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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 항저우杭州 풍경] (6) 항저우박물관_새로 전시된 원대 자기교장窖藏 출토품들 by 장남원   서호풍경구에 있는 오산吴山 정상의 박물관이다. 杭州博物馆 www.hzmuseum.com  고대부터 근대기까지 항저우의 역사를 다룬다.남측과 북측 출입구가 있는데 이번에는 북측 입구로 들어갔다.북측입구는 항조우의 유명한 칭허팡淸河坊[청하방]으로 연결된다.  칭허팡은 남송대에 번성한 상업지구였으며 그후 지금까지도 관광상점이 늘어서 있다.굳이 비하자면 서울의 인사동 같은 분위기이다.  清河坊_百度百科清河坊,自古是杭州繁華地段。河坊街新宮橋以東,是南宋時期宋高宗寢宮—德壽宮遺址。南宋時被封為清河郡王的張俊住宅就在當時稱之為御街的太平巷,故這一帶被命名為清河坊。南宋時,baike.baidu.hk 칭허방 모퉁이에는 오래된 건물의 전통시장이 있는데 관상용 물고기, 꽃, 새, 보석 등을 파는 곳이다.4년 전 마지막으로 .. 2024. 6. 17.
스페인 역사가 당당히 주역으로 내세운 서고트왕국 스페인 왕궁 앞에는 우리로 치면 상고시대 왕들의 조각상을 세워놨는데 여기 보면 의외로 서고트왕국 왕들이 서 있다. 이 조각상들은 1750년대 것으로 꽤 연륜이 올라간다. 스페인사에서는 서고트왕국 왕들은 침략자가 아니라 의외로 자신들 역사의 건국 군주로 기리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스페인사를 보면 초기 역사에서 여러 개 지역 왕국이 경합하다가 통일 왕조로 합류하는데 그 중 유력한 초기 왕국 중 하나가 서고트왕국으로 이 왕국은 스페인사에서 무려 200년 가까이 갔다고 한다. 하긴 한국사에서도 주몽이나 온조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건국자도 될 수 있고, 침략자도 될 수 있을 테니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 editor's note *** 고트족 한 분파로 東고트족과 대별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서고트족은 서고.. 2024. 6. 17.
세계 와사비 시장을 주름잡는 절대왕자 대왕와사비 농장 大王わさび農場 일본국 나가노현長野県 아즈미노시安曇野市 소재 이 대왕와사비농장, 다이오 와사비 농장 大王わさび農場 은 일전에 소개한 적 있거니와 당시 사진 몇 컷으로써 그 면모를 다시금 소개하고자 한다. 이 와사비농장에서 생산하는 와사비가 일본국을 점령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런 사정이 지금이라 해서 바뀌었겠는가? 와사비계의 절대강자라 해야겠다. 당시에는 와사비 농사를 짓는 방법도 간단히 현지 안내를 통해 접한 적 있지만 다 까먹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이었다는 기억만 생생하다. 단순히 맑은 계곡물로 되는 것은 아니라 했으며, 그것이 자라는 데는 꼭 미나리깡 비슷하지만 온통 자발밭이었고, 그 자갈밭은 일일이 불소독을 하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 previous article *** 長野大王わさび農場 나가노 대왕.. 2024. 6. 17.
반달족은 무자비한 약탈 야만인? 그 위대한 생존 여정 앞 지도는 내가 세계사를 배울 적에는 이른바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는 사건이 펼쳐진 무대를 시각화한 것으로 저들 게르만족 일파 중에서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데가 두 군데가 있으니 하나가 고트족이요 , 다른 하나가 반달족이다. 전자는 서기 475년인가 로마(이 경우는 도시 로마를 말한다)를 무너뜨림으로써 서로마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했다 해서 깊에 각인하거니와, 그에 견주어 저 반달족은 그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로 남아있다. 오죽하면 문화재 약탈이나 문화재 분풀이를 반달리즘 vandalis 이라 했겠는가? 그만큼 그들이 주는 공포가 더 컸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저에서 표시한 저 각종 족속은 그 이전 단계, 그러니깐 타키투스 단계에서는 게르만이라 퉁치던 족속들로, 게르만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과연 저들이 한.. 2024. 6. 17.
냉기를 피하려면 침대가 있어야 한다 때는 한여름..연일 낮기온 수은주 30도를 넘는 폭염이 계속되지만침대를 쓰지 않는 나는 나이 탓도 있겠지만 저 방바닥이 차가워 몸을 뒤척인다.그런 까닭에 한 번씩 보일러를 틀어서 습기도 날리고 냉기도 보내야 한다.맨땅도 아니요 베니어합판을 깔았지만 한여름 냉기는 견디기 힘들 만큼 고역이다.요를 깔아도 저 냉기를 방어하지 못한다.그러니 송국리형 주거지니 뭐니 해서 선사시대 집터라고 나오는 것들 그 맨바닥에 사람이 생활했다는 말 새빨간 거짓말이다.생활 못한다.덕석 깔고 짚 깐다 해서 생활 못한다. 하루이틀 극기훈련이야 모르겠지만 일상 나날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맨바닥에 생활할 수는 없다.아열대 혹은 열대지방 가옥이 이른바 고상식이라 해서 땅에서 붕 뜬 이유는 열기 때문이 아니라 실은 냉기 한기 때문이다.저.. 2024. 6. 17.
매머드 인수하러 갔다 조우한 마쓰모토성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을 훑으니 2015년 6월 17일 내가 일본국 나가노 장야현長野県 마쓰모토 송본시松本市에 있었다고 알려준다. 일본의 알프스라는 별칭이 암시하듯 풍광이 끝내주는 곳으로 각인하는데,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라 한여름이었지만 상쾌함을 주는 데였다고 기억한다. 당시 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분들이랑 매머드 뼈를 기증하신다는 재일교포분 박희원 회장님이 계셔서 그 협상을 하러 갔다. 당시 조운연 과장이 인솔단장이었고 임종덕 연구관과 공달영 박사가 동행했다.   이 이야기는 장기에 걸쳐 연재했듯이 나는 그 과정을 취재하기 위함이었으니, 그러다가 어찌 일이 좀 꼬이는 바람에 취재는 온데간데없고 협상단 일원이 되어 혼비백산했거니와 그리하여 애초 예정한 출장도 내가 개인 휴가를 써서 가는 모양새.. 2024. 6. 17.
2015년 메르스 사태의 한 단면 찍은 시점을 보니 2015년 6월 17일이다. 전후 맥락을 보니 내가 아마 저 무렵 일본에 나갔다가 하네다 공항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안 인 듯하다. 저 넓은 비행기에 손님은 몇 명 되지 않았으니 나는 마음대로 활보하며, 누워서 귀국했다. 그에다가 나는 이렇게 썼다. 메르스 땜시 누워서 귀국 일명 와병비행 이렇게 보면 메르스 사태는 코로나19 사태 전조였다. 돌이켜 보면 그때라고 사정이 나았다고는 할 수 없는데, 지금도 궁금한 점이 그렇게 난리를 피워대던 메르스 사태는 그런 대로 비교적 조용하게 수습이 된 편인데, 어찌하여 코로나19는 전 지구적 재앙이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바이러스 무게가 달랐을까? 뭔가 모르게 공포가 엄습하지 않았나 싶다. *** 계속 뒤지니 저때 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랑.. 2024. 6. 17.
시판왕묘, 페루의 투탕카멘 고고학 측면에서 우아카 라하다 Huaca Rajada 혹은 시판Sipán의 무덤은 페루의 투탕카멘 왕묘로 간주된다.  안데스 산맥 전역의 고대 매장 관습은 이곳 원주민 문화가 수천 년 동안 사후 세계를 믿었음을 보여준다.  개인들은 종종 의복, 보석류, 다양한 음식과 물질이 담긴 그릇, 신성한 물건, 희생 제물 등을 포함하여 영적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개인 소지품과 함께 매장되었다.  이 매장 전통은 고고학자들에게 해당 사회의 관습과 신앙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스페인 정복 이후 아메리카 전역의 무덤은 귀중한 내용물이 자주 약탈당했다.   이 약탈은 금을 발견하려는 현지 페루인들의 노력에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온전한 무덤, 특히 초기 사회의 저명한 구성원의 무덤은 드물기 .. 2024. 6. 17.
2천년 전 페루 모체 문화가 남긴 도기 트럼펫 페루고고학을 잔뜩 다루었으므로 그쪽 문화권 유물 하나는 따로 다뤄줘야겠다 해서 고른 분이시다. 이 분 연세는 자그마치 최소 2천100살이시라, 페루 북부 해안 도시 침보테Chimbote 라는 데서 출토한 것으로 이를 보유한 미국 시카고 소재 Art Institute of Chicago 라는 데서는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Coiled Trumpet in the Form of a Snarling Feline FaceDate: 100 BCE–500 CE Artist: Moche Chimbote, Santa Valley, north coast, Peru ABOUT THIS ARTWORK Artist Chimbote Title Coiled Trumpet in the Form of a Snarling Feline .. 2024. 6. 17.
몸통 견주어 머리가 비대하신 김천 광덕리 보살님 김천이라 하지만 그 땅덩어리 하도 넓은 도농복합형 고장이라, 그곳을 고향으로 삼고 자란 내가 보지 못한 곳 디디지 못한 데 천지라 이 김천金泉 광덕리廣德里 석조보살입상石造菩薩立像이라는 분도 난 아직 친견하지 못했다. 어제인가 이쪽으로 일보러 간 오세윤 작가가 간 김에 고화질을 촬영했다. 딱 보니 심형래 펭귄 다리, 전형하는 고려시대 특징을 보인다. 사진을 질감있게 포착한 까닭도 있겠고 전반으로 조각 상태가 아주 좋다. 몸통에 견주어 지나치게 머리 쪽이 비대하다. 뭐 이런 특징을 고려시대 조각 특색으로 꼽지 않는가 하더라만, 디지털김천문화대전이 제공하는 정보를 전재한다. 김천 광덕리 석조보살입상 한자 金泉廣德里石造菩薩立像 영어공식명칭 Standing Stone Bodhisattva Statue in Gwa.. 2024. 6. 16.
[202405 항저우杭州풍경] (5) 장사의 신, 꽌시關係의 대가 호설암胡雪巖 옛집 by 장남원 호설암胡雪巖 (1823-1885)은 청나라 말기의 거상巨商이다.나 같은 사람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기업가들 사이에서는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안휘에서 태어나 빈한함을 이기고 갖은 고난 끝에 항저우에서 상하이까지 그 영역을 넓혔고상인으로는 드물게 홍정모紅頂帽와 관복을 받았다고 한다. 비단사업과 약국, 무기거래, 부동산 등 다양한 업종으로 뻗어 막대한 부를 일구었으나 유럽상인들과의 알력으로 이탈리아 실크에 밀려 막대한 손실을 보게되면서 몰락하였다. 胡雪巖 -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 胡雪巖(1823年9月29日—1885年12月6日),名光墉,字雪巖,以字行,幼名顺官,祖籍安徽绩溪,生于杭州,晚清红顶商人。杭州鼓楼现存胡雪巖故居。 胡雪巖幼年喪父zh.wikipedia.org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2024. 6. 16.
정현鄭玄이 말하는 ‘墓[묘]’ 무덤 후한 말기 각종 경전을 주석함으로써 경학經學 분야 일대 거성으로 자리잡은 정현은 그들 경전류에 보이는 墓라는 글자를 다음과 같이 풀었으니 1. 주례周禮 春官宗伯에 보이는 ‘묘대부墓大夫’라는 대목에서 墓라는 글자를 주석하기를“冢塋之地, 孝子所思慕之處” 라 했으니, 이는 무덤 땅을 믜미한다. 효자가 (조상을) 사모하는 곳이다는 뜻이다. 2. 예기禮記 곡례曲禮 상上에 보이는 구절 “適墓不登壟”이라는 구절에 주注하기를 “墓, 塋域”이라 했으니 墓란 선영의 구역을 말한다는 뜻이다. 3. 같은 예기禮記 단궁檀弓 상上에 보이는 구절 “吾聞之, 古也墓而不墳”이라는 말에서 注하기를 “墓, 謂兆域, 今之封塋也” 이는 묘란 무덤 구역을 말한다. 지금의 봉영封塋, 곧 묘역을 말한다 는 뜻이다4. 석명釋名이라는 사전 석장제釋喪.. 2024. 6. 16.
용인의 역원(驛院) : 보수원(寶樹院)의 실체를 확인하다 조선시대 용인에는 2개의 역驛과 3개의 원院이 있었다.(역은 사신이나 관리가 왕래할 때 마필을 공급하던 곳이고, 원은 공공 숙박시설, 즉 여관을 의미한다.)1. 구흥역駒興驛 : 현의 남쪽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있다.2. 금령역金嶺驛 : 현의 동쪽으로 30리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구흥역과 30리 간격을 두고 있었다.(18세기 제작된 해동지도에 따르면, 구흥역에는 말이 10필, 금령역에는 말이 5필이라고 하여, 구흥역의 규모가 더 컸음을 알 수 있다.)1. 보시원普施院 : 현의 서쪽에 있다.2. 홍화원弘化院 : 현의 남쪽에 있다.3. 금령원金嶺院 : 금령역에서 3리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중 '보시원'은 서변면에 위치했는데, 지금의 보정동 연원마을 부근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2024. 6. 16.
조선후기 도성 방어를 위한 경기남부 요충지 용인 석성산성 용인 석성산성은 용인시의 진산鎭山인 석성산에 위치하며, 보개산성寶蓋山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석성산’이 문헌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633년의 류성룡의 『서애집西厓集』으로 1656년 『대동여지지大同與地誌』가 ‘보개산’으로 기록한 것에 비해 더 이른 시기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석성산’이라는 명칭은 17세기 초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사용되었으며,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초반까지의 관찬지리서에서는 보개산으로 지칭되는 것으로 볼 때, ‘석성산’은 속칭俗稱의 개념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석성산성이 조선후기에 도성을 방어하는 경기남부의 요충지였다는 것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애 류성룡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살필 수 있다. 사도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 류성룡柳成龍.. 2024. 6. 16.
墓[묘]란 무엇인가? 다른 무덤과는 어디에서 만나 어떻게 갈라지는가? 墓란 무엇인가? 그 유사상품으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어 그 차이를 예리하게 지적한 이가 이미 2천년 전에 있었다. cf. 墳[분]·冢[塚, 총]·壟[롱]·丘[邱, 구]·培[배]·堬[유]·采[채]·埌[랑]·塿[랑랑]·墲[모]   양웅揚雄의 방언方言이 말하는 ‘冢[총]’(괄호안 푸른색은 곽박주郭璞注)에 대한 해설은 아래와 같다.   秦晉之間謂之墳(取名於大防也), 或謂之培(音部), 或謂之堬(音臾), 或謂之采(古者卿大夫有采地, 死葬之, 因名也), 或謂之埌(波浪), 或謂之壟(有界埒似耕壟, 因名之), 自關而東謂之丘, 小者謂之塿(培塿, 亦堆高之貌.洛口反), 大者謂之丘(又呼冢爲墳也), 凡葬而無墳謂之墓(言不封也. 墓猶慕也), 所以墓謂之墲(墲謂規度墓地也. 漢書曰:初陵之모, 是也.)   이로써 보면 墓가 무덤이기는 하되,.. 2024. 6. 16.
콩농사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시작되었을 것 필자가 이런 억측에 가까운 이야기를 과감하게 하는 이유는 뭐 콩농사가 한국에서 세계최초로 시작된 자랑스러운 역사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콩농사가 한국과 만주일대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이유 때문이다. 콩농사는 단백질원이고 중요한 잡곡이긴 한데 옛날이라고 콩을 깡콩밥을 지어 퍼먹었을 리가 없다. 그건 조, 기장, 수수 등과는 달리 콩은 절대로 주곡식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깡 조밥, 깡기장밥은 먹어도 깡콩밥은 절대로 못 먹는다. 깡콩밥을 찌건 삶건 해 먹어 보면 알 일이겠다.  그러면 콩농사는 왜 짓는가? 조, 기장, 수수 등과 함께 지어 영양학적으로도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보완적 의미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필자가 보기엔, 콩농사가 가지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콩농사는 .. 2024. 6. 16.
텔 아스와드 Tell Aswad, 질그릇 발명 이전 신석기시대 초기 농업 공동체 마을 텔 아스와드 Tell Aswad 는 기원전 8천500년~7천500년 무렵 질그릇 발명 이전 근동 초기 신석기 시대 참고 유적으로 간주된다. 텔 아스왈드란 "검은 언덕 Hill Black"이라는 뜻으로 수욱수 Su-uk-su 혹은 슉사 Shuksa 라 일컫기도 한다. 면적은 대략 5헥타르 정도인 이 초기 농촌 마을은 위협을 받고 있는 시리아 고고학 유산의 중요한 부분이다.이곳은 시리아 다마스쿠스(33°24'14” N; 36°33'00” E)에서 동쪽으로 30km, 600마스에 위치하며 2001년에서 2007년 사이에 D. Stordeur 박사(프랑스 명예 CNRS, 명예)가 발굴했다.   질그릇 등장 이전 신석기 B시대 Pre-Pottery Neolithic B에 인간이 점령한 텔 아스와드는 근동 지역 초.. 2024. 6. 16.
신석기시대라고, 청동기시대라고 단군 자손들을 거지로 만든 고고학 저 도판은 출처가 현대환이다. [松菊里遺蹟 54地區 住居址에 關한 檢討] 이른바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확인했다는 집터 평면 형태를 분류한 것인데, 이런 것들이 도대체 상부 구조가 어떤 모습이었을까는 얼마나 학술적 판단에 기인한 것인지는 모르나 모조리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뭐 평면이 방형이건 원형이건 관계없이 이런 청동기시대 집터도 그렇고 시대를 좀 올라가 암사동 신석기시대 집터 양상도 본다. 이런 거지 같은 집으로 복원해 놨다. 실은 이게 이 유적을 발굴했다는 고고학도들이 그린 것이다. 내부는? 저런 데서 어찌 생활한단 말인가? 신석기시대는 저리 생활해도 되나? 그래? 저 딴 거지 같은 그림은 저런 데서는 단 한 번도 생활체험을 해보지 않는 자들이나 그려낼 수 있는 모습이다. 맨바닥에서 짚 깔고 혹은 .. 2024. 6. 16.
[독설고고학] 官에서의 독립은 지상명령이다 내가 오래 지켜본 바로는 가장 관 주도적인 학문으로 고고학 만한 데가 없으니 문화재 분파학 중에서 유독 고고학이 징징거리는 이유가 딴 게 없다. 관에서 뜯어먹을 게 많아서 뜯어먹겠다는 발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유독 고고학만 이거 내놔라 저거 달라 징징거리지 않겠는가? 저 친구들은 관과 붙어먹지 않은 내일 곧 그 학문이 망하는 줄로 안다. 그 관과는 각종 위원이니 프로젝트니 해서 얼키설키한데 여기다 지역토호성까지 결합해서 지역으로 내려가면 아예 지자체에 빌붙어 무슨 위원 감투 하나 쓰지 않은 친구가 없다시피 하다. 저 관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서는 고고학은 이 땅에서 영영 학문으로 정립할 수 없다. 관과 얽힌 학문, 그게 어용이지 어용이 아니라 강변하겠는가? 발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야 솔까.. 2024. 6. 16.
거지 같은 단군의 자손, 휘황찬란한 아시리아 문명 물론 상상도이기는 하지만, 기원전 800년 무렵 아시리아Assyria 수도 니네베Nineveh 라는 데가 한창 번성할 무렵 모습이라 저 모습이 꼭 실상이었다 할 순 없겠지만 고고학이 폭로한 니네베 아시리아 수도 위상은 저 상상도 못지 않게 휘황찬란하다. 저때 이땅 한반도 단군의 자손들은 돌맹이 갈며 송국리형 주거지라 해서 거지도 살지 못할 움집생활을 하고 계셨다. 어케? 거지도 살지 못할 움집이시다. 저걸 홀라당 태워먹거나 치워버리면 다음과 같은 바닥이 드러난다. 2002년 영남문화재연구원이 조사한 淸道 陳羅里遺蹟 發掘調査 청도 진라리유적 청동기시대 송국리형 집자리랜다. 이러니 신경질이 안 나겠는가? 짜증만 밀려든다. 넘들은 저런 휘황찬란한 궁전 지어 탱자탱자 부어라마셔라 질펀하게 놀 때 이땅에선 거지들.. 2024. 6. 16.
[독설고고학] 집터 무덤 평면도만 그리다 날 샜다 고고학 본령 중 하나가 시대상 복원이라 아는데 어찌하여 내가 그네 고고학도가 그렸다는 시대상은 하나 같이 저것들만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그래 내가 보고 듣고 한 것이 짧아서 그렇다면 미안하다.하지만 내가 그런 것만 골라서 본 것도 아님에도 그렇다면 저짝에 문제가 있지 않겠는가?시대상 복원하라 해놨더니 잔뜩 껍데기만 들고 와서 하는 말이 집터 평면이 동그랗네 네모났네 이 좁은 땅덩이에 무슨 주거지 유형이 그리도 많아서 판 놈마다 하나씩 붙이는 실정이라청동기시대 고상 가옥은 세장방형이네 그것은 삼분해서 여기선 돌깨고 저기선 돌갈고또 저기 가선 동네 뒤편 어딘가엔 무덤이 있네 무덤을 팠더니 그 구조가 묘도가 있네 마네 횡혈식이네 횡구식이네 석실분이네 목관을 썼네 마네 그 마을은 환호을 둘렀네 마네 그 환호는.. 2024.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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