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20038

인생은 꿈의 연장이며, 꿈에서 어렴풋이 흘리는 눈물! 여러 번 말했듯이 난 이 천녀유혼倩女幽魂 주제가 가사가 볼수록 좋다. 중국어도 모르는 놈이 광동어를 알겠는가마는 한자로 대강 때려 맞추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Q8iozYmmoCw 人生路 美夢如路長, 인생이란 길, 아름다운 꿈은 기나긴 길처럼 멀고 讓那風霜,風霜留面上, 인생길 바람과 서리, 얼굴에 남았네. 紅塵裡,美夢有多少方向, 이 어지러운 세상에 아름다운 꿈은 어디에 있을까? 找痴痴夢幻的心愛, 어리석게도 꿈 같은 사랑을 찾는 내 마음 路隨人茫茫。 인생길처럼 아득하기만 하네. 人生是 美夢的延長 인생은 꿈의 연장이며夢裡依稀,依稀有淚光 꿈 속에서 어렴풋이 흘리는 눈물이라何從何去,?尋我的方向, 어디로 왔다 어디로 가는지, 내 인생 찾아 風幽幽在夢中輕嘆, 바람부는 꿈.. 2025. 1. 25.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20): 즉신불 기원 일본의 전승에 의하면 그 나라최초의 즉신불은 구카이空海라 한다. 구카이는 일본의 밀교진언종 홍법대사를 말한다. 당나라 유학에서 밀교를 배워 온 구카이는 고야산高野山에서 입적했는데 구카이가 세운 일본진언밀교에서는 즉신성불이란 곧 육신을 가진 그대로 우주와 일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따라서 구카이는 그가 입적한  고야산 高野山 영묘霊廟에서 가부좌를 튼채 명상의 수련을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믿거나 말거나의 전승은 구카이가 사후 다비식을 치루었다는 역사기록을 볼 때전혀 전설에 불과하다는 것이 학계의 결론이지만죽은 후 시신이 사멸하지 않고 아직도 수련을 계속하고 있다는 이러한 전승이야말로즉신불 성립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구카이의 즉신불 전승이 그가 중국에서 받아온 밀교 전통과.. 2025. 1. 25.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19): 미라와 영생불멸 흔히 미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미라가 만들어지는 동기를 영생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 때문으로 풀이하는 경우를 본다. 예를 들어 이집트 미라의 경우, 죽은후에 사후세계를 준비하는 영생불멸의 희구. 이러한 욕망이 죽은 후 미라로 탈바꿈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도 나름 세계각지 미라에 대한 연구를 20년이 넘게 해온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미라라는 것은 이러한 개인적, 이기적 동기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미라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수도 없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고,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있으며 자연적이라고 해도 아주 추운 곳에 있어 시신이 썩지 않거나 너무 건조하거나아니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미라처럼 특수한 구조의 무덤 안에서 우연하.. 2025. 1. 25.
1913년, 이완용의 경주 유람기 일본을 갔다가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완용 백작이 문득 "경주에나 가볼까"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1박 2일간 경주 유람에 나서는데, 그 코스를 《일당기사一堂紀事》연보에 근거해 적어보겠다.대구에 도착, 도 참여관 신석린(1865-1948) 안내로 180리 길 경주로 가다.길가의 금척묘(금척리고분군)와 무열왕릉을 보고, 30리를 더 가서 불국사와 석굴암을 감상한 뒤 불국사에서 1박. 다음날 경주 읍내로 왔는데, 가는 길에 성덕왕릉과 효소왕릉, 반월성, 석씨구묘(탈해왕릉?), 숭덕전, 계림 비각, 최현식가(그 유명한 최부잣집. 최준(1884-1970)이 문 밖에 나와 맞이했다고), 숭혜전, 김유신묘, 분황사 구층탑(물론 이때는 이미 3층), 그리고 '구물보관소' 등지를 찾아 방문함.그리고 그 다음날 영.. 2025. 1. 25.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18): 수백년에 걸친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꿈 슈겐도修験道 성자의 즉신불卽身佛을 처음 보는 사람은 경외심 보다는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그도 당연할 것이 시신을 미라화해서 거기에 가사를 입혀 놓고 전시해 놓은 후 경배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감정이 생기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슈겐도 즉신불의 경우사진으로 대면하는 경우와 직접 즉신불이 모셔진 사찰을 방문하여 배견하는 경우상당한 차이가 있었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앞에서 이야기한 즉신불 사찰 혼묘지本明寺 외에 필자가 직접 방문한 다이니치보大日坊라는 절도 그렇다. 이 절은 정식 이름이 瀧水寺大日坊으로도쿠가와 막부 3대장군 이에미쓰徳川家光[1604~1651, 재위 1623~ 1651)의 유모 가쓰카노 쓰보네 (春日局)의 기진을 받아 그 권위를 더했었다고 한다. 이 절이 지금 유.. 2025. 1. 25.
반년짜리 얼치기 수입상과 브리티시 뮤지엄 이집트 컬렉션 방향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말이 될 터이고, 아무튼 나는 내가 지금 하는 활동을 언론 혹은 기자에 준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집중하는 분야를 내가 바꿀 수는 없어 계속 역사문화재를 중심으로 하되 서너 번 말한 대로 그 타깃은 교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이젠 국내는 신물이 나고, 할 만큼 했으니 외국 문물을 되도록 많이 소개하는 방향으로 가겠다 했고, 그렇게 해서 나름 저 방향으로 집중한 때가 대략 반년이 되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그 방향이라 해 봐야 암것도 아니어서, 이곳저곳에서 줏어모은 자료를 번역하고 소개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거니와, 아무래도 고대이집트와 고대 근동, 그리스 로마, 그리고 그 주변 문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은 손을 댄다고는 했지만 역부족이다. 아무래도 현장 경험이 가.. 2025. 1. 24.
석장리 60년의 찌께다시 이런저런 사유로 신촌 세브란스 들릴 때면 어김없이 인근 연세대박물관을 들르곤 하는데어제도 병원 일 보고선 들리니 작년 개막한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발굴 6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전이 계속하는 중이었거니와 나 역시 별르기는 했지만 해외 출타로 여의치 않았으니 마침 잘됐다 싶기도 했다.이 박물관은 1년 만이라 그새 적지 않은 변화들이 있었으니 첫째 그 수장이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구석기 전공 조태섭에서 같은 사학과 80학번 동기 신라사 전공 하일식으로 바뀌었으니 그 바뀐 사실을 어제야 알았으며 내친 김에 잠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서로 늙어버린 모습들에 같이 놀라며 껄껄 웃고 말았으니 저 사학과에는 유독 저 학번 동기 교수가 많아 듣자니 2년 뒤면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면서 정년퇴직이라 하니 세월.. 2025. 1. 24.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5): 쇼나이번과 우나사카번 전술한 슈겐도修験道 행자들이 즉신성불卽身成佛을 위해 용약전진하던 무렵은 에도시대였다. 이 지역에는 당연히 막번체제 하의 번藩이 있었다. 그 중 쇼나이번庄内藩이 유명하다. 소설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이에야스의 충신이자 맹장에 사카이 다다쓰구酒井忠次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 후손들이 에도시대에 쇼나이번 번주가 되어 대대로 이어졌다.  따라서 에도막부 친위번인 후다이다이묘 중에서도 격이 높은 친막부파 중에서도 친막부파였다고 할 수 있다.이때문에 이들은 메이지 유신 당시 막부를 토벌하려던 신정부군에 맞서 끝까지 무력으로 저항한 탓에 메이지 신정부에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많이 받았다. 일본의 동북지역에서 쇼나이, 아이즈会津, 센다이仙台, 모리오카盛岡 등 에도시대 친막부 번이 존재한 지.. 2025. 1. 24.
일본문화에 대한 한국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필요하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1889~1961)라는 양반이 있다. 이름을 보면 한국의 유씨인가? 하지만 일본의 야나기 씨이다. 지금은 이 양반에 대해 다면적 해석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이 양반에 대해서는 대체로 한국 학자들의 호평 일색이다. 아마도 야나기 무네요시의 다면적 측면이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일단 기본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매우 깊고 어쩄건 그 해석이 당시의 세류에서 볼 떄 중립적이거나 한국에 경도된 측면이 있다는 부분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볼 떄, 일본에 경도된 측면까지야 모르겠지만, 일본 문화를 한국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이제 나올 때가 되었고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때가 되었다. 주말에 일본에 나들이 가 보니 한국인이 인산인해였다. 이들이.. 2025. 1. 24.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17): 즉신불을 모신 절 데와삼산 근처가 바로 이러한 슈겐도 수련이 가장 왕성했던 곳이라 이 일대에는 슈겐도 성인들이 즉신성불하며 생긴 즉신불이 모셔진 절이 여럿 분포한다. 일본 전역에는 현재까지 열일곱 분 정도의 즉신불이 알려져 있는데이 중 대다수가 동북지역, 그 중에서도 니가타현과 야마가타현 일대에 흩어져 있고 야마가타현 중에서도 데와삼산 근처에 집중하여 분포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 중에 혼묘지本明寺, 다이니치보大日坊, 츄렌지注連寺 세 절을 방문한 적이 있어즉신불을 실견한 바 있다. 여기에 그 내력을 간단히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이 세 곳 중 가장 인상이 강렬한 곳은 혼묘지이다. 혼묘지는 야마가타현에서 가장 오래된 즉신불을 모신 곳으로 즉신성불한 本明海上人은 1683년에 입적하였으니 350년이나 된 셈이다. 슈겐도.. 2025. 1. 24.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16): 유도노신사湯殿神社 이 데와삼산出羽三山이라는 준봉 중 하나인 유도노산湯殿山은 산 전체가 신사다. 슈겐도 성지인 이 유도노신사를 조금 소개해 보겠다. 이 유도노신사 인근에서는 수많은 슈겐도 행자들이 수련을 했고 그 중에는 즉신성불한 즉신불로 화한 성자들도 있다.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유도노산 아래에 도착하면 큰 도리이鳥居가 있다. 이 도리이를 보면 여기가 신사 초입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산길을 따라 꼬불꼬불 올라가면 점점 심산유곡으로 들어가다가어느 순간 큰 바위덩어리 앞에 이르게 된다. 이 바위덩어리가 바로 "유도노신사 본궁"이다. 신사 건물은 없다. 큰 바위덩어리 자체가 신사인 셈이다.   유도노신사 본궁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고 인터넷에도 게시를 못하게 막는다. 그래서 다녀온 사람들 스케치만 간간히 볼 수 있을.. 2025. 1. 23.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4): 율령체제의 영제국令制國 앞서 여러 차례 이야기한 듯한데, 일본의 율령체제에는 소위 영제국令制國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중국식 고대왕조의 행정체계를 일본에 도입한 것으로전국을 동산도, 북륙도, 동해도, 산음도, 산양도, 남해도, 서해도, 기내의 소위 오기칠도五畿七道로 나누고이를 다시 68개 쿠니國로 세분했다. 이 쿠니라는 것은 나중에 무가 정권이 출범하면서사실상 행정단위로서는 유명무실해지지만관직명이나 지명 등으로 끈질기게 근세까지도 살아 남았다. 일본의 동북지역은 오랫동안 야마토의 통치 밖에 있다가 이미 말한 것처럼 헤이안시대에야 복속하게 되었는데 위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 동해 쪽 데와出羽와 태평양의 무쓰陸奧, 두 개의 쿠니가 북쪽으로 팽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지역은 우리의 통일신라시대인 헤이안시대부터 고려시대 초기까지에.. 2025. 1. 23.
알록달록한 사랑이 꽃피는 박물관 전시실? 딸각발이 일석 이희승 회고록을 보면 1920년대 조선에 분 사회풍조로 자유연예와 그에 따른 이혼 유행을 회고하면서1896년생인 자신 또한 이혼을 심각히 고민하다 그만 두었다고 한다.비슷한 시절 양주동은 소설가 강경애랑 동거하다 찢어지기도 했다.종래 조선시대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사회현상이었다.서울 송파구립 송파책박물관이 어제 개막한 신년 기획특별전 '책 속에 꽃 핀 사랑'은 사랑을 착목해 조선후기 이래 이 땅에서 새롭게 대두한 사랑 이야기를 적출한다.책 박물관이니만큼 저 시절 각종 책자에 드러난 사랑 이야기를 정리한 셈인데 하긴 저 시대 저 현상의 증언자로 책 같은 인쇄매체와 영상밖에 더 있겠는가?언제더라 LH박물관에서 조선후기 고문서에서 드러난 사랑 이야기를 전면에 노출한 바 있거니와 그 완연하게 .. 2025. 1. 23.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15): 데와삼산出羽三山 데와삼산이라는 곳이 있다. 앞에서 이야기한 바 일본 동북지역은 원래 헤이안시대까지도 야마토 정권 지배 밖에 있었는데야마토가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 결국 무가정권이 출범할 때쯤이면 그 전역이 복속되게 되었다. 이렇게 헤이안시대에 북진해서 올라가는 지역에서 태평양 쪽에 연한 곳을 무쓰노쿠니陸奥国라고 부르며우리 동해쪽에 연한 곳을 데와노쿠니出羽国라 부른다. 위 지도를 보면 데와노쿠니에 데와책出羽柵이라는 곳이 보일 텐데, 이 지역이 最上川(모가미가와)라는 강이 흐르고 있는 지역, 바로 이곳이 슈겐도 본산 중 하나다. 일본 전역에는 몇 군데, 슈겐도 수련지로 유명한 곳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손꼽는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여기에는 데와삼산이라는 산이 있다. 데와삼산이란 하구로산羽黒山, 갓산月山, 유도노산湯殿山의 3.. 2025. 1. 23.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14): 즉신불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슈겐도 교리의 최종 목표는 즉신성불이라 했다.따라서 고도로 수련한 슈겐도의 성자는 죽어서도 그 시신이 썩지 않는다. 사실 성자가 되면 시신이 썩지 않는다는 개념은 슈겐도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유럽에 가 보면 가톨릭 교회 내에 성인 성녀의 시신을 안치해 두되 그 시신의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는 가톨릭 성인으로 죽은 후 시신이 썩지 않는 것은 기적의 증좌로 본다. 이를 "Incorruptible Saints"라 부른다. 이 가톨릭 성인의 불멸의 시신은 유럽 교회를 가보면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톨릭의 전통에 대해서도 자못 이채롭게 보는 시각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슈겐도의 즉신불 (즉신성불한.. 2025. 1. 23.
한국사의 소위 지정학적 위치 우리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라고 하면 주변에 강대국이 있고 그 사이에 낀 정치적 함의만 추구한다. 어찌 한 나라의 역사를 결정하는 지정학적 위치가 정치적 측면만 있으리오. 연강수율도 있고, 연평균기온, 모내기 철에 비가 오는가 아닌가, 토질은 어떠한가, 등등 많은 부분이 사실 그 나라의 역사의 침로를 결정하며어떤 의미에서 보면 정치학적 측면의 지정학적 위치란생각보다 역사의 침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이 못살았던 것은 주변에 중국이나 일본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한국사 질곡의 주요 모순을 외세냐 아니면 내부의 그 무엇으로 볼 것이냐 하는 시각과도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 한국사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막는 주요 모순을 외세와 우리의 항쟁으로 설정하기 때문에한국사는.. 2025. 1. 22.
한국이 총균쇠에서 배우지 못한 것 총균쇠의 주제는 한 마디로 이거다. 잘난 놈 못난 놈 떠들어봐야 지리적 환경적 조건이 최고로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사실 지리적 환경적 조건에서 결판난다. 잘난 놈이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양서적으로 총균쇠 만큼 많이 권장되는 책이 없는 걸로 안다. 대학도서관에 가 봐도 총균쇠는 항상 대출 중이다. 여러 권을 가져다 놓은 것 같은데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총균쇠를 이렇게들 많이 읽는데 한국의 지정학적 측면에 대한 숙고는 왜 많지 않을까.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강국 사이에 끼어서 어쩌고 하는 그런 면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 왜 20세기 이전에는 못살았는가, 왜 20세기 후반 갑자기 잘 살게 되었는가. 이것이 20세기 후반, 한국인이 갑자기 각성해서 이렇게.. 2025. 1. 22.
사우디 산맥을 뚫은 벌집들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사라와트 산맥 Sarawat Mountain range 기슭 타이프Taif 남쪽에 위치한 버려진 마을 알카르피Al-Kharfi에서 천년 전 고대 벌집beehives이 1천200통이나 떼거리로 있다고.애초 이 소식을 나는 발견이라 해서 봤지만 익히 알려진 듯하다. 진흙으로 만든 이 벌통들은 까다로운 사막 환경에서 중요한 영양과 약용 특성을 제공하는 초기 정착민에게 매우 중요했다.벌집에서 수확한 꿀은 일상 생활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공동체가 번성할 수 있도록 했다.이 지역 양봉은 이미 고대 작가들한테서 드러난다. 예컨대 그리스 유명 지리학자 겸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스트라보Strabo(기원전 64년~기원전 24년)는 꿀을 '아라비아 펠릭스Arabia Felix’s.. 2025. 1. 22.
미라 연구 그 마지막 작업의 꿈 아래 글을 2023년 이 블로그에 남겼는데, 이 작업의 결과를 현재 단행본 작업으로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 필자가 여러 차례 밝힌 바와 같이이 블로그에 남기는 필자의 글들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필자의 연구가 대학에서 수행된 이상그 최종 결과를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연구비 지원을 받은 연구는 대중에게 적당한 경로를 거쳐 전해져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한다. 필자의 이 작업은 그런 연구자 의무의 연장선상에 있다. 둘째는 이렇게 틈틈이 포스팅하는 내용을 다듬어단행본으로 완결하기 위한 준비작업이다. 결국 연구의 종결은 단행본이다. 원저 논문이나 종설도 중요하지만,결국 연구의 피날레는 정성 들여 쓴 단행본으로 마무리 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미라 이야기"는 이.. 2025. 1. 22.
연암이 보는 불교, 가만 놔둬도 저절로 망할 지경 연암이 되치기 당한 이야기하기에 앞서 내친 김에 연암이 바라보는 당시 불교계 진단을 짚어봐야겠다. 이를 위해 먼저 불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소환할 필요도 있거니와, 번다해서 구체 사례를 열기하지는 않겠지만, 당시 사대부 불교에 대한 전반하는 생각이 연암이라고는 예외가 될 수는 없어, 이단이라는 관점은 유효한 것으로 보이지만그렇다고 그가 천주교에 대해 그랬던 것과 같은 극단하는 불교 배척주의자였다고는 하기 힘들다. 그건 왜인가를 곰곰 따져보면 그의 시대에 이미 불교는 더 이상 체제 위협을 가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저 정도는 봐줘도 상관없다 하는 그런 인식이 깔렸으니, 이것이 그를 상대적인 불교 온전주의자로 보이게도 할 것이다. 당시 압도하는 위협은 천주교였다. 조선왕조는 갖은 악랄한 수단 동.. 2025. 1. 22.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3): 북위 39도 이야기 이전에 쓴 글인데 보강해 다시 올린다. *** 한국지도다. 북위 39도와 북위 40도 선이 보일 것이다. 대체적으로 북위 39도 선은 통일신라 때 신라가 규합한 대동강-원산만 선에 부합한다. 북위 40도선은 대체로 고려초기 북쪽 국경선에 부합한다. 일본도 헤이안시대는 북벌의 시대였는데, 고대 일본의 고총고분은 북위 39도선 이북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이를 경계로 이질적 집단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는 이야기와 같은데,사실 헤이안 시대 내내 북위 39-40도선 일대에서 이 지역 원주민과 야마토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것이 대략 우리의 통일신라 말-고려초기에 해당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위도에서 북진정책이 시도되고 있었다는 뜻이다. 현명한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2025. 1. 2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