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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5): 에필로그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사건의 동기를 합리적으로 해석한다는 명분 하에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여러 가지 당시의 명분을 너무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슈겐도 즉신성불 고행을 한 행자들에 대해서도이들이 왜 이렇게 해야 했는지 그 배경을 찾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를 제시하지만사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이들의 열정적인 종교적 신념이다. 산속을 헤메며 수련하고 죽기 전 상당기간을 곡기를 끊고 나무열매를 먹으며 옻을 달인 차로만 연명하던 그들이 뭐 그렇게 대단한 부귀영화와 명성을 노렸을까. 그들이 밝힌 대로 대자대비, 중생구제를 위해 내 한 몸 던지겠다는 종교적 신념 외에는 설명할 길이 많지 않다. 오늘날 이러한 즉신불에 대해 우리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 2025. 1. 26.
포항 삼국시대 목곽묘가 선사한 추정 옥벽玉璧 포항 흥해 남성리고분군 Ⅰ구역 삼국시대 41호 목곽묘 평면도와 추정 옥벽(玉璧)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국내 삼국시대 유적 출토품으로는 특기할 만한 유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436. 추정 옥벽(도면 143, 사진 154)목곽 내 북쪽, 동장벽 아래에서 출토되었다. 일부 결실되었다.내외면은 암올리브색, 속심은 회색을 띤다. 평면은 중앙이 관통된 원형이고 단면은 세타원형이다.현 길이 5.2㎝, 너비 5.5㎝, 두께 0.2㎝, 공경 1.9×1.9㎝, 무게 8.85g 437. 추정 옥벽(도면 143, 사진 154)목곽 내 북쪽, 동장벽 아래에서 출토되었다. 일부만 잔존한다. 내외면은 암올리브색, 속심은 회색을 띤다. 평면은 중앙이 관통된 원형이고 단면은 세타원형이다.현길이 5.0㎝, 현너비 1.7㎝, 두께 0.. 2025. 1. 26.
나이 죽음 이야기만 하다 끝난 견한잡록 칠순 팔순이 넘어가면 본능으로 죽음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아직 그 나이는 아니지만 환갑 앞두고 벌써 내가 언제 훅 갈지 모르겠다는 상념을 떨칠 수가 없는데, 저런 노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더구나 평균수명이라 해 봐야 마흔도 되지 않았을 조선시대로 들어가서 본다면 어떻겠는가?앞서 안경이 초래한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잠깐 조선 중기를 살다간 심수경沈守慶이라는 사람을 소개한 적이 있다. 1516년, 중종中宗 11년에 나서, 과거 급제하고는 출세가도를 달려 훗날 좌의정까지 역임하고는 장장 84세 장수를 누리다가 1599년, 선조 32년 눈을 감았다. 특히 말년에는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 난국을 만나서도 살아남았으니, 그러고도 천수를 누렸으니 이런 사람이 팔순에 접어들면서 어떤 생각들로 살았을지 짐작하고도.. 2025. 1. 26.
미라사진 없는 미라 이야기 필자는 미라에 대한 연구 작업을 지난 20년간 해 왔는데항상 미라에 대한 보도와 대중의 관심이이에 대한 엽기적 뉴스로만 쏠려 있는 것이 안타까왔다. 이전 포스팅에도 썼지만 필자와 김단장이 함께 집필하는 이번 책에는 미라 사진을 최소화한 미라 이야기로 꾸며보고자 한다. 이런 책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라 관련 서적 중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가장 가까이 간 책이 언젠가 소개했던 바로 아래 책인데,   이 책에는 표지 사진 외에는 거의 미라 사진이 들어가 있지 않고 사람 이야기, 이를 연구하는 사람 이야기, 그 사회와 문화 이야기만으로 채워져 있다. 필자가 항상 생각해 온 것은미라 사진이 미라에 대한 연구와 그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다. 미라 사진은 마치 매운맛 음식과 같아 갈수록..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4): 즉신성불의 종말 메이지 정부는 유신 이후 신불분리령을 통해이전에는 불교와 뒤섞여 있던 신도를 분리하여 별도의 종교시설화 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슈겐도는 여기서 신도의 일종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렇게 하기에는 슈겐도는 너무 불교 쪽으로 깊이 침투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일단 슈겐도는 전통 신도의 이론적 배경이라 할 고사기 등 문헌에 전혀 나오지 않는 데다가 슈겐도 자체가 불교 천태종과 밀교진언종 등에 깊이 결합되어 신도로 분리해 내기 용이하지 않았던 점,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슈겐도의 행자들이 즉신성불을 목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였겠다. 메이지 정부는 유신 이후 가장 문제가 서구 제국과의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제국주의 국가들이 일본에서 치외법권 등을 요구하는 명분은일본의.. 2025. 1. 26.
김유신을 전면에 끌어올린 학술대회[1] 돈과 조직 이것도 한 시대 편린으로서, 그리고 김태식 궤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리해두어야겠다. 보다시피 2007년 10월 19일 금요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신라사학회와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가 주최하는 '흥무대왕 김유신, 새로운 해석'을 주제로 내건 학술대회가 열렸거니와 이때는 김창겸과 김태식의 전성시대였으며, 이네가 주축이 되어 조직한 신라사학회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이었다. 신라사 전문 연구를 표방한 신라사학회가 김유신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는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문제적 인물이었으니, 그런 말만 무성하다가 결국 신라사학회가 칼을 빼들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 학술대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창겸형이랑 누가 그리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런 역할 분배가 이뤄졌으니, 형은 조직과 사람 끌어오기를 했고, 나는..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8): 문명개화와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개화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일본사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몰아닥친 급격한 근대화론을 의미한다. 이 사상에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일본 만엔짜리 지폐 주인공 후쿠자와 유키치다.  후쿠자와 집안은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하급무사로서사무라이 계급이라 해도 매우 한미한 집안에 속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는 후쿠자와 햐쿠스케(百助)라는 인물로 번의 회계를 보조하는 한미한 직역을 담당하는 하급번 관리였는데 (사실 이런 직역은 한국사에서는 아전이나 다름 없다)단순히 하급무사-번리였던 것만이 아니라 유학으로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후쿠자와가 속한 번은 워낙 신분차별이 엄격하여 아무리 학문적 명망이 높아도 도통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렇게 일생을 전전하다..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7): 녹명관鹿鳴館시대 일본 메이지 시대에 지은 건물로 녹명관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어로는 로쿠메이칸이라 읽는다. 에도성에서 도쿠가와가 쫒겨 난 후 덴노가 쿄토에서 쇼군이 살던 성으로 옮겨 앉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일본 황거(皇居, 고쿄)이다. 일본은 개항이후 서구 제국들과 불평등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1880년대까지도 여전히 그러했다. 일본은 조선에 무력으로 개입한 청일전쟁 시기까지도 여전히 서양 세력과는 불평등조약이었고이 조약은 최종적으로 러일전쟁 이후가 되어서야 완전히 개정되어 사라졌다. 아무튼 1880년대에 일본은 불평등조약 개정을 위해 일본이 서양 못지 않은 문명국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덴노가 사는 동경의 궁성 옆에 외국 빈객을 접대하기 위한 서양식 건물을 짓는데이것이 바로 녹명관, 로쿠메이칸이다. 녹명관을 기점으..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3): 신불분리와 슈겐도의 수난 폐불운동은 사실 일본만이 아니라 동양사에서 여러 차례가 있었다.중국에서도 전국적으로 광풍이 몰아친 유명한 폐불운동이 두어 차례 있었고, 한국도 조선왕조의 건국 자체가 일종의 폐불운동이라 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은 불교전래 후 불교의 재래종교에 대한 우위가 결정되면서오랫동안 불교를 주, 토착신앙을 종으로 하는 신불습합이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러한 상황이 에도시대 국학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변하기 시작하였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후, 결국 신정부는 신도와 불교를 나누어 구분하는 신불분리神仏分離 정책을 선언하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신사와 불교사원의 모습은 따라서 메이지유신 이후에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메이지신정부는 불교와 신도가 뒤섞인 사원에서 불교.. 2025. 1. 26.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2): 신불습합과 슈겐도 신불습합이라 하니 어마어마해 보이지만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절에는 도교 전통에서 유래하는 칠성각이나 산신각이 있다.정통불교에서 다루지 않는 신앙의 대상이 불교에 포섭되어 숭배된다면 그것도 일종의 신불습합이라 볼 수 있겠다.그리스도교가 전래된 유럽에서도 기독교 전래 행사에 전래 이전의 풍습이 포섭된 흔적을 볼 수 있는데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예수탄생보다 훨씬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이교도적인 그 무엇이 모습을 바꾼 것이라는 주장-. 이것도 유럽판 신불습합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사에서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래된 초기,불교를 믿을 것인가 말것인가 하는데 대한 논의에서소가씨가 불교의 수용을 권한 데 반해 불교를 배척한 物部씨와 中臣씨는일본에는 고유한 수많은 신이 있는데 외국의 신을 숭.. 2025. 1. 26.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3) 반딧불 정신 팔려 모두가 놓쳐버린 번갯불 앞서 본 대로 삼국유사는 사금갑 사건을 통해 폭로된 내전內殿, 곧 왕실을 드나드는 승려 일종인 분수승焚修僧과 스캔들을 일으킨 왕실 여인을 궁주宮主라 했거니와그렇다면 궁주란 무엇인가? 저 삼국유사를 역주한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아래와 같은 주석을 댔다. 왕비보다 격이 낮은 왕의 첩이다. 신라의 후비제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으나, 고려사 권88 후비전의 내용을 참고할 수 있다.실제 고려시대 궁주가 사용된 맥락을 보면, 시대별 차이는 있지마는 근간에서 궁주는 후궁 중 하나다. 후궁들도 등급이 있어 제법 높은 축 후궁은 궁宮이라는 궁궐 거주공간을 배정받았고, 그 바로 아래 후궁들은 원院이라는 거주공간이 할당됐다. 이 궁에 거주하는 후궁을 궁주라 하고, 원에 거주하는 후궁을 원주院主라 했다. 한데 삼국사절요와 동국.. 2025. 1. 26.
불교에 되치기 당한 박연암[2] 신흥사 중들한테 쫓겨나고 연암집 제3권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가 수록한 박지원 공문서 중에는 그가 양양부사 재직 시절 직속 상관인 강원도순찰사한테 올리는 글이 있으니 연보에 따르면 그가 양양부사가 된 시점은 1800년, 64세 때라, 그해 6월에 정조가 승하하고 두 달 뒤인 8월에 양양부사가 되었거니와 이 글은 부사 취임 100일이 지난 새해에 올린 문서라 하니, 순조 1년, 1801년 새해 벽두임을 추찰한다. 이에서 연암은 관내 신흥사가 각종 불법을 자행하고 있지만, 그것을 제어해야 할 상부, 특히 강원감영과 중앙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을 두둔하고 있다면서 그것이 불합리하다는 감정을 격정적으로 토로한다. 지금 예조의 관문關文에 “신흥사神興寺의 잡역을 경감한 뒤로 종이에 먹도 마르기도 전에 불법 징수.. 2025. 1. 26.
50년전 100년전 글을 인용하는 한국학계 100년 전, 50년전 글을 참고문헌으로 다는 작태는 그만 해야 한다.한국 고대사를 보면 아직도 이 짓거리를 일삼는다. (2016. 1. 26)***아직도 금서룡今西龍 이병도가 참고인용문헌에 오르는 일을 어찌 봐야 할지 모르겠다.얼마나 연구에 진전이 없으면 백년 전 이마니시 류 글이 인용문헌에 오른단 말인가?도대체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여직 금서 이병도 주변을 얼쩡인단 말인가?백년전 오십년전 글은 참고인용문헌이 아니라 이른바 원전이다.어느 시대인데 고릿적 글을 끄집어 내어 그 가부를 논한단 말인가? 2025. 1. 26.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2) 궁주宮主 vs. 왕비 이를 위해 위선은 삼국유사가 저록한 사금갑 이야기를 보고, 나아가 이와 삼국사절요 및 동국통감이 저록한 사금갑 사이에 어떤 차이는 없는지, 그 차이는 무엇이며,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한지를 분석해야 한다. 이 기초작업이 놀랍게도 김태식 이전엔 없었다.믿기는가?암튼 삼국유사 기이 편이 사금갑射琴匣이라는 제목으로 저록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21대 비처왕毗處王[소지왕炤智王이라고도 한다] 즉위 10년 무진戊辰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에 거둥하였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우는데, 쥐가 사람말로 이르기를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했다[혹자가 말하기를 신덕왕神德王이 흥륜사興輪寺에 행향行香하고자 하여 [가는데] 길에 꼬리를 [서로] 물고 가는 한 무리의 쥐들을 보고 그것을 괴이하게 여겨 돌아와 .. 2025. 1. 25.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1): 즉신불을 슈겐도 이야기로 풀어간 까닭 일본에 가 보면 즉신불은 대개 밀교진언종 사찰에 모셔져 있다. 사실 밀교진언종 자체에 즉신불이 확고한 교리로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밀교진언종은 개창자인 구카이 당대에 즉신불 비스무리한 이야기가 잠깐 나올 뿐에도시대까지 진언종에서 즉신성불을 목표로 수행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 듯 하기 때문이다. 한편 슈겐도의 경우-. 그 기원은 명확히 불교와는 무관한 자연숭배의 원시적 종교에서 발전해 나온 것이 분명한데이 슈겐도는 수련의 최종 목적을 즉신성불에 두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즉신불은-. 슈겐도의 전통에 따라 즉신성불 수행을 하여 만들어진 즉신불이 밀교진언종 사찰에 모셔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즉신불이 한 쪽 다리는 슈겐도에 두고또 다른 다리는 불교 진언종에 두고 있는 것-. 이는 바로 일본 특.. 2025. 1. 25.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1)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삼국사절요 동국통감 소지왕 시대 왕실을 뒤흔든 초대형 로맨스 스캔들, 이른바 사금갑射琴匣 사건을 내가 일전에 다시금 살핀 적 있거니와 이 사건을 논하는 전배前輩한테서 나타난 기이한 현상 중 하나로, 오로지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이 저록한 그 증언만 착목한다는 대목이었으니오매불망 이것만 쳐다보고서는 이 사건을 다룬 다른 문헌은 전연 쳐다보지 아니했다는 현상이 나로서는 기이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건은 삼국유사 말고도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 그리고 기타 다른 문헌에서도 자주 언급했거니와, 명색이 고대사를 연구한다는 자들이 그네들 문헌에서 보이는 상이점들을 전연 논급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더욱 기이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아무도 안 봤기 때문이다. 명색이 고대사를 연구한다는 자들이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은 .. 2025. 1. 25.
야호 신난다, 신년하례 해방한 기쁨 만끽하는 백운거사 동국이상국후집 제2권 고율시古律詩무술년 설날에[戊戌元日]설날 세배받는 일 모두 없애니 正朝拜賀禮皆刪 늙은 몸 편하기 위함일 뿐 / 只爲殘身自要安 문밖엔 참새 그물 칠 만한데 / 門外雀羅方可設 왜 손들이 와서 서성대는가 / 如何賓客立盤桓 잠이 좋아 그믐밤도 제끼고선 嗜睡輕抛守歲宵 해 중천이라도 자빠져 음냐음냐 / 日高猶臥放長謠 이제야 여유롭게 눌루랄라 콧노래 / 如今時得閑中詠 눈바람 추운 날 조회도 면했네 風雪天寒免會朝 (이날 눈이 내렸다.)[주-D001] 참새 그물 칠 만한데 : 벼슬에서 물러나와 한가하게 삶을 표현한 말. 사기史記 급정전汲鄭傳에 “적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엔 손님들이 문에 가득하더니 퇴직한 후에는 문 밖에 새 잡는 그물을 치게 되었다.” 하였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학주 (역) .. 2025. 1. 25.
파테라patera 혹은 피알레phiale란 무엇인가? 저짝 유럽 쪽 고고미술 자료를 섭렵하다 보면 저 표현을 자주 만나거니와 간단히 말하면 기종器種 중 하나라, 우리네 접새기, 접시다. 주로 그리스 혹은 로마쪽 문화를 설명할 때 등장하는 말이어니와, 파테라 혹은 피알레는 간단히 말하면 shallow ceramic or metal libation bowl이라, 편평넓적하면서 대체로 전체 모양은 둥근 도기 혹은 금속제 사발 혹은 접새기를 말한다.그래서 아래서 손으로 받치는 구조가 많거니와, 그래서 쉽게 잡을 수 있도록 아래쪽 중앙에 옴팔로스omphalos, 곧 belly button, 배꼭지가 달린 경우가 많다. 우리네 동경으로 치면 뉴? 라는 그런 부분 말이다. 저 두 말은 결국 같은 대상을 지칭하나 파테라가 로마 쪽에서, 피알레가 그리스 쪽에서 많이 사용한.. 2025. 1. 25.
글씨가 커진 이유, 안경이라는 혁명 조선 중기를 살다간 심수경沈守慶이라는 사람이 있다. 1516년, 중종中宗 11년에 나서, 과거 급제하고는 출세가도를 달려 훗날 좌의정까지 역임하고는 장장 84세 장수를 누리다가 1599년, 선조 32년 눈을 감았다. 말년에 임진왜란에 휘말렸으니, 그리 호락호락한 삶은 아니었다 하겠거니와, 그럼에도 천수를 누렸다. 그의 저술 중에 일상생활하며 보고 들은 이야기 묶음집으로 견한잡록遣閑雜錄이라 제題한 것이 있으니, 글자 그대로 여가를 보내며 이것저것 긁어모은 이야기들이라는 뜻이다. 개중에 아래와 같은 논급이 보인다. 육방옹陸放翁은 이름이 유游이며, 자字는 무관務觀이라 송宋 나라 이름난 시인이다. 그의 시는 호방하고 평이하여 난삽難澁하고 기괴奇怪한 병통이 없으므로, 내가 전부터 좋아했다. 우연히 유간곡劉澗谷.. 2025. 1. 25.
나야 응당 늙어가나 그댄 늙지 않아야 할 거 아니오? 동국이상국전집 제13권 고율시古律詩정월 원단 길에서 중을 만나 희롱삼아 짓다[正旦路上逢山人。口占戱贈。]나야 속세에서 설날 만나몸이 늙어가는 줄 알지만 깊은산에선 세월 피해갈 터눈썹 어이 눈처럼 하얕소我於世上遇王春 已分年來老逼身 深谷想應逃歲月 如何亦作雪眉人ⓒ 한국고전번역원 | 정지상 이장우 (공역) | 1980, 이 번역을 대폭 고친다. 말할 것도 없이 백운거사 이규보 작이다. 이 양반 개그맨 뺨치는 재주가 출중하다. 2025. 1. 25.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6): 일본 밀교진언종의 개조 구카이[공해空海, 774~835] 아래는 이전에 필자가 구카이에 대한 쓴 글로 슈겐도 이야기의 번외로 고쳐 싣는다.  *** 일본에서 밀교진언종 쿠카이空海는 굉장히 유명하다. 우리의 원효나 의상 정도 되는 무게가 있다. 일본 불교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밀교진언종의 사실상 개조이기 때문에그가 처음 일본에 밀교를 들여와 이식한 과정은 굉장히 잘 알려져 있다.  일본 측 설명에 의하면, 그는 중국밀교의 정통을 이은 혜과의 사랑받는 제자로그가 죽었을 때 구카이는 친히 스승 혜과를 기리는 비문을 짓기도 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사실 일본측 주장이 과장된 측면이 많다.   역사 기록을 보면 당나라로 건너간 구카이는 고생고생하다가마침내 목적한 혜과를 만난지 반년만에 혜과恵果가 죽어버렸다.따라서 쿠가이가 과연 어느 정도로 비중있는 혜과의 제.. 2025.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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