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22835 350년 된 볼리비아 '잉카' 미라 두상, 알고보니 현지 원주민 볼리비아에서 발견된 미라 두상은 오랫동안 잉카인의 것으로 여겨졌지만,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다른 역사를 지닌 것으로 밝혀졌다. 100여 년 전 볼리비아에서 발견된 이 특이한 미라 두상이 겉보기와는 다르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원래 잉카인의 유해로 간주된 이 미라 두상은 실제로는 다른 문화권 출신의 사람의 것으로, 의식 일환으로 두개골에 상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이 해당 인물을 고고학적 맥락에서 파악하고 "그들의 지역 역사를 되살리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이 유해는 단순히 인류학 소장품에 있는 뼈가 아닙니다." 스위스 로잔에 있는 주립 고고학 및 역사 박물관 박물관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클레어 브리종Claire Brizon은 이렇게 말했다. "이 유해.. 2025. 9. 14. "누군가는 그럽디다, 만리장성이라고" 북악산의 유홍준 유홍준 씨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니 노무현 정부 때 일화다. (지금 찾아보니 2006년 일이라 나온다.) 당시 청와대 주변을 시민 국민 품으로 돌려준다는 풍조가 만연한 때라, 이 흐름을 본격화한 이는 실은 김영삼이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YS가 대통령 취임 직후 취한 일련하는 개방 움직임은 지금은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 하나하나 뜯어보면 혁명을 방불했으니 청와대 앞길을 개방한 이는 그였다. 그런 흐름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계속됐으니 그가 취한 저 흐름 연장성에 위치하는 조치가 북악 일대 개방이었다. 그를 뒤이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가 개방 움직임이 있었으니 암튼 노무현 정부 시절 그 화룡점정은 북악 일대 한양도성 일대 구간 개방이었다. 이 개방을 유홍준은 그 자신이 주도한 업적처럼 선전했으나 실.. 2025. 9. 14. 같은 5년인데 왜 입학률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 일제시대 20년대 중반이 넘어가면 조선에도 제국대학이 만들어지고 전문학교들이 설립되어 학생을 뽑기 시작했기 때문에 각종 신문에는 입학률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제국대학 예과 합격자 명부가 나오면 이 기사는 신문 기사로 전 합격자 이름이 모두 실릴 정도였다. 경성제일고보 합격만 해도 집안에 경사가 나는데 경성제대 예과면 조선시대 과거 문과 합격 이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몇 년 지나고 보니, 조선인들에게는 의문이 생겼다. 바로 경성제대 예과 입학생 합격률이 조선인과 일본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조선인은 합격률이 전체 응시자 중 10프로 정도 (응시자 600명 중 합격자 66명) 인데 일본인은 350명이 응시했는데 그 중 83명을 뽑은 것이다. 위 동아일보 사설은 그래서.. 2025. 9. 14. 일제시대 대학생 수는 고등학교 수가 결정한다 식민지시대 대학생 수는 고등학생 수와 1대 1로 대응했다. 쉽게 말해 일본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국공립대 어딘가는 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도 인기과는 있기 때문에 경쟁에 밀려 원하는 곳을 못 가는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정원은 대학생수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일본의 구제 교육제도에서 고등학생이란 경쟁에서 자유로운 학창시절의 상징처럼 되어 있었다.따라서 고등학교가 몇 개나 있는가를 알면, 할당된 대학생 숫자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구제고등학교舊制高等學校가 몇 개가 있었는가. 한 번 알아보자.먼저 구제고등학교 정점에는 제1고등학교에서 제8고등학교까지 8개교가 있다.이를 "넘버 스쿨"이라 불렀다. 고등학교 이름 앞에 번호를 붙여 불렀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는 번호가 아니라.. 2025. 9. 14. 나치가 약탈한 네덜란드 꽃 그림 두 점 오하이오 경매 나왔다가 중단 17세기 꽃 유화 정물화 두 점이 경매에 나왔지만 한 재단이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에게 약탈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경매가 중단되었다. 콜럼버스 디스패치The Columbus Dispatch 보도에 따르면 5인치 x 8인치 크기 이 그림들은 미국 오하이오주 뉴어크Newark에 있는 애플 트리 경매 센터Apple Tree Auction Center에서 안전 금고에 있던 미수령 물품 판매 일환으로 판매될 예정이었다. 모뉴먼트 맨 앤 위민 재단Monuments Men and Women Foundation과 유대인 디지털 문화 회복 프로젝트Jewish Digital Cultural Recovery Project (JDCRP) 조사에 따르면, 이 두 그림은 원래 아돌프Adolphe와 루시 하스 슐로스Lucie Ha.. 2025. 9. 14. 교육: 선의의 정부는 무리를 한다 교육제도는 한 나라가 근대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다. 교육된 인구가 있어야 근대화고 나발이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화 초입에특히 동아시아처럼 전혀 다른 교육제도 하에서 살아왔던 이들은 근대적 교육제도를 수립하려 해도 돈도 없고 사람도 없다. 이 때문에 교육제도 정비 초기에는 많은 무리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도 메이지 초기, 근대적 교육제도가 수립될 때까지 많은 무리를 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메이지 초기에 입신한 많은 이는엉망인 학벌을 가지고 있다. 사범학교에 정규교육 졸업 경력 없이 입학하고 1년 만에 졸업하고 선생이 된다던가, 육사 입학에 정규교육 졸업 경력 없이 받는다던가, 후일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대학예비교에 몇 년 안 되는 교육 경력으로 입학.. 2025. 9. 14. 일제시대: 대학진학에서 고등학교가 왜 중요했는가? 일제시대라고 해서 대학진학자가 백프로 중학교-고등학교 경로를 거친 것은 아니다. 확률은 많이 낮지만 조선인 중에도 소위 "천재"라는 이들은 이 높은 문턱을 뚫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고보 출신 중에도 경성제대 예과에 합격하여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조선천지의 천재들이다. 그렇다면 왜 일제시대, 대학진학에 있어서 고등학교에 우선 입학하는 것이 중요했는가? 그 이유는 이렇다. 일제시대의 고등학교나 대학예과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지금 의예과를 연상하면 된다. 다들 알다시피 의대 본과 진입 전에는 예과 2년을 거치게 되는데 이 의대 예과 2년이 바로 일제시대의 고등학교, 혹은 대학예과에 해당한다. 이 시대에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입학이 되어 있어야 유리.. 2025. 9. 14. 본토에는 없던 고등보통학교의 변칙성 위 그림에서 왼쪽은 이른바 2차 대전 이전 일본 학제인 구제 교육제도이다. 오른쪽이 종전 이후 새로 도입된 6.3.3.4 제로 우리와 같은 방식이다. 왼쪽 구제 교육제도를 보면, 소학교 다음에 여러 학교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학교를 나와야 대학이고 전문학교고 진학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고등보통학교 (고보)라는 건 일본의 교육제도에는 없는 것이다. 이런 변칙적 학교를 1937년까지 조선에서 유지했다. 이렇게 일본의 교육제도에서 포괄하기 어려운 학교를 만들어 놓으니 조선에서 고보를 졸업한 이들은 상급학교 진학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물론 진학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아주 어려워지는 것이다. 일례로 조선의 전문학교는 위 일본 교육제도에서 보면 중학교 졸업후 진학하는 고등상업, 고등농업, 고등공업학교.. 2025. 9. 14. 고보가 고등학교로 둔갑한 이유 일제시대에 살던 조선인들이나 일본인들 모두, 고보는 고등학교가 아니라는 것, 고보는 중학교와 같은 급이라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있겠는가? 고보를 나오면 상급학교라면 결국 고등학교 아니면 전문학교, 대학예과 등인데 고등학교와 대학예과는 언감생심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아주 예외적으로 여석이 있거나 정말 뛰어난 조선인은 그 벽을 뚫고 들어가는 천재들이 있기는 했지만, 고보 졸업생이 상급학교라고 하면 높은 확률로전문학교,낮은 확률로 고등학교, 대학예과 등이었기 때문에 고보가 고등학교가 아니라는 것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제말 (1937년), 제3차 조선교육령 때고보는 일괄해서 모두 중학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면 고보는 왜 고등학교로 인식되게 되었을까? 고보가 고등.. 2025. 9. 14. 조선에는 없던 구제고등학교 해방 전 조선에는 구제고등학교가 없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조선에서 고등보통학교 (고보)가 고등학교라고 오인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고등학교가 조선에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일제시대에는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제대로 된 코스였다. 물론 고등학교 들어가지 않고도 대학은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아주 어려웠다. 소학교-중학교-고등학교 코스를 밟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학을 쉽게 들어갈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조선에서 고보를 나온 조선인들은 대학 진학이 쉽지 않았다. 이 구제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유일한 조선의 학교가 경성제대 예과다. 대학예과와 구제고등학교는 급이 같고, 중학교와 고보가 급이 같은 중등학교다. 일제시대에 위와 같은 모자가 구제고등학교 모자였다. 이수.. 2025. 9. 14. 바이킹 선 오세베르그, 100년 만에 움직였다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바이킹선이 험난한 마지막 여정을 무사히 마쳤다.전문가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000년 된 세 척 바이킹선, "오세베르그Oseberg", "곡스타드Gokstad", "튠Tune"을 약 115야드(약 90미터) 떨어진 오슬로의 새 안식처로 옮기기 위한 심혈을 기울여 왔다. 먼저, 바이킹선 뱃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뱀 머리가 정교하게 조각된 소용돌이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배는 노란색 안전 조끼를 입은 작업자들에게 분당 10인치(약 30cm) 속도로 움직였다. 오슬로 문화사 박물관 관장 아우트 퇴네센Aud Tønnessen은 노르웨이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그 순간, 이 배가 얼마나 아름답고, 위엄 있고, 자랑스러운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마치 아주 천천히 당신을 향해 .. 2025. 9. 14. 3,300년 이집트 호루라기, 왕릉 '경찰관'이 사용한 듯 이집트 고고학자들이 소 발가락을 깎아 만든 3,300년 된 뼈 호루라기를 발굴했는데, 이는 고대 "경찰관"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다. 3,300년 된 소 발가락 뼈로 만든 호루라기가 투탕카멘 아버지가 세운 고대 이집트 수도 아케타텐Akhetaten (현재의 아마르나Amarna)에서 발견되었다.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호루라기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최초의 뼈 호루라기이며, 수천 년 전 왕릉 인부들을 감시하던 "경찰관"이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호주 그리피스 대학 고고학 부교수이자 공동 연구자인 미셸 랭글리Michelle Langley는 "매우 독특하다"고 말했다.아마르나 프로젝트 고고학자들은 2008년 아케타텐 유적 발굴 과정에서 이 휘슬을 발견했지만, 최근까지 분석하지 않았다.이 도시는 태.. 2025. 9. 14. 고보는 고등학교가 아니다 이 부분은 언젠가 필자가 한 번 썼지만 심지어는 일제시대를 공부한다는 분들 중에도일본 구제 교육제도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 아닌가 싶은 글들이 보여이 기회를 빌어 다시 여기 조금 써 본다. 필자가 알고 있는 지식도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지금 국내에서 통용되는 일제시대 구제교육에 대한 정보보다는 자세하고 정확할 것이다. 일제시대 교육제도에 대한 우리의 오해 중 가장 큰 것은 고보를 고등학교로 보는 것이다. 이건 완전한 착각인데, 일제시대 고보는 5년제로 소학교 6년을 마치고 진학하는 학교였다. 어차피 우리도 고등학교 중학교 합해서 6년이니일제시대 5년제 고보라고 해도 마찬가지 아니냐 할지 모르지만, 고보는 고등학교가 아니고 일제시대에는 중등과정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학교를 졸업하면 상급학교.. 2025. 9. 14. 공룡은 어떻게 노래했을까? 악기 연주로 되살리는 사람들 by 미리엄 파우지아Miriam Fauzia https://youtu.be/CoeDVeKGyYA 쥬라기 공원Jurassic Park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티라노사우루스T. rex의 포효는 선사 시대의 사운드트랙이 되었다. 실제로 고생물학자들조차 공룡의 울음소리가 어떤 것이었는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수많은 추측이 있다.이 미스터리는 수십 년간의 연구에 영감을 불어넣었고,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부교수 코트니 브라운Courtney Brown은 예상치 못한 매체인 음악medium: music을 통해 답을 찾고자 했다. 브라운은 10년 넘게 약 7천만 년 전 지구를 누빈 오리주둥이 공룡duck-billed dinosaurs인 하드로사우루스h.. 2025. 9. 14. 스톤헨지 이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물 오스트리아서 출현 오스트리아 남동부에서 고고학 연구팀이 유럽의 기념비적 건축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수천 년이나 앞당기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넓은 원형 경기장에 서서, 태고의 하늘 아래 흙벽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이제 스톤헨지 첫 번째 돌들이 영국 시골을 가로질러 옮겨질 때, 이 기념물은 이미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고, 이집트 파라오들이 피라미드를 처음 꿈꾼 때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상상해 보자.오스트리아 남동부 구릉 지대에서 고고학자들은 바로 그러한 장소를 발견했다.6,500여 년 전 신비로운 모임을 열린 세 개 거대한 원형 울타리로 이루어진 이곳은 인류 최초의 기념비적 건축 실험 중 하나다.부르겐란트Burgenland 주 헝가리 국경 근처 레히니츠Rechnitz에서 발굴 조사 결과 6,500년 이상 된.. 2025. 9. 14. 독수리 머리 신과 청동기 시대 연회 유물 발굴 터키 콘야의 카라회위크Karahöyük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을 통해 중부 아나톨리아 지역 청동기 시대 삶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정의하는 세 가지 주목할 만한 발견이 이루어졌다.3,500년 된 식탁 세트dining set, 수수께끼 같은 독수리 머리 인간 인장eagle-headed human seal, 그리고 2,000년 된 뼈로 만든 펜은 이 고대 정착지의 풍부한 역사에서 각기 다른 시기를 보여준다.이스탄불 대학교 곤자 다르데니즈 아리칸Gonca Dardeniz Arıkan 부교수가 발굴한 이 유물들은 현재 터키 콘야 주에 위치한 이 지역에서 번영한 고대 문명의 일상생활, 종교 관습, 그리고 행정 시스템에 대한 전례 없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콘야 도심에서 남동쪽으로 7km 떨어진 메람Meram 지구에 .. 2025. 9. 14. 이스라엘 공습에 앞서 가자지구 고고학 유물 대피 가자Gaza 지구 5개 주요 고고학 유적 출토 고고학 유물들이 예루살렘 프랑스 성서 고고학 학교French Biblical and Archaeological School of Jerusalem에서 반출되었다. 학교장은 이를 "관련자 모두에게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서 진행된 고위험 작전, 그야말로 막판 구출 작전"이라고 표현했다.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수요일 군사 공격 위협에 앞서 가자시티 주택가 건물 1층에 있는 학교 창고에서 대피 명령을 내렸다. 이 창고에는 가자지구 5개 주요 고고학 유적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개중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서기 4세기 수도원도 포함되어 있다. 이 수도원 모자이크는 손상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예루살렘 프랑스 성서 고고학 학교(EBAF.. 2025. 9. 14. 카노푸스 칙령 사본 완전본 나일 삼각주서 발굴 이집트 고고학팀이 획기적인 발견을 통해 기원전 2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은 카노푸스 칙령 Canopus Decree의 온전한 사본을 발굴했다.이 비석은 나일 삼각주Nile Delta 동부 샤르키아 주Sharqia Governorate 엘 후세이니야El-Husseiniya 시에 있는 텔 엘 파라인Tell El-Fara’in 유적에서 발견되었다.이곳은 오랫동안 풍부한 유산으로 유명했다.이번 발견은 150여 년 만에 이 칙령집의 완전한 사본이 발견된 첫 사례다. 카노푸스 칙령은 원래 프톨레마이오스 3세 에우에르게테스 왕Ptolemy III Euergetes이 현대 알렉산드리아 동쪽에 위치한 고대 도시 카노푸스Canopus에서 열린 대제사장 회의gathering of high pries.. 2025. 9. 14. 1938년까지도 신분이 불안정했던 고보 재학생 1923년에 제2차 조선교육령이 발표된 후 신교육령에 따라 조선의 고등보통학교 졸업생은상급학교 진학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혼란이 야기되었다. 사실 조선의 고등보통학교란일본의 고등소학교에 해당하는 학교 였는데이는 대학진학을 할 수 있는 학교가 아니었다. 이 시기 일본의 교육제도를 보면 아래 표와 같다. 위 표를 보면 고등소학교가 바로 우리의 고등보통학교에 해당하는 것인데, 수업 연한으로 보면 우리는 5년으로 되어 있어 일본의 고등여학교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고등소학교가 됐건, 아니면 고등여학교가 되었건 일본의 경우 이쪽 길을 타게 되면 대학으로는 가지 못한다. 대학을 가려면 무조건 중학교를 나와야 하는데, 이 시기 조선인들은 중학교 진학자가 거의 없었고 대개 일본인들이 중학교, 조선인들은 고등보통학.. 2025. 9. 13. 1920년대의 치약 조선의 신문 광고에서 자주 등장하는 치약 광고는 "쿠라부 치마"다. 치마란 치약을 당시 일본에서 부르던 이름인데,일본에서 치약은 메이지 이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이 시기가 되면 치약가루(치마분), 액상치약, 크림형 치약 (연치마) 등으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대체로 지금의 치약과 비슷한 것은 크림형 치약인 연치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당시 국내에 통용되던 치약은 모두 수입품으로 국산은 없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도 쿠라부 치약은 당시 꽤 유명했는지인터넷에는 1920년대의 이 치약에 대한 리뷰가 꽤 보인다. *** [편집자주] *** 이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칫솔과 치약, 나아가 치과학 도입에 앞선 시기 저 양치질 문제와 치과 치료 문제는 생존과 직결하는 문제 아니었겠는가?오죽 저 치통이 문제였으면.. 2025. 9. 13. 삼각형 구도를 구사했다는 후쿠사이, 여차하면 인상파 역삼각형?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 '후지산에 오르다. 야마나시'9월 16일부터 2주간 소개되는 작품 중 하나인이 '갑주 석반택甲州石班澤'야마나시 현을 흐르는 후지강은 일본 3대 급류 중 하나이며, 이 작품은 후지강에 접한 가지카자와鰍沢 부근을 그린 것이다.강을 향해 뻣은 바위, 투망을 건져 올리는 어부, 그리고 투망 줄이 삼각형 구도를 만들어 멀리 솟아 있는 후지산과 같은 형상을 보여준다. 자세히 보면 후쿠사이는 이 형상를 만들기 위해 어부 뒷쪽에 아이를 일부러 그려 넣었고, 아이가 당기는 그물 역시 후지산과 같은 모습을 만들기 위해 정확히 구도를 맞추고 있다. 어부 자세도 두 다리를 모아 엉덩이를 쭉빼고 숙여 그물을 힘껏 당기기 직전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후지산 정상 구도에 맞추었음을 알 수 있다.빠른 물살을 표현한.. 2025. 9. 13. 이전 1 ··· 86 87 88 89 90 91 92 ··· 108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