : 제7대 취희왕(吹希王)은 김희(金喜)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좌지왕(坐知王)이며 어머니는 복수(福壽)다. 신유년에 즉위해 30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좌지왕(坐知王). 김질(金叱)이라고도 함. 의희(義熙) 3년(407)에 즉위. 용녀(傭女)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의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니 국내가 시끄러웠다. 계림(鷄林)이 꾀를 써서 치려하니 박원도(朴元道)라는 신하가 간했다. “유초(遺草)를 보고 또 보아도 역시 털이 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하늘이 망하고 땅이 꺼지면 사람이 어느 곳에서 .. 2018. 3. 16.
박원도(朴元道) 금관가야 제6대 좌지왕 때 신하로, 변변찮은 여자를 부인으로 맞고, 그 측근들을 대거 기용함으로써 정치를 어지럽힌 왕에게 간하여 바로잡게 했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좌지왕(坐知王). 김질(金叱)이라고도 함. 의희(義熙) 3년(407)에 즉위. 용녀(傭女)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의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니 국내가 시끄러웠다. 계림(鷄林)이 꾀를 써서 치려하니 박원도(朴元道)라는 신하가 간했다. “유초(遺草)를 보고 또 보아도 역시 털이 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하늘이 망하고 땅이 꺼지면 사람이 어느 곳에서 보전하오리까. 또 점쟁이가 점을 쳐서 해괘(解卦)를 얻었는데 그 괘사(卦辭)에 ‘소인(小人)을 없애면 군자(君子)가 와서 도울 것이다’고 했으니 왕께선 역(易).. 2018. 3. 16.
김질(金叱) 금관가야 6대 임금 좌지왕(坐知王)를 지칭하는 이칭 중 하나. 김토왕(金吐王)이라고도 한다. 金은 김수로에게서 비롯하는 금관가야 왕가 성씨로 판단된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좌지왕(坐知王). 김질(金叱)이라고도 함. 의희(義熙) 3년(407)에 즉위. 용녀(傭女)에게 장가들어 그 여자의 무리를 관리로 등용하니 국내가 시끄러웠다. 계림(鷄林)이 꾀를 써서 치려하니 박원도(朴元道)라는 신하가 간했다. “유초(遺草)를 보고 또 보아도 역시 털이 나는 법인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하늘이 망하고 땅이 꺼지면 사람이 어느 곳에서 보전하오리까. 또 점쟁이가 점을 쳐서 해괘(解卦)를 얻었는데 그 괘사(卦辭)에 ‘소인(小人)을 없애면 군자(君子)가 와서 도울 것이다’고 했으니 왕께선 .. 2018. 3. 16.
좌지왕(坐知王) 금관가야 6대 임금으로 재위기간은 407~421년. 김토왕(金吐王) 또는 김질(金叱)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이시품왕(伊尸品王)이고 어머니는 정신(貞信)이며, 도녕(道寧) 대아간(大阿干) 딸 복수(福壽)를 부인으로 맞아 7대 임금 취희(吹希)를 낳았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6대 좌지왕(坐知王)은 김토왕(金吐王)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이품(伊品)이며 어머니는 정신(貞信)이다. 정미년에 즉위해 14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7대 취희왕(吹希王)은 김희(金喜)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좌지왕(坐知王)이며 어머니는 복수(福壽)다. 신유년에 즉위해 30년을 다스렸다.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이시품왕(伊尸品王). 김씨(金氏). 영화(永和) 2년에 즉위. 치세는 62년, 의.. 2018. 3. 16.
정신(貞信) 금관가야 중기 사농경을 역임한 극충(克忠)의 딸로, 제5대 이시품왕(346∼407) 부인이 되어 좌지왕을 낳았다. 삼국유사 권 제1 왕력 : 제6대 좌지왕(坐知王)은 김토왕(金吐王)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이품(伊品)이며 어머니는 정신(貞信)이다. 정미년에 즉위해 14년을 다스렸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이시품왕(伊尸品王). 김씨(金氏). 영화(永和) 2년에 즉위. 치세는 62년, 의희(義熙) 3년 정미(丁未; 407) 4월10일에 죽음. 왕비는 사농경(司農卿) 극충(克忠)의 딸 정신(貞信)으로, 왕자 좌지(坐知)를 낳음. 2018. 3. 16.
극충(克忠) 금관가야 중기 사농경을 역임한 인물로, 그의 딸 정신(貞信)이 5대 임금 이시품왕(346∼407) 부인이 되어 좌지왕을 낳았다. 삼국유사 제2권 기이2 가락국기(駕洛國記) : 이시품왕(伊尸品王). 김씨(金氏). 영화(永和) 2년에 즉위. 치세는 62년, 의희(義熙) 3년 정미(丁未; 407) 4월10일에 죽음. 왕비는 사농경(司農卿) 극충(克忠)의 딸 정신(貞信)으로, 왕자 좌지(坐知)를 낳음. 2018. 3. 16.
겸지왕(鉗知王) 금관가야 9대 왕. 질지왕과 방원 사이에 났다. 재위 492∼521년. 화랑세기 15세 유신공(庾信公) : 아버지는 서현 각간이고 할아버지는 무력 각간이고 증조는 구충대왕이며 고조는 겸지대왕(鉗知大王)이다. 겸지는 다섯 형제가 있었는데 모두 우리나라[신라] 골품(骨品) 있는 여자를 아내로 맞아 우리나라 조정에 복종하며 따랐다. 겸지왕 원년(492), 왕의 조카 납수공(納水公)이 우리 덕지공(德知公)의 딸 계황(桂凰)을 아내로 맞았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왕 또한 우리나라 여자를 원했지만 왕의 어머니 방원(邦媛)이 허락하지 않았다. 처음에 왕의 아버지 질지대왕(銍知大王)이 영명하여 선정을 베푸니 금관(金官)이 잘 다스려졌다. 질지는 백흔공(白欣公)의 손아래 누이인 통리(通里)를 왕후로 삼으니 곧 미해공(美海.. 2018. 3. 16.
강수(强首) 신라 중기 때 명문장가. 중원경 사량 사람으로, 나머 석체 아들이다. 선조는 임나가야다. 머리가 툭 튀어나와 소대가리 같다 해서 저리 이름 지었다. 태종무열왕 때 당에서 보낸 외교문서를 해독하고, 문무왕 때는 당나라 옥에 갇힌 문무왕 동생 김인문 석방을 청원하는 표문을 지었다. 사찬으로 승진해 해마다 조 200섬을 받았다. 삼국사기 권 제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 : 13년(673) 봄 정월에...강수(强首)를 사찬으로 삼고 해마다 조[租] 200섬을 주었다.삼국유사 권제2 기이(紀異)2 문호왕(文虎王) 법민(法敏) : 신라 왕은 문준이 말을 잘해서 황제도 그를 용서해 줄 뜻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강수(强首) 선생에게 명하여 인문의 석방을 청하는 표문(表文)을 지어 사인(舍人) 원우(遠禹)를.. 2018. 3. 16.
석체(昔諦) 생몰년 미상. 신라의 유명한 문장가인 강수 아버지로 관위는 나마에 이르렀다. 강수가 주로 태종무열왕·문무왕·신문왕 때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된 활동 연대는 태종무열왕 이전일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강수(强首)은 중원경 사량인(沙梁人)이다. 아버지는 나마 석체(昔諦)이다. 그 어머니가 꿈에 뿔 달린 사람을 보고 임신해 낳았더니 머리 뒤편에 뼈가 불쑥 나와 있었다. 석체가 아이를 데리고 당시 어질다는 사람을 찾아가 묻기를 “이 아이 머리뼈가 이런데 어떻습니까”라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듣건대 복희(伏羲)는 호랑이 모습이고, 여와(女)는 몸뚱아리가 뱀이며, 신농(神農)은 머리가 소와 같고, 고요(皐陶)는 입은 말과 같았으니 성현은 다 같은 유(類)로서 그 .. 2018. 3. 16.
제문(帝文) 신라시대 문장가로, 진평왕 시대 중국에 조빙사로 파견된 행적이 확인된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평왕 : 22년(600) 고승 원광이 조빙사(朝聘使) 나마 제문(諸文)과 대사 횡천(橫川)을 따라 돌아왔다.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고 했으나 제문 이하는 행적이 전하지 않아 전기를 세울 수가 없다. 2018. 3. 16.
수진(守眞) 신라시대 문장가로 자세한 행적과 활동시기는 알기 힘들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고 했으나 제문 이하는 행적이 전하지 않아 전기를 세울 수가 없다. 2018. 3. 16.
량도(良圖) ☞김량도(金良圖) 2018. 3. 16.
풍훈(風訓) 신라에 의한 일통삼한기 무렵 문장가로서, 김진주 아들이면서 중국에서 숙위 학생으로 있으면서, 설인귀 예하 부대에 소속되어 신라군에 대항했다는 행적만 전한다. 삼국사기 권제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 : 15년(675)...가을 9월에 설인귀가 숙위 학생 풍훈(風訓)의 아버지 김진주(金眞珠)가 본국에서 처형당한 일을 기화로 풍훈을 이끌어 향도(鄕導)로 삼아 천성(泉城)으로 쳐들어 왔다. 우리 장군 문훈(文訓) 등이 맞아 싸워 이겨 1천4백 명을 목 베고 병선 40척을 빼앗았고, 설인귀가 포위를 풀고 도망가자 전마(戰馬) 1천 필을 얻었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 2018. 3. 16.
골답(骨沓) 활동시기와 활동내역을 알 수 없는 신라시대 문장가. 같이 거론된 인물들로 보아 삼한일통기 무렵일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강수 열전 : 신라 고기(古記)에 “문장으로는 강수, 제문(帝文), 수진(守眞), 양도(良圖), 풍훈(風訓), 골답(骨沓)이 유명하다”고 했으나 제문 이하는 행적이 전하지 않아 전기를 세울 수가 없다. 2018. 3. 16.
교시요 계시인 상식과 통설 상식 혹은 통설, 이는 항용 열어놓아야 한다.어디를 향해? 의심을 향해 이를 나는 겸손이라 부른다. 상식 혹은 통설이 빗장을 건 상태. 이건 교시요 계시다. 전복해야 한다. 빗장은 부수어야 한다. (2014. 3. 16) 2018. 3. 16.
김유신金庾信 595~673년. 신라 장군이자 정치가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삼한을 일통한 제1의 원훈공신이다. 화랑세기에서는 그를 '신국의 영웅[神國之英雄]'이라 했다. 금관가야 왕가 직계 후손이자 부계와 모계 모두 신라 왕가 혈통을 이어받았다. 시조가 김수로, 증조가 금관가야를 들어 항복한 구형왕, 조부가 김무력, 아버지가 김서현이요, 어머니는 숙흘종과 만호 태후 사이에서 난 만명부인이다. 아버지 부임지인 만노군(지금의 진천)에서 태어나 15살에 화랑이 되고 18세에 풍월주가 되어 출세 발판을 마련했다. 37세 때인 진평왕 61년(629) 고구려와의 낭비성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어 이름을 날렸으며, 이후 종횡무진 전장을 누빈다. 선덕여왕 재위 말년에 일어난 비담의 난을 진압하면서 권력 최정점에 섰으.. 2018. 3. 15.
구근(仇近) 생몰년 미상. 신라의 일통삼한 전쟁기에 김유신을 호종한 군인. 백제 멸망 뒤인 661년, 고구려 정벌에 나선 당군을 지원하고자 군량미 수송에 나선 김유신을 호종하다가 신라군이 위험에 빠지자 렬기와 더불어 특공대를 조직해 평양성으로 들어가 당군과 접선했다. 김유신 사후에는 김유신 아들인 김원정 휘하에서 서원경에 속한 술성이라는 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기도 했다. 삼국사기 권 제47 (열전 제7) 구근 열전 : 구근(仇近)은 원정(元貞)공을 따라 서원경(西原京)[현재의 충북 청주시]의 술성(述城)을 쌓았는데, 원정공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일을 게을리 한다 하여 곤장을 때렸다. 구근이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열기와 더불어 죽음을 헤아릴 수 없는 곳에 들어가 대각간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았고 대각간은 나를 무.. 2018.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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