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425 이집트엔 은이 없어 에게해서 수입? 어찌하여 이 소식이 호주 시드니발인지는 모르겠으나, ABC News Australia 보도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 왕비 헤테페레스 Hetepheres 무덤에서 1920년대 발굴된 팔찌들에 쓴 은은 그리스 에게해 섬 수입산임을 보여주는 분석 결과가 나왔댄다. 이 왕비는 파라오 스네퍼루 Sneferu 와 혼인하고 기자 대피라미드 건설자인 쿠푸 Khufu 어머니로, 기원전 2589~2566 무렵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Macquarie University Karin Sowada가 말하기를 이집트에서는 local sources of silver가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런 은은 이전에는 은 함유 비율이 높은 local gold sources 에서 추출한 것으로 간주했단다. 한데 이번 팔찌 분석 결과 그 은의.. 2023. 6. 11. 장미와 대나무 라니 별 희한한 조합도 다 있다 싶지만, 그림으로 옮겨놓으니 제법 아취가 그럴싸하다. 계유년, 곧 1933년 어느 봄날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1897-1944)의 붓끝이 이 둘을 만나게 하였다. 채색이 들어갔다고 무조건 화려한 그림이 되지도 않고 먹만 썼다고 무조건 담담한 그림이 되지도 않는다. 채색을 써도 얼마든지 이처럼 맑고 담담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법이다. 시대가 시대였으니만큼 일본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무호라는 작가 자신의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였던들 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 Editor's Note *** 저 이한복은 호를 호가 없다 해서 無號라 쓴 대목이 이채롭다. 그런 까닭에 무호는 자호自號일 것으로 본다. 덧붙여 전통 수묵화로 그렸을 법한 데다가 채색을 씌우고 더.. 2023. 6. 11. 이인직, 언어의 마술사 서창에 지는 해가 눈이 부시도록 비추는데 창밖에 지나가는 그림자는 날아드는 저녁 까치라, 서창을 마주앉아 꼬리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주동이를 딱딱 벌리면서 깟깟, 깟깟깟 짖기를 구기拘忌 잘하기로는 장안 여편네 중 제일 가는 김승지의 부인 시앗이니 무엇이니 하고 지향指向을 못하는 중에 저녁 까치 소리를 듣고 근심이 버썩 늘었더라... 인간에 새벽되는 소식을 전하려고 부상 삼백척에 꼬키오 우는 것은 듣기좋은 수닭소리라. 그 소리에 인간에 있는 닭이 낱낱이 운다. 아시아 큰 육지에 쑥 내민 반도국이 동편으로 머리를 들고 부상을 바라보고 세상밝은 기운을 기다리고 있는 백두산이 이리 굼틀저리굼틀 삼천리를 내려가다 중심에 머리를 다시 들어 삼각산 문필봉이 생겼는데 그 밑에는 황궁국도에 만호장안이 되었으니 종명정식하.. 2023. 6. 11. 1876-1945: 계속 표변한 일본 우리의 일본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아직 높지 않아 이렇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1876-1945년까지의 일본의 국력과 실체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도 시종일관 별 차이 없는 제국주의적 수준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러일전쟁 이전의 일본과 이후의 일본의 수준을 달리 보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느 시점 이전에 대해서는 일본에 면죄부를 주려는 시도로 보고 있기 때문에 1876년 조선의 개항 이후부터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 한국사에서 보는 일본은 주구장창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1876년 조선의 개항당시 일본의 국력은 제국주의와는 당연히 거리가 먼 나라였다. 일본인들은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당시 수준이 제국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2023. 6. 11.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필자의 글도 이제 중반을 넘어선다. 여기서 지금까지 쓴 글에 비추어 잠시 식민지근대화론에 묻는다. 보통학교 입학률과 경제성장률로 일제시대를 들여다 볼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일제시대 말로 갈수록 더 커지는 고등 교육수준 격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일제시대에 상당수 일본인이 조선땅의 경제활동 상층부를 형성하는 상황에서, 조선의 경제성장률은 조선인의 성장을 반영한다 할 수 있는가? 만약 식민지시대에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면,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조선인의 높은 문맹률은 무엇으로 설명 가능할 것인가? 통계학에는 심슨의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2023. 6. 10. 식민지시대 : 대학령은 왜 중요한가 앞에 글에서 식민지시대 조선과 일본을 결정해 버린 것은 대학령이라 했다. 물론 조선의 교육 문제는 대학수만 적다는 데 있지 않다. 전문학교와 고등학교수도 문제였고 특히 고등학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고등학교가 사실상의 대학예과 역할을 하던 시대에 대학이 없으니 고등학교도 당연히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수가 적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1차대전 이후 1920~1930년대는 일본의 기업들이 고도화하는 단계다. 그 전까지도 서구제국의 기업들에 비해 크게 못 미치던 일본 기업들이 이 시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필요해졌는데 정확히 말하면-. 학력에 따라 승진의 한계가 정해지는 일종의 "기업골품제"가 이 시기에 완성되었다. 먼저 아래 표를 보자. 1905.. 2023. 6. 10. 이전 1 ··· 2175 2176 2177 2178 2179 2180 2181 ··· 4071 다음 반응형