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ESSAYS & MISCELLANIES2268 서너달 만에 해치운 자치통감 완독 주변에 한학에 뛰어난 분이 꽤 있다.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따라가지 못할 분들이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술술 원전 읽는다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한문으로 먹고 산 전통시대 아무리 뛰어난 한학자라도 한문 원적을 술술 읽었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한적漢籍은 왜 번역되어야 하는가? 번역본으로 읽으면 술술 읽히기 때문이다. 물론 번역에는 오역이 있기 마련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한학자라도 오역은 있기 마련이다. 내가 권중달 교수가 완역한 자치통감 31권을 읽는데 한두 달을 소비했다. 한데 내가 이걸 원전으로 읽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번역본에서 내가 필요한 곳, 의문나는 곳은 반드시 원문을 봐야 한다. 번역본은 이렇게 반드시 봐야 할 곳을 제외한 원문 읽기의 수고를 왕청나게 덜어준다. (2013... 2022. 12. 10. 학력차별 전공차별, 문화재판을 좀먹는 암덩어리들 나는 그런대로 좋다는 대학 나왔고 그런대로 좋다는 학과를 나왔으며, 종잇쪼가리에 지나지 않으나 이른바 문화재 관련이라 분류할 만한 석사 학위도 있고 박사는 수료한지 백악기 시대다. 이런 내가 오직 분노하는 데가 있으니 학력차별 전공차별이다. 왜 내가 어떤 일을 선택하는데 대학을 나오고 관련 전공을 했느냐가 장벽이어야 하는가? 이 꼴이 문화재판에서도 갈수록 기승이라 뭘 뽑는데 대학을 나와야 한다 하고 관련전공을 해야 한다고 갈수록 규제를 강화한다. 어제도 이런 일이 있어 열받아 해부쳤다. 관련학과? 역먹어라. 너희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청차장도 대학 출신이긴 해도 이른바 문화유산 관련학과가 아니다. (참고로 차장은 대학원박사를 이쪽으로 해서 신분을 세탁했다.) 더 웃긴 건 이런 정책을 입안하는 실무자나 간부도.. 2022. 12. 10. 황룡사 터, 그 완벽한 폐허 어쩌다 경주를 다녀오고선, 그러고 또 어쩌다 황룡사 터를 찾고선 흔연欣然해져 넋을 잃은 작가는 말한다. "겨울이고 저물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이고, 새벽이나 한낮이라도 나름의 정취는 고스란했을 테다. 예술품에 '완벽하다'는 말이 쓰일 수 있다면 석굴암에 그러할 거라 했는데, 폐허에 '완벽하다'는 말을 쓸 수 있다면 황룡사지에 그럴 것이다." 그러면서도 못내 독자 혹은 청중이 믿기지 못한 듯 "그냥 가보시라, 황룡사지, 그토록 위대한 폐허"를 부르짖는다. 무엇이 이토록 그를 매료했을까? 그는 말한다. "화려했던 과거를 되짚을수록 현재의 폐허는 허무로 깊어진다." 상술하기를 "거대한 초석들 위에 세워졌을 거대한 기둥은 온데간데없다. 사라진 영화, 사라진 신전 앞에 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2022. 12. 8. 톨스토이 《부활》, 그 첫 문장 번역을 논한다 기자가 쓰는 기사도 그렇지만, 작가 또한 제목과 첫 줄과 마지막 줄에 목숨을 건다. 외국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도 이 세 가지는 더 유념해야 하는 이유다. 거기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골자를 압축하는 까닭이다. 두어 번 지적했지만, 아예 작품 제목이 패착을 빚은 대표 케이스로 어네스트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냐》가 있으니, 16세기 영문학에서 형이상학 시 돌풍을 주도한 존 던 John Dunne의 설교에서 따온 저 제목 영어 원제는 《For Whom the Bell Tolls》라, 저 옮김이 꼭 오역이라 할 순 없지만 그냥 종이 아니라 이 경우는 조종弔鐘이라 했어야 한다. 그 벨은 사람이 죽어 추념할 때 울리는 종인 까닭이다. to toll이라는 동사가 그런 뜻이다. 저리 옮겨 놓으면 학.. 2022. 12. 4. 참말로 불쌍한 아버지, 23주기에 부친다 2022년 양력 12월 2일은 음력 11월 9일이라 선친 23주기였다. 갓 제대하고 탱자탱자 중인 아들놈 대동하고는 제사 지내려 고향을 찾았으니 그 고향집 직선 백미터도 안 되는 지점이 경상북도 지정문화재인 섬계서원이고 다시 그 경내는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인 김천 섬계서원 은행나무가 있으니 이 은행나무 인근에 어머니가 작은 문중 밭뙤기를 소작하며 배추니 하는 채소밭으로 쓴다. 누님들도 내려오고 내친 김에 다시 그 배추 뽑아 김장해서 누님들한테 보낸다 해서 주말에 좀 부산을 떨었다. 욕심이 났는지, 차를 몰고 오지 아니한 남편을 원망하던 마눌님 다마네기 망태기에 배추 네 포기씩 세 자루를 만들더니 서울로 이송한단 엄명 내린다. 각기 한 자루씩 들고서 기어어 남영동으로 이송했으니 21세기 캐러밴이다. .. 2022. 12. 4. 무덤은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다 나는 왕릉을 필두로 하는 무덤을 이해하는 관건은 이것이 알파요 오메가라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이와 관련한 그 어떤 강연회에서도 항용 이 말을 되풀이한다. 우리는 살아 생전에 그가 살던 공간을 '집'이라 하거니와, 그가 죽어서 사는 '집'이 무덤이다. 그리하여 무덤을 이해하는 첩경은 첫째도 둘째도 백만스물한번째도 '집'이다. 그런 까닭에 집이 이사를 하듯 무덤 역시 이사를 하기도 하며, 나아가 그것이 집이기에 그 구조 발상 이를 퉁쳐서 그랜드 디자인이라 하거니와, 그것은 항용 생전의 집과 일란성쌍둥이를 방불하는 이유다. 집은 넒나드는 대문이 있고, 마당이 있고, 앞채가 있고, 안채가 있듯이 무덤 역시 마찬가지다. 없는 집에는 대문이랄 것도 없고, 안채 뒤채 구별될 리가 없듯이 무덤 역시 없는 집은 콩가루.. 2022. 12. 3. 이전 1 ··· 157 158 159 160 161 162 163 ··· 37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